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itute of Iberoamerican Studies
[ Article ]
iberoamerica - Vol. 22, No. 2, pp.59-98
ISSN: 1229-9111 (Print)
Print publication date 28 Dec 2020
Received 28 Oct 2020 Revised 30 Nov 2020 Accepted 30 Nov 2020
DOI: https://doi.org/10.19058/iberoamerica.2020.12.22.2.59

라틴아메리카에서 ‘페미니시디오(Feminicidio)’의 정치적 함의

이순주**
**울산대학교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 letilee@ulsan.ac.kr
The Political Implications of ‘Femicide(Feminicidio)’ in Latin America
Lee, Soon-Joo**

초록

이 연구의 목적은 ‘페미사이드’ 또는 ‘페미니시디오’ 개념의 정치성이 라틴아메리카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고찰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우선 ‘페미사이드’와 ‘페미니시디오’의 용어를 둘러싼 논쟁과 개념 정립 과정을 통해 이 용어가 갖는 정치성을 파악하고자 했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2008년 페미사이드 선언을 통해 국가의 책임을 강조하였으며, 페미니시디오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라는 요구가 커지자 각국에서 관련법을 제정하였다. 하지만 법을 이행할 메커니즘의 부족으로 인해 가해자에 대한 조사나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페미니시디오는 오히려 더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최근 들어 #NiUnaMenos를 비롯하여 8M 세계여성의 날 파업, 칠레에서 시작된 퍼포먼스 등이 라틴아메리카를 벗어나 전 세계적으로 공감을 얻으면서 확산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운동은 강력한 결집력을 가지고 각 지역의 상황에 따라 페미니시디오와 다른 의제들을 더해 가면서 젠더평등이 포함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새로운 정치 운동의 하나로 등장하고 있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how the politics of ‘femicide(femicidio)’ or ‘feminicide(feminicidio) is embodied in Latin America. To this end, I tried to grasp the political nature of these terms through the debate over the terms of ‘femicide’ vs ‘feminicidio’ and the process of establishing concepts. In Latin America, the ‘Declaration on Femicide’ in 2008 emphasized the responsibility of the state, and as demands for countermeasures against feminism increased, each country enacted the femicide law. However, due to the lack of mechanisms to implement the law, investigations, or punishments for the perpetrators have not been properly conducted. And femicide is becoming more serious. Recently, #NiUnaMenos, the 8M International Women’s Day strike, and performances started in Chile are spreading out of Latin America, gaining sympathy around the world. Also, these actions are emerging as one of the new political movements that demand a democracy with gender equality, adding different agendas according to the situation of each region, including femicide, with strong cohesion.

Keywords:

Femicide, Feminicidio, Misogyny, Impunity, #NiUnaMenos

키워드:

페미사이드, 페미니시디오, 여성 혐오, 불처벌, #니우나메노스

Ⅰ. 들어가는 말

2015년 9월 유엔총회에서는 ‘세상의 변혁: 2030 지속가능발전 의제(Transforming Our World: The 2030 Agenda for Sustainable Development)’를 결의안으로 채택했다. ‘결의안 서문에는 새천년개발목표(MDGs)가 달성하지 못한 것을 완성하기 위해 모든 사람의 인권 실현과 성 평등, 모든 여성과 소녀의 권익 신장을 추구한다고 명시하였다. 이는 성 평등과 여성권익신장이 국제사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성과가 불충분하여 더 많은 구체적인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특히 ‘2030 지속가능발전 의제’에서 국제사회는 여성의 안전과 생명이 보장받는 안전한 사회를 약속하며 모든 형태의 폭력과 폭력으로 인한 사망을 줄이고(목표 16.1), 여성 및 소녀에 대한 폭력을 제거하고(목표 5.2), 공공장소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목표 11.7) 행동에 착수하기로 하였다(United Nations 2015). 이 또한 전 세계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폭력과 살해를 당하는 상황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반영된 것이다.

세계적으로 여성의 생명과 안전의 문제 중 가장 극단적이고 심각하게 여겨지는 문제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가장 극단적 형태의 폭력인 살해가 행해지고, 여성이라는 이유가 희생의 원인이 되는 ‘페미사이드(femicide)’혹은 ‘페미니시디오(feminicidio)’1)이다.

유엔 라틴아메리카 카리브해 경제위원회(CEPAL, Comisión Económica para América Latina y el Caribe)의 젠더평등감시소(OIG, Observador de Igualdad de Género en América Latina)에 따르면, 이 지역에서 ‘페미니시디오’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2014년에는 적어도 1,678명, 2017년에는 2,795명 그리고 2018년에는 3,529명이 페미니시디오의 희생자로 등록되었다. 이 통계는 국가별로 조금씩 다른 범주와 규정을 적용한 것이며, ‘친밀관계에 의한 여성 살해’를 포함하면 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OIG). 이처럼 이러한 결과는 2014년 14개국, 2017년에는 23개국, 2018년에는 25개국의 통계를 집계한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여도 라틴아메리카의 페미니시디오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중미, 카리브해 그리고 남미 국가들은 전 세계에서 폭력적 죽음을 맞이한 여성의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Small Arms Survey 2016).

여기에 더하여 인류사에서 전례 없는 COVID-19 바이러스 확산의 공포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상황 속에서 라틴아메리카 지역 국가 등에서도 이동 제한이나 격리, 사회적 거리두기가 실시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과 페미니시디오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예를 들어 멕시코에서는 2020년 상반기 동안 매일 발생하는 COVID-19 확진자 수보다 여성에 대한 폭력과 페미니시디오 사건 수가 더 많은 경우가 발생하고 있는데, 이는 새로운 ‘팬데믹(Pandemic)’으로까지 평가되고 있다(Lozano 2020).

페미니시디오 문제는 1993년 이후 멕시코 후아레스 시에서 수백 명이 넘는 여성 피살 사건이 연속적으로 발생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부각되었다. 1997년에 처음으로 후아레스 문제를 지칭하기 위해 시민사회와 학계가 레드포드(Radford)와 러셀(Roussell)이 제시한 ‘페미사이드’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지역 언론은 새롭게 제시된 ‘페미사이드’라는 용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지방정부와 연방정부에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였고, 페미사이드는 후아레스 여성 살해 문제와 동의어로 인식되었다(González Rodríguez 2012, 80-81).

이후 페미사이드 문제는 다른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유사한 상황들에 대한 강력한 문제 제기와 연계되고, 국내외 시민사회의 연대와 국제사회의 공동 대응으로 연결되었으며 최근 들어서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심화되고 있는 ‘여성에 대한 폭력과 페미니시디오’ 문제를 해결하도록 촉구하는 다양한 형태의 시위와 요구들로 확산되고 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요구들이 라틴아메리카 내에서 페미사이드에 관한 특별법의 제정뿐만 아니라 불평등한 젠더관계를 변경할 수 있는 실질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으며, 젠더평등을 포함한 새로운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한 정치성을 띠고 있음에 주목하였다.

이 연구의 목적은 ‘페미사이드’ 또는 ‘페미니시디오’라는 개념의 정치성이 라틴아메리카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고찰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우선 ‘페미사이드’와 ‘페미니시디오’ 용어를 둘러싼 논쟁과 개념 정립 과정을 통해 이 용어가 갖는 정치성을 고찰한다.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페미니시디오의 유형과 현황을 파악하고 최근 등장하고 있는 페미니시디오와 여성 폭력에 대한 반대 운동이 어떠한 정치적 함의를 갖는지 살펴본다.


Ⅱ. 이론적 배경

1. ‘페미사이드’라는 이름붙이기의 정치성

일반적으로 복잡한 사회적 현상이나 문제를 규정하는 일은 특정한 현상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 즉 어떤 명칭을 부여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과 동시에 나타난다. 이름을 부여하는 과정은 무엇을 규정하는 것이며 알려지지 않은 영역에 있던 현상을 알려지는 영역으로 이동시키고 그 특징, 동기, 가치, 습성을 규정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특히 특정한 사회현상에 대하여 이름을 붙이는(naming) 일은 설명하기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하여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러한 단순화를 통해 만들어진 사회적 현상의 이름은 해당 현상의 본질과 진실을 담고 있으며 강한 전파력을 지니는 동시에 사회적 현상을 통해 드러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원인을 파악하고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거나 정치적 해결을 요구하도록 한다. 따라서 사회현상에 대한 이름붙이기는 복잡한 사회문제를 정치 아젠다로 만드는 데 유리한 작용을 한다(Bhatia 2005, 8).

사회현상에 대한 이름붙이기는 지지자들을 모으고 지지자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기능을 가진다. 이름을 부여하면서 선전이 가능해지고, 같은 편과 반대편이 각각의 지지자들을 확보하게 된다. 또한 지지 혹은 반대활동에도 이름과 구호를 부여하면서 행위를 정당화하게 되는 데, 이때도 이름을 통해 경험과 신념, 의도 등이 특징 지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부여된 이름이 설명될 수 있는 실제 본질과의 차이가 나타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이름이 본질을 정확하게 대표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이름이 선택적으로 진실일 수도 있지만, 모든 내용을 포함할 수는 없으며 정치 운동이나 사회운동이 갖는 핵심적 측면을 반영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ibid., 15 재인용).

이러한 경우 언론과 학계는 다양한 관점들을 제시하면서 이름과 함께 내용을 검토하고 정치 사회적 활동들에 대한 정당성을 검증하고 부여하는 작업들을 한다. 이 과정에서 부여된 이름이 수정되거나 의미를 보다 구체화 할 수 있다. 또한 사회가 특정 현상을 두고 갈등을 보이는 상황에서의 이름붙이기는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과 행동에 대한 결정을 하도록 가치를 부여하며, 반대편에 대해서는 불합리, 악의, 탐욕, 무지 등과 연관시켜 관련된 문제와 정치, 사회운동의 도덕적 측면을 강조하게 된다. 따라서 용어의 정치성을 분석하는 데는 이러한 이름을 선전하는 개인이나 그룹, 언론 등의 의도를 분석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한 가지 예로,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16년 5월에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강력 범죄나 살해가 ‘묻지마 범죄’인지, ‘여성 혐오범죄’인지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김민정 2017; 박태우 2016; 최원우 2016; 허민숙 2017). 하지만 결국 사법부에서 이 문제를 ‘묻지마 살인’으로 규정하였고, 여전히 언론 등에서는 여성이 분명한 의도적인 범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사건들에도 ‘여성 혐오범죄’2)라는 용어보다는 ‘묻지마 범죄’로 지칭하고 있다. 이처럼 사회현상에 대한 규정짓기, 혹은 이름붙이기는 같은 사회문제를 어떻게 규정하고 어떠한 이름을 붙이는 지(naming)에 따라 문제의 해결 방법도 달라지므로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나영(2016)은 우리나라에서 ‘여성 혐오(mysogyny)’에 기반한 여성 살해, 즉 ‘여성 혐오살인’을 ‘묻지마 살인’으로 규정하면서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였다. 우선 ‘묻지마 살인’은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여성들이 취약하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여성들에게 무력감과 불안감을 증폭시킬 뿐만 아니라 의존성을 강조하고 강화한다고 보았다. 또한 위험인물과 특수범죄자를 관리하고 사회적으로 분리하고 감금, 통제, 처절 등을 통해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를 만들어 낸다고 하며 여성 혐오에 기반한 살해를 여성 혐오살인이나 페미사이드로 규정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열거하였다. 첫째, 성차별의 일상과 현실에서 다양한 여성 폭력이 발생하는 상황을 비가시화 한다. 둘째, 불평등한 젠더관계와 같은 차별적 구조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원천봉쇄하는 효과를 갖는다. 셋째, 이미 정형화된 젠더역할이나 이데올로기와 차별을 재생산한다. 넷째, 사회적 고립으로 심각한 고통을 받는 이들에 대해 낙인을 강화하는 효과를 지닌다.

이는 2016년 5월에 일어난 강남역 살인사건에 ‘여성 혐오 살인’이나 ‘페미사이드’라는 이름이 부여되었다면 ‘여성 혐오’의 원인을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근원적인 문제 접근이 이루어 질 수 있지만, ‘묻지마 살인’이라는 명칭을 붙임에 따라 문제의 원인 파악이나 해결 방법은 전혀 다르게 이루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2. ‘femicide’ vs ‘feminicidio’ 논쟁

‘페미사이드’는 1974년 러셀(Diana E.H Russell)이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여성 혐오 살인을 증명하면서부터 공식적으로 처음 사용하였다. 그는 페미사이드를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이 여성을 살해하는 것’이라는 의미로 사용했다.3) 러셀은 ‘페미사이드’라는 용어가 갖는 정치적 의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우리는 늘 젠더 중립적인 살인(homicide)을 대체할 용어가 필요했다. 여성을 살해하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를 만들어 여성에 대한 극단적 형태의 폭력을 알도록 하는 중요한 한발을 내디뎠다. 이는 부당함에 이름을 붙이고 이를 생각하는데 의미를 부여하며 부당함에 대항할 움직임을 만드는 것으로 이어진다(Radford and Russell 1992, XIV).”

페미사이드는 ‘여성에 대한 폭력의 가장 극단적 형태,’ ‘여성을 소유로 가정하고 즐거움, 증오, 경멸 등의 동기로 남성이 여성을 죽이는 것,’ ‘남성에 의한 여성 혐오살인’ 이라는 개념으로 발전해 왔으며(ibid. 34), 최근에는 ‘젠더에 바탕을 둔 여성 살해’라는 개념으로 발전되고 있다. ‘페미사이드’라는 용어는 이러한 문제를 가시화하고 구체화하여 사회구성원들이 문제를 보다 명확하게 인식하게 한다. 또한 이 용어를 여성과 페미니스트 단체, 그리고 시민사회가 페미사이드에 대한 정책적인 해결책을 넘어 근원적인 정치, 사회, 문화적 변화를 요구하기 위해 동원화할 수 있는 도구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정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남성의 여성에 대한 폭력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남성의 지배와 여성의 예속으로 정형화된 젠더 권력관계 인식에서 비롯된다. 이는 남성성(masculinity)은 활동적이며 공격적인 특징을 가지고, 여성성(femininity)은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것이 보편적이라고 인식하는 정치 사회 구조 속에서 젠더 관계가 하나의 권력 관계로 구축되기 때문이다(ibid., 6 재인용). 가부장적 젠더 권력 관계가 지배적인 사회에서 페미사이드는 기존의 젠더 권력 관계를 부정하거나 깨려고 하는 경우에 하나의 처벌 자산으로 기능한다. 이는 희생된 여성들의 가족뿐만 아니라 친구들과 사회 내 여성 구성원들에게 영향을 주게 되는데, 성적계급(sexclass)에서 남성의 하위에 있다고 믿는 여성을 통제하고 가부장적인 안정을 유지하는 핵심 수단이 된다. 또한 법정과 언론에서는 여성성과 여성의 행동 기준에 대해 남성의 관점에서 기존의 젠더관계를 유지하는 데 이상적인 구조를 구축하여 여성을 비난하게 된다. 그 결과 여성이 갈 수 있는 지역이나 공공장소에서 해야 하는 행동 방식을 규정하거나 제한하여 결국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서 구축되어 있는 여성과 남성의 공간과 활동 영역을 제한하는 효과를 가져온다(ibid., 7). 따라서 ‘페미사이드’라는 용어는 이러한 차별적 상황을 변경하고 대응하는 데 정치적이고 전략적인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

‘페미사이드’는 라틴아메리카에서 ‘페미니시디오’라는 용어를 통해 보다 더 구체적인 의미를 갖는다. 멕시코의 작가이자 정치인인 마르셀라 라가르데(María Marcela Lagarde y de los Ríos)는 러셀이 영어로 사용한 ‘femicide’를 1994년 라틴아메리카 학계에서 처음으로 ‘femicidio’가 아닌 ‘feminicidio (feminicide)’로 수정 번역하여 사용하였다. 마찬가지로 모나레스(Monárrez 2009, 34-35)도 여성을 의미하는 어근인 ‘fémin(-a)’를 온전히 포함하여 사용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들의 주장은 페미사이드는 모든 여성에 대한 살인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여성이기 때문에 살해당하는 상황을 부각시키려던 본래의 개념이 탈정치화 된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이들은 ‘페미니시디오’라는 용어에서 여성의 의미를 온전히 포함시킴으로서 단순히 여성과 남성살해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젠더기반 살해, 여성에 대한 의도적 살인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왜냐하면 페미니시디오를 사용함으로써 여성에게 가해지는 제도적 폭력이나 페미니시디오와 관련된 사건 처리의 지연 혹은 은폐, 그리고 가해자에 대한 면책 등의 문제를 가시화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Saccomano 2017, 54). 이런 맥락에서 ‘페미니시디오’는 일반적 살해의 개념이 가지는 보편성에서 ‘여성에 대한 의도적인 살해’를 구분해 내고 기존 용어의 잘못된 보편주의를 밝힌다는 점에서 정치적 적절성이 있다(Pinelo 2018, 43)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후 카르데도와 사곳(Carcedo and Sagot 2000)이 이 용어를 중미지역의 사례에 도입할 때 영어를 그대로 번역하여 ‘femicidio’를 그대로 채택하였다. 이를 계기로 라틴아메리카의 학계와 활동가들 사이에서 ‘페미시디오’인가, ‘페미니시디오’ 인가의 논쟁이 격화되고 용어에 대한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4)

2008년 미주국가기구(OAS)가 벨렘 도 파라 협정이행을 위한 제4차 폭력에 관한 전문가회의(MESECVI) 이후 ‘페미사이드 선언(Declaration on Femicide)’을 발간하였다. 이 선언에서는 카리브 지역에서는 ‘페미사이드’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고 라틴아메리카 여러 국가에서 ‘페미시디오’를 사용하고 있는 상황을 반영하여 ‘페미사이드’와 ‘페미니시디오’를 함께 사용하였다. 그리고 페미사이드와 페미니시디오를 ‘여성에 대한 가장 심각한 형태의 차별이자 폭력’으로 정의하였다(OAS 2008, 5). 결국 이러한 논쟁들은 용어사용에 대한 단일한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지만, 젠더중립적인 의미의 ‘살해’로부터 ‘여성 살해’를 분리해냈으며, ‘여성 살해’로부터 일반적인 범죄로 인한 피살과 여성이라는 이유로 범죄의 대상이 되는 ‘페미니시니오’를 분리했다. 즉, 이러한 논쟁을 통해 페미니시디오가 심각한 성차별과 가부장적 지배질서의 결과라는 결론을 도출하게 되었고, 페미니시디오의 유형에 여성과 소녀에 대한 체계적 차별(systemic discrimination)과 평가 절하가 동기가 되는 모든 젠더관련 살인까지 포함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페미사이드’와 ‘페미니시디오’라는 용어는 현실에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하나의 정치 언어적 구심점이 되었다는데 의의가 있다.


Ⅲ. 라틴아메리카의 페미니시디오5) 유형과 현황

1. 유형

국제사회에서 나타나는 페미니시디오의 유형은 2013년 ‘페미사이드에 관한 비엔나 선언’에 잘 나타나 있으며 이는 다음과 같다. 1)친밀한 파트너의 폭력으로 인한 여성 살해, 2)여성에 대한 고문과 학살, 3)‘명예’를 명목으로 여성과 소녀를 살해, 4)무력분쟁상황에서 여성과 소녀를 표적으로 살해, 5)지참금으로 인해 여성과 소녀를 살해, 6)성적지향과 성정체성으로 인한 여성과 소녀 살해, 7)젠더를 이유로 원주민 여성과 소녀를 살해, 8)여자영아살해 및 태아살해, 9)생식기 절단(female genital mutilation)으로 인한 죽음, 10)주술사의 비난으로 인한 죽음, 11)갱, 조직범죄, 마약거래자, 인신매매 및 소규모 무기 확산과 관련된 페미사이드 등으로 분류된다(ACUNS 2013).

WHO(2012)에 따르면, 페미니시디오는 개인, 가족, 공동체, 사회구조의 4가지 수준에서 발생한다고 보았고, 가해의 범주는 1)파트너나 남편, 2)명예살인, 3)지참금, 4)성폭력과 고문 등으로 구분했다. 이러한 페미니시디오의 분류나 가해의 범주는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조금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가족이나 공동체의 ‘명예’나 결혼 지참금, 혹은 ‘할례’로 인한 페미니시디오 유형은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주로 나타나지만 라틴아메리카에서는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라틴아메리카의 다양한 페미니시디오의 유형은 이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한 18개국의 법 규정을 통해 구체화 할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의 페미니시디오 관련법은 ‘페미사이드 선언(OAS 2008)’에서 국가의 책임을 강조한 이후 강화되었다. 이 선언에서는 페미니시디오를 ‘성별을 이유로 여성에게 가해진 폭력적 죽음으로, 가정 단위에서 가족 간에 발생했든 지역사회 내 기타 대인 관계에서 발생했든, 어떤 사람에 의해 발생하거나 또는 가해졌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국가와 그 대리인의 태만과 용인으로 이루어진 행위’로 정의했다. 이 선언에서는 페미니시디오의 증가에 국가와 정부기관에도 분명한 책임이 있음을 명시하였다. 또한 이 선언에서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 해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 가장 심각하다고 밝히면서 페미니시디오로 인한 여성 사망자수가 증가하는 것은 1)높은 폭력발생 비율, 2)사법적 정의의 부재 혹은 접근 제한, 3)여성에 대한 폭력 가해자의 높은 면책률 등이 원인이라고 했다.

페미니시디오를 형법에 명시할 것을 최초로 제안한 국가는 후아레스 시에서 문제가 지속되었던 멕시코였다. 하지만 2007년 4월에 코스타리카가 ‘여성에 대한 폭력처벌에 관한 법(Ley para la Penalización de la Violencia Contra las Mujeres)을 통해 페미니시디오를 최초로 범죄화하였다(Iribarne 2015, 219). 2008년 5월에는 과테말라에서는 특별법으로 페미시디오와 여성에 대한 다른 형태의 폭력 반대 법(Ley Contra el Femicidio y Otras Formas de Violencia Contra la Mujer)을 제정하였고, 엘살바도르는 2010년 11월 여성을 위한 폭력없는 삶을 위한 통합특별법(Ley Especial Integral para una Vida Libre de Violencia para las Mujeres)을 제정하였다. 같은 해 12월에는 칠레, 다음 해인 2011년 12월에는 페루도 형법에 페미니시디오를 구체화하여 포함시켰고, 2017년까지 18개국6)이 페미니시디오에 대한 처벌을 법으로 규정했다.

국가마다 관련법에서 많게는 아홉 가지에서 적게는 한 가지를 페미니시디오로 규정했다. 가장 소극적으로 적용한 국가는 칠레와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여기에서는 친밀관계 파트너와 가족 내 여성에 의한 살인으로만 한정하였다. 반면, 가장 포괄적으로 규정한 국가는 엘살바도르, 파나마, 페루이다. 먼저, 엘살바도르에서는 페미니시디오를 단순 페미니시디오와 가중 처벌을 받는 페미니시디오로 구분하였다. 단순 페미니시디오에는 여성에 대해 폭력을 저지른 후 살해한 경우, 여성의 신체적, 정신적 취약함을 이용하여 여성을 살해한 경우, 성폭력을 당하고 살해된 경우, 살해 전 신체 절단이 있는 경우로 규정하였다. 가중 처벌을 받는 페미니시디오에는 국가 혹은 공공기관의 대리인으로서 활동하는 누구든지, 혹은 국가 공무원이 여성을 살해한 경우, 두 사람 이상이 여성을 살해한 경우, 가족 내 여성을 살해한 경우, 18세 미만의 여성이나 노인여성을 살해한 경우, 신체적 정신적 장애가 있는 여성을 살해한 경우, 가사, 교육, 노동과 관련된 관계, 혹은 우정과 신뢰관계에 있는 사람이 여성을 살해한 경우 등이 포함되어 있다(Asamblea Legislativa-República de El Salvador 2011).

파나마에서는 친밀관계에 있는 여성이나 혹은 가족인 여성에 대한 살해 외에도 종속관계나 예속관계에 있는 여성을 살해한 경우, 자녀가 보는 앞에서 여성을 살해한 경우, 임신한 여성을 살해한 경우, 살해한 여성의 시신을 공공장소에 버려두거나 노출한 경우 그리고 집단의식이나 복수의 결과로서 여성을 살해한 경우도 가중처벌 대상 페미니시디오에 포함하였다(Gaceta Oficial Digital 25-Oct-2013). 페루는 여성의 안전과 복지에 대한 책임이 있는 사람이나 보호자가 여성을 살해한 경우, 인신매매의 목적을 가지고 살해한 경우도 포함하였다(Poder Legislativo de la República 2013).

이처럼 국가마다 차이는 있으나 라틴아메리카에서의 페미니시디오 유형은 다음의 14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혼인관계 혹은 동거관계에 있는 사람이 여성을 살해한 경우, 2)희생자와 가족, 배우자, 동거, 친밀관계, 친구, 동료관계를 형성하려는 시도가 실패했거나 관계 재건에 실패한 후 여성을 살해한 경우, 3)희생자에 대한 반복적이거나 간헐적인 폭력을 행했거나 사전에 폭력행위를 저지른 후 여성을 살해한 경우, 4)어떤 종류의 무기를 사용하거나 사용하지 않는 집단의식의 결과로 여성을 살해한 경우, 5)성적인 본능을 만족시키기 위해 피해자의 몸을 모욕하고 여성을 살해한 경우, 6)목숨을 빼앗기 전후에 굴욕적인 상해나 신체훼손을 가하거나 사체성애(necrophilia) 행위와 함께 여성을 살해한 경우, 7)피해자를 괴롭히거나 박해하고 위협한 여성을 살해한 경우, 8)어떠한 유형이라도 희생자의 성적자유에 반하는 범죄를 저지른 후 여성을 살해한 경우, 9)여성 혐오 살해, 10)희생자의 자녀 앞에서 여성을 살해한 경우, 11)희생자의 신체적 정신적 취약성 혹은 위험한 조건을 이용한 여성을 살해한 경우, 12)불평등한 젠더기반 권력관계에서 나오는 우월성을 이용한 여성을 살해한 경우, 13)공공장소에 여성 희생자의 신체를 전시하거나 노출시킨 경우, 14)임신한 여성을 살해한 경우이다(OHCHR 2014).

<표 1>과 같이 페미니시디오 범죄에 대한 형량도 국가마다 최소 15년에서 종신징역형까지 다양하며, 최근에는 양형 기준을 상향 조정하고 있다. 멕시코에서는 페미니시디오에 대해 2020년 최대 징역 40년이었던 기존 형량을 최소 40년에서 60년으로 늘였다. 또한 미성년자에 대한 성폭행은 기존 1000일에 해당하는 벌금형과 10년 징역형에서 1500일에 해당하는 벌금과 18년 징역형으로 처벌을 강화하였다(Cámara de diputados 2020).

페미니시디오 범죄에 대한 국가별 형량7)

이와 같이 법으로 페미니시디오를 인정하고 처벌 기준을 마련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페미니시디오의 원인이 피해자의 개인적 측면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남성이 가진 지배적, 특권적 지위가 남성으로 하여금 여성에 대하여 폭력과 힘의 사용을 용이하게 하기 때문임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Carcedo 2000, 72). 또, 페미니시디오에 대한 규정이 없다면, 공식 통계에서도 드러나지 않으므로 이에 대한 시민사회나 언론, 학계의 강력한 요구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이에 대응할 정책을 만들어낼 근거를 마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쿠바에서는 페미니시디오에 관한 법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범죄는 국가정보정책에 의해 선정적인 기삿거리로 인식된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 기사화 될 법한 많은 페미니시디오의 사례가 국영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일은 매우 드물다. 그렇기 때문에 쿠바 사회에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사회 역사적 지위에 있는 여성에 대해 폭력이 용인되는 맥락에서 이루어지는 여성살인임에도 공식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이러한 살인은 분명히 페미니시디오로 분류되어야 하지만, 현재 쿠바 사회에서는 사회, 정치, 문화, 법, 경제적 구조가 페미니시디오의 문제를 드러내지 않고 있으며 여성에 대한 폭력을 재생산하고 있다(Baró Sánchez 재인용).

2. 현황

라틴아메리카에서 페미니시디오 현황에 대한 공식 통계가 등록되기 시작한 것은 2014년 정도 부터이다(Pineda 2019). 2014년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UNHCR) 중미지역사무국과 유엔 여성(UN Women)이 공동으로 “젠더를 이유로 한 여성의 폭력적 죽음에 대한 조사에 관한 라틴아메리카 프로토콜 모델 (Modelo de Protocolo Latinoamericano de Investigación de las Muertes Violentas de Mujeres por Razones de Género)”을 제시하면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었다(UNHCR 2014). 이 가이드라인은 각 국가에서 젠더 기반 범죄와 페미니시디오에 대한 법 규정이 없어도 사법시스템, 사건조사 담당자 등과 같은 관련 기관이나 전문가들이 여성이 사망한 사건을 다룰 수 있는 구체적인 도구를 마련했다는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이 보고서에서는 페미니시디오를 가족, 가정 단위 또는 기타 개인의 대인관계, 지역 사회에서 사람이나 국가 혹은 그 대리인의 행동을 통해 가해지거나 태만을 통해 용인되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며, 여성이 사회에서 맞닥뜨리는 위험, 한계, 종속적 지위의 결과로 나타난다고 보았다.

2018년 UN 라틴아메리카 카리브 경제위원회 산하 젠더평등감시소(Observatorio de Igualdad de Género)에 따르면, 라틴아메리카에서 10만 명당 페미니시디오의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는 엘살바도르(6,8), 온두라스(5,1), 볼리비아(2,3), 과테말라(2,0) 그리고 도미니카 공화국(1,9)으로 나타났다. 또한 페미니시디오의 발생 건수로 보면, 브라질과 멕시코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그래프 1> 참조).

<그래프 1>

라틴아메리카 페미니시디오 현황8)

라틴아메리카의 페미니시디오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브라질에서는 2019년 전체 살인율이 2018년에 비해 감소하였지만, 페미니시디오는 오히려 증가하였다. 2015년 형법에 페미니시디오를 가중처벌살해로 분류하였으나 성과가 없었다(Varejão 2020). 2020년 2월 멕시코에서 페미니시디오에 관한 법 개정을 통해 형량을 높인 이유도 페미니시디오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 이에 대한 시민사회의 항의가 거셌기 때문이다. 멕시코에서는 페미니시디오가 최근 5년간 137.5% 증가하고 미성년자에 대한 페미니시디오도 심각하다. 유아권리네트워크(Red por los Derechos de la Infancia, REDIM)에 따르면 2018년 3752명의 여성이 살해당했고 그 중 1463명이 미성년자였다. 이후 2020년 1월부터 6월까지 2240명의 여성이 살해되었는데 그 중 566건이 페미니시디오로 등록되었다. 이는 같은 시기 전년도 대비 3.1%가 증가한 것이며 매일 10.5건의 여성이 살해된 것이다(Infobae.com, 26 Agosto 2020). 2020년에는 첫 1분기 동안 페미니시디오, 미성년자 인신매매, 심각한 상해, 성폭력 등의 여성에 대한 폭력사건은 하루 평균 293건에 달했는데(Lozano 2020), 이는 2020년 2월 27일 멕시코에서 첫 COVID-19 확진자가 나온 이후 4월 30일경까지 발생한 확진자의 매일 평균(282명)보다 많다. 치와와 주에서는 2020년 3월과 4월 사이에 페미니시디오가 65% 증가했다(IRC 2020).

<그림 2>

최근 5년간 멕시코 페미니시디오 발생 건수9)

다음으로 아르헨티나 젠더폭력감시소(Observatorio de las Violencias de Género)에 따르면, 2019년 한 해 동안 327건의 페미니시디오가 발생했고 그 중 300건이 친밀 관계에 있는 가해자에 의해 발생했고 63%가 피해자의 집에서 발생했으며, 27%가 공공장소나 거리에서 발생했다고 밝혔다. 또한 2020년 1월 1일부터 2020년 9월 30일까지는 223건이 발생했다. 아르헨티나에서 COVID-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실시된 것은 3월 20일 부터였는데, 이날부터 9월 30일까지 페미니시디오 발생 건수는 142건이었다. 그 중 65%가 현재 혹은 전 파트너가 저지른 것이었다(Observatorio de las Violencias de Género Ahora si Nos Ven).

페루의 국가인권 옴부즈만(Defensoría del pueblo, 2019)에 따르면, 페미니시디오는 2018년에는 149건, 2019년에는 168건이 발생하였고 2020년에는 1월부터 9월까지 100건으로 등록되었다고 했다. 이 중 153건은 페미니시디오가 시도된 것이며, 45건이 폭력적 죽음으로 분류되었다(Defensoría del pueblo 2020).10)

중미 엘살바도르에서는 여성이 15시간마다 한 명씩 살해된다. 이들은 매우 잔혹하게 살해되며 파트너와 헤어지거나 이혼을 하는 과정이나 심지어 결혼 과정에서도 일어난다(ORMUSA). 또한 엘살바도르에서 나타나는 페미니시디오와 성폭력이 과거에는 가정에서 가족 구성원 간에 주로 발생했다면, 최근에는 갱단과 경찰, 군과 같은 치안 세력에 의해 저질러지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으며, 어리거나 젊은 여성에게서 더 많이 발생하고 있다. 갱단은 젊은 여성들을 ‘갱단의 애인들(Novias de las Pandillas)’라고 부르는데, 엘살바도르 사회에서의 여성의 몸은 내전 기간부터 오늘날까지 갱단의 영역 싸움에서 하나의 ‘영토’로 취급되고 있다(Albaladejo 2016).

이와 같이 라틴아메리카에서 페미니시디오는 법 제정과 형량 상향 조정 등의 조치를 강화해 오고 있음에도 감소하기는 커녕 오히려 증가하고 있으며 더 잔혹해지고 있는 추세를 보인다. 또한 과거에는 친밀관계에 의한 페미니시디오가 주를 이루었다면, 최근에는 유아부터 청소년에 이르기까지 미성년 여성에 대한 페미니시디오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멕시코와 중미 지역에서는 갱단과 연루된 페미니시디오의 증가도 두드러지고 있으며 COVID-19로 인한 팬데믹 상황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과 페미니시디오는 훨씬 더 심각해지고 있다.

3. 페미니시디오의 지속 요인

라틴아메리카에서 페미니시디오에 대응하기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고 강화되고 있지만 아직은 실효성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 원인을 라틴아메리카의 높은 범죄율과 살인율이 때문이라고 보는 견해도 많다. 하지만 에르난데스(Hernández 2019)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범죄율 증가가 높은 지역에서 반드시 페미니시디오 발생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었다.11)

페미니시디오가 증가하는 원인은 다음의 세 가지로 설명될 수 있다(Sabatini & Galindo 2017). 첫째, 페미니시디오에 관한 법이 있지만 제대로 실행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라틴아메리카에서 2018년까지 16개국에서 페미니시디오에 대한 법을 제정하고 발효했지만, ‘페미니시디오’로 판단되어야 하는 조건들이 명확하지 않아 법 이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멕시코의 멕시코 주에서는 여성 살해 사건이 페미니시디오 사건으로 간주되려면 피해자에게 성폭행이나 성적 학대의 이력이 나타나야 한다. 그리고 치와와 주에서는 극단적 폭력에 의한 여성 살해와 페미니시디오를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는다. 또한 니카라과나 칠레에서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가 서로 모르는 사람인 경우에 여성 살해사건은 페미니시디오로 간주하지 않는다. 둘째, 정확한 통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페미니시디오에 대한 공식 통계는 각 국법에 규정된 분류에 따라 산출되는 것이겠지만, 문제는 사건조사자의 해석에 따라 페미니시디오로 분류되지 않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 페미니시디오에 대한 공식 통계는 국가나 지역에 따라 공통된 기준으로 산정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명확한 통계라고 보기 어렵다. 심지어 페미니시디오에 대한 통계를 작성하지 않거나 축소하는 사례도 있다(González Rodríguez 2012; Juárez et.al. 2020). 셋째,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기 때문이다. 즉, 사건을 체계적으로 조사하는 시스템이 미흡하고 조사를 해야 하는 경찰부터 판결을 내리는 판사까지 페미니시디오에 대해 무감각하다. 따라서 사건 신고가 있어도 가해자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거나 지연됨으로써 자동적으로 면책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고 기소된 경우도 실형이 내려지는 비율은 낮다.

가해자에 대한 불처벌이나 면책은 매우 구조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형사 사법 당국에 뇌물을 제공한 정치인들이나 가해자들이 판사를 위협하여 사법시스템을 무력화시키는 경우도 많다(Joseph 2017, 14). 이는 정부와 관료, 사법부의 태만과 부정부패가 페미니시디오가 줄어들지 않는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멕시코 후아레스 시에서는 불처벌과 부정부패로 인한 구조적인 은폐시도가 페미니시디오 희생자의 가족이나 인권운동가, 언론인 등을 살해하는 방식까지 이루어지면서 사회적 공포를 조장하기도 하였으며(González Rodríguez 2012, 71-97), 80%의 페미니시디오 가해자가 처벌을 받지 않았다(Cámara de Diputados 2019).

또한 엘살바도르에서는 2012년 페미니시디오에 대한 특별법을 제정하였으나 페미니시디오의 75%가 기소되지 않았으며(ORMUSA), 콜롬비아에서는 분쟁상황에서 발생한 성폭력과 페미니시디오의 2%만 법정에서 재판을 받았다. 이렇게 라틴아메리카 대부분의 나라에서 가해자에 대해 기소나 처벌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매우 적다(Joseph 14 재인용). 이는 페미니시디오를 예방하고 확인하고 조사하기 위한 정부 메커니즘도 부재하고 희생자에 대해 법률적으로 지원하는 공공부문도 없기 때문에 가해자에 대한 면책을 가능하게 한다(ELLA 2013, 2; Cámara de Diputados 2019).


Ⅳ. 페미니시디오 반대운동 확대

1. 페미니시디오 알리기와 가해자 처벌 요구

라틴아메리카의 성 평등에 관한 국제지표는 꾸준히 향상되고 있다. 1995년 9월 베이징에서 개최된 유엔(UN) 제4차 세계여성회의를 통해 인권으로서의 여성권리가 규정되었고, 12개 분야의 행동강령과 ‘성주류화’(gender mainstreaming) 전략이 공식 채택된 이후 성격차 해소와 성 평등 증진에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또한 라틴아메리카의 사회경제전반의 발전에 따른 UNDP의 주요지표들도 향상되었다. 세계경제포럼(WEF)의 2020년도 성격차지수(Gender Gap Index)12)에 따르면, 파라과이(100위), 벨리세(110위), 과테말라(113위)를 제외한 대부분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100위 안에 있다.13) 그럼에도 라틴아메리카는 여성에 대한 차별의 가장 극단적 표현인 페미니시디오가 매우 심각한 지역이라는 오명을 갖고 있다.

페미니시디오는 가부장적 질서와 마치스모가 만연한 사회에서 기존의 남성에게 종속된 여성의 존재와는 달리, 독립적이고 사회진출이 활발한 여성의 출현으로 인해 가부장적 질서가 위협받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Romero 2014). 따라서 법적 제도가 마련되었음에도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근원적 이유는 젠더간 사회문화적 불평등이 바탕이 되어 있는 직장과 학교, 집과 같은 일상의 다양한 공간과 관계 속에서 이러한 여성이 등장하고 있으며, 이때 페미니시디오는 가부장적 질서를 깨는 여성에 대한 강력한 백래시(backlash)14)의 도구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라틴아메리카의 페미니시디오에 맞선 첫 활동가 인 에스테르 차베스 카노(Esther Chávez Cano)도 후아레스시의 페미니시디오를 이러한 백래시로 보았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가 체결된 이후 이 지역에서 새로 생겨나는 일자리는 미국과 일본기업이 집중 투자한 마낄라도라 산업 조립 공장이 중심을 이루었다. 이 업종에는 손이 작은 젊은 여성이 조립에 적합하여 전국에서 몰려드는 여성들을 고용했지만, 상대적으로 남성들의 고용기회가 적었다. 이러한 상황은 남성 지배가 공고한 사회문화 속에서 여성이 남성의 영역을 점령한 것으로 인식하여 여성에 대한 혐오를 만들었기 때문이다(Wilkinson 2009).

차베스는 1990년대 동안 수백 명의 여성이 겪은 페미니시디오의 문제를 경찰 대신 조사하기 위해 ‘3월 8일 그룹(Grupo 8 de Marzo)’을 결성하고 언론을 통하여 적극적으로 국내외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 그는 후아레스 시에서 페미니시디오의 범인들에 대한 사건 처리가 이루어지지 않고 면책되는 원인이 부패한 경찰과 지역 당국이 북미자유무역협정체결과 함께 급속도로 번성하던 마낄라도라 산업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심지어 은폐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렸다. 그리고 강간과 가정폭력 등에서 살아남은 여성을 돕고 희생자의 정의를 되찾아 주기 위해 그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젠더폭력 피해여성 쉼터인 ‘까사 아미가(Casa Amiga)’를 설립하였다.

또한 차베스는 이러한 범죄에 페미니시디오라는 명칭을 부여하지 않으면, 그와 같은 극단적인 범죄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기 되기 때문에 이를 근절하기 위한 행동을 취할 수가 없다며 페미니시디오의 유형화(tipificación)를 정부에 강력하게 요청했다. 이러한 활동들은 국내외에서 페미니시디오 문제에 대한 인식과 논쟁을 확산시키고 원인과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 기여했다.

한편, 2009년 미주인권위원회(Inter-American Commission on Human Rights)가 ‘면화밭(Campo algodonero)사건’으로 알려진 8명의 피살자 중 3명의 피살자에 대한 사건처리에 근거하여 멕시코 정부의 비효율성과 태만에 따른 책임을 인정하였다.15) 이는 차베스를 비롯한 페미니스트 단체들이 후아레스 시와 멕시코 내 페미니시디오 중단과 해결을 정부에게 강력하게 요청할 수 있는 공식 근거가 될 수 있었다.

콜롬비아의 메데인에서도 범죄, 마약 밀매, 성 차별적 폭력 및 불처벌의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국가와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 Fuerzas Armadas Revolucionarias de Colombia)과 민족해방군(ELN, Ejercito Liberación Nacional) 사이의 전쟁과 대마약 전쟁은 수십 년 동안 여성에게 체계적이고도 보이지 않는 고통과 죽음을 낳았다(이순주 2016, 6-7). 콜롬비아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한 행위자들은 농민여성 혹은 토착 여성을 체계적으로 학대하였고, 여성을 전리품으로 만들었다. 또, 정부 지원으로 오랫동안 활동한 준 군사조직(paramilitares)이 저지른 폭력과 살해는 처벌받지 않았다. 이러한 불처벌은 국가 자체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게 만들었고, 국가보안군이나 게릴라, 그리고 준 군사집단들에게서 피해를 입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피해에 대한 침묵을 유지하는 것을 하나의 암묵적 법칙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1996년 창설된 여성평화노선(Ruta pacífica de las mujeres)이 분쟁지역에서의 페미니시디오에 대해 계속하여 문제를 제기했다. 지속되는 여성에 대한 폭력과 페미니시디오 문제가 로사 엘비라 셀리(Rosa Elvira Cely)16)의 피살을 계기로 전국여성네트워크(Red Nacional de Mujeres), 인민의회여성합류(la Confluencia de Mujeres del Congreso de los Pueblos) 등의 단체와 시민들이 강력하게 항의하였고17) 이들의 요구로 2015년 ‘로사 엘비라 셀리법(Ley de Rosa Elvira Cely)’으로 불리는 페미니시디오법이 만들어졌다(Triana 2017, 65-70).

2. 페미니시디오 반대운동의 확장

이와 같이 여성단체와 페미니스트 단체들은 페미니시디오 문제를 가시화하기 위해 연좌농성, 행진, 공적 개입 등 다양한 방식으로 반대운동을 전개했고, 페미니시디오 문제를 공공 아젠다로 제시하면서 이에 대한 해결책을 요구하는 핵심적 역할을 했다(Juárez Rodríguez 2017). 이러한 라틴아메리카의 페미니시디오 반대운동은 최근 몇 년간 세계적으로 공감을 얻고 확산되어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2015년 아르헨티나에서 시작된 #NiUnaMenos18)운동과 2019년 칠레 산티아고에서 시작된 ‘El violador en tu camino(강간범은 당신이 가는 길에)’라는 제목의 노랫말과 함께 가두에서 퍼포먼스를 펼치는 시위19)이다. 이러한 두 운동은 페미니시디오에 대한 반대를 핵심으로 하고 국내외로 빠르고 강력하게 확산되었다는 면에서 유사하다. 내용 면에서 보면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NiUnaMenos는 페니미시디오에 대한 즉각적 중지와 대응책을 마련하는 데 보다 집중하고 있다. 반면, ‘El violador en tu camino’는 페미니시디오와 여성에 대한 폭력의 책임을 여성개인에게 전가하는 경찰, 대통령, 국가에 대한 책임을 보다 구체적으로 묻고 있다. 또한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문화와 시스템을 묵인하고 유지하려는 모든 개인과 세력을 강간범으로 규정하면서 가부장적 모든 요소에 대한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이러한 #NiUnaMenos운동은 아르헨티나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14세 소녀를 남자친구가 잔혹하게 살해한 사건을 계기로 언론인 마르셀라 오헤다(Marcela Ojeda)가 트윗20)을 올려 정치인, 언론인, 예술가들을 비롯한 사회 각층에서 움직이기를 독려하였다. 그 결과, 2015년 6월 3일, 수천 명의 여성들이 페미니시디오와 여성에 대한 폭력에 반대하는 #NiUnaMenos 시위를 펼쳤다.21) 당시에는 80여개 도시에서 동시에 시위가 벌어졌으며, 2016년에는 여성상원의원들이 #Vivasnosqueremos(우리는살고싶다)라는 해시태그를 만들어 동참하면서 낙태합법화를 주장하고 성소수자에 대한 폭력에 반대하였으며, 구조조정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다중고통을 받는 여성들에 대한 폭력방지대책 수립 등을 요구하였다. 2016년 10월 19일 대규모 여성파업과 시위22)를 통해서도 시민들은 국가가 페미니시디오에 대해 즉각적인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였다. 2016년부터 페미니시디오 반대시위에서 여성단체 뿐만 아니라 당시 여당을 제외한 대부분 정당이 연대하였고, 노동조합, 학생, 언론인 등 다양한 단체와 개인이 참여하였다(Carbajal 2016). 아르헨티나에서 벌어진 강력한 페미니시디오 반대시위는 법안을 만들고 정책을 결정하며, 법을 이행하는 입법, 사법, 행정부에서 여성대표성에 대한 강력한 필요성을 요구하게 되었고, 동수제가 입법화되게 하는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했다(이순주 2019).

#NiUnaMenos 운동은 같은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 라틴아메리카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같은 날 아르헨티나는 138개 지역에서 시위가 벌어졌으며, 칠레에서는 25개 지역, 볼리비아 7개, 멕시코에서는 5개 지역, 온두라스 2개 지역, 그 외 파라과이, 에콰도르, 코스타리카,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등에서 같은 시위가 벌어졌다(Friedman and Tabbush 2016). 이후 #NiUnaMenos는 2017년부터 매년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 파업(8M)과 시위를 통해 페미니시디오와 여성에 대한 폭력철폐, 낙태허용, 가부장제 철폐 등을 요구하며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더욱 파급력을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은 #NiUnaMenos 운동 확산의 연장선상에서 2019년 세계여성폭력철폐의 날(11월 25일)에 시연된 칠레의 ‘El violador en tu camino(강간범은 도처에)23)’가 전 세계 여성들의 공감을 얻으면서 확산되었다. 이 퍼포먼스에서는 공권력과 정치체제, 그리고 가부장제가 페미니시디오와 여성에 대한 폭력의 주범으로 지목했다. 이러한 관점은 페미니스트 예술가 4명으로 구성된 라스테시스(LasTesis)가 아르헨티나 페미니스트 인류학자인 리타 세가토(Rita Segato)의 논문에서 영감을 얻어 퍼포먼스로 만들어졌다.

리타 세가토에 따르면, 가부장제는 여성에 대한 통제, 징계 그리고 억압을 기반으로 하는 원시적 정치 질서이며, 이러한 정치질서는 지구상에서 매우 다양하고 분산된 문화의 내러티브, 종교의 내러티브, 그리고 도덕 내러티브를 통해 유지된다.24) 이러한 맥락이 담긴 퍼포먼스는 라틴아메리카와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되어 남극을 제외한 모든 대륙의 52개 국가에서 367장소에서 진행되었다(Minutaglio 2020). 특히 서로 다른 정치, 사회, 문화적 조건에서 여성들이 받는 페미니시디오와 폭력의 위험을 자신들의 상황에 맞추어 해석할 수 있는 노랫말로 인해 더 파급력과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또한 2020년 라틴아메리카 각 나라에서 실시된 8M파업에서는 다양한 추가적 이슈들이 포함되었다. 콜롬비아에서는 지역공동체나 사회단체의 여성지도자의 노고와 그들에 대한 페미니시디오 중지와 가해자 처벌 문제를 다루었다(Centro Nacional de Memoria Histórica, 2020).25) 우루과이에서는 30개의 단체가 모인 ‘범사회 페미니스트(Intersocial Feminista)’는 “더 많은 페미니즘, 더 나은 민주주의(Más feminismo, mejor democracia)”를, ‘페미니즘 코디네이터(La Coordinadora de Feminismos)’는 “저항의 시대에 우리는 삶을 탈 가부장화합니다(En tiempos de rebeldía, despatriarcalizamos la vida)”를 슬로건으로 선택했다. 그리고 올해 처음으로 아프리카계 여성들로 구성된 ‘8M 반종족주의 블록(Bloque Antirracista 8M)’이 시위에 함께 참여하였다. 다음으로 칠레에서는 2019년 8M의 주요 주제는 마치스모적인 폭력에 대한 투쟁과 바디셰이밍(body shaming)26)에 대해 반대를 했으며, 2020년 주제는 앞서 언급한 “El violador en tu camino”의 확산과 함께 국가테러리즘과 성적 정치폭력, 가부장적, 인종차별주의적 폭력에 대한 반대로 시민불복종과 파업을 동시에 추진하였다(Kienyke.com, 2020).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라틴아메리카의 페미니시디오 반대 운동은 국경과 지역을 넘어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철폐 뿐만 아니라, 가부장제, 국가테러리즘, 인종과 종족차별, 바디셰이밍,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 등 다양한 문제에 대한 지적으로 확대되며 사회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또한 제도적으로는 입법, 사법, 행정에서의 남녀동수제를 통해 모든 결정에서 젠더 평등한 질적 민주주의로 나아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


Ⅴ. 나가면서

이 연구에서는 사회적 현상을 지칭하는 용어로서 등장하는 과정에서 정치성을 가진 ‘페미사이드’가 라틴아메리카에서 어떻게 수용되며, 그 정치성이 어떻게 구현되는가를 고찰해 보고자 하였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페미사이드가 일부 국가에서는 그대로 스페인어로 번역되어 사용되었지만, 어원과 실제 적용에 대한 비판적 논쟁을 통해 멕시코와 여러 국가들에서는 페미니시디오로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논쟁의 과정도 페미니시디오에 대한 학자들과 언론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기여하였다. 이 용어를 통해 여성이기 때문에 살인의 대상이 되는 상황에 대한 이름붙이기를 시도함으로써 일반적인 살인범죄의 범주로부터 젠더를 이유로 죽임을 당하는 사례를 구분해 내고 유형화해 낼 수 있었다. 또한 페미니스트와 여성단체들은 페미니시디오 개념을 통해 추상적인 문제를 현실적으로 구체화 할 수 있는 언어적 도구를 갖게 되었다. 이로써 문제의 근원적인 요인들을 찾기 위한 학술적, 정책적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 질 수 있는 장이 만들어졌으며, 다양한 매체와 언론을 통해 상황과 요구들을 광범위하게 알리고 확산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에 시민사회는 페미니시디오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하고 즉각적인 대책을 마련하라는 요구를 응집할 수 있게 되었다. 라틴아메리카의 페미니스트와 인권단체들은 페미니시디오를 범죄화하고 법 개정을 하도록 입법부와 행정부를 압박하고, 페미니시디오가 발생하는 사회문화적 맥락을 구체화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리고 이 단체들은 페미니시디오에 관한 정보와 통계 그리고 보고서를 발간하고 다양한 캠페인을 실시하여 페미니시디오를 라틴아메리카 역내 국제기구들과 각국 정부의 중요한 공공 아젠다로 만들었다. 그 결과 라틴아메리카의 각국에서는 페미니시디오를 범죄의 범주로 인정하여 페미니시디오 관련법이 제정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라틴아메리카에서의 페미니시디오는 더욱 증가하고 있으며, 그 원인의 파악과 해결책에 대한 요구를 통해 사법적 정의뿐만 아니라 이를 실효성 있게 이행할 수 있는 추가적인 입법과 행정부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페미니시디오에 대한 반대운동은 페미니시디오에 대한 정부의 즉각적인 해결 방법 요구에서 페미니시디오의 원인이 되는 가부장제 철폐, 성차별뿐만 아니라 낙태합법화, 인종차별, 원주민 인권, 부정부패, 공권력의 권력 남용과 태만 등 다양한 이슈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또한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등이 활성화된 네트워크 환경의 변화는 각국의 페미니스트와 여성단체, 그리고 시민사회가 시간과 공간을 넘어 더 빠르게 결집하고 연대하며 동시 동원화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

페미니시디오라는 용어의 정치적 함의는 이 지역에서 뿌리 깊은 마치스모와 가부장제로 인한 성차별에 기반을 둔 여성 살해문제를 가시화하여 이에 대한 반대를 동원화하고 결집시키는 언어적 구심점이 되었고, 궁극적으로 라틴아메리카 사회가 젠더 평등한 사회를 넘어 모든 차별이 제거된 민주주의의 요구의 배경이 되고 있는 데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Acknowledgments

이 논문은 2020년도 울산대학교 교내연구비에 의해 연구되었음.

Notes

1) 영어로 femicide는 스페인어로 femicide이며, 스페인어로 feminicidio는 영어로 feminicide이다. 이 용어의 차이에 대해서는 II장에서 다루었다. 한국에서는 ‘페미사이드’가 더 익숙하지만, 이 글에서는 라틴아메리카를 배경으로 다루고 있으므로 논리의 전개에 따라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 페미니시디오로 사용하고자 한다.
2) 여기서 말하는 ‘여성 혐오범죄’는 ‘페미사이드’ 혹은 ‘페미니시디오’와 유사한 개념으로 사용된다.
3) 러셀에 의하면, ‘페미사이드’라는 용어를 실제로 처음 사용한 사람은 문학가인 캐롤 오를록(Carol Orlock)인데, 페미사이드를 주제로 한 작품을 준비하던 과정에서 해당 용어를 사용했지만, 해당 작품은 출간되지 않았다고 한다.
4) 러셀이 2008년 엘살바도르에서 개최된 페미사이드 관련학회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당시 학회에는 ‘feminicidio’를 사용하는 학자는 초대되지 않았다. 유럽에서도 이 용어를 둘러싼 논쟁은 ‘페미니시디오’의 사용을 확산시켰으며 이탈리아에서는 ‘Femminicidio’ (Network Bibliotecario Sanitario Toscano, 2017)를, 프랑스에서는 ‘féminicides’(http://www.lemonde.fr/feminicides)를 주로 사용한다.
5) Ⅲ장 부터는 본문에서 ‘페미니시디오’만 사용한다. 단, 책 제목이나 법의 명칭 등의 ‘페미시디오’는 그대로 사용한다.
6) 코스타리카(2007), 과테말라(2008), 칠레(2010), 엘살바도르(2011), 멕시코(2012), 니카라과(2012), 아르헨티나(2012), 볼리비아(2013), 온두라스(2013), 파나마(2013), 페루(2013), 도미니카공화국(2014), 에콰도르(2014), 브라질(2015), 콜롬비아(2015), 파라과이(2016), 우루과이(2017)가 페미니시디오에 관한 처벌법을 제정하였다. 베네수엘라(2007)는 페미니시디오를 별도로 구분하지는 않고 전, 현 친밀관계 파트너에 의한 여성 살해를 가중처벌 살인으로 분류했다가 2014년에 법개정(Ley Orgánica por el Derecho de las Mujeres a una vida Libre de Violencia, Gaceta Oficial, número 40548)을 하고 페미니시디오로 분류했다(Maita 2020).
7) Perú 21(20-02-2020); Asamblea Nacional –República Bolivariana de Venezuela(2014)
10) 페루에서 여성실종문제도 심각하다. 2020년 1월부터 9월까지 실종된 여성의 수는 4052명인데, 이중 1158명은 성인여성이고 2894명은 미성년 여성이다.
11) 에르난데스는 멕시코의 각 주별 살인발생과 페미니시디오 발생 통계를 비교하여 두 가지 통계에 유의미한 관계가 없음을 밝히고 있다.
12) 세계경제포럼의 성격차지수(GGI)는 해당국가의 발전정도는 남성과 여성에게 같은 조건으로 전제한 산출방법이다. 경제참여와 기회, 교육성취, 보건과 생존, 정치권한의 4가지 분야의 격차를 수치화 한 것으로 1에 가까울수록 격차가 적다. 국가의 발전정도에 따라 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고 해당 국가에서의 분야별 성격차를 수치화 한다는 면에서 실제 해당 국가의 성별격차를 파악하기에 더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
13) 한국은 0.672점으로 동아시아와 태평양 지역 총 20개국 중 15위, 그리고 세계 순위는 108위이다.
14) ‘백래시’는 사회·정치적 변화로 인해 권력이나 영향력이 축소되는 것에 대한 반발 심리와 그로 인한 집단적 반격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수전 팔루디(Faludi 1991)의 <Backlash>에서 처음으로 미국사회에서 나타나는 페미니즘에 대한 정치, 언론, 대중문화 등 전 분야에서 벌어지는 반격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15) 미주인권위원회는 멕시코 정부가 여성에 대한 폭력방지의 노력이 부족했고, 사건에 대한 적절한 조사를 실시하지 않았으며, 여성들에게 사법시스템에 대한 접근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González Rodríguez 2012,85).
16) 2012년 5월 23일 35세의 평범한 교직원이었던 여성이 보고타 시내 공원에서 잔혹하게 성폭행 당한 후 피살된 사건으로 페미니시디오에 대한 공포와 사회적 공분을 야기한 사건이다.
17) 당시 중심을 이룬 슬로건은 “¡Todas somos una Rosa, Ni una rosa menos!(우리 모두는 로사다! 더 이상 한명의 로사도 안돼!”이다.
18) #NiUnaMenos는 더 이상 한명이라도 안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해시태그는 시인이자 인권활동가였던 수사나 차베스 카스티요(Susana Chávez Castillo)가 1995년 후아레스 시의 페미니시디오에 관해 쓴 시에 나오는 표현인 “Ni una mujer menos, ni una muerta más(더 이상 한명의 여성도, 더 이상 죽는 여성 없이)”에서 따 온 것이다(Trongé 2018).
19) 이 노래는 El violador eres tú(강간범은 당신)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jhGYeKHkbQ(2020.9.2)
20) “우리 목소리를 내야하지 않나요? 우릴 죽이고 있어요(¿No vamos a levantar la voz? Nos están matando)”
21) 이후 매년 6월 3일에 대통령궁 앞 5월 광장(plaza de mayo)에서 시위를 벌여오고 있다.
22) 여성파업은 인민 경제 노동자 연합(CTEP, Confederación de Trabajadorxs de la Economía Popular)이 제안한 방법으로 페미니즘과 경제를 결합시킨 것이다. CTEP는 페미니시디오를 자본주의적, 가부장적, 식민적 폭력의 일부로서 성차별이 극단적으로 실현된 것으로 보았다(Gago 2020).
23) 직역을 하면, ‘당신의 길에 강간범’이지만, 강간범은 당신이 가는 모든 곳에 있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24) 리타 세가토의 BBC 인터뷰. https://www.bbc.com/mundo/noticias-50735010(2020.9.2.).
25) 오랜 무력분쟁과 마약카르텔과 관련된 광업, 농업 기타 개발 등의 문제에서 목소리를 내고 환경보호, 젠더차별반대, 인권옹호 활동 등을 해 오던 여성지도자들이 최근 6년간(2013-2019) 80명이 피살되었는데, 91%가 처벌 받지 않고 있다.
26) 바디 셰이밍이란, 획일화된 신체 기준에서 벗어난 신체를 가진 사람들에 대해 비난하거나 외모를 평가하고 비하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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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프 1>

<그래프 1>
라틴아메리카 페미니시디오 현황8)

<그림 2>

<그림 2>
최근 5년간 멕시코 페미니시디오 발생 건수9)

<표1>

페미니시디오 범죄에 대한 국가별 형량7)

국가명 형량
아르헨티나 종신징역
볼리비아 30년 징역
브라질 12년-30년 징역, 가중요인이 있을 경우 형량의 절반까지 추가
칠레 15년부터 종신형까지
콜롬비아 20년-41년 징역
에콰도르 22년-26년 징역
엘살바도르 20년-35년 징역
온두라스 30년-40년 징역
과테말라 25년-50년 징역
멕시코 40년-60년 징역/ 4,300달러까지 벌금/일부 주에서는 종신형
파나마 25년-30년
페루 최소 15년, 가중요인이 있다면 최소 25년 징역
우루과이 15년-30년 징역
베네수엘라 15년-3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