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itute of Iberoamerican Studies
[ Article ]
Iberoamerica - Vol. 17, No. 1, pp.27-60
ISSN: 1229-9111 (Print)
Print publication date 30 Jun 2015
Received 30 Apr 2015 Revised 25 Jun 2015 Accepted 25 Jun 2015

브라질 북동부 무형문화유산 ‘o Tambor de Crioula’의 특성과 의미에 대한 연구

임두빈**
**부산외국어대학교 중남미지역원 HK교수 idb88@bufs.ac.kr
A Study on Brazilian National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 Tambor de Crioula’
Im, Doo-Bin**

초록

이 연구는 브라질 북동부 마라냐웅주를 기원으로 형성된 무형문화재 ‘Tambor de Crioula’를 현지조사와 문헌조사를 바탕으로 진행되었다. 인간이 중심이 되어 일상에서 일어나는 행위를 ‘문화행위’라고 볼 때, 이 행위는 사회를 점진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사회적 실천’에 해당된다. ‘Tambor de Crioula’는 브라질의 역사-사회-이데올로기적 조건 속에서 발현된 소수자의 집단정체성을 보존하고자 한 문화행위에 해당된다. 이런 소수자 문화가 일상에서 그리고 일상의 단절이라는 축제의 참여와 확산을 통해 주류 사회의 주목을 받고 새로운 사회 변화의 방향성과 지향점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Abstract

This is a field and bibliographic study which has the objective of investigating the ‘Tambor de Crioula’ in Maranhão as a representative of hybrid cultural form. Due to the change of historical-social-ideological perspective, the modern brazilian society had to recognize the assets of reference array of the African descent. In this universe, this study proposes a reflection on how ‘Tambor de Crioula’ as an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has become one of interesting subjects, seeking to identify the conflicts and possibilities in the recognition of brazilian national identity.

Keywords:

Afro-Brazilian Music and Dance, Tambor de Crioula, Syncretism, Northeast Brazil, Subculture

키워드:

아프로-브라질 음악과 춤, 땀보르 지 끄리올라, 제설혼합주의, 브라질 북동부, 하위문화

Ⅰ. 들어가기

일반적으로 문화연구는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전제하에 문화의 사회개혁성, 정치성, 권력성 및 이데올로기성에 대해 주로 주목해 왔다. 이 글에서 전제하는 ‘문화’는 단순히 문학이나 미술, 음악과 같은 개별 예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중심이 되어 일상에서 일어나는 행위 전체를 말한다. 즉, 책, 신문 등의 문자 텍스트 ‘읽기 행위’, 음악, 라디오 등의 음성 및 음악 텍스트 ‘듣기 행위’, 연극, 영화, 드라마 등의 영상텍스트 ‘보기 행위’, 공연, 전시회, 축제 등의 문화 장르에 ‘참여’ 행위 등을 ‘문화행위’라고 부를 수 있으며, 이 행위들이 사회를 점진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사회적 실천’에 포함된다고 본다.

브라질 문화 연구에 있어 아프리카인1)과 그들 문화의 유입, 그리고 다른 문화와의 혼합의 역사는 국내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주제로 비교적 많이 다뤄져 왔고 최근에도 여러 연구가 이루어졌다(차경미 2013; 박원복 2014; 이승용 2014; 임소라 2014). 식민시대에 수적으로 소수였지만 주류문화를 차지한 유럽 사람들과 수적으로는 다수지만 사회적으로 약자인 아프리카 노예들, 이 두 가지 집단 문화의 접촉이 시작되었다. 한편, 브라질 식민시기에 수적으로 소수였던 유럽계 자녀들이 주로 아프리카계 노예 유모의 품 안에서 자랐다는 점을 고려할 때, 브라질에서 아프리카 계 문화를 단지 이분법적으로 유럽 문화에 대치되는 소수자, 비주류 문화로 바라보기보다는 주류문화 기저에 중첩되어 있는 혼성문화로 이해해야 한다.2) 이 연구에서 다룰 ‘Tambor de Crioula(이후 ‘땀보르 지 끄리올라’)3)’는 이러한 역사-사회-이데올로기적 조건 속에서 발현되어 현재까지 이어온 문화 행위이자 집단정체성이 ‘신체언어’와 ‘놀이문화’로 전승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연구는 ‘땀보르 지 끄리올라’를 ‘축제’나 ‘놀이문화’의 내적 구조 분석에 중심을 두기보다는 한 특정한 축제의 역사적 배경과 사회적 기능을 통해 브라질 사회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그 연결점을 이해하려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이 연구는 2014년 8월에 Maranhão(마라냐웅 주) São Luís(사웅루이스)시에서 이루어진 현지조사와 문헌조사를 통해 이루어졌다.


Ⅱ. 브라질 북동부 지역 정체성의 특징

브라질은 인구와 면적이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큰 나라이자 남미에서 가장 큰 경제력을 가진 나라이다. 나라가 큰 만큼 지역별 다양성뿐만 아니라 격차 또한 큰 편이다. 남동부와 남부지역이 브라질 총생산량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반면에, 북동부 지역은 겨우 14%만 차지하고 있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2013년에 발표한 인간개발보고서에 따르면, 브라질의 2012년 인간개발지수(HDI)4)는 187개 조사대상 국가 중 79위(0.744)5)였다. 우리나라가 15위(0,891)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브라질에 존재하는 사회, 경제적 불평등의 차가 매우 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인간개발지수와 또 다른 맥락을 가진 지구촌행복지수(HPI)6)가 반드시 경제적인 부유함과 비례하지 않듯이 계량화 된 지수가 인간 삶의 질을 대변할 수는 없지만, 각 지역별로 삶의 질을 비교 분석하는데 유용하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브라질 중앙은행 자료(2009)7)에 따르면, 2007년 자료 기준으로 비교적 유럽계 후손이 많은 남부와 부유한 남동부지역의 HDI가 각각 0.829와 0.824였던 반면, 북동부 지역의 HDI는 전체 평균 0.794에 못 미치는 0.720에 그쳤다고 한다. 이처럼 지표로 볼 때, 북동부 지역 사람들의 삶의 질이 남부와 남동부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하고 교육수준이나 대중 참여 수준이 낮다고 판단하기 쉽다.

그러나 남부와 남동부 지역이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개발논리에 따라 삶의 기준과 목표가 ‘표준화’ 또는 ‘화석화’ 되어가는 경향이 뚜렷한 반면에, 북동부 지역은 포르탈레자(Fortaleza)시 ‘Conjunto Palmeiras’(꼰준뚜 빠우메이라스)지구에서 저소득층 공동체8)를 기반으로 수립된 지역공동체은행 ‘Palmas’ (빠우마스)은행9)과 법정화폐와 함께 1대1 비율로 통용되는 공동화폐 ‘palmas’의 탄생을 이끌어냈다. 이처럼 브라질 북동부 지역은 일방적인 세계화의 흐름에 침식되지 않고 ‘라틴아메리카적 세계화’의 실험이 현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정치적으로는 2014년 대선결과에서 드러났듯이 북동부 지역은 노동당(PT)과 전·현직 대통령의 전통적인 지지자 기반(빨간색)이기도 하다.

<그림 1>

2014년 브라질 대선 후보자별 지지 지역 구분10)

경제적으로는 브라질 인구의 1/4정도를 차지하고 있고, 상대적으로 저 개발된 탓에 정부 발주 대형 프로젝트가 많고 유럽, 미주지역과의 지리적 근접성과 남동부 지역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인건비 등으로 외국 기업들에게 유망 투자지역으로 손꼽혀 ‘브라질의 중국’이라 불리기도 한다.11) 역사적으로는 대서양 해안 중심으로 아프리카 출신 노예 인구의 유입12)이 가장 많이 이루어져 그에 따른 혼혈이 많이 이루어진 지역이면서, 문화적으로도 이른바 브라질 ‘문화원형’13)이라 불리는 향토적 요소들이 제 색깔을 가진 지역이기도 하다. 브라질에 신 국가체제(O Estado novo)14)가 들어선 1938년에 Mário de Andrade(마리우 지 안드라지)에 의해 브라질의 문화유산으로 발굴된 ‘땀보르 지 끄리올라’는 1922년에 선언된 브라질의 모더니즘 운동인 ‘현대예술주간’이후 브라질의 재발견을 통한 민족적 관심으로의 자각에 대한 노력에서 이루어졌다.15)

브라질 민족형성의 특수성에 근거하여 통합을 통해 브라질을 재발견하려는 움직임은 1930년에 일어난 Getúlio Vargas(제툴리우 바르가스)의 10월 군사혁명을 기점으로 구공화국(República velha)의 몰락과 함께 가속화 되었다. 문학 등 문화·예술계는 후기 모더니즘 시기(1930-1945)를 통해 중심지와 주변부의 통합을 통한 대중성의 보편성 추구와 함께 브라질의 민족적 특징을 기반으로 하는 활동에 몰두하게 되었고, 여기서 북동부 지역은 ‘향토주의(Regionalismo)16)’문학의 중심지로서 주변부의 발굴과 중심부로의 통합, 그를 위한 민속 문화의 발굴과 대중화를 위한 문화민주주의(democracia cultural)17)의 중심대상이 되었다18).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과거 국가와 민족으로 굳건하게 정의되었던 집단적 정체성은 동서냉전의 종결과 세계화의 흐름에 따라 배타적인 집단적 문화의 속박에서 벗어나 개인에게 관심이 더 쏠리는 방향으로 해체되는 경향을 보여 왔다. 또한 인터넷의 발달과 그를 매개로 한 대중매체 등에 의해 국경과 민족을 초월한 초국적인 집단문화 정체성을 형성하기도 한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다른 집단과 스스로를 구별 짓기를 목적으로, 또는 사회적 차별을 극복하기 위한 자기보호 차원에서 집단 정체성이 강하게 일어나는 경우도 존재한다.

브라질처럼 다양성과 동질성이 혼재하는 집단에서도 이런 현상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과거 ‘향토주의’로 표방되었던 북동부 지역의 정체성이 바로 그렇다. 류정아(2003)는 “축제가 지역성이나 문화적 정체성의 표현기재가 되는 문화 단위는 점차 국가적 단위에서 소지역적으로 축소되어가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브라질 사회에 내재되어 있는 사회적 차별을 이해하려면 피부색에 관련된 인종 차별뿐만 아니라 중심부와 주변부로 구분되어 왔던 지역 차별 또한 중요한 요소로 작동한다.19) 이와 관련해서, 알메이다(Almeida 2007)은 마빈 해리스(Marvin Harris 1964)가 시행했던 실험과 유사한 방식으로 PSB(Pesquisa Social Brasilieira: 브라질사회조사)에서 흥미로운 실험을 실행한 바 있다. 피부 톤이 다른 8명의 피 실험자들에게 동일한 옷을 입힌 다음 사진을 찍어 설문대상으로 삼았다. 피부 톤은 <표1>과 같이 브라질국립지리통계청(IBGE)에서 정한20) 분류기준인 백인(branco), 흑인(preto), 갈색인(pardo)에 따라, 양쪽 끝에 피부 톤이 가장 밝은 백인과 가장 어두운 톤의 흑인을 배치하고 중간의 6인은 피부 톤이 점차 어두운 정도로 배치했다.

설문 내용은 응답자들로부터 사회적 차별의식을 뽑아내기 위한 17가지의 질문으로 구성되었다(ibid.):

1. 가장 학력이 높을 것 같은 사람은? 2. 누가 가장 ‘제이칭뉴’21)을 잘 부릴 것 같은가? 3. 변호사처럼 보이는 사람은? 4. 중등교육기관 교사로 보이는 사람은? 5. 택시 기사처럼 보이는 사람은? 6. 아파트 경비가 직업일 것 같은 사람은? 7. 청소부처럼 보이는 사람은? 8. 짐꾼처럼 보이는 사람은? 9. 구두 닦기처럼 보이는 사람은? 10. 이들 중 가장 성공하기 어려워 보이는 사람은? 11. 가장 위협적인 사람은? 12. 범죄자로 생각되는 사람은? 13. 가장 가난해 보이는 사람은? 14. 사기꾼처럼 보이는 사람은? 15. 가장 정직해 보이는 사람은? 16. 가장 교양이 있어 보이는 사람은? 17. 가장 머리가 좋아 보이는 사람은?

동일한 방식으로 위의 피 실험자들을 대상으로 ‘사진속의 인물들 중에서 누가 북동부 사람인 것 같은가’라는 질문에서 다음과 같은 중요한 사실들이 드러났다. 먼저, 응답자들이 답변에서 피부 톤이 가장 밝은 두 사람(1, 2)과 어두운 두 사람(7, 8)은 제외시키는 현상을 보였다. 이러한 사실을 볼 때, 브라질 사회에서 북동부 사람들의 피부색 정체성을 ‘갈색인’(pardo)계열, 즉 혼혈을 기본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Ⅲ. 브라질에서 아프리카계 출신을 보는 시각: 인종민주주의의 명암

역사적으로 1500년에 서구에 의해 침략된 브라질에는 식민시대를 통해 미국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아프리카인들이 노예로 유입되었다. 마이오르(Maior 1981)의 연구에 따르면, 대략 1548년부터 노예무역이 중단된 1830년까지 약 300년 동안 4,830,000명이 노예로 아프리카에서 끌려왔다고 한다. 이는 대서양 전체 노예무역의 약 35퍼센트를 차지하는 것으로서 미국에 들어온 노예의 수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다.22)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념상으로나 현지인이나 현지에 사는 교민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브라질에는 인종차별이 없다는 말을 흔히 한다. 그렇다면 실제로 브라질에는 인종차별이 존재하지 않는가? 이 질문의 답은 브라질 헌법에서 인종차별금지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찾아보면 정답이 나온다. 실제로 브라질 현행법에 따르면 인종차별적 언어를 사용하면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과는 다르게 브라질에 인종차별이 없다고 여기는 것은 ‘인종적 민주주의’ (Democracia racial)라는 역사적 특수성에 관련된 담론구성체(그 사회를 지배하는 계층)가 생성해 낸 담론 기반 이데올로기적 층위에서 인종에 대한 브라질 사람들의 생각과 행위를 규정지어왔기 때문이다. 이 담론 구성체는 특정한 언어와 연결되어 연상되는 사고 체계, 즉 프레임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다시 말해서 ‘인종’과 ‘민주주의’로 이뤄진 특정한 언어를 듣고 사용하는 순간 “브라질에 인종차별이 (있을 수) 없다”라는 담론이 ‘자동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작동되게 만든다.23) 현실을 보자면, 소수 엘리트 계층 중심의 과두제로 구축됐던 브라질 식민사회는 근본적인 변화를 겪지 못하고 식민지 시대를 넘어 군주제, 공화제를 거친 오늘날까지 그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 속에서 브라질은 소수 엘리트층을 중심으로 대중들을 규제하는 방향으로 ‘처벌적인’ 법과 제도를 고집해 왔다(DaMatta 1984).

19세기까지 브라질 정치 엘리트들이 지녔던 아프리카계 출신에 대한 인식은 대부분 유럽계를 우월한 인종으로 보았고 혼혈을 부정적으로 인식해왔다. 박원복(2014)의 최근 연구에서 브라질의 지배계층을 차지한 포르투갈 사람들이 아프리카인들에게 가졌던 인식을 정확하게 찾아볼 수 있다24): “열등한 인종들을 기독교 문명으로 이끌고 보호하는 것이 포르투갈 식민사업의 가장 용맹스러운 이념 중 하나이자 가장 숭고한 사업 중 하나입니다.”25)

브라질 식민시대에 백인 주인과 아프리카 출신노예는 각각의 분리된 존재였지만 ‘대저택과 노예숙사(Casa grande e Senzala)’26)라는 공간 안에서 서로 간의 “조화로운”(담론구성체 안에서) 공존(혼혈을 이룰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환경, 하지만 일정 정도 통제가 가능한)을 모색했었다. 그러나 브라질 사회는 1888년 노예해방을 기점으로 갑자기 자유를 찾은 아프리카 출신들의 사회 편입이 이루어지면서 더 광범위하게 혼혈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해방 전까지 ‘노예숙사’라는 공간에서 머물렀던 아프리카 출신노예들이 이른바, 빅터 터너가 얘기했던 ‘코뮤니타스’(Communitas)27)의 존재에서 ‘노예해방’이라는 ‘문지방’을 넘어, 즉 ‘리미날리티(Liminality)’를 통해 구조와 코뮤니타스의 변증법에 의해 정의되는 ‘소시에따스’(societas)에 진입하게 된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고 본다.

공간적으로 주변에 위치하고 당시 학자들은 유럽계 유전자가 우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혼혈에 의한 인종적인 퇴보를 크게 우려하지 않았다. 그 덕분에 혼혈인 엘리트들이 양산되어 1930년대부터는 혼혈 그 자체의 가치를 인정하게 되었고, 이것이 바로 1980년대까지 브라질을 지배한 인종적 민주주의의 이데올로기적 근거가 되어 이제 브라질은 혼혈을 통해서 인종적 조화와 국민적 통합을 이루어나가야 한다고 주장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 안에서 II장에서 언급한 ‘브라질의 재발견’과 더불어 브라질 북동부 지역의 유·무형 문화유산들의 전승과 보존이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던 것이다. 류정아(2002, 24)는 “정치·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상황에 들어가 있거나 반대로 지극히 불안한 상황에서 한 집단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공동 구성원을 결집시키는 가장 효율적인 기재로서 문화적인 요소가 전면으로 부각되었고 축제가 바로 이 기능을 가장 효율적이고 즉각적으로 수행하는 것으로 간주했다고 한다.”고 밝혔다. 그러한 논리를 따라, 이미 II장에서 우리가 살펴 본 바와 같이 MPF(민속연구조사: Missão de Pesquisas Folclóricas)와 ‘향토주의(Regionalismo)’와 같은 ‘대중 문화연구를 통한 브라질의 재발견 프로젝트’가 수행되었고, 이 연구의 대상인 ‘땀보르 지 끄리올라’ 역시 같은 맥락 속에서 발굴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1990년대부터는 이러한 ‘인종적 민주주의’도 위기에 직면하여 혼혈을 통한 인종문제 해결이라는 구상 역시 한계에 달했다. 인종적 민주주의의 개념은 1964년에서 1985년까지의 군부정권 시기에 정점에 도달했다. 브라질 군부가 국가 안보의 가장 큰 내적 위협요소로 여겼던 아프리카계의 저항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인종적 민주주의를 국가 통치를 위한 하나의 도그마로 삼았던 것이다. 여기서 드러난 재미있는 사실은 당시 아프리카계의 인구수가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었는데 실제로는 그 수가 줄어서가 아니라 당시의 혼혈 유행에 따라 인구 조사 시 답변을 ‘아프리카계 후손’을 의미하는 ‘흑인’(preto)이 아닌, 혼혈인 ‘물라토(mulato)’나 ‘모레누(moreno)로 답변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현송(2006)은 “인종은 사회·문화적 구성물로서 부분적으로는 그 기준이 생물학에 근거하고 있지만 인종의 차이를 규정하는 것은 사회적 인식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라고 정의를 내린 바 있다. 실제로 브라질에서 1976년에 IBGE(이베제에: 브라질 국립지리통계청)가 피부색뿐만이 아니라 사회경제적인 요소까지 포함하여 인종을 분류했고 그 수는 자그마치 136종28)에 달한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브라질에서는 대부분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인구 구성에 속해 있는 ‘메스티소(mestiço)’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29)

그러나 1950년대부터 유럽계들이 노예제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인식의 문제뿐만 아니라 식민시대 과거로부터의 큰 사회적 변혁 없이 이어온 사회·경제구조상의 문제로 인해 사실상의 인종적 지배를 통해 이익을 취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서 인종 간의 경제, 사회적 격차가 여전히 매우 크고 그 격차를 줄이는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쏟아져 나왔고 인종적 민주주의는 지배 이데올로기로서의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인종적 민주주의 옹호자들은 흑백간의 경제사회적 격차의 원인이 노예제라는 역사적 산물이므로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감소할 것이라고 주장했고, 비판자들은 그 격차의 원인은 다름 아닌 인종간의 구조적 차별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우리가 브라질의 인종적 민주주의를 사례로 보았을 때 발견한 흥미로운 부분은 실제로 사회변혁담론(인종적 민주주의의 경우)이 쉽게 빠지기 쉬운 단견 중의 하나가 바로 권력을 제도나 기구 혹은 계급의 관점에서 접근할 뿐이지 지식과 이데올로기 또는 문화의 관점에서 규명하는 노력이 미진하다는 한상진(1991, 3)의 주장과 부합한다. 이처럼 브라질의 인종적 민주주의가 지향했던 사회변혁 전략은 부분적인 성공은 거뒀지만 시민사회의 도덕적, 정서적 지원을 받지 못해 한계에 부딪히게 된 것이다.

놀랍게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최근인 1995년에 이르러서 까르도주(FHC) 전(前) 대통령이 브라질 헌정 최초로 국내에 존재한 인종차별의 현실을 인정하고 인종차별금지정책을 실행했다. 그 뒤를 이은 노동당의 룰라 전 대통령 역시 야당이 되어버린 전 정권의 인종차별 시정 정책을 그대로 계승 발전시켰다. 그는 2003년 1월 9일자로 법령 제 10.639호를 공포하여 공립뿐만 아니라 사립학교까지 초·중등교육의 전체 수업시간의 10%를 의무적으로 역사와 예술 교육에 할당하게 만들어 학생들이 어릴 때부터 노예의 역사와 브라질에 녹아들어 있는 아프리카에서 유입되어 녹아든 문화와 예술에 대한 이해를 높이게 했다.30) 룰라 전 대통령은 북동부 출신으로 집권 당시 글로벌 다자관계 외교차원에서 그 어떤 역대 정권보다 대 아프리카 외교에 적극적인 이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다음 장에서는 ‘땀보르 지 끄리올라’의 특징을 통해 앞서 살펴본 ‘인종적 민주주의’라는 이데올로기 전략과는 달리, 일상과 일상의 탈출로 참여하는 문화적 행위를 통해 소수 비주류 문화가 주류문화로 전환되는 긍정적인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Ⅳ. ‘땀보르 지 끄리올라’의 특징

‘땀보르 지 끄리올라’는 브라질 북동부 마라냐웅(Maranhão)주에서 아프리카계 노예 후손들에 의해 전승되는 아프리카 문화에서 기원한 춤 또는 놀이의 일종으로, 동시에 아프리카 출신들이 가장 많이 섬기는 베네디투 성자(São Benedito)31)에 대한 서원(誓願)32)의 이행과 관련된 제례의식의 성격 또한 띠고 있다.33)

<그림2>

마라냐웅주의 위치(출처: Wikipédia)

Ferretti(2006, 98)에 따르면, 브라질 모더니스트들은 아프리카 제례에서 유래된 문화양식들을 ‘정령설’이나 ‘배물주의’로 인식했지만 1960년대에 유네스코와의 공동연구를 통해 명확하지 않고 차별적인 언어 사용을 지양하고 ‘아프리카 종교’로 대체하여 부르기로 했다. 다른 한편, Bastide(1971, 257)는 “땀보르 지 끄리올라는 종교와는 전혀 상관없는, 달리 말하자면 히오지자네이루(Rio de Janeiro)의 삼바처럼 레크리에이션의 일종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Vieira Filho(1977, 20) 역시 Bastide와 같은 선상에서 ‘땀보르 지 끄리올라’를 종교적 의례 일종으로 보지 않고 카니발 기간을 포함하려 연중 내내 벌어지는 놀이 문화로 정의를 내린 바 있다. 그러나 놀이, 종교적 요소, 민중적 요소들이 혼합되어 있는 것이지 놀이, 종교, 미신으로 단절되어 구분하지 않는 것이 학자들의 중론이기도 하다.

‘땀보르 지 끄리올라’는 ‘batucada(바뚜까다)’34)와 비슷한데, ‘땀보르 지 끄리올라’는 브라질문화재청(IPAHAN)에 의해 2007년에 마라냐웅 주가 보유하고 있는 특별한 브라질무형문화유산 중의 하나로 지정되었다. 이 문화양식은 달리 정해진 날짜 없이 야외공간을 무대로 수시로 출현하는데35) 무엇보다도 카니발과 ‘6월 축제’(festa junina) 기간에 그 출현 빈도수가 가장 높다. 그리고 또 다른 대표적인 북동부 지역 무형문화유산인 ‘Bumba-meu-boi’(붐마 메우 보이)36)와 같이 진행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땀보르 지 끄리올라’에 대한 기원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백인 주인들의 지배에 대한 저항과 자신의 뿌리를 보존하고자하는 열망과 노예해방을 자축하는 축제에서 기원했다는 설이 있다. Costa(2004, 6)에 따르면, 이 ‘땀보르 지 끄리올라’는 도망간 노예들이 마을을 형성했던 ‘quilombo(낄롬부)’에서 자유를 축하하는 ‘몸짓’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 ‘춤’을 만들어낸 도망자 노예들을 아프리카 반투(bantu)어로 ‘macumbeiro(마꿈베이루)’라고 부른다.

Ferretti(2002)37)의 연구에 따르면, ‘땀보르 지 끄리올라’는 좀 더 남쪽 지방에서 성행한 ‘Capoeira(까뽀에이라)’처럼 식민시대에 유럽계 주인 앞에서 감춰져 전승되어 온 아프리카 출신노예들의 싸움 기술의 일종이라고 한다. Salvador(사우바도르)에서는 ‘berimbau(비림바우)’의 소리, Maranhão(마라냐웅)에서는 ‘tambor’(땀보르/북)소리에 율동을 실어 본래의 위협적인 몸동작을 숨겨왔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땀보르 지 끄리올라’는 북소리 장단에 맞춰 행하는, 바이아(Bahia) 지방의 ‘까뽀에이라’와 같은 공격적인 다리 놀림이 원형이었지, 원래부터 춤사위는 아니었다고 한다.

류정아(2003, 23)는 아프리카에서 유래한 문화행위들에 대해 “아프리카 출신 노예들은 백인들의 지배 하에서 자신의 문화정체성을 상실하고 피폐한 삶을 영위하다가 축제의 초월적 에너지를 통해서 현실의 고달픔을 잊고 잠시나마 과거 삶으로의 회귀하는 경험을 갖는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다시 현실적인 일상에 돌아왔을 때 극단적인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문화행위를 일종의 ‘치유’의 의미로 해석 했다. 실제로 당시 브라질로 끌려온 흑인노예들은 서로 말이 다른 종족들과 함께 섞인 상태였기 때문에 상호간 의사소통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행위’는 노예들 간의 친목도모와 더불어 아프리카 출신들 간의 연대의식 강화와 문화 보존을 위한 일종의 신체언어의 역할을 했다. 노예제도 아래에서 유럽계 지배계층의 압제에 대항하고 자신의 문화를 보존하려는 저항 운동의 하나로써 숨어서 행해지거나 신크레티즘을 통해 행해지다가 노예해방 후, 하나의 관습으로 변했고, 70년대를 거쳐 브리질 민족정체성을 인증하는 하나의 춤사위로 승격되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38) 이런 해석이 신빙성을 얻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땀보르 지 끄리올라’에서 여성 무희가 등장하게 된 시기가 바로 노예제도가 폐지(1888)된 이후라는 사실이다. 이는 즉, 싸움이라는 기본적인 동작의 개념이 축제와 민속놀이의 전형적인 춤사위로 그 지위를 물려주었다는 사실을 뒷받침해주는 증거로 채택되는 것이다.

‘땀보르 지 끄리올라’는 전술한 바와 같이 마라냐웅 주의 아프리카계 노예 후손으로부터 전수되어 온 춤을 통해 참가자들, 북소리, 노래라는 삼박자가 어우름을 이루어내는 축제이자 놀이문화이다. 이 축제는 북 울림소리와 노래가 참가자들의 원형 짓기를 통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Samba de Roda(삼바 지 호다)’같은 다른 종류의 아프로-브라질(Afro-Brasil) 축제에서도 나타나는 공통적인 요소들 역시 갖추고 있다.

Ferretti(2002)에 따르면, ‘Tambor de Crioula’에서 보여주는 춤사위는 일반적으로 야외 공간, 무희들(coreiras), 노래 부르는 사람, 고수(鼓手: coureiros), 구경꾼들로 둘러싸인 원 안에서 이루어진다. 연구자의 현지 관찰을 통해 그 모습을 재구성해 보면, 그 원은 자연스럽게 구성되는데 고수들이 도착해서 네 개의 각기 높이가 다른 가죽 북을 모닥불로 그을리며 음 조율을 한 뒤에 오른쪽에서 왼쪽 순으로 ‘그란지’(grande)39), ‘마뜨라까’(matraca)40), ‘메이아웅’(meião), ‘끄리바도르’(crivador)41)’로 불리는 북을 놓고 두드리기 시작하면 노래 부르는 이들을 따라 참가자들이 도착한다. 이들이 각각의 옆에 서서 원형을 이루고 남자가 노래를 뽑아내기 시작하면 모두가 따라 부르면서 무희들이 춤사위를 시작한다. (중략). 주변에서 다른 무희들이 왼쪽과 오른쪽으로 사람들과 자리를 바꾸면서 자기가 들어갈 순서(이 순간을 ‘punga(뿡가)’ 또는 ‘umbigada(웅비가다)’라고 부름)를 기다리는 사이에 원안에 여자 무희 한 명이 들어간다.(중략). 원 안에 들어간 무희는 원안에서 빙글빙글 돌면서 각자의 춤사위를 뽐내지만42) 그 각각의 춤이 ‘뿡가’를 통해 하나로 연결되는 모습을 관찰해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모든 무희들은 고수의 북소리에 따르며 그 리듬과 무희들의 춤사위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43)

원안에 들어갈 무희의 순서를 가리키는 ‘뿡가’는 북소리와 자기가 원안에 들어갈 정확한 순간을 가리킨다. 축제의 중간에 무희들과 고수들 사이에서 밀고 당기는 유희가 존재하지만 그 순간들 사이에서 가장 큰 절정을 일으키는 순간이 존재한다. 바로 이 순간을 ‘뿡가다’(pungada: ‘뿡가’가 이뤄진) 라고 부른다. 이 순간은 큰 북을 가진 고수 한 명이 단독 연주로 이끌어낸다.

‘뿡가’는 ‘땀보르 지 끄리올라’ 춤사위의 절정 순간을 가리키며 여자 무희들에게 원 안으로 들어가는 초대장 역할을 한다. 원 가운데 들어가 춤을 추던 무희가 교체를 원하게 되면 자기 자리를 넘겨줄 동료에게 다가가 ‘뿡가’를 넘길 기회를 기다린다. ‘뿡가’를 건네는 방법은 실제로 무희들 간에 다양한 방식이 존재하지만 기본적으로 ‘뿡가다’가 이루어지는 순간에 순간적으로 ‘서로 배를 부딪치는’ 동작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런 접촉 방식은 매우 관능적이며 ‘땀보르 지 끄리올라’ 공연의 백미에 해당한다. 이런 동작은 또 다른 아프로-브라질 춤에서 ‘umbigada’(웅비가다)로 불리는 무희들의 동작과도 맥을 같이 한다. 과거에는 에로틱한 동작으로 흑인노예들의 짝짓기에 동반된 동작이었다는 설도 전해온다. 현대에서는 그냥 춤의 한 요소로써 중앙의 무희가 다른 무희를 불러내고 교대하는 신호로 사용된다. ‘뿡가’는 복근부위, 흉부, 엉덩이, 허벅지 등 다양한 부위를 부딪치면서 교환된다. 오늘날에는 손뼉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과거에 주로 이루어진 남자들의 ‘뿡가’는 그 목적이 도전을 받아들인 상대방을 땅에 쓰러뜨리기 위한 호전적인 동작이었다. 전술했던 내용처럼 이러한 성격으로 인해 ‘뿡가’는 종종 까뽀에이라(capoeira)와 비교되곤 한다(Ferretti 2006, 106). 이 ‘뿡가’는 아프리카 반투(bantu)족에서 유래된 싸움기술인 ‘batuque’(바뚜끼)를 연상하게 만든다. Carneiro(1937)는 ‘땀보르 지 끄리올라’ ‘까뽀에이라’의 한 변이형으로 보았으나 아직 마라냐웅 주 안에서 존재했던 까뽀에이라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은 발견된 적이 없어 그 둘 사이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아직 밝혀진 바 없다고 밝혔다(Ferretti 2002, 50-51에서 재인용).

브라질에서 나타나는 대중적인 축제에서 현존하는 또 다른 가장 큰 특징은 ‘cachaça’(까샤샤: 사탕수수 증류주)의 사용이다. cachaça는 일반적으로 축제참여자들의 금제를 풀거나 마취시키는 기제로써 축제를 조직한 사람이 나눠주는데, 이에 관해 생존하는 가장 오래된 ‘땀보르 지 끄리올라’ 연주자의 증언을 빌자면, “세 번째 마당이 끝날 때쯤이면 북치는 손이 저려온다. 이때 술을 돌리며 이 통증을 완화시킨다. 술기운에 잠이 오는데 자정이 다가올 때쯤이면 ‘까샤샤’로 더 이상 통증은 느끼질 못한다. 그리고 아침 동틀 때까지 ‘달리는 것’이다. ‘까샤샤’는 손과 목을 적시면서 부끄러움을 잊게 해주고 이 축제가 끝날 때까지 우리를 인도해 준다.”44)

그렇다고 해서 ‘땀보르 지 끄리올라’가 마냥 술기운에 젖어 벌이는 바쿠스적인 축제만은 아니다. ‘술’의 사용에 있어 또 다른 진술을 들어보면, “다른 이들 앞에서 좋은 본보기가 안 되기 때문에 과음은 피한다고 한다. 집단을 위한 책임감을 서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누구라도 그 안에 들어와 주정을 부려서는 안 된다. 이것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책임감의 문제고 이런 문제가 일어난다면 우리가 어려움에 처할 것이다.”45)

위의 진술로부터 집단적으로 유희를 즐기는 축제 구성원들의 진술을 통해 이 축제가 지닌 사회성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이 축제를 통해 노예들은 서로간의 사회적 유대관계를 강화시키고, 그를 통해 의식적이면서 조직적인 구조화를 이루어냈다. 그래서 오늘날 ‘땀보르 지 끄리올라’의 재현을 이끄는 다양한 동기들을 일일이 손꼽아보거나 정의하는 일은 쉽지 않다고 한다. 현재 이 ‘땀보르 지 끄리올라’는 브라질 내에서 열한 번째이자 마라냐웅 주에서는 첫 번째로 브라질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마라냐웅주의 주도인 사웅루이스(São Luis)시에만 81개 팀이 활동 중이라고 한다. 브라질 문화재청이 ‘땀보르 지 끄리올라’를 자국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킨 행위는 하위계층문화의 개념으로 아프리카 출신 브라질 계층문화의 저항의식을 담은 형태로 폐쇄된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망각하고 억압하고 배제한 것들의 저장소를 표면으로 끌어내는 노력의 일환으로 평가된다.


Ⅴ. ‘땀보르 지 끄리올라’의 가사 분석

‘땀보르 지 끄리올라’를 제의의 한 종류로 본다면 “제의는 하위문화와 상위문화 간의 중재자 역할을 하는, 의사소통의 한 형태이자 문화의 전수자이다. 제의는 사회 정보를 소통하는 일종의 언어이며, (중략) 제의는 언어로 취급되어야 하며 이는 사회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문화를 전달하는 것이다.”46) 더글라스는 언어적 기호와 제의, 사회의 연대를 첫째, 집단의 연대나 공동성의 수준이 높을수록 언어기호는 제한된다는 것과 둘째, 연대나 공동성이 낮을 수록 언어기호가 더 정교할 것이라는 두 가지 명제로 요약하여 연결시켰다. V장에서는 이런 관점에서 ‘땀보르 지 끄리올라’의 대표적인 가사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땀보르 지 끄리올라’의 가사연구는 먼저 언어의 구술적 성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일단 ‘땀보르 지 끄리올라’의 가사는 읽고 쓸 줄 모르는 사람들, 즉 문자를 모르는 아프리카 출신 노예들의 1차적인 구술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 다시 말해서 가사는 반복해서 듣고 부르면서 귀와 입으로 배운 것이다. ‘땀보르 지 끄리올라’에 참가하면서 집단적으로 가사를 외우고 즉흥적으로 고쳐 부르거나 자신의 말투로 바뀌는 과정을 거치면서 전승되어 온 것이다. 그리고 노래는 기호 간 성격을 띤 담론의 한 장르이다. 가사 혹은 멜로디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그 두 가지 기호가 동시에 결합된 것이다. 이런 근본적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방법론적으로 ‘땀보르 지 끄리올라’의 가사의 내용을 살펴보기 위해서 일단 멜로디는 연구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땀보르 지 끄리올라’의 노래 가사에는 기본적으로 반복되는 구조가 존재한다. 자기소개, 인사, 청중과 동료 간 인사, 가수와 무희들에 대한 자찬, 수호성인(베네디투 성자(São Benedito)가 가장 많이 언급됨)들에 대한 존경과 찬미, 풍자, 일상사 표현, 기념될 만한 일들과 사람, 사랑의 표현, 여인에 대한 존경, 가수들 간의 경쟁, 작별 등.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이런 요소들이 교과서처럼 그대로 재현되지 않고 대부분 즉흥적으로 연출된다.

아래는 ‘땀보르 지 끄리올라’에서 아프리카 출신들의 수호성인을 찬미하는 항목으로 베네디투 성자와 관련 있는 가사들이다.47)

첫 마당: 나의 베네딕토 성자

1. 나의 베네딕토 성자여

2. 저는 당신의 종이니

3. 내가 당신 발밑에서 숨을 거둔다면

4. 구원 받으리라는 것을 압니다.

즉석 후렴구

5. 나의 베네딕토 성자여/나는 구원 받으리(합창)

6. 신봉자는 이미 도착했고/나는 구원 받으리

7. 나와 얘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 나는 구원 받으리

8. 만일 내가 죽는다면 그에게 청하리/나는 구원 받으리

9. 내가 가치를 부여하는 한 가지/나는 구원 받으리

10. 기도를 드릴 때가 아니라 북을 울릴 때/나는 구원 받으리

11. 강에 그물을 던졌다네.

12. 이제 나는 자유라네.

13. 강에 그물을 던졌다네.

14. 이제 나는 자유라네.

15. 물고기의 코고는 소리를 통해

즉석 후렴구

상기 가사에 내포되어 있는 역사-이데올로기적 유표들을 추론하기 위해서는 아프리카 출신들의 역사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브라질 식민지 시절에 포르투갈 인들이 취급했던 주요 무역 품목 중의 하나는 바로 아프리카 출신 노예였다. 당시 아프리카 출신노예 매매는 금, 다이아몬드, 담배와 설탕과 마찬가지로 유럽인들에게 큰 부를 안겨주었다. 대서양을 건너 온 아프리카 출신 노예들은 단순히 유럽계들이 필요로 하는 노동의 도구로 건너온 것은 아니었다. 지배계층인 유럽인들이 인식을 못했거나 그런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지만 바늘에 실이 따라가듯이 아프리카 출신노예들의 브라질 유입은 그들이 고향인 아프리카에서 누렸던 관습, 신앙과 각종 문화행위의 유입 또한 의미한 것이다.

식민지 시대 브라질에서 노예제도는 모든 방식과 수준을 망라하여 노예들이 주인의 뜻을 거스르지 못하도록 강제했다. 주인의 명령을 따르지 않거나 탈출이나 도둑질과 같은 중범죄를 저질렀을 때, 노예들은 ‘pelourinho(뻬로우린뉴)’라 불리는 시내 광장에서 거꾸로 매달려 태형과 채찍질을 공개적으로 당했다. 강제노역과 함께 신체가 구속된 환경은 아프리카 출신노예들이 이전에 영위했던 자신들만의 의식이나 제례를 공개적으로 지속적으로 유지시킬 수 없었다. 따라서 이 ‘이교도들이 벌이는 제례의식’은 주로 유럽계 주인들이 자신들의 숙소로 돌아간 이후인 야밤에 몰래 이루어졌다48).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제례의식을 좀 더 자유롭고 용이하게 치루기 위해 주인들의 종교인 가톨릭을 ‘상놈이 양반탈을 쓰는’ 방법을 취하게 되었다. 이런 ‘제설혼합주의(sincretismo)’는 노예제도 안에서 아프리카 출신들이 가졌던 하나의 저항 의식의 문화적 의미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위의 첫 마당 “나의 베네디투 성자여”라는 가사에서 가톨릭의 베네딕토49) 성자는 노예라는 상황에 놓인 발화자(enunciador)가 구원을 찾는 “아프리카 계 성자”로 탈바꿈되고, 흑인노예는 유럽계 주인의 노예가 아닌 베네디투 성자의 종이 되면서 노예에서 벗어나 구원을 받는 가능성을 노래하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왜 아프리카 출신노예들은 그 많은 가톨릭 성자들 중에서 하필이면 베네딕토 성자를 골랐을까?

베네딕토 성자는 1524년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 섬에서 에티오피아에서 온 노예집안의 후손으로 태어났다는 설과, 그가 북부 아프리카에서 잡혀 온 노예출신이었다는 설이 주로 유력하다. 두 가지 설 모두 다 베네딕토 성자를 무어인 출신으로 짐작하고 있으며, 피부색은 흰색으로 추정하고 있다. 가난한 이들의 구원자인 베네딕토 성자는 야밤에 수도원의 양식을 빼내어 도시의 길거리에 가득한 굶주린 사람들에게 나눠준 기행으로 유명한 성자이다.

Carvalho(2000, 28)의 분석에 따르자면, 첫 마당의 가사 중, 노예의 후손들이 다시금 노예를 자처하는 부분에 주어진 의미는 수호성인의 종임을 선언하는 영적 변화이지, 사람의 종이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11-16 소절은 구약에서 사도가 헛되이 강에 그물을 던지고 있다가 예수님이 배에 올라 그물에 고기를 가득 채우는 장면을 본 딴 것이다. 담론 연구에서 텍스트들 사이의 관계를 ‘상호텍스트성’이라고 부른다. 이는 한 텍스트의 의미와 해석이 한 사람의 독창성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용구들의 모자이크로 구축되어 다른 텍스트를 수용하고 변형시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시 말해서 담론은 고립적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다른 담론과 이어진다. 이처럼, “나의 베네디투 성자여”라는 소절은 베네디투 성자에게 백성들(즉, 아프리카 출신노예들)의 주린 배를 채워줄 책임을 지우는 걸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기적을 브라질 마라냐웅에서 다시 재현하는 소절은 ‘희생’과 ‘보상’이라는 두 개의 카테고리를 통해 주어진 ‘고난’이 있으되, 믿음이 있으면 그 ‘보상’은 보장된다는 메시지로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둘째 마당에는 베네디투 성자를 칭송하는 소절을 발견할 수 있다50).

둘째 마당: 가죽 북 소리가 대지에서 신음한다.

1. 가죽 북 소리가 대지에서 신음한다.

2. 가죽 북 소리가 대지에서 신음한다.

후렴(즉흥적)

3. 베네디투 성자시여 (가죽 북 소리가 하늘에 울려 퍼진다)

4. 제가 이제 도착했나이다. (가죽 북 소리가 하늘에 울려 퍼진다)

5. 저는 노래 부르고 있으며 이제 구원 받았나이다(가죽 북 소리가 하늘에 울려 퍼진다)

Lobo(2009)의 분석에 따르면, 둘째 마당의 1-2소절은 대지에 울려 퍼져 반향 되는 북소리가 영적인 조화를 이뤄내는 것을 드러내며 북소리의 힘으로 구원의 가능성이 본다고 한다. 3,4,5절에서는 앞 절에서 부른 ‘대지에서’가 ‘하늘에서’로 바뀐다. 여기서 베네딕토 성자는 죄를 사함에 있어 책임을 가진 주체로서 등장하고, 가톨릭 신앙에 의해 사람들은 구원을 통해 영생을 얻는 상징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 이런 모습을 띠기 때문에 아프리카 출신 노예들의 단체 행동을 엄격하게 규제했던 유럽인들이 노예들, 즉 이교도들이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모습에 감명을 받으면서 하위계층들의 독자적인 문화행위를 허용했지만 실상 이것은 저항 문화였다. 그 결과 오늘날 브라질에서 베네딕토 성자의 피부색은 유럽계 피부색이 아닌 아프리카 출신의 피부색으로 변모되었다.

위 소절마다 등장하는 ‘가죽’ 역시 단순히 북의 재료로서의 가죽만이 아니라 사람의 ‘피부’의 개념을 또한 내포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다시 “가죽 북 소리가 대지에서 신음한다”라는 소절을 보면, 그 ‘가죽’이 가리키는 것은 주인 손에 채찍질을 받아 너덜너덜해진 노예의 피부라는 것을 눈치 챌 수 있다. “가죽 북소리가 하늘에 울려 퍼진다” 소절은 대지에서 채찍질로 받았던 고통이 베네디투 성자를 통해 구원을 얻은 하늘에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구원’의 성격을 보여준다.


Ⅵ. 나가는 글

우리는 브라질 북동부 지역 무형문화유산 ‘땀보르 지 끄리올라’를 통해 ‘문화’란 것이 엘리트만의 영유물이 아니며 ‘문화 행위’와 그를 소통의 매개체로 넘어서는 ‘사회적 행위’를 통해 대중화, 사회화된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다. Wolton(2012)은 “사회적, 문화적 소통이 사회의 이질성을 반영하지 못하면 ‘보이지 않는’ 집단들은 훗날 요란스럽게 귀환할 것을 기약하며 소리 없이 사라질 것”이라며 소통과 문화가 연결되어 있는 이유를 강조한 바 있다.

일반적으로 사회 변화와 개혁의 동인으로 자본, 계급, 교육, 이데올로기 등의 요소들이 주목받아왔고 문화가 그 자리를 차지한 경우는 드물었다. 50년대 중반이후 사회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동인으로써 문화연구의 중요성이 대두되었고 일상에서 참여하는 문화적 행위 역시 사회변화에 이바지 하고 있음을 규명해 오고 있다. 이런 경우는 전 세계 각지에서 발견되는 현상이며, 특히 주변부나 소수자의 문화행사가 중심부나 주류문화로 전환되는 사례를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이 연구에서 ‘땀보르 지 끄리올라’ 역시 과거 식민지 시대로부터 유럽계의 억압을 피해 살아남은 아프리카 노예와 그 자손들이 이어온 비주류, 소수자 문화51)임에 불구하고, 개별보다는 보편성이 강조되는 현재 글로벌 시대에서 ‘브라질성(brasilidade)’이라는 명제를 지켜내는 하나의 사회적 행위로 자리매김 함을 살펴볼 수 있었다. 메리 더글라스의 말을 빌자면, ‘땀보르 지 끄리올라’는 브라질 사회에서 상위문화와 하위사회 간의 중개자 역할을 하는, 의사소통의 한 형태이자 문화의 전수자 중 하나인 것이다. 주류문화와 소수문화의 대립은 그 문화가 속한 사회의 중심부와 주변부 사이의 갈등과 대립을 의미하며52), 그 영향을 통한 사회변화는 불가피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소수자들의 일상에서 그리고 일상의 단절이라는 축제의 참여와 확산을 통한 이런 문화행위는 그 행위자들이 사회의 주목을 받고 새로운 변화의 방향성과 지향점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Acknowledgments

* 이 논문은 2008년 정부(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08-362-A00003).

Note
1) ‘언어사용’ 역시 ‘문화행위’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실천’과 연결된다는 취지 아래 본문에서는 ‘흑인’이라고 호명하지 않고 ‘아프리카인’ 혹은 ‘아프리카 계, 또는 출신’으로 표현하기로 한다. 단, 맥락상 논문의 취지를 벗어나지 않는 경우에 한해 허용할 수는 있다.
2) 브라질 사회에서 아프리카인과 아프리카계 브라질인의 중요성은 식민지시대 말기의 인구통계에서 확인할 수 있다(Fausto, 54).
3) ‘tambor’는 북을 가리키며, ‘crioula’는 혼혈을 가리킨다. 포르투갈어 권에서 crioulo는 브라질에서 태어난 아프리카 흑인의 후손을 두루 칭하는 반면에, 스페인어 권에서 criolo는 아메리카에서 태어난 유럽인 후손을 가리킨다.
4) 유엔개발계획(UNDP)에서 발표하는 인간개발보고서(HDR) 중 인간의 삶과 관련된 지표 중 한 항목이다(출처: http://ko.wikipedia.org/wiki/%EC%9D%B8%EA%B0%84_%EA%B0%9C%EB%B0%9C_%EC%A7%80%EC%88%98).
6) 영국의 신경제단이 2006년 7월에 도입한 지표로 사람들의 행복과 참살이 지수를 말한 것이다. 삶의 행복지표, 환경오염지표, 기대지수 등을 반영한 것이고 각 국의 GDP, HDI 등은 반영했지만 ‘지속가능성’은 고려되지 않았다

(출처: http://www.happyplanetindex.org/data)

7) 브라질 중앙은행에서 2005-2007년의 3년간 조사한 자료
8) 약자로 ASMOCONP로 표기함. Associação dos Moradores do Conjunto Palmeira(꼰준뚜 빠우메이라스 거주자 연합)
9) banco comunitário de desemvolvimento. 약어로 흔히 BCD로 불린다. 1998년 포르투탈레자에서 생겨 2014년 현재 14개 도시에서 활동 중이다. 공동체 화폐 ‘palmas’는 현재 e-머니 형태로까지 진화하고 있다.
11) 우리나라도 한국-브라질 합작 제철소인 CSP 건설을 위해 북동부에 진출중이며, 2012년 브라질 유력 경제지 EXAME에서 “한국 용병이 시아라 주를 침범하다”라는 자극적인 표제로 소개되었으나 내용은 우호적인 논조로 다뤄졌다.
12) Maranhão(마라냐웅)주에는 17세기-19세기에 현재의 가나공화국을 통해 아프리카 노예들이 대거 유입됐다.
13) 김교빈(2005, 11)에 따르면, ‘문화’와 ‘원형’을 결합한 ‘문화원형’은 20세기 말 문화콘텐츠 산업이 주목을 받으면서 쓰이기 시작했다고 하며, 문화원형을 찾는 직업은 마치 언어학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여러 가지 단어들의 어원이 무엇이며 그로부터 나온 파생어가 무엇인지를 찾는 노력과도 같다고 한다. 조금 더 부연해서 정의를 하자면, 여러 가지 다양성을 띤 문화현상들 가운데 다른 민족이나 집단과 구분되는 고유성과 정체성을 담은 요소를 ‘문화원형’으로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14) 1937년 제툴리우 바르가스가 선포한 국가의 중앙집권화를 통한 독제체제.
15) Mário de Andrade와 MPF(Missão de pesquisas Folclóricas)라는 ‘대중 문화연구를 통한 브라질의 재발견 프로젝트’가 브라질 민족문화 활성화를 위한 공공정책 수립에 큰 기여를 하였다. 그가 1938년에 São Luís에서 Tambor de Crioula를 브라질의 문화유산으로 처음 인지했고 1948년에 Oneyda Alvarenga를 통해 보고되었는데 실질적인 연구는 1977년 이후에 진행되었다(Ferretti, 2006 참고).
16) 브라질의 각기 다른 지역을 역사적·사회적, 그리고 언어학적으로 다루려는 모더니즘의 가장 의미 있는 문학운동으로 상파울루지역은 Paulistanismo, 북동부지역은 Regionalismo Nordeste, 남부지방은 Gauchismo, 미니스제라이스(Minas Gerais)지역은 Mineirismo으로 부른다(이광윤/박원복 1998, 192).
17) Langsted는 ‘문화의 민주주의’가 모든 사람을 위한 문화‘라고 한다면 ‘문화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에 의한 문화’라는 문화수용자의 주체적 측면을 강조하는데 차이가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서복순 2007, 42)
18) ibid., 190-196. 참고
19) 물론, 브라질에서 인종차별과 지역차별은 구분되는 개별 사항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불가분의 관계성을 띠고 있다.
20) IBGE에서 설정한 피부색 기준은 다섯 가지로 백인, 갈색인, 흑인, 황인, 인디오로 구분하고 있으나, 상기 실험에서는 아시아계나 원주민에 해당하는 인디오에 대한 피부색에 따른 차별을 중심에 두고 있지 않다.
21) 법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사회현실의 개인적인 문제해결을 위한 브라질식 편법을 일컬음. 주요 국내연구는 “제이칭뉴(jeitinho brasileiro)를 통해 본 브라질의 일상 문화코드(2013)”와 “일상에서 교환되는 ‘브라질 제이칭뉴)의 사회문화적 기능에 대한 고찰(2010)”, “지식정보사회에서 문화자본으로서 브라질 제이치뉴와 중국의 꽌시(2013)”을 참고.
22) 이성형 편(2010).『브라질: 역사, 정치, 문화』. 까치. 127
23) ‘경제 민주화’라는 담론 역시 마찬가지의 프레임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4) 포르투갈 사람들에게 국한된 것이 아닌 당시 유럽에 팽배했던 백인 우월적 계몽주의의 영향이 강했다.
25) 1933년 포르투갈에서 신국가체제가 출범하던 해에 열린 제 1회 식민지 총독 컨퍼런스 개막식에서 살라자르 총독의 연설 중에서(박원복 2014, 11에서 재인용).
26) 국내에서 주로 ‘주인과 노예’라는 영어본의 제목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원 저자의 의도나 책 내용에서 비춰볼 때 ‘주인’과 ‘노예’라는 사람 중심보다 ‘대저택’과 ‘노예숙사’라는 “주인‘과 ’노예‘가 구분되면서 동시에 함께 어우러졌던 공간을 더 염두에 두었던 점을 강조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본다.
27) ‘코뮤니티(Community)’가 지역적·공간적 의미만을 규정하는 의미로 사용되는 대신 빅터 터너(Victor Turner)는 시간적·공간적 의미를 모두 포괄하는 것으로 ‘코뮤니타스(Communitas)’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터너는 축제에서 발생하는 신성하고 종교적인 순간을 ‘리미날리티(Liminality)단계’라 칭하고 이러한 단계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나 그들이 모여 있는 상황이나 공간을 ‘코뮤니타스(Communitas)’라고 불렀다(류정아 2003, 18).
28) Schwarcz(2001: 68-70 참고). 참고로 이 분류는 통상적으로 설문대상자의 답변을 기분으로 한 것이 아니라 IBGE 조사자가 분류한 기준에 기반 한 것이다. 필자가 현지에서 직접 겪은 경험으로도 통계청의 일반적인 설문은 조사자의 판단을 배제하고 설문대상자의 선택을 기재한다.
29) Fernandez, F. L.(2005). ‘Composicion Etnica de las Tres Areas Culturales del Continente Americano al Comienzo del Siglo XXI’, Convergencia, UNAM, 185-231.
31) Pravaz(2013, 828)은 이 ‘베네디투 성자(São Benedito)’를 로마가톨릭의 ‘베네딕트 성자(Saint Benedict)’와 혼동하지 말 것을 주장했으나 그 차이에 대한 명확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32) 서원, 혹은 허원(許願)이란 보다 선하고 훌륭하게 살겠다고 하느님에게 약속하는 행위다. 교회법에 따르면 서원의 주체는 사람이다. 서원하는 사람은 심사숙고한 후에 자기의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해야 하며, 서원을 한자는 경신덕(敬神德)에 따르는 의무를 지게 된다. 즉 서원은 하느님과의 약속이다(출처: 가톨릭 사전 http://dictionary.catholic.or.kr/dictionary.asp?name1=%BC%AD%BF%F8).
33) 브라질에서는 민간축제는 항상 종교와 연관성을 지녀왔다. 문자 그대로 축제(祝祭)는 ‘축’과 ‘제’가 함께 내포되어 있는 문화행위라고 볼 수 있다. 류정아(2003, 8-9)은 “종교는 성스럽고 궁극적인 가치와 연결되기 때문에 강력한 사회통합력을 가진 것이고 축제를 의미하는 ‘festival’은 성일(聖日)을 뜻하는 ‘festivalis’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말로, 이것은 축제의 뿌리는 종교의례에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34) ‘바투카다’(batucada)는 브라질 말로 함께 북치고 춤추고 발 구르며 즐겁게 노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풍물놀이처럼 브라질 카니발에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연주하며 행진하는 축제 음악이다.
35) 현지에서 ‘Tambor de crioula’ 공연을 언제 볼 수 있느냐는 연구자의 질문에 대체로 “글쎄... 오늘 하려나? 날을 잡고 하는 게 아니라서. 내키면 나올 겁니다.”라는 대답에 며칠 동안 매일 시내 광장에 나가 기다려야만 했다.
36) 브라질무형문화유산으로 boi-bumba(보이 붐바)라고도 불림. 소의 죽음과 부활의 전설을 모티브로 생긴 브라질 민속춤의 일종으로 주로 북부, 북동부 지역에서 행해지며 아프리카, 브라질 원주민, 유럽인의 전통과 가톨릭 종교가 혼재된 문화유산이다.
37) Ferretti, S. Tambor de Crioula: ritual e espetáculo. 3 ed. São Luis, 2002.
38) ibid., 32.
39) 바닥에 두고 서서 허리에 근을 묶어두고 다리사이에 끼워 연주
40) 큰 북 뒤에 위치
41) meião과 함께 앉은 채로 원통형 나무받침 위에 놓고 다리 사이에 끼우는 북
42) 터키에서 메블라나의 데르비쉬(dervish: 세마)라는 수도승들이 자신을 팽이 돌려 무아지경의 상태로 신에게 가까이 가려는 세마(sema)춤처럼 빙글빙글 돈다.
43) Op.cit., 65-66.
45) ibid.,
47) Ferretti, S.(2002). Tambor de Crioula: ritual e espetáculo. 3.ed. São Luís: Comissão Maranhense de Folcore에서 발췌.
48) Hoornarert(1977), p.395
49) 로마가톨릭 성자 ‘베네딕토’와 아프리카 계 성자로 탈바꿈한 ‘베네디투’와 를 구분하여 표기함.
50) Ferretti, S.(2002). Tambor de Crioula: ritual e espetáculo. 3.ed. São Luís: Comissão Maranhense de Folcore에서 발췌.
51) 1950년대 중반까지 브라질에서 아프리카계 흑인들이 집단적으로 모이는 계기를 줄 수 있는 Tambor de Crioula 공연은 경찰 단속대상이었다. 이후 TV방송매체의 발달과 관광산업 육성을 기반으로 ‘유럽의 가치와 다른 자신의 문화정체성 찾기 운동’의 일환으로 국가적인 지원을 받게 된 것이다.
52) 실제로 오늘날까지 대도시에서 이런 문화행위가 단순히 관광객을 위한 볼거리나 저속하거나 원시적인 아프리카계 문화로 배격당하는 경우가 아직 존재한다.

참고문헌

  • Almeida, A.C, (2007), A Cabeça do Brasileiro, Rio de Janeiro, Record.
  • Araújo, A. M, (2007), Cultura popular Brasileira, Martins Fontes.
  • Barthes, R, (1997), 『In the Realm of the Senses』, Trans. Kim, Juhwan, & Han, Eunkyung, Minumsa.
    Barthes, R, (1997), 기호의 제국, 김주환, 한은경 역, 민음사.
  • Bastide, R, (1971), As Religiões Africanas no Brasil: contribuição a uma sociologia das interpenetrações de civilizações, São Paulo: Pioneira (1971), 2, (Original, 1960).
  • Benedict, R, (2008), 『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 Patterns of Japanese Culture』, Trans. Kim, Yoonsik, & Oh, Inseok, Eulyoo Publishing Company.
    Benedict, R, (2008), 국화와 칼, 김윤식, 오인석 역, 을유문화사.
  • Breidenbach, O, Zukrigl, I, (2003), 『Tanz der Kulturen』, Trans. In, Seonggi, Younglim Cardinal.
    Breidenbach, O, Zukrigl, I, (2003), 춤추는 문화, 인성기 역, 영림카디널.
  • Cascudo, C, (2001), Dicionário do Folclore Brasileiro, Global.
  • Carvalho, J. J, (2000), Um panorama da música afro-brasileira. Part 1: dos gêneros tradicionais aos primórdios do samba, Brasiília, UnB.
  • Costa, R, (2004), ‘Cultura popular’, V Fórum Municipal de Cultura de São Luís (1-4/10/2004), UFMA.
  • DaMatta, R, (1984), O que faz o brasil, Brasil?, Rio de Janeiro, Rocco.
  • Douglas, M, (1997), 『Purity and Danger』, Trans. Yoo, Jebun, & Lee, Hoonsang, Hyundaemihaksa.
    Douglas, M, (1997), 순수와 위험, 유제분, 이훈상 역, 현대미학사.
  • Farah, D.J, (2005), O Tambor de Crioula e suas características. III Forúm de pesquisa Cientifica em Arte, Curitiba.
  • Fausto, B, (2012), 『História Concisa do Brasil』, Trans. Choi, Hae Sung, Greenbi.
    Fausto, B, (2012), 브라질의 역사, Trans. Choi, Hae Sung, 그린비.
  • Fernandez, F. L, (2005), ‘Composicion Etnica de las Tres Areas Culturales del Continente Americano al Comienzo del Siglo XXI’, Convergencia, UNAM, p185-231.
  • Ferretti, S, (2002), Tambor de Crioula: ritual e espetáculo, 3.ed, São Luís, Comissão Maranhense de Folcore.
  • Ferretti, S, (2006), ‘Mário de Andrade e o Tambor de Crioula do Maranhão’, Revista Pós Ciências Sociais, São Luís, 3(5), jan/jun p93-112.
  • Ferretti, S, (2009), ‘A punga resiste’, Revista de História da Biblioteca Nacional, Rio de Janeiro, 40, jan p74-79.
  • Harris, M., (1999), 『Cows, Pigs, Wars and Witches: The Riddles of Culture』, Trans. Park, Jongryul, Hangilsa.
    Harris, M., (1999), 문화의 수수께끼, 박종렬 역, 한길사.
  • Im, Doo Bin, (2011), ‘Lingua e Identidade Nacional no Brasil, e o Entre-Lugar’, Iberoamerica, 13(1), Busan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Institute of Iberoamerican Studies.
    Im, Doo Bin, (2011), 브라질의 언어와 민족정체성, 그 경계의 틈새, 13(1), 부산외국어대학교 중남미지역원.
  • Im, Sora, (2014), ‘Causes and Characteristics of Passivity of the Brazilian Black Movement’, Portuguese-Brazilian Studies, 11(1), p5-26.
    Im, Sora, (2014), 브라질 흑인운동의 수동적 특징과 배경, 포르투갈-브라질 연구, 11(1), p5-26.
  • International Forum on Globalization, (2005), 『Altenatives to Economic Globalization』, Trans. Lee, Jumyeong, Pil Maek.
    세계화국제포럼, (2005), 더 나은 세계는 가능하다, 이주명 역, 필맥.
  • Kwon, Kisoo, et , (2012), ‘The Northeast Region of Brazil: Its Investment Environment and Ways to Expand Korea's Participation’, Jeonryakjiyeoksimcheungyeongu, p12-14, Korea Institute for International Economic Policy.
    Kwon, Kisoo, et , (2012), 브라질 북동부지역의 투자환경과 한국의 진출 확대방안, 전략지역심층연구, p12-14, 대외경제정책연구원.
  • Lacan, J, (1995), 『Desire theory』, Trans. Min, Seunggi, & Lee, Miseon, & Gwon, Yeongtaek, Moonye Publishing.
    Lacan, J, (1995), 욕망이론, 민승기, 이미선, 권영택 역, 문예출판사.
  • Lee, Kwangyoon, Park, Wonbok, (1998), 『History of Brazilian Literature』, Busan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Lee, Kwangyoon, Park, Wonbok, (1998), 브라질 문학사, 부산외국어대학교출판사.
  • Lee, Sunghyung, et , (2010), 『Brazil: History, Politics, Culture』, Hanul Publishing Company.
    Lee, Sunghyung, et , (2010), 브라질: 역사, 정치, 문화, 까치 한울.
  • Lee, Seungyong, (2014), ‘Reproduction of racial predujice in Football Ads Reprodução do preconceito racial na publicidade de futebol’, Korean Society of Portuguess-Brazilian Studies, 11(2), p5-26.
    Lee, Seungyong, (2014), 브라질 축구 광고에 나타난 인종에 대한 고정관념의 재생산, 포르투갈-브라질 연구, 11(2), p5-26.
  • Lee, Hyeonsong, (2011), 『Mikukmunhwaeukicho』, Hanul books.
    Lee, Hyeonsong, (2011), 미국 문화의 기초, 한울.
  • Lee, Huicheol, (2007), 『Turkey: Shinwhawa Sungseoeui Mudae, Islami sumshinun tang』, Risu Publishing.
    Lee, Huicheol, (2007), 터키: 신화와 성서의 무대, 이슬람이 숨 쉬는 땅, 리수.
  • Lobo, J. C, (2009), Toadas do tambor de Crioula de Sao Luis, Encontro de pesquisadores em Comunicacao e Musica Popular, UFMA, Sao Luis.
  • Maior, M. S, (1981), Painel Folclórico do Nordeste, Recife, Universitária.
  • Oh, Jeonggeun, (2010), 『Gihohakjuck jubgunbangbupeh euhan chukjeeui eumi wa eumi gujo』, Korean Studies Information.
    Oh, Jeonggeun, (2010), 기호학적 접근방법에 의한 축제의 의미와 의미 구조, 한국학술정보.
  • Oliveira, Albino, (2009), Tambor de Crioula. Pesquisa Escolar Online, Fundação Joaquim Nabuco, Recife.
  • Osorio, R.G., (2003), O Sistema Classificatório de “COR OU RAÇA” do IBGE, Texto para Disscussão, ipea, Brasília.
  • Park, Won-Bock, (2014), ‘A study of the Portuguese colonial policies in Africa under postcolonial perspective’, Korean Society of Portuguese-Brazilian Studies, 11(3), p5-29.
    Park, Won-Bock, (2014), 탈식민주의적 관점에서 본 포르투갈의 대 아프리카 식민정책 연구, 포르투갈-브라질 연구, 11(3), p5-29.
  • Pravaz, N, (2013), ‘Tambor de Crioula in Strange Places: The Traves of an Afro-Brazilian Play Form’, Anthropological Quarterly, 86(3), p825-850. [https://doi.org/10.1353/anq.2013.0042]
  • Ryu, Junga, (2003), 『Anthropology of festival』, Sallim Publishing Company.
    Ryu, Junga, (2003), 축제인류학, 살림.
  • Ryu, Junga, (2012), 『Principle of festival』, Communication books.
    Ryu, Junga, (2012), 축제의 원칙, 커뮤니케이션북스.
  • Sampaio, A.P. de M, (2003), ‘O Corpo negro e suas representações sociais’, XI Congresso Brasileira de Sociologia, 1 a 5 de setembro de 2003, Unicamp, Campinas, SP.
  • Schwarcz, L.M., (2001), Racismo no Brasil, São Paulo, Publifolha.
  • Turner, V, (1996), 『From Ritual to Theatre』, Trans. Lee, Kiwoo, Hyundaemihaksa.
    Turner, V, (1996), 제의에서 연극으로, 이기우 외 역, 현대미학사.
  • Vieira, F, D, (1977), Folclore Brasileiro-Maranhão, Rio de janeiro, MEC/FUNARTE/CDFB.
  • Volosinov, (2005), 『Marxism and The Philosophy of Language』, Trans. Song, Kihan, Prunsasang.
    Volosinov, (2005), 언어와 이데올로기, 송기한 역, 푸른사상.
  • Walter, J. Ong, (2006), 『Orality and Literacy』, Trans. Lee, Giu, & Im, Myeongjin, Moonye Publishing.
    Walter, J. Ong, (2006),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이기우, 임명진 역, 문예출판사.
  • Wolton, Dominique, (2012), 『The other Globalization』, Trans. Kim, Juno, Sallim Publishing Company.
    Wolton, Dominique, (2012), 또 다른 세계화, 김주노 역, 살림.

인터넷 자료:

  • MINISTÉRIO DA CULTURA, Os tambores da ilha, Brasília, IPHAN, (2006), Disponível em: <http://portal.iphan.gov.br/portal/baixaFcdAnexo.do;jsessionid=9F244E6E5D7AF57DB9D4C4D2013401B5?id=719>.(검색일자: 2014.11.27.).
  • MINISTÉRIO DA CULTURA, Registro do Tambor de Crioula no Maranhão: Parecer técnico, Disponível em: <http://portal.iphan.gov.br/portal/baixaFcdAnexo.do;jsessionid=9F244E6E5D7AF57DB9D4C4D2013401B5?id=949> (검색일자: 2014.11.27.).
  • TAMBOR de Crioula Disponível em: <http://contatocultural.blogspot.com/2010/05/tambor-de-crioula.html> (검색일자: 2014.09.14.)
  • 가톨릭 사전 http://dictionary.catholic.or.kr/dictionary.asp?name1=%BC%AD%BF%F8(검색일자: 2015.04.05.)
  • http://basilio.fundaj.gov.br/pesquisaescolar./index.php?option=com_content&view=article&id=856:tambor-de-crioula&catid=54:letra-t&Itemid=1(검색일자: 2015. 3.7)

<그림 1>

<그림 1>
2014년 브라질 대선 후보자별 지지 지역 구분10)

<그림2>

<그림2>
마라냐웅주의 위치(출처: Wikipédia)

<표1>

사진 순서 백인 흑인 갈색인
(Almeida 2007, 221)
1(하얀 피부) 96 4 0
2 87 11 1
3 86 13 1
4 25 73 2
5 5 86 9
6 4 88 8
7 1 3 96
8(검은 피부) 1 3 96

<표2>

사진 순서 북동부 인으로 추정 북동부 인이 아님
(Almeida 2007, 221)
3 61 36
6 53 44
5 34 63
4 21 76
8 19 78
7 17 80
2 11 86
1 10 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