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경제엘리트 연구
초록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이후 브라질 경제 엘리트들의 지형을 분석했다. 브라질 경제 발전과 경제 권력 관계는 식민 이후 대토지에 기반하고 있는 플랜테이션 농업 자본이 중심이었다. 이런 구조는 산업화 이후에 일부 조정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가운데 신자유주의 이후 브라질 경제에 직ㆍ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대토지소유자, 공기업 경영자, 대자본가와 경제 관료를 통해 산업자본가의 성장이 눈이 띠기는 하지만 공기업이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고, 최고경영자들도 대부분이 기존 경제 엘리트들을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었다.
브라질 경제 엘리트들은 연방정치와 지방정치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경제 권력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경제정책의 많은 부분이 네트워크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자신들의 경제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 브라질의 경제엘리트들도 정치 엘리트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권력을 확대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정치 활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Abstract
This papers analyzed brazilian economic elites in perspective of history. I analyzed economic elite and specificity to understand relationship between processes of economic development and economic power in 2 chapter. I knew that brazilian economy and elites has been developed by monoculture and latifundium in agricultural structure. In 3 Chapter, I analyzed land owners, state-owned enterprises management, multinational capitalist and top economic officials as economic elites in Brazil. Brazil’s big landowners have far too much power in politics. Restructuring state-owned enterprises through privatization, these enterprise management play an important role to propel the economic policy of government. Brazil’s top multinational enterprises have made the country the second largest outward investor among developing countries. These multinational corporation have an effect on trade and investment. Top Brazilian economic policymakers are decide the directions of economic policy with president. So they are very important in economic elites, but they are changeable in accord with economic situations. I examined how do form the economic elite network at present. The economic elite had a strong network, large land owners and politicians appeared to be a close relationship, in particular. Networks between other elites and senior economic officials is relatively loose.
Keywords:
Economic Elite, Capitalist, Landowners, Networks, Monoculture키워드:
경제엘리트, 대자본가, 대토지소유자, 네트워크, 단일경작경제Ⅰ. 들어가는 말
브라질은 식민기간 식민지 개척을 위해 마련된 대농장주를 중심으로 경제구조가 형성되어 있다. 이런 전통 때문에 경제엘리트는 대토지에 기초한 집단적 특성을 보였다. 농업자본은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에 급격하게 성장하여 정치권력을 장악하여 과두체제를 형성했다. 농업자본은 대외 경제환경의 변화에 취약한 특성을 보여 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을 기점으로 점차 쇠퇴하고 일부는 상업 자본, 또 다른 일부는 산업자본으로 전환하여 자본 축적과 경제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수입대체산업화가 국가주도로 추진되면서 국내 산업자본가는 보호주의 정책 하에서 안정적인 성장을 구축했다. 수입대체산업화 전략이 1970년대와 1980년대 말까지 유지되었던 점을 고려하면 브라질 경제 엘리트들은 크게 국가와 국내 산업자본가로 구분되고, 국가에서는 경제 관료들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런 구조는 관료적 권위주의 체제 기간 체제 안정화와 경제발전을 위해 국가가 주도적으로 정착시키고 발전시켰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1980년대 경제위기가 도래했을 때에도 권력유지의 수단으로 경제가 활용되어 쉽게 체질 개선을 주도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성을 나타내기도 했다. ‘잃어버린 10년’을 경험한 1990년대에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추진하면서 비로소 시장친화적인 경제정책을 통해 국가의 역할을 축소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곧 새로운 경제 권력 집단의 형성을 추동했다고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시행되는 시점에 신산업 영역들이 등장한 것도 새로운 엘리트들의 등장과 성장을 가능하게 했다. 시장진입이 자유로워지고, 비교적 건실한 기업들이 민영화되면서 부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중소 규모의 부자들이 시장 자유화를 통해 빠르게 성장하면서 경제엘리트의 수를 증가시키기도 했다. 이와 맞물러 브라질 경제가 지난 20년간 안정적인 성장을 유지했다는 것도 경제 엘리트의 성장과 변화에 영향을 미친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1994년 헤알 정책이후 브라질 경제는 고질적인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잡고, 화폐개혁을 통해 국내 시장을 안정시켰다. 이를 바탕으로 지속적인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브라질 경제는 단일 상품 경제를 기반으로 성장해왔다. 그 과정에서 토지가 개별 엘리트들의 경제적 능력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고, 변하지 않는 부의 원천이었다. 단일 상품 경제는 토지라고 하는 한 가지 요소에 의존하면서 상품의 변화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런 체제 속에서 새로운 경제 엘리트들이 등장하기에는 많은 제약들이 있었다. 산업화 과정에서도 대토지 소유자들이 중요한 경제 행위자로서 국가의 보호 아래 경제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런 경제권력 즉, 경제적 가치로 평가되는 부와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영향력을 경제 권력이라고 한다면, 브라질의 경제 권력은 크게 이동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따라서 경제 엘리트와 국가를 분리하는 것 자체가 브라질 경제 구조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다. 경제 엘리트란 ‘재산의 소유와 관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차지하고 산업, 금융 및 상업 자본을 통제하는 계층’으로 자원 배분에 영향을 미치며 이는 결과적으로 고용, 소득수준, 생활수준과 같은 거시 경제적 요소들을 결정한다(이재영, 이재유, 2000; 재인용). 경제엘리트들은 자원의 상당 부분을 점유하면서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 자신의 목표를 추구하면서 다른 그룹들에 영향을 미친다.
본고에서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이후 브라질 경제 엘리트들의 지형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2장에서는 브라질 경제 발전과 경제 권력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경제 엘리트와 경제적 특성에 대해 간략하게 분석해보고자 한다. 브라질 경제 토대가 크게 변하지는 않았고, 그 과정에서 단일상품의 변화가 어떻게 진행되었는가를 분석할 것이다. 3장에서는 브라질 경제에 직ㆍ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경제 엘리트들을 대토지소유가, 공기업 경영자, 대자본가와 경제 관료로 구분하여 분석한다. 공기업은 여전히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최고경영자들의 구성에 어떤 변과가 있었는지를 분석할 것이다. 대자본가가 신자유주의 이후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분석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경제 관료들을 분석 대상으로 설정하였다. 국가주도 경제성장을 이끌었던 경제 관료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관료들 간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분석하면 브라질 경제 정책 방향과 성장 산업 영역에 대한 이해를 확장시킬 수 있다. 4장에서는 브라질 경제 엘리트들이 어떤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는가를 살펴볼 것이다. 분석을 통해 정치권력과 마찬가지로 경제 권력도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유지하고 증가시키기 위해 어떻게 연합하고 연결되어 있는가를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5장에서는 신자유주의 이후 브라질 경제 엘리트들은 어떤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경제 정책과는 어떤 상관관계를 지니고 있는 밝혀볼 것이다.
Ⅱ. 브라질의 경제와 엘리트
1. 단일 상품으로 구조화 된 경제
대체적으로 라틴아메리카 경제는 단일 상품에 따라 1500년에서 1700년까지는 광물채굴 경제, 1700년에서 1810년까지는 대농장 생산 경제, 1825년부터 1914년까지는 간일 상품 수출 지향 경제, 1915년부터 1980년대까지 수입 대체산업화로 구분된다.1) 브라질의 단일 상품 경제는 라틴 아메리카의 발전 단계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 식민 초기 사탕수수 재배가 먼저 시작된 것이 특징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워너 배어(Wener Baer, 2003)는 1930년대까지 브라질의 단일 상품 경제주기를 크게 사탕수수 재배기, 금광주기, 커피재배기로 구분하고 이후를 산업화기로 나누고 있다. 발견 이후 약 400년간 경제 구조가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식민기간은 사탕수수 경작기와 금광 주기로 나누어지는데, 사탕수수 재배기는 1520년경부터 시작해서 1695년 금광이 발견될 때까지로 경계 지을 수 있지만, 금광 주기가 시작되었다고 사탕수수 재배가 완전히 종식된 것이 아니 였고 여전히 북동부를 중심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포르투갈 왕정은 브라질을 15개 지역으로 나누고 각 지역을 12명의 영주(Donatario)에게 봉토를 증여했다2). 봉토제는 브라질의 경제적 가치가 입증되어 식민 관리를 위해 1549년에 또메 지 소우자(Tomé de Sousa) 총독을 파견하면서 대체되기는 했지만 1754년 폐지될 까지 유지되었다. 기본적으로 영주들이 토지 분할 권한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이 브라질에 등장한 최초의 경제 엘리트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는 영주로부터 농업, 목축, 정착지 확대를 위해 봉토를 분할하는 세스마리아(Sesmaria)3) 시스템을 통해 성장한 사람들이었다. 봉토를 양허 받은 사람들은 포르투갈 왕정을 위해 희생한 귀족, 항해사와 군인들이 대부분이었다. 봉토제가 붕괴되는 과정에서 세스마리아들이 경제 권력과 함께 정치적 영향을 행사했다. 가르시아 다빌라(Garcia D’Avila) 가문의 모르가두 다 또레(Morgado da Torre)는 바이아, 세리지피, 알라고아스, 뻬르남부꾸, 빠라이바, 세아라, 삐아우이 주에도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다(Motta, 2008:3). 또 다른 경제 엘리트는 노예 무역업자들이었다. 식민기간 무역은 포르투갈 왕정이 독점적으로 운영했지만, 브라질에서 노예시장 규모가 확대되면서 경제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초기 노예 무역도 역시 포르투갈과 영국이 차지하고 있었으나, 스페인의 펠리페 왕조가 포르투갈을 통합시키면서 식민지 운영에 균열이 생겼고 그 틈을 브라질 출신 끄리오요들이 메웠다.
식민 후반으로 가면서는 남동부의 미나스 제라이스에서 금광이 발견되어 경제 중심지가 남동부 지역으로 이동했다. 이와 같이 식민기간 경제활동 지역은 단일 상품의 특성에 따라 북동부와 남동부로 양분되어 있었다. 그러나 사탕수수 재배기와 금광주기가 시기적으로 구분되는 것으로 보여지지만 사탕수수 경작이 지속되었고 있었기 때문에 북동부 경제가 완전히 소진된 것은 아니 였다. 금광개발이 산업적 특성 때문에 자본가 숫자가 빠르게 증가했다. 금광주기는 브라질의 경제활동 중심지를 북동부에서 남동부로 이동시켰고, 금광지역에 이전의 촌락구조보다 훨씬 복잡한 많은 도시들이 형성되었다. 당시 유럽인들이 소규모 사금광산을 개발하기 위해 몰려들면서 백인인구가 10배 정도 증가했으며, 북동부의 많은 사람들이 이 지역으로 이주했다. 또한 수공예분야가 발전했으며 무역과 채굴 금융지원을 위한 민간 금융업자들이 활동했다. 초기 금광은 개천에서 큰 자본금 없이도 개발이 가능한 사금 채취였기 때문에 독립적인 경제 엘리트가 형성되는 것이 가능했다. 자수성가형의 경제 엘리트는 소수에 불과했는데, 그것은 금광개발이 많은 노예 노동력, 채굴 장비와 대규모 토지(광산)가 기본적인 조건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농촌의 대토지 소유주와 큰 규모의 상인이나 무역업자들이 광산개발을 할 수 있었다.
금광주기는 자원고갈로 쇠퇴하였고, 그 자리를 목화, 사탕수수와 커피와 같은 농산물 수출 경제가 다시 활력을 띠었다. 그 중에서 커피가 주력 산업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이 지역에서도 라티푼디오(Latifundio), 단일경작, 노예 노동력을 이용하는 시스템이 유지되었다. 커피는 영구재배가 가능했지만 5-6년생 나무에서 열매가 맺히기 때문에 자금이 더욱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커피 재배 산업이 브라질에서 유지되는데는 노예제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노예제 폐지 이후에는 유럽 이민자들이 그 자리를 메웠다. 커피 경작자들이 유럽과 아시아에서 직접 이민자들을 모집하고 자신의 농장 노동력으로 데려왔다4).
발견이후 산업화 이전까지 브라질 경제는 단일 상품을 중심으로 성장했다. 식민초기 북동부 지역에서 시작된 사탕수수, 식민 중‧후반 남동부 내륙에서 진행된 금광개발, 그리고 남동부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확대된 커피 경작이었다. 이런 단일 상품 경제의 공통점은 기본적으로 대토지, 대규모의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대토지 소유자들이 브라질에서 경제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2. 토지에 집중된 경제 권력
발견부터 브라질의 경제발전은 국토의 순환적 이용으로 유지되어 왔다. 발견 초기 브라질 염료나무 채취 산업, 사탕수수 경작, 목축업과 면화 경작, 금광개발, 커피 경작으로 이어지고 고무 산업까지 단일 경작 경제가 연결되고 있다. 이런 과정들은 토지가 기본적인 자원이기 때문에 대토지 소유자주가 경제정책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19세기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논쟁이 이런 관계를 가장 잘 설명해준다. 무역 자유화를 두고 두 진영간의 싸움은 대토지 농촌자본가들과 상인 자본가들의 대립이었다. 대토지 소유자들은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유지하기 위해 보호주의를 선택하고, 반면 상인 자본가들은 개방주의를 지지하는 논쟁이었다. 그런데 상업 자본가들도 대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대토지 소유주들간의 논쟁이라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경우는 1920년대 1차 세계 대전의 영향으로 커피의 가격 하락이 발생하고, 수출 시장이 폐쇄되었다. 경제 상황을 예측하는데 실패한 커피경작자들이 재배지역을 확대하면서 생산이 지나치게 증가했다. 커피 가격이 하락하고, 수출량이 감소하면서 많은 경작자들이 손해를 보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브라질 전체 경제가 위기에 빠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경제 문제해결을 위해 정부가 결정한 정책은 커피를 수매하고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었다.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되는 배경에는 커피 경작자의 대부분이 중앙 정부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관계 때문에 제1공화국의 과두 체제를 밀크커피(Café com Leite)정치라고 한다. 미나스제라이스에서 목축업에 종사하던 농촌 자본가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그렇게 불려졌다. 1930년 혁명으로 권력을 장악한 바르가스도 히우 그란지 두 술(Rio Grande do Sul) 주의 대토지 소유주 출신이었다. 바르가스는 집권이후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농촌과 도시 중산층을 활용했는데, 그 과정에서 대토지 소유자와 산업자본가들과 마찰이 발생했다. 대토지 소유자들 중에 많은 자본가들이 상업 및 산업 자본가로 전환되면서 여전히 토지가 가장 중요한 경제 권력의 원천이었다.
독립혁명과 1930년 혁명 등의 정치·사회적인 변동에도 불구하고 브라질의 토지 소유 구조는 변하지 않았다. 사실 독립은 혁명이라고 평가하기 어렵다. 정치와 경제 체제가 포르투갈의 식민 체제를 그대로 유지했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부분에서도 변화를 찾기 어렵다. 독립이후에도 동일한 체제를 유지하면서 독립 100주년 이후 브라질의 특성을 찾고 기존 체제를 전환시키고자 시도했던 것이 1930년 혁명이었으나, 토지 개혁과 같은 경제 권력과 자원의 분배를 핵심으로 하지 않고 정치권력의 변화에만 초점을 둠으로써 소유구조가 변화되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식민기간 만들어진 소유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여전히 전근대적인 구조라고 할 수 있다.
대토지 소유주 1%가 전체 46%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 토지가 경제 권력을 장악하고 행사하는데 여전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토지 소유자들을 모두 경제 엘리트라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경제 엘리트란 ‘재산의 소유와 관리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차지하고 산업, 금융 및 상업 자본을 통제하는 계층’으로 자원 배분에 영향을 미치며 이는 결과적으로 고용, 소득수준, 생활수준과 같은 거시 경제적 요소들을 결정한다(이재영, 이재유, 2000; 재인용). 경제엘리트들은 자원의 상당 부분을 점유하면서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 자신의 목표를 추구하면서 다른 그룹들에 영향을 미친다.
피어슨(Margret M. Pearson)은 비즈니스 엘리트(business elite)를 경제적 위계 내에서 지위, 소득, 교육, 명망 등을 갖춘 사람들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비즈니스 엘리트는 경제적 소득 순위 보다는 경제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경제인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소득 규모와 명망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여기서 말하는 지위는 경제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관료조직과 경제활동의 핵심주체인 기업조직 내에서의 위치를 보여주는 경제적 위계 내에서의 위치가 가장 객관적인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는 소득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도 유용하다. 경제소득 규모가 절대적인 수치로 객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으로만 엘리트의 기준으로 적용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교육수준이 높다고 해서 경제적 위계 내에서 상위에 위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경제인으로서의 명망은 자신이 지니고 있는 경제규모에 따라 형성될 수 있고, 특정한 사안에 대한 경제적 여론 형성을 통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 사실 명망은 무형적인 자산이라 계량화할 수 없는 측면이 있지만 경제 현안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기 때문에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될 수 있다. 한승연(2007)은 한국의 국가 주도 경제개발정책의 연속과 단절 분석에서 국가주도 경제발전에서 경제 엘리트는 철저히 정부 관료로 구분하여 분석하고 있다. 일국의 경제정책을 결정하는 권력을 지니고 있고, 한국과 같이 단절과 연속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환경에서는 관료를 경제엘리트로 구분하는 것은 매우 유용하다고 할 수 있다.
경제적 소득이 경제 권력을 평가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경제 엘리트들은 많은 부분 상속을 통해 부를 확보한다. 일반적으로 상속은 토지가 주요대상인 경우가 많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브라질도 상속을 통해 경제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금융 자본에 대한 사회 경제적 커넥션과 능력이다. 마지막으로 상업적 가치가 있는 새로운 아이디와 혁신을 통해 새로운 부의 원천을 개발하는 경우이다. 금융자본 케넥션과 능력은 개인적인 계발을 통해서 확보될 수 있지만 철저히 개인적인 역량에 달려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혁신은 시장의 변화를 통해 만들어 질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 소프트웨어 개발이나 SNS 개발과 같은 것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변화들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역시 전체적인 시장의 변화가 필요하다. 신자유주의 이후 브라질 시장은 다변화되었고, 안정적인 성장으로 내수시장이 건실해지면서 혁신기업들의 성장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브라질의 경제 엘리트들은 상속을 통해 형성된 대토지 소유자, 대자본가, 공기업 경영자 그리고 경제 관료로 구분된다. 이들은 브라질 경제 정책 결정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경제 운영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집단으로 경제 변화와 성장 가능성을 파악하기 위한 기본적 조건이 된다.
Ⅲ. 브라질의 경제 권력 엘리트
1. 대토지 소유자
브라질은 토지 소유가 집중되어 있는데 그 출발은 식민과 함께 시작되었다. 식민기간 대표적인 라티푼디오로는 가르시아 다빌라(Garcia D’Ávila) 가문이었다. 가르시아는 1549년에 초대 총독이었던 또메 지 소우자(Tomé de Souza)와 함께 사우바도르(Salvador)의 비품관리인과 무역관의 자격으로 도착했다. 이따뽀아(Itapoá)와 따뚜아빠라(Tatuapara)에서 가축을 기르면서 엄청난 재산을 축적할 수 있었다. 따뚜아빠라에는 까자 다 또히(Casa da Torre)라는 성을 축적할 정도였다. 1700년경에 이 가문은 바이아에서 마라냐웅에 이르는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이탈리아와 스위스를 합친 크기였다. 독립시기에는 독립군을 지원해 3명이 귀족 칭호를 받았다. 그러나 1852년부터 상속과 토지 판매로 규모가 축소되었는데, 남부지방에서 대규모 가축사육이 시작되면서 북동부의 가축 사육 사업이 위축되는 것과 괘를 같이 했다(de Ávila, 2014). 총독과 함께 행정 관료로 브라질에 정착해 식민행정과 깊은 관계를 맺고 발전할 수 있었는데 이것이 앞 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포르투갈의 귀족, 군인, 행정 관료들이 세스마리아제도를 통해 토지를 확보하고 식민정부의 지원을 받아 식량 자원을 공급하는 독점적인 지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현재 브라질에서 가장 큰 라티푼디오는 파우비 사라이바 지 파리아스(Falb Saraiva de Farias), 두 번째는 까를루스 메데이루스(Carlos Medeiros), 세 번째는 세실리우 두 레구 아우메이다스(Cecílio do Rego Almeidas)이다. 네 번째는 뻬드루 도뚜(Pedro Dotto), 다섯 번째는 아다우베르뚜 꼬르데이루 이 시우바(Adalberto Cordeiro e Silva)가 차지하고 있다. 파우비 사라이바는 12,713,819 핵타르를 소유하고 있는데,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합친 것과 같은 규모이며 브라질 국토의 1.5%에 이른다(Schwartz, 2014). 이들이 차지하고 있는 대부분의 땅은 아마존, 빠라, 아끄리 주에 집중되어 있다. 모든 라티푼디오들이 식민기간 쌓아놓았던 조상들로부터 상속받은 것은 아니다. 토지 구획이 확정되기 전에 먼저 등기소에 등록해서 그 지역을 차지한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아마존을 중심으로 한 북부 지역은 개발이 늦어졌고, 경제적 가치가 높지 않아 방치된 측면이 있는데 이 시기에 차지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대토지 소유자가 모두 경제엘리트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대신에 대토지 소유주이면서 정치나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대토지 소유주가 어떻게 브라질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가스띨류(Castilho)는 “땅의 분배(O Partido da Terra)”라는 책을 출간했는데, 2008년과 2010년 시장, 상원, 연방하원, 주하원, 주지가, 부주지사, 부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면서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한 정치인 13,000명을 분석한 결과, 약 203만 핵타르를 소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브라질은 소수의 정치인들이 지배하는 농업 국가라고 주장했다. 정당별 순위를 보면 브라질 민주운동당(PMDB), 브라질 사회민주당(PSDB), 공화당(PR), 진보당(PP)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많은 정치인들이 농업 관련 부분으로부터 5,000만 헤알 이상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브라질 정치는 농촌 의원이 장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농업 관련 산업의 후원이나 가문에서 성장한 농촌 정치 시스템을 구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정치 형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경우가 까찌아 아브레우(Kátia Abreu)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1987년 남편이 사망하면서 땅을 상속받아 경제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대표적인 경우이다. 최근에는 무토지 농민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해야 한다고 말해 사회적 무리를 일으킨 바 있다. 그녀와 두 아들은 아마존 남부 또깡찡스(Tocantins) 주의 오지에 콩 재배지와 사탕수수 농장 3개, 그리고 소 12,000두를 소유하고 있는 북부 오지의 대토지 소유자이다. 남편이 살아있을 때까지는 농장일이나 기타 업무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다가 남편이 죽으면서 땅을 상속받고 직접 농장을 운영하면서, 브라질의 대표적인 대토지 소유주로 부각되고 있다. 그녀의 이미지는 북부 오지 개발자로 인지도를 높이면서 브라질뿐만 아니라 개도국의 농업 발전 부분의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성장했다. 대토지를 토대로 정치 무대에 뛰어들어 실질적으로 브라질의 농업정책 입안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1995년에서 2005년까지 또깡찡스주 농목축업협회 회장으로 활동했고, 2008년 11월부터 2011년까지는 브라질 농목축업협회 회장을 맡았다. 이 단체는 브라질 전역에 퍼져 있는데 2,142개 조합이 가입되어 있고 27개 주에 농축업협회가 있다. 농목축업 분야에서는 거의 독보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까지아 아브레우는 정치에도 직접 참여하고 있는데 2002년에 또깡찡스 하원의원에 당선되었고, 다시 2006년에는 상원의원에 당선되었다. 2009년에는 에뽀까(Época)지에서 선정하는 영향력 있는 100인에 이름을 올렸다. 호세프 대통령과의 관계가 급속도로 가까워지면서 정치적 영향력도 더욱 증가하고 있다. 이와 같이 브라질의 대토지 소유자들이 정치에 직접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경제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도 영향을 준다.
2. 공기업 경영자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으로 많은 국영기업들이 민영화되었지만 여전히 국영기업들이 브라질 산업 발전에서 중추적인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막대한 자본을 확보하고 있으며 인프라 구축 금융을 담당하고 있는 브라질 개발은행, 심해유전과 천연가스 개발로 기업규모와 시장 점유율이 점진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브라질 석유공사(Petrobras), 브라질 전력 공급을 담당하고 있는 브라질 전력공사, 인프라 부분의 많은 부분이 민영화되었음에도 전략적인 측면에서 공기업으로 남아있는 브라질 공항 공사가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이런 기업들은 대부분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는 임명직으로 행정부의 경제정책 추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브라질 경제정책에서 인프라 투자 부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기관이 브라질 개발은행(BNDES)이다. 투자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시행하고 있는 기관이라 브라질에 투자하고자 하는 국내외 기업이 많은 관심을 지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현재 브라질 개발은행장은 루시아누까우바웅 꼬우찡뉴(Luciano Galvão Coutinho) 사장인데 상파울루 대학교 출신으로 깜삐나스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한 바 있다. 그는 산업과 국제경제분야 전문가로 평가받는데 주로 산업 정책에 대해 연구했으며, 경영컨설팅 회사인 LCA Consulting를 공동 설립하여 성공적으로 운영한 경험을 지니고 있다. 2007년에 이 회사를 떠나 브라질 개발은행으로 이직했다. 꼬우찡뉴 역시 시장경제에 바탕을 둔 투자운영을 하고 있는 시장 전문가라 할 수 있다. 꼬우찡뉴 사장은 룰라 전대통령과 인연이 있다. 2002년 대선에서 룰라후보가 승리하면서 기획부 장관으로 기용하려고 했으나 자신이 거부했었다. 2007년 사장에 취임할 당시 1960년대 학생운동 동료였던 주제 지레세우(José Direceu) 정무장관의 적극적인 추천이 있었다. 이를 뒷받침 하듯 개발은행장으로 재직하면서 룰라 전 정부와 호세프 현 정부의 핵심 사업인 브라질 생산발전 정책(PDP)과 성장촉진정책(PAC)을 주도하고 있다. 이 두 정책은 룰라전정부에서 시작해서 지속되고 있는 산업 발전 정책으로 지우마 호세프 정부의 근간을 이루는 정책이다(김기현, 2012: 216).
다음으로는 브라질 석유공사(Petrobras)의 CEO가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석유공사가 많은 유조선과 시추선을 발주하면서 조선부분의 법규정이 변경될 정도로 관련 산업부분까지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다. 브라질 석유공사 CEO인 마리아 다스 그라스 시우바 포스떼르(Maria das Graças Silva Foster)는 2012년 타임지 선정 영향력 있는 100인 중에 75위,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20위를 차지했다. 최초 여성 대통령인 지우마 호세프가 82위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것이다. 미나스제라이스 까라찡가스(Caratingas)에서 태어나서 히우지자네이루의 변두리인 파벨라에서 성장한 입지전적인 인물로 플루미넨스 연방대학을 졸업하고, 히우연방대학 석사와 제뚤리우 바르가스 재단 박사를 마쳤다. 석사와 박사과정은 경제 엘리트들이 거치는 과정을 밟았다. 1978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뻬뜨로브라스에 입사해, 다양한 직책을 거쳐 2005년 화학 담당부의 대표 및 투자관계 부서 담당 이사, 2006년 유통 담당부 대표를 거쳐 2007년에 가스 및 에너지부 이사로 발탁되었다. 2012년 2월 9일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의 지명으로 뻬뜨로브라스의 CEO에 취임했다. 포스떼르는 석유계의 철의 여왕으로 불리운다.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과의 인연은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호세프 대통령이 히우그란지두술주의 에너지 부문 서기관으로 재임할 때 뻬뜨로브라스 볼리비아-브라질 라인 매니저로 만났다. 그리고 호세프가 에너지 및 광업 부문을 담당할 때 포스떼르를 석유 및 천연가스 담당부 서기관 및 바이오 디젤 프로그램 협력부 코디네이터로 지명하면서 둘의 관계가 확고해졌는데, 이때부터 포스떼르의 뻬뜨로브라스의 CEO설이 나돌기 시작했다. 이런 관계 때문에 정부와 석유공사는 긴밀한 정책적 공조를 이루고 있다(김기현, 2012: 217).
최근 브라질은 산업시설 확충 등으로 전력 생산량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전력 공급은 브라질 전력공사인 일레뜨로브라스(Eletrobras)가 담당하고 있다. 일레뜨로브라스는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전력회사이면서 세계적으로도 10위 권내에 있는 기업이다. 최근 남미와 아프리카 대륙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이 회사의 사장은 주제 다 꼬스따 까르발류 네뚜(José da Costa Carvalho Neto)로 전력 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인물이다. 정치적으로는 중립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다. 미나스제라이스의 브라질 민주운동당 정부에서 미나스제라이스 에너지회사(Companhia Energética de Minas Gerais) 대표를 역임했고, 노동자당 캠페인에 참여했지만 주제 세하(José Sarra) 대선 캠페인에도 참여했다. 2011년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과 광업, 에너지 자원부 장관의 추천으로 임명되었다. 선임 당시 배경에 대한 논란이 많았으나 연정을 유지하기 위한 선택이며 동시에 에너지 분야에서 축적한 노하우를 인정한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마지막으로 브라질 공항 인프라 공사(Empresa Brasileira de Infraestrutura Aeroportuária, Infraero)가 최근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2014년 월드컵과 2016년 올림픽 유치로 브라질은 항공인프라 구축에 많은 투자가 필요한 상황인데, 공항 67개, 항공지원단 80개, 항공화물터미널 32개를 관리하고 있다. 이 업무를 맡고 있는 사람은 무릴루 마르께스 바르보자(Murilo Marques Barbosa) 사장인데, 히우 출신으로 항공 교육과 연구 분야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기는 하지만 항공분야 기술 관료라고 하기 어렵다. 히우자네이루 주의 정보통신국, 브라질 원자력공사(Nuclebrás)와 핵에너지국가위원을 지냈고, 국방부 장관을 역임했다. 많은 직무 중에 브라질 공항 인프라 공사 재무위원회 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바르보자의 경력을 보았을 때 공항 인프라 구축의 시급성을 고려한 정치적 선택이라 할 수 있다.
그 외 많은 공기업이 있는데 연방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기업과 주정부에서 관리하는 주영기업으로 구분된다. 국영기업 체제가 유지될 때는 각 주마다 회사가 설립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도 항만관리 회사는 각 주마다 설치되어 있다. 연방정부가 관리하는 공기업의 경우에는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정무장관이 추전 임명하는 DAS와 NES를 통해서 임명되기 때문에 정부의 경제 관료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정부부처가 아니기 때문에 공기업 경영자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3. 대자본가
브라질의 대자본가들은 많지만 여기에서는 다국적인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가문과 정치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대자본가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대자본가 가문이 다국적 기업을 운영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다국적 기업을 운영하고 있지만 자본 규모에서는 후순위로 밀려나는 경우도 있다. 다국적 기업들은 국내경제 정책에도 영향을 미치지만 대외경제 부분에서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보수적인 시장 개방정책을 실시하고 있지만, 최근에 다국적 기업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브라질 기업들도 라틴아메리카 지역을 넘어 다른 지역으로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다국적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가문을 보면 브라질 대자본가의 성향을 분석할 수 있다.
첫 번째, 모라이스(Moraes)家는 Votorantim Industrial(VID)을 통하여 건축자재(시멘트), 금속, 제철, 에너지, 펄프, 농산업(식음료) 사업을, 그리고 Votorantim Finanças (VF)를 통하여 상업투자은행(Banco Votorantim), 소비자금융(BV Financeira), 자산관리(Votorantim Asset Management), 리스(BV Leasing), 증권거래(Votorantim CTVM)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이 가운데 Votorantim Cementos는 북미와 볼리비아(시멘트 제조), 북미(Engemix 레미콘 및 골재 채석장)에 진출한 다국적기업이고, Votorantim Metais의 아연사업부가 2004년에 페루 제련소(Cajamarquilla Zinc Refinery) 인수하고 페루, 볼리비아, 콜롬비아, 아르헨티나, 멕시코, 캐나다 등으로 광산탐사를 본격화하면서 다국적기업으로 변모했다. 이 외에 철강업체인 Votorantim Siderurgia도 브라질, 콜롬비아, 아르헨티나 등 3개국에서 연산 270만 톤의 제철소를 보유한 다국적기업이다(권기수, 2013). 소유주인 안또니우 모라이스(Antônio E. de Moraes)는 민주화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경험이 있는데 주로 국민보건 시스템 개선과 일자리 창출에 많은 관심을 지니고 있다. 1986년에는 상파울루 주지사에 출마했으나 낭마했다. 지금도 신문이나 잡지에 주요 사안에 대해 글을 쓰기도 하는데, 상파울루 문학 아카데미 회원이기도 하다. 현실정치에 관심이 많은 자본가로 경제정책결정에 참여하고 있다.
두 번째, 바찌스따(Eike Batista) 家5)는 브라질 재계 순위 1위로 EBX 그룹 산하에 석유가스(OGX), 에너지(MPX), 조선(OSX), 물류(LLX), 광업(MMX), 금·은·구리 광산개발(AUX), 석탄(CCX) IT(SIX), 식품(NRX), 스포츠마케팅(IMX), 부동산개발(REX) 등 다양한 자회사를 두고 있다. 이 가운데 AUX와 CCX가 콜롬비아에 진출하고 있어 중남미 다국적기업에 해당한다. 1980년부터 2000년까지 브라질과 캐나다에 8개 금광회사와 칠레의 은광에서 약 200억 달러를 벌어 들렸다. EBX 그룹은 미나스제라이스와 마뚜그루수두술(Mato Grosso do Sul)에서 철광석을 생산하고 있고 상용 태양열 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다(권기수, 2013). 그의 아버지인 엘리데제르 바찌스따 다 실바(Eliezer Batista da Silva)는 주앙 굴라(João Goulart), 페르난두 꼴로르(Fernando Collor) 정부에서 광업에너지 장관을 역임했고, 브라질 최대 철강회사인 발리 두 히우 도시(Vale do Rio Doce)의 사장을 지낸 바 있다. 지난 2011년과 2012년 사이에 이 그룹이 투자한 규모가 155억 달러에 이르는데 히우지자네이루의 상주앙다바하(São João da Barra)에 LLX가 Açu 항구, 이따과이(Itaguaí)에는 MMX가 남동부 항구를 건설하고 있고, 마라냐웅의 이따끼(Itaqui)와 세아라의 뻬쎙(Pecém)에 온열 발전소를 건설 중이다. 이와 같이 이 그룹은 인프라와 천연자원 부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2013년 10월 OGX에 이어 OSX가 파산보호를 신청하는 등 그룹이 해체되고 있어 중남미 다국적기업에 해당하는 자회사들의 지위도 불안한 상황이다.
세 번째, 주제 바찌스따 소브링뉴(José Batista Sobrinho)家는 1953년에 하루 5두를 처리할 수 있는 도축장을 창업한 이래 세계적인 육가공업체로 성장한 JBS는 브라질의 대표적인 다국적기업이다. JBS는 브라질 이외에도 미국, 호주 등 9개국에 도축 및 육가공 설비를 운영 중이다. 2005년 아르헨티나의 Swift Armour 인수를 계기로 국제화전략을 추진한 이후 2007년 미국과 호주의 Swift & Company, 2008년 미국의 Smithfield 및 호주의 Tasman, 2009년 미국의 Pilgrim's Pride 및 호주의 Tatiara meat Company 인수를 바탕으로 국제화는 물론 소, 돼지, 닭, 양 도축 및 가공, 낙농, 가죽, 사료, 바이오디젤 등으로 업종을 다각화했다. 주제 바찌스따 소브링뉴는 제 미네이루(Zé Minerio)로 잘 알려져 있는데, 아들인 주제 바찌스따 주니오르(José Batista Júnior)가 2013년에 고이아스주 브라질 민주운동당에 가입하고 차기 고이아스주지사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고이아스 주에 본사를 두고 활동하고 있는 그룹으로서는 주지사에 당선된다면 브라질리아 연방정부와 가까운 곳에 정치 토대를 마련하고 정국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6).
네 번째, 까마르구 꼬헤아(Camargo Corrêa) 그룹은 1939년 설립된 소규모 건설회사(Camargo, Corrêa & Companhia Limitada-Engenheiros e Construtores)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현재는 브라질 이외에 19개국에 진출하여 시멘트, 에너지, 운송, 건설, 의류 및 신발, 부동산개발, 조선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Camargo Corrêa 그룹은 포르투갈의 다국적기업인 Cimpor(시멘트)의 지분(74%) 보유, 아르헨티나의 다국적 시멘트회사인 Loma Negra 인수, 그리고 중남미 최대 교통인프라 관리업체 CCR을 바탕으로 다국적기업으로 성장했다. Loma Negra는 2012년에 파라과이의 시멘트업체 Cementos Yguazu 지분 35%를 인수하여 다국적기업으로의 성장을 가속화했다.
마지막으로 오데브레찌(Odebrecht)家는 독일 이민자인 선조(Emil Odebrecht)의 특성(엔지니어)을 이어받아 엔지니어링 및 건설부문을 중심으로 발전해오다가 1979년에 CPC 인수, OPL(유전 시추) 설립, CMW Equipamentos 및 STL(수송) 인수 등을 바탕으로 석유화학산업 및 석유산업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했다. 특히 1980년대 정부의 민영화정책을 활용한 Salgema, Poliolefinas S.A., PPH, Unipar 등 화학 및 석유화학업체 인수와 2001년 Copen 지분 인수 및 Mariani 그룹과의 컨소시엄 구성은 남미 최대 석유화학업체인 Braskem 설립(2002년)의 기초가 되었다(권기수, 2013). Odebrecht(E&C)는 1979년 인접시장인 페루와 칠레에 진출하면서 국제화전략을 추진했는데, 2013년 현재 35개국에 진출해 있다.
분류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로자스 아메리카나스(Lojas Americans)의 소유주이면서 소매 유통업을 장악하고 있는 조르지 빠울루 레망(Jorge Paulo Lemann), 사프라 은행(Banco Safra)창립자이면서 휴대폰 분야에도 투자하고 있는 조세피 사프라(Joseph Safra), 세계적인 맥주 및 음료 생산을 하고 있는 암베비(AmBev)를 소유하고 있는 마르셀 에르망니 뗄리스(Marcel Herrmann Telles), 언론 재벌인 글로부(O Globo)를 소유하고 있는 주앙 호베르뚜 마링뉴(João Roberto Marinho)와 주제 호베르뚜 마링뉴(José Roberto Marinho) 형제, 그의 아버지인 호베르뚜 마링뉴 이레나에우스(Roberto Marinho Irenaeus), 맥주 주류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까를루스 알베르뚜 시꾸삐라(Carlos Alberto Sicupira), 이따우 은행(Banco Itaú) 은행장인 호베르뚜 세뚜발(Roberto Setubal) 등은 브라질 10대 부자로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7). 호베르뚜 이리네우 마링뉴(Roberto Irineu Marinho)가는 브라질 최대 방송사인 우글로부(O Globo)를 소유하고 있는데, 권위주위 집권기와 민주화시기에 글로부는 정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문맹률이 높은 브라질에서 TV와 라디오 방송은 여론을 형성하는데 매우 중요한 수단이었다. 글로부는 킹메이커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지금도 여전히 브라질에서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론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4. 경제관료
브라질의 경제 엘리트들 중에 정부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관료들은 출신학교와 연구소를 기준으로 구분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런 경향들은 1990년대 중반까지 유지되었는데, 경제 관료들의 등용문으로서 활용되기도 했다. 대부분의 경제 관료들은 상파울루대학교 경제대학과 제뚤리우 바르가스 재단(Fundação de Getulio Vargas)의 경제 및 경영 출신들이다. 또한 경제 관련 연구소들이 씽크탱크 역할을 하면서 관료들이 자신들의 역량을 확대하고 실물 경제에 대한 이해와 경제발전 플랜을 구상하는 기관 역할을 했다. 이들 기관들로는 제뚤리우 바르가스 재단의 브라질 경제연구소(Instituto Brasileiro de Economia), 기획부의 경제사회 기획연구소(Instituto de Planejamento Econômico e Social), 상파울루대학교의 경제연구재단(Fundação Instituto de Pesquisas Econômicas) 등이 있다8). 이 연구소들은 브라질의 경제 발전 모델 구축, 이론적인 토대 마련 등에서 많은 영향을 미쳤다. 브라질 경제연구소는 1950년대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경제관료들과의 네트워크를 통해 브라질 경제정책 결정과 실행에 가장 많은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동시에 경제 관료를 양성하는 연구기관으로서 기능했다.
페르난두 엥히끼 까르도주(Fernando Henrique Cardoso) 전 대통령은 하이퍼 인플레이션과 경제문제 해결을 위해 헤알 플랜(Plano Real)을 추진하면서 기존의 경제엘리트 집단과 차별성을 지닐 수 있도록 국내외 대학 출신들을 골고루 입각했는데, 그 면면을 살펴보면 뻬드루 말랑(Pedro Malan), 뻬르시우 아리다(Pérsio Arida), 라라 헤젠지(Lara Resende), 에지마르 바샤(Edmar Bacha), 구스따부 프랑꾸(Gustavo Franco) 등이었다.
룰라 전대통령은 전임 대통령이 추진한 경제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이 안정을 유지하고 경제 환경이 개선된 상황에서 정권을 잡았다. 대신에 IMF 정책에 반대하던 정책적 기조로 인한 대외신임도 회복과 대외부채 상환이 가장 중요한 경제현안이었다. 그래서 보스턴 은행 출신을 중앙은행장에 임명하고 중앙은행의 관리자와 재무부 장관을 금융시장 출신을 입각시켰으며 제뚤리우 바르가스 재단과 히우 가톨릭대학교(PUC-Rio)와 같은 보수주의 진영들을 경제부처에 입각했다. 그러면서 UNICAMP와 UFRJ 출신의 경제이론가와 발전문제에 관심이 많은 CEPAL 출신들이 경제부처에 물러났는데, 까를루스 레싸(Carlos Lessa)가 브라질 개발은행장에서 물러났고, 중앙은행과 재무부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고 노동자당 당원인 마리아 꼰세이사웅 따바레스(Maria Conceição Tavares)도 물러났다. 대신에 기두 망떼가(Guido Mantega)가 재무장관으로 입각되면서 중앙은행이 보수적인 성향을 띠게 되어 거시 경제정책에 집중했다.
현재 재무부 장관은 룰라 정부에서 장관으로 임명되었던 기두 망떼이가가 계속 맡고 있다. 노동자당 집권이 시작되면서 부처장관으로 임명된 이후 현재까지 12년간 정부 요직을 두루 거치고 있는 정부여당의 브레인이라 할 수 있다. 망떼가는 울찌무 세군두(Ultimo Segundo)가 뽑은 가장 영향력 있는 60인 중에 8위를 차지했다9). 1위에서 7위까지의 인물들이 전·현직 대통령, 부통령과 차기 대권 후보들이 차지하고 있는데, 망떼이가 그 뒤를 잇고 있는 것으로만 보아도 정부여당과 브라질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알 수 있다. 기두망떼이가는 상파울루 대학교 출신으로 교수로 재직했다. 또한 공산노동당(Partido Operário Cumunista)에 가입해서 활동했으나 정당이 찢어지면서 탈당했다. 1980년 초반에 노동자당 창당 당원들과 가까워지기 시작해 전략가로서 활동했고, 1993년부터 룰라의 경제자문, 2003년 기획부 장관에 임명되었으며, 다시 브라질 개발은행 사장을 역임했다. 2006년 3월에 재무장관에 임명되어 현재까지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브라질 경제의 국제환경 개선, 내수 시장 성장과 천연자원 개발 등으로 경제가 안정을 유지하면서 능력을 평가받아 지우마 당선자가 맨 먼저 장관으로 지명했다10). 이로서 호세프 정권의 경제정책도 룰라의 정책을 유지할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고, 실제 경제정책은 대부분이 룰라 정부의 정책을 계승하거나 확대 발전시킨 것들이다.
지우마 호세프 정부는 중앙은행장에 알렉산드리 안또니우 똥비니(Alexandre Antônio Tombini)를 임명했다. 브라질리아 대학 출신으로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하고 1998년부터 중앙은행에서 근무했다. 중앙은행에서 성장한 인물로 은행장 보좌관을 오랫동안 역임하면서 국제 금융 기관과의 파견이나 협상에 참여했다. 그러면서 거시 경제정책 분야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는데 전문 분야가 통화정책이고 국제금융기관과의 협상 테이블이나 파견근무를 통해 인적 네트워크를 구추하고 있어 외부적인 신임도를 높이는데 도움이 되었다. 정치 활동 경력이 없는 사람으로 경제 관료 출신이라는 점이 중앙은행을 맡는데 적임자로 평가받았다. 그는 취임하면서 중앙은행의 운영자율권을 강조하면서 무엇보다도 인플레이션 억제에 주력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이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높은 이자율 정책을 유지하면서 통화구매력 유지에 중점을 두고 있다. 행정부내에서는 기두 망떼가 재무장관과 브라질 개발은행 사장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똥비니도 올해 영향력 있는 60인 중에 12위를 차지했는데11), 역시 경제 정책 분야에서 권력 지수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이 연방정부에서 중요한 경제부처인 재무부, 중앙은행과 브라질 개발은행 이라 할 수 있는데, 좌파 성향의 노동자당 정부가 집권했음에도 여전히 시장주의자들이 장악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첫 번째 이유로는 역시 좌파정권이기 때문에 가질 수 밖에 없는 대외신임도 문제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도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현재 브라질 경제운영의 중심이 분배와 성장의 균형을 중시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이해된다. 무엇보다도 인플레이션과 환율 같은 거시 경제 안정을 추구하고자 하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세 번째는 부정적인 측면이라 할 수 있는데 호세프 정부가 룰라 전대통령의 경제 아젠다를 극복할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하지 못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경제정책만 놓고 본다면 호세프 정부는 룰라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넷째,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노동자당의 경제정책을 완성하기 위한 선택이라고도 평가할 수 있다. 호세프 정부의 경제 관료들은 기본적으로는 중도 좌파 성향을 띠고 있는 인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대토지 소유자와 민간 기업과의 출발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Ⅳ. 네트워크형 경제 권력의 집중
무사치오(Musacchio)는 산업화 초기 멕시코와 브라질의 엘리트 네트워크 비교 연구에서 아주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멕시코와 브라질이 공통적으로 엘리트 집단의 네트워크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첫째, 규모의 차이이다. 두 국가가 공통적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었지만 멕시코가 브라질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 인원이 많았다. 둘째, 집중도의 차이였는데, 멕시코는 집중도가 매우 높게 나타났고 브라질은 상대적으로 그 범위가 매우 넓게 집중도가 낮았다. 마지막으로 정치인들의 역할도의 차이였다. 멕시코에서는 정치인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으나 브라질에서 협력자로서의 역할로 제한되었다. 전체적으로 브라질 경제 엘리트들의 네트워크가 멕시코에 비해 느슨하고 정치인들과의 연결 정도가 높지 않은 것은 정치 환경의 차이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멕시코의 경우에는 포르피리오 디아스(Porfiriato)의 장기집권에 따라 권력 집중도가 매우 높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고, 브라질의 경우는 밀크커피(Café com leite) 과두정치로 지방이 상대적으로 자율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브라질도 도시를 중심으로 경제 엘리트들의 집단화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1938년에 설립된 브라질 산업연맹(Confederação Nacional da Indústria, CNI)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어려운 경제 문제를 극복하는데 큰 역할을 하면서 경제력을 활용한 정치적 영향을 미치는 경제인 단체로 성장했다. 상파울루, 미나스제라이스, 히우그란지두술과 히우지자네이루의 컨소시엄에서 출발해서 지금은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지니고 있다. 사실 브라질의 경제성장과 발전을 촉진시키는 유사 정치조직이라고도 할 수 있다. 브라질 모든 산업가와 주요 기업 경영자들이 브라질 산업연맹의 회원으로 우리나라의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유사한 조직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때문에 정치력을 활용하여 국가 정책 입안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권위주의 정권기에도 경제적 다양성 확보와 경제발전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군부정권에 로비를 펼쳐 경제구조변화와 수입대체산업화 정책을 추진하도록 설득하기도 했다(Wells, 2010: 666). 또한 민주화 이후 브라질 산업연맹은 생산성 증대, 세계시장 진입과 “브라질 비용(Custo Brasil)”을 줄이는데 주력했다. 신자유주의 정책이 추진된 1990년대에는 무역개방, 세계시장 진입, 산업기술 발전과 같은 산업시설 확대에 기여했다. 이와 같이 브라질 산업연맹은 국가정책과 일치하는 정책을 펼치거나 국가정책을 주도적으로 변화시키는 정치력을 지니고 있어 실질적으로 브라질을 움직이는 경제 엘리트 집단이다. 브라질 전역이 여전히 효율적인 인프라가 구성되지 않은 부분이 많은 것을 고려해 볼 때 각 주와 지방에 설치되어 있는 경제인 연합이나 산업협회를 통해 시장진입이나 투자를 확대하는 것이 용이할 것으로 여겨진다.
경제 엘리트와 정치 엘리트간의 관계도 찾을 수 있는데 특히, 주와 지방수준의 정치 엘리트들은 경제적 부를 바탕으로 성장한 경우가 많았다. 이런 측면에서 정치 지배 연합과 같이 지방에서는 경제 지배연합이라고 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어 특정한 산업이나 지역에 대한 투자와 진입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따라서 주와 지방의 시장 진출에는 정치와 경제 엘리트들의 지배연합을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을 알 수 있다. 정부와 엘리트가 긴밀한 유대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첫째, 엘리트가 모든 정치 재원인 자본을 제공해준다. 때문에 정부가 엘리트들에게 접근을 허용한다. 둘째, 엘리트가 정부와 협상 전략적 협정을 통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셋째, 행정부와 입법부 구성원들이 바로 엘리트 자신이다. 예를 들어 의원 중 3명이 백만장자로 나타났다. 자유전선당은 의원의 50%에 해당하는 38명이 백만달러 이상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고, 브라질 민주운동당은 37명, 사회민주당은 21명, 노동자당 조차도 6명이 백만장자였다. 지역적으로는 남동부지역이 62명이었는데, 상파울루 출신 의원이 29명, 미나스제라이스 출신이 25명에 달했다(Wells, 2010: 671). 이와 같이 정치 엘리트와 경제 엘리트가 독립적이라기보다는 보완적인 관계에 있다.
최근 글로벌리제이션 이후 브라질 기업에도 국제화 경향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큰 변화 중의 하나이다. 기업 최고 경영자들은 대부분이 외국에서 공부하고 국내기업이나 다국적 기업에 취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Pohlmann, Markus & Valarini, Elizangela, 2013; 51). 또 하나 특징적인 것은 경제 엘리트들 간에 긴밀한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었다. 경제 관료와의 관계는 설명하지 못했지만, 대농장주와 정치인들은 정치화 과정에 직·간접적인 방법을 통해 상호간에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Ⅴ. 결 론
브라질 경제 엘리트는 역사적으로 대토지와 대자본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단일 상품으로 구조화된 경제 환경에서 성장했다. 이런 환경에서 토지 소유가 상징적으로나 실제적인 면에서 경제 권력을 의미한다. 또한 3가지 생산 요소 중에 2가지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를 재편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맑스가 주장하는 것처럼 하부구조가 독점 권력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상부구조 즉 정치도 그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브라질 사회가 권위주의적인 측면이 강하게 나타나는 것도 경제적인 집중에서 비롯한 위계적 질서 때문이기도 하다.
본문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브라질 경제 엘리트들은 특히, 대토지 소유자들은 자신들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서는 무소불위의 경제 권력을 장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직접 정치에 참여해 정치권력을 획득하거나 네트워크나 로비를 통해 지역의 경제 발전을 결정하는 정책결정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경제 엘리트 네트워크가 단순히 자금의 흐름만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을 창출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토지 소유자들은 여전히 비교역재인 토지가 자본이기 때문에 대부분이 보수주의적인 성향과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지지한다.
브라질은 수입대체산업화에서 시작된 국가주도 경제성장 모델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 국가 주도 경제 성장이 지니는 한계성을 극복하기 위해 민영화를 추진하여 많은 기업들이 민간으로 이전되고, 시장 진입을 개방하여 새로운 기업들이 유입되고 있지만 여전이 국가가 중요한 경제 활동 행위자로서 자리를 지키고 있고, 그 중심에는 독점적 권리를 누리고 있는 공기업들이 있다. 그 기업들은 정부 정책을 실제 집행하는 기관으로서 행정부처와 긴밀한 유대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공기업은 정부 정책의 방향을 파악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최근 브라질의 대기업 경영자들은 시장개방이후 가장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다국적 기업들이 출현하면서 대외환경의 변화에 따라 경영 성과들이 달라지기 때문에 환경 변화에 민감하다. 사실 브라질의 대기업들도 농업자본에서 비롯된 것보다는 금융이나 서비스와 같은 산업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런 점이 기존의 기업 활동과 차별성을 지니고 있다.
현재 브라질 경제관들은 높은 사회적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그 만큼 브라질 경제에서 그들이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추진된 이후 경제 관료들의 네트워크가 새롭게 형성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전에는 몇 개의 국내 대학과 연구소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최근에서는 인력풀의 범위가 더욱 확대되어 어떤 특정한 집단이 독점적으로 장악한 영역을 찾아보기 어렵다.
전체적으로 볼 때 브라질 경제 엘리트들은 각각의 구분되는 영역에서 독립적인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 엘리트뿐만 아니라 정치 엘리트를 포함한 엘리트 집단들의 특성은 매우 응집력이 큰 지방을 중심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 이유는 브라질 전역을 포괄하는 경제 엘리트 집단의 집단적 이익을 형성하기 어려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대외 경제에 접근하는 방법과 이해관계도 상이하기 때문에 그 결속력을 높이기는 어려울 것으로 여겨진다.
Acknowledgments
* 이 논문은 김기현 외(2012), ‘중남미 엘리트 집단 특성 연구’의 브라질 부분을 수정 보완한 것임. 이 논문은 2008년 정부(교육과학기술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08-362-A00003)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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