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itute of Iberoamerican Studies
[ Article ]
iberoamerica - Vol. 21, No. 2, pp.53-81
ISSN: 1229-9111 (Print)
Print publication date 31 Dec 2019
Received 28 Oct 2019 Revised 06 Dec 2019 Accepted 06 Dec 2019
DOI: https://doi.org/10.19058/iberoamerica.2019.12.21.2.53

보하야 학살과 기억 보존을 위한 연극의 역할: 펠리페 베르가라의 『킬렐레』를 중심으로

송병선**
**울산대학교 인문대학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 avionsun@ulsan.ac.kr
The Massacre of Bojayá and the Role of Theatre for Preservation of Memory: A Study of Kilele by Felipe Vergara
Song, Byeong-Sun**

초록

일반적으로 콜롬비아의 이미지는 위험한 국가이며, 게릴라와 전쟁 중이고, 최대의 마약 생산국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이 글의 분석 대상인 펠리페 베르가라(Felipe Vergara)의 극 작품 『킬렐레Kilele』의 중심을 이루는 보하야(Bojayá) 학살은 부조리함과 규모 측면에서 2000년대 들어 콜롬비아에서 일어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 작품은 보하야 지방의 쓰라리고 악몽 같은 과거의 사건을 다루는데 그치지 않고, 생존자들이 죽음의 덮개를 찢고서 연옥에서 괴로워하는 영혼들과 소통하면서, 분열의 재통합을 향해 나아간다. 이것은 연옥의 여러 공간을 떠돌아다니는 죽은 사람들에게 마땅한 장례식을 치러주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이 글은 『킬렐레』에 나타나는 서사시 구조와 아프리카의 영혼성과 관련된 제의의식을 비롯해 창작과정과 이 작품의 파편적 구조를 분석하면서, 학살이라는 외상에서 어떻게 회복되는 데 도움이 되었는가를 살펴본다.

Abstract

Generally, the image of Colombia is constituted as a dangerous country in war against guerrillas and with greater cocaine production. The massacre of Bojayá, taken to the theater work Kilele by Felipe Vergara which forms the object of analysis of this paper, was an event that has most affected the sensitivity of Colombia in the first decade of the 21st century due to the absurdity of its occurrence and the magnitude.

The work Kilele not only represents the social drama of Bojayá as a bitter and nightmare past, but breaks the veil of death and communicate with the souls that, according to their beliefs, still hang in limbo. The main goal of this act is to go to reintegration of fractured society, celebrating a funeral rite worthy of the deads that wander various spaces of limbo.

This article analyzes the epic structure in Kilele, rituals related to the African spirituality, and the fragmentary structure of the work. Finally this paper intends to reveal how it helped to recover from the trauma of the massacre.

Keywords:

Kilele, Massacre of Bojayá, Violence of Colombia, African Spirituality, Afro-Colombian Community

키워드:

킬렐레, 보하야 학살 사건, 콜롬비아 폭력, 아프리카 영혼성, 아프리카계 콜롬비아 공동체

Ⅰ. 들어가는 말: 보하야 학살과 『킬렐레』

일반적으로 콜롬비아의 이미지는 위험한 국가이며, 게릴라와 전쟁 중이고, 최대의 마약 생산국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이런 지적은 콜롬비아를 단순화시켜 왜곡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 안에는 어느 정도의 진실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 글의 분석 대상인 펠리페 베르가라(Felipe Vergara)의 극 작품 『킬렐레Kilele』의 중심을 이루는 보하야(Bojayá) 학살1)은 부조리함과 규모 측면에서 2000년대 들어 콜롬비아에서 일어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었다(Rizk 2010, 50). 보하야는 대부분이 아프리카계 콜롬비아 인으로 구성된 초코(Chocó) 지방의 아트라토(Atrato) 강변 마을이다.

2002년 5월 2일 10시 15분에 보하야 마을의 베야비스타(Bellavista) 성당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게릴라 단체인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의 호세 마리아 코르도바(José María Córdoba) 전선과 우익민병대인 프레디 링콘(Freddy Rincón)이 이끄는 콜롬비아 연합자위대(AUC)의 엘메르 카르데나스(Élmer Cárdenas) 부대의 충돌로 야기되었다(Jaramillo 2016, 104). 게릴라와 우익민병대는 아트라토 강의 사용권을 확보하기 위해 이 마을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것은 유일한 이동 수단인 강을 통해 무기와 마약을 밀매하기 위해서였다. 우익민병대는 4월 말부터 보하야에 주둔했고, 5월 1일에 FARC 게릴라와 전투를 벌였으며, 서로 교전하는 두 무리와 아무 관련이 없는 마을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사건이 일어난 5월 2일 새벽에 전투가 격화되었고, 게릴라와 우익민병대가 교전을 벌이는 가운데 노인들과 여자들과 아이들을 포함해 많은 마을 주민들은 성당으로 대피했고, 몇몇은 주변 밀림으로 도망쳤다. 성당은 그 마을의 유일한 시멘트 건물이었고, 그래서 총탄을 막아줄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게릴라에게 쫓겨 몇몇 우익민병대원들이 성당으로 들어왔고, 마을 사람들은 그 어느 무리와도 연관되고 싶지 않아서 그들을 막았다. 총탄을 피해 300명 이상이 들어오는 바람에, 117㎡ 규모의 성 바울로 사도 성당(베야비스타 성당)은 마을 주민으로 가득 찼다. 그런데 다이너마이트가 묶인 가스통 네 개가 성당 지붕을 부수고서 제단 앞에, 즉 그리스도 상 바로 옆에 떨어졌고, 그중의 하나가 폭발하면서 성당은 잿더미로 변했다(Reyes 2015, 696).

성당은 산산이 부서지면서 잿더미로 변했고, 119명의 사망자2)와 수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 폭발이 일어나자 생존자들 – 대부분은 상태가 매우 안 좋았던 – 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깨닫고는, 연기 속에서 고통의 비명을 지르며 빠져나가려고 시도했다.3) 그것은 좌익게릴라와 우익민병대가 오랫동안 대치하다가 벌어진 잔학무도한 테러 중의 하나였다. 팔다리가 잘린 생존자들은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강으로 도망쳐 카누를 찾았다. 그 순간 아트라토 강변을 점령하고 있던 FARC는 도망자 속에 우익민병대원이 있을 것으로 생각해서 그들을 사살하려고 했다. 하지만 게릴라 여자 대원 한 명이 마을 주민들이 무장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서 그곳을 통과시키라고 명령했다(Reyes 2015, 696).

그토록 많은 사람이 학살되었고, 분노의 시위가 있었지만, 콜롬비아 사람들은 이 사건을 뜻밖의 것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콜롬비아에서 내전은 이미 반세기 넘게 지속하고 있었고, 보하야 사건은 언제 어디서라도 일어날 수 있는 하나의 일화에 불과했다. 계속된 충돌로 인해 그들의 감각은 마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연극은 어떻게 이런 유형의 경험에 접근해야 할까? 보하야 학살이 콜롬비아 내전에서 일어난 일상적인 일화에 머물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학살이라는 커다란 사건, 그리고 학살로 인한 정신적 외상을 예술적으로 다루려면 여러 어려움을 극복해야 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낡은 감상적인 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런 위험에 빠지지 않으려면 역사적 사실을 재구성해야 하고, 작업하려는 장소에 대해 상당한 의식을 가져야 한다. 이 글의 분석대상인 『킬렐레』는 일어난 사건의 의미를 표현하는 것을 넘어, 기억을 보존하고 역사를 만들려고 노력할 뿐만 아니라, 소수 인종, 특히 아프리카계 콜롬비아 공동체에 대한 정부의 침묵과 망각을 비판하고, 그들의 역사적·문화적 자산을 인정하면서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작품이다.

『킬렐레』는 보하야의 사회극4)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이 작품이 보하야 지방의 쓰라리고 악몽 같은 과거의 사건을 다루는데 그치지 않고, 생존자들이 죽음의 덮개를 찢고서 연옥에서 괴로워하는 영혼들과 소통하면서, 분열의 재통합을 향해 나아가기 때문이다. 이것은 특히 연옥의 여러 공간을 떠돌아다니는 죽은 사람들에게 마땅한 장례식을 치러주는 것으로 이루어지면서, 학살된 아프리카계 콜롬비아인의 치유는 그들의 제의를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글은 『킬렐레』에 나타나는 서사시 구조와 아프리카의 영혼성과 관련된 제의의식을 비롯해 창작과정과 이 작품의 파편적 구조를 분석하면서, 학살이라는 외상에서 회복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Ⅱ. 『킬렐레』의 창작 과정: 학살에 대한 또 다른 관점

보하야 학살사건은 콜롬비아 국민이 겪은 폭력과 내전이라는 기나긴 여정에서 일종의 이정표 역할을 한다. 그것은 우익과 좌익을 막론하고 무장단체들이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초코 지방의 아프리카계 콜롬비아 공동체가 어떤 고통을 받고 있는지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무장그룹들은 민간인을 보호해야 한다는 국제인권법을 위반했으며, 그렇게 이 사건은 게릴라가 무고한 시민 공동체에 저지른 가장 야만적이고 잔혹한 범죄 중의 하나가 된다. 또 게릴라와 우익민병대는 교회를 성역이며 전시의 전통적 피난처로 여기지 않았다. 성당을 비웃고 존중하지 않는 태도는 우익민병대 사령관인 프레디 링콘(일명 ‘독일인’)이 보하야 주임신부 안톤 라모스(Antón Ramos)에게 왜 주민들을 성당에 모아놓았느냐면서 모든 책임을 전가한 것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Jaramillo 2016, 105). 가톨릭교회와 아프리카계 콜롬비아인들, 그리고 그곳 원주민들은 우익민병대 사령관의 비난에 거세게 항의했다.

한편 게릴라는 학살이 전술적 실수, 즉 “본의 아니게 야기된 피해(Grupo de Memoria Histórica 2010, 15)”라고 밝혔다. 그런데 정부군 역시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 어떤 대책도 세우지 않았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생존자 중의 한 사람은 “이 비극은 피할 수 있었지만, 국가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죽어야만 개입해요(Grupo de Memoria Histórica, 19).”라고 지적한다. 유엔과 미주기구, 그리고 가톨릭교회는 이 범죄를 규탄했고, FARC와 우익민병대, 그리고 군을 비난했다. 이 학살은 국가를 비롯해 그 어떤 무장 세력도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상징적인 경우이다(Sotelo Castro 2019, 190).

이 학살을 다루는 『킬렐레』는 극작가이자 인류학자인 펠리페 베르가라가 초코지방의 보하야 대학살이 일어난 지 2년 후인 2004년에 어느 신문기사를 읽으면서 시작된다. 대학살로 인해 보하야의 베야비스타 공동체 사람들이 죽은 사람들에게 장례식을 치러주지도 못한 채 임시 매장지에 아무렇게나 묻을 수밖에 없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 기사는 학살에 관한 것이 아니라, 초코주의 주도인 킵도(Quibdó) 주민들이 보하야에서 일어난 사건 때문에 정부군과 우익민병대, 그리고 게릴라를 저주했던 밤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 기사를 읽고 펠리페 베르가라는 초코 지방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조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공개적으로 저주가 이루어진 것은 보기 드문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폭력 때문에 그들의 신앙이 파괴될 정도에 이르렀고, 그래서 그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분위기에서 나왔을 것으로 추측했습니다(Noguera Durán 2013, 72).”

펠리페 베르가라는 초코 지방 사람들이 당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널리 알리고 전하기 위해 분명한 표현 양식을 찾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서, 그곳의 현실을 더 심층적으로 조사하여 연극작품을 통해 전하겠다고 마음먹었다. 2004년에 콜롬비아 문화부의 지원을 받아 그는 인류학자이며 여배우인 카탈리나 메디나(Catalina Medina)와 함께 3개월 동안 아트라토 강 유역에 머물면서 조사를 진행했고, 그 덕분에 학살과 관련된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일어나던 또 다른 많은 폭력의 일화들을 직접 접하게 되었다. 그렇게 보하야에서 학살은 거의 ‘불가피한’ 충돌의 결과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런 사실을 깨달으면서 펠리페 베르가라는 조사 이전과 다른 관점을 갖게 되었다. 그는 초코 지방 주민들을 알게 되면서 “그들은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길 바라는 것일까?, 나는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García Contrera 2012, 311)?”라고 생각했고, 기존의 모든 가정과 전제, 그리고 이론을 버리고 그들을 위해 봉사하기 시작했다. 독일의 연극교육자 잉게 클로이겐스(Inge Kleugens)와 함께 조직한 집단창작극 실습은 그곳 주민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그곳 주민들은 학살 이후 자신들의 땅에 오는 이방인들을 극도로 경계했는데, 그것은 이방인이라는 사실 때문뿐만 아니라, 정부 관리로 보였기 때문이다(Noguera Durán 2013, 42).

연극작품을 제작하여 상연하는 것은 공동체에 통합되는 방법이 되었고, 베르가라는 다양한 형태의 정보를 얻고 접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2002년의 보하야 사건의 표면적인 원인인 게릴라와 우익민병대의 전투뿐만 아니라, 야자수재배자들의 침입, 그들에 의한 토지 탈취와 강제 이주, 정부의 무관심, 정부군과 우익민병대의 공모, 시민에게 저지른 무장 세력들의 잔인한 행위, 식민 유산5) 등의 문제점을 알게 된다. 이렇게 이 작품은 창작-상상-재현 과정의 결과이자 동시에 현지 조사에서 인터뷰하면서 최악의 것을 서술하는 생생한 목소리를 수집하여 그것을 듣고 연구하는 과정이 된다(Sotelo Castro 2019, 192).

이 작품의 창작과정은 크게 네 단계로 요약된다. 첫 번째 단계는 펠리페 베르가라가 초코를 방문했을 때이다. 그는 거기서 정돈되지 않은 혼란스러운 정보로 몇몇 장면을 썼다. 두 번째는 베르가라가 영국에 가서 그곳에서 작품을 상연했을 때이다. 그때 그는 연출하면서 작품을 다시 썼고, 그것은 로시오의 죽음에서 끝난다. 세 번째 단계는 ‘국립 연극의 집(Casa del Teatro Nacional)’에서 이 작품을 처음으로 낭송했을 때였는데, 거기서 바라산타 극단(Teatro Varasanta)의 연출자인 페르난도 몬테스(Fernando Montes)는 작품 공연을 제안했다. 네 번째는 2005년에 이 작품이 문화부 창작지원금을 받았을 때였다. 이 지원금 덕분에 이 작품의 배우들과 극작가와 연출자는 아트라토 강 유역을 전부 돌아다니며 그곳에서 탄생한 『킬렐레』를 현지에서 상연하는데, 그것은 상징적으로 그곳 주민들이 학살이라는 정신적 외상에서 회복하고 있음을 의미하게 된다(Noguera Durán 2013, 44-50).


Ⅲ. 『킬렐레』의 미학과 기존 전쟁 연극과 거리 두기

1. 『킬렐레』의 파편적 구조와 관객의 역할

전쟁 중에 일어나는 사건을 바탕으로 예술 작품을 제작하려고 할 때면, 선전물 혹은 상투성에 빠질 위험이 다분하다. 그러나 그런 것을 알면서도 그 위험을 이겨낸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 지난 40년 동안 콜롬비아 연극에서는 이런 유감스러운 일이 너무나 자주 벌어졌다. 하지만 펠리페 베르가라와 바라산타 극단은 페르난도 몬테스가 연출한 『킬렐레』에서 이런 문제를 서사시의 구조를 사용하고 파편화시키며 제의와 관객의 참여를 통해 성공적으로 극복한다.

보하야 학살에서 119명이 사망했고, 많은 가족은 그곳을 떠나야만 했다. 이 구체적인 사건이 『킬렐레』의 출발점을 이루고, 펠리페 베르가라와 바라산타 극단은 이 사건을 일종의 신화로 만들어 새로운 시선을 제공하면서, 멜로드라마라는 새롭지 못한 형식에 빠지는 위험을 피한다. 다시 말하면, 서사시라는 전통적인 도구를 사용하여 이 신화를 구성하면서 문학적 동기와 결합한다. 한편 강제 이주는 전쟁의 또 다른 결과로 등장하면서 여행이라는 동기로 사용된다. 그렇게 『킬렐레』는 주인공 ‘여행자’를 고전 서사시의 영웅들과 연결하는데, 특히 율리시스와 아이네아스는 자신들의 운명과 싸우기 위해 이주해야만 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주인공과 유사하다.

보하야 학살을 신화화하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베르가라와 바라산타 극단은 사건을 정확하고 충실하게 표현하고 사건을 단순화하는 전통적인 방식과 거리를 둔다. 그래서 『킬렐레』의 주인공은 초코 지방의 가난한 흑인 농민이지만, 백인 배우가 배역을 맡아도 작품은 왜곡되지 않는다. 작품이 원래의 사건과 똑같이 현실을 전개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역시 구조에서도 일어난다. 구조 역시 연극의 시간과 장소와 행동을 통제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삼일치 법칙이나 시간 순서에 따라 이루어지지 않는다. 보하야 학살은 마을을 완전히 파괴했고, 그래서 작품 역시 파편화되어 마을처럼 재구성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파편화는 이 작품의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를 이룬다. 관객은 파편화된 부분을 재구성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이것은 주인공의 행위와 관련된다. 그도 역시 파괴된 마을을 재건하기 시작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전에 그는 그것이 자기 운명이며, 그 어떤 것도 그 운명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영웅적인 행위에서 멀어지려고 하지만, 결국 그런 행위를 실행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여행자’라는 이름은 인물이자 기능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이 작품은 막(幕)이나 장(場)의 구분 없이 파편적으로 구성되며, 이것들은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관객은 그 장면들, 즉 조각을 맞춰야 작품과 사건을 이해할 수 있다. 이런 특징은 텍스트보다 무대 구성에서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 독자는 텍스트를 필요한 만큼 여러 번 읽으면서 기호체계, 즉 언어체계를 해석하면 되지만, 관객은 음향과 조명, 그리고 동작 등 다양한 체계를 이해해야 하고, 되돌릴 수 없는 시간성에도 도전해야 하며, 따라서 그의 지각은 독자보다 더 파편화된다.

『킬렐레』는 시작부터 연극의 전통적 구조를 파괴한다. 등장인물들은 무대로 들어오지 않고, 아무런 알림도 없이 관객들과 뒤섞여 있다. 그런데 갑자기 여섯 살짜리 여자아이 역을 맡은 두 여배우가 관객과 대화를 시작한다. 그들은 장난을 치고, 촛불이 가득 든 쟁반을 들고 있는 어두운 인물의 주의를 분산시키면서 촛불을 끄면서 숫자를 센다. 이 어둠의 인물은 ‘죽음의 천사(Ángel de la muerte)’이고, 촛불은 인간 생명을 상징한다. 이 두 여자아이는 새로운 여신인 노엘리아(Noelia)와 마니살바(Manisalva)이다. 이들은 인간의 생명을 어린애들의 장난으로 이해한다.

이 모임에 두 작은 여신보다 높은 엘메르(Élmer)가 도착한다. 그는 나이든 남자이며, 여자아이들에게 인사하고, 그들과 함께 촛불을 끄는 똑같은 일에 가세한다. 엘메르는 또 다른 새로운 신이며, 역시 관객들과 뒤섞이는데 관객들은 일종의 사교모임에 초대받는다. 그 모임은 수많은 사람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이렇게 관객에게 접근하면서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한다. 즉, 관객들은 공연을 볼 뿐만 아니라, 공연의 일부를 이룬다. 이제 모두가 파티에 있고, 박수와 웃음이 그치지 않는다. 엘메르는 기업가 친구들, 사업가들, 기회주의 정치인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평화를 기원하는 성공한 기업인들’ 모임을 이끌도록 임명해주어서 고맙다고 말한다. 마니살바와 노엘리아와 함께 엘메르는 “우리는 종려나무를 심어6)⋯⋯ 집을 없애버려(10).”7)라고 노래한다.

이 작품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 중의 하나는 학살인데, 그것 역시 전혀 전통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제시된다. 그 어떤 장면에서도 군복이나 게릴라의 위장복을 입은 인물들이 들어오지 않으며, 물리적인 폭력도 등장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현실 재현보다 상징적인 요소를 사용하는데, 그것이 훨씬 더 강력하고 단호한 효과를 낳는다. 그 상징적 요소는 바로 인간의 모습을 한 종이 인형이다. 마니살바, 엘메르, 노엘리아는 이것들을 불태운다. 총 119개의 종이 인형이 불타는데, 이것은 죽은 사람의 숫자를 분명하게 증언하는 것이며, 동시에 이 이미지는 보하야 민중의 기억을 되살리는데 매우 중요하다. 또 종이 집도 태우는데, 이것은 교회를 상징한다. 그러고서 몇몇 인물들은 노래를 부르고는 관객들에게 새카맣게 타버린 인간 모습의 조그만 과자 인형을 나누어준다.

2. 『킬렐레』의 서사시 구조와 의미

이런 파편화와 관객의 적극적 참여와 더불어 바라산타 극단과 펠리페 베르가라는 서사시의 전통을 이용해 보하야 학살의 신화를 구성할 수 있는 도구를 발견하고, 그렇게 사건을 충실하고 정확하게 재구성하는 전통과 거리를 둔다. 『킬렐레』의 이야기는 두 개의 공간에서 전개된다. 첫째는 신화적 공간인데, 거기에서 새로운 신들은 인간의 생명을 갖고 장난을 치거나 나쁜 일을 꾀한다. 둘째는 속세의 공간인데, 거기에서는 그 계략의 결과가 분명하게 나타난다. 여행자는 이 두 공간의 연결점이다. 율리시스와 아이네아스와 마찬가지로, 그는 운명의 요구에 복종해야만 한다. 다시 말하면, 마을로 돌아가 성당에서 학살된 사람들을 묻어주고 그렇게 마을 재건을 시작해야 한다.

이런 이중 서사구조는 기록되고 증명된 사건들까지 신화처럼 보이게 한다. 그래서 여행자의 관심을 분산시킬 수 있는 모든 것, 가령 그의 딸이자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학살에서 살아남은 로시오까지도 죽게 하는 것은 여행자가 운명을 완수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보일 수 있다. 예를 들어, 폴리도로8)(로시오의 오빠이며 교회 폭발의 희생자 중의 하나)가 이끄는 연옥의 영혼들은 로시오에게 나타나 그들과 함께 가자고 한다. 폴리도로는 비닐봉지 안쪽에서 로시오에게 말하면서 자기를 그 안에서 찾으라고 부탁한다. 그녀는 오빠 말대로 하고, 그 결과는 죽음이다. 그렇게 로시오는 오빠와 다른 영혼들과 함께 있게 된다.

그러나 이 사실은 실제 사건에 바탕을 두고 있다. 폭력을 피해 이주한 어느 여자아이가 비닐봉지로 장난을 치다가 죽었는데, 베르가라는 이 사건을 자신의 서사시에 삽입하고, 그렇게 영웅이 운명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배제하는 데 성공한다(García Contreras 2012, 327). 이 사건은 작품에서 결정적 순간이 된다. 폭력 사태 때문에 마을을 나와 떠돌아야만 했던 여행자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마을의 운명과 그가 곧 시작할 영웅적인 행위와 결합하기 때문이다. 딸의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기력한 여행자는 자신의 임무가 개인적인 목표가 아니라 집단의 운명을 달성하는 것임을 깨닫는데, 아마도 이런 이유로 이름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즉, 로시오의 죽음으로 여행자는 서사적 행위를 시작한다. 그래서 이 장면은 전투의 외침인 ‘킬렐레’9)라는 말로 끝난다.

영웅이 돌아오자 모두가 놀란다. 심지어 늙은 신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어떤 사람이 강에서 와서 늙은 신들의 힘을 다시 세울 것이라고 쓰여 있다(26).”고 말하면서, 여행자가 예언을 이룰 책임자라는 것을 인정한다. 이제 인정받은 영웅으로서 그의 과제는 성당에서 학살된 사람들에게 적절한 장례식을 치러주고 매장을 해주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아프리카계 콜롬비아 공동체에 따르면, 장송곡을 부르면서 장례식을 치러주지 않으면, 그리고 관에 넣어 한 명씩 묻어주지 않으면, 죽은 사람들이 “안식을 찾지 못한 채 계속 방황하기(Jaramillo 2016, 109)”때문이다. 이 상징적 의식은 성당이 폭발한 다음 날 시작되었지만, 마을에서 좌익과 우익의 전투가 재개되는 바람에 실행에 옮길 수 없었다. 여행자는 자기 과제를 수행하기 시작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커다란 일이며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깨닫는다. 그의 아버지(아트라토 강)와 영혼들은 끊임없이 그에게 그의 과제, 즉 그가 여행하고 움직이며 바꿔서 잃어버린 질서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을 떠올려준다.

이 작품의 끝은 영웅의 임무가 완수되었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말한다.10)

토마사: 노쇠한 신들이 하늘로 돌아가자, 한 사람에게 하늘로 올라와 인간의 삶을 바라보도록 했어요. 빛의 바다가 얼마나 광활한지 몰라요! 우리의 사람은 자기의 삶이 어땠는지 물었고, 죽음은 그에게 한쪽 구석에서 커다란 테이블 높이에 있는 하나의 촛불을 가리켰어요.
[여행자는 거의 타버린 촛불로 가서, 주머니에 들어 있던 초를 꺼내고, 타버린 촛불 위로 그 초에 불을 붙이려는 유혹을 받지만, 후회하고서 그냥 자기 촛불을 끈다. 그리고 자리에 눕는다(57-58).]

여행자는 순환의 여정을 떠난다. 그러니까 조화로운 시간으로 되돌아가야 하고, 그래서 이 작품은 직선적이 아니며 상황적이지도 않은 시간 순서를 따른다. 그것은 영혼의 시간이며 신화의 시간이고 운명의 시간이며, 연월일시로 측정되지 않는다. 이 신화적 시간은 아이네아스와 율리시스와 더불어 여행자 자신이 여행과 귀환, 그리고 순환의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될 때 비로소 의미를 획득한다. 그래야만 여행자는 운명이 지정한 자기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인정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 작품은 비극의 기본 구조를 취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한편 여행자의 운명은 비극적 주인공들의 운명처럼 공동체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것 이외에도, 연옥의 떠도는 영혼들도 여행하면서 자신들의 기능을 수행하고 영웅을 기다리며 영원히 방황하는 데 지쳐있지만, 그래도 계속 그렇게 해야 한다는 사실을 여행자에게 떠올려준다. 이것은 콜롬비아가 오랫동안 전쟁을 벌이고 있고 그 전쟁에 지쳐있지만, 아직도 내전은 그곳에 있고, 그것을 수용하고 인정해야만 한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여행자처럼 책임을 짊어지고 가야 한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작품 초반부에서 여행자가 내전에 등을 돌리는 것 같은 행위는 아무 소용이 없다. 그것은 불가피하게 다시 얼굴을 내밀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킬렐레』는 콜롬비아의 초코 지방에 있는 한 마을의 특별한 상황을 그리는 서사시로 제시된다. 그것은 변신의 시작, 즉 변화의 운동인 여행을 다루면서, 한쪽의 입장을 고발하거나 옹호하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 신화적 도구를 사용하면서 다른 관점을 구성한다. 그리고 그런 관점으로 현실을 새로운 방식으로, 즉, 콜롬비아 무장충돌의 본질을 통해 좌익과 우익을 막론하고 무장단체들이 얼마나 타락했는지, 그리고 거기서 아프리카계 공동체가 어떤 문제에 당면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데 성공한다.


Ⅳ. 『킬렐레』와 학살에 대한 관점

1. 피해자와 가해자: 과거의 해체와 지역 학살의 보편화

『킬렐레』는 콜롬비아 내전에서 우익과 좌익의 무장단체들을 동일시하고, 그런 폭력의 희생자가 된 아프리카계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보여줌으로써 기존의 작품과 관점을 달리한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가해자-피해자로 구성된다. 여기서 가해자들은 “하찮은 작은 신들(엘메르, 마니살바, 노엘리아)”과 카스타뇨11)이며, 피해자들을 “무지한”(11) 사람들로 지칭한다.

엘메르: [⋯] 농공업 계획을 실행에 옮길 수 있었는데, 덕분에 1996년부터 이 땅에 진보와 발전을 가져왔고, 무지한 사람들에게 빛을 주었으며(11)⋯⋯
엘메르: [⋯] 우리는 그들에게 고대의 신들이 아무 소용도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고, 흑인들을 종교의 우매화에서 꺼내주었어(12).

피해자들은 대부분 가해자의 이름을 말하는 데 두려움을 느끼는데, 그것은 교전 중인 상황에서 특정 그룹의 협력자 혹은 봉사자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두려움 때문에, 즉 적을 도와주었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을 수 있기에, 그들은 완전히 침묵한다. 한편 피해자들이 다른 피해자들을 언급할 때는 무기력하고 죄 없는 피해자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여행자는 “우리 마을 사람들은 바닥에 흩어진 시체 더미에 불과해요. 그들은 독수리들이 간을 쪼아 먹기를 기다리고 있어요(13).”고 말하면서, 마을이 무장하지 않은 선량한 주민들의 흩어진 시쳇더미가 되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가해자들을 동물화해서 지칭하는 경향이 있다.

성녀 데클라: [⋯] 그 염병할 벌레 중의 하나가 성인을 물었어. 그가 누구인지는 기억나지 않아. 그 성인은 낙타 얼굴을 한 부자에게 길을 터주었는데(25)⋯⋯
성 요셉: [⋯] 그 낙타 인간들은 부정부패 덕분에 신이 되었어. 그놈들은 권력을 매수해서 실컷 즐겼어. 바늘귀를 크게 만들기도 했고, 강물의 흐름을 바꾸기도 했으며, 도시를 파괴하고 다시 만들었고 (25)⋯⋯
여행자: [⋯] 살인 악마들을 목마에 숨긴 자들을 죽여야 해(39)!

피해자들은 가해자들을 악마이자 동물로 받아들이지만, 가해자들이 누가 죽어야 할지 아닐지 결정할 힘이 있으므로 ‘신’으로 수용하기도 한다. 한편 가해자들은 가식적인 연설과 거짓 약속을 일삼는 사람으로 나타나고, 자기들 마음대로 모든 것을 만들고 해체한다. 그들은 학살을 자행하면서 피해자들을 비웃으며, 한 치의 동정심도 보이지 않으면서 성스러운 비둘기(순진한 사람) 행세를 한다.

이렇게 『킬렐레』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미지를 전형적인 틀로 구성하면서, 피해자들의 기억이 어떻게 지속하는지 보여준다. 피해자들은 지울 수 없는 흔적을 가지고 있고, 그 흔적들 때문에 정신적 상처를 입고서 그 사건을 되살린다. 마을 사람들과 가족들이 죽으면서 객지를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죽은 사람들에게 장례식도 제대로 치러주지 못하고 자신들의 신앙도 제대로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의 정신적 상처는 아물지 않고 계속 남아 있다. 그리고 연옥을 떠도는 영혼들은 매일 잘려나간 자신들의 몸을 보면서 그 상처를 되살린다.

폴리도로: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것 같았어요, 아버지. 불타는 허공처럼 느껴졌어요, 살아서 나온 사람이 있었지만, 옷을 입고 있지는 않았어요. 폭발이 너무나 강력해서 모두 찢어버렸거든요[⋯]. 그 안에서는 날카로운 소리가, 아주 강한 휘파람 소리 같은 것이 느껴졌어요. 그 굉음 때문에 오른쪽 귀가 먹었어요. 점차 회복했지만, 아직도 가끔 아파요. 난 내가 있던 곳에 엎드렸어요. 그럴 때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아요. 지붕이 우리 위로 떨어지고, 죽은 사람을 보지만,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야 느껴지거든요(28).

이 작품은 가해자들을 모두 똑같은 존재로 다루면서, 게릴라와 우익민병대와 정부군이 이 학살에 똑같이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살아남은 여자들은 이 사건을 재구성하면서 마을에 처음 도착한 사람들은 노엘리아 병사들(게릴라)이었으며, 이들은 자신들의 믿음에 따라 마을 사람들을 교화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왔다고 말한다. 가해자들은 그 여자들이 믿고 있는 늙은 신이 죽었다고 강조했는데, 생존한 여자들에 따르면, 그 사실은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다. 그것은 오래전부터 그들의 성인들이 기도와 간청을 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기도는 아무 소용도 없었고, 그러자 가해자들은 자신들을 신이라고 믿으면, 그들을 가난에서 구원해주겠다고 말했다.

브리히다: 우리가 봉헌한 것들을 산으로 가져가서 며칠간 모습을 보이지 않았어. 그러자 우리는 초조해했는데,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야. 그들은 우리에게 갈수록 자주 더 많은 희생을 요구했어.
[⋯]
룻: 그런데 나중에 사람들은 그들을 두려워하기 시작했어.
브리히다: 사람들을 노예로 데려가서 북쪽 농장에서 일을 시켰어.
펠리시아: 난 그들이 자기들 신에게 사람들을 희생 제물로 바쳤다고 들었어.
룻: 염병할 노엘리아는 인간의 희생을 요구해.
펠리시아: 엘메르와 마니살바도 마찬가지야.
브리히다: 새로운 신들은 모두 똑같아.
펠리시아: 그들은 똑같지만 달라(32-33).

여기서 펠리시아는 새로운 신들이 모두 가해자이며 마을 주민을 착취했으며, 권력을 남용하며 폭력을 강요하고 희생을 요구하며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는 똑같지만, 이념적 성향은 다르다는 것을 지적한다. 다른 대목에서 여자 생존자들은 우익민병대의 도착을 언급한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가해자에게 모든 책임이 있었다. 이 작품은 가해자를 천박한 존재로 다루면서, 그들이 자신들의 이익에만 관심을 보인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일어난 폭발 장면에서는 후회하는 가해자를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다. 이것은 어느 여자 게릴라의 이야기인데, 그녀는 폭발이 일어난 후 배에 상처를 입고서 아이를 안고 있던 한 남자를 도와준다. 여자 게릴라는 그를 도와 도망치게 해주고, 자기 잘못을 수용한다.

이 작품에서 가해자들은 전쟁의 주체이지만, 작품의 주요 이야기를 구성하는 인물은 아니다. 그들은 영토와 주민을 착취하는데 관심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따라서 피해자들은 그들을 비난하면서, 그들의 행위를 정신착란이라고 평가한다. 반면에 피해자들은 전쟁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다. 그들은 허약하고 유순한 존재이며, 생존의 선택권을 갖고 있지 않다. 강제로 이주를 떠나 타지를 돌아다녀야만 했던 피해자들이 과거에 자기가 보살폈으며 일구었던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 그것은 게릴라와 우익민병대의 전투 때문에 과거에 그의 고향이었던 곳에는 아무것도 없고, 강제로 다시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자신들의 신앙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이방의 땅을 방황하면서 그들은 피곤해한다. 학살과 관련하여, 피해자들은 잊히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데 지겨워하고, 자신들의 상황이 언론의 쇼로 사용되고, 필요하지 않은 도움을 받는 것에도 지쳐있다.

목숨을 구한 피해자들, 즉 ‘양산 쓴 여자들’은 자신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에 관해 관객에게 직접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들려줄 때, 그들의 기억은 현재에서 그 사건을 떠올리면서 과거의 서술을 해체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구체적인 기억의 장소들을 복구한다. 그들은 증인의 자격으로 일어난 사건을 알려준다.

룻: 하지만 그런 다른 이야기고, 이미 5천 년 전에 일어난 것이야. 여러분들이 원하는 것은 교회 안에서 일어난 폭발 사건에 관한 것이죠, 그렇죠?
모두: 교회 안에서 일어난 폭발 사건에 관한 것이죠, 그렇죠(33)?

이렇게 학살은 아주 오래전에 일어난 것처럼 서술된다. 그러면서 생존 피해자들은 보하야 학살을 세계에서 일어난 유명한 학살과 비교한다. 그들에 따르면, 모든 학살은 죽음과 황량함과 실망감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브리히다: [⋯] 트로이, 푸에블로 누에보, 스레브레니차, 시에나가, 히로시마, 엘 시바오, 라 가바라, 할라브자, [⋯] 나가사키, 누에바 에스페란사, 카베지, 레마초, 미라이, 로스 소토스, 살라키시토, 카람, 도밍고도, 탈 알 아파르, [⋯] 게르니카, 바르샤바, 코소보, [⋯]
펠리시아: 모두가 똑같은 마을이야.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우리를 원하지 않는 새로운 신들을 가득 태운 목마가 폭발해(43-44).

여기에는 트로이처럼 호메로스와 고전주의 시대의 극작가들이 다룬 전쟁이 일어난 장소가 나온다. 그리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처럼 원자폭탄으로 수많은 피해자가 발생한 일본 도시도 등장한다. 또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겪었던 스레브레니차나 코소보 같은 도시와 스페인 내전 초기에 독일 비행단의 무차별 폭격을 받았던 게르니카, 또 콜롬비아의 폭력에 휘말린 안티오키아와 초코 지방의 조그만 태평양 연안 마을들도 언급된다. 이렇게 보하야 학살은 특정 지역에 국한된 학살이 아니라, 세계적인 보편적 현상으로 이해된다.

2. ‘비밀’의 힘과 아프리카의 영혼성: 학살의 정신적 외상을 극복하기 위하여

『킬렐레』는 보하야 학살을 중심사건으로 다루고 있지만, 중심 목표는 가장 고통스러운 역경과 불행과 맞서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 하는 문제인 것 같다. 이 작품은 아프리카계 후손들이 아프리카의 영혼성과 재결합하여 그들의 정신적 외상을 극복할 필요성을 지적하고, 그것은 노예가 된 선조들의 후손들에게 구전으로 전해진 비밀의 힘과 재결합하면서 이루어진다. 이런 점에서 이 작품은 일종의 주문(呪文) 혹은 신에게 도움을 비는 기원(祈願)과도 같다. 그 주문은 일종의 기억행위이며, 정신적 차원에서 회복과 정의를 추구하는 문화적 행위이기도 하다.

『킬렐레』에서 성당 안에서의 학살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장면 중의 하나는 가스통 폭발 이후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여행자의 딸 로시오의 이야기이다. 로시오가 질식해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여행자’는 “킬렐레(40)”라고 분노의 저주를 퍼붓는다. 펠리페 베르가라가 말하는 바에 따르면, 초코 지방의 아프리카계 콜롬비아의 문화에서 그런 저주는 일종의 기도이자 주문이며, 그것은 ‘비밀’12)로 불린다. 그들은 그 비밀의 힘을 믿는다. 그것은 조상들의 초자연적인 힘을 불러서 살아 있는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해달라고 기원하는 힘이다. 그것은 어떤 사람 혹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호해달라는 것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나쁜 일이 벌어지도록 해달라는 것일 수도 있다. 베르가라는 이 작품의 중요한 순간에 여행자가 내뱉는 저주 혹은 기도가 특히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초코 지방의 전통에 따르면, 마술적 능력을 갖춘 그 저주 혹은 기도는 선물하거나 훔칩니다. 그 지식을 획득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그 기도를 비밀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일단 누군가가 비밀을 갖게 되면, 그것을 비밀리에 간직하고 있어야만 합니다. 누구든 정성스럽게 간직해야만 합니다. [⋯] 어떤 사람이 보호기도 하나를 내게 주었지요. [⋯] 물론 나는 그 기도문을 옮겨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작성된 형식을 수용했고, 내용을 바꾸었지만, 형식과 음성은 보존했습니다. [⋯] 초코 지방의 어느 사람은 이 작품을 보고 나서 내게 고맙다고, 그 이야기가 우리 식으로 이야기되는 것이 처음이라고 느낀다고 말했습니다(Sotelo Castro, 2019, 194-195).

여행자가 처음으로 ‘킬렐레’라고 말하는 대목을 자세히 살펴보자. 여기서 여행자는 분노하면서 ‘성스러운 검은 개’를 부른다. 그것은 노예 주인들로부터 도망친 조상이다. 그러나 그는 세상 창조 때부터 존재하며, “모든 빛은 어둠이 필요하고 모든 선은 악을 필요로(40)” 하는 것처럼, 필요한 존재이다. 여행자는 검은 신에게 마을의 살인자들을 죽여 달라고, “모든 그들의 몸에 강한 전기 충격을 주라고(40)” 부탁한다. 그러나 또한 영혼들에게 눈을 돌려 달라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장례식을 치를 수 있는 상황을 만들게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이런 ‘비밀’이 끝나고 성스러운 검은 개와 “영원히 자기의 종족(40)”을 찬양하면서, ‘킬렐레’라는 외침이 나온다. 그러자 북소리가 시작하고, 여행자는 자기를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하던 마비 상태(아니면 두려움?)에서 해방된다. ‘킬렐레’라는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영혼들은 우렁차게 합창한다. 침묵을 지키던 그의 종족은 이제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모두가 그와 함께 “킬렐레! 킬렐레. 아보, 아보, 킬렐레(40)”라고 소리친다. 즉, ‘킬렐레’는 주민들에게 기원에 대한 의식을 갖게 하여, 침묵을 떨쳐버리고 일어서게 만들어 역경과 불행에 맞서게 하는 외침으로 작용한다(Sotelo Castro 2019, 196). 살아 있는 사람들과 그들의 조상, 영혼들과 인간들은 그 외침 속에서 하나가 되어 저항하고 역경을 이겨낸다.

이 작품에서 여행자는 안식을 찾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영혼들에게 마땅한 장례의식을 치러주면서, 학살로 인한 정신적 외상을 치료한다. 사실 보하야의 경우처럼 학살은 생명의 흐름을 대량으로, 그리고 자의적으로 단절시킨다.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에게 장례의식은 실행하기 힘든 어려운 짐이 된다. 그것은 학살이라는 사건 자체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의 영혼이 영원한 안식을 취할 수 있도록 아프리카계의 영혼성에 바탕을 둔 장례식13)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좌익과 우익을 막론하고 무장단체들은 보하야 마을 주민들이 폭력에 희생된 사람들에게 장례를 치러주지 못하게 했으며, 심지어 적절하게 매장하지도 못하게 했다. 그런 행위는 아프리카계 후손들의 문화를 파편화하는 힘을 갖는다(García Contreras 2012, 366). 그렇게 그들에게 장례의식은 특별하고14), 『킬렐레』에서 핵심 상징으로 기능한다.

이 작품은 무대에 불 켜진 많은 작은 초와 큰 초를 놓고서 장례의 분위기를 풍기며 “죽음의 천사가 조용히 돌아다니며 자기 마음대로 초에 불을 붙이거나 끈다(7).”라는 지문으로 시작한다. 이런 촛불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개구쟁이 작은 신들은 ‘죽음의 천사’가 보지 않는 곳에서 촛불을 끄면서 생명을 사라지게 만드는 죽음의 놀이를 한다. 그런 소동 속에서 여행자가 들어온다. 그는 마치 자신의 운명을 보여주듯이 그물을 칭칭 동여 감고 있다. 그는 죽음의 천사에게 말한다. 마치 꿈속에서 이루어지는 가상의 대화 같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인 에르실리아(Ercilia)는 학살이라는 폭력으로 갑작스럽게 목숨을 잃었을 때, 아프리카계 초코 지방 사람에게 제대로 된 장례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한다.

마을 사람들은 강둑에 두 개의 꽃다발을 놓고서 우리를 위해 주님의 기도를 세 번 기도했어. 하지만 총소리 때문에 우리를 묻지 못하고서 끝낼 수밖에 없었어. [멈춘다] 평생 흰옷을 입고 결혼행진곡에 맞추어 교회로 들어가는 것을 꿈꾸는 여자들이 있어. 난 아니야. 내가 꿈꾼 것은 아트라토의 모든 마을 사람들을 모아서 우아하게 장례식을 치르고 예쁜 무덤을 만들고, 실컷 먹으며, 파두아나 푸에르토 콘토에서 데려온 사람들의 기도 소리를 듣고, 산후안의 노래꾼들을 노래를 듣는 것이었어(28-29).

여기에는 정치적·사상적 이유로 테러와 학살의 희생자들이 겪은 커다란 사건 중의 하나를 지적하는데, 그것은 제대로 치러지지 못한 장례식이다. 초코와 그곳의 수많은 주민의 경우처럼, 그것은 그 지역에, 특히 아트라토 강변에서 태어난 사람들의 전통 의식과 관습으로, 머나먼 과거, 즉 흑인들이 노예로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로 끌려 왔던 노예제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들 중 많은 사람은 카르타헤나(Cartagena)나 몸폭스(Mompox), 혹은 칼리(Cali)와 다른 태평양 연안의 도시에서 도망쳐서 촌락을 이루었고, 그곳으로 아프리카의 많은 풍습과 의식, 노래와 리듬을 가져가 후손에게 풍요로운 문화를 물려주었다(Reyes 2015, 708).

이 인물의 이야기는 마술적인 힘과 상징적인 인물들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가령, 아트라토 강은 등장인물이 되어 그 지역의 목소리가 된다. 여행자는 아트라토의 목소리를 듣는다고 믿으면서 마을의 신화적 우주를 깨닫는다. 이 작품에서 그것은 밀림과 강 사이에 있는 공동체이고, 폭력에 휘말려 생존자들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지역이다. 이렇게 이 작품은 현실성이라는 전통적 관점에서 벗어나 신화라는 상징의 세계로 들어가고, 무대에서 이런 것을 비유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종잇조각으로 만든 모습이나 인형, 그리고 가면을 사용한다. 다시 말하면, 마술적 의미를 지닌 유희적 기호가 이용된다. 이렇게 『킬렐레』는 보하야의 비극을 은유적으로 재현하는 작품으로서 사실을 그대로 전할 뿐만 아니라, 상징적인 이미지들과 음악, 그리고 춤과 탄식으로 구성된 커다란 장례식이자 밤샘 행사인 것이다.


Ⅴ. 맺는말

1960년대 초부터 콜롬비아 연극은 예술의 사회참여에 관한 논의에 집중했다. 연극작품은 당대의 증인이 되어야 했으며, 그렇지 않으면 반동주의 혹은 도피주의라고 간주될 수 있었다. 논의는 양극으로 치우쳤고, 1970년대에 극단들은 수많은 좌익정당의 도구가 되고 말았으며, 그래서 정치인들은 연극에서 정치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1980년대와 90년대 중반까지 당면한 현실을 다룬 작품들은 시간과 장소를 벗어난 시대착오적인 연극의 예가 되었다(Romero Rey 2009, 267).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이후, 콜롬비아 연극은 예술창작이 요구하는 미학에 바탕을 두고 현실에 대해 접근하는 것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고 있다.

이런 현실과 미학의 접목 이외에도 ‘보하야 학살’은 또 다른 점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보하야 학살 보고서는 이 사건이 집단 주체, 다시 말하면 원주민 마을과 흑인 공동체에 대한 전쟁 범죄로 간주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흑인 공동체의 기억을 재구성해야만 한다고 권고한다(Grupo de Memoria Histórica 2010, 35). 펠리페 베르가라가 쓰고 바라산타 극단이 무대에 올린 『킬렐레』는 서사시 구조와 아프리카의 영혼성을 통해 증언이 침묵하는 공간을 채워주면서 죽은 사람과 실종된 사람의 목소리를 회복한다. 그리고 관객에게 폭력에 내재한 침묵을 느끼게 해주고, 국가 체제의 구조적 문제점을 의식하게 만든다(Rodríguez Moreno 2016, 191). 이렇게 당면한 현실과 아프리카계 공동체의 영혼을 접목하여 미학적으로 다루면서, 현실을 고발하고 관객에게 감동을 준다.

『킬렐레』는 폭력에 맞서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한다. 그것은 선전물이나 차가운 고발, 그리고 무의미한 예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서사시이며 일종의 장례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단어로 지배되는 시나 의식이 아니라, 그것들의 서정적 차원은 무대로 확장되어 노래와 촛불과 가면, 그리고 종이 인형과 합창단의 탄식으로 구현된다. 공동체의 존재마저 위협하는 학살이라는 사건 앞에서 서사시의 주인공을 등장시켜 상을 치르면서 조상과 영혼으로 교감하는 행위는 도전이 되고, 그들의 문화를 최소한이나마 생존하게 만드는 노력이다. 이렇게 이 작품은 섬세하고 심오하게 아프리카계 콜롬비아 공동체의 비극을 회복한다는 점에서 큰 가치를 지닌다.

『킬렐레』는 학살이 일어났던 바로 그 장소를 포함하여 공연된 곳에서 큰 충격을 주었다. 베르가라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학살이 일어난 교회 안에서 한 차례 공연했습니다. [⋯] 실종된 사람들을 무연고 묘지에 매장하는 모든 경우에 일어나는 것처럼, 가족들은 장례를 제대로 치를 수 없는데, 그것은 시체가 없어서 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죽은 사람들을 위해 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자 했습니다(Rizk 2010, 52).” 작가는 문화적‧정치적 현상으로서 장례를 치를 권리의 중요성을 부각하는데, 아마도 그것이 끊이지 않는 폭력의 순환을 멈추게 하는데 일조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 이 작품은 이런 문제에 대한 완전한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문제 해결의 첫 단계인 관객들에게 아프리카계 공동체의 문제와 무장충돌의 문제를 인식시키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Acknowledgments

이 논문은 2018년도 울산대학교 연구비에 의해 연구되었음.

Notes
1) 이 학살은 『보하야, 끝없는 전쟁Bojayá, la guerra sin límites』(2010)에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이 보고서는 역사기억집단(Grupo de Memoria Histórica)이 국가보상화해위원회(Comisión Nacional de Reparación y Reconciliación)의 지원을 받아 작성했으며, 학살에 앞서 일어난 사건들과 학살 이후의 사건들을 포함하여 학살을 종합적으로 살펴본다. 정부 관리들이 이 지방에 일어날 사건을 미리 통보받았을 뿐만 아니라, 마을과 교회의 공식성명을 무시했다는 사실은 정부 기관이 시민들의 목숨을 보호해야 한다는 헌법의 의무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2) 콜롬비아의 주요 일간지 중의 하나인 <엘 에스펙타도르>의 기자 라우라 아르딜라(Laura Ardila)는 사망자가 125명(아이 45명, 어른 80명)이라고 밝히고 있고, 카롤리나 가르시아(Carolina García)는 『킬렐레』에 관한 연구서 『혼종 연극Teatro híbrido』(2012)에서 117명이라고 말하지만, 공식적으로는 119명이 죽었다고 발표되었다.
3) “바닥뿐만 아니라 벽에도 떨어져 나온 손과 발 혹은 완전히 찢긴 시체의 증거가 남아 있었다. 핏물이 그곳을 완전히 뒤덮으면서 잿더미와 뒤섞이거나 잿더미 사이로 사라졌다(Grupo de Memoria Histórica 2010, 59).”
4) 빅터 터너(Victor Turner)는 폭력을 주제로 제의와 연극의 관계를 연구하여 사회극(social drama)의 개념을 발전시켰다. 그는 사회극을 충돌과 폭력 상황에서 나타나는 규칙 위반의 사회과정으로 규정하고(García Contreras 2012, 265) 위반, 위기, 교정, 그리고 분열의 재통합 혹은 재인식이라고 명명한다(Turner 1996, 113). 즉, 사회극은 정상적이고 규범적인 사회관계와의 불화로 시작하여 위기로 발전하고, 위기가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 회귀적이고 회복적인 행동이 이루어지며, 마지막에는 내적인 화합의 상실로 흔들리는 사회집단이 재통합되는 단계로 이루어진다.
5) 식민 유산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건이 일어난 곳이 아프리카계의 후손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땅이기 때문이다. 식민시대에 그들의 조상은 노예였는데, 그 결과로 현재 세대도 소외된 사회에서 계속 살아가고 있다.
6) 보하야 보고서는 이렇게 지적한다. “1990년대 말에 새 경제활동이 아트라토 하류 지역에 강제된다. 그것은 기름야자 농공업인데, 콜롬비아 정부는 이 산업이 태평양 연안 지역을 개발시켜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렇게 하려면 대단위의 농지가 필요했다. 이 지역에는 흑인과 원주민 공동체의 집단 토지가 퍼져있었는데, 정부는 사전에 그들과 상의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강제로 이주시켰다. 그들은 돌아오면서 자신들의 땅에 이런 유형의 농작물이 재배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Grupo de Memoria Histórica 2010, 161).”
7) 앞으로 『킬렐레』를 인용할 경우, 괄호 안에 숫자로만 표시한다.
8) 펠리페 베르가라는 보하야의 비극을 그리스 비극과 유사하게 만드는 전략을 사용한다. 그가 사용하는 대표적인 비극으로는 에우리피데스의 『헤카베』를 들 수 있다. 『킬렐레』에서 여행자의 아들 폴리도로는 프리아모스와 헤카베의 아들인 폴리도로스와 유사한데, 이 두 비극에서 그는 살해되어 유령으로 나타나 자기 여자 형제의 희생을 요구한다.
9) ‘킬렐레’는 초코 지방에 사는 아프리카계 콜롬비아 사람들이 사용하는 어휘로 스와힐리어이며, 소란과 비명과 탄식, 그리고 울음소리를 뜻하지만, 모임이나 축제에서는 ‘난리’ 혹은 ‘기뻐 날뜀’을 의미하며, 동시에 반란의 목소리를 지칭하기도 한다(Rizk 2010, 51).
10) 카롤리나 가르시아는 살아 있는 친척들이 없는 죽은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서로 만나 그들이 거주했던 여러 장소를 떠돌아다닌다고 말하면서, 살아 있는 사람들이 영혼과 접촉하면 생명력을 상실한다고 지적한다(García Contreras 2012, 265-266).
11) 『킬렐레』는 가해자들의 이름을 통해 사건의 복잡성을 드러낸다. 우선 실화소설처럼 그들의 이름은 이 학살과 직접 관련된 사람들을 가리킨다. 엘메르는 우익민병대 부대의 하나인 엘메르 카르데나스(Elmer Cárdenas)에서 유래하는데, 그 부대 사령관은 ‘독일인’이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노엘리아는 FARC에 소속된 여자 게릴라의 이름에서 나온다(Reyes 2015, 716). 또 마니살바는 당시 초코 지방의 킵도에 주둔하고 있던 정부군 ‘알폰소 마노살바 플로레스(Alfonso Manosalva Flórez)’ 대대와 관련되고, 개 ‘카스타뇨’는 널리 알려진 우익민병대원인 비센테 카스타뇨(Vicente Castaño)와 카를로스 카스타뇨(Carlos Castaño)를 지칭한다(Jaramillo 2016, 107).
12) 이 작품에서도 ‘비밀’이 언급되지만, 그것이 기도 혹은 주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비밀’이 무엇을 언급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13) 정복 이후 라틴아메리카에서 장례식은 기독교 문명에서 비롯되고, 가톨릭 장례식에 바탕을 둔다. 그러나 동시에 원주민이나 흑인들이 사는 지역에서는 아메리카 혹은 아프리카의 오래된 전통과 결합하면서, 종교 혼합주의가 탄생한다. 콜롬비아의 초코지방의 경우, ‘치괄로chigualo’나 ‘알라바오alabao’와 같은 지역 문화가 만들어진다(Reyes 2015, 699). 치괄로는 일곱 살 이하의 어린아이가 죽었을 때 장례를 치르는 의식이다. 알라바오는 죽은 사람을 기리고 그와 작별하는 사람들의 고통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공동체와 그 주민의 역사를 재구성하고, 과거의 흔적을 보존하여 다음 세대들이 과거에서 미래로 가는 길을 만들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14) 하이메 아로차(Jaime Arocha)에 따르면, 장례의식은 역사적으로 서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의 선조들에게, 그리고 아프리카계 카리브해 지역과 태평양 지역에서 매우 중요하다(Arocha 2008, 21).

References

  • Ardila Arrieta, Laura(2010), “Bojayá, Herida que No Cierra”, El Espectador, https://www.elespectador.com/impreso/articuloimpreso201015-bojaya-herida-no-cierra, .
  • Arocha, Jaime(2008), “Velorios y Santos Vivos”, pp.18-55. http//www.museonacional.gov.co/sitio/Velorios_site/pdfs/Catalogo/17_55_final.pdf, .
  • García Contreras, Carolina(2012), “Teatro Híbrido: Representaciones Contemporáneas de Violencia, Muerte y Dignidad en el Teatro Colombiano” en Premio Nacional de Investigación Teatral 2011, Bogotá: Ministerio de Cultura, pp.231-417.
  • Grupo de Memoria Histórica(2010), Bojayá: La Guerra Sin Límites, Bogotá: Ediciones Semana.
  • Henao, Mario F.(2011), “Kilele, una Construcción Mítica de la Guerra en Colombia”, https://razonpublica.com.index.php/cultura/2050-kilele-unaconstruccion-mitica-de-la-guerra-en-colombia.html
  • Henao, Mario F,(2013), “Kilele, una Reconstrucción Mítica de la Violencia en Colombia”, Caminos Educativos, No.2, pp.27-33.
  • Jaramillo, María Mercedes(2016), “Bojayá en el teatro colombiano”, Revista de Estudios Colombianos, No.47(enero-junio), pp.104-111.
  • Leguizamón Sarmiento, Katherine Alexandra(2016), “El Teatro del Conflicto y la Enseñanza de la Historia Reciente”, Tesis, Universidad Pedagógica Nacional.
  • Neira, Armando(2014), “Agonía Sin Fin: 12 Años de la Masacre de Bojayá”, https://www.semana.com/nacion/articulo/masacre-de-bojaya-12-anos-des pues/385639-3, .
  • Noguera Durán, Ana María(2013), “Aportes para la Lectura de la Producción Teatral como un Ejercicio de Memoria Histórica, Estudio de Caso Kilele”, Tesis, Bogotá: Universidad Pedagógica Nacional.
  • Reyes, José Carlos(2015). Teatro y Violencia en dos Siglos de Historia de Colombia, Tomo III, Bogotá: Ministerio de Cultura.
  • Rizk, Beatriz J. (2010), Imaginando un Continente. Tomo II, Lawrence: University of Kansas.
  • Rodríguez Moreno, Laissa M.(2016), “Metáforas de Fracticidio en Escena”, Dissertation, Madison: University of Wisconsin.
  • Romero Rey, Sandro(2009), “Kilele, Fiesta y Rebelión”, in Luchando contra el Olvido, pp.267-269.
  • Sotelo Castro, Luis Carlos(2019), “Enterarse de Viva Voz de las Peores Cosas”, Artilugio, No.5, pp.184-205.
  • Turner, Victor(1982), From Ritual to Theater: The Human Seriousness of Play.
    (빅터 터너(1996), 『제의에서 연극으로』, 서울: 현대미학사).
  • Vergara Lombana, Felipe(2012), Kilele: Una Epopeya Artesanal, Bogotá: Universidad Distrital Francisco José de Cald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