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시대 라틴아메리카 농촌 빈곤 감축 정책의 한계와 대안적 논의
초록
라틴아메리카에서 농업 자본주의 발전과 그에 따른 사회적 변동은 정책적 논의와 다양한 학문적 연구의 주요 원천이 되어 왔다. 식민시대로부터 이어져온 불평등한 토지 분배 구조와 그에 따른 저발전의 문제, 농업 자본주의 발전에 따른 농촌 사회 변동과 농업 개혁 (agrarian reform), 20세기 중반 농민들의 저항과 토지 개혁의 문제, 그리고 최근에 이르러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농촌 사회 변화에 따른 농촌 발전과 빈곤 감축 정책까지, 그 논의는 매우 다양하게 전개되어 왔다. 특히 최근 몇 십년간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서 전개된 발전 모델의 전환과 전 세계적인 경제 자유화 경향에 따라 라틴아메리카 농촌 사회는 급진적인 변화를 겪어 왔으며, 그 변화와 관련된 정책적 논의와 학문적 관심 또한 증가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적, 학문적 관심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특히 국내에서의 농촌 개발과 빈곤 감축에 대한 논의의 경우 주로 개발 기구를 중심으로 한 프로젝트 단위의 정책의 고안, 이행, 평가에 집중된 바, 이러한 정책 이행의 배경이 되는 빈곤의 요인에 대한 학문적 논의는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 글의 목적은 그동안의 주류 라틴아메리카 농촌 발전과 빈곤 감축 정책과 그 논의의 한계를 지적하고 라틴아메리카 농촌의 자본주의 발전과 사회 변동의 구조적 분석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대안적 시각을 제시하는 것에 있다.
Abstract
In Latin America, capitalist development of agriculture and its related rural transformation have brought a lot of academic and policy-related debates. Issues range from unequal structure of land distribution in the colonial times and the problem of underdevelopment, capitalist development of agriculture, its subsequent rural transformation and agrarian reform, peasant protests and demand for land distribution in the mid-twentieth century to the recent debates on economic globalisation, the changing rural landscape, as well as rural development and poverty reduction. In particular, economic reform and liberalisation have significantly transformed the Latin American rural landscape in recent decades, which has become an important source for rising interests both from academics and policy-makers. Despite this increasing concerns, however, the Korean development communities have quite a limited focus on rural development and poverty reduction, i.e. the design, implementation and assessment of project-based rural poverty reduction. This is an important effort but sometimes tends to ignore the long-term roots and impacts of policies. Against this backdrop, this article aims to examine the limitations of mainstream rural poverty reduction policy and approaches and argue for alternative perspective on the issue, i.e. the politicisation of poverty, by underlining the importance of accounting for structural causes of poverty.
Keywords:
Rural Development, Small-Scale Farmers, Rural Poverty Reduction Policies, International Development Community, Politicisation of Poverty키워드:
농촌 발전, 영세 소농, 농촌 빈곤 감축 정책, 국제 개발 공동체, 빈곤의 정치화Ⅰ. 서론
라틴아메리카에서 농업 자본주의 발전과 그에 따른 사회적 변동은 정책적 논의와 정치사회적, 발전 연구들의 주요 원천이 되어 왔다. 식민시대로부터 이어져온 불평등한 토지 분배 구조와 그에 따른 저발전의 문제, 농업 자본주의 발전에 따른 농촌 사회 변동과 농업 개혁 (agrarian reform), 20세기 중반 농민들의 저항과 토지 개혁의 문제, 그리고 최근에 이르러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농촌 사회 변화에 따른 농촌 발전과 빈곤 감축 정책까지, 그 논의의 범위는 국제 무역 구조와 정치경제에 대한 논의부터 농촌 사회학적, 발전학적 논의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게 이뤄져왔다. 특히 최근 몇 십년간 라틴아메리카 국가에서 진행된 발전 모델의 전환과 전 세계적인 경제 자유화 경향에 따라 라틴아메리카 농촌 사회는 급진적인 변화를 겪어 왔으며, 그 변화와 관련된 정책적 논의와 학문적 관심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적 학문적 관심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논의는 주로 개발기구 프로젝트 등에 기반 한 프로젝트 단위의 개별적 정책에 대한 분석에 집중되어 있는 반면, 전반적인 정책의 이행의 배경과 변화에 대한 분석은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1) 특히 국내에서 농촌 개발과 빈곤 감축에 대한 논의의 경우 주로 개발 기구를 중심으로 한 프로젝트 단위의 정책의 고안, 이행, 평가에 집중된 바, 이러한 정책 이행의 배경에 대한 학문적 논의는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 글의 목적은 주류 농촌 발전과 빈곤 감축 정책의 한계를 지적하고 라틴아메리카 농촌의 자본주의 발전과 사회 변동에 주목하고 그 구조적 논의의 필요성을 지적함과 동시에 대안적 논의를 제시하는 것에 있다.
다시 말해, 이 글은 세계 농업 자본주의의 발전과 그에 따른 라틴아메리카 농촌 사회의 최근의 사회 변동과 이와 관련된 정책적 변화, 그리고 관련된 이론적 논의들을 소개하고, ‘개별화된 농업 생산자의 생산 여건 개선’과 ‘시장 기회 확대’에 주로 주목하고 있는 주류 농촌 빈곤 감축 전략과 그 한계를 분석하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 이는 최근 몇 십년간 진행되어 온 농촌 빈곤 감축 정책들에 대한 분석, 특히 한국의 경우 국제 개발 사례들에 대한 분석이 단기적인 프로젝트나 정책 차원의 분석과 그 한계에 집중하고 있음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동시에 농촌 사회에서 빈곤의 구조적 요인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고 경제적 환원주의에 국한된 빈곤 감축 전략의 논의를 정치적 공론의 장으로 이끌어 내어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강조하고 위함이기도 하다. 다만, 주류 라틴아메리카 농촌 발전과 빈곤 감축 전략에 대한 기존의 논의를 소개하고 그 한계를 지적하고 있는 본 논문은 공간의 제약으로 개별적인 국제 개발 공동체의 세부적인 논의나 모든 대안적 사례를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지 못함은 미리 밝힌다. 하지만 이글은 농촌 발전과 빈곤 감축과 관련된 전반적인 논의와 그 문제점을 제시함으로써 앞으로 라틴아메리카 농촌 빈곤 문제에 대한 보다 장기적이고 대안적 논의에 대한 선행적 연구로서의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겠다. 이러한 목적에 기반 하여, 이글은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먼저, 라틴아메리카 농촌 사회의 변동과 농촌 빈곤에 대한 논의가 증가 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기 위해 2장에서는 신자유주의 시대 발전 모델의 전환과 빈곤 감축 정책의 발전에 대해 살펴본다. 3장에서는 신자유주의 라틴아메리카 농촌 사회의 변화와 그와 연관된 최근의 논의들을 살펴보고, 4장에서는 이러한 농촌 빈곤 감축 정책의 한계와 그 대안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마지막 5장에서 이를 요약하며 마무리하겠다.
Ⅱ. 신자유주의 시대 발전 모델의 전환과 빈곤 감축 정책의 발전
1. 신자유주의 개혁과 발전 모델의 전환
80년대 외채 위기를 겪은 라틴아메리카 대부분의 국가들은 새로운 외환을 확보하고 국내 거시 경제의 안정화를 위해 90년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정책을 시행하게 된다. 워싱턴 컨센서스 (the Washington Consensus)에 기반 한 구조조정 정책의 주된 목적은 발전 모델 계획과 이행의 주체를 이전의 ‘국가’에서 ‘시장’으로 이동시키는 것이었다. 특히 구조조정 정책을 외채 상환 시기 조정과 국제 금융시장으로의 재진입 조건으로 내걸었던 국제 금융기구들의 입장에선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마주했던 경제 위기의 가장 근본적인 요인이 비효율적인 국가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90년대 라틴아메리카의 대부분의 국가에서 진행된 구조조정 정책들은 비대해지고 비효율적인 국가의 역할을 줄이고 국가가 이전에 책임져 오던 역할을 시장과 시민 사회의 주체들이 맡도록 개혁하는 것이 주된 내용을 차지했다. 특히 경제 정책개혁 과정에서 시장의 민간 기업들이나 해외 투자자들, 국제기구의 역할이 한층 강화되었는데, 예를 들면, 구조조정 이전 국가의 참여 비율이 높았던 국영기업들을 민영화하는 과정에서 특히 기간산업에 대한 국내외 민간 기업들과 투자자들의 참여가 늘어나게 되었고, 관세를 철폐하거나 최대한 그 비율을 낮추고 비관세 장벽의 비중도 점차 줄이면서, 국경을 넘나드는 물자의 이동이 보다 자유로워졌다. 특히 전통적으로 원자재 수출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는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거시 경제 성장을 위해 1차 산업 부분에 대한 투자, 생산, 수출 확대 정책이 강조 되었는데, 이를 위한 각종 탈규제 정책들, 즉 투자 조건의 개선을 위해 각종 규제를 줄이거나 폐지하는 정책들이 강조된 것이다. 그윈 (Gwynne)은 구조개혁을 위한 라틴아메리카 경제 정책의 이데올로기적 기반이 된 워싱턴 컨센서스의 세 가지 핵심 구성요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1) (특히 원활한 상품 수입을 위해) 무역 자유화 촉진하고 외국인 직접 투자 조건을 원활하게 하여 라틴아메리카 경제를 세계 경제로 통합,2) 민영화와 (조세 정책, 예상 정책, 재정 정책 등을 담당하는)경제 부처에서의 기술 관료들의 역할을 증대시킴으로써 국가의 직접적인 경제 개입을 축소 3) 탈규제 정책, 개인 재산권의 보장, 금융 자유화를 통해 자원의 분배에 있어 시장의 역할을 증대 시키고, 경제 성장의 동력을 민간 부분에서 찾기 (2004, 47).
무역 자유화, 해외자본의 투자 증대, 각종 규제의 철폐, 민영화 등을 통한 라틴아메리카 경제 자유화와 구조조정의 결과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시장 중심 발전모델로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발전 모델의 전환 과정에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성장 동력은 주로 원자재 생산과 수출 산업에 집중되었으며, 특히 2000년대 이후 국제 원자재 가격의 상승으로 인해,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국가들이 거시 경제 안정화와 성장이라는 긍정적인 결과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긍정적인 결과의 이면에는 사회 불평등과 빈곤의 심화라는 사회적 비용이 수반되었다. 이는 비단 라틴아메리카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구조조정 정책을 시행한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결과였다. 2000년 세계은행 (World Bank)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의 60억 인구 중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28억 명이 하루 평균 2달러 이하의 돈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세계 인구의 20%에 해당하는 12억 명의 인구는 하루 평균 1달러 이하의 돈으로 생존하고 있다고 밝혔다 (2000, 3).
물론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정책이 전 세계의 빈곤/극빈곤층 인구의 증가에 전적인 책임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구조조정의 사회적 비용이 기존의 빈곤 계층의 경제 사회적 여건 악화에 일조한 부분을 부인하기 힘들며, 특히 계층 간의 불평등이 심화된 사실은 구조조정 정책을 주도했던 국제통화기금 (IMF)을 비롯한 국제 금융 기관들도 이미 여러 차례 인정한 바가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최근의 국제 개발 공동체 (세계은행, IMF, 각종 개발 기금을 지원하는 국제 금융기구들과 선진국의 정부들, 학자들, 개발 관련 시민단체들과 NGO 등을 포함)들은 점차 빈곤과 빈곤 감축 정책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시작했다 (Kay 2006, 457). 다음에서는 이러한 빈곤 감축 정책을 주도적으로 시행해 온 세계은행의 빈곤 감축 정책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2. 빈곤 감축 정책의 발전
80년대 이후 개도국에서 구조조정 정책을 주도해온 국제 금융기관들은 점차 그 개혁의 사회적 비용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특히 세계은행의 경우, 2000년대 이후 빈곤 감축 정책에 대한 관심을 점차적으로 높여나갔는데, 그 정책적 전환의 내용이 2000년 은행이 발표한 보고서 ‘세계 발전 보고서 (2000/2001): 빈곤 감축’ (World Bank Report 2000/2001: Attacking Poverty)에 잘 나타나 있다. 이 보고서는 은행의 빈곤과 빈곤 감축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포함하고 있다. 보고서에서 빈곤은 다음과 같이 정의되고 있는데, 특히 빈곤의 경제적 측면 뿐 아니라 빈곤의 다양한 측면(‘multidimensional’)을 강조하고 있음에 주목할 만하다.
이번 보고서에서 빈곤은 전통적인 관점에서의 빈곤, (...) 즉, 소득이나 소비 수준으로 측정되는 물질적으로 부족한 삶의 여건 (material deprivation)뿐만 아니라 교육이나 보건의 상태가 열악한 경우 (low achievements in education and health)도 포함 된다 (...). 또한 이 보고서는 빈곤의 개념은 위험에의 취약성과 노출 (vulnerability and exposure to risk), 의사 결정을 위한 참여에서 배제 되거나 그 대표성이 부실한 경우 (voicelessness), 의사 결정 권한에서 배제되지 않았을지라도 실질적인 문제제기 하지 못하는 경우 (powerlessness)등도 포괄하고 있다. (빈곤은) 이러한 모든 형태의 박탈 (deprivation)을 의미하는 것으로 Amartya Sen (아마르타 센)이 지적하고 있듯이 빈곤은 “한 인간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삶의 방 식을 영위할 수 있는 실질적인 자유를 누리기 위해 가져야 하는 능력 (capabilities)”이 심각하게 제한되어 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2000, 15).
위와 같은 세계은행의 빈곤에 대한 정의는 빈곤의 다양한 측면에 대해 언급하면서, 기존의 물질적인 조건에 대해서만 규정되어 있던 빈곤의 의미를 한층 다양한 측면으로 확대하여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아래에서도 살펴보겠지만 이러한 빈곤에 대한 다 측면적 정의는 세계은행이 이후 진행하는 빈곤 감축 정책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다 측면적 정의에 기반 하여 세계은행은 빈곤 감축을 위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전략적 목표를 설정하였다: 기회 (opportunity), 능력 신장 (empowerment), 그리고 위험에 대한 취약성의 감소 (security).
기회 (opportunity)는 빈곤층이 자산을 확대 할 수 있는 조건, 즉 외부적 기회 확대를 확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 세계은행이 제안하고 있는 정책은 “전반적인 경제 성장을 촉진하고, 시장에서 빈곤층을 위한 고용의 기회를 확대하며, 교육 등과 같은 빈곤층이 그동안 접근성이 낮았던 자산 (교육 기회 등) 배분의 불평등성을 극복하도록 지원하는 것” 이다 (World Bank 2000, 8). 또한 보고서는 국가와 사회기관들의 사회적 요구에 대한 민감성 (responsiveness)과 책임성 (accountability)을 강조하며, 빈곤층의 능력 신장 (empowerment)을 위한 의사 결정과정에의 참여의 필요성 또한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은행은 ‘병, 폭력, 경제적 충격, 기후 변화와 자연 재해’ 등 외부적 위험에 대한 빈곤층의 취약성을 줄이는 것이 빈곤 감축 정책의 또 다른 전략임을 밝혔다. 은행은 각각의 전략에 따라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하는 빈곤 감축 정책들을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위와 같은 빈곤 감축 전략을 제안하면서, 세계은행은 빈곤 감축 전략이 각각의 지역 상황이나 처해진 조건을 고려하여 각기 다르게 적용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특히, 빈곤의 다 측면적 정의에 기반 하여 위에서 제시한 다양한 빈곤 감축 전략을 다양하게 혼합하여 사용할 것을 강조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빈곤 감축 정책의 대상이 되는 빈곤층의 특성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그들의 빈곤의 성격을 규정하고, 그에 맞는 정책을 ‘감시, 평가’하는 것이 중요함을 밝혔다. 이렇게 신자유주의 정책의 사회적 비용이 늘어남에 따라 국제 개발 공동체의 빈곤 감축 정책에 대한 관심과 이행이 전반적으로 증가한 배경을 고려해 볼 때, 특히 라틴아메리카에서의 빈곤 감축 정책이 신자유주의 구조 조정은 물론이고 전통적으로 라틴아메리카의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배제, 소외되어 온 농촌 지역을 주된 대상으로 목표하고 있음을 주지의 사실이라고 볼 수 있다.
다음 섹션에서는 신자유주의 라틴아메리카 농촌의 변화와 주류 빈곤 감축 정책과 관련 논의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Ⅲ. 신자유주의 라틴아메리카의 농촌 빈곤 감축 정책
1. 신자유주의 시대 라틴아메리카 농촌의 변화
지난 30여 년간 시행된 경제 자유화와 구조 개혁 프로그램들로 인해 라틴아메리카 농촌 사회는 많은 변화를 경험했다. 국가 주도적 발전 시기, 특히 1940년대부터 1960년대 사이 라틴아메리카 각 국은 산업화 발전 과정을 가속화하기 위해 국내 농산물의 가격을 제한하고, 해외로부터 수입되는 저가의 농산물 비중을 높이면서, 농촌과 농업 발전에 상대적으로 불리한 정책을 펼쳤다. 이러한 농업에 대한 구조적 압박과 함께 상당수 농민들의 생활여건이 불리해 지면서, 농민들의 토지 개혁 요구를 중심으로 하는 농촌 사회에서의 소요가 증가했다. 이러한 농촌 사회의 요구에 대처하는 한편, 농업 자본주의를 심화시키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농업 개혁 정책이 도입되었다. 다시 말해, 20세기 중반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국가에서 시행되었던 농업 개혁 정책은 농민들의 토지 구조 개혁 요구에 대한 대응과 국가의 농업 생산력을 높이기 위한 두 가지 목적의 결과로 토지 개혁과 국가 보조금의 지급, 농업에 대한 투자와 농민들에게 대출을 담당하는 국영 농업 은행의 설립 등 다양한 정책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이러한 국가 정책들로 인해 일부 농민들은 혜택을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농업 부문에 대한 국가의 개입정책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정책과 경제의 세계화로 인해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시장 중심적인 정책 시행의 결과 한편으로 이미 농업의 기계화와 같은 자본 집약적인 현대적 농업에 종사하는 농민들은 무역 자유화를 통해 수출의 기회가 증대하고, 자본 투자의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경제 자유화의 혜택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전의 국가의 보조금이나 지원이 줄어들거나 없어지기 시작하면서, 그 혜택을 받아왔던 농민들과 농업 노동자의 삶의 여건에 타격이 주어졌다. 농업 노동자들에 대한 고용의 기회가 줄어들거나 무토지 농민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증가했다. 이러한 이중적 농업 생산 구조가 형성된 요인이 전적으로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의 결과라고 볼 수는 없지만 그 이중적 구조가 심화되는 것에는 일조했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탈규제 정책과 무역 자유화, 자본 이동의 자유가 증가하면서 초국적 농기업 (transnatioanl agri-business)들의 영향력이 점차 증가하게 된 것이다. 반면, 그동안 일시적인 계절적 노동에 종사하던 농업 임금 노동자들 혹은 농민들은 농민 조합이나 노조를 조직하기가 더욱 어려워지면서, 열악한 노동 조건도 받아들여야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거치면서, 상당수의 농민들이 생활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혹은 영구적으로 농업 뿐 아니라 농업이 아닌 경제 활동에 종사하기 시작하면서, 라틴아메리카의 농촌 사회는 보다 다양한 농민들의 계층 분화가 이뤄지게 되었다. 다시 말해, 다양한 수입 창출 전략을 갖춘 (즉 ‘시장 경쟁력’을 갖춘) 농민들은 확대된 기회를 활용하여 소득을 증대시켰으나, ‘시장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농민들의 경우 극도의 빈곤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바렛 (Barret)과 그의 동료들은 아프리카 농촌의 다양한 수입 창출원과 생존 전략에 대해 설명한 논문에서 농촌의 빈곤층 가정이 생존 전략으로 농업 이외의 활동 (non-farm or off-farm activities)에 종사하게 되는 요인을 두 가지로 설명했다. 첫 번째는 ‘유출’ (push)요인인데, 농촌 빈곤층 가정에서 소득 구조의 기반이 부실한 상태에서 고용, 토지, 기후 불안정성으로 외부적 위험에 대한 취약성 또한 높을 때, 가계 소득과 소비를 안정적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농업이외의 경제 활동에 종사하게 되는 강력한 유인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Barret et al. 2001, 2). 두 번째는, ‘유입’ (pull)요인으로, 지역 내 혹은 가까운 도시 지역에서 새로운 경제 성장 동력으로 상업적 농업이라는 소득 창출 기회가 증가 할 때, 이러한 기회를 통해 소득 다변화를 추구하여 부족한 소득을 보완하는 것이다 (Barret et al. 2001, 2).
다시 말해, 농촌 사회에서 빈곤층 가정의 생존 전략은 그동안 농업 활동이 주를 이뤄왔는데, 점차 전통적인 소규모 영농의 경쟁력이 떨어지거나 농민들이 토지를 보유할 수 있는 기회가 낮아지면서, 농업 이외의 활동에서의 고용기회를 찾아 영세한 농민들이 농업 외부로 ‘유출’되기도 하고, 지역 내 농업 이외의 활동에 대한 고용 기회가 증가할 경우 빈곤한 농민층이 소득 기반을 다변화하는 측면에서 ‘유입’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농촌 사회의 소득 다변화 경향은 농업에서 농업 이외의 활동으로 확대될 뿐만 아니라, 농촌 지역 자체를 넘어서는 경우도 있다. 농업 노동자들이 농촌 지역에서의 고용 기회가 점차 줄어듦에 따라 새로운 생존 전략으로 도시지역 혹은 심지어 외국으로 강제로 혹은 자발적으로 이민하는 하는 경우도 증가 하고 있다. 이러한 일시적 혹은 영구적인 이민의 결과인 송금은 농촌 가정 뿐 아니라, 그 가정이 속한 지역 사회, 그리고 국가에 중요한 소득원이 되기도 한다. 한편, 이러한 농촌 사회의 변화와 관련해서 주목해야할 또 다른 특징은 노동 구성에 있어 여성의 비중이 증가하는 경향이다. 특히 과일이나 화훼와 같은 비전통 수출 작물 (Non-Traditional Agricultural Exports, NTAEs) 재배의 증가와 농산업의 성장으로 인해 계절적 혹은 임시적 고용 기회가 증가함에 따라, 농촌 여성들이 저임금이나 불합리한 고용 조건에도 불구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드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Kay 2004, 236-7).
위에서 언급한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함께 심화된 다양한 농촌사회의 변화와 더불어 많은 정책 결정자들과 연구자들이 농촌 빈곤 감소를 위한 다양한 정책적 제안을 내놓았다. 드 장브리 (De Janvry)와 사돌렛 (Sadoulet) (2000)은 농업 (agriculture), 농업을 포함한 농촌 사회에서의 다양한 활동 (pluriactivity), 사회적 지원 (social assistance), 이민 (migration)등 4가지 농촌 빈곤 감소 전략을 제안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농업의 경우 농업생산성을 높이거나 생산 작물을 다변화하기 위한 지원 정책을, 농업 이외의 다양한 활동의 경우 농촌 가구의 소득원을 다변화하기 위한 정책들, 사회적 지원의 경우는 일회성의 재정 지원, 사회적 안전망 프로그램 등을 포함하고, 마지막으로 도시나 해외로의 이주를 포함하고 있다 (Siegal 2005, 4-5에서 인용; Poole et al. 2007, 317도 참고 할 수 있다). 농촌 사회와 관련된 정책은 이전 시기 주로 토지 개혁에 집중되다가, 최근의 농촌 사회 변화와 함께 더욱 다변화된 농촌 빈곤 감축 정책들로 그 중심이 전환되었다. 이러한 농촌 빈곤 감축 정책들로는 앞서 밝혔듯이 농촌 가구의 자산을 늘리기 위한 정책과 이들을 시장 체제로의 통합을 원활히 하기 위해 적절한 지원을 하는 방식들이 포함되어 있다. 농촌의 빈곤층을 시장 체제로 통합하기 위해, 즉, 시장에서의 고용이나 수입 창출의 기회를 높이기 위해 기술지원을 한다던가, 사회 기반 시설을 확충하거나, 교육과 보건에의 재정적 지원을 통해 인적 자원 개발에 투자하고, 미소 금융 (microfinance)등을 통해 신용 대출을 원활하도록 하며, 틈새시장 (niche market)의 시장에서의 기회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사회적 자본 형성과 거버넌스의 발전이 가능하도록 하는 정책 등을 정부를 포함한 국제 개발 공동체에서 제안하고 있다.2)
다음에서는 이러한 농촌 빈곤 감축 정책에 대한 새로운 이론적 접근들에 대해 보다 자세히 살펴보겠다.
2. 신자유주의 시대 라틴아메리카 농촌 발전과 빈곤 감축에 대한 새로운 접근들
라틴아메리카 농촌지역의 자본주의 발전과 사회 변동에 대해 선구적인 연구를 해 온 케이 (Kay)에 의하면 1960년대와 1970년대 라틴아메리카 농촌 지역과 농촌 발전에 대한 연구는 대부분 농민 운동과 농업 개혁에 집중되어 있었다 (2008, 916). 하지만 앞서서도 살펴보았듯이 80년대와 90년대의 경제 자유화와 구조조정으로 인해 농촌사회의 지형이 변화했고 이로 인해 농민을 위시한 농촌 사회 인구와 연구자들, 정책 결정자들의 다양한 정책적 대안과 논의가 전개되었다. 농촌 발전과 빈곤 감축과 관련된 다양한 논의 중에서도 아래에서는 새롭게 제시된 두 가지 접근 방식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신 농촌’ 접근은 주로 라틴아메리카에서 고안된 농촌 발전에 대한 논의로 특히 신자유주의 경제 개혁과 경제 자유화로 인해 심화된 농촌 사회의 변화라는 측면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3) 신 농촌 접근의 특징을 설명하면서, 케이 (Kay)는 이전의 농촌 발전에 대한 이해와의 차이점에 대해 지적했다. 즉, 이전에는 주로 농촌 사회의 발전과 관련해서 ‘농업’이라는 협소한 부분에만 그 관심을 집중했다면, 신 농촌 접근은 ‘농촌 사회’의 광범위한 논의들, 농촌 사회 인구들이 생존 전략으로서 농업이외의 다양한 형태의 경제 활동에 종사하는 것과 이와 관련된 논의들로까지 그 분석을 확대했다 (Kay 2007, 32). 특히 농촌 빈곤 감축과 관련해서 신 농촌 접근은 최소한 두 가지의 서로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첫 번째는 ‘수정주의’적 관점으로 현재 변화된 농촌 사회의 급진적인 구조적 변화를 모색하기 보다는 다양한 정책의 변화와 시행을 통해 농촌 인구의 삶의 여건을 개선하는 데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Kay 2008, 298-9). 두 번째는 ‘공동체주의’적 관점으로 이에 대해서는 Barkin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공동체주의적 관점은 신 농촌 접근에서 덜 주목을 받는 관점으로 이러한 관점을 가진 분석가들은 농촌 발전과 빈곤 감축 정책제안에 있어 보다 근본적인 변화에 집중하고 있다. 즉,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미친 농민들에 대한 부정적인 결과를 개선하기 위해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안적인 정책을 시행할 것을 제안하며, 경제적 성장이 아닌 대안적인 농촌 발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여기에서 대안적인 농촌 발전은 농민들이 중심이 되는 영농 방식, 지속가능성, 평등, 사회적 참여, 탈 중앙집중화, 지역 발전, 특히 여성들의 능력 신장, 농촌 내 고용의 확대 (특히 청년층의 고용 기회 증대), 유기농 농업, 질 높은 식량 생산, 종 다양성의 보호, 새로운 틈새시장 기회의 모색 등을 포괄하고 있다 (Barkin 2001, Kay 2006, 464에 인용됨).
일부 학자들은 지속적인 농촌 사회의 빈곤과 불평등을 고려해 볼 때, 신 농촌 접근에서 과연 무엇이 ‘새로운’ 점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케이 (kay)의 지적대로 이러한 관점의 유용성은 농업 이외의 다양한 경제 활동을 통한 수입 다변화, 그에 따른 농촌인구의 새로운 농촌 발전 방식과 빈곤 감축 전략의 모색에 대해 분석의 초점을 맞추고 있어 최근의 농촌 사회 지평의 변화를 잘 반영할 수 있는 접근 방식이라 볼 수 있겠다 (2008, 921).
농촌 생존 전략 접근은 농촌 발전과 빈곤 감축을 위한 정책적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노력에서 시작되었다.4) 이 접근 방식은 주로 행위자 (agency)의 역할에 관심을 집중한 것으로 행위자 중심 분석 (actor-oriented analysis)에 기반하고 있다. 빈곤층을 불합리한 경제 구조와 구조적 제약에 따른 수동적인 희생자로 보지 않고 각자의 생존 전략을 모색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적극적인 행위자 (active agency)로 간주한다. 이러한 적극적인 행위자로서 농촌사회의 빈곤한 농민들은 변화하는 주변 상황에서 본인들이 처한 기회와 한계에 대해 판단하고 현재 가진 자산에 대해 인식함으로써 각자의 생존 전략을 모색한다. 이러한 접근 방식의 장점은 행위자 중심 분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농촌 사회의 변화, 특히 행위자가 마주하고 있는 지역 상황에 분석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Bebbington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농촌 생존 전략 접근은 구조적 분석 방식에 비해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지역적 경험이나 대응을 분석하기에 보다 유리하다. 이로 인해 라틴아메리카 사회에서 세계화가 지역 상황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분석을 제시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농촌 사회의) 다양한 사람들의 창의적인 대응 방식에 대해 주목함으로써 현재의 천편일률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의 방식에 대안을 제안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 준다 (Bebbington 2004, 173).
농촌 생존 전략 접근은 개별 가정의 물질적 측면 뿐 만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적 측면까지 함께 다루는 다 측면적 (multi-dimensional)접근 방식이다. 이와 관련해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정책적 제안은 ‘자산기반 접근’ (asset-based approach)이다. 베빙턴(Bebbington)에 따르면, 자산은 인적, 사회적, 생산, 자연, 문화적 자본 등 다양한 자본으로 구성 된다.
인적 자본은 개인의 신체 (지식, 건강, 기술, 시간 등)와 관련된 자본을, 사회적 자본은 개인이 다른 사회구성원들과의 관계를 통해 혹은 사회 조직에의 참여를 통해 축적하는 자본을 일컫는다. 이러한 사회적 자본은 다른 형태의 자본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생산 자본에는 사회기반시설, 기술, 가축, 종자 등과 같은 물리적 (physical)자본과 현금 자산, 유동 자산, 부동산 등 금융 (financial)자본이 포함된다. 자연 자본은 개인이 접근 가능한 질적 양적 자연 자원을 일컬으며, 마지막으로 문화 자본은 한 개인이 속한 문화에서 축적되는 자원과 상징을 포괄한다(Bebbington 2004, 176).
중앙아메리카에서의 농촌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빈곤 감축에 대한 연구에서 시어겔(Siegel)은 ‘자산기반 접근’을 취했는데, 빈곤층의 삶의 여건 개선 (well-being)을 위해서는 변화하는 환경을 인식하고 어떻게 개별 가정의 자산 구성을 분석하여 자산 형성 방식을 변화시켜 생존 전략 (livelihood strategy)을 세우는가가 중요함을 강조했다 (2005,1).
결과적으로 생존 전략 접근을 취하는 연구들은 대부분 빈곤층이 개별 가구 자산을 파악한 뒤 다양한 생존 전략을 채택하여 생존전략을 모색하도록 적절한 정책적 개입이나 제안을 하는 것에 집중되어있다. 또한 개별 가구의 실질적인 자산과 개별 가구가 자산에 접근 할 수 있는 주변 여건간의 상호 관계를 고려하여 가구의 경제 활동에 있어 자산 축적의 여건을 개선할 수 있는 가능성에 관심을 두기도 했다. 이로써 생존 전략 접근에 기반 한 정책적 제안은 상당부분 개별 가구의 자산과 거시적 여건 간의 상호 관계를 고려한 적절한 정책적 개입을 강조함으로써 빈곤층의 자산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생존 여건을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상에서 신자유주의 개혁과 경제 자유화에 따른 농촌 사회의 변화와 이에 따른 농촌 발전과 빈곤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들에 대해 알아보았다. 다음에서는 이러한 분석의 경제 환원주의적 한계와 정치화의 필요성을 살펴봄으로써 라틴아메리카 농촌 발전과 빈곤에 대한 논의를 보다 확대해 보고자 한다.
Ⅳ. 농촌 발전과 주류 빈곤 감축 정책들의 한계와 대안적 논의
1. 구조주의적 분석의 필요성
위와 같은 신자유주의 시대 농촌 발전과 빈곤 감축 정책에 대한 새로운 접근은 변화하는 농촌 사회와 그 변화에 대응하는 정책적 제안에 대한 유의미한 분석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라틴아메리카 농촌 사회에서의 정치경제적 권력 관계에 대한 분석이 결여되어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새 농촌 접근과 관련하여 케이 (Kay)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새 농촌 접근’을 취하는 학자들은 국가를 구성하는 계급이나 정치적 권력의 존재에 대해 제대로 된 분석, 즉, 자본의 지배, 농촌 지역 인구에 대한 배제, 착취 구조 자체에 대한 논의는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농촌의 빈민층이 처한 구조적 현실에 대해 간과하면서 제안하는 정책들은 결과적으로 단기적인 처방에 머무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러므로 ‘새 농촌 접근’에 기반 하여 장기적인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라틴아메리카 사회에서 자산, 소득 그리고 권력 분배의 불평등함과 연관된 사회 내의 권력과 계급 관계의 변화를 잘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Kay 2009, 936).
다시 말해, 국가 주도 발전 모델 하에서 시장 주도의 발전 모델로의 이행 과정에서 국가의 경제에 대한 개입이 줄어들고, 다국적 자본의 영향력이 증가하게 되면서 보다 열악한 삶의 조건에 처하게 된 농촌 사회의 빈곤층이 생존을 위해 다양한 경제활동들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결과적으로 신자유주의하의 농촌 발전과 빈곤 감축 전략은 농촌의 빈곤층이 처한 사회 변동에 대처하기 위해 주로 농업 이외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생존 전략을 모색하는 것에 그 논의가 국한 되어 왔다. 하지만 농촌 발전과 빈곤 감축 전략에 있어 더욱 근본적으로 고려해야 할 점은 단순히 농촌 사회의 빈곤층을 ‘개별 생산자’로 간주하여, 이미 주어진 구조적 현실 하에서 개별 생산자 차원의 생존 전략 모색 보다는 이러한 농촌 사회의 변화라는 구조적 현실에 내제된 사회 경제적 관계와 정치적 권력 관계에 대해 논의해야 할 필요성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주의적 분석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2008년 세계은행이 발간한 농촌 빈곤 감축 전략과 관련된 보고서의 구조적 한계에 대해 지적한 다양한 학자들의 의견을 고려해 볼 수 있다. 2008년 세계은행은 ‘세계 발전 보고서 2008: 발전을 위한 농업’ (World Development Report 2008: Agriculture for Development)을 발표했다. 이 보고서의 주된 논지는 영세한 농민들, 즉 소농들에 기반 한 농업을 발전시킴으로써 농촌 사회의 빈곤 감축을 모색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마너 (Amanor)는 소농에 기반 한 농업 발전이라는 보고서의 정책적 제안이 내재된 권력 관계를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발전을 위한 새로운 농업’ 보고서에 대해서 아마너 (Amanor)는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다.
보고서에서 ‘정치 경제’ (political economy)라는 용어는 지배적인 정치 경제적 이해를 가진 지배 엘리트 집단들의 거버넌스 구조 혹은 연합을 의미하는 용어로 이들은 그들만의 프로젝트를 이행하고자 조직화되어 있다. 한편 ‘사회계층의 다변화’ (social differentiation)는 사회 구성 세력들의 다양화를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정치 경제 구조의 변화에 따른 농촌 빈민층 (여기서는 영세한 소농들)의 삶의 여건의 악화 (dispossession 혹은 impoverishment)는 결과적으로 이들이 생존을 위한 경제 사회적 전략을 추구하기가 더욱 어려워 졌음을 의미하는데, 보고서에서는 이러한 구조적 변화를 분석하기 보다는 구조적 변화를 기정사실화 하고, 소농들을 ‘개별 생산자’로 제시하며, 단순히 이들의 다양한 생존 전략 모색이라는 목적으로 개별 농업 생산자들의 ‘선택’ (choices for individuals)으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평등/불평등의 문제는 농업 시장의 자유화에 따른 새로운 형태의 배제에 따른 사회적 계급과 연관된 사회 계서화 (social differentiation)의 문제라기 보다는 기껏해야 젠더의 문제로 축소되는 경우가 많다 (2009, 248).
이와 같이 세계은행의 보고서는 영세한 농민들이 농업 무역 자유화를 통해 처하게 되는 구조적 한계에 따른 근본적인 해결책에 논하고 있기 보다는 빈곤한 개인, 즉 영세한 소농들에 집중된 정책적 제안을 제시하는 것에 그 논의가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마너 (Amanor)가 지적하고 있듯이 보고서에서 제시하고 있는 ‘다양성’ (heterogeneity)의 개념은 개별 생산자들이 생존 전략으로 택하게 되는 다양한 ‘선택’ (choice)과 ‘자유의지’ (free will)의 문제로 탈바꿈하게 된다 (2009, 256). 다시 말해, 농촌 영세농들은 처한 현실에서 빈곤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본인들이 보유하고 있는 ‘자원’ (resource endowments)과 이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데 있어 외부적인 ‘한계’ (constrains)를 함께 고려하여, 가장 ‘합리적’ (rationally)으로 생존 전략을 모색하게 된다는 것이다 (Amanor 2009, 256).
요약하자면, 2008년 세계은행의 보고서에서 농촌 발전과 빈곤 감축을 위한 주된 정책적 아젠다는 정책의 주요 대상인 영세한 소농들 (small-scale farmers)의 국제 농업 시장에 통합시켜 이들의 빈곤 상황을 개선시키는 것, 즉 ‘농업을 통한 새로운 발전’ (new agriculture for development, 이하 WDR 2008)이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농업을 통한 새로운 발전’ 전략 (WDR 2008)에서는 소농들이 처하게 되는 빈곤의 근본적인 요인인 세계 농업의 자본주의 권력 관계에 대해서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
이와 관련해서 오야 (Oya)는 “WDR 2008은 농촌 빈곤 감축을 위한 농촌 노동시장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한다. 이는 보고서가 소농들의 생산성과 시장 통합 가능성에 대해 지나지게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2009, 232). 보고서의 ‘시장 중심주의’ 농촌 사회 빈곤 감축 전략에 대한 비판에서 맥마이클 (McMichael) 역시 정책 제안에 있어서 자본주의적 권력 관계를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즉, “농업을 통한 새로운 발전의 주된 동력은 농산업 기업들 (agribusiness)의 시장 힘의 집중화 (market intensification)와 이에 보조를 맞추는 국가들의 정책”에 있다고 지적했다 (McMichael 2009, 236).5) 다시 말해, 세계은행의 관점에서는 영세한 농민들은 빈곤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통합될 필요가 있으며, 영세한 소농들이 자산을 축적하여 빈곤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국제적 농기업이 지배하고 있는 세계 농업 구조의 기회를 보다 잘 활용하고 이를 위해 경쟁력을 가진 생산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맥마이클 (McMichael)은 이러한 세계은행의 빈곤 감축 방식, 즉 소농들의 생산력 증대를 도모하여 궁극적으로는 이들을 세계 시장에 통합시키고자 하는 정책제안들은 결과적으로 이들 소농들의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자본주의 권력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세계은행의 주도하에 전 세계적 규모의 농산업 (agro- industry)이 발전하고 있고, 이러한 전 세계적인 농산업 구조 하에서 소농들은 생산력을 증대를 통해 각자의 영농을 ‘근대화’하도록 제안 받고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러한 방식은 농업을 기술의 근대화 발전에 제한해서만 규정하게 되는 반면, 빈곤과 기아 문제를 지속적으로 재생산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것이다 (McMichael 2009, 239-240).
여기에서 농업의 근대화란 (보다 생산력이 높은) 유전자 조작 종자의 지원, 이러한 종자 생산을 위한 비료 등의 지원을 통해 농업 생산력을 증대 시키는 것을 의미하는데, 빈곤 감축 정책의 틀 하에서 소농들이 이러한 농업 근대화 정책에 점차 통합됨으로써 화학적 영농이 심화되고, 화학 비료와 종자 기업들에 대한 종속 정도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McMichael 2009, 239-240). 맥마이클 (McMichel)에 따르면, 이러한 생산의 합리화와 근대화에 기반 한 농촌 빈곤 감축 정책은 영세한 소농들의 국제 농업 시장으로의 통합을 통해 이들의 빈곤 감축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하기 보다는 다국적 농기업들에 의한 시장 독점의 증대와 영세한 소농들에 대한 착취의 심화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McMichael 2009, 239-240).
결과적으로 WDR 2008은 표면적으로는 소농들의 생산력 증대를 통해 시장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농촌 빈곤 감축 정책에 있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지라도, 이면에 내재되어있는 권력관계, 즉 다국적 농기업 (agribusiness)과 세계적 슈퍼마켓 체인 등이 주도하는 ‘국제식량레짐’ (global food regime)6)의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즉, 빈곤의 ‘구조적 요인’보다는 빈곤 대상 (i.e. 영세한 소농들)과 이들을 중심으로 한 빈곤 문제해결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여기에서 소농들은 다양한 사회경제적 여건에 처해있는 개별 생산자들이며, 변화하는 농업 사회에 대응하여 합리적인 생존 전략을 채택해야하는 존재들인 것이다. 여기서 합리적인 생존 전략이라고 하는 것은 갈수록 증대되는 자본의 권력 앞에 생산 수단을 잃고 낙담하여 경제적 빈곤 상태에 머무르기 보다는 현재 처한 상황에서 보유한 자산 (‘resource endowments’)을 합리적으로 평가하여, 이러한 자산이 부족할 경우 농업 이외의 다양한 경제활동 혹은 이민 등을 통해 혹은 국가나 국제 개발 공동체의 다양한 지원을 잘 활용하여 자산을 축적하여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생산자가 될 수 있도록 생산 능력을 증대 (empowerment)하는 적극적인 시장 행위자가 되는 것이다.
또한 자유화된 무역 구조 하에서, 국제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농산품, 예를 들면 유기농 농산품이나 비전통 수출 작물들 (Non-Traditional Agricultural Exports, NTAEs)의 수출과 같은 틈새시장을 통해 시장에서의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WDR 2008의 정책 제안의 주된 목적은 소농들의 생산성과 시장 경쟁력을 높이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 “토지의 사유 재산권 정립, 시장에서의 상품 판매를 위한 경영 기술을 발전, 시장 정보의 제공” 등을 통한 소농들의 자산 형성을 지원하는 것이다 (Amanor 2009, 257). 또한 시장에서 경쟁력이 없는 생산자들을 위해서는 단기적인 지원 정책들이 필요하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7)
WDR 2008를 포함하여 시장 중심적 농촌 사회 빈곤 감축 정책들이 위와 같이 빈곤 요인의 그 구조적 측면을 고려하지 않는 한계와 함께 또 다른 문제점은 정책의 대상을 ‘개별 대상화’ 하고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도 ‘개별 생산자’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즉, 농촌 사회 인구를 빈곤한 인구 (poor)와 빈곤하지 않은 인구 (non-poor)로 양분하고, 농촌 사회의 빈곤층을 빈곤하지 않는 인구와 철저하게 분리하고 전자의 빈곤한 사회경제 여건을 강조함으로써, 이와 관련된 보다 광범위한 사회적 관계에 대한 논의를 배제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빈곤은 오로지 ‘빈곤층’의 개별적인 경험이기 때문에 개별 생산자들의 능력 강화 (empowerment)를 통해 해결해야할 문제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빈곤한 소농들이 자신들의 자산을 축적하고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능력 (capabilities)을 높일 수 있게 되면, 빈곤의 상태를 극복할 수 있게 된다는 주장이다. 이와 같은 빈곤층/비 (非) 빈곤층의 이분법에 기반 하여 개별화된 (individualised) 정책을 제안 여건 하에서는 사회 전체나 사회적 관계와는 별개로 빈곤한 개인 생산자나, 빈곤 가구가 주로 정책의 기본적 대상이 되는 것이다.
2. 주류 빈곤 감축 정책에의 대안적 논의
결과적으로 위와 같은 농촌 사회의 빈곤 감축 정책은 빈곤을 발생시키는 요인, 즉 정치경제적 구조 혹은 정치적 담론과 제도와 같은 구조적 요인을 간과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정책적 제안들이 기본적으로 빈곤의 다 측면적 특징에 대해 고려하고 이를 지원하고자 하고 있지만, 최종적으로 빈곤 감축의 목표는 사회경제적 빈곤 상황의 개선에 있다는 측면에서 경제 환원주의적 (economic reductionist) 정책에 치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빈곤 감축의 최종적인 목표가 빈민층의 물질적 조건의 개선이라면, 그러한 물질적 빈곤이 발생하게 되는 구조적 요인에 대한 고려가 없을 경우, 제안된 정책들의 결과적 성공 여부가 지속적으로 한계에 부딪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예를 들면, 틈새시장을 통해 소농들의 국제시장에서의 시장적 기회를 높이고자 소농들이 유기농 농산품이나 비 전통농산품의 생산을 증대시킬 수 있도록 시장 정보를 제공하고, 생산 조건 개선을 위한 기술이전이나 교육 등의 지원을 할지라도 근본적으로 이러한 농산품이 거래되는 국제 농업 시장에서의 정치경제적 권력관계가 고려되지 않는다면, 물질적 상태를 개선하기 위한 빈곤 감축정책으로서의 영세농에 대한 지원 정책이 얼마나 실질적인 효과를 낳고, 지속력이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8)
이와 관련해서 그린 (Green)과 흄 (Hulme) (2005)은 ‘만성적인 빈곤’ (chronic poverty)의 개념을 통해 빈곤의 근본적인 요인에 대해 보다 관심을 높여야함을 상기하고, 빈곤 감축에 대한 세계은행을 위시한 주류 정책 제안에 대한 비판을 제기했다. 그린 (Green)과 흄 (Hulme)은 개인 가계의 소득과 소비에 기반 한 빈곤의 개념화를 통해서는 빈곤의 성격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 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즉, 주류의 빈곤 감축 정책은 “경제 정책들과 개별 생산자들과 가계의 생산 전략”과 관련되어 있으며, 이들의 소득 수준이 높아진다면 빈곤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 것에 그 논의가 제한 되어있다 (Green and Hulme 2005, 867). 빈곤을 가계 소득에 기반 하여 측정 가능한 상태로 간주하고 빈곤 감축의 목표를 세우는 정책들은 빈곤의 근본적인 요인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빈곤과 발전에 대한 다양한 공적인 논의들을 배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빈곤 문제를 탈 정치화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이다. 즉, 주류의 논의에서 빈곤 문제는 단순히 적절한 정책적 대안의 적용을 통해 효과적으로 빈곤의 (물질적) 조건을 해결하는 것에 제한되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빈곤의 논의는 단순한 물질적 조건의 개선을 넘어서는 이해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빈곤의 장기적 요인에 대한 논의가 요구된다. 이와 관련해 힉키 (Hickey)와 브랙킹 (Bracking)은 “오랜 시간을 거쳐 빈곤이 지속적으로 존재해왔다는 것은 결국 빈곤의 문제가 정치·사회적 규범과 체제 속에 이미 제도화 된 것이며, 특히 정치엘리트들은 정치적 담론 속에서 이러한 제도화된 규범이나 체제를 기정사실화하며, 이와 동시에 빈곤층은 이러한 규범이나 체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정치적 대표성을 확보하고 있지 못함을 반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05, 851). 이러한 만성화된 빈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결국 오랜 시간에 걸쳐 빈곤을 재생산해 온 사회적 관계에 대한 이해와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단순히 영세한 생산자들의 자산 축적 지원과 개별적 시장 능력 강화를 통해 일시적인 물질적 상태 개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차원을 넘어서는 광범위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 빈곤의 요인을 파악하고, 이러한 관계가 어떻게 지속적으로 빈곤을 양산하는 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만성적 빈곤” (chronic poverty)의 개념이 유용하다. 그린 (Green)과 흄 (Hulme)에 따르면, 만성적 빈곤 개념의 핵심은 “기간” (duration)과 “역동성” (dynamics)인데, 왜냐하면, 이를 통해 만성적 빈곤을 양산하는 사회적 관계의 형태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05, 867). 이러한 사회적 관계는 종종 “정치적 제도와 경제적 구조”에 내재되어 있다 (Green and Hulme 2005, 867). 또한 만성적 빈곤의 개념은 “지속적으로 빈곤을 양산해 내는 구조적 조건”을 다루고 있으며, 빈곤을 단순히 “정적”인 개념인 아닌 “동적”인 개념의 인식하고 있는 것에 그 유용성이 있다 (Green and Hulme 2005, 873).
결과적으로 빈곤을 요인에 대한 파악을 통해 빈곤이 지속적으로 양산되는 구조, 즉 사회적 관계에 대해 파악함으로써 단순히 빈곤한 물질적 상태를 기정사실화하기 보다는 빈곤 문제를 정치화, 즉 정치적 문제로 공론화하는 데 일조할 수 있다. 만성적인 빈곤이 내재화된 정치적 제도나 경제적 구조, 이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사회적 관계에 대한 공론화 없이는 지속적으로 제안, 이행 되는 주류 발전 기관들의 빈곤 감축 정책들은 일시적인 물질적 조건 개선에만 그 효과가 제한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오늘날 경제 자유화를 통해 라틴아메리카 농촌 빈민층의 물질적 삶의 조건이 보다 열악해진 상황을 고려해 볼 때, 빈곤이 지속적으로 양산되는 그 구조적 요인을 공론화, 정치화하는 것이 정책적 대안을 고안하는 측면에서도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힉키 (Hickey)는 만성적 빈곤의 개념이 갖는 유용성을 강조했다. 즉, “만성적 빈곤에 대해 관심을 집중함으로써 빈곤의 요인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요인에 대해 이해 할 수 있는 데, 이는 현재의 빈곤 상태와 보다 광범위한 정치사회적 논의를 재연결함으로써 가능해진다” (Hickey 2005, 1005). 이러한 측면에서 사회 운동은 빈곤의 구조적 요인에 대해 관심을 높임으로써 빈곤 문제를 정치화 하는 한 가지 방안이라고 볼 수 있는데, 사회 운동을 통해 그동안 고려되지 않았던 빈곤과 관련된 정치경제적 구조와 사회적 관계가 공론의 장에서 논의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빈곤 문제를 정치화에 함에 있어서 사회운동의 역할과 관련해서 베빙턴 (Bebbington)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사회운동이 빈곤 현상 자체에 대해서보다는 빈곤을 양산하는 요인들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시위나 정치적 행동을 통해 빈곤 문제를 정치적 공론의 장으로 이끌어 냄으로써 빈곤 문제를 단순히 물질적 조건의 개선 뿐 아니라 사회를 보다 정의로운 방식으로 재구성 할 수 있는 대안적 요구들에 대해 논의할 수 있게 되며, 이는 결과적으로 발전에 대해 실현 가능한 다양한 대안들을 제안할 수 있게 된다 (Bebbington 2007, 799-800).
이와 같은 사회 운동을 위시한 빈곤의 정치화를 통해 제시되는 빈곤과 관련된 다양한 요인에 대한 논의들이 빈곤층의 개별적인 빈곤 감축 전략과 함께 이뤄질 때, 농촌 사회 빈곤 감축과 발전에 대한 장기적 해결 방안에 한 발짝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다.
Ⅴ. 결론
이상에서 이 글은 20세기 후반 이후 진행되어 온 경제 자유화와 개혁에 따른 농촌 사회의 급진적인 변화와 그에 따른 농촌 사회 발전과 빈곤 감축에 대한 주류 국제 개발 공동체의 논의들을 살펴보고 그 한계와 대안적 논의의 필요성에 대해 밝혔다. 특히 세계은행을 중심으로 주류 국제 개발 공동체에서 신자유주의 시대 농촌 빈곤 감축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은 빈곤의 주요 주체, 특히 영세 농민들이 ‘개별 생산자’로서 그 생산 능력을 증가시키고, 마주하고 있는 국제 농업 시장에서 시장 기회를 확보하는 것을 지원하는 정책에 집중되어 있다. 개별 생산자의 다 측면적 능력 향상 (multi-dimensional empowerment)을 위한 지원을 늘리고, 이들이 유기농 농산품이나 비전통적 농산품을 생산하여 수출을 증가 시킬 수 있는 시장 기회를 확대 시키도록 지원함으로써, 주류 개발 공동체가 의도하는 바는 영세한 소농을 중심으로 한 농촌 빈곤층이 물질적 빈곤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농촌 빈곤 감축에 대한 개별 생산자를 중심으로 한 접근 방식은 정책들의 단기적 효용성에도 불구하고 빈곤이 실질적으로 자리하고 있는 그 구조적 요인, 즉 빈곤 상태를 지속적으로 양산하는 국제 농업 자본주의의 경제적 구조와 정치적 권력관계, 그와 연관된 사회적 관계에 대한 논의는 소홀히 함으로써, 빈곤 문제의 장기적 해결을 모색하지 못하는 한계를 안고 있다. 또한 빈곤의 다 측면적인 성격에 대해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빈곤 감축의 최종적인 목표는 결국 물질적인 빈곤 상태의 개선에 제한되어, 협소한 빈곤 논의에 집중되어 왔다.
이와 같이 경제 세계화 시대 농촌 사회 변동과 그에 따른 빈곤 감축에 대한 주류 개발 공동체의 전략과 정책들에 대한 한계를 극복하고 빈곤에 대한 논의를 확대하고 정책적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이 글에서는 빈곤의 ‘구조적 요인’에 대한 논의를 보다 활성화 (‘빈곤의 정치화’)할 필요가 있음을 제안했다. 이는 빈곤을 지속적으로 양산하는 구조적 요인에 대한 논의를 공론의 장으로 이끌어 올 필요가 있음을 반증하는 것으로, 이러한 역할을 하는 한 방식이 지난 수 십 년간 라틴아메리카 농촌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한 농촌 사회 운동이다. 공간의 부족으로 농촌 사회 운동에 대한 보다 자세한 논의를 전개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는 라틴아메리카 농촌 사회의 빈곤 문제에 대한 보다 장기적이고 대안적인 논의를 위해 후속연구에서 보다 자세하게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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