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오순절교회의 정치 참여와 민주주의
초록
최근 라틴아메리카의 우경화 과정에서 보수적인 오순절교회의 정치 참여가 크게 부각되고 있다. 이 글은 브라질 사례를 중심으로, 이러한 정치 참여가 민주주의와 그 발전에 끼치는 영향에 주목한다. 먼저 오순절교회들은 성장과 확산을 통해 가톨릭 중심의 독점적 구도를 무너뜨리고 종교적 다원화에 크게 기여했지만, 자신과 다른 종교나 이념에 대한 배타적이고 공격적 태도를 보인다, 또한 주요한 참여 형태인 공식 후보와 관련하여 지도부의 일방적인 결정에 다수의 신자들은 정치적으로 동원되고, 이렇게 당선된 후보자는 공익보다는 지도부의 지도하에 자신의 교단 또는 교회의 특수한 조합주의적 이해관계에 복무한다. 그리고 국회의원, 주의원 등 공직을 획득하려는 정치 참여의 목적도 그리스도교 왕국 재건이라는 특수한 종교적 이해나 가치의 직접적인 실현에 둠으로써 브라질의 민주주의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Abstract
Recently, in the conservative wave in Latin America, the political participation of the conservative Pentecostal Church has been highlighted. This article analyzes the impact of this political participation on democracy and its development, based on the case of Brazil. First, the Pentecostal churches contributed greatly to religious pluralism, but show an exclusive and aggressive attitude toward other religions and ideologies. Also, in the process of selecting official candidates, most members of the churches are politically mobilized according to the unilateral decisions of the leadership, and these elected candidates serve the specific corporatist interests of their own denomination or church rather than the public interest. In addition, the purpose of political participation to obtain public offices is also a stumbling block to the development of democracy in Brazil by placing it in the direct realization of a specific religious interests or values of the rebuilding of the Christian kingdom.
Keywords:
Brazil, Pentecostal Churches, Political Participation, Conservative Wave, Democracy키워드:
브라질, 오순절교회, 정치참여, 우경화, 민주주의Ⅰ. 서론
최근 들어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나라에서 우파 성향의 정권이 들어서고 있다. 이러한 정치적 우경화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작용하겠지만, 종교적 차원에 초점을 맞추면, 보수적인 오순절교회들의 적극적인 정치적 참여가 이러한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특히 브라질에서 이러한 정치 참여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고, 그에 따라 많은 학자들이 이 현상에 주목하면서, 다양한 연구 성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 연구들은 대부분 오순절교회들의 정치 참여의 역사, 방식, 그리고 성과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전통적으로 이원론적 입장에서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이를 경시 또는 단죄했던 보수적인 개신교들이 왜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되었는지, 이러한 정치적 태도의 변화를 야기한 원인이나 그 내적 논리를 무엇인지 등에 대한 분석이 이뤄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기존의 연구들은 정치와 종교라는 관계적 차원에서 보면, 특히 종교, 구체적으로 오순절교회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시 말하면 보수적인 개신교 부문이 왜, 어떻게 정치에 개입하는지, 특히 선거 과정에 개입해 얼마나 큰 성과(의석 확보나 공직 획득)를 내는지에 주목하는 반면, 그러한 종교적 참여가 정치나 사회에 미치는 영향, 오순절적 정치 행태가 빚어내는 정치적, 사회적 의미나 결과에 대한 연구는 부족한 실정이다.
이러한 정치적, 사회적 영향을 분석하는 소수의 연구자들은 주로 민주주의와 관련해 그 영향이나 의미를 다룬다. 이 연구들을 살펴보면 크게 두 가지 입장으로 나뉜다. 하나는 보수적인 오순절교회들의 정치적 개입이 민주주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다.1) 다른 하나는 이러한 부정적인 평가에 비판적인 입장이다. 그렇다고 딱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기 보다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 자체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다. 다시 말하면 브라질의 정치 문화 또는 정치 행태가 이미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지, 오순절교회들의 정치 참여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2) 이러한 입장에는 오순절을 비롯한 개신교회가 그동안 가톨릭교회의 많은 박해를 받았고, 그리고 이제 비로소 사회적 자긍심을 갖고 자기표현을 시작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포함되어 있다(Alencar 2010년 1월 22일 인터뷰).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몇몇 비판적인 연구자들의 주장처럼, 보수적인 개신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브라질의 우경화가 단순히 정권의 이념적 교체에 그치지 않고, 민주주의 자체에 심각한 위협을 준다면, 이는 보다 더 심도 있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브라질 분석·기획 연구소(Centro Brasileiro de Análise e Planejamento, Cebrap)’의 소장이자 캄피나스대(Unicamp) 철학 교수인, 노브리(Marcos Nobre)는 보우소나루(Bolsonaro) 대통령이 “유일하게 갖고 있는 것은 권위주의적 의지”이고, 그가 첫 번째로 하고자 하는 것은 “1988년 헌법의 민주적 제도들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Silva 2020).
따라서 이 글은 기존의 연구에서 엇갈리는 논의들을 면밀하게 검토하면서, 보수적인 오순절 교회의 정치 참여의 논리나 방식이 브라질 사회의 민주적인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하고자 한다. 민주주의에 주목하는 것은 개념 규정 자체에서부터 여전히 많은 논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대부분의 사회에서 이를 보편적인 규범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사회에서 사회 성원이나 집단은 사회적, 정치적 활동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해야 함을 뜻하고, 따라서 최근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오순절운동의 정치 참여가 민주주의와 그 발전에 미치는 영향을 살피는 것은 의미있다고 할 것이다.
분석을 위해, 기존의 문헌 자료뿐만 아니라. 올해 1월 브라질 현지 조사의 일환으로 실시한 브라질 전문가들과의 면담 내용을 참조할 것이다.3) 또한 최근 보수적인 개신교의 정치 참여를 이끄는 것은 오순절운동 내에서도 이른바 신오순절교회들이나 고전적 오순절교회들 가운데에서도 이 흐름에 가담하는 교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신오순절교회에 중점을 두되, 보수적인 오순절교회들의 정치 참여도 분석에 포함할 것이다.
Ⅱ. 오순절운동과 정치 참여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미국에서 태동한 오순절운동은 1910년 무렵 브라질에 유입된다. 이후 브라질 오순절운동의 전개와 성장 과정은 흔히 세 단계로 나눠 설명하는데, 이러한 단계론은 또한 오순절운동의 유형론과 관련 있다. 1단계는 1910년부터 1950년까지로, 일반적으로 ‘고전적 오순절운동(movimento clássico)’이라고 일컫는다. 이 때 형성된 대표적인 오순절교단으로 ‘브라질기독교협회(Congregação Cristã no Brasil)’, ‘하나님의 성회(Assembleias de Deus)’ 등이 있다. 2단계는 1950년대에 시작되는데, 대표적인 교단으로 ‘그리스도를 위한 브라질(O Brasil para Cristo)’, ‘오순절연합교회(Igreja União Evangélica Pentecostal)’, ‘하나님은 사랑이다(Igreja Pentecostal Deus é Amor)’ 등이 있다. 특히 1960년대 브라질 사회의 가속화된 산업화와 더불어, 오순절운동도 양적으로 급성장하기 시작한다.
이 두 단계에서 전개된 오순절운동은 둘 다 미국에서 유입된 것으로, 그 신학적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에 흔히 하나로 묶어서 ‘고전적 오순절운동’, 또는 ‘전통적 오순절운동’이라 일컫는다.4) 19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는 세 번째 흐름은 일반적으로 ‘신오순절운동(neopentecostalismo)’이라고 불리고, 대표적인 교단으로 ‘세계 하나님 나라 교회(Igreja Universal do Reino de Deus)’, ‘국제 하나님 은총 교회(Igreja Internacional da Graça de Deus)’, ‘그리스도 재생 교회(Renascer em Cristo)’ 등이 있다. 이 세 번째 단계의 오순절운동에 대해 연구자마다 다양한 명칭들을 사용하고 있으나5) 공통적인 점은 이전의 고전적 오순절운동과 신학적 차이를 보이고, 정치 참여에 적극적이라는 점이다.
최근 브라질에서 가장 적극적인 정치적 행보를 보이는 것은 이 신오순절운동이다. 그러나 신오순절운동의 정치적 행보는 고전적 오순절운동 뿐만 아니라, 아프로-브라질 종교나 가톨릭교회에도 영향을 미쳐 이 종교들 역시 이전과 다른 정치적 행보를 시도하고 있다. 그렇다고 모든 오순절교회가 적극적인 정치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비교적 규모가 큰 두 개의 오순절 교단(Congregação Cristã no Brasil-CCB, Deus é Amor), 그리고 교단을 구성하지 않은 독립적인 다양한 오순절교회들이 여전히 비정치적인 태도를 표방하고, 선거 활동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Rivera 2006, 69-70). 또한 오순절교회 가운데에서도 소수이긴 하지만, 대다수의 흐름과 다른 진보적인 정치적 태도를 보이는 집단들도 존재한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적극적인 정치 참여 행태를 보여주는 보수적인 오순절교회들로 논의를 제한한다.
오순절교회의 정치 참여를 논할 때, 연구자들이 흔히 주목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보수적인 개신교들이 전통적으로 선과 악의 이분법적 구도 하에서 정치적으로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정치 참여 자체를 단죄해 왔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왜 이러한 정치적 태도가 - 흔히 적극적인 정치 행태를 보이기 시작한 것으로 간주되는 - 80년대 중반 이후 바뀌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져 보면, 이 교회들이 정치적 무관심이나 거부의 관점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것과 그들이 실제로 보인 정치적 행보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이는 브라질 군사 독재 하에서 오순절 교회들의 행보에서 잘 나타난다. 당시 가톨릭교회와 갈등을 빚었던 군사정권은 1968년 무렵부터 보수적인 개신교들에 눈을 돌려 정치적 지지를 구했고, 이 교회들이 긍정적으로 응답했으며(Pérez Guadalupe 2017, 148), 군사정권 하에서 이 개신교들의 성장세가 두드러졌음도 사실이다.6) 이는 브라질뿐만 아니라 세계 많은 나라들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들을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보수적인 개신교가 갑자기 정치에 뛰어든 것이 아니라, 80년대 중반 이후 이전과는 상대적으로 다른 정치 참여 방식을 채택했다고 보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오순절교회들의 정치 참여를, 특히 이러한 참여에 선도적이었던 신오순절교회들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이 교회들의 정치 참여의 목적은 세상에 새로운 그리스도교 왕국(cristandade)을 세우기 위함이고(Copelli 2014, 6), 이를 위해 특히 ‘영적 전쟁(guerra espiritual)’과 ‘번영의 신학(teologia da prosperidade)’이라는 신학적 관점에 기반을 두고 있다(Mariano 1995; Siepierski 1997; Copelli 2014). 영적 전쟁은 특정 영토를 관장하는 악마들(demônios territoriais)과 그 계승자들이 존재하며, 이들이 특정 지역(áreas geográficas)과 가족에 영향을 미치고, 세계의 모든 악에 책임이 있다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여기서 악마들은 질병, 실업, 가난, 굶주림, 개인적 관계, 결혼 관계, 가족관계의 문제 등 모든 악과 고통을 야기하는 진정한 실체이다. 따라서 정신적 영역에서 이 악마들을 중립화시켜야 물질적 번영을 약속할 수 있다. 오순절교회 신자들이 공직에 진출하려고 하는 것은 악마들이 야기하는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함이다. 즉 국회의원, 주의원, 지자체장 등 공직에 당선된 자들이 이 자리를 매개로 악마의 행위를 중립화시키고, 그런 식으로 나라 전체에 건강과 번영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한다(Siepierski 1997, 54-55).
번영의 신학은 신자들이 의심 없이 청원을 한다면 신이 들어줄 것이라는 전제, 그리고 인간의 정신은 영적 영역을 통제할 수 있고, 이 영적 영역이 물질적 현실을 결정한다는 관점에 바탕을 둔다. 이러한 맥락에서 신자들이 정신을 올바르게 사용(의심 없는 고백)하면, 구원의 혜택(건강과 번영)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신자들이 재정적 번영을 누리려면, 무엇보다도 십일조(dizimos)와 헌금(ofertas)을 바쳐 자신의 믿음을 입증할 필요가 있다. 더 많이 기부할수록 더 많이 받을 것이고, 따라서 십일조의 10 퍼센트를 넘어 기부하도록 요청받는다. 신자가 먼저 지불하면, 신에 대해 채권자(credor)의 위치에 서게 되고, 따라서 신이 같은 방식으로 되돌려주도록 강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Siepierski 1997, 52-53).
이러한 번영의 신학은 영적 전쟁의 기본 도구이다. 만일 지상의 차원(plano terreno)이 천상의 차원(plano celeste)을 반영하고. 십일조와 관련 있는 인간의 정신이 악의 세력과 싸우는 전투에 개입할 수 있다면, 이 신학적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이 모든 신자들의 목적이다(Copelli 2014, 8-9). 이러한 영적 전쟁의 개념은 사실상 모든 복음주의 집단, 특히 오순절집단 사이에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으나, 무엇보다도 신오순절교회의 특징적인 표지라고 할 수 있다(Siepierski 1997, 54).
이처럼 신오순절교회의 정치 참여의 신학적 토대가 되는 영적 전쟁은 나와 적을 명백히 나누고, 나아가 여기에 선과 악이라는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에, 어떤 타협도 없고 그 중간 개념(meio-termo)도 없다. 내 편, 우리 편이 아니면 예외 없이 다 적이고 악마의 편이다. 이러한 관점에 서면 결국 나는, 우리는 항상 옳고 우리가 아닌 사람들은 항상 그르다는 흑백논리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르헨티나 신학자 미게스 보니노(José Míguez Bonino)는 복음주의자들이 정당 정치에 참여할 때 일어날 수 있는 위험 또는 유혹 가운데 하나로 ‘우리는 신자들이기 때문에 부패하지 않는다’는 환상을 지적한다. 영적 전쟁의 관점에서 적과 나를 나누고 나에게 절대적 선의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에, 부패라는 부정적인 가치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러나 미게스 보니노는 복음주의자들도 죄인이고, 따라서 스스로 거룩하다(santo)고 믿는 것은 교만(soberbia)이고, 악마가 어른거리는 문이 될 수 있다고 질타한다(Míguez Bonino 1999, 14). 이러한 환상은 브라질 복음주의 국회의원들이 연루된 각종 부패 스캔들로 그 실체가 드러났다.7)
이러한 영적 전쟁 개념은 신오순절교회가 사회 문제를 바라보고 또 정치 참여를 실행함에 있어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브라질의 신오순절 교회는 민주적이고 다원적인 사회에서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 이념적 차원이든 종교적 차원이든 - 자신과 다른 집단과 소통하고 대화하기보다는, 자신의 절대적인 종교적 신념이나 가치에서 출발하여 종교적, 사회적 신념을 달리하는 집단을 비타협적으로 배척한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다원성이나 1인 1표의 정치적 평등성을 전제로 하는 민주주의적 질서와 갈등을 일으키기 십상이다.
이는 이전 시기, 즉 60-80년대 진보적인 가톨릭교회와 역사적 개신교회들의 정치 참여와 큰 차이를 보인다. 여기서 단순히 진보냐 보수냐 하는 정치적 이념의 차이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에 참여하는 목적이나 방식이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진보적인 기독교들은 기본적으로 그리스도교적 가치에서 출발하여 공동선을 모색하는 차원에서 비판적으로 사회 참여를 하고, 인간을 인간답게 하지 못하는 가난, 불의, 비참 등의 구조와 사회 현실에 개입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억눌린 다양한 사회계층, 특히 민중계층과의 대화를 통해 그들의 인권을 옹호했다. 이에 반해 신오순절교회는 선악을 명백히 가르는 이분법적 구도로 나와 다른 사람들, 특히 종교적,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들을 배척하고, 스스로 선의 대리자로 자처하면서 권력, 즉 공직을 차지함으로써 자신들의 특수한 종교적 가치의 직접적인 실현을 꾀한다.
Ⅲ. 정치참여와 민주주의
보수적인 개신교나 오순절교회들의 정치 참여는 일반적으로 1988년 제헌의회를 기점으로 크게 달라진 것으로 여긴다. 88년 총선에서 32명의 개신교인들이 제헌의원에 당선되었고, 그 중 18명은 오순절교인들 13명은 ‘하나님의 성회(AD)’ 교단이고, 1명은 ‘세계 하나님 나라 교회(IURD)’ 소속이었다(Rivera 2006, 67).8) 이후 총선에서 보수적인 개신교 출신 의원들이 조금씩 증가했고, 2014년 선거에서 연방하원 67명, 주의원 75명이 당선되었다(Lacerda and Brasiliense 2018, 164).
보수적인 개신교인들의 이처럼 활발한 정치 참여가 브라질의 민주주의 발전에 어떤 기여를 하는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민주주의에 주목하는 것은 나라마다 또는 이념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에서 민주주의를 “인간의 사회적 삶의 가장 기초적인 원리”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김영일 2010, 74). 그러나 민주주의는 논자에 따라 다양하게 정의하고 있고, 심지어 서로 모순된 내용으로 민주주의를 정의하기도 한다. 따라서 먼저 어떤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느냐를 밝힐 필요가 있다. 앞서 말한, 보수적인 오순절교회와 민주주의를 다루는 연구자들 사이의 견해 차이도 민주주의에 대한 명확한 정의 없이 이뤄진 것과 관련 있다.
예를 들어 종교사회학자인 프레스톤(Paul Freston)은 오순절운동과 민주주의 관계를 논할 때, 어떤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느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그는 민주주의를 정의하기보다는 민주주의를 이행 단계(군사독재로부터의 민정 이양 단계)와 강화 단계로 나누고 각 단계에 따라 종교별 기여도가 다르다는 논지를 편다. 즉 민주주의 이행 과정에 기여하는 종교가 반드시 민주주의의 강화 과정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예로 아프리카에서 주류교회(Igrejas mainline)가 민주주의의 이행 과정에서 기여했지만, 지속적인 민주주의 문화의 창출에는 오히려 개신교 교파들이 보다 더 효과적이었다고 주장한다(Freston 1999, 330-331). 그러나 이 주장은 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연구를 인용한 것으로 라틴아메리카와 브라질의 상황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나아가 이 글은 민주주의의 서로 다른 단계에서 어느 종교가 더 유익한가에 대한 비교 논의가 아니고, 신오순절교회의 정치 참여가 민주주의라는 기본 질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것이다. 여기서 ‘기본 질서’라고 한 것은 오늘날 민주주의에 대한 다양한 관점의 차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상대적으로 공통적인 이해에 기반을 두려는 것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러한 다양한 이해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민주주의는 근대 이전의 (신분, 종교적 권위 등에 기반을 둔) 소수 집단에 의한 권위주의 체제를 극복하고, 주권재민과 1인 1표의 정치적 평등에 바탕을 두며, 한 사회의 대다수 성원이 참여하는 의사결정방식을 발전시켜 왔다는 점이다. 홍태영은 르포르(Claude Lefort)의 관점을 소개하면서 민주주의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근대 민주주의 사회의 도래로 사회질서의 초월적 근원이라는 (중세적) 생각이 제거되었고 [⋯] 인간질서의 초월적 장소를 대신하여 민주주의는 인민을 권력의 정당성의 기초로 만들었다. [⋯] 다시 말하면, 민주주의적 권력의 장소는 인민주권이라는 표상에 근거한다(홍태영 2016, 14).
따라서 현대 민주주의 사회는 때때로 역사적 과정에서 등장했던 파시즘이나 군사독재와 같은 권위주의체제에 저항하면서 민주주의적 의사결정 방식을 복원하고 공고히 해왔다. 그러나 근대 민주주의는 대중사회의 발전과 함께 대의제 민주주의의 형태로 정착하였고, 이 민주주의 형태는 “국민들의 자기 결정권리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에 반하는 정치의 변질(김영일 2010, 86)”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늘날 참여민주주의의 문제가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버마스가 주장하는 지속적인 토의 과정으로서의 민주주의에 대해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는 체계와 생활세계라는 이차원적 사회관을 토대로 체계에 의한 생활세계의 식민화를 극복하고 체계와 생활세계의 두 차원을 아우르는 입헌민주주의 모델을 정립하여, 궁극적으로 체계와 생활세계의 균형을 통한 사회통합, 나아가 인간해방을 모색하고자 한다. 그러나 입헌민주주의의 규범적 자기이해와 현실정치과정 사이에 괴리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부조화를 극복하기 위한 일반적인 방안으로서 하버마스는 토의정치과정을 하나의 성찰적 학습과정으로 제시한다(박준형 2006, 130).
한편 두셀(Enrique Dussel)은 대의민주주의와 참여민주주의 사이의 이분법을 비판하면서, 대의적 민주주의를, 참여하고 견제하는 민주주의(democracia participativa fiscalizadora)로 완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새로운 참여 제도를 창출해야 하고, 이 참여는 풀뿌리(base)에서 직접적인 권력을 행사하고 대의 구조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이뤄진다고 본다(Dussel 2009).
요약하면 근대 민주주의는 정치적 평등성을 전제하는 주권재민에 기반을 두나, 그 현대적 형태인 대의민주주의가 국민의 자기결정성을 충분히 살리지 못하므로, 지속적인 토의과정에 기반을 두고 다양한 형태의 참여 민주주의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개념이면서 또한 오늘날 완성시켜 나가야 할 기본 과제이기도 하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러한 관점을 전제하면서, 오순절교회를 정치 참여를 그 정치적 관점 또는 태도, 참여 과정, 그리고 참여의 목적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1. 정치적 관점 또는 태도: 다양성과 배타성
민주주의는 적어도 이념적 차원에서 주권재민에 근거한 원리이고, 국민 각자가 1인 1표를 갖는 정치적 평등성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사회구성원들은 각기다양한 이해, 생각과 가치를 갖고 있고, 이러한 다양성은 때로는 갈등과 분쟁을 야기할 수도 있으므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일정한 소통과 민주적 절차를 통해 끊임없이 차이를 조정하고 수렴하여 합의를 이뤄 나갈 필요가 있다.
브라질은 1889년까지 가톨릭교회를 국교로 삼았고, 따라서 다른 종교 전통들은 상대적으로 억압받거나 소외되었다. 그러나 1960, 70년대 들어 오순절운동이 확산되면서부터 가톨릭교회의 오랜 독점적 구도가 흔들리게 된다. 2010년 인구센서스에 따르면, 가톨릭 64.63%, 개신교 22.16%, 아프로-브라질 종교 0.31%이다. 지난 세기 초에 비하면 가톨릭 인구가 크게 줄어든 반면, 개신교의 성장세가 두드러지면서 종교적 다원화가 가속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익히 알다시피 개신교의 이러한 성장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오순절운동이고,9) 따라서 오순절운동은 종교적 차원에서의 다원화를 추동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이는 5세기에 걸친 가톨릭교회의 종교적 독점을 무너뜨리고, 실질적인 종교의 자유를 신장하고, 종교적 사회적 다원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순절운동은 앞서 본 바와 같이, 기본적으로 영적 전쟁과 번영의 신학에 바탕을 둔, 절대화된 기준을 중심으로 이분법적으로 사고하면서, 자신과 다른 종교적 이념을 가진 이들에 대해 비타협적인 적대감과 공격성을 드러내면서, 다원주의적 민주 질서를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움반다와 칸동블레에 대한 후기 오순절운동의 적대성은 법적 문제가 되었다. 1995년 국가수호성녀(padroeira)의 날에 아파레시다 성모(Nossa Senhora Aparecida)의 상에 행한 그 유명한 공격은 가톨릭과의 갈등의 잠재력을 드러냈다(Siepierski 1997, 51-52).
그러나 영적 전쟁은 몇몇 종교를 배척하거나 공격하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사회적, 정치적 차원으로 확장하면서 자신의 종교적, 정치적 신념과 맞지 않는 사회집단이나 성원들을 배제하고 공격하면서 많은 사회 문제와 갈등을 야기한다. 이는 이른바 ‘젠더 이데올로기’, 동성애자 등 사회적 소수자, 심지어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10)에 대한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태도에서 잘 드러난다. 또한 사회가 발전하면서 자연스럽게 제기되는 낙태의 합법화, 게이의 결혼 허용, 안락사(eutanásia), 사형제 폐지, 마약의 자유화 등과 같은 문제들에 대한 정상적인 토의 과정을 난폭하게 가로막는다. 캄푸 무랑(Campo Murao) 시 목사협회 의장인 아르니우두 클럼비(Arnildo Klumb)는 시 교육헌장에 반대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젠더 이데올로기’는 종교적 가치와 가족의 가치에 거스르고 [⋯] 소아성애(小兒性愛, pedofilia)와 근친상간으로 들어가는 문이 될 것이다(Cristina et al. 2016, 64).”
신오순절 교회의 이러한 배타성에는 중간 개념이 없고, 따라서 해당 사안에 대한 정상적이고 민주적인 토론이나 합의가 불가능하다. 이는 사안에 관계된 이들로 하여금 찬성과 반대의 어느 한쪽을 택하도록 강요하고, 선거적 잠재력을 갖는 오순절교회 신자들의 표에 민감한 정치인들의 태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정치인들은 ‘신앙 표’를 의식해 어떤 형태의 종교적 감수성에도 해를 끼치려 하지 않고, 더구나 젠더 문제(enfoque de genero), 동성애 결혼 또는 종교적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다른 어떤 주제로도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분노를 사지 않으려고 한다. 이런 식으로 종교 담론은 사실상 공적 정치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학교 교육 과정에서 종교적 관점에 도전하는 교육부에 반대하는, 종교계의 행진과 압력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단지 “내 아이들에게 개입하지 마라(Con mis hijos no te metas)”11)가 아니라, 더 나아가 “우리들에게 개입하지 마라(Con nosotros no te metas)”고 주장한다(Pérez Guadalupe 2018, 12).
2. 참여 과정 또는 방식: 자발적 참여와 정치적 동원
다원주의적 사회에서 사회구성원들의 다양한 이해, 생각과 가치들이 갈등이나 분쟁으로 치달을 수 있음으로, 민주주의는 이들 사이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일정한 소통과 토론을 통해 차이를 조정하고 수렴하는 절차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더구나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현대 대의민주주의에서 국민의 자기결정성이 변질 또는 왜곡되었음을 전제했을 때, 토의정치의 활성화나 참여민주주의의 확장은 현대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지점이 아닐 수 없다.
흔히 이러한 민주주의와 대립되는 정치 형태로 독재를 이야기한다. 독재의 현대적 유형에는 전체주의적 독재와 권위주의적 독재가 있다.
전체주의는 국민이 정치과정에 열광적으로 관심을 갖고 참여하도록 대중을 동원(mobilization)하지만, 권위주의는 일반 국민이 정치적 무관심자가 되어 정치권력에 묵종하도록 대중에 대한 탈정치화 내지 탈동원(demobilization) 정책을 사용한다. [⋯] 권위주의는 왜 비민주적인가? 그것은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의 근본이 되는 인민의 지배 즉 다수 국민의 정치적 참여를 배제하기 때문이다(김용환 2009, 10-11).
다시 말하면 일정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국민의 자발적인 의사에 반해 조직적으로 동원하거나, 또는 그 반대로 배제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국민 각자가 주권의 담지자로서 자발적이고 동등하게 참여하고 결정하는 것(자기결정성)을 보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교집단은 특수한 종교적 체험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으로, 그 체험 자체가 일상적인 합리성을 뛰어넘는다. 따라서 종교집단의 구성이나 운영도 합리적인 논의나 민주적 참여와 상관없이, 종교적 자질과 직무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곧잘 권위주의적 형태를 띤다.
이러한 권위주의적 조직 형태는 위계화된 성직을 중심으로 오랜 역사적 과정을 거쳐 제도화되어 온 가톨릭교회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스위스의 종교사회학자인 바스티안(Jean-Pierre Bastian)은 라틴아메리카의 오순절운동이 이러한 가톨릭교회의 대중적 전통을 계승해 라틴아메리카화 되었다고 진단한다. 다시 말하면, 19세기에 도입된 개신교가 급진적이고 민주적인, 그리고 개인의 의지를 강조하는 자유주의 정치 문화와 관련 있다면, 현대 대중적 오순절운동은 대중적, 조합주의적 그리고 권위주의적 가톨릭 종교문화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전자[19세기의 개신교]가 성서적, 시민적(cívica), 그리고 합리적 종교라면, 후자[오순절운동]는 언어 편중적(verbalismo), 문맹자 중심적, 그리고 열광적인(efervescente) 종교이다. 전자가 민주적 가치와 실천의 담지자였다면, 후자는 종교적, 사회적 통제권을 갖는 추장(caciques)과 군벌(caudillos)의 모델을 따른다. 현재 대중적 개신교 운동의 영향력은 역사가들이 대부분 그 자유주의적 유산을 포기했다고 할 정도이고, 심지어 권위주의적 정치 프로젝트에 가담하면서, 조합주의적 가치와 관련하여 토착화되었다(Bastian 1995, 34).
이처럼 기본적으로 권위주의적 전통 안에 자리한 신오순절운동은 정치 참여에 있어서도 비민주적이고 권위주의적 형태를 그대로 드러낸다. 이는 무엇보다도 신오순절 교회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가장 적극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는, ‘공식 후보(candidato oficial)’와 관련하여 여실히 드러난다.
공식 후보란 특정 교회 또는 교단 차원에서, 연방하원의원, 주의원, 주지사 등의 공직에 입후보할, 교회 또는 교단 후보를 뽑고 교회 또는 교단 전체 차원에서 당선을 돕는 정치 참여 형태이다.12) 이 공식 후보를 교단의 정책으로 삼는 오순절 교단은 ‘하나님의 성회(AD)’, ‘사중복음교회(IEQ)’, ‘세계 하나님 나라 교회(IURD)’, ‘국제 하나님 은총 교회(IIGD)’, ‘세계 하나님 권능 교회(IMPD)’, 그리고 ’마라나타 교회(Igreja Maranata)’가 있다(Lacerda e Brasiliense 2018, 154-155). 이 교단들은 이 후보들을 다양한 방법(내부 경선, 주교단 지명 등)으로 선임한다(Freston 1999, 335). 그 가운데에서도 이러한 정치 개입의 전형적인 형태를 보여주고 있는(Lacerda 2017, 85), ‘세계 하나님 나라 교회(IURD)’의 사례를 살펴보자.13)
이 교회는 1997년부터 전국적 차원에서 조합주의적 특성을 갖는 이 제도를 채택했다. 공식 후보의 규모를 정하고 이 후보를 선정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먼저 후보 선정에 앞서 신자들을 대상으로 일종의 인구조사(recenseamento)를 시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선거 형태, 정당들의 선거 지수(quociente eleitoral), 그리고 지역 교회들이 인구조사로 파악한 유권자 수 등을 고려하여, 교회 지도부 - 지역 주교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호드리게스 주교(Bispo Rodrigues) - 에서 결정한다, 이러한 결정권은 전적으로 교회 지도자들의 배타적인 특권으로 간주되고, 따라서 대다수 교회 성원들은 이러한 결정 과정에서 배제된다. 이렇게 후보가 선정되면, 교회의 제도적 장치들이 작동한다. 다시 말하면 공식 후보를 홍보하기 위해, 교회의 공식적인 장치들, 예를 들면 예배, 대중 집회, 교회 소유의 매체(TV, 라디오, 신문 등)을 활용한다. 그리고 이러한 교회의 공식적인 지원은 후보의 당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이렇게 당선된 후보는 자신의 임기 동안 주체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고, 특히 종교나 교회와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 교회 지도부의 지시를 따른다(Oro 2003, 100-104).
다시 말하면 국민을 대변하고 공무를 수행할 국회의원 후보나 지자체장 후보를 선정할 때, 어떤 민주적인 토론이나 여론 수렴 과정 없이 소수의 교회 지도부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고, 또한 그렇게 선출된 공직자는 공익을 대변하고 집행하기보다는 자신이 속한 특정 집단의 조합주의적 이해관계에 따라, 더 나아가 이 집단의 지도부의 지시에 따라 공공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한다.
결국 이러한 과정의 어느 단계에서도 민주주의적인 원리나 정신은 찾아볼 수 없고, 대다수의 교회 성원들은 단지 교회 지도부에 의해 정치적으로 동원될 뿐이다(Castro e Mattos 2013). 이에 대해 교회 지도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한다고 해서 신자 대중들이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은 아니라는 반론이 있으나14) 그것은 의사결정 과정의 민주성이나 공익성이라는 본질적인 문제 제기와 관련 없는 주장일 뿐이다.
3. 정치 참여의 목적
보수적인 오순절교회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목적은 앞서 본 바와 같이, 세상에 새로운 그리스도교 왕국(cristandade)을 세우기 위함이고, 이를 위해선 오순절 신자들이 공직을 차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회(AD) 소속 한 목사는 교회 공식 기관지에 쓴 글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오직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자만이 나라의 중요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Copelli 2014, 10).” 이처럼 공직을 차지하려는 이유는 공익을 대변하고 집행하려는 차원이 아니라, 단지 영적 전쟁의 전사로서 공직을 차지하고, 그 공직을 매개로 자신과 다른 집단들 즉, 신오순절의 용어로 말하면 악마들을 중립화, 무력화시켜, 자신들의 종교적 구원의 결실인 건강과 번영을 구가하려는 것이다. 순전히 자신들만의 특수한 종교적 목적을 이루고, 자신들의 교단과 교회의 조합주의적 이해관계를 대변하려는 것이다.
보수적인 오순절교회들이 이처럼 권력에 집착하는 것은 근대 사회에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국가가 중요한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권력을 문제 해결의 수단으로서 중시하는 것(김영일 2010, 93-94)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공직을 차지하는 것, 달리 말하면 권력의 획득을 직접적인 목표로 하는, 보수적인 오순절교회의 정치 참여 목적은 과거 진보적인 역사적 개신교의 정치 참여와도 크게 다르다. 오순절운동의 정치 참여가 직접적으로 ‘정당 정치’의 세계로 향하고 있는 반면, 이전의 역사적 개신교는 “먼저 봉사의 현장에 뛰어들면서, 사회적 주제를 가지고 정치에 참여했다(Pérez Guadalupe 2017, 167).”
오순절 교인들은 역사적 교회들이 선교하는, 윤리적 코드를 구성하는 자중(自重), 겸손, 검소함(austeridad) 또는 가난의 개념과 단절하고, 이 코드를 재정립하여 자신의 담론을 정당화한다. 이 재정립에서, 성스러움과 성서의 재해석을 통해 진리로 향하는 유일한 길을 발견하고, 악과 사탄으로 이끄는 길을 피한다. 이러한 극단적인 담론은 어떤 종교간 대화에도 걸림돌이 된다(Kourliandsky 2019, 142).
이러한 맥락에서 미게스 보니노는 복음주의자들이 정당 정치에 참여할 때 생기는 위험 또는 유혹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교회의 봉사에 정치권력을 활용하려는 유혹을 떨쳐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일부 복음주의 정치인들이 정당 참여를 통해 정치권력에 있어 가톨릭교회를 대체하려고 하지만, “국민의 선을 위해 참여해야지, 교회에 특별한 혜택, 특권 또는 편의를 얻기 위해 참여하면 안 된다(Míguez Bonino 1999, 14).”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행위로 정치를 이해할 때, 권력을 둘러싼 갈등과 대립이 끊이지 않을 것이고, 이는 민주주의의 발전에 결코 긍정적인 기여를 하지 못할 것이다.
권력은 그 특성상 유한한 것이며, 분립할 수 없다. 따라서 [⋯]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행위로 정치를 이해하게 될 때, 모든 사회적 문제와 갈등들은 풀려져야 할 것이 아니라, 권력에 의해 결정되어야 할 것이 되고, 따라서 모든 쟁점마다 권력을 둘러싼 대립과 싸움의 모습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정치·사회적 환경에서 민주주의는 이념으로서 뿐만 아니라 올바른 절차적, 제도적 과정으로서도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게 된다(김영일 2010, 98-99).
4. 브라질 정치 문화의 문제
보수적인 오순절교회의 정치 참여가 브라질 민주주의에 특별한 위협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흔히 그 이유로 브라질의 정치 문화 자체가 비민주적이고 과거 권위주의적 유산이 문젯거리라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페지와 산투스는 “복음주의의 정치 개입은 적어도 현재로서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후퇴시키지도 진보시키지도 않는다(Pedde and Santos 2009, 294).”고 주장한다. 이들은 중미 국가들의 오순절운동을 분석한 스테이헨가(Steigenga)의 연구(2001)를 인용해, 오순절 운동이 권위주의와 관계가 없고 또한 민주주의의 심화에 기여하지도 않는다면서, 종교 교파나 특정한 믿음보다도 정치적 상황이 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동한다고 강조한다(Pedde and Santos 2009, 286).
스테이헨가의 이 연구를 브라질의 상황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나아가 스테이헨가의 주장처럼 정치적 상황 또는 맥락이 중요하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하더라도, 다른 한편으로 종교라는 변수가 갖는 고유한 역할 또한 간과할 수 없다. 달리 말하면 정치적 상황이 달라도 보수적인 오순절운동이 추구하는 가치는 유사한 특성을 보이고 이는 정치 참여에 있어서 독특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예를 들어 브라질, 미국, 한국의 정치 상황이 각기 다르고, 그 정치 문화나 민주주의의 형태가 다르지만, 이들 나라들에서 활동하는, 보수적인 오순절운동은 배타적이고, 자신의 가치를 절대화하면서 다른 종교나 이념을 가진 집단에 대한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 글은 이러한 경향이나 특성이 민주주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려는 것이다.
문제가 되는 브라질의 특수한 정치 문화로는 주로 수직적 특성을 갖는 사회관계를 거론한다. 이는 식민지 시대 때부터 이어져온 브라질 전통적인 질서의 표현으로, 국가와 가톨릭교회라는 두 제도를 중심으로 과두제적이고 개인화된(personalizadas) 권력 집중 형태들이 재생산되고, 이런 식으로 수직적이고 불평등한 사회관계를 구조화하는 충성, 상호성과 종속성의 고리가 만들어지고 지속된다. 이처럼 “위를 향한 카우디이스모(caudillismo)와 아래를 향한 카시키스모(caciquismo)는 라틴아메리카 사회의 특징적인 지배 체제의 두 가지 모델이고 두 가지 표현이다(Bastian 1995, 168).”
그러나 이처럼 브라질의 정치 문화가 문제가 있다고 해서, 신오순절운동의 정치 행태들이 갖고 있는 비민주적이고 부정적인 측면들이 면죄부를 받는 것은 아니다. 문제가 있는 정치 문화는 역사적 과정을 통해 개선되어야 하고, 따라서 구태를 재생산하거나 그것을 개선하는 데 기여하지 못하는 정치 행태들은 사회적으로 비판받거나 지양되어야 하다. 그러나 보수적인 오순절교회들이 절대적 기준 하에 자신들만이 옳고 다른 이들은 그르다는 이분법적 사고에 젖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개선에 이바지하기는커녕 오히려 문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브라질의 정치학자인 페이쇼투(João Paulo Peixoto)는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복음주의자들이라고해서 선과 악을 초월하지는 않는다. 도덕적 가치를 중시하는 엄격한 선교관을 갖고 있을지라도, 또한 인간적 조건 자체에서 비롯되는 다른 측면도 내포하고 있다(Castro and Mattos 2013).”
나아가 문제가 있다고 지적되는 브라질의 전통적인 정치 문화가 오순절운동의 토착화 과정과 긴밀한 연관이 있다는 지적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바스티안은 현대 대중적 오순절운동이 대중적, 조합주의적 그리고 권위주의적 가톨릭 종교문화의 영향을 받았고, 종교적, 사회적 통제권을 갖는 추장(caciques)과 군벌(caudillos)의 모델을 따른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권위주의적 정치 프로젝트에 가담하면서, 조합주의적 가치와 관련하여 토착화되었다는 것이다(Bastian 1995, 34).
Ⅳ. 결론
보수적인 오순절교회는 민주화를 기점으로 연방의원, 주의원이나 지자체장 선거 등을 통해 꾸준히 정치적 영향력을 확장해 왔고, 이제 어느 정당이나 정치인들도 이 교회 부문이 갖고 있는 정치적 잠재력을 쉬이 무시할 수 없다. 이는 이 보수적인 개신교 부문이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에서 출발하여 정치 이슈화한 주제들 - 예를 들면, 이른바 ‘젠더 이데올로기’의 문제 - 에 대한 논쟁을 다수의 정치인들이 피해가려고 하는 경향에서 잘 볼 수 있다.
이처럼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보수적인 오순절교회 부문의 적극적인 정치 행보가 전체로서의 브라질 사회, 더 구체적으로는 현대 사회의 기본적인 정치적 규범 또는 문화로 평가받는 민주주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보수적인 오순절교회는 60년대 이후 지속적인 양적 성장을 통해 가톨릭 중심의 종교적 독점 구조를 무너뜨리고 종교적 다원화를 확장함으로써, 민주주의의 기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다원주의적 질서의 수립에 기여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기여는 신오순절교회가 이른바 ‘영적 전쟁’과 ‘번영신학’에 기반을 두고 전개하는 이원론적 배타성과 공격성으로 크게 반감된다. 이러한 배타성은 종교적 차원을 넘어 사회적, 정치적 사안으로 확장 적용되며, 무엇보다도 이러한 배타성에는 중간 개념이 없고, 따라서 해당 사안에 대한 정상적이고 민주적인 토론이나 합의가 불가능하다는 점은 민주주의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또한 이 교회 부문의 ‘공식 후보’ 모델은 후보의 선정 과정부터 민주적인 토론이나 합의 없이 지도부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고 그에 따라 일반 신자 대중을 정치적으로 동원한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그리고 이렇게 당선된 공직자는 공익을 대변하고 실행하기 보다는 자신이 속한 특수한 교회 부문의 지도자의 지시에 따라 움직일 가능성이 있어 이 또한 민주적 질서에 반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정치 참여의 목적도 자신들의 특수한 종교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공권력을 장악하려는 형태로, 공동선에 입각하여 가난한 자와 사회적 약자들의 편에 섰던, 이전의 진보적인 개신교 교단과 확연히 다르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보수적인 오순절교회의 이러한 정치 행보에 대해 일부 연구자들은 이 교회 부문 자체가 아니라 전통적이고 퇴행적인 브라질 정치 문화 속에서 문제를 찾는다. 그러나 현재의 브라질 정치 문화가 식민지 시대 때부터 지속되어온 퇴행적인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적어도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한 보수적인 오순절교회 부문의 정치 행태에 면죄부를 줄 수 없다.
물론 종교는 정당이나 시민사회단체와 다른 특성을 갖는다. 그러나 일단 정치 과정에 개입하고 더구나 공적인 권력을 차지하고 그 권력을 행사하게 될 때, 자기 종교만의 특수한 성격이나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여느 시민이나 단체와 마찬가지로, 공적인 기능과 역할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Acknowledgments
이 논문은 2019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19S1A5A2A03038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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