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내 라틴아메리카 이주 여성의 결혼 경험과 다문화가족의 재구성
초록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가족은 중층 복합적인 변화를 경험하고 있으며, 그 대표적인 형태 중 하나가 다문화가족이다.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가족은 주로 아시아 출신의 결혼 이주 여성과 이들이 한국 남성과 이룬 가정을 형태를 지칭하며, 이들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지원도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본 연구는 주로 한국인 남편의 아내이자 한국인 자녀의 어머니, 한국 가족의 며느리로서 재생산 역할을 분담 받아 사회구성원으로 인정받는 수동적 대상으로서의 결혼 이주 여성과 다문화가족 논의를 넘어 결혼 이주 여성의 행위성에 주목하였다. 특히 라틴아메리카 출신 결혼 이주 여성의 결혼 경험에 대한 민족지적 연구를 통해 다문화가족을 문화적 이질성이 교류되고 교차되는 공간으로 이해하고, 결혼 이주 여성이 새로운 문화에 대한 적응과 협상을 통해 새로운 가족문화를 재구성하는 과정을 분석하고자 했다. 연구 결과, 라틴아메리카 출신 결혼 이주 여성은 자녀 양육 경험과 남편과의 성별분업 경험에서 다양한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한국의 지배적인 가족문화와 가부장제에 순응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다문화가족을 형성하고자 적응하고 협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Abstract
In today's Korean society, the family is experiencing a complex change, and one of the representative forms is the multicultural family. In Korean society, multicultural families mainly refer to married migrant women from Asia and the families they have formed with Korean men, and the government's policy support is mostly aimed at them. This study focuses on the agency of married migrant women as active subjects, who are recognised as members of society by sharing reproductive roles as wives of Korean husbands, mothers of Korean children, and daughters-in-law of Korean families. In particular, through an ethnographic study on the marriage experiences of married migrant women from Latin America, the study seek to understand multicultural families as a space where cultural heterogeneity is exchanged and intersected, and to analyse the process by which married migrant women reconstruct a new family culture through adaptation and negotiation with a new culture. The results of the study show that married migrant women from Latin America are actively adapting and negotiating to form a new type of multicultural family, rather than simply conforming to the dominant family culture and patriarchy in Korea, despite various difficulties in raising children and experiencing gender division of labour with their husbands.
Keywords:
Migrant Women, Latin America, Multicultural Families, Marriage Migrants, Agency키워드:
이주 여성, 라틴아메리카, 다문화가족, 결혼 이주, 행위성Ⅰ. 서론
후기 산업화 시대로의 이행과 함께, 가족은 여성의 사회 진출 확대, 출산율 저하 및 평균수명 상승과 같은 인구학적 요인, 가치관과 생활수준의 변화 등의 요인으로 그 구성, 형태, 생활주기 등의 측면에서 많은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최연실 2015, 13-14). 이는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닌데, 한국에서는 이러한 변화를 두고 많은 이들이 가족의 “위기”라고 보기도 하고, 또 다른 이들은 이를 가족의 “재구조화”로 보기도 한다(최연실 2015, 14). 가족의 변화를 위기로 인식하는 이들의 상당수는 출산율의 저하, 이혼율의 증가, 비혼 등과 같은 인구학적 변화에 주목하는 반면, 여전히 한국인들에게 가족은 중요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고 보는 이들은 가족이 재구조화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본다(최연실 2015, 14-15).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족은 위기 혹은 재구조화와 같은 “지배적인 담론”을 넘어 실제 중층 복합적인 변화 과정에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최연실 2015, 15). 가령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성인 부모와 그들의 자녀로 구성된 근대 핵가족뿐 아니라 한부모 가족, 장기 분거가족, 결혼 이주 가족, 비혼 단독가구 등과 같은 다양한 가족 형태가 나타나고 있다(최연실 2015, 16). 특히 본 연구는 우리 사회에서 주로 다문화가족으로 논의되고 있는 결혼 이주 가족에 주목한다.
한국 사회에서 결혼 이주가 주목받게 된 것은 전 지구적 자본주의 확장과 함께 진행된 이주의 여성화와 한국 사회의 인구학적, 정치 경제적 변화와 함께 1990년대부터 본격화된 한국인 남성과 아시아 국가 출신 외국인 여성 간의 국제결혼이 증가하게 되면서부터였다. 특히 2000년대 중반부터 정부는 “다문화 다민족 사회로의 전환을 선언”하고 다문화정책을 시행하기 시작했으며, 2008년에는 <다문화가족지원법>이 제정되었다(성미애 2015, 131). 이후,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 논의는 결혼 이주와 긴밀하게 연결되었다. 특히 다문화정책의 주된 대상은 아시아 출신의 결혼 이주 여성과 그 가족을 포함하게 되었다. 이처럼 정부의 정책적 담론적 개입과 함께 협소화된 다문화 논의는 두 가지 지점에서 한계를 노정했다. 첫째, 한국 사회의 다문화 논의에서 결혼 이주 여성을 제외한 나머지 이주민들, 노동이주자, 새터민, 화교 등 배제했다(유은주 2013, 155-156). 둘째, 결혼 이주 여성을 가부장제적 순혈주의와 민족주의에 기반한 한국 가족 만들기의 일환으로 한국 사회로 동화시키고자 했다. 다시 말해, 결혼 이주 여성은 한국에서 최초로 정주를 허가받은 외국인으로 다문화 정책의 대상이 되었지만, 이들이 한국 사회의 사회구성원으로 인정받는 것은 한국인 남편의 아내이자 한국인 자녀의 어머니, 한국 가족의 며느리로서 재생산의 역할을 수행할 때 가능한 것이 되었다(김지은 2007; 강미연·장인자 2009; 김정선 2010; 김현미 2010; 황정미 2012; 유은주 2013; 홍영숙 2022).
이처럼 1990년대 이후부터 결혼 이주 가족은 한국 사회의 새로운 가족 형태 중 하나로 등장하였지만, 복합 중층적인 가족 변화 과정의 일환으로 이해되기보다는 정부의 인구 정책 담론과 다문화 가족정책 대상으로 다뤄지는 경향이 강했다. 이 과정에서 결혼 이주 여성은 사회통합의 대상, 시혜적 복지 정책의 수혜 대상으로 타자화되었다(조희원 2010; 윤애경·박철우 2024). 이는 결혼 이주 여성을 모국의 경제 상황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혹은 상향혼을 꿈꾸며 이주한 가난한 국가의 여성(김현미 2006; 이혜경 외 2006; 황정미 2009; 김민정 2012), 한국 가부장제와 순혈주의/민족주의에 동화된 한국인의 아내, 어머니, 며느리로 재현하여 “열등한 타자로 대상화”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강미연·장인자 2009, 76). 하지만 국제결혼은 국적과 문화가 다른 사람들이 결혼을 통해 새롭게 사회화를 경험하는 “현실적인 생활의 장”이다(박미숙·최정호 2023, 615). 따라서 국제결혼을 통해 결혼 이주 여성은 “상이한 문화적 특성에서 자신과 가족 및 사회적 삶의 다양한 요소들과 만나고, 소통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전영화·정민자 2023, 767). 특히 이주민은 “이주하는 지역의 문화를 습득해가는 존재”인 동시에 “자신의 문화를 운반하며 이동”하는 존재로, 결혼 이주 여성은 특히 가정 내에서 모국의 문화 더불어 한국문화의 이질성을 경험하게 된다(김현미 2010, 145). 이처럼 문화적 이질성이 교류되고 교차되는 국제결혼 가정 내에서는 한국문화로의 동화보다는 “이질적인 문화적 요소들이 경합과 결합”하며 새로운 가족문화가 재구성될 수 있다(김현미 2010, 146). 다시 말해, 결혼 이주 여성은 “한국 부계 가족 안에만 배타적으로 소속된 여성”이 아니라 모국 가족과 연계되며, 자신의 뿌리 문화를 담지한 초국적 존재라고 볼 수 있다(황정미 2012, 132; 문현아 외 2024, 44).
본 연구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결혼 이주 여성을 구조적 상황 극복을 위해 안정적인 이주 방안으로 결혼이주를 선택하거나, 한국 사회 적응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거나 정부 정책의 지원을 받는 수동적인 대상으로 이해하는 기존 선행연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결혼 이주 여성을 국제결혼을 통해 초국적 가족을 구성하는 주체적 행위자로 이해한다. 특히 초국적 문화 담지자로서 결혼 이주 여성의 행위성에 주목하며, 국내 라틴아메리카 결혼 이주 여성의 결혼 경험에 대해 살펴보고, 이질적 문화가 접촉하고 상호교차하며, 갈등, 소통, 공존하는 가운데 어떻게 새로운 다문화가족이 재구성되는지에 관해 논의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2024년 3월부터 8월까지 6개월간 국내 거주 라틴아메리카 결혼 이주 여성 19명을 대상으로 민족지적(ethnography) 연구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본 연구는 한국 사회 내에 협소화된 결혼 이주 여성과 다문화가족에 관한 논의의 틀을 확장하여, 후기 산업화 시대 중층복합적인 변화 과정을 경험하고 있는 한국의 가족에 관한 시사점을 도출하고자 한다.
본 연구는 2장에서 연구 방법에 관해 간략하게 소개한다. 3장에서 한국 내 라틴아메리카 이주 여성의 결혼 경험을 자녀 양육 경험과 남편과의 성별분업 경험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4장에서는 라틴아메리카 이주 여성들이 적응과 협상 과정을 통해 어떻게 다문화가족의 지평을 넓히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5장에서 이상의 논의를 요약하고 시사점을 도출한다.
Ⅱ. 연구 방법
그동안 한국 내 결혼 이주 여성과 다문화가족에 관한 연구는 주로 아시아 국가 출신의 결혼 이주 여성을 대상으로 한 연구가 대부분이었다. 이는 아시아 출신 결혼이주민과 비교할 때 한국으로 결혼 이주한 라틴아메리카와 같은 다른 지역 출신 이주민이 소수였기 때문이다. 예외적으로 데 디오스와 김경학(2019)이 라틴아메리카 출신 결혼이주여성의 모성 경험에 대한 경험적 연구를 진행했고, Vidaurre(2025)가 라틴아메리카 이주 여성의 한국 적응 전략을, 서지현·비다우레(2025)가 라틴아메리카 기혼 여성의 한국 이주 요인을 분석했다. 하지만 라틴아메리카의 경우 한국과는 물리적·문화적 거리가 멀어 그동안 외교관계나 무역·통상 관계에서만 주목을 받아왔을 뿐, 한국과 라틴아메리카 간의 사회문화적 교류에 대해서는 국내 학계에서 크게 주목하진 않았다. 다만, 한국 정부가 2010년을 한국 공공외교의 원년으로 삼으면서, 라틴아메리카에서 불고 있는 한류 현상에 관한 연구가 늘어나고 있고, 한인 동포들의 라틴아메리카 국가로의 이주와 정착에 관한 연구들이 다수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들은 여전히 한국의 국익이나 한국 동포라는 한국 중심의 한 방향적 관심에 국한되고 있다는 한계를 보인다. 본 연구는 외교 및 무역·통상과 같은 정치 경제적 관계를 넘어 한국과 라틴아메리카 간의 사회문화적 교류에 관한 연구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한국 중심적인 연구 관심을 넘어 쌍방향적 사회문화 교류에 관한 연구 주제를 모색하던 중 국내에 거주 중인 라틴아메리카 결혼 이주 여성에 주목하게 되었다. 한국 내 라틴아메리카 결혼 이주 여성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면서 이들 여성이 온라인상의 네트워크를 통해 교류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1).
아래의 <표 1>에서 보듯, 연구 참여한 한국 내 라틴아메리카 출신 결혼 이주 여성은 지리적으로 다양한 지역에 산재하여 살고 있고 한국 정부의 주된 다문화정책 대상도 아니기 때문에, 각기 개별화된 가족 공간에 고립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비록 이들이 온라인 공간을 통해 느슨한 형태의 결혼 이주 여성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교류하고 있기는 하나, 온라인 공간은 육아나 결혼 생활을 위한 정보 교류의 장 혹은 간헐적 교류 공간으로서 역할이 더 컸기 때문에, 이들 여성과 접촉하기가 쉽지 않았다2). 2024년 3월부터 일부 지인을 통해 심층 면담을 시작했고, 이후 눈덩이 표집(Snowballing) 방식을 통해 2024년 8월까지 총 19명의 라틴아메리카 출신 결혼 이주 여성과 심층 면담을 진행할 수 있었다. 대부분 여성이 육아로 바쁜 상황이라 면담 날짜를 잡는 것에 어려움이 있었다. 때문에, 물리적인 거리와 시간상의 이유로 직접 면담이 어려운 일부의 경우에는 온라인으로 비대면 면담을 진행했다. 면담 전 연구 참여자들에게 본 연구가 학술적 연구 목적을 가지고 있음을 밝혔고, 이들의 동의를 얻고 면담을 진행했다. 모든 면담은 연구 참여자들의 모국어인 스페인어로 진행되었고, 필사 과정에서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번역과 관련된 모든 책임은 연구자에게 있으며, 연구 참여자들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본 연구는 연구 참여자를 숫자(E1~E19)로 표기하고 있음을 밝힌다.
<표 1>에서 살펴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연구 참여자들은 20~50대 사이의 페루, 콜롬비아, 멕시코, 에콰도르, 베네수엘라, 칠레, 아르헨티나 출신의 기혼 여성으로 한 명을 제외하고는 한국인 남성과 결혼해 자녀를 낳아 기르고 있는 결혼 이주 여성이다. 이들 여성과의 면담 결과, 한국인 남편과 결혼하게 된 주된 형태는 연애결혼이었다(서지현·비다우레, 2025). 연구 참여자 대부분은 학사 이상의 고학력자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가정주부로 생활하고 있었으며, 그 이유로는 자녀 출산과 함께 자녀 양육에 집중하고 싶어서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부분이 한국어 구사 능력이 낮아 제대로 된 고용 기회를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다만, 일부 참여자의 경우 높은 한국어와 영어 구사 능력을 활용해 직장 생활을 하고 있으며, 때문에 한국 생활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고 밝히기도 했다. 여성들 대부분은 모국의 가족과 온라인을 통해 거의 날마다 교류하고 있었으며, 본인의 자녀들이 자신의 모국어인 스페인어와 모국 문화에 익숙해지도록 노력하고 있었다. 한편, 결혼 생활 이후, 특히 한국에서의 결혼 생활과 함께 남편의 변화된 모습, 특히 뚜렷한 성별분업과 남편의 과도한 일 부담은 이들 여성이 한국 생활에서 외로움과 고립감을 느끼는 가장 큰 요인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들 결혼 이주 여성은 경제적 혹은 치안이나 교육체계와 같은 환경적 요인 등으로 인해 한국에서의 이주 생활을 계속 유지하고자 하며, 이를 위해 가정 내 문화적 이질성에 적응하고 협상하며 자신만의 다문화가족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아래에서는 라틴아메리카 출신 이주 여성의 한국에서의 결혼 경험과 다문화가족 재구성 경험에 관해 보다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Ⅲ. 라틴아메리카 출신 이주 여성의 결혼 경험
1. 자녀 양육의 경험
연구에 참여한 라틴아메리카 출신 결혼 이주 여성들 대부분에게 임신, 출산, 양육 경험은 물리적, 언어적, 문화적 거리가 멀어 고립되고 외로운 한국 이주 생활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경험 중 하나라고 언급했다. 이와 같은 자녀 출산과 양육과 관련된 긍정적 경험은 비단 라틴아메리카 출신 결혼 이주 여성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이미 아시아 국가 출신의 기혼 이주 여성에 관한 선행연구들에서도 임신, 출산, 양육의 경험은 이주 생활을 견뎌낼 수 있는 심리적 안정감을 주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고 밝히고 있다(강미연·장인자 2009; 민서정 2013; 이국진 외 2018). 특히 부계 혈통 중심의 가부장제적 가족문화인 한국에서 연애할 때와 달리 남편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어머니 되기 경험은 외로운 이주 생활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대안일 수 있다(김현미 2010, 163). 그러나 이들에게 한국어라는 언어 장벽은 이주 생활에 대한 적응을 가장 힘들게 하는 요인 중 하나였다. 의사소통 능력은 이주 생활의 다양한 측면, 일상생활, 남편 및 가족과의 소통, 구직 등과 연결된다(전영화·정민자 2023, 768; 응웬티란프엉 2021). 따라서 새로운 문화 적응 과정에 언어능력은 중요한 변수인데, 특히 자녀의 양육 과정에서 언어 장벽은 이주여성들에게 큰 어려움으로 다가온다. 물론 부모가 되는 과정 자체가 다양한 어려움을 동반하는 과정이지만, 이주 여성의 언어능력은 부모 되기의 어려움을 더욱 가중하거나, 남편에 대한 의존성을 증대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E8, E6, E14가 언급하고 있듯이 한국어는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주는 변수 중 하나였다.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던 이주 초기에는 보다 고립감이나 우울감을 느끼기도 했다.
특히 E9의 증언에서 보듯이 어머니로서 자녀 양육 과정에서 언어 장벽은 걸림돌로 작용하기도 했다. 자녀가 어린이집이나 학교에 진학한 후 학교 선생님과의 소통 과정에서 문제가 있는 경우, 남편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따라서 자녀 양육 과정에서 이주 여성들은 E8과 같이 언어장벽을 극복하기 위해 한국인들과의 교류를 늘리거나, 한국어 공부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E12)하기로 다짐하기도 했다. 하지만 E15나 E19처럼 육아 혹은 일로 인해 한국어 공부에 쏟을 시간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는 경우 소통에 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한국에서의 자녀 양육 과정에서 이주 여성들이 경험한 또 다른 불편한 점으로는 시부모나 주변 사람들이 자녀 양육 방식에 대한 개입하는 것이었다.
E5, E19, E12의 증언에서처럼 남편 혹은 시부모님과의 언어 소통 정도와는 별개로 이주 여성들은 시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이 자녀 양육 방식, 가령 모유 수유의 기간, 자녀 식단 문제, 자녀 교육 등과 같은 자녀 양육 과정에 관해 개입이 많다고 언급했다. 개입의 정도는 단순히 못마땅해 하는 정도에서부터 모든 의사 결정권을 가지려고 하는 방식까지 다양했다. 이주 여성들은 자녀 양육과 관련된 의사 결정은 자녀의 부모가 결정할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개입 강도와 관계없이 강요받는 느낌을 받고 불편함을 느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한국의 핵가족은 부부와 자녀로 구성되었지만, 가족주의 문화가 여전히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연구에 참여한 이주 여성들은 한국에서 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부분 경험한 적이 없거나, 혹은 무지에서 오는 오해 정도로 이해했다. 하지만 혼혈인 자녀와 함께 대중교통을 타거나, 길거리를 산책할 때 혼혈 자녀에 대한 지나친 관심 혹은 질문을 불편하게 느꼈다고 말했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 자녀 육아 및 양육 과정은 라틴아메리카 이주 여성들이 자녀와의 친밀한 관계를 강화하고 고립감과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는 긍정적인 경험이었다. 하지만 현실의 자녀 양육 과정은 언어장벽, 시부모님이나 주변인의 개입 여부, 사회적 시선 등에 따라 어려움을 유발하기도 했다.
2. 남편과의 성별분업 경험
2장에서 살펴보았듯, 라틴아메리카 출신의 결혼 이주 여성은 주로 연애결혼을 통해서 한국에 이주, 정착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연애결혼은 남편과의 애정과 신뢰에 기반한 친밀한 관계에 근거하고 있기에, 결혼 이후 ‘친밀성’보다 ‘역할’을 중심으로 전환된 부부생활이 더욱 힘들게 느껴졌다고 증언했다. 특히, 남편과의 친밀성은 이주 여성이 물리적, 언어적, 문화적 거리를 극복할 만큼 이주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변수였기 때문에, 결혼 이후 역할 중심의 관계 변화는 배신감으로까지 느껴지기도 했다. 한국 가족 내의 역할은 가부장적 가족에 내재한 남녀 성별분업으로 뚜렷하게 구분된다. 따라서 이주 후 성별분업에 따라 자녀 양육과 가사 일을 떠맡게 된 여성은 더욱 외로움과 고립감을 느끼며 정착의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고 볼 수 있다.
이상의 증언에서 알 수 있듯이 가부장적 가족제도 내에서 뚜렷한 성별분업으로 인해 가사일과 자녀 양육은 오롯이 여성에게 맡겨진다. 이러한 성별분업은 E2와 E5와 같이 본인이 직접 경험하지 않더라도, 시동생이나 시아버지와 같은 가족 구성원이나 주변 지인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기도 한다(E6, E5, E1, E10, E12). E13의 경우, 다문화 센터에 한국어를 배우러 갔다가 수업 내용이 여성의 며느리 혹은 아내로서 역할을 가르치고 있어 매우 불만족했다고 증언했다. 가정 내에서뿐 아니라 사회 내에서도 가부장적 가족제도에 내재된 남녀성별 역할이 뚜렷한 특징으로 나타났다. 아래에서 살펴보겠지만, 이주 여성들은 이러한 가부장적 성별분업을 수동적으로 수용하기 보다는 가정 내의 새로운 성별분업을 위해 도전하고 협상하며 관계를 재조정하고자 했다.
특히 가부장적 성별분업과 관련해서 이주 여성들은 자녀의 육아나 양육 과정에 대한 남편의 참여도에 따라 한국 생활에 대한 만족도가 매우 다르게 나타나기도 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결혼 이후 남편과의 관계는 주로 애정에 기반한 관계적 측면보다는 가족 내의 역할분업으로 급격히 변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한국에서는 가부장적 가족문화가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고, 그 속에 성별 역할분업이 뚜렷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자녀의 육아나 양육은 물론이고 가사 일을 이주 여성이 떠맡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이런 가부장적 가족문화에 기반한 성별 역할분업은 한국인들로 구성된 가족 내에서도 여전히 지속되는 문제이기에 이주 여성만이 느끼는 특별한 어려움이라고 볼 수도 없다. 더욱이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국가에서도 가부장적 성별 역할분업은 일반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라틴아메리카 출신 이주 여성이 느끼고 있는 특별한 어려움은 일중독 사회인 한국에서 일하는 남편이 본인은 물론 자녀와 보낼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특히 늘 술자리로 이어지는 회식문화는 라틴아메리카 출신 이주 여성들이 가장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지점이었다.
E13의 증언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한국의 일 중심 문화로 인해 남녀 성별분업에서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남편이 일터에서 보내는 시간이 매우 많으며, 남편조차도 이를 어렵게 느낀다. 때문에 이주 여성은 이주에서 경험하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정서적으로 교류하고 의지할 수 있는 남편의 부재에 많은 고립감을 느끼기도 한다. 한편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의 일 중심 문화에 대한 이해를 통해 한국 생활에 일정 부분 적응하기도 한다(E6).
E15는 한국으로 온 뒤 현지에서 남편과 생활할 때 이해하지 못하던 남편의 과음 습관이 일종의 문화라고 이해하게 되었다. E4 역시 남편의 과음 습관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일중독 사회를 살아가는 남편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본인의 어려운 점을 말하지 않으려고 한다. E7은 남편의 과음은 일중독 사회 한국의 회식문화에서 비롯되며, 때문에 자신과 자녀를 위한 시간을 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주 여성들은 결혼 이후 자녀 양육과 육아가 여성에게 집중되는 것은 가부장적 가족문화에 내재된 남녀 성별분업과 더불어 일 중독적인 직장 문화로 인해 남편들이 자신은 물론이고 자녀와 함께 할 시간을 낼 수 없다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다. E7은 남편이 일을 우선순위에 두고 본인은 물론이고 자녀와 함께 보낼 시간이 없음에 지쳤으며, 결국 이 때문에 이혼을 결정하기도 했다. E7의 증언은 본인은 물론이고, 자녀 혹은 가족 간의 소통과 이해를 위해서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매우 중요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Ⅳ. 라틴아메리카 결혼 이주 여성의 다문화가족 재구성: 적응과 협상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국 사회에서 여성 결혼 이주와 연계된 다문화가족 논의는 주로 이주 여성이 한국의 가족문화에 적응하여 한국인 자녀의 어머니 혹은 한국인 남편의 아내로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때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하며, 그렇지 못한 경우 부족한 어머니 혹은 아내로서의 수동적 위치성을 부각했다. 3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라틴아메리카 출신 결혼 이주 여성의 경우에도 자녀 양육 경험과 남편과의 성별분업 경험을 통해 한국의 다문화가족 내 한국인 자녀의 어머니이자, 한국인 남편의 아내 역할을 담당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경험한 외로움, 고립감, 혹은 배신감 등은 단순한 물리적, 언어적, 문화적 거리를 넘어 한국 결혼 이주 생활을 힘들게 하는 요인이었다. 하지만 라틴아메리카 이주 여성의 경험을 살펴보면, 한편으로는 자녀와 가족을 위해 한국 사회에 ‘적응’하고자 노력하는 한편, 단순히 자신들에게 주어진 역할을 순응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이를 ‘협상’하고 자신만의 다문화가족을 ‘재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 다문화 자녀에서 글로벌 자녀로
먼저 이주 여성들은 자녀 양육과 관련해서 한국어를 사용하거나, 한국 음식하는 법을 배워보려는 등 자녀와 가족을 위해 한국에 적응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이들은 단순히 한 문화에만 적응 혹은 동화되는 수동적 주체이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자신을 포함한 모국의 가족과 자녀와의 언어 문화적 소통을 원활히 하고 부계와 모계 양국의 언어와 문화 능력을 함양한 ‘글로벌’ 자녀로 양육하는 적극적인 주체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이는 한국인 아버지와 외국인 어머니, 그리고 ‘한국인’ 자녀로 구성된 한국 중심적인 다문화가정의 자녀가 아니라, 양 문화와 소통하고 양국의 언어능력을 가지고 양국의 국적 중 하나를 필요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초국적 가족의 ‘글로벌’ 자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이주 여성에게 자녀 출산과 양육은 한국 생활에 적응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이다. 때문에 이주 여성들은 자녀의 한국 생활 적응을 위해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시댁 식구들과의 시간도 가지려고 노력했다(E6, E4). 또한 한국의 문화와 질서에 대해서도 적응하려고 노력 중이다. 이러한 노력은 단순히 가부장적 가족 질서에 대한 순응이라기보다는 자녀가 한국 생활 적응을 위해서는 본인의 한국 사회 및 문화에 대한 적응이 선결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E10).
또한 이주 여성들은 자신과 남편을 자녀 양육의 주체로 인식하며, 자녀 양육 방식에 대한 의사 결정권을 남편과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자녀 양육 방식에 대해 시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의 개입이 있을 경우, 남편과의 소통 혹은 협상을 통해 분명하게 의사를 전달하고자 했다(E10, E9, E3, E17). 이를 통해 특정 양육 문화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자기 가족만의 양육 문화와 질서를 만들고 유지하고자 하는 이주 여성들의 적극적인 행위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이주 여성의 적극적 행위성은 남편 혹은 시부모님과의 소통과 협상을 통해 현실화된다고 볼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 출신 한국 이주 여성들은 한편으로는 새로운 문화인 한국문화에 적응하고 다른 점을 수용하지만, 동시에 자국의 문화에 대한 높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자신은 물론 자녀들이 모국의 문화를 배우고 모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공유할 수 있길 원했다(E17, E12). 이를 위해 모국에 관한 책, 영상을 통해 자녀들에게 모국 문화에 대해 지속적으로 알려주고(E18, E12, E5, E4), 모국의 음식과 음악을 통해 모국의 정체성을 심어주고자 했다(E11, E7, E5, E4, E17, E4). 또한, 한국에서 라틴아메리카 출신 이주민들의 모임이 있을 때 자녀를 동반하여, 모국의 문화에 익숙해질 환경을 마련하고자 하기도 했다(E8). 모국의 가족과 빈번하게 연락하며 자녀와 모국 가족 간의 소통을 지속하고자 노력하기도 했다(E8, E7, E5, E13). 더불어 자녀와 함께 모국을 방문하거나 모국 방문을 계획하고 있었으며, 이를 통해 자신은 물론이고 자녀들도 양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함께 기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했다(E13, E12, E11).
이처럼 이주 여성들이 자녀에게 한국어와 한국문화와 더불어 자신의 모국어와 모국 문화를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자신뿐 아니라 모국 가족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미디어 기술이 발전하게 되면서 모국의 가족과 자유로운 소통이 가능해진 상황에서 결혼 이주 여성들은 반드시 모국을 방문하지 않더라도 자녀에게 모국 가족과의 친밀한 관계를 자연스럽게 형성하고, 다언어와 다문화에 노출될 환경을 만들어 글로벌 자녀로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을 마련했다. 이는 아시아 결혼 이주 여성에 관한 경험적 연구에서도 드러나는 결혼 이주 여성의 초국적 가족 만들기 형태라고 볼 수 있다(이은아 2013; 최정아·이승연 2023, 26). 이와 더불어 자녀와의 모국어 소통은 이주 여성에게 자녀와 유대 관계를 강화하고, 심리적인 위안을 얻을 수 있으며, 가정 내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재확인 시켜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민서정 2013, 159; 데 디오스·김경학 2019, 33-34).
한편, 이주 여성들은 남편과의 협의를 통해 주로 남편은 한국어로, 자신은 모국어인 스페인어로 소통하며, 자녀를 다언어적 환경에 노출시킨다. 남편과 자신의 소통 언어가 한국어 혹은 스페인어가 아닌 영어인 경우에는 이들 가정 내의 공용어는 영어인 경우도 있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라틴아메리카 출신 결혼 이주 여성의 자녀는 한국어, 스페인어, 영어라는 다언어적 상황에 노출되게 된다. 이를 통해 자녀가 글로벌 사회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언어적 능력과 국적 선택의 기회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한다.
2. 성별분업에 대한 도전과 협상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 성별분업 이데올로기는 여성에게 출산, 양육, 가사노동과 같은 재생산과 돌봄 노동의 임무를 강요하고 이를 통해 여성이 가정 내에서 아내, 어머니, 며느리의 역할을 담당할 것을 요구한다(강미연·장인자 2009, 88). 이러한 성별분업 이데올로기는 한국 사회의 돌봄 위기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이는 ‘돌봄의 사회화’나 남녀의 돌봄 노동 분담을 통해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다. 한국에서도 돌봄의 사회화나 돌봄 노동 분담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성과는 오히려 미미하다. 오히려 2024년 시작된 서울시의 외국인 가사 노동자 시범사업과 같이 돌봄 노동의 이주화를 통해 제3세계 여성에게 돌봄의 책임을 전가하고자 하거나, 결혼 이주를 통해 가정 내에서 돌봄 역할이 여성에게 영속되는 경향을 보였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라틴아메리카 결혼 이주 여성의 경우에도 가부장적 남녀 성별분업으로 인한 어려움과 불만을 토로하였지만, 이 여성들은 이러한 불편함을 그대로 수용하기보다는 활용 가능한 관계나 자원을 통해 돌봄 부담을 줄이고자 하거나, 남편의 돌봄 참여를 협상하기도 했다. 특히 결혼 이주 여성에게 자녀 돌봄은 한편으로는 책임과 부담이기는 했지만, 동시에 어려운 이주 생활을 견디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특히 이주 여성은 자녀 돌봄을 단순히 부부가 분리되어 떠맡아야 하는 역할로 이해하기보다는 친밀성을 중심으로 한 관계의 재구성으로 이해했다. 따라서 역할로만 부여되는 돌봄 노동의 책임을 줄이기 위해 활용 가능한 관계(가령 정부의 지원이나 주변 가족의 지원)를 활용하기도 하고, 부족한 정보를 보완하기 위해 온라인 네트워크 공간을 활용하기도 했다. 또한 자녀와 부모 간의 친밀성 중심의 관계 회복을 위해 남편을 자녀 돌봄 과정에 참여시키고, 가사일 분담을 협상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이주 여성들이 재생산과 돌봄 행위를 의무나 역할의 문제를 넘어 친밀성에 기반한 관계 회복으로 재정립하여 대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래의 E10의 증언에서 보듯, E10은 남편에게 출산 전부터 자녀 돌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요구했고, 남편도 E10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응했다. 따라서 남편은 아이와의 친밀성에 기반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다. E5은 결혼하고 한국으로 이주 뒤 시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남편이 가사 일에 참여하지 않아 매우 힘들었다. 하지만 분가해서는 남편이 이주 전과 마찬가지로 가사 일에 참여할 수 있도록 협상했다.
한편, 라틴아메리카 결혼 이주 여성들은 돌봄의 부담을 덜기 위해 다양한 자원과 관계를 활용했다. E19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 자녀를 양육해야 하는 상황에서 시어머니나 모국에서 방문한 본인 어머니의 도움을 받기도 했으며, 남편이 출장을 가서 남편의 육아 참여가 어려울 때는 보육 도우미를 고용하기도 했다. 이처럼 시부모님이나 이주 여성의 어머니나 여자 형제들의 도움을 통해 결혼 이주 여성들은 돌봄 노동에 대한 부담을 줄이기도 했다(E19, E18, E6). E7은 직장 생활을 하는 싱글 맘으로 보육 도우미의 지원을 받으며 자녀의 한국어 및 정서 발달에 도움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한편, 필요에 따라서는 ‘한국인’ 자녀에 대한 정부의 보육 지원(E18)이나 보조금 지원(E2, E10, E17)을 받기도 했다. 모국 사회와 문화와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의 자녀 양육은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에 결혼 이주 여성들은 자녀 양육 과정에서 필요한 정보의 경우, 주변의 학부모와의 교류 혹은 인터넷 공간에 형성된 라틴아메리카 출신 여성들을 통해 확보·활용하기도 했다. 물론, 주변 학부모들과의 교류(E10)나 인터넷 공간의 라틴아메리카 출신 여성과의 교류(E14)가 항상 긍정적인 자원으로만 활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여성들 간의 이해와 소통을 통해 돌봄 부담을 공유하거나 덜어내는데 도움을 받고 있다.
Ⅴ. 결론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가족은 중층 복합적인 변화를 경험하고 있으며, 그 대표적인 형태 중 하나가 다문화가족이다.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가족은 주로 아시아 출신의 결혼 이주 여성과 이들이 한국 남성과 이룬 가족 형태를 지칭하며, 정부의 정책적 지원도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본 연구는 주로 한국인 남편의 아내이자 한국인 자녀의 어머니, 한국 가족의 며느리로서 재생산 역할을 분담 받아 사회구성원으로 인정받는 수동적 대상으로서의 결혼 이주 여성과 다문화가족 논의를 넘어 결혼 이주 여성의 행위성에 주목하였다. 특히 라틴아메리카 출신 결혼 이주 여성의 결혼 경험에 대한 민족지적 연구를 통해 다문화가족을 문화적 이질성이 교류되고 교차되는 공간으로 이해하고, 결혼 이주 여성이 새로운 문화에 대한 적응과 협상을 통해 새로운 가족문화를 재구성하는 과정을 분석하고자 했다.
주로 한국인 남성과의 연애결혼을 통해 결혼 이주한 라틴아메리카 출신 여성들은 자녀 양육과 남편과의 가정 내 성별분업이라는 측면에서 어려움을 경험했다. 이들 여성에게 임신, 출산, 양육의 경험은 물리적, 언어적, 문화적 거리로 인해 고립되고 외로운 한국 이주 생활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경험이다. 하지만 언어장벽, 자녀 양육 방식에 대한 주변의 개입, 혼혈 자녀에 대한 한국 사회의 불편한 시선 등은 라틴아메리카 출신 결혼 이주 여성이 자녀 양육 과정에서 경험하는 주된 어려움이었다. 이와 더불어 연애결혼을 통한 남편과의 친밀성은 한국 이주를 결정하는 주된 요인이었으나, 결혼 이후 한국의 가족문화에 내재한 역할 중심의 관계 변화와 남편의 낮은 자녀 양육 참여도 결혼 이주 생활을 어렵게 하는 또 다른 요인이었다.
하지만 라틴아메리카 출신 결혼 이주 여성들은 수동적으로 한국 사회의 지배적인 문화에 순응하기 보다는 때로는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고 때로는 새로운 문화와 협상하며, 자신만의 새로운 다문화가족 문화를 형성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가령 한국 사회의 지배적인 문화에 순응하는 자녀 양육보다는 한국과 자신의 모국 문화와 언어에 자녀를 빈번히 노출시켜, 보다 글로벌한 문화적 유연성과 언어적 능력을 가진 글로벌한 자녀 양육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이와 더불어 라틴아메리카 출신 결혼 이주 여성들은 한국의 가부장제적 돌봄 전담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만 않고, 보다 적극적으로 성별분업을 남편과 협상하거나, 돌봄 역할을 보완하기 위한 다양한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따라서 이들 결혼 이주 여성은 적극적으로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고, 상충되는 부분을 협상하며, 새로운 형태의 다문화가족을 재구성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여전히 대부분의 라틴아메리카 출신 결혼 이주 여성이 언어 구사 능력의 한계 등으로 인해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기 보다는 가정 내에서 모성적 돌봄 역할을 주로 전담하고 있지만, 이는 단순히 한국의 전통적인 가족문화나 가부장제적 성별분업에 순응한 결과라고만 해석하기 어렵다. 여성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한국 사회에 적응하고, 새로운 문화와 모국의 문화 간의 협상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가족문화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본 연구는 중층 복합적 변화를 겪고 있는 한국의 다양한 가족 형태 중 다문화가족의 변화에 주목하고, 라틴아메리카 결혼 이주 여성의 결혼 경험과 다문화가족 재구성 사례를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본 연구는 그동안의 선행연구가 상대적으로 덜 주목한 한국의 다문화가족 내 결혼 이주 여성의 행위성과 이를 통해 중층 복합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다문화가족의 재구성 경험을 분석했다는 점에서 학술적 의의를 가진다. 또한 본 연구는 국제결혼을 통한 초국적 가족문화 만들기 과정에서 나타난 적극적인 이주 여성의 행위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들이 언어 구사 능력의 한계 등으로 가정 내에서 모성적 돌봄 역할을 주로 전담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다문화 정책이 그동안 주목하지 못한 다문화 가족 정책 대상과 정책 목적 다변화의 필요성을 시사한다. 이러한 학술적, 정책적 의의에도 불구하고, 본 연구는 연구 참여자에 대한 접근성의 한계를 이유로 한국 내 라틴아메리카 결혼 이주 여성 일부의 제한적 경험을 분석하고 있다는 점, 한국 내 라틴아메리카 결혼 이주 여성 내부의 중층적이고 다양한 경험을 세분화하지 못했다는 점, 초국적 가족 구성의 또 다른 구성원인 결혼 이주 여성의 남편과 자녀의 증언을 통해 입체적으로 가족 내 관계를 조명하지 못한 점 등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한계점들은 향후 후속 연구를 통해 보완되어야 할 과제로 남겨둔다.
Acknowledgments
이 논문은 2020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20S1A5C2A02093112)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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