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아메리카 민족주의와 포스트-신자유주의 시기의 민족국가의 재구성
초록
오늘날 세계화 이데올로기와 탈 민족주의 담론은 국가의 주권이 시장으로 넘어갔고 시장 주권으로 인해 민족주의도 소멸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민족국가의 종말에 대한 예견은 빗나갔고 민족주의는 더 강화되었으며 민족 문제는 국제적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본 논문의 목적은 20세기 라틴아메리카 민족주의의 형성 과정과 전지구적인 경제 위기 이후 민족국가가 재구성되는 과정을 멕시코와 아르헨티나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는 것이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먼저 민족과 민족주의의 개념에 관한 논의들을 살펴보고, 이러한 논의들을 가라타니 고진이 제시하는 자본=민족=국가라는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의 관점에서 새롭게 성찰했다. 이를 바탕으로 20세기 라틴아메리카 민중민족주의의 변환을 멕시코와 아르헨티나 사례를 통해 비교 검토했다. 마지막으로 라틴아메리카 사회운동은 자본과 국가에 대항하여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를 구성하려는 시민혁명의 출발점이라는 점을 밝혔다.
Abstract
Among the various ideological claims of globalization and post-nationalistic discourses were that the state had been superseded by the market; that the market would render the nationalist cause obsolete. But now we can see more clearly nationalism’s revival, not its death. Contemporary social reality attests to the relevance of the national question. The main goal of this article remains on addressing how Latin American nationalism has been transformed in the 20th century and how Latin American nations are reclaimed after global economic crisis, focusing on a comparative analysis of Mexico and Argentina. To actualize this goal, I began by offering some conceptual arguments of modern nationalism discourses and proposed that these arguments must be reconsidered from a theoretical framework of present-day Capital-Nation-State System raised by Karatani Kojin. Furthermore, I dealt with two case studies for tracing transformations of popular nationalism in Latin America during the 20th century. Finally, I attempted to make clear that the role of social movements in relationship to both the state and the market has come under renewed examination, above all in the context of failure of neoliberal reform.
Keywords:
Latin America, Nationalism, Globalization, Post-Nationalistic Discourse, Capital-Nation-State System, Latin American Popular Nationalism키워드:
라틴아메리카, 민족주의, 세계화, 탈민족주의 담론, 자본=민족=국가 체제, 라틴아메리카 민중민족주의Ⅰ. 들어가는 말
20세기 내내 근대세계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분할선은 민족국가(nation state)라는 명제가 정설로 받아들여졌다.1)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두 가지 방향에서 이러한 명제의 토대를 흔드는 반명제가 출현했다. 첫 번째 반명제는 세계화 이데올로기로부터 출현했다. 세계화 이데올로기는 오늘날 국가는 시장에 주권을 넘겨주었고, 금융자본주의 체제를 통해 중심-주변이 물질적으로 수렴되고 있으며, 새로운 정보기술과 대규모 이주는 문화 간 접근과 대화를 용이하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에 따르면, ‘민족’과 ‘국가’는 더 이상 일치하지 않으며, 세계는 민족국가의 경계선을 넘어서서 탈국가적이고 초국가적 블록으로 재편되고 있다(Guehenno 1995; Ohmae 1995). 이러한 주장은 세계화 현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자유주의 이데올로기 이론가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국제사회주의 진영에서도 민족주의란 민족국가와 함께 사라질 역사적 유물이라는 주장이 우세했다(캘리스코스 외 1994). 두 번째 반명제는 파시즘의 토대가 되었던 전체주의적이고 획일적이며 배타적인 국가주의에 대한 탈민족주의 담론으로부터 등장했다. 세계화 이데올로기가 사회주의 블록 붕괴 이후 전지구적 차원의 이슈로 등장했다면, 탈민족주의 담론은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국민으로부터의 탈퇴’, ‘국민이라는 노예’ 등의 표현을 통해 근대 국가의 폭력성을 비판하고 국가 권력의 정당성에 대한 의구심을 통해 표출되었다. 더 나아가 폭력적인 국가 권력을 토대로 하는 민족주의는 제국주의와 원초적인 친화력을 갖는 것으로 규정된다(권혁범 2000; 임지현 2005).
민족국가의 외부로부터 등장한 첫 번째 반명제와 민족국가의 내부로부터 출현한 두 번째 반명제는 연합전선을 형성해 민족국가의 종말을 선포했다. 시장에 주권을 넘겨준 정치권력은 한편으로는 세계은행이나 유럽연합 같은 초국가적 기구들을 향해 위쪽으로 이동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 정부(region state)나 지방분권화를 향해 아래쪽으로 이동하면서 민족국가가 종말을 맞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에릭 홉스봄은 『1780년 이후의민족과 민족주의―프로그램, 신화, 리얼리티』(1990)에서 1980년 초반에 민족과 민족주의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진 것은, 황혼녘이 되어서야 날개를 펴는 미네르바의 부엉이처럼, 민족이라는 관념과 민족주의 운동이 황혼기를 맞이했기 때문이라고 예견했다. 그러나 민족국가의 종말에 대한 예견은 빗나갔다. 소련 붕괴 이후 중·동부 유럽 지역에서 새로운 민족국가들이 탄생했을 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민족주의가 더 강화되고 민족 문제가 국제적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앤더슨 2002; 하먼 2001; Leoussi 2016).2) 앤서니 스미스(Anthony D. Smith)의 말을 빌리자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국제정치적 위기 가운데 종족적 감정이나 민족주의적 열망과 관련되지 않은 것은 거의 없다”(2012, 11-12).
세계화 이데올로기나 탈민족주의 담론이 주장하는 것처럼, 근대를 대표하는 구축물인 민족국가는 종언을 맞이한 것이 아니라 탈구축의 국면에 접어들었다. 탈구축이란 소멸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재구성을 의미한다. 오늘날 탈구축의 국면에 접어든 민족국가는 자본=민족=국가의 결합체이다. 자본, 민족, 국가는 민족국가를 움직이는 상호보완적인 장치이고 그 중 어느 것 하나라도 없으면 민족국가는 성립되지 않는다.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제경제를 하부구조로, 민족과 국가를 관념적인 상부구조로 간주했고, 자본제가폐기되면 국가와 민족도 자연스럽게 소멸된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마르크스주의는 국가와 민족 문제에 부딪혀 커다란 실패를 경험했다. 베네딕트 앤더슨이 『상상의 공동체―민족주의의 기원과 전파에 대한 성찰』(2002)에서 언급한 것처럼, 사회주의 블록 붕괴 이전에도 마르크스주의 혁명이 내세운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보편적 기획은 민족주의 앞에서 무기력함을 드러냈다. 중국과 소련의 국경 분쟁, 동구권 국가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소련의 개입,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 중국의 베트남 공격 등 20세기 후반에 일어난 일련의 사태는 “마르크스주의에 있어서 민족주의는 불편한 변칙적 현상”(앤더슨 2002, 22)임을 보여주었다. 또한 자유주의의 토대가 되는 근대적 개인이라는 범주도 민족국가를 통해 형성되었으며 국가를 벗어난 개인은 성립불가능하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즉 근대적 개인은 “국민에 대한 소속 이전에 또는 그러한 소속과 무관하게 자신의 독자적인 개인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 국민적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매개로 하여 자신의 개인적 정체성을 얻게 된다”(진태원 2011, 190-191).3) 따라서 민족국가가 민족을 예속시키는 억압적인 메커니즘으로 작동하고, 민족주의가 민족적 정체성 바깥의 타자들을 배격하는 배타적 속성을 갖는다 해도 국가 없는 개인, 국가 없는 사회는 민족국가의 부정적 측면들을 해결하는 대안이 될 수 없다. 국가는 다른 국가에 대하여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민족주의가 공통적으로 영토적 자결권과 민족에 소속될 수 있는 자격을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민족주의를 둘러싼 문제는 서방세계와 공산주의 국가들에서 냉담한 외면을 받았고, 식민지에서 독립한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이 새로운 국가 건설의 논리로 내세운 민족주의는 예외적 현상쯤으로 취급되었다. 소련 붕괴 이후의 민족 문제도 민족주의의 발생지라고 여겨지는 유럽에 한정된 것으로 여겨졌다. 다시 말하자면, 민족주의와 민족 문제는 전적으로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중심부의 관점으로 다루어지고 분석되었다. 이때문에 냉전 시기의 소련의 역할은 지나치게 과장되었고 세계체제 주변부 국가들의 민족 문제와 민족주의적 투쟁은 근대화로 향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과도기적 현상으로 과소평가되었다(Moyo et al. 2011).4) 본 논문의 목적은 자본=민족=국가의 결합체인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에 초점을 맞춰 20세기 라틴아메리카 민족주의의 변환의 메커니즘을 멕시코와 아르헨티나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는 것이다.
Ⅱ. 네이션과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
네이션과 내셔널리즘에 관한 많은 연구들은 ‘네이션과 내셔널리즘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라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본 논문의 목적은 네이션과 내셔널리즘을 정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본 논문이 라틴아메리카의 네이션과 내셔널리즘을 다룬다는 점에서 네이션과 내셔널리즘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비켜갈 수는 없다. 이 때문에 본 논문에서 네이션과 내셔널리즘을 바라보는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
네이션(nation)을 바라보는 관점은 크게 원초주의(primordialism)와 근대주의(modernism)로 나뉜다.5) 원초주의는 네이션을 공통의 혈통, 언어, 관습, 종교, 영토 등을 공유하는 공동체로 인식한다는 점에서 객관적 정의로 규정된다. 원초주의와 달리 근대주의는 네이션을 근대의 산물로 규정한다. 베네딕트 앤더슨이 주장했듯이, 네이션은 ‘상상의 공동체’이며 네이션을 구성하는 것은 구성원들의 집단에의 소속의지이다. 근대주의의 시각은 네이션이 “매일 매일의 국민투표”에 의해 존립한다는 르낭(Ernest Renan)의 언명에서 잘 드러난다(2002, 81). 이런 맥락에서 원초주의와 달리 근대주의는 주관적 정의로 규정된다. 원초주의가 네이션의 혈연적·문화적 요소(에트노스[ethnos])를 강조한다면, 근대주의는 계약적·정치적 요소(데모스[demos])에 중점을 둔다(장문석 2007).6) 원초주의가 네이션의 뿌리를 에트노스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네이션은 종족(ethnie)에 가깝다. 반면에, 근대주의가 계약적·정치적 요소인 데모스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네이션은 국민에 가깝다. 근대주의적 네이션이 국가와 결부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네이션과 내셔널리즘 연구에서 주류담론의 위치를 차지한 것은 근대주의다. 네이션과 내셔널리즘 연구에서 근대주의가 원초주의보다 우월한 위치를 차지한 것은 원초주의가 네이션을 설명하지 않고 항상-이미 존재하는 것으로 전제하기 때문이다. 원초주의에서는 “설명(explanans)이 설명되어야 할 것(explanadum)으로 바뀐 셈이다”(장문석 2007, 58. 강조는 원문). 원초주의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 근대주의는 ‘인간은 어떻게 공동체를 구성하는가’(how peoples unite themselves)라는 질문을 ‘국가는 어떻게 네이션을 만들어내는가’(how states invent nations)라는 질문으로 바꿨다. 그러나 네이션이 완전한 무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근대주의 역시 일정한 한계를 갖는다. 근대주의가 갖는 한계는 근대주의를 대표하는 연구자인 홉스봄의 입장에서도 잘 나타난다. 홉스봄은 네이션을 구성하는 어떠한 선험적인 정의도 가정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에게 네이션은 원초적이거나 불변적인 사회적 실체가 아니라 근대적 영토 국가와 관련된 사회적 실체다. 즉 겔너가 규정한 것처럼, 홉스봄도 네이션을 정치적 단위와 문화적 단위가 일치하는 사태로 규정하고, 국가와 관련되지 않은 네이션은 의미가 없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네이션과 내셔널리즘의 관계에 대한 언급에서 네이션의 원형적 형태와 의식이 존재함을 부정하지 않는다.
민족을 인간을 분류하는 자연적 신법, 다시 말해서 본래적 (...) 정치적 운명으로 보는 것은 신화다. 민족주의는 때때로 이전의 문화를 취하여 민족으로 바꾸며, 어떤 때는 그러한 문화를 만들며, 종종 이전 문화를 말살한다. 바로 이것이 실체다. 요컨대, 분석을 위해서는 민족주의가 민족에 앞선다. 민족이 국가와 민족주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다(1994, 25-26).
홉스봄의 언급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네이션은 원초주의로도, 근대주의로도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네이션에는 에트노스(종족)와 데모스(국민)가 복합적이고 중층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네이션을 국민으로 번역하면 네이션에 포함되어 있는 종족의 문화적 측면이 소거되고, 종족으로 번역하면 국민의 정치적 측면이 소거되는 딜레마에 처하게 된다(장문석 2007, 10). 본 논문에서 네이션을 민족으로, 내셔널리즘을 민족주의로 옮긴 것은 이러한 네이션의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특성(에트노스+데모스)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7) 또한 라틴아메리카의 네이션과 내셔널리즘을 분석하는 데 매우 유용한 분석틀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라틴아메리카 민족주의에 대한 연구에서도 근대주의가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원초주의의 시각에서 식민지 시기와 독립 이후 시기의 연속성을 분석하는 연구들이 많아지고 있다(Miller 2006).
민족이 종족적 공동체(에스니)에 뿌리를 두면서도 근대의 산물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민족이 단순히 에스니의 연속이나 확장이 아니라 비약이기 때문이다. 에스니에서 민족으로의 비약은 근대로 규정되는 시대적 단절을 의미한다. 근대라는 시대적 단절은 세 개의 혁명으로 가능했다. 첫 번째 혁명은 자본주의로의 이행으로 일컬어지는 경제적 차원의 혁명이었다. 마르크스가 정치경제학비판에서 지적했듯이, 자본주의는 근대인을 자신들의 의지로부터 독립된 일정한 필연적인 생산 관계로 끌어들였다. 두 번째 혁명은 절대주의 왕권국가로 상징되는 정치적 혁명이었다. 절대주의 왕권국가는 화폐경제를 토대로 관료와 상비군을 만들었고 이를 통해 일찍이 볼 수 없었던 강력한 집권적 국가가 되었다. 절대주의 왕권국가는 ‘지상의 신’(mortal god)으로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고, 이 역사의 무대에서 절대왕권은 단일한 인격을 지닌 주권자(sovereign)였다.8) 세 번째 혁명은 문화·교육혁명이었다. 주권국가는 교회의 권위를 대신하여 현세적이고 가시적인 구원을 약속했다. 주권자인 절대왕은 문화·교육혁명을 통해 개개인을 절대적인 주권자에 복종하는 신민으로 만들었고, 절대주의 왕권국가의 신민은 이후에 시민혁명을 통해 주권을 갖는 시민이 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근대의 민족국가는 세 가지 혁명이 중첩된 변화의 매트릭스를 통해 출현했다고 말할 수 있다. 요컨대 민족이라는 개념은 자연적 인간(에트노스=종족)이 근대라는 시대적 단절을 통해 정치적 시민(데모스=국민)으로 비약하는 과정을 함축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민족국가는 ‘민족’과 ‘국가’라는 서로 이질적인 것의 결합이다. 그리고 민족과 국가가 결합되기 이전에 자본과 국가의 결합이 선행되었다. 따라서 민족은 자본=국가의 결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민족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종족적 공동체로서의 에스니가 해체되는 과정과 겹쳐진다는 것이다.9) 즉 자본=국가에 의해 에스니가 해체되고 민족으로 비약하면서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인 자본=민족=국가가 형성되었다.10) 사회가 완성된 어떤 형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사회구성체(Social Formation)라고 말한다면 근대에 이르러 형성된 사회구성체가 자본=민족=국가다. 자본=민족=국가는 자본, 민족, 국가라는 이질적인 요소들이 결합된 상호보완적인 장치이다. 다시 말해, 자본=민족=국가는 서로 다른 원리에 뿌리를 둔 세 가지 요소가 보로메오의 매듭처럼 엮여서 어느 것 하나라도 없으면 성립되지 않는 장치이다.
자본주의의 글로벌화 하에서 국민국가가 소멸될 것이라는 전망이 자주 이야기된다. 해외무역을 통해 상호의존적인 관계망이 발달했기 때문에 더 이상 일국 내에서의 경제정책이 이전만큼 유효하게 기능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스테이트나 네이션이 그것에 의해 소멸되는 일은 없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 글로벌리제이션(신자유주의)에 의해 각국의 경제가 압박을 받으면 국가에 의한 보호(재분배)를 요구하고, 또 내셔널한 문화적 동일성이나 지역경제의 보호로 향한다. 자본에의 대항이 동시에 국가와 네이션(공동체)에의 대항이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본=네이션=스테이트는 삼위일체이기 때문에 강력하다. 그중 어떤 것을 부정하더라도 결국 이 매듭 안에 회수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그것들이 단순히 환상이 아니라 각기 다른 ‘교환’ 원리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제경제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 동시에 그것과는 다른 원리에 서있는 것으로서 네이션이나 스테이트를 고려해야 한다(가라타니 2005).
민족과 민족주의에 대한 많은 연구는 주로 ‘민족이나 민족주의라는 현상이언제 생겨났는지’, ‘민족에서 민족주의가 생겨난 것인지, 민족주의가 민족을 만들어낸 것인지’ 등에 대한 문제에 집중되었다. 이러한 연구들에는 민족을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인 자본=민족=국가의 복합체로 바라보는 인식이 결여되어 있다.11) 자본=민족=국가로 구성되는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에서 자본, 민족, 국가는 각기 다른 원리로 작동하고, 이 때문에 어느 하나에 의해 다른 것이 소멸되거나 수렴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느 것 하나라도 없으면 다른 것도 성립되지 않는다(가라타니 2010; 2016). 세계화 이데올로기나 탈민족주의 담론의 주장과 달리 세계 곳곳에서 민족주의가 더 강화되고 민족 문제가 국제적 이슈로 등장한 것은 이 때문이다. 냉전 이데올로기 종식 이후 민족과 민족국가 문제가 국제적 이슈로 재등장한 것은 자본 권력이 지배적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민족과 국가가 여전히 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축(軸)임을 드러낸 것이다.
민족국가의 소멸을 예단하는 시점에 민족국가 문제가 새롭게 등장한 것은 민족의 원리, 국가의 원리가 자본의 원리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자본, 민족, 국가를 삼위일체적인 변증법적 체계로 파악한 것은 헤겔이었다. 마르크스는 헤겔이 관념론적으로 파악한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를 유물론적으로 전도시키려고 했다. 이 과정에서 마르크스는 자본제경제를 물질적인 하부구조로, 민족과 국가를 관념적인 상부구조를 파악했다. 그 결과, 마르크스는 헤겔이 파악한 자본=민족=국가의 삼위일체적인 변증법적 사회구성체를 놓쳤다. 마르크스는 자본, 민족, 국가를 생산양식의 관점에서 보았고, 자본제가폐기되면 민족과 국가는 자연스럽게 소멸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라타니는 헤겔의 관념론적 사변을 유물론적으로 전도시키되 자본=민족=국가의 삼위일체성을 놓치지 않기 위해 역사를 생산양식 대신에 교환양식으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자본처럼 민족과 국가도 어떤 종류의 물질적 하부구조에 뿌리를 두고 있고, 이 때문에 능동적 주체성을 갖게 되는데, 그것이 교환양식이다.
교환이라면 상품교환이 바로 연상된다. 상품교환 양식이 지배적인 자본주의사회에 있는 한, 그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것과는 다른 타입의 교환이 존재한다. 첫째는 증여-답례라는 호수(互酬)(교환양식A)이다.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는 미개사회에서 음식, 재산, 여성, 토지, 봉사, 노동, 의례 등 다양한 것이 증여되고 답례가 되는 호수적 시스템에서 사회구성체를 형성하는 원리를 발견했다. 그런데 이것은 미개사회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다양한 타입의 공동체에 존재한다. (...) (교환양식B는) 하나의 공동체가 다른 공동체를 침략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약탈은 그 자체가 교환은 아니다. 그렇다면 약탈은 어떻게 교환양식이 되는 것일까? 계속적으로 약탈하려면 지배공동체는 단순히 약탈만 하는 게 아니라 상대에게도 무언가를 주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지배공동체는 복종하는 피지배공동체를 다른 침략자로부터 보호하고 관개 등의 공공사업을 통해 육성하는 것이다. 이것이 국가의 원형이다. (...) 즉 국가가 성립하는 것은 피지배자가 복종을 통해 안전과 안녕을 부여받는 일종의 교환을 의미할 때이다. (...) 다음으로 교환양식C, 즉 상품교환은 상호합의에 근거하는 것이다. 그것은 교환양식A나 B, 즉 증여를 통해 구속하거나 폭력을 통해 강탈하거나 하는 일이 없을 때 성립하는 것이다. 즉 상품교환은 서로가 타인을 자유로운 존재로서 승인할 때만 성립한다. 그러므로 상품교환이 발달할 때, 그것은 각 개인을 증여원리에 근거하는 일차적 공동체의 구속으로부터 독립시키는 것이 된다. (...) 상품교환과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그것이 상호의 자유를 전제함에도 불구하고 상호의 평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가라타니 2010, 36-38).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인 자본=민족=국가는 세 가지 교환양식이 복합된 상태로 존재한다. 자본이 교환양식C(화폐와 상품)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민족은 교환양식A(증여와 답례)를 축으로 움직이고, 국가는 교환양식B(지배와 보호)에 토대로 둔다. 역사적으로 사회구성체는 세 가지 교환양식을 전부 포함하고 있으며 어느 교환양식이 지배적이 되느냐에 따라, 그리고 서로 관련을 맺는 사회구성체들의 관계, 즉 세계체제에 따라 달라진다.12)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는 교환양식C가 지배적인 사회이면서 국가-간(inter-state) 체제로 이루어지는 근대세계체제를 형성한다.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를 구성하는 민족은 자본=국가가 성립된 이후에, 자본=국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부연하자면 “민족의 형성은 두 가지 시각에서 볼 수 있다. 하나는 주권국가이고, 다른 하나는 산업자본주의다”(가라타니 2010, 304). 주권국가는 교회와 봉건영주의 권력을 제압하고 그 이전까지 다양한 신분과 집단으로 존재했던 사람들을 절대왕권의 지배를 받는 동일한 지위에 놓음으로써 민족으로 만들었다. 민족이 국가의 주권자임을 의미하는 민족=국가가 성립된 것은 주권자인 왕의 신민(subject)이 (시민)혁명을 통해 절대왕권을 타도하고 주체(subject)가 되었을 때였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절대왕권은 자신의 절대성을 확립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민족이 존재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 따라서 절대왕권의 성립이 민족이 존재할 수 있는 필요조건이라면, 민중혁명은 민족이 존재할 수 있는 충분조건인 셈이다. 따라서 주권의 관점에서 볼 때 민족국가는 민중이 주권을 갖는 상태에 도달했을 때 가능하다. 주권국가와는 다른 차원에서 민족을 만들어낸 것은 산업자본주의였다. 산업자본주의는 마르크스가 지적한 것처럼 ‘이중적인 의미에서 자유로운’ 산업프롤레타리아를 협업과 분업을 통해 민족으로 만들었다.13) 직업적인 유동성과 빠르게 변화하는 자본주의 환경에서 협업과 분업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교육과 훈련을 통해 공통된 자질을 갖춘 산업프롤레타리아를 만들어내야만 했기 때문이다.
민족은 자본=국가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자본=국가에 의해 소멸되거나 자본=국가로 수렴되는 수동적 산물이 아니라, 자본=국가에 대항하고 자본=국가의 결핍을 보충하는 능동적 주체이다. 자본=국가에 의해 만들어진 민족은 시민혁명을 통해 자유와 평등을 획득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프랑스혁명이 슬로건으로 내걸었던 자유·평등·우애에서 우애(fraternity)가필요한 것이다. 자유와 평등이 합리적인 것이라면 우애는 개인들 사이의수평적 연대의 감정이다. 우애는 “가족이나 부족공동체 안의 사랑과는 다른, 오히려 그와 같은 관계로부터 벗어난 사람들 사이에서 생겨나는 새로운 연대의 감정이다”(가라타니 2012, 308). 베네딕트 앤더슨은 이 수평적 연대의 감정을 ‘상상의 공동체’의 뿌리로 보았다. 수평적 연대의 감정은 ‘인간은 어떻게 공동체를 구성하는가’라는 질문과 관련되어 있고,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자본이나 국가의 교환양식과 다른 공동체의 호수적 교환양식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14) 요약하자면, 민족은 자본=국가에 의해 만들어지지만, 민족이 자본=국가의 결핍을 보충함으로써 근대의 사회구성체는 자본=민족=국가의 형태를 갖추게 된다.
Ⅲ. 라틴아메리카의 ‘민족 만들기’(nation-building)와 포스트-신자유주의 시대의 민족국가의 재구성
민족이 대단히 모호한 개념인 것은 문화적 측면과 정치적 측면이 맞물린 뫼비우스의 띠와 같고, 자본=민족=국가를 이루는 보로메오의 매듭과 같기 때문이다. 민족주의는 민족이라는 개념에 내포된 모호함을 걷어내고 민족에 배타성과 동질성을 부여한다. 민족주의는 민족-됨(nationhood)의 경계를 설정하고 소속감을 창조하는 상상의 공동체의 정치적 조직 원리이다. 즉 민족주의는 근대주의가 탄생시킨 하나의 이데올로기이며, 모든 민족주의의 공통점은 영토적 자결권과 민족에 소속될 수 있는 자격이다(Barrington 1997).
역사적으로 민족주의는 몇 단계를 거치면서 변화되었다. 민족주의 생성 초기는 주로 지식인들이 주도한 운동으로 이 시기에 민족주의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겔너는 생성 초기 민족주의의 특징을 “일차적으로 정치적 단위와 민족적 단위가 일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치적 원리”(1983, 1)로 정의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홉스봄에 따르면 “민족은 민족국가와 관련될 때만 사회적 실체이고, 민족을 민족국가와 관련시키지 않고 논의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 요컨대 민족주의가 민족에 앞선다. 민족이 국가와 민족주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다”(1994, 25). 그 다음 단계에서 민족주의는 다양한 계층을 포함하는 이념으로 외연이 넓어진다. 국가의 공적 이데올로기로 성립된 민족주의는 국가 내부에서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갈등을 겪으며 변화되기 때문이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농민 공동체나 노동자까지 포함하는 민중민족운동(popular national movement)으로 발전해간다. 민중민족운동을 주도하는 주체는 사회운동과 헤게모니 집단에서 배제된 엘리트이다. 이와 같이 민족주의의 변화 단계가 보여주는 것은 민족주의와 민족은 동일하지 않으며, 이 때문에 민족주의는 지속적으로 변화되어 가는 과정(a process)이다. 요컨대 민족주의는 민족이라는 총체적 현실(a total realty)을 포괄하지 못하면서도 총체화하려는 이데올로기/담론(a totalizing ideology/discourse)이다.15) 라틴아메리카의 민족주의도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쳤다.
독립 이후 라틴아메리카 역사는 민족을 만들고, 민족과 국가를 결합시키기 위한 역사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라틴아메리카의 독립은 민족주의의 관점에서 지극히 불완전한 것이었다. 이탈리아 건국운동에 앞장섰던 다첼리오(Massimo D’Azeglio)가 “이탈리아를 만들었다. 이제 이탈리아인을 만들 차례이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독립은 복합적인 모순들이 한꺼번에 드러나는 사회변동과 이데올로기의 전환을 통해 민족국가를 만드는 과정이었다. 독립 이후 크리오요 과두 지배계층은 공화제를 국가 제도(res publica)로 채택했고 자유무역을 추구했던 영국의 자유주의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유럽의 공화주의와 자유주의는, 한편으로는 개인의 자유를 제한했던 군주제, 전제 권력, 가톨릭 교회와 맞서고, 다른 한편으로는 신흥 사회경제 계급에게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주는 자유무역의 성장을 가로막는 중상주의 경제의 통제에 맞서기 위한 부르주아의 교리였다. 이런 조건들 중 어느 것도 라틴아메리카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미뇰로 2010, 126-127). 자유주의와 공화주의는 이상일 뿐 라틴아메리카의 현실과는 무관한 것이었고, 크리오요 지배계급은 자신들이 스페인 사람이면서 동시에 아메리카 사람이라는 이중적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수입된 이론은 하늘을 날고 역사적 현실은 땅바닥을 기는 모순된 상황은 라틴아메리카에 ‘신식민주의’로 불리는 새로운 종속을 가져다주었고 이러한 상황은 19세기 말까지 지속되었다.
20세기 초에 라틴아메리카 나라들은16) 중대한 사회경제적이고 정치적인 변화를 경험했고, 어떤 경우에는 대규모의 사회적 인구 변동을 겪기도 했다. 각 나라마다 처한 상황은 달랐지만 이러한 변화에는 공통적인 흐름이 존재했다. 내부적으로는 전통적인 과두지배 권력에 저항하고 신식민주의를 타파하려는 민중의 투쟁이 발생했다. 외부적인 변화로는 라틴아메리카 나라들이 본격적으로 세계경제 질서에 편입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내적·외적 변화는 ‘민족 만들기’(nation-building) 과정에 있던 라틴아메리카 나라들의 민족주의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17) 이 시기 라틴아메리카 모든 나라의 정치사회적 과제는 개혁의 주체로서 민족국가를 만드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 정치적·사회적·상징적인 차원에서 민중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20세기 초 대부분의 라틴아메리카 나라들은 민중민족주의(popular nationalism) 노선을 선택했다. 민중민족주의 담론은 영토 안에 있는 모든 계급을 포괄하는 단일하고 동질적인 민족 공동체를 만들려는 시도였다. 즉 민족 공동체 내부에는 종족이거나 인종적인 차이가 존재하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러한 차이들을 뒤섞어 동질적인 민족의 현재를 만드는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에서 민중민족주의를 만든 동력은 대증에게 기반을 둔 정치운동이었고, 많은 정치운동이 정당으로 제도화되었다. 이 때문에 민족 공동체가 운동이나 정당과 동일시되는 현상이 발생했고,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는 민족 공동체의 화신으로 묘사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중민족주의는 사회의 모든 영역을 평등하게 인정한다는 이상을 강조하면서 각 집단의 인종적·계층적 이해관계를 운동이나 정당에 종속시켰다. 그 결과, 민중민족주의는 민중(pueblo)을 주권의 담지자이자 수평적 연대의 기반으로 내세웠지만 민족 만들기의 과정에서 민중을 정당이나 운동에 종속시킴으로써 ‘사회적 조합주의’(social corporatism)를 만들어냈다.
민중민족주의의 전형적 사례는 멕시코였다. 포르피리오 디아스 독재 체제에서 멕시코는 농산물 수출 호조와 산업화, 중앙정치의 활성화, 철도와 전신 같은 기간산업의 구축을 통해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그러나 경제성장 과정에서 포르피리오 디아스는 부유한 대토지소유주나 산업자본가와만 손을 잡았을 뿐 사회적 하층계급을 도외시했다. 포르피리오 통치 시기의 국가의 공적 이데올로기에는 독립 이후 공화국을 지배했던 크리오요 엘리트 지배계층의 ‘이중 의식’(double consciousness)이 그대로 반영되었다. 크리오요의 이중 의식은 자신을 유럽과 다르다고 인식하면서 여전히 유럽에 매여 있었다. “크리오요는 유럽을 인종적으로 의식하기 보다는 지정학적으로 의식했다. 그러나 원주민과 아프리카계 주민에 대한 크리오요의 의식은 인종적이었다. 유럽인이 자신과 크리오요를 구별했던 식민적 차이(colonial difference)는 ‘민족 만들기’ 시기에 ‘내적 식민주의’(internal colonialism)로 변형되어 재생산되었다. 내적 식민주의는 민족국가 건설을 주도했던 크리오요들이 스스로를 원주민, 아프리카계 주민과 구별했던 식민적 차이였다” (Mignolo 2001, 34).
멕시코혁명은 거의 반세기 동안 지속되었던 과두지배 체제를 붕괴시켰다. 혁명 이후 멕시코는 가장 포괄적인(comprehensive) 형태의 민중민족주의인 ‘메스티소 민족주의’(mestizaje)를 주창했다. 메스티소 민족주의는 원초주의의 관점에서 민족 정체성을 ‘종족-문화적 서사’(ethno-cultural narrative)에서 찾았다. 민족 정체성이 종족-문화적 서사에 묻어들어 있는(embedded) 것으로 본다는 점에서 메스티소 민족주의는 19세기 유럽의 대부분의 자유 민주주의 국가들이 선택한 자유주의적 민족주의(liberal nationalism)와 달랐다. 자유주의적 민족주의가 근대주의적 관점에서 민족을 정치적 제도를 공유하는 공동체로 상상했다면, 메스티소 민족주의는 종족-인종적으로 다양한 멕시코의 사회적·문화적 갈등을 봉합하는 데 매우 유용한 도구였다.18) 이 때문에 혁명 이후 사회운동의 원인이 되었던 것은 종족-인종적 정체성 문제보다는 계급이나 지역의 문제였다. 메소티소 민족주의는, 르낭이 정확히 지적했던 것처럼, 폭력과 항쟁의 연속이었던 멕시코의 역사를 ‘망각’하고 ‘새로운 민족’(a new nation)을 만들기 위한 이데올로기이자 공적 담론이었다.19) 메스티소 민족주의는 정복 이전의 원주민 문명을 찬양했고, 혁명에서 패배했던 농민 지도자 에밀리아노 사파타와 판초 비야는 국립묘지에 묻혀 민족 영웅으로 추앙받았으며, 메스티소를 ‘우주적 인종’(cosmic race)으로 미화했다. 그러나 메스티소 민족주의는 ‘포함의 수사학’과 ‘배제의 현실’ 사이의 커다란 간극을 은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스티소 민족주의는 해방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혁명적 민중민족주의로 해석되었다. 멕시코혁명 이후 라틴아메리카 민족주의는 볼리비아혁명을 거치고 쿠바혁명과 니카라과혁명에 이르기까지 좌파적이고, 발전주의적이며, 반제국주의적이고, 민중적인 성격의 혁명적 민족주의를 지향했다(Hobsbaum 1995). 이것이 “1910년의 혁명에서 태어난 멕시코의 신민족주의가 남긴 유산이었다”(킨·헤인즈 2014, 141).
그러나 메스티소 민족주의는 민족이 경제적 발전과 근대적 정치 제도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으로 상상했다. 다시 말해, 메스티소 민족주의는 대규모로 동원 가능한 민중을 정치적 정당성의 근거로 삼았을 뿐 ‘심오한 수평적 동료의식’으로 상상되는 민족으로 만들지 못했다. 백인 크리오요 엘리트들은 유색인을 열등한 타자로 규정하고 시민권을 갖는 ‘상상의 공동체’의 구성원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특히 원주민들은 민족의 통합과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여겨졌다. 민중민족주의의 주창자들은 “인디오를 ‘역사적 기원’으로만 인식했지, ‘살아 있는 인디오’(indio vivo)들의 공동체를 멕시코 국민 내부에 어떤 위상으로 통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았다. 이들이 만든 공식적 인디헤니스모(indigenismo)는 메스티소 통합주의 이념에 충실한 것이었고, 살아 있는 인디오들의 정체성은 이 통합 이념에 녹아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이성형 2009, 44). 요컨대 라틴아메리카의 혁명적 민중민족주의는 민족주의를 국가주의(statism)와 혼동했고, 민족을 계몽되어야 할 대상으로 인식했다(Knight 1990; Jeffries 2008). 민족주의 역사에서 늘 예외적인 경우로 취급되었던 라틴아메리카에서 민족주의가 먼저 태동했고 그것이 유럽으로 확산되었다는 주장을 한 앤더슨의 이론이 비판받는 것도 이 지점이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민족을 “본래적으로 제한되고, 주권을 가진 것으로 상상되는 정치적 공동체”(2002, 25)로 규정했다. 민족에 대한 앤더슨의 규정에는 민족 개념의 양의성이 드러나 있다. 즉 민족은 자본=국가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자본=국가에 대항하고, 자본=국가의 결핍을 보충한다. 앤더슨의 말을 빌린다면, “각 민족에 보편화되어 있을지 모르는 실질적인 불평등과 수탈에도 불구하고 민족은 언제나 심오한 수평적 동료의식으로 상상되기 때문이다” (2002, 27 강조는 필자). 민족의 토대를 이루는 심오한 수평적 동료의식은 자본=국가가 초래하는 실질적인 불평등과 수탈을 상상적으로 해결함으로써 자본=국가가 파탄 나는 것을 막는다. 이 때문에 민족은 실질적인 불평등과 수탈에도 불구하고 민족국가가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다시 말해, 자본=국가는 민족을 만들고, 민족은 자본=국가의 결핍을 보충함으로써 근대적 사회구성체인 자본=민족=국가가 유지된다. 그러나 심오한 수평적 동료의식은 객관적 실재가 아니라 상상된 것이다.20) 민족을 가능하게 하는 뿌리 깊은 수평적 동료의식은 크리오요에게만 가능했을 뿐 ‘식민적/인종적 계서화’ (colonial/racial hierarchies)의 하층부를 차지했던 대다수의 민중에게는 ‘불가능한 우애’(impossible fraternity)였기 때문이다(제임스 2007; Lomnitz 2010; Castro-Klaren·Charles Chasteen 2003).21) 앤더슨 스스로 언급했듯이 “해방자 볼리바르 자신도 한때 흑인 반란은 스페인의 침공보다 천 배나 나쁘다는 견해를 가졌다”(2002, 79).
멕시코혁명은 새로운 사회적 행위자들이 저항 운동과 정치적 연합을 통해 전통적인 과두지배 체제에 도전함으로써 민족국가를 만들 수 있는 역사적 계기를 제공했다. 그러나 혁명이 공언한 민중민족주의는 정치적-경제적 정책을 앞세운 국가주의(statism)에 예속되었다. 엘리트 지배층과 노조, 농민 간의 연합은 정치적 수령들(cuadillos) 사이의 가부장적 지배 연합에 토대를 두었다. 라사로 카르데나스(Lázaro Cárdenas)는 획기적인 개혁 정책을 통해‘잠자는 혁명’을 회생시키려고 했지만 국내 산업부르주아와 가톨릭교회, 외국자본의 저항에 부딪혀 진보적인 정책들은 후퇴하고 개혁은 온건해졌다. 개혁성을 상실한 민중민족주의는 1940년을 기점으로 정치적 조합주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고, 그 중심에는 제도혁명당(PRI)이 있었다. 조합주의적 국가에서 메스티소 민족주의는 공적 담론으로 여전히 유지되었지만 식민적/인종적 계서제 역시 그래도 유지되었다. 카르데나스의 개혁은 민족과 민족국가가 만들어질 수 있는 단초를 제공했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민족은 ‘미완의 상상의 공동체’(unfinished imagined community)로 남았다.
멕시코의 포괄적인 민중민족주의와는 달리 아르헨티나는 제한적인(contained) 민중민족주의를 표방했다. 멕시코의 메스티소 민족주의가 에트노스에 뿌리를 둔 문화적 차원의 민족주의라면, 아르헨티나의 민중민족주의는 데모스에 뿌리를 둔 정치적 차원의 민족주의였다. 아르헨티나는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연방화를 통해 중앙집권적 국가 체제를 갖추었고, 광범위한 공교육 체제의 기반을 마련했으며, 인종적 갈등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외면적 상황과 달리 아르헨티나는 과두 엘리트 간 갈등으로 인해 공적 민족주의 담론을 둘러싼 투쟁이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민족국가의 형성이라는 측면에서 아르헨티나의 제한적 민중민족주의의 형성은 몇 가지 역사적 요인들과 관련이 있다. 첫째, 식민 시기부터 아르헨티나는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다른 지역 간의 갈등으로 인해 통일된 행정체계를 갖추지 못했고, 이로 인해 지배 엘리트 간에 사회적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둘째, 중개무역지로서의 지위 때문에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항상 강력한 국제적인 영향력이 존재했다. 셋째, 대농장(estancia) 구조에 기반을 둔 정치 조직의 특성으로 인해 후견주의(clientalism)가 강하게 작용했다. 넷째, 아르헨티나의 지배 권력은 다인종적이고 다종족적인 과거를 도려내고 민족 정체성을 세우려고 했다. 자유주의 이념으로 무장한 훌리오 로카(Julio Roca)는 ‘사막의 정복’(Conquest of the Desert)을 통해 원주민을 궤멸하고 팜파에 대규모 국유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1870~1910년 사이에 유럽으로부터 대규모 이민을 받아들였다(드잘레이·가스 2007; 킨·헤인즈 2014).
20세기 초에 아르헨티나는 곡물과 육류의 수출, 발달된 철도망, 상대적으로 높은 교육수준과 도시화, 유럽으로부터 값싼 노동력의 유입으로 산업국가대열에 진입할 준비가 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농산물과 축산물의 수출과 대규모 해외 투자 자본에 의존하는 아르헨티나의 경제는 세계 원자재 가격과 금융 상황의 변동에 매우 취약한 구조였다.22) 이 때문에 해외 시장과 해외 자본에 의존적인 경제는 구조적인 종속성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계층 간 분배의 불평등과 지역 간에 심각한 격차를 드러냈다. 이러한 상황은 민중을 기반으로 한 정치운동인 급진주의(radicalism)와 페론주의(peronism)가 출현하는 계기가 되었다. 급진주의(급진당)와 페론주의(사회정의당)는 자신들을 민족 공동체와 동일시했고 과두적인 구체제에 반대하는 민중민족주의를 내세웠다.23) 급진주의와 페론주의가 민족주의의 토대로 내세운 민중(pueblo)은 초기 단계의 산업화와 도시화의 과정에서 도시로 이주한 농민, 새로운 중산계층과 도시 노동자 계급, 계급으로 규정할 수 없는 다양한 사회적 집단을 아우르는 개념이었다. 민중은 민족 전체 구성원을 지칭하면서 동시에 부자와 가난한 자의 사회경제적 차이를 내포한다. 더 나아가 부자와 가난한 자 사이에 작용하는 문화적·정치적 억압과 복종을 암시한다. 아르헨티나의 민중민족주의를 포퓰리즘이라는 용어로 부르는 것은 이런 민중(pueblo) 개념과 깊은 관련이 있다. 라클라우가 지적한 것처럼, 오늘날 포퓰리즘이라는 용어가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지만 포퓰리즘에서 핵심적인 것은 민중이다(1977). 이 때문에 라틴아메리카 포퓰리즘 연구를 선도했던 지노 제르마니(Gino Germani)는 포퓰리즘이라는 용어 대신에 민중민족운동(movimientos nacional-populares)이라는 용어를 선호했다(1962). 포퓰리즘은 1930년대 이후 수입대체산업화에 따른 대규모 사회적 이동, 도시화, 신생 민족부르주아지의 출현, 노동계급의 형성, 계급으로 규정할 수 없는 다양한 사회계층의 등장, 과두지배 체제의 약화 등 복합적인 요인들이 뒤섞인 사회적 현상이었다. 페론주의로 상징되는 아르헨티나의 포퓰리즘(민중민족주의)은 ‘민중’을 정치의 영역으로 통합시킴으로써 경제적 자유주의를 내세운 과두지배 체제의 정당성과 헤게모니에 균열을 발생시키고 경제적 재분배를 강화하여 민족국가를 만들려고 시도했다. 페론은 그때까지 아르헨티나에 존재하지 않았던 민족의 기반을 형성할 수 있는 구심적 권력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페론은 다양한 신분과 집단의 사람들을 왕의 동일한 신민으로 만듦으로써 민족 형성의 기반을 마련했던 절대왕권에 해당된다. 포퓰리즘은 민족 만들기와 민족국가의 건설이라는 이중적 사명을 가지고 있었지만, 페론은 과두층과 군부의 저항에 부딪혀 절대왕권의 ‘절대성’을 갖지 못했고 후견주의의 후원자(patron)의 역할에 머물렀다. 페론의 실각 이후 페론은 생물학적 의미의 지도자가 아니라 민중민족적 정체성을 구성하고 결속시켜주는 어떤 이름이 되었다. 라클라우가 지적한 것처럼, “포퓰리즘은 오직 레닌-주의, 마오-주의, 페론-주의 등으로 존재한다”(Vatter 2012, 247). 이런 맥락에서 “페론주의는 단순한 정당이 아니라 그 이상이다. 페론주의는 놀라운 정치적 영속성과 생산성을 지닌 잘 정비된 탈조직이거나 포퓰리스트 정당-기계(partido-máquina populista)이다. 패권을 쥐고 있는 정치적 정체성이기도 하고 정치문화이기도 하다. 또 그 밖의 다른 많은 것이기도 하다”(Casullo 2015, 21). 페론 집권 시기의 아르헨티나의 포퓰리즘은 민족 만들기를 통해 자본=국가에 대항하고 자본=국가의 결핍을 보충하려고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민족은 ‘미완의 상상의 공동체’로 남았다. 이 때문에 포퓰리즘은 경제적 호황기에도 사라지지 않으며 경제위기에도 지배집단이 포퓰리즘을 이용하려고 한다.
20세기 후반 냉전으로 불리는 시기는 통상적으로 미국과 소련이라는 초강대국 사이의 헤게모니 다툼으로 정의되어왔다. 이 때문에 미소 중심의 냉전의 역사는 지구상에서 다양한 형태로 전개된 냉전의 경험을 공백으로 남겨두었다. 냉전은 전지구적 갈등이었고 지구 전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경험되었다. 예컨대 유럽과 대서양 지역을 중심으로 보면 냉전은 전쟁 아닌 전쟁이라는 의미에서 ‘상상의 전쟁’이었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탈식민적 과정에서 벌어진 격렬하고 폭력적인 형태의 양극화 역사였다. “기존의 탈식민주의 연구는 냉전 체제를 국제 관계에서 힘의 균형으로만 접근하는 잘못된 시각을 갖고 있다. 이 관점은 냉전이 개념적·분석적으로 비서구 제3세계에는 속하지 않는다는 왜곡된 가정을 수반한다. 그리하여 이러한 시각은 세계 냉전사의 가장 중요한 측면이 유럽 중심의 군사적·전략적 측면이 아니라 오히려 제3세계의 정치적·사회적 변동에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세계 냉전이 20세기 후반에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 그런 식으로 전개된 것은 탈식민 지역으로부터 지속적이고 치열한 도전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간과해버린 것이다”(권헌익 2013, 231).
라틴아메리카에서 냉전은 기나긴 내전과 체계적인 국가 폭력으로 점철되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해 냉전 시대의 이념 대립, 외세의 개입과 라틴아메리카군부 지원은 이 지역이 겪어온 기존의 정치적·사회적 긴장을 극단화하는 촉매제로 작용”(박구병 2016, 151)했다. 냉전 시기에 민중민족주의는 급속히 약화되었고 발전주의와 사회주의 노선이 민중민족주의 세력을 대체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라틴아메리카는 수입대체산업화 같은 자체적인 경제 노선을 수립하기도 했지만 미국의 지속적인 개입 속에 1970년대까지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일반적인 대세를 따랐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서 외채 위기와 함께 경제의 많은 부분이 붕괴되었고 정치적 민주화와 더불어 신자유주의 개혁 프로그램이 강제되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금융기구는 라틴아메리카 엘리트 과두지배 계층과 동맹을 형성하여 사회복지를 희생시키고 국내외 민간 투자자를 보호하는 것을 최우선 정책 순위로 정했다. 라틴아메리카 엘리트들을 대리인으로 내세운 미국의 민주주의 촉진 프로그램은 이러한 정책을 실천하기 위한 ‘선제개혁’(preemptive reform)이었다. 다시 말해,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경제 개혁과 동시에 진행된 ‘저강도 민주주의’인 다두정치(polyarchy)는 반독재 투쟁이 가져올 더 큰 변화를 막기 위해 사전에 독재정권을 제거한 것이었다.24) 다두정치는 정치적인 것을 사회경제적 영역으로부터 분리시키고 민주적 참여를 선거 투표 행위로 제한했다. 신자유주의 개혁과 다두 정치의 동맹은 지속적으로 라틴아메리카를 괴롭혀온 계급 지배와 심각한 불평등 구조를 그대로 내버려 둔 채 정치 체제만 변화시켰다. 시장 지향적 경제로의 이행을 보완하기 위한 다두정치는 민중의 대항권력을 제약하고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양극화를 극적으로 확대시켰다(로빈슨 2008).
이러한 상황에서 1980년대 후반부터 대륙 전체에서 사회운동이 촉발되었고 배제되었던 사회적 집단들이 정치적 행위자로 등장했다. 멕시코를 선진국으로 이끌어줄 것이라고 믿었던 북미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되던 1994년에 발발한 치아파스 주의 사파티스타 원주민-농민 봉기는 메스티소 민족주의가은폐하고 있던 ‘불가능한 우애’를 드러냈고 정치적 조합주의의 중심에 있었던 제도혁명당은 2000년 대선에서 민중의 지지를 상실하고 정권을 빼앗겼다. 계속되는 경제 위기와 그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 선거 부정에 대한 의혹으로 인한 정치적 정당성의 상실은 멕시코를 국가 해체의 수준으로 몰고 갔고 그 정점은 ‘마약과의 전쟁’이었다. 2006년에 취임한 펠리페 칼데론 대통령이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이후 멕시코는 내란 상태에 빠져들었다. 준(準)전시 상태와 다름없는 미국-멕시코 국경 지역은 말할 것도 없고 나라 전체의 치안 부재 상황이 심화되었고 멕시코는 ‘실패한 국가’(Estado fallido)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마약과의 전쟁에는 멕시코혁명 이후 멕시코의 구조적 모순이 총체적으로 얽혀 있다. 또한 신자유주의 개혁이 가져온 경제적 위기와 미국과의 국제정치적 맥락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아르헨티나를 강타한 헤게모니의 위기는 2001년 시민들이 외쳤던 ‘모두 꺼져버려!’라는 구호에 압축되어 있다. 일주일 동안 네 명의 대통령을 교체할 만큼 시민들의 시위는 격렬했다. 아르헨티나의 민중민족주의가 토대로 삼았던 민중은 냄비를 두드리고 도로를 점거하는 피켓시위자로 나섰다. 피케테로스운동, 주민총회운동, 물물교환운동 같은 새로운 사회운동의 주체들은 좌파 정당이나 노조의 지도에 따르는 대신에 중간계층과 연대를 통해 사회적 권력 관계의 틀을 변화시키려고 했다. 또한 운동이 실현되는 공간도 ‘도로’와 ‘동네(마을)’ 같은 일상적 삶의 공간으로 이동했다(안태환 2016). “마치 마술처럼 새로운 에토스는 (정당, 노조를 포함한) 이전에 존재했던 권력들을 모두 해체했다. 해체된 권력에는 소위 ‘전문가’들도 포함되었으며 집회민주주의의 권력의지를 없애려는 혹은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매개체들은 모두 거부되었다. 공간은 모든 이에게 열려 있었으나 이러한 공간들은 완벽하게 평등한 공간이어야만 했다”(Svampa 2011, 21).
1990년대 이후 라틴아메리카는 대륙적 차원에서 대의민주주의를 성취한 지역이면서 동시에 지구상에서 가장 불평등한 지역이 되었다. 라틴아메리카의 불평등이 “역사적 시기(식민지 시절부터 현재까지), 각기 다른 경제 발전 모델(수출지향적 모델부터 수입대체산업화, 그리고 신자유주의), 각기 다른 정치체제(포퓰리즘, 권위주의, 민주주의)를 통틀어 지속되었다는 사실은 불평등이 사회 전반에 스며들어 있는 구조적 특성”(레이가다스 2008, 175)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라틴아메리카 불평등은 단지 경제적 영역만이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를 가로질러 모든 영역에 구조화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20세기 초 멕시코혁명으로부터 시작된 라틴아메리카 민중운동의 목표는 근본적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는 체제의 문제보다 탈식민적 민족의 문제와 더 깊이 관련되어 있다. 민족 정체성에 대한 관심은 직접적으로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간접적으로는 다두정치가 사회계급 및 사회적 행위자들 사이의 권력 관계를 실질적으로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체제의 문제가 전통적인 사회주의·공산주의 좌파의 국제주의 건설과 관계된 것이라면, 민족의 문제는 자유와 평등, 우애를 바탕으로 하는 민족국가의 건설과 관계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로부터 독립한 국가들의 과제가 민족국가의 수립이었던 것처럼, 오래 전에 식민지로부터 독립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과제도 여전히 민족국가를 세우는 것이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우루과이 바스케스(TabaréVásquez) 대통령의 취임사에도 잘 드러난다.
만일 나에게 이데올로기적 관점에서 우리 정부의 강령이 사회주의 강령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니라고 대답하겠습니다. 그것은 매우 민주화된 민족주의 강령이며 연대와 사회 정의, 정의로운 경제 성장, 즉 인간적 발전을 추구하는 강령입니다. (...) 우리가 만들려고 하는 변화는 우루과이적인 변화, (...) 평화롭고, 점진적이며, 깊이 성찰하고, 진지하며, 근본적인 변화, 이 나라의 모든 경제·정치·사회적인 생활의 행위자들이 폭넓게 참여하는 책임 있는 변화입니다. 이를 통해 모든 우루과이 사람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겠다는 우리 정부의 주된 목표를 향해 나아갈 것입니다. 이 목표는 우루과이가 탄생하던 날 밤, 우루과이의 독립 영웅인 아르티가스(José Gervasio de Artigas)가, 가장 어려움에 처한 이들이 가장 특권을 누릴 것이며, 민중의 주장은 한시도 지체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던 그 날 밤의 역사적 소명에서 나온 것입니다(Vásquez 2005).
바스케스의 언급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새로운 정부의 목표가 ‘민주적이고 우루과이적인’ 민족국가를 세우는 것이라는 점이다. 바스케스가 민족의 영웅 아르티가스를 언급한 것은 민족국가의 수립이 독립 시기부터 지금까지 완결되지 않은 미완의 과업임을 강조한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민족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며, 민족과 국가라는 이질적인 것의 결합인 민족국가가 성립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Boron 2011). 사회구성체의 관점에서 볼 때 서로 다른 원리에 뿌리를 둔 세 가지 요소가 얽힌 자본=민족=국가의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가 성립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멕시코의 메스티소 민족주의나 아르헨티나의 페론주의는 민족 만들기의 단초를 제공했을 뿐 민족을 만들지 못했고, 민족국가를 만들지도 못했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30-40년 동안 다른 어떤 지역보다 신자유주의 개혁이 가장 먼저, 가장 강도 높게 적용되었고, 가장 먼저 그 폐해를 경험하고 있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출현하고 있는 사회운동은 ‘아래로부터’, 그리고 정치와 도덕의 결합을 통해 민족국가를 재구성하려는 시민혁명의 시작으로 규정할 수 있다. 사회운동의 출현은 주권을 갖는 민중의 출현을 의미하며, 자본=국가에 의해 만들어진 민족이 자본=국가에 대항함으로써 근대적 사회구성체인 자본=민족=국가를 형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제 민족 문제는 민중의 사회적 권리의 확장이며 민주주의의 확장이라는 점에서 ‘국가 안에서’(within the state),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해체와 재구축이라는 점에서 ‘중심부를 넘어서서’(beyond the center), 생산양식의 문제가 아니라 교환양식의 문제라는 점에서 ‘체제를 가로질러’(across the system)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Moyo et al. 2011).
Ⅳ. 나가는 말
세계화 이데올로기나 탈민족주의 담론이 주장하는 것처럼 근대를 대표하는 구축물인 민족국가는 종언을 맞이한 것이 아니라 탈구축의 국면에 접어들었다. 자유주의의 토대인 근대적 개인이라는 범주 자체가 근대의 민족국가를 통해 형성되었으며 국가를 벗어난 개인은 성립불가능하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따라서 민족이라는 관념과 민족주의가 황혼기를 맞이했다는 예견과는 달리 세계 곳곳에서 민족주의가 더 강화되고 민족 문제가 국제적 이슈가 되는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대적 개념의 민족의 형성과 민족주의의 전개 과정에 대한 성찰과 새로운 논의가 필요하다. 민족국가는 민족과 국가라는 이질적인 것의 결합이고, 민족과 국가가 결합되기 전에 국가와 자본의 결합이 선행되었다. 따라서 민족은 자본=국가의 결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며, 그 결과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인 자본=민족=국가가 형성되었다. 이질적인 요소들이 결합된 상호보완적 장치인 자본=민족=국가는 서로 다른 원리에 뿌리를 둔 세 가지 요소가 보로메오의 매듭처럼 엮여서 어느 것 하나라도 없으면 성립되지 않는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이다. 민족은 자본=국가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자본=국가에 의해 소멸되거나 자본=국가로 수렴되는 수동적 산물이 아니라, 자본=국가에 대항하고 자본=국가의 결핍을 보충함으로써 자본=민족=국가를 유지하는 능동적 주체이다. 세계화 이데올로기나 탈민족주의 담론의 주장과 달리 세계 곳곳에서 민족주의가 더 강화되고 민족 문제가 국제적 이슈로 등장한 것은 이 때문이다.
20세기 초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본격적으로 편입되기 시작한 라틴아메리카국가들은 급격한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변동을 경험했다. 산업화와도시화가 진행되었고 농업의 상품화가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독립 이후 줄곧 종속적 위치에 있었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전통적인 과두지배계급을 견제하고 허약한 국내 산업 부르주아지와 노동계급을 성장시켜야 할 과제를 안고 있었다. 이러한 두 가지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국가적 이데올로기로 등장한 것이 민중민족주의였다. 민중민족주의는 19세기 민족국가 건설의 토대가 되었던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넘어서서 사회의 모든 부문을 통합하기 위한 일종의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사회계약’이었다.
1910년 혁명을 통해 등장한 멕시코의 국가 엘리트 계층은 포괄적인 민중민족주의로 메스티소 민족주의를 표방했다. 종족적-인종적으로 다양한 멕시코는 메스티소 민족주의를 매개로 종족적-인종적 분열을 약화시킬 수 있었고, 하위주체 계층과 권력에서 배제된 엘리트를 정치적으로 통제할 수 있었다. 멕시코의 메스티소 민족주의가 에트노스에 뿌리를 둔 문화적 차원의 민족주의라면, 아르헨티나의 민중민족주의는 데모스에 토대를 둔 정치적 차원의 민족주의이다. 그러나 멕시코의 메스티소 민족주의와 아르헨티나의 페론주의는 민족 만들기의 단초를 제공했을 뿐 민족을 만들지 못했고, 민족국가를 만들지도 못했다. 메스티소 민족주의와 페론주의는 ‘포함의 수사학’과 ‘배제의 현실’ 사이의 커다란 간극을 은폐했다. 즉 라틴아메리카 민중민족주의의 특징적인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나는 메스티소 민족주의와 페론주의는 대규모로 동원 가능한 민중을 정치적 정당성의 근거로 삼았을 뿐 ‘심오한 수평적 동료의식’으로 상상되는 민족으로 만들지 못했다. 메스티소 민족주의는 유색인을 열등한 타자로 규정하고 시민권을 갖는 ‘상상의 공동체’의 구성원에 포함시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원주민들은 민족의 통합과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여겨졌다. 또한 페론주의는 과두층과 군부의 저항에 부딪혀 절대왕권의 ‘절대성’을 갖지 못했고 후견주의의 후원자(patron)의 역할에 머물렀다. 신자유주의 개혁이 강제되기 시작한 1980년대 이후 라틴아메리카 민중민족주의는 약화되거나 소멸되었다. 신자유주의 개혁은 민중민족주의를 민주주의의 병리적 현상으로 낙인찍었다.
1990년대 이후 민중민족주의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회운동으로 새롭게 등장했다. 멕시코에서는 사파티스타 봉기로 촉발되고, 아르헨티나에서는 피케테로스운동으로 상징화되고 있는 사회운동은 ‘아래로부터’ 민족을 재구성하려는 시도이다. 2008년 전지구적 경제위기의 상황에서 세계경제의 주변부 국가들은 독자적인 발전 노선을 추구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많은 난관에 부딪히고 있다. 지난 30-40년 동안 강제된 신자유주의 개혁을 통해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아시아 국가들은 근본적인 변화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개혁은 세계대전 이후 지속된 자본주의 위기의 근본적인 해결을 뒤로 미룬 채 위기를 주변부로 이전시켰다. 주변부 국가들은 세계대전 이후에 이룩했던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성과의 상당 부분을 침식당했고 국가의 기능은 축소되었다. 그 결과, 내부적 갈등이 격화되고 사회경제적 양극화는 더욱 심해졌다. 민족 문제가 불거진 것은 국가의 기능이 강화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반대로 자본 권력에 의해 국가의 기능이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민족 문제는 민족국가의 내부의 차원에서는 국가 권력에 맞서 민중의 사회적 권리의 확장, 민주주의의 확대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고, 민족국가 외부의 차원에서는 전지구적 자본 권력에 맞서 국가의 역할을 회복하는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경제개혁 이후에 등장하고 있는 다양한 사회운동은 자본=국가의 지배 대상이 아니라 자본=국가의 권력에 맞서는 협치(governance)의 주체로 등장했다. 이런 맥락에서 21세기에 들어서서 다양한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는 라틴아메리카 사회운동은 독립 이후 지체되어 온 민족국가의 수립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인식될 필요가 있다.
Acknowledgments
이 논문은 2014년도 정부(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연구되었음(NRF-2014S1A5A8019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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