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라틴아메리카 혹은 중남미
- 용어의 역사와 그 맥락에 관한 연구 -
- A Study on the History and Context of the Term -
초록
최초로 ‘América Latina’라는 표현을 쓴 사람은 칠레 출신의 작가이자 사상가인 프란시스코 빌바오(Francisco Bilbao)이다. 이후 ‘América Latina’라는 용어는 논쟁적으로 사용되었고 제국주의/식민지적 의미로 해석되기도 했고 아니기도 했다. ‘América Latina’가 논쟁적이라는 증거 중 하나가 바로 비슷한 의미의 용어가 다양하다는 것이다. Latinoamérica, Iberoamérica, Hispano américa, América española 등의 용어들이 América Latina와 흡사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었다. 엔리케 두셀과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저작을 분석하여 어떤 용어들이 흡사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지에 대한 경향성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라틴아메리카에서 라틴아메리카를 어떤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지만큼 우리말에서는 어떻게 사용했는지도 중요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중남미’와 ‘라틴아메리카’가 구별 없이 사용되고 있었으며 ‘중남미’라는 용어가 ‘라틴아메리카’보다 더 많이 사용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외교부에서 ‘라틴아메리카’와 ‘중남미’라는 용어가 차이 없이 인정받으나 공식표현은 ‘중남미’이다. 라틴아메리카 혹은 중남미가 정확히 멕시코부터 아르헨티나 남쪽 끝까지, “북브라보강부터 혼 곶까지”라고 할 수 있다. 지리적으로 보지 않고 문화적으로 보면 약간 다르다. 그 변화의 시작은 미국에서 일어났다. 2000년부터 미국 인구조사국(United States Census Bureau)은 히스패닉/라티노(Hispanic or Latino)라는 표현을 인종적 의미보다는 다른 범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인종의 라티노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다양한 라틴아메리카가 존재하고 있고 그런 다양성에 어울리는 명칭 또한 그 다양성을 담고 있어야 할 것이다. 라틴아메리카가 영어식 표현이긴 하지만 전 세계적인 경향성과 ‘라틴’이라는 용어의 의미를 고려하면 우리나라에서도 중남미라는 표현보다는 라틴아메리카라는 표현이 앞으로 더 많이 사용될 것이라 예상된다.
Abstract
The first person, who used the term ‘América Latina’, was Francisco Bilbao, to represent anti-Anglosaxonism, paradoxically the term ‘América Latina’ used instrument of France-imperialism. There are many similar synonyms with ‘América Latina’, for example, Latinoamérica, Iberoamérica, Hispanoamérica, América española, etc. That means, there are ambiguity in term ‘América Latina’. The analysis of the text of Enrique Dussel and Carlos Fuentes show the glimpse of ambiguity, diversity in term ‘América Latina’.
But most important thing is “What does the term ‘Latin america’ mean in the Korean language?” In Korea, mainly use ‘Latin america’ and ‘central and south America(Jung-Nam-mi)’ and Ministry of Foreign Affairs of Korea use the official term: ‘central and south America(Jung-Nam-mi)’. According the report of United States Census Bureau in 2000, the category of ‘Hispanic or Latino’ isn't racial, but of the cultural identity, that show ambiguity, diversity in term ‘Latin’, at the same time is very practical to express many americas, of blanco, mestizo, negro, indigena, mulato, etc.
In Northeast Asia, Japan and China use ‘Latin America’ to name ‘Latin America’(‘ラテンアメリカ’, ‘拉丁美洲’ [LādīngMěizhōu]), therefore considering of global trends and the implication of ‘Latin’, in Korea ‘Latin America’ will be more popular term than ‘central and south America(Jung-Nam-mi)’.
Keywords:
Latin america, Améica Latina, Latin, Central and South America(Jung-Nam-mi), Iberoamérica, Hispanic or Latino키워드:
라틴아메리카, 중남미, 이베로아메리카, 히스패닉, 라티노Ⅰ. 서론
월터 미뇰로의 책『라틴아메리카 만들어진 대륙』은 그 제목 자체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라틴아메리카라는 개념 자체가 만들어진 것이며 여기에는 제국주의/식민주의적 의도가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계몽의 변증법』을 연상케 한다. 계몽의 계획이 결국 신화구조로 소급한다는 논리는 라틴아메리카 사람으로서 정체성을 갖는 순간 결국 식민주의에 빠진다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하지만 과연 라틴아메리카라는 대륙, 정확히는 북아메리카의 남부(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를 포괄하는 지역을 명명하는 용어로서 ‘라틴아메리카’에 제국주의/식민주의적 의도가 담겨있다는 것은 과연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 주장인지를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이다.
보통 오대양(五大洋) 육대주(六大洲)라고 한다. 다섯 개의 대양에는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 그리고 남극해와 북극해가 속하고 육대주에는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그리고 호주가 속한다, 이 구분 자체가 얼마나 인위적인 것인지는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우선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는 하나의 대륙이다. 아프로-유라시아(Afro-Eurasia)라고도 부르는데 이 지역이야 말로 구세계(El viejo mundo)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파나마 운하가 존재하긴 해도 아메리카는 하나의 대륙이며 호주를 섬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대륙으로 볼 것인지 논쟁의 여지가 있으나 아메리카와 호주가 신세계(El nuevo mundo)가 될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바닷물은 전 세계 어디서나 짜다. 다시 말하면 어떠한 구분도 없이 하나로 존재한다. 같은 맥락으로 전 지구적 관점으로 봤을 때 혹은 지구에 모든 수분이 제거되었다고 가정하고 보면 대륙도 하나이다. 결론적으로 그 어떠한 구분이나 개념 또한 인위적이며 만들어진 것이면서 동시에 의도에 따라 조작된 것이다. 가장 사실에 가까운 것은 바다는 하나이며 대륙은 아프로-유라시아와 아메리카 그리고 호주, 이렇게 세 개의 대륙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구분의 기준이 인위적이며 조작된 것임을, 다시 말해 만들어진 것이며 조작된 것이고 결국 절대적 진리가 아님을 밝힐 때 위계로 존재하던 구분은 그 권위를 잃어버리게 된다.
콜럼버스가 서인도제도에 도착했을 때 그곳은 인도였고 이후 신세계가 되었고 1507년, 독일의 지도학자인 마르틴 발트제뮐러가 세계 지도를 만들었을 때, 그는 대륙을 이탈리아의 탐험가이자 지도학자인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이름을 따 “아메리카”라고 명명하였다.1) 이후 신세계라는 명칭과 더불어 그 안의 각 부왕청virreinato으로 존재했다. 누에바 에스파냐, 페루, 누에바 그라나다, 리오 델라 플라타 부왕청으로 나누어졌고 그 안에 몇 개의 총독부가 존재했다. 이후 독립의 시기를 겪으면서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국가가 탄생했다. 국가가 탄생했다는 것은 영토와 국민 그리고 주권이 성립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모든 주권은 국민에게서 나오고 영토는 국민들의 삶의 터전이므로 결과적으로 국민이 탄생했다는 의미가 된다. 아르헨티나 사람, 칠레 사람, 페루 사람, 콜롬비아 사람, 멕시코 사람들이 탄생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이전에도 그 지역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새로운 영토를 발견하고 대량으로 이주한 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그저 하나의 이름이 더 생긴 것이라 볼 수도 있다. 소쉬르 등으로 대표되는 언어학의 기본적인 이론을 도입하지 않더라도 어느 날 갑자기 생긴 이름에 어떤 본질적인 성격이 있을 리 없다. 하지만 그 명칭이 계속 사용되면 될수록 그 사용 시간에 비례하듯 의미가 만들어져갈 것이다. 아마도 라틴아메리카라는 명칭도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언제 라틴아메리카가 탄생했는지 그 탄생에 식민지적 상황이 반영된 것인지 유럽의 창조물인지 단언하기 어렵다. 라틴아메리카를 대륙의 명칭으로 볼 수도 있지만 대륙의 명칭은 앞에서 밝힌 것과 같이 그 대륙은 아메리카이고 라틴이건 앵글로 색슨이건 그것은 인종적 혹은 문화적 구분이 될 것이다. 또한 유럽의 창조물이라고 할 때 ‘유럽’이라는 명칭에도 모호함이 있다. 행위의 주체자이지만 그 자체로 모호한 표현이다. 일반적으로 말할 때 50개국 이상이 존재하고 있고 민족/종족은 관점에 따라 더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다. 과연 이 모든 유럽의 국가와 민족이 제국주의적 주체였다고 단언하기 어렵다.2)
언어를 기준으로 보면 스페인계 아메리카라는 명칭이 더 정확하며 브라질을 포괄하는 이베로아메리카라는 용어도 있으나 라틴아메리카에는 수많은 원주민 종족들이 있고 그들의 언어도 존재하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또한 네덜란드어를 사용하는 수리남,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프랑스령 기아나, 영어를 사용하는 벨리스와 가이아나가 분명히 라틴아메리카에 존재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 캐나다의 퀘벡주의 경우는 논쟁적이다. 다시 말하면 용어의 의미가 구체적일수록 그 의미에서 벗어나는 지역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3)
하지만 본 연구에서 용어들의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의미와 그 맥락을 밝히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중립적으로 어떤 용어가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는지를 알아보고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더 유용할지를 밝히는 것이 본 연구의 목표이다.
Ⅱ. 라틴아메리카가 라틴아메리카로 되기까지
옥타비오 파스는 세르히오 마라스Sergio Marras와의 대담『복수와 단수의 아메리카América en plural y en singular』에서 19세기에는 스페인계 아메리카América española라는 표현이 더 빈번하게 쓰였으며 라틴아메리카 문학 근대화의 기수 루벤 다리오 또한 자신의 시『Oda a Roosevelt』에서 ‘América española’와 ‘América católica’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음을 밝힌다. 또한 20세기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América Latina는 프랑스에서 유래한 용어이며 색슨계 아메리카América sajona처럼 정확하지 않고 애매한 표현이 바로 América Latina라고 밝히고 있다. 미국 혹은 캐나다를 색슨의 나라 혹은 앵글로 색슨의 나라라고 명명하기에는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섞여있으며 ‘라틴’이라는 명칭 또한 애매하다는 것이다. 옥타비오 파스는 대담에서 색슨이라는 명칭은 제한적이며 라틴이라는 명칭은 너무 모호하다고 밝히면서 언어적 특성에 기반을 둔 용어로 ‘Hispano’라는 명칭이 더 확실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4) 이 대담이 이루어질 때까지 어떤 용어가 확실한 기반을 갖춘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이고 역설적으로 ‘라틴’이라는 명칭의 모호함이 다양성과 연결되며 라틴아메리카의 다양성을 담아낼 수 있는 용어가 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1.1. 라틴아메리카의 América Latina
최초로 ‘América Latina’라는 표현을 쓴 사람은 칠레 출신의 작가이자 사상가인 프란시스코 빌바오(Francisco Bilbao)이다. 미국인 월리엄 워커(William Walker)에 의해 1856년 니카라과가 침공 당하자, 이에 분개하여 빌바오는 1856년 6월 24일 파리의 한 모임에서『Iniciativa de la América』란 제목의 짧은 에세이를 발표하는데 여기에서 비단 ‘América latina’라는 용어만이 아니라 ‘latinoamericano’란 형용사도 사용하였다. 하지만 1862년 프랑스가 멕시코를 침공하고 나폴레옹 3세가 주도하는 프랑스 중심의 제국주의에 ‘라틴’, ‘라티나’ 등의 용어가 사용됨으로 인해 최초의 사용자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용에 부정적 입장을 표명했다.(Alvaro Garcia 2013, 143) 미국은 1800년대 초부터 1898년 미서전쟁까지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전쟁을 일으키고 있었고 여기에 위기의식을 느낀 라틴아메리카의 지식인들은 앵글로 색슨계가 아닌 아메리카를 하나로 묶을 용어가 필요했고 그래서 고안된 것이 바로 ‘라틴’이라는 용어였던 것이다. 이 용어를 처음 발표한 곳이 프랑스 파리였다는 것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미국의 독립과 프랑스 혁명, 에펠탑과 자유의 여신상으로 상징되던 두 국가가 제국주의로 돌아섰다는 점, 그리고 동시에 ‘라틴’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그 안에 다양한 정치적 메시지를 담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América latina’라는 용어를 프란시스코 빌바오만의 창작으로 보기는 어렵다. 같은 해 9월 26일에 콜롬비아 출신의 시인 호세 마리아 토레스 까이세도(José María Torres Caicedo)은 베네치아에서『Las dos Américas』라는 시를 발표했는데 출판은 이듬해 1857년 2월 15일 El Correo de Ultramar라는 신문에 발표되었다.5) 1858년에 에드문드 오골맨(Edmundo o’Gorman)은 아메리카는 발견된 것이 아니라 유럽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 주장했고(Edmundo o’Gorman 2008, 8) 1968년 존 펠란(John Phelan)은 두 개의 아메리카, 라틴아메리카와 앵글로 아메리카로 구분하였는데 이것 또한 1860년 유럽, 정확히는 프랑스에 의해 만들어진 것6)이라 결론 내렸다(John Phelan 1968, 279-298). 결론적으로 ‘라틴’이란 용어 자체가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그 용어를 사용하면 할수록 그 의도를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란 생각을 할 수 있다. 같은 맥락으로 ‘라틴’이란 용어 자체에 식민지적 의미가 담겨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그저 한 용어의 연대기적 의미의 흐름을 본 것이다. 단적으로 프랑스의 제국주의가 현재까지 존재하고 있고 ‘라틴’이란 용어가 현재도 그 의도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그리 큰 문제가 될 리가 없다. 또한 역설적으로 나폴레옹의 스페인 침공은 라틴아메리카 독립의 열풍과 연결되어 있고 식민지 모국이 사라진 그 짧은 시기가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의 정체성을 생각하는 시기가 되었다는 것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멕시코의 경우 씬꼬 데 마이요(Cinco de mayo)라고 불리는 1862년 5월 5일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함으로 인해 멕시코의 국가적 정체성이 공고해졌음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용어로서 ‘라틴’ 혹은 ‘América Latina’에 대한 식민성을 언급하는 것은 그리 큰 의미가 없다고 할 것이다.7) 어쩌면 식민지 모국(母國)으로서 스페인에서 강조하는 스페인성(Hispanidad)과 라틴성(Latinidad)8) 그리고 미국이 주장했던, 그리고 시몬 볼리바르로 대표되는 두 개의 서로 다른 범아메리카주의(Panamericanismo)9)가 경쟁 중이었는데 역설적으로 가장 먼저 도태된 라틴성이 그 원래의 의미를 잃어 오히려 현재 그 의미가 모호하면서도 가장 많은 사용 빈도수를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더 큰 의미를 갖는 것은 현재 무엇이 라틴아메리카를, 더 정확하게는 라틴아메리카라는 용어의 의미를 구성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라틴아메리카의 정체성은 그것이 약간 막연하다고 해도 변증법적 구조를 따를 것이다. 식민시대와 그것을 부정하는 것10)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나타난 합, 스페인적이면서도 스페인적이지 않고 유럽적이면서도 유럽적이지 않은 라틴아메리카라는 단계에 올라가면 라틴아메리카적 정체성이 갖추어졌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나 너무 거시적이며 19세기부터는 이 문화적 정체성외에도 근대성 혹은 현대성이라는 것이 정치, 경제, 문화 등의 분야에서 달성되어야 했고 불행히도 산업화를 선취한 서유럽의 일부 국가들이 이 부분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었던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본 논문은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문제를 모두 다루는 것은 아니다. 용어의 사용과 그 맥락에 대한 부분만을 다룰 뿐이다. 다시 말해 현실적으로 어떤 용어가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었는지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가 용어의 의미와 그 유래와 역사에 관한 정보의 한계를 넘어서게 해줄 것이다. 그래서 아르헨티나 출신의 사상가이자 철학가이며 역사가인 엔리케 두셀(Enrique Dussel)의 저작 중 하나인『1492, El encubrimiento del otro: Hacia el origen del Mito de la modernidad』과 2012년 작고한 멕시코 출신 작가이자 소설가인 카를로스 푸엔테스의『Espejo Enterrado』에서 어떤 용어들이 어떤 양상으로 사용되고 있는지에 관하여 분석할 것이다. 물론 두 사람이 스페인어를 대표하거나 ‘라틴아메리카’와 기타 동의어들의 용법을 대표하는 대표성이 있다고 하긴 어렵다. 하지만 용어가 어떤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보이는 지에 대한 예는 충분히 될 것이다.
1.2. 엔리케 두셀의 경우
Latinoamérica, latinoamericano(a)의 경우 Latinoamérica를 원형으로 하여 형용사형(latinoamericana)이 파생되고 이 형용사형에서 다시 명사형(latinoamericano)으로 파생된 것으로 보면 América Latina가 80회가 사용되었고 Latinoamérica와 latinoamericana가 각각 17회와 69회 합 85회가 사용되었다. 결과적으로 어원을 중심으로 보면 사용 비중이 그렇게 크지 않다고 할 수 있으나 대륙 혹은 문화권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되는 용어는 América Latina가 압도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라틴계 아메리카 혹은 스페인계 아메리카를 지칭하는 용어로 ‘Hispano’라는 용어가 있다. 로마시대 스페인의 명칭에서 유래한 것으로 영미 권에서는 ‘히스패닉’이란 용어가 스페인계 사람들, 특히 라틴아메리카에서 이주한 사람들을 폄하하는 의미로 사용됨으로 한때 그 사용을 꺼리거나 차별적 용어로 간주하는 경향도 있었으나 역사에 관계된 문헌에서 스페인이나 에스파냐(España)보다 빈번하게 사용되기도 한다. 특히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에서 이스파노(Hispano)라는 용어는 산토 도밍고섬, 현재 아이티와 도미니카 공화국이 위치한 섬을 Hispañola 섬이라 불렀다는 것을 기억하면 이 용어가 상대적으로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 더 익숙할 것이라 짐작할 수도 있다. 두셀의 경우 라틴아메리카 대륙을 지칭하기 위해 Hispanoamérica라는 용어를 4번 사용했다. 비슷한 표현으로 América hispana라는 용어도 4번 사용했고 América hispánica라는 용어는 2번, Hispano-américa는 1번 사용되었다. 하지만 본문에 사용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 주석에서 사용되었다. 이것은 두셀이 의도적으로 ‘Hispano’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Hispanoamérica 혹은 이와 관련된 용어들을 그리 선호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현재 라틴아메리카를 명명하는 다양한 용어를 소개하는 부분에서 América luso12)-hispánica라는 표현이 사용되기도 했다. 또한 ‘colonos europeos, hispánicos’라는 표현에서 유럽계 식민인 혹은 이주민과 스페인계 식민인 혹은 이주민을 구분하고 있다. 이것은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으나 재미있는 표현이라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또한 다음 단락에서 ‘colonos españoles’을 써서 두 가지를 혼용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Hispanoamérica, América hispánica라는 표현과 더불어 혼용하여 사용되거나 앞에서 언급한 파스의 글에서는 América Latina보다 먼저 사용되던 용어라고 소개한 América española라는 표현은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다.13)
물론 두셀이 언어적 대표성을 갖는 사상가이면서 작가라고 할 수 없다. 또한 개인의 용어 사용은 개인의 취향을 반영한 것으로 그것이 어떤 언어적 대표성을 갖고 있다고 할 수도 없고 다른 저작에서는 다른 경향성을 보일 가능성도 적지 않다. 다만 구체적 저작에서 나타나는 용어의 빈도수와 경향성은 하나의 예로 이것을 통해 작게는 그 작가가 그 저작을 쓸 때 어떤 용어가 더 폭 넓게 사용되었는지를 알 수 있으며 만일 한 용어가 의미가 흡사한 다른 용어에 비해 더 많이 사용되었다면 그 용어가 더 대중적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하나의 근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두셀의 경우 América Latina가 다른 용어들에 비해 더 자주 사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América Latina를 지리적으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 지정학적 용어로 더 나아가 권력관계가 반영된 것이며 또한 동시에 문화적 블록으로 이해하고 있다. 맥락에 따라 그 의미가 약간씩 달라질 수 있으나 결국 두셀이 사용한 América latina는 실존하는 대륙의 의미보다는 머릿속에 존재하는 상상의 대륙 혹은 문화적 블록을 의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3.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경우
카를로스 푸엔테스는 무엇보다 문학가이며 소설가이다. 그러므로 그의 문체가 사회과학적이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또한 이 에세이는 논문의 성격이 그리 강하다고 할 수 없다.『Espejo Enterrado』는『라틴아메리카 역사』로 번역되어 국내에도 소개되었고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를 소개한 많은 서적 중에 가장 주관적인 작가의 관점이 강하게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그 중심에 스페인과 라틴아메리카 그리고 미국 내 히스패닉 인구가 문화적으로 연결되는 범스페인어권세계(Mundo hispánico)15)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앞으로 라틴아메리카의 정치경제적 상황과 미국 내 소수 민족/인종/종족 운동의 결과에 따라 그 추이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16) 두셀에 비해 푸엔테스의 어휘가 특별히 치우침이 없는 것은 의미를 섬세하게 구별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같은 형태의 용어 반복을 피하기 위함으로 보는 것이 더 신빙성이 있을 것이다. 또한 “포괄적 라틴계 세계17)”의 미래를 그리면서도 ‘라틴아메리카’라는 용어에 대한 개념을 구체화했다. 우선 브라질을 포함시켰고18) 지리적으로는 북브라보강부터 혼 곶까지(desde el Ríio Bravo norte hasta el Cabo de Hornos)(Carlos Fuentes 2013, 7)가 바로 라틴아메리카라고 밝히고 있다.19) 물론 이런 표현이 약간 관습적인 면이 없지 않으나 그 의미의 구체성은 두셀에 비해 더 높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푸엔테스가 그린 라틴아메리카는 결론적으로 신세계(el Nuevo mundo)에서 앵글로아메리카가 제외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현재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América Latina y el Caribe)의 의미와도 그리 다르지 않다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푸엔테스의『Espejo Enterrado』에서 라틴아메리카를 의미하는 용어들은 특별한 구분이나 차이 없이 사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물론 Iberoamérica라는 용어가 책의 결론 부분에 해당하는 말미에 8회로 집중되고 있다거나 라틴아메리카의 문화적 혼종성을 강조하기 위해 오로스코에 대해 서술하면서 인도–아프로-이베로아메리카(Indo-afro-iberoamérica)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약간의 의도를 읽을 수도 있지만 다른 용어들 사이에 위계가 존재한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카를로스 푸엔테스가 멕시코 출신으로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작가이며 문학가이고 지식인이지만 그가 어떤 보편성을 담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엔테스가 각 용어에 특별한 의미와 맥락을 부여하고 있지 않다는 점은 다른 일반인의 경우에도 본인의 성향이나 언어적 환경에 따라 사용되는 용어가 달라질 수 있지만 그 용어들 사이에 선호도를 다를 수 있지만 그것이 정치적 위계로 작동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고 짐작할 수 있다.
사실, 히스패닉, 라티노라는 용어가 가장 논쟁적으로 사용된 곳은 바로 미국이다. 라틴아메리카라는 대륙을 명명하기 보다는 그 지역 출신 혹은 그 지역 출신의 후손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히스패닉/라틴노라는 용어는 그 자체로 차별적 요소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의 기반은 백인중심주의인데, 그 좋은 예가 케냐 출신의 흑인 아버지와 미국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물라토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흑인으로 인식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히스패닉(Hispanic)이란 용어가 미국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된 것은 1970년 백악관 관리 예산처(The Office of Management and Budget, 약칭OMB)에서 시행한 조사였다. 멕시코, 푸에르토리코, 쿠바 및 중앙-남아메리카 출신 혹은 스페인계 사람을 인종에 상관없이 구분하는 명칭으로 사용되었는데20) 1997년부터 히스패닉의 구분이 히스패닉 혹은 라티노(Hispanic or Latino)라 변경되었다.21) 미국 인구조사국(United States Census Bureau)에서 실시한 인구조사에 의하면 인종적으로 메스티소로 구분될 수 있는 멕시코계와 히스패닉을 백인으로 구분했고 1970년 조사에서는 출신지역과 모국어 혹은 유아기 가정에서 사용한 언어 등으로 세분했다. 2000년 조사부터 히스패닉/라티노라는 범주를 인종적 범주와 함께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인종적 구분이 아닌 문화적 구분이다. 물론 넓게 히스패닉/라티노를 하나의 인종으로 볼 수 있으나 이 히스패닉/라틴노 안에서도 구체적으로 피부색을 중심으로 인종적 구분이 있으므로 기준이 다른 하나의 구분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인종에 상관없이 미국의 히스패닉/라티노의 수는 2000년에 35,305,818명으로 미국 인구의 약 12.5%에 해당한다.22) 2010년 조사에서는 50,477,594명으로 우리나라 인구와 비슷하며 미국 전체 인구의 약 16%에 해당한다.23) 미주(尾註)의 표4,5처럼 히스패닉/라티노의 개념이 인종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것이며 인종을 뛰어넘는 혹은 다양하면서도 열린 개념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24) 또한 이것은 카를로스 푸엔테스가 그렸던 포괄적 라틴계 세계의 이미지 혹은 ‘라틴’이란 용어에서 느낄 수 있는 모호하지만 포괄적 세계의 이미지가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라틴아메리카의 ‘라틴’의 의미는 미국에서 구체화되고 있다고 볼 수 있고 더 나아가 히스패닉/라티노 출산율(평균 2.3명)을 고려하면 상황은 조금 더 역동적인 미래를 맞이할 수 있다. 현재 미국 내 히스패닉/라티노들은 이주 혹은 이민에 의한 증가보다 미국 내 출산으로 인한 인구증가가 약 3배 이상 높다.25) 다시 말해 불법 이민을 포함한 이주가 아닌 미국 내 자생적 증가율이 높다는 것으로 이것은 앞으로 미국의 정치경제에서 히스패닉/라티노가 어떤 역할을 할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26)
Ⅲ. 우리들의 라틴아메리카 혹은 중남미(中南美)
현재까지 역사적 사실과 이론과 주장 등은 모두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이것은 라틴아메리카 내부 혹은 스스로 라틴아메리카 사람 혹은 다른 국적을 갖고 있지만 종족적 정체성을 갖고 있는 경우와 타자적 입장이지만 탈식민주의 학자이면서 외국인인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모든 사실과 주장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이 우리가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코리아와 대한민국 혹은 한국의 차이27)만큼이나 명칭과 대상의 거리가 있을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 대륙을 의미하는 우리나라의 공식 용어는 중남미이다. 외교부 홈페이지에 의하면 중남미 혹은 라틴아메리카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중남미(Latin America)는 미주대륙의 북미지역인 미국과 캐나다를 제외한 중미, 카리브 및 남미지역의 총칭으로, 위도 상 북위 32도, 남위 54도에 위치한다. (…) 33개 독립국(중미 8개국, 카리브 13개국, 남미 12개국)과 남아메리카 북동부 및 카리브해의 영국, 미국, 프랑스, 네덜란드령 식민지로 이뤄져 있다.
‘라틴아메리카’라는 명칭은 북미의 ‘앵글로색슨 아메리카’에 대응되는 개념으로, 라틴 문화권이라는 공통의 문화적, 역사적 배경에서 연유하는 동질성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남미 지역에는 영어 및 네덜란드어를 사용하는 카리브 국가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UN 등 국제기구에서는 공식적으로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국가(Latin America and the Caribbean Countries)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 아메린디오(Amerindio), 메스티소(Mestizo), 크리오요(Criollo), 아프로-아메리칸(Afro-american)28) 등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다.29)
앵글로 아메리카 혹은 앵글로 색슨 아메리카의 개념은 미국의 인종의 용광로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사라진 것으로 20세기 초의 인종차별 정책이 끝나고 대규모 이민이 시작되면서 앵글로 색슨이라 불릴 수 있는 아메리카는 사라졌다고 할 수 있다. 그저 북미의 2개 국가, 미국과 캐나다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앞에서도 논의되었지만 지리적으로는 멕시코는 북미에 속하고 과테말라부터 파나마까지가 중미지역이며 그 아래로는 남아메리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라틴아메리카는 북-중-남 아메리카에 걸쳐있는 문화적 블록이나 ‘라틴아메리카·카리브국가공동체(CELAC)’가 출범하고 나서 돌아보면 1951년 설립된 ‘미주기구(OAS·35개 회원국)에서 미국과 캐나다를 제외한 것과 같다는 것이다.30) 어쩌면 배타적 문화블록이 바로 라틴아메리카·카리브 국가공동체이며 이 개념이 다시 라틴아메리카라는 용어의 성질을 재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초점은 라틴아메리카의 상황이 아니라 바로 우리나라의 상황이다. 어떤 용어가 혹은 어떤 명칭이 그 언어권에서 식민지적 의미의 맥락이 있거나 제국주의적 맥락이 있거나 탈식민적 맥락이 있거나 하는 것은 우리 언어와는 그리 상관없는 일이다. 그저 그쪽의 용어들이 이런 맥락과 배경을 갖고 있다는 것, 이런 저런 역사적 사건이 개입되어 있다는 것을 그저 상식의 수준에서 이해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동북아에 아메리카라는 명칭을 알린 것은 바로 미국이었다. 청나라 시대 중국인들이 ‘아메리칸’을 중국어 발음에 가깝게 적은 음역인 ‘미리견(美利堅)’에서 왔다. 이 말의 기원은 미국이라는 뜻인 ‘American’에서 나온다. 당시 청나라 시대 중국인들은 이것을 ‘메리칸’으로 들었고, 가까운 중국어 발음인 ‘메이리지안(美利堅)’이라고 하였다. 이를 줄여 ‘메이궈’(美國)로도 표기하였고, 당시 조선인들이 이를 한국어식 한자음으로 읽어 ‘美利堅(미리견)’, 미리견들의 국가 ‘미국(美國)’으로 읽고 표기하였다. 일본에서는 ‘亜米利加’(아메리카)로 표기하였으며, 이를 줄여서 ‘베이코쿠(米国)’로 표기하기도 하였다.31) 이후 지리적인 개념이 도입되면서 중남미(中南美)라는 명칭이 라틴아메리카 대륙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이후 남미라는 명칭이 라틴아메리카를 의미하기도 하고 라틴아메리카가 그대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영미권에서 공부한 학자들이나 영미권의 영향이 강한 경우에는 라틴아메리카라는 용어가 더 빈번하게 사용되었지만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현재 외교 공식용어는 중남미이다. 또한 1995년부터 라틴아메리카와 중남미는 서로 비슷한 말로서 표준어로 사전에 등재되었다. 1994년까지 우리말로 써진 단행본, 학위논문, 정기간행물에 실린 글을 중심으로 어떤 용어가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물론 이것이 어떤 학술적인 의미가 있는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그저 단순한 통계적 자료일 뿐이라 판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앞에서 우리는 용어가 어떤 맥락에서 사용되는가에 따라 본래의 의미 외에 다른 의미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용어가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었는가를 알아보는 것은 그 결과에 상관없이 이루어져야 할 연구일 것이다. 또한 용어의 선택에 있어 우리나라에서 우리말의 전통 안에서 특별한 의미의 차이와 용어 사이에 위계가 없다면, 발음의 용이성, 용어의 저변문제, 발음의 세계적 보편성 측면과 동시에 표현의 자주성과 주체성 등을 고려하여 판단하면 될 것이다. 또한 한계에서는 어떤 용어가 우리 현실에 더 어울린다는 권유 혹은 추천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1.1. 1994년까지의 현황32)
중남미 연구는 1984년에 출간된 4권, 1991년의 7-1권을 통해 국내의 스페인-라틴아메리카 관련 문헌을 정리하는 작업을 했고 1995년 발간된 13권에서 최종적으로 정리를 했다. 이후로 이런 작업이 이루어진 적은 없으나 중남미연구를 비롯한 각 학술지 홈페이지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어렵지 않게 그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조사는 아주 단순하게 제목과 본문에 ‘라틴아메리카’와 ‘중남미’ 중에 어떤 용어를 사용했는지를 알아보는 것으로 주제와 분야에 따라 그 쓰임에 차이가 있는지 없는지를 알아보려는 것이다. 1994년까지로 기간을 한정한 것은 1995년 국립국어원에서 발간한『외래어 표기 용례집』에서 라틴아메리카와 중남미가 동시에 ‘지명’을 의미하는 용어로 표준어로 등재되었고 이를 통해 공식적으로 두 용어 사이의 위계가 없어졌기 때문이다.33) 현재 모든 국어사전에 두 용어가 비슷한 말로 들어가 있다. 다시 말하면 두 용어는 동등하다고 할 수 있다.34)
전체적으로 ‘중남미’라는 용어가 ‘라틴아메리카’라는 용어보다 약 3배 정도로 많이 사용되는데 그 용법에 특별한 차이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35) 특히 1989년 발간된 중남미연구 특별호의 경우 라틴아메리카의 역사, 정치, 외교, 경제를 종합적으로 다루었다. 이 특별호에서 고(故) 민만식 교수는『라틴아메리카 역사의 전개과정』이라는 논문에서 ‘라틴아메리카’, ‘중남미’ 그리고 ‘스페인계 아메리카’ 등이 큰 차별 없이 사용되고 있고 같은 호의 다른 논문에서도 제목에는 ‘라틴아메리카’를 사용하고 있으나 본문과 각 장에는 ‘중남미’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미루어보면 우리의 언어 전통 속에서는 두 용어의 위상이 그렇게 다르다하기 어렵다. 표에서도 확인 가능하듯이 경제와 무역의 분야에서는 ‘중남미’라는 용어가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고 다른 분야에서는 어느 한 용어가 압도적인 우세를 보이고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또한 1986년 송산 출판사에서 김창환 선생의『이스빠노 아메리카 문화론』이란 책은 이스빠노 아메리카Hispano América 용어를 사용하여 이목을 끌었고 1970년 김동성이『상공시대』에 기고한『라틴아메리카 지역의 수출현황 및 전망 : 중남미지역 공관장과 업계』라는 글에는 제목과 소제목에 ‘라틴아메리카’와 ‘중남미’가 함께 사용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실제 텍스트 내부를 보면 그 양상은 약간 다르다. 두 용어가 혼용되고 있다고 해도 올해로 41주년이 된 라틴아메리카 지역 연구소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 ‘중남미연구소’이며 중남미연구소가 발간하는 학술지가 ‘중남미연구’라는 것을 기억하면 ‘중남미’라는 용어가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많이 해설자와 아나운서들이 멕시코를 남미의 국가로 소개하는 경우가 많았고 중남미보다는 남미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언론매체와 인터넷 매체에서 두 용어가 얼마나 많이 사용되는지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두 용어가 외교부의 홈페이지에서처럼 큰 위상의 차이 없이 혼용되어 사용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더 이상의 조사는 어쩌면 시간 낭비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어떤 용어를 더 선호해야 하는 것인지를 제안하는 것이 더 의미 있을 것이다.
Ⅳ. 결론
우리가 한국인이라 부르면서 외국으로 나가면 코리안 혹은 꼬레아노라고 불리며 중국인의 경우는 차이니스 혹은 치노이며 일본인의 경우는 재패니스 혹은 하뽀네스로 불리는 것처럼 라틴아메리카와 중남미가 동시에 사용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동북아에서 일본은 이미 라틴아메리카를 음역한 ‘ラテンアメリカ’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고36) 중국 또한 라틴아메리카를 의미하는 ‘拉丁美洲 [LādīngMěizhōu]’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중남미’라는 용어는 그 원래의 의미에서 북미지역에 위치한 멕시코를 소외시킨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전 세계적으로 라틴아메리카라는 용어가 지칭하는 대상이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 그리고 남아메리카라는 것에는 그리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중남미’라는 용어보다는 ‘라틴아메리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더 좋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국가연합(UN)에 라틴아메리카 카리브 경제위원회(ECLAC 또는 UNECLAC 스페인어로 CEPAL)가 등장한 이후 지역과 언어를 넘어서 하나의 정치-경제-문화적 블록으로 점점 강화될 가능성은 높다. 하지만 ‘라틴아메리카 카리브’라는 용어는 그 정확한 의미에도 불구하고 발음해야 하는 길이의 문제와 불편함의 문제를 고려하는 것만이 아니라 ‘라틴’이라는 의미에 카리브의 도서지역이 포함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고려하면 앞으로 ‘라틴아메리카’라는 용어가 더 많이 사용되고 점진적으로 ‘중남미’라는 용어를 대체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여기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틴아메리카 내부의 상황과 다른 언어권의 상황을 고려하면 라틴아메리카를 표현하기 위해 라틴아메리카라는 용어만큼 어울리는 용어는 없을 것이다.37)
‘신세계(Nuevo mundo)’ 이후 특히 냉전시대 라틴아메리카와 아시아, 아프리카의 신생독립국을 의미하던 용어는 제3세계였다. 하지만 제1세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멕시코와 칠레가 회원국이며 콜롬비아는 가입 초청국이다. 또한 비슷한 의미이나 약간 다른 G20(Group of 20)에는 멕시코, 아르헨티나, 브라질이 회원국이다. 라틴아메리카의 전체 국가는 아니라고 해도 일부는 이제 제3세계라는 용어로 규정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또한 1493년부터 1800년까지 전 세계 은의 85%, 금의 75%가 아메리카 대륙에서 채굴된 것이며 은의 대부분은 라틴아메리카에서 채굴된 것이다(Andre Gunder Frank 1998,141-142). 라틴아메리카의 은은 결국 가격혁명38)과 상업혁명39)으로 이어지며 최종적으로 산업혁명이 시작하게 된 원동력이었다. 또한 동시에 근대 자본주의를 성립케 한 원동력이기도 했다. 이 역시 논쟁적인 부분이지만 라틴아메리카의 존재 자체가 어쩌면 근대라는 변화를 이끈 원동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40) 이 관점에서 보면 라틴아메리카는 주변부가 아니라 중심부 중에서 중심부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주변부이지만 주변부이지만은 않고 서구적이지만 서구적이지만은 않고 스페인 적이나 스페인 적이지만은 않고 원주민 적이나 원주민 적이지만은 않은 모호한 문화블록을 명명하는 데에 ‘라틴’이라는 용어만큼 적합한 용어는 없을 것이다. 동시에 라틴아메리카를 표현하기 위해 라틴아메리카라는 용어만큼 어울리는 용어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두 용어 사이 어떠한 위계가 없고 동시에 우리말 사전에 표준어로 등재되어 있는 상황에서 어느 한 용어만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이며 어떤 면으로는 폭력일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 성장하고 있는 히스패닉/라티노의 숫자와 그래미 라티노(Grammy latino 혹은 Latin grammy), 엠티브 라티노(MTV Latino) 등으로 대표되면서 팝문화 시장에서 인정받고 있는 라틴대중문화의 힘을 고려하면 약간 다른 관점으로 용어의 문제를 바라 볼 수 있다. 여기서 ‘Latino, Latin’은 Latinoamericano, Latin america의 축약형으로 볼 수 있는데 영어권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라틴뮤직, 라틴음악이라는 용어는 라틴아메리카 음악을 의미하므로 멀지 않은 미래에 라틴이라는 용어가 라틴아메리카의 축약형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아도 할 것이다.
스페인의 작가 라몬 마리아(Ramón María del Valle-Inclán)은 문학과 예술의 미적 원칙, 예술을 통해 영속케 되는 것은 눈앞에 놓인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의 기억 속에 머무는 바로 그것이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Nada es como es, sino como se recuerda41)”라고 표현했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자신의 자서전을 이렇게 시작한다.
La vida no es la que uno vivió, sino la que uno recuerda y cómo la recuerda para contarla(Gabriel García Márquez 2014,1).
삶은 한 사람이 살았던 것 자체가 아니라. 현재 그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며, 또한 그 삶을 이야기하기 위해 어떻게 기억하는가이다.
삶 자체와 기억하고 있는 것 사이의 거리와 이야기 혹은 구술되면서 재구성된 삶과 기억하고 있는 자신의 삶은 분명히 거리가 있다. 라몬 마리아가 실체와 예술적으로 재구성된 것 사이의 거리를 표현했다면 실체와 기억과 그리고 예술적 혹은 문학적으로 재구성된 삶, 이렇게 3단계를 보여준다. 이것은 문화적 정체성과도 연관시켜 볼 수 있다. 문화적 정체성 또한 인간이 주체가 되는 현상이므로 무엇보다 주체인 인간이 필요하다. 이 주체가 어느 단위 이상으로 문화를 공유하는 공동체이므로 공동의 기억, 다시 말하면 그들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역사가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이 역사를 스스로 말하게 할, 교육 혹은 통치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이것은 또한 인구조사와도 흡사하다. 인구조사에서 질문을 하는 존재가 있기는 하지만 그 대답에 어떠한 제약도 없으며 그 대답을 하는 주체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이다. 결국 히스패닉 혹은 라티노라고 스스로 말하는 사람이 있고 그것을 말하는 순간, 바로 그 사람의 정체성이 결정되고 견고화되는 것이다. ‘중남미’라는 표현은 기본적으로 중미와 남미의 합성어로 그 의미가 지리적으로 확실하며 그렇기에 의미의 유동성이 그리 크지 않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라틴’, ‘라틴아메리카’는 지리적인 표현이라기보다는 문화적인 표현으로 두셀의 말처럼 문화적 블록을 의미한다고 하면, 이 블록은 유동적인 것으로 그 문화의 역량에 따라 그 크기는 변화할 것이다. 앞으로 미국의 히스패닉/라티노 커뮤니티는 계속 성장할 것으로 보이고, 이들을 포괄하고 더 나아가 식민지 모국이었던 스페인마저 포괄할 수 있는 문화적 개념이 ‘라틴’, ‘라틴아메리카’라고 한다면 우리가 라틴아메리카를 사용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해진다. 문화적으로 더 성장하는 라틴아메리카를 보기 위함이다. 또한 동시에 문화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연구 대상, 지리적/지정학적 의미의 한계를 벗어나 인류학적/문화적/사회적/역사적인 연구 대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 안에서만이 아니라 미국과 현재 중남미 국가들의 상황, 미국 외의 라틴계 이주민들의 문화, 유럽과 아시아에서의 라틴문화 등등 수많은 연구주제들이 연결된다. 특히 정치학 혹은 통치에 개념에서 ‘어떻게 기억하게 할 것이냐’, ‘어떻게 말하게 할 것이냐’를 정책적으로 모색하는 연구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그 용어 자체에 내재된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경제/정치/역사적 상황에 대한 결과이며 그러므로 당연히 그런 맥락 아래에서 해석돼야 하겠지만 이것은 동시에 어떠한 용어도 절대적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플라톤의 표현을 빌린다면 그저 독사(Doxa)인 것이다.
서론에서 밝힌 것과 같이 우리의 이름에서 대륙의 이름 구분 등등은 인위적이다. 현재는 망상으로 해석되기도 하는 고대의 우주론은 그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현재는 유일한 진실처럼 보이는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그저 농담의 소재가 될 수도 있다. 라틴아메리카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세계는 여전히 인간의 인식 속에서 만들어지기도 하고 쇄락하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 절대적 용어라는 것이 있을 리가 없다. 현재 중남미는 지리적으로 더 어울리는 개념인 듯 보이고 라틴아메리카는 문화적으로 더 어울리는 개념인 듯 보인다. 그것은 현재까지의 상황이며 앞으로 어떤 정치/경제적 이유로 ‘어떤 용어가 사용될 것인가’와 ‘새로운 개념이 탄생할 것인가’는 지켜볼 문제이다. 물론 중요한 것은 ‘어떤 의도와 어떤 맥락을 갖고 있는가’이며 더 중요한 것은 ‘우리는 ‘중남미’와 ‘라틴아메리카’의 용어 사용에서 과연 어떤 의도와 맥락을 가지고 있는가’일 것이다.
Acknowledgments
* 이 논문은 2008년 정부(교육과학기술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08-362-A0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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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census.gov/prod/cen2010/cph-1-1.pdf (2010.10.13)
Cfr. DEFENSOR DEL LECTOR(2006), “Indio e indígena”, El País, http://elpais.com/diario/2006/01/22/opinion/1137884409_850215.html, (2010.10.09)
http://www.korean.go.kr/09_new/dic/rule/rule_foreign_view.jsp
Cfr. 중남미연구소 편집팀(1995), 중남미연구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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