강제이주와 국내실향민 여성의 동원화: 콜롬비아의 사례
초록
콜롬비아의 무력분쟁과 폭력으로 인한 강제이주와 국내실향민 발생은 세계 2위, 라틴아메리카에서는 1위의 규모이며, 지속적인 사회적 불안요소가 되어왔다. 무력분쟁과 강제이주의 상황에서 여성은 아동, 원주민, 아프리카계 콜롬비아인과 함께 가장 취약한 그룹으로 분류된다. 콜롬비아의 강제이주로 국내실향민 여성들은 엄청난 고통을 경험하고 매우 취약한 상황에 처해졌다. 지역과 국가전체에서 광범위한 망을 구축하며 인권과 평화운동의 중심적인 역할을 해왔던 콜롬비아 실향민 여성들의 동원화는 헌법재판소와의 상호작용과 여러 판결들을 통해 정치참여의 기회와 공간을 지속적으로 만들고 이를 제도화 해내는 결과를 가지고 왔다.
이 논문에서는 콜롬비아 국내실향민 여성이 강제이주 피해자에서 보다 적극적인 정치행위자로 등장하게 된 배경으로서 국내실향민 여성의 정치적 동원화와 Tutela제도의 활용을 통해 얻어낸 성과들을 고찰한다.
Abstract
The armed conflict in colombia has continued for many decades causing forced internal displacement which is one of the important factor that generates social instability. Under the armed conflict, violence and forced displacement, women is one of the vulnerable group with children, indigenous and Afro-Colombians. Internally displaced women forced by various types of violence during the armed conflict and displacement have suffered in many ways distinct with the men. However, paradoxically the experience of forced internal displacement has generated an opportunity to organize and participate in several types of organizations for their rights and interests. In this article the interaction between the Constitutional Court and the organizations of women will analyzed as the environment that has enabled political mobilization of Internally Displaced Women for peace process and for their rights.
Keywords:
IDPs(Internally Displaced Persons), Armed Conflict, Acción de Tutela, Mobilization, Women Organizations키워드:
국내실향민, 무력분쟁, 보호요청, 동원화, 여성단체Ⅰ. 서론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지난 2014년 세계적으로 전쟁과 분쟁으로 인한 강제이주자의 수는 5950만 여명에 달해 역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이러한 증가는 최근 아프리카 북부와 중동지역에서 발생한 위기에 따른 것으로서 국제사회의 많은 우려를 낳고 있다.
강제이주는 국경을 넘는 경우와 국경을 넘지 않은 경우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이주는 어떤 이에게는 자발적 선택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강제적 선택이다. 특히 세계화라는 현대사회의 흐름 속에서 이동성은 매우 강력하고 드러나지 않는 위계화 요소다. 다시 말해, 글로벌화 된 정치경제적 엘리트들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국경을 드나들겠지만, 빈민들은 자신의 의지와 달리 생계를 위해 불가피하게 국경을 넘어야만 하거나 혹은 자국에만 머물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부유한 사람은 글로벌이고, 가난한 사람은 로컬’이라는 것이다(Castles 2003, 16 재인용). 강제이주라 하더라도 국경을 넘는 사람들은 국경을 넘지 못하는 경우보다 상대적으로 나은 조건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국내에서 강제이주를 겪어야 하는 이들 즉, 국내실향민(Internally Displaced Persons)1) 은 더욱 더 열악한 상황에 처한 이들이라 할 수 있다.
콜롬비아에서 강제이주로 발생한 국내실향민수는 2015년 10월에는 630만 명을 넘어섰으며2) 세계 2위의 규모다. 이는 현재 콜롬비아의 인구가 5천 만 명에 약간 미치지 못하는 것을 감안할 때, 약 12% 가량이 국내실향민이며 이 중 여성은 51.2%정도를 차지한다. 콜롬비아의 국내실향민은 1940년대 중반 이후 자유-보수 양당 간의 갈등으로 확산된 대규모 폭력사태인 ‘라 비올렌시아(La Violencia)’시기에 시작되었고, 반정부게릴라조직 FARC(Fuerzas Armadas Revolucionarias de Colombia)와 정부의 평화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국내실향민에 관한 통계는 1980년대부터 작성되었지만, 실제 국내외 강제실향민이 대규모로 발생하고 있는 것은 대 마약전쟁이라는 명분으로 미국의 대규모 지원을 받은 ‘플랜 콜롬비아’가 실시된 이후 최근 10여 년 동안이다. 플랜 콜롬비아의 이행은 콜롬비아의 입장에서는 광범위한 복지재원을 충당하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정부가 지원하는 대규모 예산은 폭동진압 및 마약활동 억제를 위한 콜롬비아의 군대조직으로 투입되었고 결국 플랜 콜롬비아는 단계적으로 확대되었다. 2002년도에는 콜롬비아 전체 행정구역의 85%에서 이동에 따른 인구규모의 감소를 보였는데 이들의 대부분이 강제실향민에 해당된다.
여성은 아동, 소수민족 및 종족과 함께 분쟁발생지역에서 강제이주를 경험하는 주민들 중 가장 취약한 그룹이다(Martin and Tirman 2009, 113).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분쟁중인 군사 활동에서 사용되는 일반적인 ‘무기’이기 때문에, 어린 소녀들을 포함한 국내실향민 여성들은 가정폭력, 성폭력과 성 착취 등에 취약하다. 또한 전통적으로 가사를 전담해 온 여성들은 남성보다도 사회경제적 위기에 대한 대응준비가 미흡하다. 국내실향민 여성의 보건 및 출산에 대한 정부의 지원도 매우 부족하다. 플랜 콜롬비아 이후 강제이주를 한 수백만 명의 여성들은 주민등록도 용이하지 않았고, 정부의 응급지원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국내실향민 여성들은 생존과 이러한 억압과 주변화에 대한 극복이 절실했다. 국내실향민 여성들은 생존과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이웃과 연대하기 시작하여 광범위한 망을 구축하였고, 적극적으로 법 제도를 활용하여 국내 실향민 여성권리 확보에 매우 중요한 헌법재판소의 판결들을 받아냈다.
본 연구에서는 강제이주의 경험이 콜롬비아 사회에서 실향민 여성들을 보다 적극적인 정치행위자로 변모하게 하는 계기로 작용했다는 부분에 주목하고자 한다. 따라서 이 연구에서는 콜롬비아에서 강제이주가 남성과 여성에게 미친 영향은 어떻게 다른가? 콜롬비아에서 강제이주의 경험이 실향민 여성들에게 어떠한 변화를 가지고 왔는가? 그리고 콜롬비아 국내실향민 여성들의 동원화의 배경과 성과는 무엇인가? 에 대한 고찰을 세부연구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강제이주가 여성에 미치는 영향이 남성과는 어떻게 다르게 나타날 수 있는지를 기존연구를 통해 검토한다. 국내실향민 여성의 동원화3) 배경으로서 강제 국내실향민 여성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국내실향민 여성이 정치적으로 동원화하면서 어떠한 요구들을 해 왔는지를 고찰한다. 또 정치적 동원화의 주요 성과를 법적제도의 활용과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통해 고찰하고자한다.
Ⅱ. 강제이주, 국내실향민 그리고 여성
1. 강제이주와 국내실향민
강제이주에 관한 연구는 난민연구에서 출발한다. 강제이주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는 1990년대 이후부터 이루어져 왔다. 1990년대까지의 난민(refugee)연구는 정치적 난민에 관한 연구가 주를 이루었으며 경제, 사회, 환경 등 삶의 환경 변화와 위협에 따른 이동과 관련된 연구는 적었다(Chimi 2009, 12). 이러한 맥락에서 난민연구를 보다 광범위한 연구로 확대시킬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자연적 원인이건 인위적 원인이건 생명과 삶의 위협을 포함한 강제적 요소가 있는 이주이동을 난민의 개념으로 확대하면서 난민발생의 원인, 결과, 문제의 해결방향에 대한 연구로 확대되었다.
1980년 초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세계적으로 발생한 무력분쟁들로 인해 국내실향민의 수가 급증했고 국내실향민의 수는 국경을 넘는 난민수의 2.5배에 달했다(Weiss and Korn 2006, 13). 따라서 난민연구를 국내실향민들을 포함하는 보다 광범위한 연구로 확대시킬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지만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국내실향민의 개념이 명확하게 정립되어 있지 않았다(Mooney 2005,10). 그리고 국내실향민의 문제는 각 국가의 주권과 관련되기 때문에 이들을 국제적 보호의 대상에 포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시각이 팽배했다. UN은 프란시스 덩(Francis Deug)교수4)의 주도로 이루어진 오랜 현황조사와 논의를 거쳐 국내실향민에 대한 규정을 내렸다. UN은‘무력분쟁, 일상화된 폭력상황, 인권침해, 인간과 자연에 의한 재해로 인해 원래 거주하던 지역 장소나 집을 떠나거나 탈출하도록 강요된 사람들의 그룹으로서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국경을 넘지 않은 사람들’을 국내실향민으로 규정하였다.5) 그리고 강제이주가 가장 직접적인 문제인 무장개입이나 분쟁만이 아니라, 지역 내 갈등과 권력관계, 정치사회적 문제, 인종갈등, 인신매매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발생한다는 사실들이 반영되었다(Chimi 2009,17).
우리나라에서 강제이주의 관점으로 라틴아메리카의 사례를 연구한 것은 차경미(2009, 2011)의 콜롬비아 사례에 대한 연구가 처음이다. 콜롬비아 국내실향민의 역사는 19세기 자유당과 보수당 간의 갈등으로 많은 인명살상이 유발된 천일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 ‘라 비올렌시아(la violencia)’시기(1946-1958)에 특정계급이 권력을 강화하고 지배영역을 확장하는 과정이 초국가적 자본의 이해와 부합하는 가운데 폭력적으로 농촌토지점령이 이루어졌고, 이 과정에서 국내실향민이 대규모로 발생했다. 이후 1980년대까지 민병대와 게릴라집단과의 무력분쟁이 반복된 것도 국내실향민이 꾸준히 발생하는 원인이 되었다(Cha and Choi 2012). 알바로 우리베 대통령(Álvaro Uribe Vélez, 2002-2010)시기에 미국정권과의 제휴로 시작된 플랜 콜롬비아는 마약과 오랜 불법무장조직들을 근절시키기 위한 국가안보정책의 일환으로 이루어졌지만, 결국 콜롬비아의 군사화를 심화시키면서 안보를 위협하고 강제이주를 대규모 양산하는 결과를 가지고 왔다(Cha 2009). 민병대가 정부에 의해 힘이 강화되면서 흑인공동체에 대한 대규모 학살이 자행되었고, 불법 마약경작지 및 점령지에 대한 세력 확장을 꾀했다. 이 과정에서도 대규모 강제이주가 유발되었다. 특히 베네수엘라, 파나마, 에콰도르 등 주변국가로 강제실향민이 유입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배경들은 국내실향민이 발생하는 요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2002년 플랜 콜롬비아가 실시되면서 과거에는 무력분쟁과 무관했던 대서양과 태평양 연안지역에 다양한 경제적 이익이 중첩되면서 지역이 무력분쟁의 중심이 되었고, 이로 인해 정치적 갈등이나,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람들의 강제이주를 유발했다(Cha and Choi 2012).
기존 연구들에서는 강제이주로 발생한 콜롬비아 난민들이 주변국가로 유입되는 원인과 현황들, 알바로 우리베 대통령의 정책 등을 분석하였다. 또한 취약계층으로서 아프로-콜롬비아계가 국내실향민으로서 증가하고 있는 요인들을 면밀히 분석하고 있지만, 국내실향민 여성을 심도있게 다루지는 않았다. 본 연구에서 다루고자 하는 국내실향민 여성은 다양한 동원화를 통해 국내실향민의 권리회복과 정책개선에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의미있는 연구대상이 될 수 있다.
2. 강제이주가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
자신의 거주지로부터 다른 지역으로 강제로 옮기게 되는 상황에서는 여성과 남성 모두 개인의 안전과 삶에 대한 위협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여성과 남성은 분쟁의 발생과 강제이주를 통한 거주지의 이동 그리고 정착과정에서 서로 다른 경험을 한다. 이는 문화적으로 규정된 젠더역할과 책임이 다르기 때문이다.
슐츠와 여러 학자들에 따르면(Schultz et. al 2014) 콜롬비아의 강제이주는 추방하기 전 주민에 대한 위협 및 취약화 단계, 추방하기, 이주, 새로운 위치에 대한 초기수용단계, 재정착 연장의 단계를 거치는데, 대부분 여기서 강제이주의 과정이 종료된다. 드물게는 원래의 살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단계가 추가되기도 한다. 코레아(Correa de Andreis, 2009)도 콜롬비아의 강제이주와 재정착과정을 슐츠와 유사하게 설명하는데, 아래의 그림과 같이 설명될 수 있다.
콜롬비아에서처럼 지속된 무력분쟁과 폭력의 결과로 강제이주가 발생하게 되었을 때, 강제이주와 재정착 과정에서 여성과 남성에게 미치는 영향은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르다.
첫째, 여성은 젠더 그 자체로서 공격과 위협의 대상이 되며, 성폭력과 가정폭력은 위의 <그림1>에서 나타난 강제이주의 모든 과정에서 여성들의 삶을 위협하는 요소가 된다.
둘째, 가정에서 여성의 역할이 변화한다. 남편이나 가족의 납치, 살해 등으로 인해 여성들은 가족과 단절되거나 미망인이 되어 가족의 생존을 책임지게 된다. 대부분의 여성들에게는 기존 생활범주가 가족, 가정, 이웃 등 매우 사적인 공간에 제한되어 있는 경향이 많았기 때문에 그러한 상황에 따른 트라우마가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강하게 나타난다.
셋째, 강제이주과정과 이후 고용시장 진출에서의 차이다. 생존을 위한 재정착 과정에서 여성보다 남성의 실직상황은 더 심각하다(Meertens 2004). 특히 고용시장에서는 국내실향민남성들이 농사와 같은 농촌의 경제활동에 익숙해져 있으므로 도시지역에서 고용되기는 쉽지 않다(Tovar Guerra; Pavajeau Delgado 2010, 98). 여성들은 가사활동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일자리를 갖는 것이 상대적으로 수월하지만, 저임금에 열악한 노동조건이고 비공식 노동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상황은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 남성이 가지고 있던 보호자 혹은 부양자로서의 권위와 이미지를 유지하기 어렵게 한다. 그 결과 기존의 가족구성원내에서 젠더와 세대 간 역할의 역동성에 영향을 미쳐 강제이주 전의 역할구도를 변화시킨다(Ibid, 99). 여성은 비공식 부문이긴 하지만,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수월한 고용의 기회로 인해 남성 대신 가장의 역할을 맡게 된다.
넷째, 출신지역과 종족 및 인종적 차이는 국내실향민에게 또 다른 차별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특히 여성들은 거주지역 주민이 중심이 되는 공동체 공간에서 출신지역과 종족, 인종적 차이로 인한 상당한 차별을 경험한다. 산악지역이나 해안지역 출신의 원주민이나 아프로-콜롬비아계 여성인 경우는 국내실향민, 여성, 종족의 삼중차별을 겪는다.
다섯째, 국내실향민으로서 새로운 지역에서 적응이 어려운 경우 남성과 여성의 선택이 다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여성이나 남성 모두에게 쉽지 않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내기 어려운 경우 다시 자신이 살던 곳이나 혹은 또 다른 제3, 제4의 지역으로 이동을 시도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남성은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여성은 다른 지역으로의 재이주를 선택하는 경향이 많다.
여섯째, 공적영역에서는 강제이주가 전통적인 여성과 남성의 기대역할을 크게 변경하지는 않는다. 공적영역의 활동은 여전히 남성에게 중심이 된다. 남성이 여전히 가장인 경우는 기존의 모든 관공서와 관련한 일들에서 대부분 남성이 대표의 역할을 한다. 반면, 여성은 보다 가까운 마을공동체나 비공식 관계를 이루고 있는 영역에서 사회관계를 맺고 간접적으로 공적영역과 연결되게 된다(Meertens 2004). 이러한 관계형성은 비공식 영역에서 출발하지만, 국내실향민 여성들이 지속적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자체적인 대응방안들을 모색하도록 하며, 자신들의 권리회복을 위해 목소리를 응집해야 할 필요성을 공감하는 기회가 된다. 나아가 실향민 여성단체를 구성하거나 혹은 다른 여성단체 및 NGO들과 협력하면서 정치적으로 동원화하는 바탕으로 작용한다.
Ⅲ. 국내실향민 여성의 정치적 동원화
1. 국내실향민 여성의 현주소
플랜 콜롬비아가 실시된 초기의 인구통계(2000-2004)를 보면, 15세 미만의 어린이가 전체 국내실향민의 46%이고, 15세에서 49세가 44%, 50세에서 65세가 6%, 65세 이상이 3%로 연령별로는 15세 미만의 아동들이 강제이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Ruiz Ruiz 2013, 60). 그러나 성별과 연령을 함께 고려했을 때, 생산과 재생산 연령에 해당하는 15세-49세의 여성이 전체 국내실향민 인구의 40.3%에 달했다(Ibid.,67). 2015년 10월 1일 콜롬비아 희생자회복 및 보호를 위한 국가정보망(RNI, La Red Nacional de Información para la Atención y Reparación a las Víctimas)에 따르면, 강제이주피해자 남성은 3,150,894명, 여성은 3,318,739명으로6) 여성의 비율이 더 높다. 국내실향민 여성의 문맹률은 13.8%로 전국평균(8.3%)보다 훨씬 높고, 평균 교육연수도 전국 평균이 8.6년인데 비해 국내실향민 여성은 5,6년에 불과하다(Ibid., 125). 국내실향민 여성의 출산율은 3.8명으로 콜롬비아 전체평균보다 0.94명이나 높게 나타났다(Ibid.,67). 실향민 여성들의 농촌 특성-낮은 교육과 산아조절 그리고 농촌 노동력확보-을 감안하더라도, 높은 출산율은 강제이주 상황에서 삶의 질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무력분쟁과 폭력으로 인한 사망은 남성에게 집중되었지만, 여성들도 점차 그 대상이 되어왔다. 강제이주피해자의 권리회복, 무력분쟁반대, 토지회복 및 보상 등 여성들이 참여하는 활동이나 직업으로 인해, 혹은 특정그룹 - 국내실향민, 성매매자, 거리의 아이들, 원주민·아프리카계 카리브여성 등-에 소속됨으로써 주요 폭력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특징적으로, 여성들은 남편이나 아들이 민병대나 게릴라에게 살해당하거나 납치되면, 죽음과 폭력의 위협으로 인해 농촌지역을 떠난다. 이때 여성들은 정신적인 외상을 입고 두려움 속에서 그들의 집과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들이 돌보는 자녀들과 친척들을 데리고 도시로 향한다.
콜롬비아 국내실향민의 30-50%는 대도시 부근에서 살고 있으며, 나머지는 농촌지역의 소규모 도시주변지역을 새로운 거주지로 삼는다. 이 과정에서 국내실향민들은 대규모 보다는 개인적으로 이동하거나 소그룹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보호나 지원을 받는 것이 용이하지 않다. 국내실향민을 지원하는 프로그램과 법안들이 있지만 제한적이며, 많은 여성들은 신분증이 없거나 이동을 증명할 수 있는 근거가 부족하여 공식적 지원을 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또한 고향이 아닌 경유체류지나 재정주하기로 선택한 지역에서 타 지역 혹은 타 종족출신임을 이유로 자신들이 비난받거나 괴롭힘을 당할 것을 우려하여 국내실향민으로 등록되는 것을 꺼린다. 흑인과 원주민 여성들은 성별뿐 만 아니라 종족과 정체성까지 차별을 받아 다중적인 고통을 경험한다.
국내실향민 중 여성가구주는 가장 취약한 그룹의 하나다. 1999년 콜롬비아 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56%의 실향민 가족들의 가장이 여성이고, 이들 중 74%가 미망인이거나 이주과정에서 홀로 된 여성들이다(Norwegian Refugee Council 2002). 2005년의 국내실향민 관련 통계에 따르면, 여성이 가장인 가구가 최저 39%에서 81%에 달하는 지역까지 있었다.7) 여성가장과 소녀들은 젠더에 기초한 폭력에 취약하다. 성폭력은 콜롬비아에서 무장폭력과 거주지를 옮기는 과정에서 한 부분을 차지하며, 무장그룹들은 여성들에 대한 위협전략의 하나로 성폭력을 활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성폭력을 당한 국내실향민여성들에 대한 정신적-사회적 돌봄도 결여되어 있었다(Ibid.).
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국내실향민 여성들에 대한 최우선적인 문제는 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농촌 여성들은 공고하게 설정된 젠더역할의 환경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도시에서의 생활에 적용시키기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다. 가족들은 음식과 숙소와 같은 기초적인 요건들에 대한 비용을 지불할 현금을 가질 수 있어야 하고 자녀들의 학교와 보건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경제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많은 여성들은 필요한 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관료들이나 공무원들과 협상하여 지원을 받아내는데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다. 가사노동의 경험을 바탕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제외하고는 임금노동을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는 것은 매우 어렵다. 여성들은 적절한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고, 육아를 하기 어렵기 때문에 가사서비스나 노점상 같은 비공식노동과 저임금노동에 집중된다. 최소한의 노동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착취까지 당하면서 가정의 경제를 책임지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또한 국내실향민 남성의 실직은 가정과 사회에서의 역할 및 위상의 변화와 함께 가족에게 심각한 압박을 가하게 된다. 이러한 압박은 다시 가정폭력의 증대로 나타나고 여성과 아동에게 심각한 영향을 준다. 한편, 강제이주는 교육과 경제적 기회의 부재와 함께 범죄그룹이나 무장단체에 영입되는 결과도 가지고 왔다. 젊은 여성들은 생존수단과 보호를 받기위한 수단의 하나로 민병대와 게릴라에 입대하는 경우8)도 있으며, 성폭력과 매춘으로 인한 조기임신과 출산, 인신매매 대상으로서의 위험에 언제나 노출되어있다(Cepeda-Espinosa 2009, 6).
재정착지에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는 경우에도 여성은 재산을 되찾거나 토지소유권에 대한 접근이 어렵다. 원주민과 아프리카계 여성 등 소수에 대한 차별은 정책결정을 위한 공적공간에서도 소외된다(Servicio Jesuita a Refugiados-Colombia, 2009).
2. 국내실향민 여성의 정치적 동원화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무력분쟁과 폭력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국내실향민 여성들은 가장 취약한 사회그룹의 하나이다. 강제이주와 실향으로 여성들은 생존을 위해 게릴라가 되거나 민병대에 입대하기도 하고, 평화를 되찾기 위한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기도 했다. 2002년 파스트라나 정부와 FARC간의 협상실패는 콜롬비아 평화운동에 실망을 가져다주긴 했지만, 이 과정에서도 여성들은 시민사회를 포함하는 평화협상을 제안하면서 무력분쟁이 야기하는 인적 희생에 대한 우려를 적극적으로 표명했다. 분쟁의 요인을 찾아내어 콜롬비아를 공통으로 묶을 수 있는 공통의 아젠다를 만들어 내고자 시도하였고, 2004년에는 콜롬비아 지도자 및 전문가들과 함께 국가 안정과 안보를 위한 정책수립에 여성을 포함하도록 강력하게 제안하였다(Women Waging for Peace 2004).
콜롬비아에서 국내실향민 여성의 동원화는 1990년대 말부터 두드러지기 시작하여 2000년대 동안 매우 활발하게 나타났다. AFRODES(Asociación Nacional de Afro-colombianos Desplazados, 아프로-콜롬비아 실향민 전국협회)9)의 한 활동가는 인터뷰에서 “강제실향 여성은 특수한 사정을 고려한 보살핌이 필요하다. 이들은 남편을 잃은 트라우마를 갖고 살면서 아이들을 보살펴야만 한다. 여성들은 아이들에게 어머니도 되어야 하고 아버지도 되어야 한다. 아프로-콜롬비아계 실향민 여성들은 인종 및 종족차별로 인해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 더욱 열악한 상황에 처해있다. 또한 이들은 도시의 일자리에 적합한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다. 게다가 국가가 실향민 여성들에게 제공한 지원들에는 기저귀나 여성위생용품 등과 같은 물품들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 (Sanchez-Garzoli 2003)라고 밝히고 있다. 이는 무력분쟁에 의한 강제실향 여성들의 일반적인 상황을 대변하는 것임과 동시에 국내실향민 여성동원화의 근원적인 동인이자 배경으로 설명될 수 있다.
국내실향민 여성들은 강제이주 후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소규모로 이웃과 연대하는 방식으로 동원화를 시작하여 점차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그 범위를 국내외 단체의 지원을 받거나 연대해 나갔다. 주요 도시지역에서 실향민 여성들의 동원화와 단체 활동은 비슷하고 어려운 처지에 있었던 강제이주를 해 온 이웃들을 중심이 되어 경제적 생존과 육아 등 기초생활에 대한 소규모의 상호부조형태의 모임으로 시작되었다(Correa de Andreis et al. 2009, 112; Lemaitre Ripoll and Vargas Gómez 2014, 60). 가령, 실향여성연대(Liga de Mujeres Desplazadas)10) 는 1998년 카르타헤나에서 8명의 실향민여성들이 기초생활에 대한 자구책을 마련하기 위해 단체를 결성했다. 이들은 구성원 확대와 함께 아이디어를 결집해 나갔고, 현재는 카르타헤나와 인근 소도시들에서 300여명이 넘는 구성원을 가진 단체로 성장했다.
이러한 형태로 국내실향민 여성들의 단체설립과 활동은 점차 확대되었다. 강제이주의 원인과 피해에 대한 대책들을 정부에 요구하고, 국제NGO나 정부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 조직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공식적으로 조직을 만들어 나갔다. <그래프 1>에서 볼 수 있듯이 콜롬비아에서 여성들의 사회투쟁은 전체 사회투쟁 중 3-4%정도에 불과하였으나, 1999년부터 무력분쟁희생자로서 국내실향민 여성들의 사회투쟁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2007년도에는 최고에 달했는데, 실향민 여성들의 시위는 120건 이상을 기록하여 이들의 동원화가 지속적으로 확대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실향민 여성 단체들은 가족들의 납치, 살해, 사망 등에 대한 항의 뿐 만 아니라 물리적, 상징적인 여성에 대한 폭력에 항의함으로서 모성을 사회화하고 여성권리의 회복을 주장했다. 같은 시기동안 시위를 통해 요구한 사항들은 60%가 생명권, 개인의 통합성과 자유, 사회경제적 권리, 정치적 권리, 성적 권리, 재생산권리 등과 관련된 것이었다. 이러한 내용들은 무력분쟁의 희생자로서 뿐만 아니라 여성의 종속적 지위에서의 해방까지도 포함한 것이었다. 강제실향민 여성가구주가 겪는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인 주거문제도 시위의 5%를 차지했다. 그 외에도 여성들은 젠더 특성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여성도 적지 않았다(Archila 2013, 10-13).
또한 실향민 여성들은 기존의 여성운동과 연대하여 여성의 시민권 및 권리확대, 그리고 내전반대 및 평화모색에 초점을 맞춘 제3의 물결이라 불리는 콜롬비아 여성운동의 새로운 장을 여는데 일조했다(Ibid., 16). 1991년에 창설된 전국여성네트워크(Red Nacional de Mujeres)는 전국 각 지역과 농촌까지도 기본단체의 망을 구축하고 성권리 및 재생산권의 확대를 위한 아젠다를 개발에 주로 집중했다. 안티오키아(Antioquia) 주에서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 다시 심각해지고 있었던 1996년에 여성평화노선(Ruta Pacífica de las Mujeres)이 창설되었다. 여성평화노선은 도시와 농촌 등 무력분쟁 지역에서의 여성폭력문제를 부각시킴과 동시에 정치적 협상을 통한 무력분쟁의 종식 등을 위해 활동해오고 있다.11) 또 스위스 대사관과 공무원 노조의 지원을 받아 평화를 위한 여성 이니셔티브 동맹(Alianza Iniciativas de Mujeres por la Paz, 이하 Alianza IMP)이 2001년에 설립되었다. IMP는 무력분쟁으로 취약한 여성들의 권리보장을 위한 공공정책을 제안하고, 무력분쟁 종식을 위한 정치협상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12)
3. 국내실향민 여성단체의 ‘Tutela’ 활용
국내실향민문제로 오랫동안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반면, 콜롬비아는 국내실향민보호법 제정에서 선구적인 국가로 평가된다.13) UN이 국내실향민 관련법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은 1998년인데, 콜롬비아는 1997년에 Ley 387을 통해 이미 국내실향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법적 장치를 마련했다. Ley 387은 강제이주의 모든 요인과 단계에 적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 법 규정으로, 세계적으로도 드문 사례로 평가된다. 이 법에서는 가능한 모든 강제이주의 요인과 단계를 다루면서 추가적인 강제이주 방지와 귀환, 재정착 혹은 재통합을 위한 지속적인 해결책도 함께 다루었다. Ley 387에서는 강제이주의 요인을 국내무장분쟁, 시민갈등, 일반적 폭력사태, 국제인권법 침해 등으로 규정하였다(Wyndham 2006, 9). 하지만 Ley 387에서는 자연재해나 개발에 따른 강제이주에 대해서는 다루고 있지 않아 무력분쟁과 정치적 갈등으로 점철된 콜롬비아의 특수한 역사적 맥락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유엔보다 앞서 국내실향민보호법이 마련될 수 있었던 배경은 1991년 대통령령 2591(Decreto 2591 de 1991)14)로 마련된 인권보호 장치라 할 수 있는 ‘Acción de Tutela(보호요청, 이하 Tutela)’제도이며, 이 제도는 1993년 선고된 판결 C-018(Sentencia C-018 de 1993)을 통해 보다 구체화되었다. Tutela는 콜롬비아 국민이면 누구라도 공권력이나 공적행위에 의해 자신이 기본적인 인권침해를 당했다고 판단될 때 이를 법원에 고소함으로서 해당 권력과 행위에 대해 판사가 판단하고, 즉각 명령을 통해 개인이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다. 법원은 이 제도를 통해 고소가 접수되었을 경우에 10일 이내에 문제에 대한 결정을 내리도록 하였다. 실향민 여성들은 독자적 단체 혹은 기존 여성단체들과의 연대를 통해 Tutela를 적극 활용하면서 국내실향민보호법 개정과 정책개선에 참여하였다.
1997년의 Ley 387은 국내실향민의 권리보호를 위한 법적 장치로써‘폭력에 의한 실향민 통합보호 국가시스템(Sistema Nacional de Atención Integral a la Población Desplazada por la Violencia)’과 후속대통령령으로 ‘실향민단일등록제(Registro Único de Población Desplazada)’를 통해 국내실향민들의 경제사회적 안정을 도모하고자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관과 시스템도 효과적이고 충분한 국내실향민 상황의 개선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이에 국내실향민 권리보호단체들과 국내실향민들은 Tutela를 통해 적극적으로 법원에 청원하였다(Lemaitre Ripoll; Vargas Gómez 2014,21). 이에 헌법재판소는 국내실향민의 권리와 관련한 108가지 Tutela에 대한 검토를 통해 2004년 판결 T-025(Sentencia T-025)를 선고하였다. 이 Tutela 제출은 실향민 여성들이 중심이 되었다. 판결 T-025의 원문15)에 따르면, 총 108개의 Tutela를 평균 4인으로 구성된 1150개의 강제실향민가구가 제출했는데 주로 여성가구주, 노인과 어린이로 구성되어있고 원주민도 포함되어있다. 이 판결에서는 강제이주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개인의 존엄한 삶, 통합성, 평등, 청원, 일자리, 보건, 사회적 안전, 교육, 생존을 위한 기본요건이 침해되었으며, 특히 보호받아야 할 노인, 여성가장, 임신부, 어린이, 원주민과 아프리카계 콜롬비아 공동체, 그리고 장애인들이 특별히 보호받을 기본적 권리가 침해되었다고 보았다(Unidad de Protección, ACNUR-Colombia 2004). T-025 판결을 통해 헌법재판소는“공식적으로 국내실향민들의 삶과 관련하여 위헌적 상태가 존재 한다”16)고 선언하고, 정부에게는 국내실향민들이 콜롬비아가 국제적으로 서명한 인권수준에 준하는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정책수립 및 예산확보 등을 통해 이행할 것을 명령했다. 즉, T-025 판결은 정부가 국내실향민의 권리보장에 실패한 것으로 평가하고 이를 해결할 방안을 마련하도록 한 것이다. 이 판결이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었던 부분은 이 판결에 대한 정부의 이행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지에 대해 정부와 NGO들로부터 간접적인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이를 보완하는 후속판결들을 지속적으로 제시하였다는 점이다(Rodriguez-Garavito 2015, 132-133). 또한 모니터링의 과정에 실향민 여성단체들의 역할이 매우 컸다.
T-025 판결에서 여성가장과 임신부를 특별보호의 대상으로 규정하였지만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지 않자, 국내실향민 여성단체들은 심각한 여성의 기본권침해를 호소하는 Tutela를 지속적으로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이에 T-025 판결의 후속판결 중 하나로 국내실향민 여성의 권리를 전적으로 다룬 Auto 092 판결(2008년 5월)17)과 Auto 237 판결(2008년 11월)을 내렸다. 이 판결은 국내실향민 여성의 현황에 대해 분야별 분석결과와 함께 정부에게 구체적인 대응책을 제시하고 있어 하나의 정책보고서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헌법재판소는 Auto 092에서 정부기관과 실향민 여성단체를 비롯한 NGO, 국제기구 등의 자료와 Tutela의 검토를 통해 정부의 국내실향민보호정책이 실향민 여성에게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하고 있지 못함을 지적했다. 정부에게 권고의 차원을 넘어 국내실향민 여성을 위한 구체적인 13가지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세부정책을 수립하는 시기도 2개월로 제한하였다. 또한 정책수립과정에서도 최소한 27개 기관18)및 단체를 참여시킬 것을 요구했다. 또, 즉각적인 인도적 지원의 일환으로 메데인으로 이주해 온 실향민 여성 이사벨(Isabel Ilduara Acevedo Martínez)을 포함한 총 600명의 국내실향민 여성에게 일정금액의 경제적 지원과 함께 기본권리를 보장하라는 보호명령도 포함되었다. Auto 092는 헌법재판소가 정부기관, 사회단체 등에 정기적인 현황보고서 제출을 요구함으로서 국내실향민 여성단체들에게는 전례 없는 동원화와 추가적 조직 강화를 위한 강력한 동인을 제공하였다.
해당 판결들의 이행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하기위해 마련한 ‘Auto 092 지속국가위원회(Mesa de Nacional de Seguimiento al Auto 092)’에도 다양한 국내실향민 여성단체, 정부기구, 국제기구 등 다양한 기구와 단체들이 포함되었다. 추가적인 법제정과 판결들을 통해 국내실향민들의 권익이 도시발전계획에 포함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위해 국내실향민 지역단체가 ‘단일통합계획(Planes Integrales Únicos)’을 통해 발전계획 수립과정에 반드시 참여하도록 하였다.19) 이 과정은 각 지역에서 여성들이 정책수립과정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매년 많은 여성 리더들과 인권보호활동가들이 살해당하고,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Alianza IMP를 비롯한 많은 단체들은 2012년 Tutela를 통해 여성 리더들과 인권보호활동가들의 안전과 관련한 T-234 판결을 이끌어냈다. 이 Tutela에서는 강제실향민과 성폭력 희생자 등 인권활동에 참여한 것을 이유로 생명과 자유, 통합성에 위협을 받는 부분들을 정부가 적극 보호해 줄 것을 요청한 것이었다.
Ⅳ. 맺는 말
본 연구는 무력분쟁으로 인한 강제이주의 경험이 콜롬비아 국내실향민 여성을 강제이주 피해자에서 동원화를 통해 적극적인 정치행위자로 변모하게 되는 배경과 과정, 그리고 그 성과들을 파악해 보기 위한 것이었다.
무력분쟁으로 인한 국내실향민 중 여성이 절반이상을 차지하는 콜롬비아에서 강제이주와 실향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이미 사회적으로 취약했던 여성들을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무력분쟁과 강제이주의 과정은 국내실향민 여성들을 젠더 그 자체로 인한 생명의 위협과 함께 다양한 차별과 취약한 상황들에 노출시켰으며 기본적인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으로 내몰았다.
농촌 및 도시지역으로 유입된 국내실향민 여성들의 동원화는 새로운 지역에서 적응하고 생존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들의 동원화는 상호부조의 형태로 이웃과 연대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그들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보다 강력하게 연대할 필요를 인식하게 되었다. 따라서 연대의 범위를 지역과 전국 그리고 국제단체와의 연대로도 확장시켜나갔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결집시키고, 저항을 체계적으로 전개해 나가기 위한 보다 강력한 단체와 방법들을 고안해 낼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모임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구성원을 확대하며 단체로 성장하기까지 국내실향민 여성들의 결집은 오랜 무력분쟁과 폭력이 지속되는 사회에서 사회적 차별과 맞서며 생존하기 위한 절박한 노력이었다. 국내실향민 여성의 주요 동원화 이슈들은 모성으로서 가족에 대한 폭력과 생명의 위협, 생존문제에 맞서는 것부터 시작하여, 여성으로서 시민권 및 권리 확대, 사회 경제적 권리의 확대, 그리고 내전종식 및 평화운동으로까지 확대되었다.
동원화한 국내실향민 여성들이 목소리를 구체화하고 권리요구를 실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은 Tutela라는 법적장치였다. 국내실향민 여성들은 다양한 시위를 전개하는 것과 동시에 기존의 여성단체 및 국내외 단체들과 연대하여 Tutela를 통해 정부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거나, 자신들의 권리가 침해받는 부분들을 적극적으로 문제제기 하였다.
헌법재판소는 Tutela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판결을 통해 방향을 제시하고, 이에 대해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여 그 결과를 다시 반영하였다. 이 과정에도 실향민 여성단체들이 적극 참여하였다.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리보호에 실패했다고 판단한 헌법재판소는 국내실향민보호를 위한 정부정책 가이드라인을 수차례의 판결을 통해 제시하였다. 또한 해당 판결에 따른 이행이 적절히 이루어지는 지에 대해 국내실향민 여성단체를 포함한 다양한 사회단체를 통해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그 결과를 정부정책에 반영하도록 후속판결들을 통해 변화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역동적인 흐름은 국내실향민 여성들이 동원화와 연대를 통해 가시적인 성과들을 얻어내는 바탕이 되었고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실향민 여성단체나 인권단체에 소속된 활동을 계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제도적 변화의 필요는 국내실향민 여성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표할 단체를 만들어야할 강력한 동인을 제공하였고, 실제로 새로운 거주지역, 출신지역, 종족 등 의 다양한 차이요소에 따른 실향민 여성단체들이 결성되었다. 이 단체들은 일부는 독자적으로, 일부는 국내외 단체들과 연대하며 활발한 활동을 유지해왔다. 지방정부들이 헌법재판소의 압력으로 ‘단일통합계획’을 수용했지만, 지방에서는 여전히 불법무장세력들의 지방정치에 대한 영향력은 강했다. 지방에서 여성단체 리더가 도시발전 계획수립이나 정책수립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강제이주’의 경험이 역설적이게도 가장 취약했던 국내실향민 여성들을 적극적인 정치적 행위자로서 변모시키는 계기로 작용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Acknowledgments
* 이 논문은 2011년도 정부(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연구되었음 (NRF-2011-332-B00350)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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