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와 생태 문제에 대한 라틴아메리카 비판담론의 기여: 생태해방신학과 부엔비비르담론을 중심으로
초록
라틴아메리카 비판사상은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을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한 사상이다. 이 연구의 목적은 라틴아메리카 생태사상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생태해방신학과 부엔비비르담론이 어떤 전망을 가지고 있는지 이해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특별히 강조하는 주제나 생태 이슈는 무엇인지 파악해 보는 것이다. 20세기 후반에 기후 위기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생태해방신학과 부엔비비르담론이 부상했다. 생태해방신학은 사회적 불의와 생태적 불의가 같은 뿌리에서 태동했다고 주장한다. 이 신학은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사회적 불의나 불평등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부엔비비르담론은 채굴주의에 기댄 발전 정책을 비판했다. 왜냐하면 이 정책은 생태 파괴적인 정책이었기 때문이다. 이 두 사상은 남반구, 가난한 사람, 희생자의 시각에서 생태 문제와 사회문제를 결합시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전망이 생태해방신학과 부엔비비르담론이 생태 사상 발전에 기여하는 부분이다.
Abstract
Latin American critical thought is a perspective aimed at understanding and interpreting the reality of Latin America.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comprehend the outlook of two of the most prominent ecological philosophies within Latin America: Eco-liberation theology and Buen Vivir discourse. Furthermore, it seeks to identify the specific themes and ecological issues they emphasize. In the late 20th century, as the climate crisis escalated, both Eco-liberation theology and Buen Vivir discourse gained prominence. Eco-liberation theology asserts that social injustice and ecological injustice share common roots, emphasizing the need to address both to overcome the climate crisis. Buen Vivir discourse criticizes development policies that rely on extractivism because such policies are ecologically destructive. Both of these philosophies share a common perspective of linking ecological and social issues from the viewpoint of the Southern Hemisphere, the underprivileged, and the marginalized. This perspective contributes to the development of ecological thought within Eco-liberation theology and Buen Vivir discourse.
Keywords:
Latin American Critical Thought, Eco-liberation Theology, Buen Vivir Discourse, Climate Crisis, Social Injustice키워드:
라틴아메리카 비판 담론, 생태해방신학, 부엔비비르담론, 기후 위기, 사회적 불의Ⅰ. 들어가며
라틴아메리카의 비판사상은 이 대륙이 처한 현실을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해 비판적 접근을 시도한다. 이때 이 지역의 지적 전통을 강조하고 이 지역의 정체성과 상황을 고려하며 현실 문제를 분석한다. 즉, 시대별로 이슈가 되거나 화두가 되는 주제에 천착해 라틴아메리카식 대안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종속이론, 해방신학, 해방철학, 탈식민이론, 부엔비비르(Buen Vivir)담론 등이 여기에 속한다.1) 유럽에서 태동한 사회주의 사상을 라틴아메리카적 맥락에 맞추어 해석하고 적용한 마리아테기의 사상이 그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이들 비판사상은 유럽이나 북미가 주도하는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분야에서 패권적 위치에 있는 이론들을 비판하며 발전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라틴아메리카의 비판담론은 이 대륙의 주민들과 그 사회의 요구를 읽어내고 그것을 반영해 학문적으로 구체화시킨다. 그렇다면 오늘날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이슈를 구성하거나 화두로 부상한 문제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인류가 공통으로 인식하고 있는 문제와 연관이 있는 기후변화 문제일 것이다. 북극의 빙하가 녹으며 발생하는 해수면 상승, 유럽 최악의 가뭄과 폭염, 호주나 미국의 대규모 산불, 파키스탄의 폭염과 대홍수, 아마존의 열대우림 파괴와 생물종다양성의 급감, 산성비와 바다의 산성화, 미세먼지와 대기오염 등 세계 곳곳에서 연쇄적이며 복합적인 기후 재앙이 발생하고 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우리는 더 빈번히, 그리고 더 큰 규모의 기상 재난을 목도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 기후변화라는 용어보다는 기후 위기라는 용어가 더 일반화되고 있다. 이런 기후 위기는 단순히 자연재해에 머물지 않고 사회적·경제적 위기로 확산하는 양상을 보인다. 최근의 COVID 19 사태는 전염병이 얼마나 무섭고 인류의 일상생활을 앗아갈 수 있는지 잘 보여주었다. 기후변화로 심각한 상황에 직면한 곳은 라틴아메리카와 같은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지역이다.
생태와 환경 관련해서 언급한 라틴아메리카 생태사상은 해방신학에서 분화한 생태해방신학과 수막 카우사이(Sumak Kawsay)에서 발전한 부엔비비르담론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두 사상은 환경과 생태 문제에 있어 어떤 것들을 강조하고 있는가? 이 담론들에는 라틴아메리카만의 색깔과 독창성 혹은 고유한 특징이라고 부를만한 것이 있는가? 이 연구의 시작은 이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따라서 이 연구의 목적은 라틴아메리카 비판담론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생태해방신학과 부엔비비르담론이 어떤 관점에 토대를 두고 있으며, 특별히 강조하는 주제나 생태 이슈는 무엇인지 파악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생태 문제와 관련된 세계적 논의의 장에서 라틴아메리카 비판담론이 어떻게 이 지역만의 독창적 시각과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지 분석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라틴아메리카의 비판담론이 기후 위기와 생태 문제에 앞에서 어떤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는지 드러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2장에서는 라틴아메리카 생태사상의 학문적 성장 배경을 살펴보고, 3장에서는 라틴아메리카 대표적인 생태해방신학의 주요 내용을 파악할 것이다. 4장에서는 부엔비비르담론의 핵심적인 생태 주제들인 파차마마와 자연권, 탈발전적인 담론 내용들을 살펴보고, 5장에서는 라틴아메리카의 생태 사상의 독창성과 의미를 평가해 볼 것이다.
Ⅱ. 라틴아메리카 생태 사상의 역사
1962년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은 과학이란 이름으로 인간이 자연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고발했다. 그녀의 작품 『침묵의 봄』은 인간이 자연을 잘 알고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함을 비판하며 생태계의 취약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자연을 통제한다.”는 말은 생물학과 철학의 네안데르탈 시대에 태어난 오만한 표현으로, 자연이 인간의 편의를 위해 존재한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응용곤충학자들의 사고와 실행 방식을 보면 마치 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간 듯하다. 그렇게 원시적 수준의 과학이 현대적이고 끔찍한 무기로 무장하고 있다는 사실, 곤충을 향해 겨누었다고 생각하는 무기가 사실은 이 지구 전체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크나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카슨 2022, 325).
서구 선진국에서는 환경보호라는 차원에서 생태사상이 발전한 측면이 강하다. 반면 라틴아메리카의 경우 라틴아메리카의 생태사상은 발전 문제와 환경이란 두 축을 중심으로 성장해 왔다. 이 대륙은 언제나 주변부 저발전 상태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카슨이 화학물질의 오남용에 대해 다루며 환경관련 법규의 필요성을 역설할 때, 라틴아메리카는 어떻게 산업화를 이루어 가난과 배고픔, 불평등과 종속에서 벗어날 수 있느냐는 문제에 집중하고 있었다. 선진국이 공장을 가동하면서 발생하는 환경오염과 공해 문제를 고민하는 것과는 결을 달리하는 고민이었다. 우루과이의 좌파 지식인 에두아르도 갈레아노(Eduardo Galeano)는 라틴아메리카의 저발전의 원인이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국제자본주의 체제의 착취 구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것은 자신이 사는 대륙이 서구의 자원 강탈로 인해 유린된 “수탈된 대지”라고 명명한 것에서 잘 알 수 있다. 그는 아메리카의 풍요로움이 결국 자신들의 가난을 초래했음을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우리의 패배는 항상 다른 사람들의 승리를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풍요로움은 항상 다른 나라의 번영을 유지시키기 위해 우리 자신에게는 빈곤을 양산했습니다. [...] 포토시(Potosí), 사카테카스(Zacatecas) 및 오루프레투(Ouro Preto)는 귀금속을 채굴하기 위해 판 구멍 사이로 주저앉았습니다. 칠레 질산염의 운명, 팜파스와 아마존 고무 숲; 브라질 북동부의 사탕수수, 퀘브라초의 아르헨티나 삼림 또는 마라카이보 호수의 특정 석유 마을도 폐허가 되었습니다. 제국주의는 약탈하고 자연이 부여한 풍요로움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 볼 수밖에 없는 것은 고통스럽습니다(Galeano 1997, 3).
1972년 출간된 『성장의 한계』는 환경과 재생 불가능한 천연자원의 제약으로 인류가 바라는 무한한 경제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히 밝혀주었다(도넬라 H. 메도즈 외 2022). ‘인류 위기에 관한 프로젝트’라는 이름이 붙은 이보고서는 라틴아메리카에도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아밀카르 에레라(Amilcar Herrera)와 같은 라틴아메리카 학자들은 인류의 조화로운 발전 문제가 물리적이고 경제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엄격한 의미에서 사회·경제적인 문제이며 발전 모델의 문제라고 진단했다. 즉 환경 문제도 인구 증가와 경제 성장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가난이나 수입의 불평등한 분배 문제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Herrera 1977, 123-125). 폴란드 출신 브라질 경제학자인 사치스(Sachs)는 1974년 “발전 양식과 환경(Ambientes y estilos de desarrollos)”이란 글을 통해 사회적 발전은 환경과의 조화에 달려 있다고 주장하며 ‘생태 발전(Ecodesarrollo)’ 개념을 주장했다. 그는 절대적인 발전 개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각 지역 생태계의 현실에 적응한 발전 형태가 있을 뿐이라는 견해를 밝혔다(Mora 2021, 257). 사치스의 제자인 레프(Leff)도 “생태 발전 프로젝트를 향하여”라는 글에서 라틴아메리카, 즉 글로벌 사우스의 나라들은 각국의 자연조건과 물리적·역사적·사회적 현실에 기초한 발전을 기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Mora 2021, 258).
점증하는 환경 문제의 중요성에 비례해서 라틴아메리카경제위원회(CEPAL)도 1978년부터 환경적 전망에서 새로운 발전 양식과 종속 문제에 대해 성찰하기 시작했다. 이 위원회의 경제 전문가들과 환경 분야 생태전문가들의 연구 모임은 발전과 가난, 그리고 종속 문제를 연결해 생태환경 분야에 새로운 전망을 제공했다. 연구의 성과들은 1980년 『라틴아메리카 발전 양식과 환경(Estilo de desarrollo y medio ambiente en la América Latina)』이란 제목을 붙여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그러나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70년대와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환경운동이 냉전체제 하에서 핵무기가 사용되는 열전에 대한 공포보다 미약하다고 판단했다. 온실가스로 지구 대기권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정도의 문제는 사람들의 관심거리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러브록이 언급한 것처럼 1980년대를 지나면서 생태와 환경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국제 냉전체제가 약화되자 비핵화 운동에 앞장섰던 사람들이 환경운동으로 관심을 이전했기 때문이다(러브록 2004, 11).
198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라틴아메리카에서도 환경 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상가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환경과 관련된 많은 연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저작물은 CLACSO의 하부 조직인 ‘도시와 지역발전 위원회’가 1985년 출간한 『라틴아메리카 자연 재앙과 사회(Desastres naturales y sociedads en América Latina)』이다. 이런 분위기는 라틴아메리카에서 환경과 생태 분야 사상들이 사회경제적 문제들과 연계를 가지고 발전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즉 발전 문제를 생태적 전망에서부터 접근하기 시작했고, 환경 문제와 사회경제적 문제를 분리하지 않고 같은 범주에서 다루는 전통을 발전시킨 것이다.
1987년 이후 멕시코에서도 환경권, 대기오염, 환경, 자원과 같은 주제들을 다루는 전문적인 서적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당시 환경 분야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1987년 『우리 공동의 미래』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국제연합 소속 브룬트란트위원회가 쓴 보고서였다. 이 보고서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개념이 정의 되었다. 이 개념은 환경적, 사회적, 경제적 측면이 모두 고려된 발전개념으로 “미래 세대가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능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현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발전(보프 1996, 30)”을 의미한다. 이후 이 담론은 거의 모든 학문 영역과 국가의 정책 분야에까지 침투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라틴아메리카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라틴아메리카 생태사상들은 ‘지속가능한 발전 담론’에 비판적 견해를 밝히면서 발전했다. 그것은 이 시기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일반화되고 있던 신자유주의 사상과 지속 가능한 발전 담론이 결합하는 양상을 보였기 때문이다. 주로 지속성 개념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이 지속성 개념은 생태보다 경제적 성과를 더 강조하는 양상을 보였을 뿐 아니라 경제 과정에 생태적·사회적 조건을 통합시키는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점을 두고 구이나스는 라틴아메리카의 생태 현실을 볼 때 ‘자연의 식민화’가 지속되고 있다고 판단했다(Mora 2021, 266). 자연을 자원화 혹은 자본화하는 과정이 자연을 환경의 부록의 처지로 전락시킨다고 본 것이다. 즉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지속 가능한 발전이란 개념이 환경 보호보다 경제성장에 더 방점이 찍힌 이론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또한 이 담론은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는 한계를 가진 담론으로 보였다. ‘지속 가능한 발전 담론’에서도 여전히 생산과 환경 사이의 모순이 극복되지 못했다고 본 것이다.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1990년대 들어 라틴아메리카 생태사상 분야에 큰 변화는 두 부분에서 나타났다. 하나는 종교 분야이고 다른 하나는 원주민과 관련된 부분이다. 먼저 가톨릭교회 내부에서 환경 문제와 생태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눈을 뜬 선구자들이 나타났다. 대표적 학자로는 브라질의 해방신학자이자 윤리철학의 대가인 레오나르도 보프이다. 그는 1996년 가톨릭 신학과 생태학적 전망을 결합한 글들을 묶어 『생태학. 지구의 외침, 가난한 자들의 외침(Ecologia. Grito de la tierra, grito de los pobres)』을 출간했다. 이 책은 라틴아메리카 생태학과 인문사회 분야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다른 분야는 이 대륙의 토착 원주민들과 관련된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생태 문제와 관련해서 원주민을 배제하고는 논할 수 없다는 인식이 있다. 모라는 이점을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우리 대륙의 새로운 환경주의 사상은 20세기 말에 부상한 원주민 해방 운동이라는 정치적 사건과 분리해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들은 민족 영토에 대한 문화적 권리를 합법화하기 위해 정치적 공간을 확장해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언어와 관습, 그리고 그들의 존엄과 자치와 관련된 것입니다. 천연자원과 생태환경을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토착민의 권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이곳에서 생겨나고 있습니다(Mora 2021, 263).
칠레 생태학자 로찌는 이 지역 생태 보존 운동의 핵심 세력 중 하나가 원주민일 뿐 아니라 그들의 세계관이 생태 문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전망을 제공한다고 주장했다(Rozzi 2012, 12). 여기에는 간접적으로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나 필리프 데스콜라(Philippe Descola)와 같은 인류학자들이 탐구한 라틴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우주론적 세계관(Cosmovisión)이나 문화 연구도 이바지했다(Leff 2009, 11). 그들의 뒤를 이어 많은 인류학자들이 장기간에 걸친 참여관찰을 통해 원주민들의 세계관이나 자연관을 파악하고 현대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했다. 1990년대 이후 원주민 문화에 토대를 둔 생태 사상과 경제 정책을 연결해 생태적 발전 담론을 전개하는 새로운 경향도 등장했다. 이때부터 점진적으로 환경 문제와 국가 발전 계획들이 밀접하게 연결되기 시작했다. 부엔비비르담론은 이런 시대적 배경에서 부상했다. 특히 에콰도르와 볼리비아를 비롯한 안데스 지역에서 이런 경향은 새롭게 등장한 진보적 좌파 정권과 결합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처럼 라틴아메리카 생태 사상들은 주로 자신이 속한 지역의 학문적 전통이나 토착적 문화에 토대를 둔 생태 담론이라는 특징을 보였다.
Ⅲ. 생태해방신학과 ‘새로운 가난한 자’
레오나르도 보프는 브라질 신학자 가운데 가장 유명할 뿐 아니라 라틴아메리카에서 해방신학을 대표하는 구스타보 구타에레스 만큼 명성이 있는 인물이다. 그의 사상에도 해방신학의 모토인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이 중심 내용을 차지한다. 또한 한때 그가 프란시스코회 소속 수사신부였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가톨릭 생태 사상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아씨시의 성 프란시스코가 이 수도회의 창립자이기 때문에 그의 카리스마나 영성이 그대로 보프의 생태 사상에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하여 그의 생태 사상에는 정치생태학과 사회생태학 이론, 환경에 대한 윤리철학적 시각이 많이 반영되어 있다(Rozzi 2012, 17-18).
1970년대 유럽에서 탄생한 정치생태학은 라틴아메리카 환경 사상 발전에 영향을 끼쳤다. 정치가 자연과 사회관계를 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Blanco-Wells y María Griselda Günther 2019, 7). 기후위기 문제는 직접적으로 환경과 생태 문제이지만 기후 위기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여론 통합, 입법과 제도 개혁 등과 같은 정치 분야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보프도 권력 불평등과 경제 불평등, 환경 악화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는 시각을 견지한다. 아마존이란 지역이 대표적이다. 보프에게는 아마존은 생태문제가 사회문제이고 사회문제가 곧 생태문제이기도 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열대우림인 아마존을 품은 브라질은 주변 환경이나 산업 자체가 생태와 밀접히 연결된 나라이다. 브라질에서는 아마존의 난개발과 생물종들의 소멸 현상이 자주 사회적 이슈가 된다. 보프는 1980년대 중반 이후 본격적으로 자연과 생태 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이것을 사회문제와 연결했다. 이 과정에서 새롭게 생태학의 중요성에 대해 눈을 떴다. 아마존과 거기에 사는 원주민 문제는 브라질 환경 문제의 핵심적인 주제이다. 아마존뿐 아니라 이 지역에 사는 원주민도 개발이란 이름하에 착취당하고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보프는 아마존이 브라질 정부와 군부, 국내 기업, 그리고 소위 다국적 기업들에 의해 어떻게 유린되는지 보면서 생태 문제의 심각성에 눈을 떴다.
아마존은 ‘가이아’가 초록으로 가득한 자신 몸의 풍요로움을 현시하는 곳인 동시에 가장 크게 폭력을 당하며 신음하는 곳이다. 자본주의와 산업 체계의 잔인한 면모를 보고자 한다면, 브라질의 아마존을 방문하면 된다. 아마존은 모든 대죄들(죽을 죄들과 자본의 죄들)이 자행되는 곳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현대성의 정신과 비합리적인 것들의 합리화, 그리고 체제의 선명한 논리로 거대한 규모를 추구하는 실상을 있는 대로 보게 된다. 또한 자본과 생태계 사이의 분명한 모순도 확인할 수 있다(보프 2018, 187).
1970년대 보프의 해방신학은 가난한 사람들과 만나고 그들의 고통을 지켜보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이런 현실이 그리스도교인들에게 분노를 유발한다고 주장했다. 불의한 현실과 그리스도교의 하느님 나라는 함께 존재하기 어려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프는 “가난한 이들의 빈곤에 맞서고 그들의 해방을 지향하면서 이 가난한 이들을 선택하는 것은 해방신학의 핵심을 구성하였고 또 지금도 계속해서 그러하다”고 주장했다(보프 2018, 231). 한마디로 해방신학은 억압과 가난, 불평등에 신음하는 사람들의 절박한 외침을 듣고, 그들의 해방을 성찰하면서 발전했다. 그러다 보프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지구도 가난한 이들처럼 착취당하고 고통받는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하면서 생태문제에 눈을 떴다. 서서히 아마존 문제를 넘어서, 대기오염, 사막화, 산성비, 해수면 상승, 오존층 파괴 등의 기후변화 문제들과 동식물의 멸종과 같은 현실에 대해 신학적·생태학적 성찰을 해야만 할 필요성을 느꼈다. 보프가 보기에 해방신학과 생태학의 만남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보프는 두 학문의 연결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해방신학은 생태적 관심과 관련하여 어디에 서 있는가? 우리는 해방신학이 출현한 최초의 자리가 지금까지 서술해 온 생태적 관심이 형성되고 자라온 자리가 아니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해방신학이 주목한 가장 두드러진 도전적인 현실은 하나의 전체로서 지구에 가해지는 위협이 아니라, 너무 일찍 죽음에 이를 만큼 착취당하고 단죄 당하던 지구의 아들딸들, 가난하고 억압당하는 이들에게 가해지는 위협이었다. 그렇지만 이것은 해방신학의 기본 통찰들이 생태론과 별 관계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해방신학은 생태론과 직접적인 관계를 갖는다. 가난한 이들과 억압당하는 이들이 자연에 속하고, 이들은 객관적으로 생태적 공격을 겪는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보프 2018, 230-231).
보프는 가난한 자들의 울부짖음과 지구의 절규가 같은 차원을 가진다는 것을 깨달은 최초의 신학자이다. 그는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고 착취하면서 발생시키는 사회적 불의와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생태적 불의가 같은 뿌리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인간의 참상이 그의 생태론 성찰의 출발점이었다. 크게 보면 인간도 생태계를 구성하는 일원이기 때문이다.
이 인간 참상이 해방신학이 생태론을 성찰하는 출발점이다. 달리 말하자면, 사회 생태가 그 출발점인데, 해방신학은 인간 존재들, 창조계에서 가장 복잡한 존재들이 서로 관계를 형성해 가는 방식과 인간 존재들이 자연 안에서 다른 존재들과 자신들의 관계를 조직화해 가는 방식에 관심을 갖는다. 현재는 매우 착취적이고 참으로 잔인하게 배타적인 체제 하에서 그러한 관계가 발생하고 있다. 우리는 억눌린 이들과 배제당하는 이들의 울부짖음에 직면해 있다(보프 2018, 240).
보프는 가난한 이들이 사회 내에서 계급적 착취를 당한다면, 지구도 지나친 인간의 탐욕에 의해 착취당한다고 본 것이다(Boff 1996, 11). 보프는 먼저 살아 있는 모든 종들이 위협받기 때문에 지구가 아프다고 하였다. 여기에는 인간뿐 아니라 동물과 식물 등 비인간도 포함된다. 그러나 그를 가장 아프게 한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위협받는 현실이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창조된 자연 만물 가운데 오늘 가장 위협받고 있는 존재들은 가난한 사람들이다. 인류의 79 퍼센트가 거대한 그리고 가난한 남반구에 살고 있다. 10억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절대 가난 상태에서 산다. 53억 명 가운데 30억 명이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다. 6000만 명이 매년 굶어 죽고 있고, 15세 이하 청소년 가운데 1,400만 명이 매년 굶주림 때문에 발생하는 질병으로 죽는다(보프 2018, 21).
보프는 물질문명의 혜택을 누리는 선진국들이 자신들의 발전을 이룩하기 위해 세계의 자연을 착취하고 환경을 오염시켜 오늘날의 기후 위기를 촉발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나라들에 대한 책임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는 미국과 같은 선진국들은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가 설정한 국민총생산의 0.7 퍼센트에도 못 미치는 0.15 퍼센트만 가난한 나라를 위해 할애했다고 비난했다(보프 2018, 21-22). 사실상 기후 위기의 최대의 희생자들은 투발루와 같은 태평양의 도서국들과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의 빈국들이다. 가난한 나라들은 산업화 단계에 이르지 못한 나라들이 대다수이고 탄소 배출 문제에 있어 큰 책임이 없는 나라들이다.
기후변화가 초래한 생태 위기의 현실에서 보프가 깨달은 것은 부자나 선진국이 제시하는 해결책이 모두 근시안적으로 자연보호, 재생에너지 확대, 탄소 절감 등 표면적 문제 해결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질병과 가난, 그리고 수명을 다하지 못하는 죽음을 초래하는 주된 원인이 발전과 소비 패러다임, 그리고 불평등을 고착화시키는 사회나 경제 모델 자체에 있는데도 이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도 않는 현실을 개탄했다. 보프에게 생태 문제와 불평등, 그리고 가난의 문제는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다. 보프의 생태사상의 가장 큰 특징은 대기 오염이나 기후 위기로 인한 재앙을 강조하는 만큼 가난과 불평등 문제의 중요성을 지적한다는 점이다(보프 1996, 21). 그것은 오늘날 글로벌 기후 위기 자체가 가난한 사람들을 최대의 피해자로 만들고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열악한 처지가 환경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레오나르도 보프가 주장하는 생태사상의 특징은 자연과 가난한 사람을 연결시켜 자연을 ‘새로운 가난한 자(nuevo pobre)’로 파악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보프 사상의 독창성을 잘 보여준다. 여기서 말하는 가난한 자와 가난은 단순히 경제적 의미의 빈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착취당하는 타자성의 차원을 강조하는 개념이다. 그리고 이런 측면은 그의 사상이 라틴아메리카의 현실과 해방신학과 같은 이 지역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드러낸다. 해방신학의 논리를 따라 보프는 자연이 억압당하고 착취당하며 타자로 대상화된 측면이 있으므로 자연도 해방되어야 하는 존재로 보았다. 그의 생태사상은 이처럼 해방신학의 논리 구조나 전망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그래서 로찌는 그의 생태관련 사상을 한마디로 ‘생태해방신학(eco-teología de la liberación)’이라고 명명했다(Rozzi 2012, 19).
보프에게 지구는 주체성을 빼앗기고 착취당하는 약자, 혹은 타자로 인식되었다. 동시에 해방신학자로서 보프는 사회적 불의가 가난한 사람을 양산하듯이 생태적 불의가 지구를 병들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조영현 2023, 101). 그는 윤리학자답게 환경정의나 생태정의 문제에 대해 고민한다. 로찌는 이점을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이러한 해방신학의 관점에서 보프는 억압받는 비인간 존재와 함께 가난하고 소외되고 억압받는 인간을 포함하는 환경정의를 향한 환경 윤리의 스펙트럼을 넓힐 것을 촉구합니다. 『지구의 외침, 가난한 자의 외침』에서 보프는 해방신학과 그 사회적, 정치적 관심사를 더 넓은 생태적 영역에 배치합니다. 그는 “최소한의 사회정의 없이는 효과적인 생태 정의를 달성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하나는 다른 하나를 포함합니다.”고 말합니다(Rozzi 2012, 19-20).
보프는 서로 별개일 것 같은 생태 정의와 사회정의를 연결시키는 독창성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사회적 불의와 생태적 불의가 서로 연결된 것이라는 시각을 발전시켰다(조영현 2023, 101). 약탈적 자본주의 하에서 권력을 가진 계급이 그렇지 못한 계급을 착취하듯이 강대국은 약소국을 착취하는데 역사적으로 라틴아메리카에서는 그런 사례를 자주 볼 수 있다고 했다. 유럽인들의 정복사업 이후 이 대륙은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금과 은, 원주민과 흑인 노동력을 오랫동안 착취당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같은 논리에서 현대에는 권력자들, 가진 자들이 미래 세대나 나머지 인류에 대한 고려 없이 인류 공동의 재산인 지구를 약탈한다고 설명한다. 보프는 탐욕과 무제한적 성장 논리의 결과인 소외와 가난을 현대 지배체제의 부산물로 여긴다. 발전은 근대성 신화를 구성하는 중추이자 가장 중요한 재료이기 때문이다(페트렐라 외 2021, 15)
레오나르도 보프는 기후 위기에 대한 책임이 현대의 발전 모델에게 있다고 선언한다. 그는 성장 만능주의 안에 내재된 악마적 측면을 파악하고 경제적 성장만을 강조하는 발전이 참된 발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조영현 2023, 102). 현재 일반화 되어 있는 무한 성장 모델은 노동자 계급에 대한 착취와 저발전 국가들의 천연자원 채굴이나 자연 파괴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경제성장을 표시하는 일부 지표가 상승한다고 해서 발전이 저절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한다. 보프는 현실에서는 경제발전이라는 목표와 논리 아래에서 다른 모든 가치들이 이차적인 것들로 취급당하는 것을 목도했다. 모순적이게도 경제성장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 세계 곳곳에서 다른 중요한 사회적 가치가 희생당한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 보프는 자연을 위협하고 무시하면서 이루어지는 발전이나 다른 중요한 사회적 가치들이 무시당하면서 이루어지는 진보는 진정한 발전이 아니며, 자연과 공생, 공존을 보장하는 발전이 진정한 발전이라는 입장을 천명한다(보프 1996, 28). 자연에 대한 경외나 생명에 대한 존중을 결여한 발전은 생태계의 보존이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조영현 2023, 103).
우리는 더 이상 지배로서 권력, 또는 자연과 사람에 대한 무책임한 탐욕에 기댈 수 없다. 우리는 더 이상 우주의 사물 위에 군림하려고 해서는 안 되고 사물을 위해 사물과 함께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발전은 자연에 반해 이루어져서는 안 되고 자연과 함께 하는 발전이어야 한다. 오늘날 덜 세계화되어야 하는 것은 크게 상처입은 존재들에서 출발해 모든 존재들과 함께 하는 연대성, 모든 형태의 생명 중시, 각 인간의 소명과 우주의 역동성에 대한 응답으로서 참여, 우리가 책임있는 성원으로서 참여하고 있는 자연에 대한 경의이다(보프 1996, 44-45).
보프는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지속 가능한 발전’ 담론이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 문제를 고민한다는 측면에서는 기존의 담론보다 진일보한 측면이 있지만 지속 가능한 발전이 선언이나 수사에 머물고 있으며 경제 성장 중심적 시각을 탈피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현재의 생태 정치학은 명백히 생태적 의식이 제기한 근본 문제의 관점에서 발전 개념을 재고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항상 지역 생태계에 적절한 발전(그 예로, 아마존 생태계에 적절한 고무 채취 활동을 시도한 Chico Mendes를 들 수 있다),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발전 등을 입안하고 실천하려고 한다. 그러나 아직은 공식 문서들에 나타나는, 지속 가능한 발전에 대한 지배적인 비유에 머물고 있다(1987년 유엔의 Brundtland 위원회는 “미래 세대의 필요 충족 가능성을 위태롭게 함이 없이 현재의 필요에 부응하는 발전”을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고 정의했다). 이 생태 정치학의 입장에서 보면 비록 생태적 무질서를 야기할지라도 결정적으로 중요한 발전이다. 발전과 생태계 사이에 갈등이 나타날 때, 일반적으로 생태계에 미치는 해를 감수하면서 발전의 입장에서 결정을 내린다. 자본주의적 탐욕과 자연보호는 서로 화해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보프 1996, 30-31).
보프는 위의 인용 글에서 암시한 것처럼 자본주의 경제 용어인 발전과 생태학적 용어인 ‘지속 가능성’이 서로 양립하지 못하고 모순을 안고 있다고 본다(조영현 2023, 103). 그는 현 체제 안에서 ‘지속 가능성’이라는 바람은 단순히 미사여구나 환상일 뿐이라고 평가절하 한다(보프 2018, 149). 지속 가능한 발전이란 용어는 마치 경제적으로 효율적이고 생태적으로 지속 가능하며, 사회적으로 공평한 발전이 가능한 것처럼 주장한다. 그러나 이 담론의 본질은 세르주 라튜슈(Serge Latouche)가 지적한 것처럼 지속경제성장이고, 경제 성장만큼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선언일 뿐이다(2014, 62). 보프가 보기에 인류는 지난 30년간 발전 양식에 묶여 있었다. 60년대에는 ‘인간 발전’, 70년대에는 ‘대안적 발전’, 80년대에는 ‘생태 발전’, 90년대에는 ‘지속 가능한 발전’이 화두가 되었다. 따라서 보프는 인류는 발전이라는 강박에서 탈식민화해야 하며 발전의 패러다임에서 빠져나와야 한다고 주장한다(보프 2018, 275-276).
지속 가능한 발전 담론의 문제는 서구 경제성장모델을 바꾸지 않으면서, 그리고 생태 위기 극복을 위한 그 어떤 특단의 조치도 취하지 않으면서 마치 현실에서 성장과 환경의 조화가 가능한 것처럼 선전한다는 점이다. 인류는 단순히 “지속 가능한” 이란 형용사 하나를 발명해 놓고 마치 생태위기가 해결될 것처럼 착각에 빠져있다고 볼 수 있다(라투슈, 2014, 64-67). 보프가 보기에 이 담론은 오히려 생태 위기 앞에 있는 인류의 긴박한 위험을 가리고 기후 위기에 대한 각국의 정부나 시민사회운동 단체의 대응력을 약화시키는 마약이나 진통제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브라질의 생태신학자인 보프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모두 서구 근대정신에서 발원한 체제이고, 산업화와 경제 성장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같은 사상적 토대위에 서있다고 본다. 그러나 생태적 측면에서는 자본주의를 더 위험하다고 본다. 자본 축적에의 욕망과 이윤 추구의 논리는 기업에게 자원 낭비 문제를 도외시 한 채 상품의 확대 재생산에 집중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보프는 이런 자본주의 하에서 자연이 더욱 고문을 당하고 있고, 과학 기술에 의해 체계적으로 약탈당하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인간 스스로 공멸을 촉진시키는 발전을 이끄는 극단적인 자본주의 체제의 조건들로부터 자연을 구해내고 해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Boff 2006, 74-76).
레오나르도 보프는 약탈적이고 탐욕스런 자본주의와 함께 생태위기를 파생시킨 주범으로 서구 근대성에 토대를 둔 인간중심주의를 지적한다.
‘인간중심주의’는 인간 존재에 대한 이처럼 오만한 해석에서 비롯된다. 성경 본문은 명확하게 이렇게 진술한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창세 1, 28). 이 본문들은 한계 없는 인구 성장과 제약 없는 ‘땅의 지배’를 명확히 요청한다. [...] 창조계 안에서 하느님이 받으실 영광을 노래하는 시편 8장도 성경의 철저한 인간중심주의를 이어 간다. “주 저희의 주님 [...] (인간을) 신들보다 조금만 못하게 만드시고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셨습니다. 당신 손의 작품들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아래 두셨습니다. 저 모든 양 떼와 소 떼 들짐승들하며 하늘의 새들과 바다의 물고기들 물속 길을 다니는 것들입니다”(시편 8, 6-8)(보프 2018, 173).
이 구절에 대한 잘못된 해석은 인간이 창조물들에 대해 신에 버금가는 지배 권한을 받은 것으로 여기도록 만들었다. 그리스도교가 서구 사상의 근본적 토대라는 점에서 이런 이념은 매우 반생태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이 구절을 근거로 지구를 지배하고 착취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자 섭리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보프는 그리스도교가 세계에 대한 야만적 정복과 지배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제공한 측면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며 자연을 대상화하거나 악마화하는 오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시에 인간이 자연의 일부이고, 생태계의 일원으로 다른 생명들과 공존해야 하는 존재라는 점을 강조한다.
Ⅳ. 부엔비비르담론과 불평등 문제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부엔비비르는 라틴아메리카 생태담론이자 국가정책프로그램이며 학계 뿐 아니라 정치무대에서도 논쟁을 야기한 담론이다. 에콰도르 라파엘 코레아 정부와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진보정부가 이 담론을 수용하여 다양한 국가개혁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세계적 관심거리로 부상했다. 최근 20년간 라틴아메리카, 유럽, 북미의 유명 대학과 싱크 탱크를 중심으로 이 담론이 토론되었고, 관련 연구도 폭증했다. 2015년 브뤼셀에서 기후 변화와 관련된 유럽연합과 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해 국가공동체(CELAC)간 대화에서도 이 담론이 언급되었다. 최근 기후 변화에 대한 대응과 평등한 사회구현, 그리고 발전 개념과 복지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다.
부엔비비르라는 용어는 ‘충만한 삶’을 의미하는 케추아어 수막 카우사이(Sumak Kawsay)에서 유래했다. 수막 카우사이는 아마존과 안데스 원주민들의 우주론적 세계관(Cosmovision)을 반영한 아마존과 안데스 지역의 삶의 방식이자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수막 카우사이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공존과 공생을 위한 삶의 방식이자 패러다임”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조영현/김달관 2012, 135). 한마디로 수막 카우사이는 인간이 지향해야 하는 궁극적인 행복이 무엇이며 어떻게 도달할 수 있는가를 생각한다는 점에서 안데스 철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 지역 토착 세계관을 보여주는 수막 카우사이는 원주민들의 공동체적 삶의 양태와 관계론적 존재론에 기초해 있다. 원주민들의 집단적 특징, 혹은 공동체적 삶의 특징은 서구의 개인주의적이고 반자연적 근대 비전과는 완전히 다른 논리 위에 서있다. 라틴아메리카 전통 사회는 아이유(ayllu)나 꼬무나(comuna), 밍가(minga)라고 불리는 사회 체제나 노동 체계가 보여주듯이 공동체적 특징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런 공동체적 특징은 조셉 에스터만(Josef Estermann)이 언급한 ‘관계론적 존재론’에 근거한다. 이것은 모든 것이 서로 유대를 맺고 있고, 상호 연결되어 있다는 관계성의 원리가 공동체적 삶의 양태를 파생시켰다는 것이다(1998, 111-115). 여기서 공동체는 인간들만의 공동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생물과 무생물, 자연, 지구 모두를 포함한 것이다. 즉, 오늘날의 생태계 전체를 상정한 말이다.
에콰도르에서 부엔비비르담론이 등장하게 된 데에는 원주민들의 열악한 현실, 악화하는 불평등 상황, 그리고 무비판적으로 수용해왔던 서구 발전모델에 대한 비판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라틴아메리카에는 4500만 명의 원주민들이 거주하고 있고, 이는 전체 인구의 10%를 차지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원주민들은 현재까지도 가난 속에서 허덕이며 열악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런 체계는 정복과 식민화 과정을 거치면서 불평등 체제가 고착화되었다. 라틴아메리카는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이 만연한 대륙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사회적으로는 백인을 정점으로 인종을 서열화한 위계 구조가 불평등 체제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원주민과 흑인에 대한 노동력 착취, 그리고 기본적인 생산수단인 토지에서 원주민과 흑인을 배제시킨 수탈적 구조는 인종들 사이의 불평등을 고착화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런 식민적 유산은 결국 국가의 부를 약탈하도록 도왔고, 원주민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야만이라고 치부했으며 문화적 측면에서도 열등감에 찌들어 살도록 만들었다.
라틴아메리카는 자본주의 세계체제 내에서 아프리카와 함께 천연자원과 원자재 공급처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석유나 광산물 뿐 아니라 농산물과 같은 1차 산품을 가공하지 않고 그대로 기술 공업 중심 국가나, 선진국에 공급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한 예로 에콰도르의 경우 1970년대 이후 다국적기업을 중심으로 아마존 지역에서 석유가 개발되기 시작했는데 채굴주의에 기초한 산업화 정책은 원주민 공동체와 주변 생태계를 파괴하는 치명적 결과를 초래했다. 이런 발전모델은 한정적인 자원으로 인해 지속가능하지도 않고, 삶의 질도 개선시킬 수 없는 것이었다. 대다수의 가치 있는 천연자원들은 원주민들이 거주하는 산악지대나 정속 속에 매장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원주민들은 분배 과정에서 소외되었다. 오히려 소수의 엘리트층이나 부패한 정치가들이 채굴주의의 결실을 나누어가졌다. 서구에서 이식된 발전주의 이론과 다양한 모델을 서둘러 적용했지만 라틴아메리카라는 몸에는 맞지 않는 옷이었다. 라틴아메리카 현실에 맞지 않는 발전 모델은 결과적으로 가난을 확대시켰고,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풍요의 저주(Malidción de la abundancia)’나 ‘지대국가(Estado rentista)’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풍부한 원자재의 존재 여부가 사회의 발전을 보장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경제적 이익 부분은 대부분 선진국으로 이전되고 환경 파괴나 오염이 이 지역에 남는 결과가 되었다.
단일경작시스템도 생태계나 환경에 부담을 많이 주는 경작법 중 하나이다. 세계에는 단일 경작 시스템에 의존한 나라들은 많다. 땅콩에 의존한 세네갈, 코코아에 의존한 가나, 황마의 방글라데시, 목재의 라오스, 바닐라에 의존한 마다가스카르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나라들의 위험은 전적으로 이런 단일작물에 극적 변화가 생길 때이다. 바나나의 경우 곰팡이에 의해 생긴 파나마병은 그로 미셸 바나나를 전멸시켰다. 그로 미셸이 시장에서 사라진 현재 세계에는 1000여종의 바나나 종자가 있으나 캐번디시 바나나가 95%를 차지한다.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최적의 종자가 선택되고 단일 경작이 이루어진다. 그 결과 제한적 유전자 풀로 인해 바나나는 유전적 다양성을 잃고 질병에 대응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또한 거대한 면적에 단일작물만 경작했을 때 생기는 생태학적 균형의 파괴도 문제가 심각하다. 비료, 살충제 등 화학약품으로 인한 환경오염, 토양의 지력 상실, 병충해가 발생했을 때 일어나는 급속한 확산을 저지할 수 없다. 이런 경작 형태는 기후 변화로 인한 피해가 발생했을 때도 취약하다. 곡물 등 식량 수입과 가격 상승을 초래하고 가격 불안정을 야기하는 문제도 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에콰도르, 과테말라, 온두라스, 코스타리카의 국가 경제는 바나나와 같은 단일 작물과 일부 광산물에 의존하고 있으며 정치적 갈등과 사회적 불안정, 갈등으로 심각한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박선미와 김희순은 이런 바나나공화국 내 불평등 문제를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실업률이 높고 빈부격차가 극심해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빈곤선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과테말라는 상위 10퍼센트가 전체 소득의 절반 정도를 벌어들이고 있으며, 전 국민의 약 60퍼센트가 빈곤층에 속한다. 농촌에서는 경제적 상황이 더욱 열악해 농촌 인구 5명 중 4명이 굶주리고 있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글을 읽지 못하며 의무교육제도도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박선미/김희순 2015, 161).
1차 산품 수출에 의존한 경제 시스템과 산업 모델은 일부 기업농과 대지주들의 배를 살찌울 수는 있지만 환경을 보호하지도, 불평등을 개선시키지도 못하는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비판적인 지식인, 원주민, 다양한 시민사회 세력들이 국제 NGO 단체들과 연대해서 상황을 바꿔보려고 저항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들어 원주민들의 권리 회복 투쟁이 전 대륙을 뒤덮었다. 특히 중미와 안데스 쪽에서 인종적 정체성에 토대를 둔 사회운동이 바람을 이끌었다. 원주민들은 정부가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정책과 채굴주의 정책을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저항세력들은 생태계 보호를 위해 대안적 발전모델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막 카우사이, 자연권, 상호문화성, 다민족국가, 집단권, 탈식민적 정책들을 제안하면서 부엔비비르담론을 전면에 내세웠다.
2009년 에콰도르 제헌헌법에는 이런 시민사회 연대와 원주민운동 등의 영향으로 부엔비비르담론의 핵심 내용인 자연권, 다민족국가, 부족민들의 집단적 권리, 상호문화성, 자치권 등이 포함되게 되었다. 부엔비비르담론은 국내의 불평등 현실을 개선하고 삶의 질을 높여 일부 기득권층을 위한 정책이 아닌 국민 전체가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안데스 지역에서 자연권은 인간 중심적인 근대적 자연관을 극복하기 위한 토대에서 출발했고, 인간과 자연 사이의 공존을 지향하던 원주민 사유에서 발전한 것이었다. 원주민은 자연을 대상으로 보지 않고, 본질적 권리를 가진 주체로 인식했다. 볼리비아의 대통령인 에보 모랄레스에 의해 2012년 공포된 ‘어머니 지구 법(La Ley de Madre Tierra)’ 4조는 공익의 집단적 주체로서 어머니 지구의 권리를 명시했고, 이 지구의 생명 체계, 즉 생태계는 상품이 아니라 선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원주민에게 자연은 파차마마(Pachamama)였고, 이는 대지의 신이며, 세계이자, 지구 차체를 의미하는 존재였다. 인간을 포함해 모든 생명을 부양하는 어머니로서의 자연을 표상했다. 따라서 서구의 자연처럼 대상화되거나 일개 자원과 같은 물질로 환원될 수 없는 성스러운 것이었다. 이것은 1970년대 초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이 지구는 살아 있는 존재이며 유기체라고 주장한 것과 유사한 논리이다. 그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대지의 신인 가이아의 이름을 차용한 ‘가이아 이론’을 발전시켰다. 그는 지구를 하나의 복합적 실체로 파악했다.
우리는 가이아를 지구의 생물권(biosphere), 대기권(atmosphere), 대양(ocean), 그리고 토양(soil)까지를 포함하는 하나의 복합적인 실체(complex entity)로 정의하기 시작했다. 가이아는 이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을 위하여 스스로 적당한 물리 화학적 환경을 조성할 수 있도록 피드백 장치나 사이버네틱 시스템을 구성하고 있는 거대한 종합체라고 할 수 있다. 능동적 조절에 의한 비교적 균일한 상태를 유지라는 것은 ‘항상성(homeostasis)’이란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러브록 2004, 51-52).
그에 따르면 지구는 단순히 주위 환경에 적응하는 소극적 존재가 아니라 생존과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지구의 물리적, 화학적 환경을 변화시키는 적극적 존재인 것이다. 모든 생물과 비생물에게 지구는 단순히 서식처 이상의 의미를 가진 하나의 유기적 생명공동체이자 한 몸인 것이다.
수막 카우사이 개념은 2008년 에콰도르 제헌헌법과 2009년 볼리비아의 신헌법의 정신을 관통하는 핵심 이념이자 원리이다. 동시에 현대의 다양한 생태사상이나 발전담론과 결합하면서 국가의 경제, 사회정책으로 발전했다. 왜냐하면 아마존과 안데스 지역의 문제인 생물종다양성의 상실, 채굴주의, 지구온난화로 인한 재앙의 증가 등에 대한 해결책의 일환으로 제시되었기 때문이다.
파블로 다발로스(Pablo Davalos)는 이 담론이 기후 위기를 극복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고, 근대 정신에 토대를 두고 수립된 산업문명을 생태문명으로 전환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의 문명 담론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런 전환을 추동하는 것은 라틴아메리카 원주민들의 고대 비전과 우주관에 내포된 원리들인데, 그것들의 핵심 내용들은 원주민들의 공동체적 삶의 양태와 관계적 존재론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원주민들의 수막 카우사이는 근대 이전의 인식론이고 세계관이라는 점에서 근대정신이나 근대성 담론에 대한 대항담론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Davalos 2019년 7월 27일 인터뷰).
부엔비비르담론은 자연에 대항한 인간의 약탈적 산업모델과 물질 재화의 축적과 확산을 발전이나 복지로 보는 시각에 반대한다(조영현 2022, 321). 이 담론은 자연이 허락하는 한에서만 진정한 성장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발전의 강박과 소비의 중독에서 벗어나는 것을 강조하기에 세르쥬 라투슈가 언급한 탈성장 담론과도 유사한 측면이 있다. 이런 맥락에서 2008년 제헌의회 의장으로 활동했던 알베르토 아코스타는 부엔비비르담론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우선적으로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현재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이 미래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경제가 성장할수록 더 많은 오염이 발생하고 환경문제는 더욱 심각해져 지속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는 것입니다. 경제가 더 성장할수록 부자와 빈자의 차이 그 간극도 더 벌어지게 됩니다. 경제가 더 성장한다고 더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더 많은 돈과 부, 경제적 복지수준을 갖춘 나라들이 있지만 거기 사는 주민들이 다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경제성장과 행복이 일치하지 않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인간은 자연을 재발견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인간 자체가 자연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발전이나 진보에 대한 끊임없는 추종에 대해 의문시하도록 인도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아마존과 안데스 원주민의 삶의 비전과 형태”라는 다른 삶의 방식을 배우고 이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부엔 비비르는 ‘대안적 발전’이 아니라 ‘발전에 대한 대안’을 의미합니다.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을 더 좋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존과는 다른 길을 찾는 것입니다(Acosta 2019년 7월 29일 인터뷰).
결국 부엔비비르담론은 산업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의 전환을 주장하는 것이다. 인간중심적인 도구적 자연관에서 탈피하고 다국적 기업이나 소수의 기득권층에는 이롭지만 일반 주민들에게는 일자리도 제공하지 못하는 자원 채굴주의 발전전략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설득하는 것이다. 단일경작체계도 인위적으로 인간이 자연에 가하는 폭력일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부엔비비르담론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진정한 발전은 좀 더디더라도 자연과 조화로운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성장이기 때문이다. 이 담론은 결국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사이의 새로운 관계 정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Ⅴ. 라틴아메리카 생태 담론의 기여
21세기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위기가 심화되면서 인간 환경이나 자연환경 모두 악화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위기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 그리고 가난한 국가에게 더 많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환경과 생태 위기는 결국 가난한 사람들과 최빈국에 먼저 타격을 주기 때문이다.
라틴아메리카에서 파생된 생태담론인 생태해방신학과 부엔비비르담론이 강조하는 것은 생태적 문제가 사회적 문제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보프가 강조한 것처럼 가난한 사람들의 울부짖음은 곧 기후 위기로 신음하는 지구의 울부짖음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보프 2018, 225-245). 즉, 기후 정의, 혹은 생태 정의 문제는 사회 정의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보프에게 불평등 문제는 정치적으로 말하면 사회적 불의를 의미한다고 하겠다. 생태해방신학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프란시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받으소서’는 불평등 문제와 선진국의 후진국이나 개도국에 대한 ‘생태적 채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천명한다.
불평등은 개인에게 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평등은 우리가 국제 관계의 윤리도 생각해보게 합니다. 현실적인 ‘생태적 빚’은 특히 남반구와 북반구 사이에 발생한 것으로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상업적 불균형, 그리고 특정 국가들이 장기간에 걸쳐 천연자원을 지나치게 이용한 사실과 관련됩니다. 산업화된 북반구의 시장을 충족시키려고 천연자원을 수출한 결과로 금광 지역의 수은 오염과 동광 지역의 아황산 오염과 같이 지역적 피해가 발생하였습니다(『찬미받으소서』 51항)
또한 교황은 같은 맥락에서 환경 문제와 관련해서 책임이 모든 나라에 있기는 하지만 선진국의 책임이 더 크다는 점을 강조하며 선진국이 에너지 소비를 더 줄이고 가난한 나라의 발전을 지원하면서 부채를 갚아야 한다고 주장한다(『찬미받으소서』 52항). 라틴아메리카 출신인 교황도 남반구, 즉 가난한 나라의 입장을 먼저 고려하고 있다. 교황처럼 생태해방신학이나 부엔비비르를 주장하는 이론가들도 자신들의 사상이 출현하는 토양인 라틴아메리카적 현실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부엔비비르담론은 아래로부터의 생태사상을 전개한다. 농민, 원주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원주민의 우주관이자 삶의 방식인 수막 카우사이의 전망에서 자원 채굴주의에 기댄 발전정책을 비판한다. 이것은 기존의 발전정책에서 배제된 타자들의 전망에서 생태와 환경 문제를 성찰하는 특징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생태해방신학이나 부엔비비르담론 모두 가난이나 불평등 문제와 같은 사회문제와 환경 문제를 묘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세계 체제 내 종속자본주의 문제나 산업발전 모델 까지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철학적으로는 인간중심주의와 도구적 자연관을 낳은 근대성이 내포한 문제점도 지적한다. 라틴아메리카의 경험과 현실에 기반을 둔 이 사상과 담론들은 단순히 개인적 회심을 통한 사회 문제 해결이나 환경 문제의 해결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와 체제, 생활양식의 변화까지 주문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보프의 생태해방신학이나 부엔비비르담론은 가난, 불평등, 소외, 배제가 만연한 라틴아메리카의 사회경제적 문제의 해결이 생태문제 해결의 초석임을 남반구의 전망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생태해방신학과 부엔비비르담론이 생태문제에 있어 자연환경과 함께 문화적 뿌리를 강조하며 글로벌 사우스의 서구 선진국과의 차이를 인식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라틴아메리카 비판사상은 지배, 착취, 불평등 문제, 그리고 사상적으로는 유럽중심주위에 대한 거부가 강하며, 다른 지역보다 차이, 다양성, 그리고 타자의 입장을 강조하는 측면이 있다. 동시에 로찌가 언급한 것처럼 라틴아메리카 생태사상의 풍요로움은 자연과 문화와의 관계 부분에 있다. 토착 우주론적 세계관과 전통적 생태 실천 가치들이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Rozzi 2012, 23).
Acknowledgments
이 논문은 2023년도 부산외국어대학교 학술연구조성비에 의해 연구되었음.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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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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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blo Davalos(2019), 저자와의 인터뷰, 2019년 7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