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itute of Iberoamerican Studies
[ Article ]
iberoamerica - Vol. 27, No. 1, pp.205-238
ISSN: 1229-9111 (Print)
Print publication date 30 Jun 2025
Received 16 May 2025 Revised 11 Jun 2025 Accepted 11 Jun 2025
DOI: https://doi.org/10.19058/iberoamerica.2025.6.27.1.205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하 가톨릭교회의 정치 사회적 역할에 관한 연구

조영현**
**부산외국어대학교 중남미지역원 교수. latin-jo@hanmail.net
A Study on the Political and Social Role of the Catholic Church under the Nicolás Maduro Regime
Jo, Young-Hyun**

초록

이 논문의 연구 목적은 베네수엘라의 정치와 종교 관계를 다루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마두로 정권과 가톨릭교회의 관계에 대해 탐구한다. 특히 베네수엘라 가톨릭교회를 대표하는 주교회의와 마두로 정권과의 관계를 분석한다. 그리고 국제 무대에서 교회를 대표해서 무시할 수 없는 역할을 수행하는 교황청과 마두로 정권의 관계도 종교와 정치 관계에서 중요하기 때문에 보완적으로 다룬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의 종교관을 살피고 우고 차베스 정권의 정치적 이념적 계승자를 자처한 마두로 정권의 이념적 특징을 파악한다. 그리고 베네수엘라의 정치적·경제적 위기 속에서 민주주의와 인권 유린, 선거와 권위주의적 통치에 대한 반대 시위 과정에서 주교회의가 보인 행동과 태도를 분석한다. 결론적으로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과 가톨릭교회의 관계는 대체로 대립과 갈등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relationship between politics and religion in Venezuela, with a specific focus on the ties between the Maduro administration and the Catholic Church. In particular, it analyzes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Venezuelan Episcopal Conference, which represents the Catholic Church in Venezuela, and the Maduro government. Given the significant role of the Holy See on the international stage as a representative of the Catholic Church, the paper also includes a complementary analysis of its relations with the Maduro regime. The study explores President Nicolás Maduro’s views on religion and identifies the ideological characteristics of his administration, which claims to be the political and ideological successor of Hugo Chávez. Furthermore, it analyzes the actions and positions of the Episcopal Conference during Venezuela’s political and economic crisis-especially in the context of protests against human rights violations, democratic backsliding, elections, and authoritarian governance. In conclusio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Maduro administration and the Catholic Church can largely be characterized by confrontation and conflict.

Keywords:

Nicolas Maduro regime, Catholic Church, politics and religion, Venezuelan Episcopal Conference, Vatican

키워드: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 가톨릭교회, 정치와 종교 관계, 베네수엘라 주교회의, 교황청

Ⅰ. 들어가는 말

베네수엘라에서 우고 차베스(Hugo Chavez)의 등장은 이 나라 정치사에 혁명적 변화를 초래했다. 그의 영향력은 베네수엘라를 넘어 라틴아메리카에서도 정치 지형과 이념 부분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차베스는 죽었지만, 베네수엘라에서 차베스의 영향은 니콜라스 마두로를 통해 계속되고 있다. 차베스가 카리스마를 지닌 권위주의 정권의 지도자로 국민적 지지가 튼튼했던 반면, 니콜라스 마두로(Nicolás Maduro)는 카리스마 없는 포퓰리스트이자 폐쇄적 독재체제를 구축한 극단적 좌파를 대표하는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Arenas 2016). 베네수엘라 메트로폴리탄대학교의 아벨레도 콜(Aveledo Coll) 교수는 마두로는 국민의 지지를 받고, 인기가 많던 우고 차베스의 그림자로 그의 이미지를 이용하지만, 혁명가의 카리스마를 보여주던 차베스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Aveledo Coll 저자와의 인터뷰 2025년 2월 10일, 카라카스). 현재까지도 마두로는 우고 차베스의 생전 인기와 정치적 유산을 활용하며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차베스는 죽었으나 차베스주의는 마두로를 통해 왜곡된 형태로 소환되고 끊임없이 부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고 차베스가 카리스마적 지도자로 부상한 데에는 정치적 수사와 종교적 이미지 활용이 큰 역할을 했다. 볼리바르혁명을 주도한 차베스는 집권 초기부터 정부와 종교기관들,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가톨릭교회와 충돌하고, 이념적 긴장 관계를 초래했다. 차베스는 가톨릭교회를 지배 세력을 편들고, 우익, 가진 자, 미제국주의자의 이권을 대변하는 기구라고 믿고, 자신이 주도하는 혁명에 장애가 되는 요소로 이해했다(조영현 2010, 269). 이는 종교 영역뿐 아니라 교육, 보건, 사회복지와 관련된 공적 영역에서 정부와 교회의 충돌을 만들어냈고, 도덕적 정당성 논쟁을 발생시켰다. 가톨릭교회는 야당과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 민주화와 인권 옹호 세력에게 도덕적, 이념적 정당성을 제공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니콜라스 마두로1) 대통령은 차베스 사후 차베스의 계승자를 자처했고, 그의 정치 스타일을 추종했다. 이는 베네수엘라에서 종교와 정치, 국가와 교회 관계를 극단적인 대립 국면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심각한 경제 위기, 민주적 시스템의 붕괴, 권위주의의 심화 속에서 베네수엘라 가톨릭교회를 대표하는 주교회의는 인권침해, 정치적 권리와 민주적 제도의 약화, 교육과 생존을 위한 기본 서비스의 붕괴 등을 비판하는 주요 행위자로 부상했다.

이 연구는 차베스를 계승한 마두로 정권 치하에서 베네수엘라 권위주의 정부와 종교기관 간의 역동적 관계를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먼저 마두로의 종교관을 살펴보고, 가톨릭교회의 지도부인 주교회의의 사회적·정치적 참여 양상과 그 역할을 분석한다. 여기서 분석하는 가톨릭교회는 주로 교회의 지도부를 구성하는 대표 격인 주교회의를 의미한다.2) 또한 베네수엘라 밖의 가톨릭 세력인 교황청과 마두로 정권과의 관계를 살펴봄으로써 가톨릭교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부분이 정치와 종교 관계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볼 것이다.


Ⅱ. 이론적 분석 틀과 연구 방법

종교와 정치 관계에 관한 초창기 연구는 주로 종교의 정치적 역할과 정치와 종교 관계 유형을 분류하는 것에 집중했다. 정치와 종교가 일치되거나 종교와 정치가 통합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에밀 뒤르켐(Emile Durkheim)과 정교가 분리된다는 로저 윌리암스(Roger Williams)의 주장이 오랫동안 종교사회학 안에서 큰 줄기를 형성했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은 정치를 사회 통제의 수단으로 보는 독특한 시각을 강조하면서 큰 영향을 끼쳤다.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라는 주장은 기존의 종교 역할을 전복하는 매우 강력한 선언이었다. 마르크스주의는 종교가 사회 변화를 촉진하는 역할을 하기보다는 기존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을 더 강조했다(오경환 1990, 311).

보통 종교와 정치 관계는 상호 협조, 비판, 대립 혹은 갈등 등의 관계로 분류할 수 있다. 레빈은 정치가 인간 삶과 공동체의 형태를 부여하는 역할을 하고, 종교가 인간 존재의 가치나 상징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둘은 상호 중첩되는 부분이 있고, 각각의 목표와 구조에 있어서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해있다고 주장했다(Levine 1981, 6). 종교와 정치, 혹은 교회와 국가가 서로 경쟁 관계에 있을 때 대립과 갈등, 혹은 상호 비판 등의 현상이 목격된다.

20세기 중반 이후 종교사회학의 발전은 종교와 정치 영역에 대한 다양한 현대적 이론을 탄생시켰다. 가장 먼저 주목을 받은 것은 세속화 이론(Secularization Theory)이다. 이 이론은 1950년대부터 학계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근대성 자체가 합리성, 이성을 강조하고 사람들을 계몽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볼 때 비합리적인 종교는 탈주술화 과정을 통해 사적 영역으로 축소되거나 소멸할 위험에 직면한다고 주장한다. 근대는 곧 미신적이고 반동적인 종교 현상을 없애는 측면에서 보면 진보를 상징하며 세속화는 좋은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버거 2002, 15-16).

그러나 피터 버거(Peter L. Berger)와 같은 학자는 근대의 특징과 종교 현상을 관찰하고 “필연적으로 종교 신앙이나 의례 수준의 감소를 수반하지 않으며, 또 종교가 반드시 사적 영역으로 밀려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버거 2002, 113)”고 주장했다. 이런 시각은 세속화 이론을 비판하는 계기를 만들었고, 자연스레 탈 세속화 이론(Post-Secularism)이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슬람의 정치 운동, 남미 해방신학의 확산, 개신교 복음주의의 정치화 등을 목도하고 호세 카사노바(José Casanova)와 같은 이론가는 더욱 탈 세속화 이론을 구체화했다. 종교의 쇠퇴는 근대의 불가피한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유럽의 역사에서 종교 상황의 변화, 즉 국가와 교회의 특수한 결합 현상의 변화일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의 유럽 사람들은 단순히 세속적이기보다는 탈교회화된 사람들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는 것이다. 교회의 출석률이 감소했다고 종교적 신앙이나 종교적 성향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버거 2002, 101). 세계 각국에서 종교가 사적 영역에 머물지 않고 교회의 정치 참여를 촉진하고 시민사회의 리더로서 적극적인 행위자 소임을 수행한 사례를 통해 종교는 공적 영역에서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특히 라틴아메리카에서 1990년대 이후 복음주의 운동이 부상하면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에 잘 적응하면서 정치 세력화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종교는 사회운동을 촉진하고 사회운동과 결합하여 저항의 공간을 창출하기도 한다. 군사독재에 저항하고, 사회 불평등 해소를 위해 진보 세력 결성을 활성화하고 사회 변혁을 주도한 측면이 있다. 이는 교회의 정치 개입이 탈권위주의화 혹은 민주화를 촉진한 사례들을 통해 세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1970~1980년대 라틴아메리카에서 ‘해방 그리스도교 운동’3)이나 해방신학의 영향을 다룬 연구에서 잘 드러난다.

사실상 종교가 갖는 정치적 기능은 매우 다양하다고 할 수 있다. 종교적·신적 권위를 통해 정치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하거나 정당성을 부정하는 기능이 대표적이다. 종교가 권력을 비판하거나 위정자의 불의를 고발하는 것만으로도 정권을 붕괴시키고 권력자에게 큰 타격을 준 사례는 많다. 때때로 종교는 공동체 정체성 형성과 유대를 강화하는 역할을 하고, 정치 영역에서도 세력화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정치적 갈등 상황이나 대립 상황에서 국가와 국가, 국가 내 정부와 반대 세력 사이를 중재하여 갈등을 완화하는 중재자 역을 수행하기도 한다.

종교와 정치에 관한 연구는 연구 분야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 따라서 최근에는 종교사회학을 넘어 종교정치학이라는 학문 분야가 부상하고 있다. 다만 서구 사회의 영향을 받은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종교와 정치 관계 연구가 교회와 국가라는 주제로 압축되어 나타나는 특징을 보인다. 그 가운데에서도 종교와 정치 분야를 대표하는 지도자 혹은 엘리트 사이의 관계를 분석하면 종교와 정치 관계를 잘 파악할 수 있다. 베네수엘라의 종교사회학자 오토 마두로(Otto Maduro)는 포괄적 의미에서 종교 지도자들인 가톨릭 성직자들이 민중의 열망을 수렴하고 그것을 정치 무대에서 영향을 미치는 ‘유기적 지식인(intelectual organico)’ 역할을 한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가톨릭 사제가 종종 특정 사회 계층의 유기적 지식인과 같은 존재로 변모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즉, 그 사제는 (종교적) 공직자이면서도 민중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요청되어, 하층 계급의 열망과 필요를 수집하고, 체계화하며, 표현하고, 이에 호응하곤 했다. 이러한 이유로 사제는 이러한 하위 집단들의 투쟁과 연대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Maduro 1978, 199).

이런 점에서 보면 세계 정치학회 회장을 역임한 사무엘 헌팅턴(Samuel P. Huntington)이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사이의 관계는 각각의 국가에서 추기경과 독재자 사이의 갈등 관계 안에 인격화되어 드러난다고 강조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발언이다(김녕 18, 재인용).4) 이 논문에서도 이런 시각을 따라 위정자와 주교회의 사이의 관계, 그리고 교황청과 정부 사이의 관계를 분석하는데 집중한다.

이를 위한 연구방법론은 기본적으로 문헌 조사에 토대를 두고 있다. 국내외 출판 자료가 부족한 관계로 멕시코와 베네수엘라 현지 자료들을 활용하였다. 베네수엘라 주교회의의 성명서와 각종 문서를 참조하고 분석했다. 연구 주제와 대상이 현재 권력을 장악한 마두로 정권이고, 최근 시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연구 논문이나 단행본 등의 자료는 매우 제한적이다. 자료 부족을 보완하기 위해 2025년 초반 베네수엘라에서 현지 조사를 실시하였고, 정치와 종교 관계를 연구하는 현지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전문가 인터뷰를 진행했다.5)


Ⅲ. 니콜라스 마두로의 종교관

1. 베네수엘라의 종교 상황

차베스와 마두로가 집권한 좌파 정권 시기 동안 베네수엘라의 종교적 상황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전통적으로 ‘가톨릭의 대륙’이라고 불리던 라틴아메리카는 1990년대 이후 가톨릭 신도 수가 감소하고 복음주의 노선의 개신교가 확산하면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과테말라를 연구하던 인류학자 데이비드 스톨(David Stoll)은 1990년대 들어서면서 라틴아메리카 대륙이 개신교 대륙으로 전환될 수 있는지 질문을 던졌다(Stoll 1990). 과테말라, 온두라스, 니카라과 같은 중앙아메리카 지역과 남미의 브라질 등 여러 나라에서 종교 인구 비율이 급격히 변화했다. 이런 변화는 베네수엘라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2014년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의 조사에 의하면, 베네수엘라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종교는 전통적 종교인 가톨릭이지만 가톨릭 신도 수는 점진적으로 감소했다. 가톨릭 신도의 점유율이 1950년 91%였던 것이, 2014년 73%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Pew Research Center 2014, 27).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가톨릭 인구 73%, 개신교 17%, 무종교 7%. 기타 4%로 나타났다(Pew Research Center 2014, 14). 기타에는 아프리카의 영향을 받은 산테리아, 유대교, 이슬람교 등 소수 종파의 신도들이 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가톨릭 인구의 감소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1970년대 이후이다. 1970년 92%였던 라틴아메리카 가톨릭 인구는 2014년 69%로 급감했다. 동일 시기 동안 개신교 인구는 4%에서 19%까지 증가했다. 가톨릭 인구의 감소에는 무종교 인구의 비율이 2014년 8%까지 증가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Pew Research Center 2014, 26). 중요한 점은 가톨릭을 신봉하던 신도들이 개신교로 개종했다는 점이다. 이런 변화는 베네수엘라를 포함한 라틴아메리카에서 종교의 정치사회적 역할 변화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처럼 20세기 후반은 라틴아메리카에서 가톨릭의 독점이 깨지기 시작한 시점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라틴아메리카에서 확산하는 개신교가 장로교, 루터교, 감리교 등 역사적 개신교로 분류되는 종파가 아니라 복음주의, 좀 더 구체적으로 오순절교 계통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종파는 주로 가난한 사람들, 원주민과 흑인, 여성 등 소외계층을 포섭하고 포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자리, 음식, 옷 등을 제공하는 자선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단지 봉사활동이나 자선 활동뿐 아니라 교회로 가난한 사람들을 인도하는 선교사업을 가톨릭교회보다 더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복음주의 노선의 개신교도들은 정치·사회적 측면에서 볼 때 가톨릭 신도보다 더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낙태, 동성애, 인공적 피임 수단, 혼외 성관계, 이혼, 음주에 대해 더 엄격한 입장이다(Pew Research Center 2014, 10-11). 이것은 윤리나 정치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베네수엘라 상황에서 개신교의 위상은 가톨릭교회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가톨릭교회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신뢰를 받는 기관이지만 베네수엘라에서는 그 신뢰도가 더 높다. BTI가 낸 베네수엘라 국가보고서 2024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에서 기관의 신뢰도가 압도적으로 높은 곳은 가톨릭교회(71%)이다. 대통령은 전체 인구의 24% 신뢰도를 보였고, 선거 당국 21%, 군부 21%, 정부 19%, 의회 19%, 사법부 18%, 정당 15%, 경찰 13%의 신뢰도를 보였다(BTI 2024). 이 나라에서 가톨릭교회는 좌파 포퓰리즘 정권의 27년 집권 동안 국민의 신뢰를 받는 유일한 기관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무엘 그레이(Samuel Gregg)는 이점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베네수엘라에서 사회주의 경험이 20년을 넘기면서 신뢰를 얻은 기관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사법부의 대부분은 오래전에 정권의 통제에 굴복했고, 독립적인 미디어 부분도 별로 남아있지 않았다. 많은 기업의 지도자들도 정권에 협력했다. 20년간의 끝없는 해방을 강조하는 포퓰리즘 수사의 영향은 매우 컸다. 하지만 베네수엘라의 괴로운 혼란 속에서도 신뢰를 높여준 기관이 하나 있다. 바로 가톨릭교회이다(Public Discourse 12, 03, 2019).

2. 니콜라스 마두로의 종교관

니콜라스 마두로는 다른 베네수엘라 사람처럼 전통 종교인 가톨릭적 배경에서 자랐다. 하지만 다양한 영적 전통들을 수용하면서 종교혼합주의적 성격을 보였다. 종교혼합주의는 민중 종교성이 강한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특징이다. 마두로는 교회에 순종적인 전통적인 가톨릭 신도의 이미지를 갖고 있지는 않다. 그는 좌파 사상에 경도되어 있기 때문에 신앙적 차원보다는 문화적 차원에서 종교의 영향을 받는다고 볼 수 있다.

베네수엘라에서 여성 최초의 국회의장직을 수행한 실리아 플로레스(Cilia Flores)는 마두로의 아내이며, 그녀의 종교적 성향도 마두로 대통령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녀는 샤이 바바(Sai Baba)를 정신적 스승으로 모셨다. 마두로는 오렌지색 옷을 입은 인도의 구루 샤이 바바의 제자가되었다. 마두로는 젊었을 때 아내와 함께 인도에 있는 그의 아쉬람을 방문할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샤이바비즘은 라틴아메리카에서도 특히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에서 가장 많은 신도를 확보하고 있다. 『독재자와 그의 악마들』을 저술한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플레이서(David Placer)는 마두로와 같이 차베스 정권에서 장관직이나 고위직을 차지한 인물 가운데 상당수가 가톨릭이나 개신교 신도이면서 동시에 다른 신앙을 받아들이는 종교혼합주의적 태도를 보였다고 주장했다(Infobae 06. 04, 2019), 우고 차베스 자신도 암 투병 중에 해방자 시몬 볼리바르 유해 앞에서 산테리아 의식을 거행하며 쾌차를 빌었고, 원주민 샤만이나 영매술에 의존하는 모습도 보였다(Infobae 06.04, 2019).

마두로와 같은 차베스주의자들은 어떠한 모순도 없이 교회에서 예배드리며 “마르크스주의자, 레닌주의자, 산테리아를 숭배하는 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Infobae 06. 04, 2019). 마두로는 자신이 가톨릭 신도이면서 동시에 심령주의(Espiritualismo)와 볼리바르주의를 신봉하는 자라고 밝혔다. 여기서 말하는 볼리바르주의는 시몬 볼리바르의 민족주의 이념 노선을 말하는 것이지만, 차베스와 마두로에게 이 이념은 일종에 영적 사명과 연결된다. 그들에게 시몬 볼리바르와 그의 사상은 종교의 차원으로 고양된 것이었다. 차베스가 해방자 시몬 볼리바르의 이념과 사상을 이용해 국가와 민중의 구원을 위해 선택받은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구축했던 것처럼 마두로도 이를 계승했다.

플레이서는 이런 마두로의 종교적 신앙이 그의 정치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마두로는 필요에 따라 가톨릭과 더불어 민속적 상징과 다양한 영적 전통을 존중하고 수용하는 태도를 보였다. 주로 국민과 깊은 감정적 연대를 표명할 때 종교를 이용했다. 베네수엘라의 문화적 정체성이나 종교, 신앙은 대중과의 소통, 그리고 유대를 강화하는 매체가 되었다. 정치지도자로서 마두로는 필요에 따라 가톨릭 신도임을 강조하기도 하고, 심령주의와 민속신앙을 내세우기도 하면서 종교적 유연성을 보였다. 마두로는 국민의 지지 획득과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종교적 이미지를 사용했다. 기독교의 상징을 자신과 정권 강화의 수단으로 활용하며, 자신의 정책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했다. 예를 들면, 예수 그리스도를 “최초의 사회주의자”로 묘사하면서, 사회주의 정책을 옹호하기도 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평등과 나눔이라는 기독교적 메시지를 자주 언급했다. 기독교를 이용해서 자신이 마치 민족을 구원할 위대한 지도자인 것처럼 선전하고 포장하곤 했다. 시몬 볼리바르를 종교적 인물처럼 재해석하고, 벽화나 기념비를 통해 차베스의 이미지를 신성화하고 종교적 아이콘처럼 활용하는데도 능통했다. 이런 활동을 위해서 친정부적 성향의 교단이나 종교단체가 주로 이용되었다. 그는 기도회와 같은 종교적 행사에 참여해서 정치적 메시지를 설파하고 지지층을 결집하기도 했다. 정치적 목적 달성과 대중 동원 수단으로 종교를 이용한 것이다.

마두로의 종교적 신념은 그의 정치적 지도력과 분리되지 않는다. 그는 이미 판사 앞에서 시민법 절차에 따라 결혼했지만, 2022년 5월 1일 실리아 플로레스와 가톨릭교회와 복음주의 교회에서 결혼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6) 마두로에게 종교는 활용도가 높은 정치적 도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를 대표하는 종교인 가톨릭교회를 대하는 마두로의 태도는 매우 혼란스럽고 복잡한 양상을 보인다. 마두로는 교황이나 가톨릭교회의 전통과 권위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톨릭 지도자를 무시하고 탄압하는 이중적인 모습도 보인다. 그의 종교관이 복합한 것처럼 가톨릭교회와의 관계도 매우 복잡하다.


Ⅳ.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과 가톨릭교회

1.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과 베네수엘라 주교회의

우고 차베스의 후계자로 인정을 받은 마두로지만 베네수엘라를 통치하기 위해서는 1999년 헌법에 따라 대통령 선거를 통해 국민의 인정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2013년 대통령 선거에서 1.5%라는 매우 근소한 차이로 승리하면서 매우 불안한 출발을 보였다. 차베스 추모 열기라는 호재가 그에게 유리한 선거 정국을 만들어주었지만, 결과적으로 50.6% 득표율에 머물면서 시작부터 정치적 불안정에 시달렸다. 차베스 집권 말기부터 좋지 않던 경제 상황이 마두로 정권의 안정적 정착을 방해했다. 차베스 집권기 동안 계속되던 경제적 호황기가 끝나고 국제 유가도 하락하면서 물자 부족과 생활 수준이 하락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두로는 차베스식 포퓰리즘을 이어갔다. 차베스는 죽었지만, 차베스주의는 계속 베네수엘라를 지배한 것이다. ‘21세기 사회주의’라는 애매한 명칭을 선전하였고, 적어도 경제적으로는 사회주의 경제 모델을 계승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두로 정부는 경제 안정을 위해 식량과 의약품과 같은 기본 생필품 가격과 전기, 수도, 교통, 통신 등 공공요금을 통제했다. 마두로는 사회주의자로서 국가가 주도하는 중앙관리식 경제 운영을 강화했다. 그러나 주요 핵심 산업을 국유화했던 차베스의 정책을 이어 나가면서 경제 영역에 효율성이 급격히 떨어졌다. 여기에 더하여 2014년 유가 하락은 석유 의존적 경제 체제를 유지한 베네수엘라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했다. 전체 외화 수입의 90%가 석유 수출에 의존하던 상황에서 유가 하락은 외환 수입을 급감하게 했다. 그런데도 마두로 정권은 차베스식 좌파 포퓰리즘 정책을 고수하면서 과도한 복지비용을 지출하는 무리수를 두었다. 미션 로빈슨(Mission Robinson)과 미션 바리오 아덴트로(Mission Barrio Adentro)와 같은 사회 프로그램은 가난한 주민들의 문맹 퇴치를 위한 교육, 그리고 무료 의료 보장과 같은 주민의 필수적인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보건, 교육, 식량, 주택 분야에서 진전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교육 분야만 보더라도 교사와 교수의 부족, 교육 정책에 있어 정부의 입김 강화와 학교 자율성 침해라는 문제가 부각되었다. 주교들은 정부 정책을 비판하며 다음과 같이 교육에 있어 자치와 자율성 부분을 강조했다.

우리는 교육 분야의 구체적인 문제에도 불구하고 중앙 정부가 초등 및 중등 교육 수준에서 새로운 학교 커리큘럼 도입하기를 원한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념화되고 정치화된 단일 교육 모델이며 단일 교과서를 지향한다. 이러한 주장은 베네수엘라인들 사이에 새로운 대립 요소를 조성하고 가족의 교육 자유를 제한한다(CEV Exhortación 10, 01, 2014, 14항).

충분한 재정이 없는 정부의 입장에서 이런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복지정책을 유지하는 방법은 화폐 발행을 급격하게 늘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결국 통화 가치가 급락하고, 기업들의 생산은 위축되었으며, 주민들은 초인플레이션을 경험하게 되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발간하는 세계경제현황 자료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에 연간 물가 상승률은 2013년 40.7%였지만, 2018년에는 물가 상승률이 13만%라는 세계 최악의 초인플레이션을 찍었다(Romero Aleman 2021).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선택한 외환 통제 정책은 공식 환율과 시장 환율 간의 간극을 더욱 벌리면서 암시장이 활성화되었다. 이처럼 베네수엘라 경제 위기는 마두로 정권이 주도한 사회주의적 통제와 유가 하락, 미국이 주도한 국제 제재와 같은 외부적 요인이 결합하면서 발생했다.

특히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제재는 마두로에게는 극복하기 어려운 과제였다. 미국의 제재로 인한 경제난, 초인플레이션, 높은 범죄율과 같이 악화하는 경제적·사회적 상황은 정치적 위기와 연동되어 마두로의 장래를 어둡게 만들었다. 사실상 정치 위기는 차베스 집권 말기부터 시작되었다. 차베스는 암에 걸린 이후 투병 생활에 집중하면서 국정에서 손을 떼기 시작했다. 치료를 이유로 베네수엘라를 떠나 쿠바에 머무는 일이 잦았다. 마두로가 후계자로 지목되고, 2013년 대선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부정선거 논란이 계속되었다. 결국 2014년 2월 야권 인사들과 학생들을 중심으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면서 마두로의 퇴진까지 요구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퇴진’을 의미하는 ‘라 살리다(La Salida)’ 시위는 정부에 의해 강경하게 진압되었다. 시위에 앞장선 레오폴도 로페스(Leopoldo Lopez)같은 야권지도자들이 체포되었고, 수십 명의 시위자들이 사망했다.

이후 마두로 정부는 정보 통제와 자기 검열을 통해 정부의 통신 패권과 정보 독점, 여론 통제를 강화했다. 반정부 인사의 신문 경영 제한, 반정부 언론인에 대한 위협, 정부에 부정적인 언론인들을 포섭하는 전략 등을 구사했다. 마두로 정권은 일부 교회가 운영하던 미디어나 언론 기관에 대한 운영권 갱신을 거부하기도 했다. 그러자 베네수엘라 주교들은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헤게모니를 확립하려는 정부 정책이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에 어긋나며, 지나친 검열로 인한 국민의 알권리가 침해된다는 점을 지적했다(CEV Exhortación 01, 10, 2014, 13호). 2015년 1월 12일 베네수엘라 주교회의는 사목교서 “위기에 직면한 윤리적·영적 쇄신”에서 베네수엘라의 위기 근저에 권위주의적 성격을 지닌 사회주의적 정치-경제 체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우리가 다른 경우에 지적한 바와 같이 이 전반적인 위기의 가장 큰 문제와 원인은 마르크스주의 또는 공산주의 사회주의 성격의 정치 경제 체제를 강요하려는 중앙 정부와 기타 공권력 기관의 결정입니다. 이 시스템은 전체주의적이고 중앙집권적이며, 시민과 공공 및 민간 기관의 삶의 모든 측면에 대한 국가 통제를 확립합니다. 더욱이 그것은 개인과 단체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고 그것이 적용된 모든 국가에서 억압과 파멸을 가져왔습니다(CEV Exhortación 12, 01, 2015).

주교회의는 사목 권고문을 통해 사회주의적 성격의 경제 체제의 비효율성을 지적한 것이다. 마두로 정부가 구시대적 발상과 실패한 이념에 집착한다고 본 것이다. 특히 정부 주도의 경직된 시스템이 경제의 비효율성을 초래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생산성 저하, 생필품의 높은 가격, 인플레이션 문제가 이런 것들과 연관되어 있었다(CEV Exhortación 12, 01, 2015, 15항). 게다가 미국과 같은 초강대국과 서방의 국제 제재는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정치 위기를 심화시켰다. 2015년 이후 전체 국민의 25% 정도 되는 대략 700만 명의 국민이 생존과 더 나은 삶을 위해 베네수엘라를 떠났다. 하지만 국내에 거주하는 주민의 삶도 나아지지 않았다.

2013년 마두로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베네수엘라에서는 권위주의 통치에 반발한 이민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올 상반기에만 4만 4000여명이 스페인으로 이주하는 등 지난 10년간 700만 명이 고국을 떠났다. 국내총생산(GDP)도 80% 하락했다. 풍부한 석유 매장량 덕에 1970년대 세계 20대 부국이었던 베네수엘라는 정치적 혼란이 이어지면서 경제가 무너지고 있다(서울신문 2024, 09, 10).

미국과 서방 세계의 압박뿐 아니라 국내 정치 상황도 마두로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2015년부터 국회의 다수당을 차지한 야당이 마두로 정권을 비판하며 압박하는 형국이 지속되었다. 2016년 9월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카라카스에서 정부에 반대하는 가두행렬을 기획했다. 이런 상황에서 주교회의는 시위와 집회, 정치활동은 국민이 가진 헌법적 권리임을 강조하고 국가는 정치활동에 대한 안전보장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이는 상호 존중과 관용, 그리고 사회적 공존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천명했다(CEV Comunicado de la presidencia 29, 08, 2016).

연속적인 마두로 정부의 경제적 실정과 무능에 이어 헌법 개정 시도가 다시 2017년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불을 붙였다. 마두로 정권은 국회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대법원이라는 사법 시스템을 이용해서 2017년 국회의 권한을 박탈해 버렸다. 그러자 국민적 저항이 시위라는 형태로 4개월간 지속되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강경 진압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백여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고, 체포된 사람도 수천 명이나 되었다. 마두로는 결국 친정부 성향의 제헌의회까지 설치하면서 국회를 무력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마두로는 독재자라는 이미지가 강화되었다.

주교회의는 끝까지 제헌의회를 구성하는 선거가 불필요하고, 부적절하며 국민에게 해악이 된다는 태도를 보였다. 베네수엘라 국민이 요구한 선거도 아니고, 절차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춘 것도 아니며 오로지 소수의 집권 세력과 관료들을 위한 조치라고 평가했다. 정치적 합의가 없는 제헌의회 구성이 높은 물가에 시달리고, 식량과 의약품이 부족한 베네수엘라 상황에 정치 위기까지 가중할 것으로 보았다(CEV Comunicado de la presidencia 27, 07, 2017).

그러자 마두로 정권은 가톨릭교회의 고위 성직자들인 주교들을 향해 설교대가 반동적인 우익 정치를 수행하기 위한 정치의 도구가 되었다고 비난했다. 2017년 마두로는 자신의 지지자들로 구성된 제헌의회에서 통과시킨 법에 따라 성직자들에 대한 형사 수사를 촉구했다. 가톨릭 성직자들이 방송과 소셜 미디어에서 ‘증오’라는 메시지를 전파하는데 앞장서고 있다고 비판하며, 이는 최대 20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는 범죄라고 주장했다. 또한 마두로 대통령은 가톨릭교회가 ‘악, 독, 증오, 변태, 중상모략’으로 가득 차 있다고 비난했다(Editorials 12, 02, 2018). 그러나 이것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명백한 위협으로 민주주의를 침해하는 것이었다. 마두로 정권은 자신의 정권에 반대하는 가톨릭 내 움직임에 재갈을 물리려는 것이었다.

2017년 7월 7일 디에고 파트론(Diego Patron) 주교회의 의장은 마두로가 베네수엘라를 독재 국가로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니콜라스 마두로 정부가 제헌의회를 통해 만들려는 헌법은 독재 국가 형태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았다. 그는 제헌의회가 무력과 정부의 강요에 따라 만들어지면 “군부, 사회주의, 마르크스주의, 공산주의 독재 정권의 헌법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BBC world 17, 07, 2017). 이미 국민주권을 대표하는 합법적인 국회가 마두로에 의해 해산된 상황에서 국민 전체의 보편적이고 자유로운 의사 결정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교회의가 염려한 것은 정부의 권력 집중과 국민에 대한 탄압이었다. 이 가톨릭 지도자들의 대표 기구는 복음과 교회의 사회교리에 근거해서 기본권을 짓밟는 마두로 정권을 비판하며 견제했다. 특히 시위 중에 발생한 폭력과 사망 사건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태도를 고수했다. 2018년 주교회의 의장단은 베네수엘라 사법권이 법적 권한의 테두리를 벗어나 집행되는 현실을 개탄하며 사법기관에 의한 법치주의 훼손을 지적했다. 법적 절차를 무시한 체포와 구금, 공무원과 의원들의 체포, 비인간적인 처우, 고문, 실종 등 정신적·육체적 안전을 위협하는 정부 기관들을 규탄했다(CEV Comunicado de la Presidencia 13, 08, 2018). 같은 맥락에서 2019년 7월 주교회의 산하 정의평화위원회는 다음과 같이 마두로 정부를 비판했다.

베네수엘라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심각한 사건의 조작, 은폐 또는 완화를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로서 우리는 희생자들의 가족과 피해자들의 고통받는 얼굴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을 보는 데 전념합니다. 오늘날 이 두 희생자는 같은 패턴에 시달려 온 다른 많은 시민의 외침을 대표하며, 그들의 사건은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 강제 실종, 고문, 잔혹하고 비인도적이거나 품위를 훼손하는 일들이 군과 경찰에 의해 자행됩니다. (...)이런 부도덕하고 비열하고 불명예스러운 행위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공격이며 공화국이 서명한 협약 및 조약을 위반하는 것으로, 공화국은 이를 명령하고, 적용하고, 관용하는 공무원이나 이를 막을 수 있음에도 이를 막지 않는 공무원에게 직접적인 책임을 묻습니다(Jesuitas venezuela 15, 07, 2019).

한편 2018년 대선은 베네수엘라의 정치 위기를 심화시켰다. 원래는 12월에 투표가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정부는 갑작스럽게 일정을 앞당겨 5월 20일에 선거를 시행했다. 제헌의회와 국가선거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조기 대선 공고가 발표됐을 때 베네수엘라 주교회의는 매우 강력한 어조로 마두로 정권을 비판했다. 먼저 대선 일정을 긴급하게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자유롭고, 신뢰할 수 있고, 공정한 선거가 되어야 하며, 소수의 특정 그룹을 위한 선거가 돼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밝혔다(CEV Comunicado de la Presidencia 14, 05, 2018). 주교들에 따르면 조기 대선 공고는 현행법을 위반한 것이며, 제헌의회 자체가 반헌법적이고 불순한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들은 제헌의회가 권력을 남용하고 있고, 의회의 기능을 상실했다는 보았다. 그러면서 국가선거위원회의 투명성과 중립성이 유지될 수 있도록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CEV Comunicado 29, 02, 2018).

이처럼 마두로 정권의 대선 일정 조정은 가톨릭교회와 야당의 저항을 불렀다. 야당 인사들은 선거를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고, 많은 야당 인사들이 선거에서 원천적으로 배제되었다. 따라서 선거의 공정성에 많은 의문이 제기되었다. 결과적으로 마두로가 67.84%의 표를 얻으면서 재선에 승리했다. 앙리 팔콘(Henri Falcón)은 20.93%, 하비에르 베르투치(Javier Bertucci)는 10.28%를 획득하는 데 그쳤다.7) 그러나 야권과 미국, 유럽연합, 미주기구 등 국제사회는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다. 오직 러시아, 중국, 쿠바, 이란, 북한 등 일부 국가만이 선거 결과를 인정하였다. 국제사회도 베네수엘라 대선 결과를 두고 수용하는 국가와 반대하는 국가로 양분되었다.

2019년 1월 마두로는 취임을 앞두고 국내외에서 사퇴 압박을 받았다. 특히 국제적으로 미국과 유럽, 미주기구, 여러 라틴아메리카 국가가 마두로 정권을 압박했다. 미주기구 상임이사회 특별회의에서는 마두로의 대선 승리를 인정하지 않았고, 재선거를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런 상황에서 베네수엘라 주교회의도 정부를 합법적 정당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이른 시일 내에 선거를 다시 실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지난 1월에도 밝힌 바와 같이, 불법적이고 실패한 정부의 현실 앞에서 베네수엘라는 절박하게 방향 전환, 즉 헌법으로의 복귀를 외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권력을 불법적으로 행사하고 있는 자의 퇴진과 가능한 한 이른 시일 내에 새로운 공화국 대통령의 선출을 요구합니다.
이 선거가 진정으로 자유롭고 주권자인 국민의 의지를 반영하려면 다음과 같은 필수 조건들이 필요합니다: 공정한 새로운 국가선거위원회(Consejo Nacional Electoral)의 구성, 선거인 명부의 갱신, 해외에 거주하는 베네수엘라인들의 투표권 보장, 그리고 유엔(UN), 미주기구(OEA), 유럽연합(EU) 등 국제기구의 감독 등이 그것입니다. 또한 제헌의회의 활동도 중단되어야 합니다(CEV Exhortación 07,11, 2019, 12항).

이런 위기 속에서 국회의장이던 후안 과이도(Juan Guaido)는 마두로의 퇴진을 주장하고, 자신을 임시 대통령으로 선포하였다. 이로써 한 국가에 두 대통령이 존재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되었으며, 베네수엘라의 대선 위기는 2023년 과이도가 임시정부를 해산하고 미국으로 망명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미국과 서방 세력이 과이도를 대통령으로 인정했고, 러시아, 중국, 쿠바 등은 마두로를 대통령으로 받아들였다. 이는 베네수엘라의 정치적 위기와 혼란을 가중하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과이도는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자신을 지지하는 일부 군부 세력을 이끌고 쿠데타를 주도했다. 그러나 정보의 사전 유출과 지지자들의 미온적 태도, 그리고 적극적인 러시아의 마두로 지원 탓에 쿠데타는 실패하고 말았다.

베네수엘라의 정치 위기는 대선이나 총선과 같은 정치 행사를 따라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그럴 때마다 주교회의는 민주적 절차 회복과 민주주의 권리 수호를 외치면서 마두로 정부에 대해 더 자유롭고 정의로운 사회 체제로 전환할 것을 촉구했다. 여기에는 경제 체제의 구조 변화도 포함되었다(CEV Comunicado 10, 03, 2020). 2020년 새로운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 실시되었지만, 야당은 선거의 조작 가능성과 선거 과정의 불공정성으로 인해 선거 참여를 거부했다. 총 27개의 정당이 이 협의안에 서명했다. 그러나 선거 불참으로 인해 마두로가 이끄는 정당이 압승하게 되었고, 결국 국회는 그가 이끄는 정당이 장악하게 되었다. 마두로는 과이도 세력과 야당을 압박하기 시작했고, 체포와 구금, 정치적 탄압도 증가했다. 야권의 의회 진입 실패와 탄압은 과이도 임시정부와 반정부 세력의 저항력을 약화시켰다.

이런 부정적 상황에서 유엔 인권사무소 고등판무관인 미첼 바첼레트(Michelle Bachelet)은 베네수엘라를 방문하고 보고서에서 이 나라의 인권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바첼레트는 야당 인사들과 만났고, 시위로 사망한 희생자들의 가족들과 대화했다. 그녀가 만든 보고서는 마두로 정권 치하에서 공무원들에 의해 자행되는 고문과 살인을 언급하면서 마두로 정권의 범죄성 성격을 드러냈다. 특히 고문, 투옥, 죽음, 추방이나 이주 문제의 심각성을 고발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적,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권리가 광범위하게 침해되고 있음을 언급했다. 유엔 조사단은 마두로 정부가 선거 전후로 야당을 탄압하고 언론 통제 및 시위 억제를 위한 조직적인 억압을 강화했다고 보고했다. 게다가 악화한 경제적 상황과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주민들이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고 언급했다(United Nations High Commissioner for Human Rights 2019). 이에 베네수엘라의 주교들은 2021년 1월 11일 사목교서에서 유엔 인권사무소의 견해를 언급하고 정부에 의해 자행되는 범죄를 고발할 마땅한 기관이 없음을 한탄했다(CEV Exhortación 11, 01, 2021, n. 5).

한편, 2020년 시작한 코로나19의 확산은 식량과 의약품, 재정이 불안정한 베네수엘라에 큰 상처를 남겼다. 경제 상황이 악화하면서 베네수엘라가 점점 더 쿠바처럼 되어간다는 이야기들이 퍼졌다. 왜냐하면 한때 고임금을 받던 대학의 교수들이 한 달 급여로 30달러를 받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Eladio, Hernández, 저자와의 인터뷰, 2025년 2월 7일, 카라카스). 교사, 공무원, 의료진 등의 전문직 종사자들까지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2023년 결국 공공 부문 노동자들이 시위에 돌입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마두로 정권은 이런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임금인상을 시도했지만, 악화한 국가 재정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했다. 그나마 가뭄에 단비가 된 것은 2022년 발발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었다. 이 전쟁은 원유 가격의 상승을 불렀고, 고유가 시대는 베네수엘라에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호재로 작용했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협상이 원만히 해결되지 않자, 석유 확보를 위해 베네수엘라와 대화를 시도했다. 이는 반정부 세력의 힘이 약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국제 에너지난은 마두로를 국제 왕따에서 벗어나도록 하는데 이바지했다(연합뉴스 2022, 11, 28). 하지만 마두로 정권이 질식 직전에 살아나긴 했어도 경제 위기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며, 정치 위기도 어느 정도 계속되었다.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전염병이 창궐한 이후부터 2024년 대선 전까지 가톨릭교회와 마두로 정권 간의 의미 있는 충돌은 없었다. 한동안 지켜보고 관망하는 시기를 보냈다. 마두로 정권은 가톨릭교회와 불안전한 평화 관계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국민에 대한 억압과 정치적 긴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소셜 미디어에 반정부 게시물을 공유하는 사람이나 시위 사진을 소지한 사람조차 체포되었다. 대도시에는 경찰 검문소의 숫자가 증가했다. 베네수엘라 성직자들은 설교, 공개석상,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정권의 이런 폭압적 태도를 비난했다.

빅도르 우고 바사베(Víctor Hugo Basabe) 대주교는 베네수엘라 가톨릭교회 내에서도 독재 정권에 가장 비판적인 인사이다. 그는 야당과 주민들이 주도한 시위에 대해 지지를 표명했다. 2023년 1월 정부의 부패, 국가의 경제 상황, 인권 부족 등을 비난하다 정권의 위협을 받기도 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촉구했다.

저는 여러분께 우리의 사랑하는 베네수엘라를 우리 기도의 중심으로 삼아주기를 요청합니다. 상처받고, 구타당하고, 배신당하고, 극도로 약탈당하는 우리 베네수엘라 형제 대부분이 처한 끔찍한 상황을 숨기려는 경제적 허위의 거품이 끝나기를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The Pillar 21, 08, 2024).

2024년 7월 28일 치러진 대선은 마두로 정권이 독재 정권이라는 의심을 더욱 강화시켰다. 야권의 유력 대권 후보인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Maria Corina Machado)는 2017년 반정부 폭력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후보 자격이 박탈되었다. 결국 전 외교관 출신 에드문도 곤살레스(Edmundo González)가 범야권 후보로 나서게 되었다. 그러나 투표 이후 국가선거위원회(CNE)는 12개 군소 좌파 정당의 연합체인 통합사회주의당(PSUV) 소속 후보인 마두로가 67%를 득표했다고 발표했다. 야당과 시민단체들,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정부 발표를 믿지 않았다. 마두로의 반대 세력은 전국 80% 이상의 개표소의 선거 결과 집계 자료를 근거로 곤살레스 후보가 67%를 득표하면서 30%대에 머문 마두로를 이겼다는 정보를 더욱 신뢰했다(The Wall Street Journal 01, 08, 2024). 이렇게 불투명하고 혼란스러운 선거 결과는 결국 시민들의 저항을 초래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정부의 강경 진압으로 23명이 사망하고 수많은 시위자가 체포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극심한 정치적 대립과 국가 보안군에 의한 탄압을 통한 공포정치의 확산은 시민사회의 활동 축소와 정치가 뿐 아니라 시민들의 정치활동에 제약을 가져왔다. 배타적이고 공격적이며 위협적인 협박성 언어는 대중에게 공포와 함께 분노까지 확산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경찰과 군의 인권침해 행위가 증가하고 권한 남용은 조직적 형태를 띠었다.

미국과 스페인을 비롯한 서방이 곤살레스 후보를 당선인으로 인정하였다. 그러나 콜롬비아나 브라질 같은 라틴아메리카 국가는 개표 결과의 투명한 공개를 요구하면서 입장을 보류했다. 이번에도 국제사회는 갈라졌다. 혼란이 봉합되지 못하고 정치적 교착 상태가 계속되었다.

하지만 주교회의는 정치적 위기 상황에서 침묵하지 않았다. 디에고 파트론과 발타사르 포라스(Baltazar Porras) 추기경은 동료 주교들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2024년 7월 28일 치러진 대선에서 국민적 저항에 직면한 마두로가 자신의 승리를 증명하기 위해 선거 집계를 조작할 수 있다는 징후가 있다며 경고했다(CNA 07, 08, 2024, 재인용). 추기경은 정부의 승리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집권 여당의 태도를 비판했다. 권력 유지에만 혈안이 되어 국제적 여론도 무시하는 폭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정권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정권에 대한 대응은 일종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인식했다. 그리고 베네수엘라 사회가 겪고 있는 민주주의적 좌절을 한탄하며 “베네수엘라가 패권적 독재체제(una autocracia hegemónica)에서 폐쇄적 독재체제(una autocracia cerrada)로 전락했다(El país 12. 02. 2025)”고 선언했다. 패권적 독재체제는 일정한 정도의 경쟁을 허락하지만, 권력을 장악한 세력이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는 독재국가를 말한다면, 폐쇄적 독재체제는 언론, 야당, 선거와 같은 정치적 경쟁과 비판을 할 수 있는 수단이 차단된 순수한 독재 국가를 의미한다. 주교회의는 베네수엘라가 최소한의 다원성과 경쟁을 허락하는 체제에서 경쟁을 억압하고 자유를 극단적으로 축소하는 국가가 되었다고 비판한 것이다.

2.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과 교황청

역대 교황과 교황청은 종교 영역뿐 아니라 정치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교황청은 중세시대부터 외교 문제와 분쟁을 해결하는 무대였다. 20세기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79년 폴란드를 방문하여 이 나라의 민주화와 냉전체제의 붕괴에 영향을 미쳤다. 2013년은 가톨릭교회 내에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 해이다. 차베스 사후 2주일 후 아르헨티나 추기경인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Jorge Mario Bergoglio)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최초의 라틴아메리카 출신 교황이었으며, 예수회 출신 수도자였다. 교황의 새 이름으로 프란치스코를 선택한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을 실천하는 진보 노선의 성직자였다.

전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인물 프란치스코 교황은 평화를 위해 국가 간 대화를 주선하고 적대적 세력 간의 문제를 중재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4년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 과정에 깊숙이 개입하여 두 나라 관계 회복에 중추적 역할을 했다(가톨릭신문 2014. 12. 23). 그는 베네수엘라 갈등에도 대화의 촉진자로 나섰다. 초기에는 단지 베네수엘라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주시하는 데 그쳤으나, 마두로 정권과 반대 세력 그리고 국제적 요청이 빗발치자, 양측의 대화 중재자요 합의의 보증인으로 참여했다(Berkley Center for Religion, Peace & World Affairs, 06,15, 2018)8).

일반적으로 베네수엘라 문제에 대한 교황청의 공식 성명들은 보수적이고 간결했다. 마두로 정권과 갈등을 일으킬 소지가 있는 인권침해와 관련된 메시지는 언급하지 않았고, 반대 세력과 정권 사이의 대화를 강조하고 중재자 역할에 충실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이는 2014년 마두로 정권에 대한 반대 시위가 한 창일 때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대사를 내세워 중재를 시도했지만, 회담이 실패하면서 그런 노력도 중단되었다.

2016년 대선 후보인 엔리케 카프릴레스가 재선거를 요구했을 때도 교황청은 중재를 시도했다. 그러나 국가선거위원회는 재선거 요구를 거부하였고, 전국적으로 시위가 촉발되었다. 교황청의 성과 없는 중재 노력은 오히려 베네수엘라 국민에게 마두로 정권에 이용당하는 것 같이 비췄다.

2018년 대선 과정에 불거진 과이도 국회의장의 대통령 임명에 대해 국제사회의 많은 나라들이 이를 지지하거나 승인했지만, 교황청의 국무장관인 피에트로 파롤린(Pietro Parolin)9) 추기경은 중립적 입장을 견지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는 베네수엘라 국내에서 교황에 대한 많은 비판의 이유가 되었다. 베네수엘라의 야당과 반대 세력의 처지에서는 교황이 분명하고 단호한 목소리를 내주는 것이 베네수엘라 민주화와 상황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2019년 마두로는 교황에게 베네수엘라 정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반대 세력과 정권 사이에 대화를 촉진하는 중재자로 나서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교황은 지난번 대화에서 정권이 약속한 것들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보고 이를 거절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자신을 반대하는 세력이 주도하는 폭력을 중단시키기 위해 교황에게 중재를 요청한 것이다. 마두로는 베네수엘라에서 가톨릭을 대표하는 주교회의가 자신의 반대 세력과 연결되어 있다고 판단했다. 또한 때때로 선을 넘는 정치적 발언하고 있다고 보고, 이들이 정치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바티칸이 주의를 줄 것을 요청했다. 마두로 정권은 교황청이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경우 베네수엘라 주교들을 임명할 때 승인을 지연시키거나 반대하는 전략을 사용했다.10) 또한 마두로 정권은 긴급구호와 저개발국 개발 협력을 지원하는 국제 카리타스 인터네셔널의 인도적 지원에도 방관자적 태도를 보이면서 교회의 노력을 무산시키곤 했다. 이 기구는 교황청이 1951년 설립한 국제구호단체였지만 코로나19가 유행할 때 베네수엘라에서 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았다.

결정적으로 베네수엘라 국민과 국제사회에 충격을 준 사건은 2024년 대선 직후 발생했다. 같은 해 8월 14일 교황대사인 알베르토 오르테가 마르틴(Alberto Ortega Martin) 대주교가 마두로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제출한 것은 공교롭게도 부정선거를 통해 재집권한 마두로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 같은 효과를 주었다. 바티칸이 야당보다는 마두로 정권에 동조하는 듯한 광경이 연출된 것이다. 이는 교황청이 마두로 정부를 선거에서 승리한 정식 정부로 승인하는 것처럼 보이는 착각을 일으켰다.

흥미로운 것은 어느 순간에도 베네수엘라 주교들이 교황청의 이런 태도를 비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주교회의와 교황청이 서로 역할을 분담하며 베네수엘라 위기에 대응하고 있다는 평가를 가능하게 한다. 교황청은 정권과의 관계를 유지하며 중재자의 역할에 충실하고, 주교회의는 국내 상황에 맞게 정권에 대한 비판 세력의 입장과 동시에 정권과 대화하는 대화자의 이중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또한 이웃 국가인 니카라과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가톨릭교회와 정권 간의 정면충돌 상황은 피하고자 하는 것이다. 가톨릭교회와 국가 사이의 대립과 갈등으로 결국 가톨릭교회가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톨릭교회는 탄압의 대상이 되는 상황만큼은 피하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개신교 교세가 확산하는 상황에서 정권으로부터 불이익을 받는 경우 교세가 위축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Ⅴ. 나오는 말

수십 년 동안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는 점진적으로 약화하였고, 반대로 전체주의적인 독재자들로 인해 권위주의적 성격은 강화되었다. 국민을 편가르는 정치적 양극화를 이용해서 국정을 운영한 차베스 정권과 마두로 정권은 타인에 대한 존중, 차이에 대한 관용을 사라지게 했다. 대결과 폭력의 역학은 제로섬 게임 양상을 보였다(Maya 2024, 139-140). 로페스 마야에 의하면 마두로 집권 이후 시민의 의지를 드러내는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서 정권을 민주적으로 교체하는 것이 불가능해지는 구조가 되었다(Maya 2024, 133).

라틴아메리카에서 가톨릭교회는 정권의 지지 세력으로 정권을 옹호하는 활동을 하기도 하지만 거꾸로 그것에 대항해 맞서 싸우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1960〜1970년대 라틴아메리카 가톨릭교회는 권위주의 군사독재에 맞서 민주주의와 인권, 해방과 사회정의를 부르짖었다. 특히 인간 존엄성이 침해되는 상황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반응하며 권력에 대항해 비판적 목소리를 높였다. 21세기 들어서면서 베네수엘라에서도 이런 상황이 재현되고 있다. 교회의 지도부를 형성하는 주교회의는 차베스 정권 때부터 진행된 볼 리 바리 혁명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차베스의 이념과 정책을 비판했다. 가톨릭교회는 차베스 사후 마두로 정권까지 거의 26년간 권위주의 색채를 띤 좌파 정권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유지하고 있다. 이 주교회의의 역할은 교회의 신앙을 보호하고, 사회정의를 외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교육, 복지, 종교 문제 등과 같이 정부 정책과 사회적 문제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고 경제적 위기나 인권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을 자신들의 사명으로 이해한다.

교황과 교황청은 자신들의 외교적, 정치적, 종교적 영향력을 신중하게 활용하려 한다. 이는 과거 역사적 경험과 교훈 때문이다. 도덕적 권위와 정치적 현실주의 사이에서 섬세한 균형을 유지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오늘날 베네수엘라에서 가톨릭교회는 식민시대처럼 실질적이고 직접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도덕적 혹은 정신적 영향력은 절대로 약하지 않다. 가톨릭교회의 최고 수장인 교황과 베네수엘라 주교회의는 이 나라에서 그 어떤 정당이나 정치 세력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베네수엘라에서 인구의 70%는 가톨릭 신자이기 때문에 이런 위기의 상황에서 벗어날 영적, 정치적 지침을 교회에서 찾는 경향이 있다.

베네수엘라에서 가톨릭교회는 사회정의와 인권 수호, 그리고 민주주의 옹호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정부의 선거 부정, 부패, 반민주적 태도, 정부의 경제적 실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고, 탄압받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로인해 가톨릭교회의 일부 지도자들은 정부의 감시와 박해, 그리고 괴롭힘과 비판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가톨릭교회는 국민이 가장 신뢰하는 제도이자 기관으로 여전히 높은 도덕적 권위와 사회적 믿음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정치적 혼란이나 사회적 위기 상황에서 정치적·사회적으로 중요한 소임을 수행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시민사회가 충분히 조직화하지 못하고, 정치가나 언론, 야당조차도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베네수엘라와 같은 실정에서는 시민사회를 대표하는 거의 유일한 기관은 가톨릭교회라고 할 수 있다.

Acknowledgments

이 논문은 2019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19S1A5A2A03038629)

Notes

1) 니콜라스 마두로는 버스 운전사 출신으로 버스 기사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노조의 지도자로 이름을 알리면서 정치에 입문했고, 베네수엘라의 65대 대통령까지 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가 정치적으로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카리스마적 지도자인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후광이 큰 역할을 했다. 우고 차베스는 1998년 지방선거-총선-대선으로 이어지는 결정적 시기에 제5공화국 운동을 창설했고, 마두로는 이 운동을 통해 차베스와 인연을 맺었다. 차베스가 2013년 암으로 사망할 때까지 그는 최측근의 위치에 있었다. 2005년부터 2006년까지 국회의장 직분을 수행했고, 이어서 2013년까지 외교부 장관으로 활동했다. 2012년 차베스가 대선에서 승리하고 4선 임기가 시작되었지만 악화하는 건강 상태는 그의 직무 수행을 불가능하게 했다. 이런 상황에서 마두로는 2012년 10월 부통령이 되었고 차베스 사후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이어받으면서 차베스의 후계자가 되었다.
2) 가톨릭교회는 매우 다양한 위계, 세력, 구조로 되어 있다. 따라서 가톨릭교회라고 말할 때, 일반 신도, 성직자, 주교회의나 교황청 같은 단체나 조직 모두를 포함한다. 그러나 여기서 주로 다루고 분석하는 것은 국가 단위 대표 기구인 주교회의를 의미함을 밝혀둔다.
3) 미카엘 뢰비는 1970년대 라틴아메리카에서 일어난 광범위한 사회적·종교적 운동을 보통 해방신학이라고 부르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고, 이런 운동은 해방 그리스도교 운동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해방신학과 해방 그리스도교 운동을 명백히 구분한다. 해방신학이 주로 신학적 이론이나 성찰을 담고 있다면, 이 운동은 신학보다 앞서 실천된 다양한 그룹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활동을 강조한 용어이다. 이 표현은 신학이나 교회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개념이고, 종교 문화, 사회적 네트워크, 신앙과 실천을 다 포괄한다는 의미로 사용했다(뢰비 2012, 60-61).
4)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이런 사례가 부지기수이지만 한국에서도 이를 김수환 추기경과 박정희, 혹은 전두환과의 관계 속에서 잘 파악할 수 있다.
5) 베네수엘라 현지 조사는 2025년 2월 3일부터 2월 12일까지 이루어졌다. 전문가 인터뷰는 주로 수도인 카라카스에서 진행되었고, 대상자의 이름과 직책은 다음과 같다: 베네수엘라 중앙대학교 전 정치학 대학 학장과 선관위 위원을 역임한 엘라디오 에르난데스(Eladio Hernández), 베네수엘라중앙대학교 정치학 교수 호아킨 오르테가 보니야(Joaquin Ortega Bonilla), 베네수엘라 메트로폴리타나대학 정치학대학 학장인 기예르모 아벨레도 콜(Guillermo Aveledo Coll), 그리고 예수회가 운영하는 베네수엘라 사립 명문 안드레스베요가톨릭대학교 총장인 아르투로 페라사(Arturo Peraza) 신부.
7) CNE, http://www.cne.gov.ve/ResultadosElecciones2018/index.php
9) 파롤린 국무원장은 실용적 노선의 외교관 출신으로 대화와 협상을 중시한다. 그는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협상했으며, 미국과 쿠바의 외교 정상화 과정에 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는 전통적 가르침을 중시하지만, 변화하는 현대 세계에 개방적인 태도를 보이며 교회의 이익이 침해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10) 1965년 베네수엘라와 교황청이 수립한 협정(Concordato)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주교들에 대한 임명권은 교황에게 있다. 다만 사전에 베네수엘라 정부에 의견을 묻고 문제가 없다면 임명할 수 있지만, 만일 반대 의견이 있는 경우 임명을 할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다. 대통령은 주교 임명을 차단할 대단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부 군소 단위의 교구 중 주교 임명이 공석인 경우가 있는데 이는 바티칸과 베네수엘라 정부가 합의에 이르지 못해서 발생하는 경우이다. 주교 임명과 관련해서 교황청은 베네수엘라에서 지속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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