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해지역 프랑스 식민사회와 크레올어의 ‘발명’
초록
본 연구는 17세기부터 19세기 말 크레올어라는 이름을 발명하기까지 카리브해의 프랑스 식민사회에서 언어포식(glottophagie)의 방식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밝힘으로써 식민화와 언어의 명명방식 간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 준다. 먼저 17세기 프랑스의 식민지 소앤틸리스에서 크레올어의 생성을 가능케 한 사회구조적 특수성이 무엇이었는지를 개괄한다. 이어 당시 섬에서 사용되었던 말에 대한 편견과 명명 방식을 프랑스어 사전에 의거하여 예시하고, 19세기말 이후 언어학이 크레올어의 열등성을 담론화하는 지배논리를 보여 준다. 끝으로 20세기 중반 이후 창조적 언어로서 크레올어에 대한 새로운 학술적 시각을 소개함으로써 크레올어를 정체성의 상징으로 삼고자 하는 새로운 담론 형성의 가능성을 전망한다.
Abstract
I intend to highlight a close relationship between colonization and the name of the languages of the colonized population, especially showing how the process ‘glottophagie’ was developed in french colonial societies of Caribbean Region from the 17th century until the late 19th century. To do this, the characteristics of the social structure and the conditions of creole language emergence in the Small Antilles in the 17th century. And then we illustrate in the lexical approach the terms designating the spoken language used by the colonized population, in order to show how racial prejudice and ideology of inferiority producted by the colonizers were imported to theses terms and then how the linguistic has justified them scientifically since the late 19th century. Finally, we present a new vision of the creole language as a creative language, diffused from the middle of the 20th century and as a symbol of the identity of Creoles as well.
Keywords:
Caribbean Sea, Creole Languages, Glottophagie, Hibrid Language, Invention키워드:
카리브해지역, 크레올어, 언어포식, 혼종어, 발명Ⅰ. 서 론
17세기 카리브해 지역 프랑스 식민사회의 형성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는 혼혈, 혼종, 크레올화, 크레올어 등으로 압축될 수 있다. 오늘날 프랑스의 해외도(départements d'outre-mer)로 남아있는 카리브해의 과들루프와 마르티니크를 포함하는 소앤틸리스(Petites Antilles)는 과거 프랑스인 주인과 흑인노예들이 구성하는 혼혈사회로 발전하고 크레올어를 탄생시킨 대표적인 지역이다. 당시 프랑스가 정복한 모든 식민지에서 크레올어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새로운 언어가 출현할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메이예(Meillet/김현권 역, 1997)의 사회언어학적 시각이 여기에 대한 하나의 단초를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그에 따르면, 언어는 사회적 사실이며, 언어가 변하는 조건은 역사적 사건 자체이기보다는 사회구조의 변화에 따른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사회구조가 변하면 언어가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카리브 해역에서 크레올어의 출현은 이 언어가 만들어질 수 있는 특수한 사회구조의 변화가 있었음을 전제한다.
칼베(Calvet/김병욱 역, 2004)가 『언어와 식민주의』에서 크레올 식민사회의 형성을 기존 피지배집단의 사회구조를 식민화하는 일반적인 모델과는 다른 예외적인 유형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점은 이를 단적으로 잘 보여준다. 실제로 크레올 식민사회는 기존 주류사회에 이주민 공동체가 유입되는 디아스포라 구조와는 다르다. 카리브해의 크레올사회는 신대륙 발견 이후 유럽 식민자와 노동력을 위해 강제 이주된 흑인노예로 구성되는 이주사회이며, 백인과 흑인이라는 두 인종 간 접촉에 의해 만들어진 혼혈사회이다. 언어적으로는 두 이주그룹의 서로 다른 언어의 접촉을 통하여 제 3의 ‘크레올어’가 출현하게 되었고, 이는 전대미문의 역사적 사건으로 이해된다. 오늘날 언어학에서 크레올어의 생성을 ‘출현’ 혹은 ‘창발’로 번역되는 émergence로 자주 표현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생각에서이다.1) ‘출현’이라는 표현으로 이해해보면, 크레올어는 식민지에서 거의 반세기만에, 즉 2세대를 거치면서 생겨난 언어라는 점에서 크레올사투리(patois créole), 바라구앵(baragouin), 자곤(jargon)이라는 표현으로 오랫동안 폄하되어 왔다. 게다가 부정확한 언어학적 이해가 이러한 편견에 덧붙여졌다. 흔히 크레올어를 사비르어(sabir), 피진어(pidgin)와 같이, 유럽어와 아프리카어의 단순 혼합어라는 정도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시각이 크레올어의 초기형태를 단순한 혼합어나 잡종어(langue hybride)로 이해했던 초기 식민지 유럽인들의 시각이며 오늘날까지도 편견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연구는 17세기 이후 19세기말 유럽중심적 시각에서 ‘크레올어’라는 이름을 발명하기까지 카리브해의 프랑스 식민사회에서 ‘언어포식(glottophagie)’2)의 방식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밝힘으로써 식민화와 언어의 명명방식 간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고자 한다. 우리는 크레올 혼종성 및 정체성과 관련한 문학 및 문화연구나 영어계 및 스페인어계 크레올어 관련 사회언어학적 연구가 주를 이루는 국내 기존 연구를 바탕으로 하여, ‘거시적 사회언어학’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는 언어적 식민담론의 영역에서 이 주제를 다룰 것이다.3) 먼저 17세기 프랑스의 식민지 소앤틸리스에서 크레올어의 생성을 가능케 한 사회구조적 특수성을 무엇이었는지를 개괄한다. 이어 당시 섬에서 사용되었던 말에 대한 편견과 명명 방식을 프랑스어 사전에 의거하여 예시하고, 19세기 말 이후 언어학이 크레올어의 열등성을 담론화하는 지배논리를 보여 줄 것이다. 끝으로 20세기 중반 이후 창조적 언어로서 크레올어에 대한 새로운 학술적 시각을 소개함으로써 크레올어를 정체성의 상징으로 삼고자 하는 새로운 담론 형성의 가능성을 전망하고자 한다.
Ⅱ. 크레올사회의 구조적 특수성과 사회언어학적 상황
언어접촉의 역사는 바로 사람의 역사이다. 프랑스가 신대륙에 발을 딛고 정복자로서 카리브족을 그 땅에서 몰아내고, 이어 흑인노예를 노동력으로 강제이주 시켰던 땅은 오늘날 마르티니크와 과들루프를 포함하는 카리브해의 소앤틸리스 지역이다. 이주사회의 시작은 주로 지배층인 식민자들과 피지배층인 흑인노예들을 중심으로 한 위계사회였다. 이 두 인종의 접촉은 서로 다른 계층의 접촉이었고, 따라서 처음부터 계층적 구분을 내포하였다. 쇼당송Chaudenson(1992, 1995)이 구분하듯이, 식민 초기 사탕수수와 커피를 주요 농작물로 하는 경작지사회(société d'habitation)(1635-1685)에서 흑인과 백인의 수는 거의 동일하였고,4) 이들 간에는 낯선 땅에서 생존을 위한 공동의 협력이라는 우호적 관계가 어느 정도 유지될 수 있었다. 반면 이후 설탕을 주로 하는 삼각무역이 발달하게 되고 이로 인해 노예의 수요가 급증하는 플랜테이션 사회(société de plantation)에 와서는 소수의 백인이 다수의 흑인을 지배하기 위한 지배논리가 필요하게 되었다.5) 법적으로는 주인과 노예의 관계를 규정하는 흑인법전(1685)이 공포됨으로써 두 계층 간의 경계를 분명히 하는 기준을 마련하였다. 문명과 야만이라는 대립논리로 노예들을 열등한 존재로, 또 백인과 흑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들을 동물이나 괴물에 비유할 정도로 피부색은 지배층과 피지배층을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더욱이 플랜테이션 사회는 노동력을 보다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통제하기 위해 노예들을 출신지역의 습관과 전통으로부터 단절시키고자 하였다(Chaudenson, 1979, 23). 여기에서 노예들을 통제하는 지배논리는 언어적 동화였다. 초기식민사회 형성시기에 식민자들은 의도적으로 동일 출신, 동일 가족의 흑인 노예들을 서로 다른 농장으로 분리시켜 동일한 아프리카어로 소통할 수 없도록 하였다. 흑인법전에서는 노예들에게 기초적인 종교교육을 반대하고, 위반 시 벌금을 물도록 하였다(Bebel-Gisler 1981, 118) 그러나 이러한 동화 정책의 시도는 효과가 없었다. 앤틸리스 사회에서는 피지배자의 언어상실을 포함하는 문화상실(déculturation)에 이어 지배언어를 습득하는 문화접변(acculturation)의 과정으로 넘어가지 않고, 새로운 형태의 크레올어가 생성되었다는 점이 바로 그 증거이다. 다시 말해서 전적인 문화접촉과 문명화의 영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크레올어가 자율적인 언어시스템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식민사회가 일반적인 식민지 환경과는 다른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일반적인 식민지배가 지배집단이 침략하여 기존 토착사회에 지배자의 사회구조를 이입하는 과정이라면, 크레올 사회는 지배집단과 피지배집단이 함께 이주를 함으로써 “식민지배자가 ‘전적으로 들여온’ 요소들로 이루어지기 때문에”(Calvet/김병욱 역, 1997: 150) 완전히 새로운 사회구조를 형성하는 경우이다 .
앤틸리스사회에서 크레올어의 생성을 가능케 한 특수한 사회구조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를 구성했던 사람들이 누구였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프랑스령 앤틸리스의 사회구성원은 식민자와 노예라는 단순한 이분법에서 벗어나 지배층에는 본국에서 파견된 백인 관료들, 식민자(habitant), 선교사, 피지배층에는 다수의 흑인노예와 일부 생존한 카리브족이 있었다.
백인 중 대다수는 식민자이며, 이들의 언어가 크레올어의 생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쇼당송(1992, 65)에 따르면 1640년에서 1660년에 마르티니크로 들어온 프랑스인의 60.9%가 프랑스 서부 지방, 즉 노르망디, 브르타뉴, 일드프랑스, 생통주(Saintonge)의 출신자들이다. 그들의 직업은 계약노동자,6) 선원, 군인, 노예상인, 부랑자 등이었다. 따라서 이들 대부분이 프랑스 사회에서 서민층이었고, 프랑스어보다는 사투리 혹은 방언을 사용하는 지방 출신자들이었다. 대다수가 글을 모르는 사람으로서 ‘올바른 프랑스어(français correct)’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바로 이들이 경작지사회의 백인 식민자가 된다. 그들의 언어는 파리의 프랑스어 혹은 ‘정통 프랑스어(français classique)’가 아닌 서민층의 프랑스어였고 지방색이 강한 프랑스어였다.7) 더욱이 섬에서는 본국에서처럼 언어규범의 압력을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올바른 프랑스어’에서 벗어난 일탈이 제재를 받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한마디로 크레올어는 서민층이 구어로 표현한 지역프랑스어에서 유래한다고 말할 수 있다.
반면 다수의 식민자들 외에, 관료와 선교사들은 소수의 엘리트층으로서 프랑스 본국의 언어규범의 제재를 받는 계층이었다는 점에서 크레올어 생성에 기여한 바가 적다. 기독교 복음을 전파하고자 했던 선교사들은 고상한 프랑스어를 사용하였다. 마찬가지로 정착하기보다는 식민지배사회의 통치자로서 한시적으로 파견되었던 총독, 지방장관, 고위공무원, 군인 등은 파리의 프랑스어를 사용하였다.
흑인노예들은 누구였는가? 앤틸리스 제도에 들어온 대부분의 흑인노예들은 주로 아프리카 서부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출신이 다양한 흑인들은 그들간에도 소통이 힘든 서로 다른 아프리카어를 말하였고, 이들 대다수가 주로 어린이나 청소년으로 젊은 층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빠르게 프랑스화되고 프랑스어로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주인들은 노예들과의 소통을 위해 알아듣기 쉽고 가장 빨리 배울 수 있는 언어, 즉 단순화시킨 “하나의 프랑스말투(une façon de parler français)”(쇼당송, 1995)를 가르쳤다. 식민자들이 노예들과의 소통을 위해 단순화시킨 언어표현을 그들에게 가르쳤고, 노예들을 두려워해서 소통에 필요한 최소한의 표현만을 가르쳤다.
이러한 설명을 다른 관점에서 보면, 초기 크레올사회에서 흑인노예가 사용하게 되는 혼합어(혹은 피진어)는 피식민자의 언어능력의 부족이라기보다는 식민자의 의도된 학습 방법에 의해 또 주인과 노예간 상호이해를 위해 빠른 시일 내에 언어를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 사회적 필요에 의해 출현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프뤼당(1980, 24)의 표현을 빌리면, 흑인, 노예상인, 선원, 식민자의 언어가 조합되는 ‘언어풀(bain linguistique)’에 빠질 수밖에 없는, 따라서 특수한 언어 시스템을 재구성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식민초기 형성기부터 섬에 들어왔던 흑인노예들은 일찍이 백인 주인으로부터 프랑스어를 배웠고 프랑스화한 재간꾼 노예(Nègres à talent)8)가 되었다. 반면 플랜테이션사회가 시작하면서 대거 유입된 노예들은 보살노예(esclaves bossales)로 불렸는데, 재간꾼 흑인이 볼 때, 이들은 프랑스어도 모르고 문명화되지 않은 또 다른 그룹, ‘그들’이었다.9) 이 보살노예들은 노예들의 대다수를 차지하였고, 주인과 동떨어져 살았기에 주인과 접촉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따라서 주인들은 프랑스어를 이들에게 가르치는 데 신경을 쓰지 않았고, 보살노예는 주로 프랑스어를 이미 배운 고참 노예들로부터 프랑스어를 배웠다. 이와 같이 노예들의 대다수를 차지한 보살노예들 간의 소통은 주인이 아닌 고참노예들로부터 간접적으로 배운 프랑스어였고, 이때 프랑스어는 이미 크레올노예가 피진화한 프랑스어의 변이형이었다. 그러나 보살노예들이 제도적으로 강요되는 언어규범이 없는 상황에서 자유롭게 사용한 언어가 크레올 사회의 매개어(langue véhiculaire)로 정착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하게 된다. 따라서 프랑스어 학습상황이 이미 제도권내에서 학교를 통한 교육이 아니라 농장 혹은 일상생활 속에서 의사소통어 혹은 매개어를 배웠다는 점에서 점점 식민자의 지역프랑스어와는 다른 언어로 발전하게 된다.
초기형태의 언어가 먼저 주인과 노예간 소통을 위한 피진어에서 점점 노예들간의 피진어로 발전하였다면, 이 언어가 다시 후세대인 아이들에게 전수되면서 크레올어의 모습으로 발전하게 된다. 아이들의 언어학습 상황 또한 보살노예들의 언어학습 상황과 다르지 않다. 아이들은 자주 부모와 떨어져 있어서 부모와 대화할 기회가 많지 않았고, 따라서 지배언어를 배울 기회가 적었다는 점에서(Bickerton, 1999, 118), 2세대들은 새로운 언어로서 모국어로 발전할 수 있는 사회언어학적 상황에 노출되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2종류의 피진화 과정, 즉 보살노예들을 중심으로 하는 1세대의 피진화와 이후 그들의 자녀인 2세대의 피진화 과정을 통하여 크레올어로 발전하였다고 설명할 수 있다.
이와 같이 17세기 초기 식민사회는 크게는 프랑스어를 쓰는 식민지배층과 피진어를 사용하는 피지배층으로 구분되는 이언어병용상황(diglossie)이었다. 개인적 차원에서 주인은 프랑스어만을 사용하는 단일언어사용자였고, 노예들은 아프리카어와 함께 주인의 말(피진화된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중언어사용자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18세기에 오면 상황이 달라진다. 식민자들이 크레올어를 사용하게 된다는 점에서 두 언어 간에는 경계가 불분명한 이언어병용상황이 된다. 크레올문화라는 특징이 나타나는 18세기부터 크레올어가 주민들의 일상생활에서 보다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더욱이 앤틸리스의 백인 식민자들(마르티니크의 경우, 식민지 태생의 상류층 크레올백인 베케(Béké))이 노예와 물라토(mulâtre)가 사용하는 크레올어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프뤼당(1980)이 말하는 ‘중간방언(mésolectes)’, 즉 피진-크레올어 연속체로 이해할 수 있는 경계가 모호한 중간형태의 언어가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따라서 식민자의 정치적 의도와는 달리, 당시의 사회 구성원들간의 매개어는 규범을 벗어나 역동적인 언어로 발전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크레올사회만의 특수한 사회언어학적 상황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가능하다. 초기형태의 크레올어는 프랑스 본국의 파리프랑스어가 아니라 프랑스의 서민층의 지역프랑스어였고, 문어가 없이 구술로만 소통되는 말이었다. 둘째, 주인과 노예들 둘 다 본국의 언어규범의 압력에서 벗어나 언어사용이 자유로웠으며, 학교라는 제도권안에서 언어를 배우지 못 한 채, 노예부모가 피진화한 말을 다시 2세대가 습득하였다. 이때 아이들은 그들 나름의 이해를 가지고 창조적인 언어를 생성하였다. 셋째, 섬의 말들이 하나의 크레올어로 기능하게 된 것은 크레올어가 매개어라는 사회적 기능을 하였기 때문이다. 우선은 주인과 노예간의 상호이해를 위해 그들의 언어를 혼합하여 사용하면서 점점 형태를 잡아가고 대다수 흑인노예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통용되는 말이 크레올어가 되었다. 초기 식민사회에서 다언어사용자들이 하나의 공통의 의사소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크레올어를 만들었다고 본다면(Robillard 2000, 464), 이름 없는 말들이 크레올어라는 하나의 형태로 수렴되어 가는 과정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Ⅲ. 혼종어를 명명하는 어휘들의 사전적 의미
최근 번역서에서 문화 혹은 언어와 관련한 혼합을 대체로 혼합어, 혼종어, 혼성어, 잡종어, 문화의 혼융, 혼효, 혼종성과 같은 어휘로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어휘들은 프랑스어로는 mixite, métissage, hybridité, hybridation, créolisation, mélange 등에 해당한다. 이러한 다양한 번역어 속에는 크레올어의 혼합의 정도 혹은 양상을 밝힐 수 있는 단서를 가지고 있고 어휘의 선택에 따라 경멸적 의미가 가미되는 경우를 찾아볼 수 있다.
우리말 표현에서 혼합(混合)은 - 프랑스어의 단어 mélange가 여기에 가장 가까운데 - ‘여러 가지를 섞어서 만든 집합’을 의미한다. 혼합과 비슷한 단어는, 혼성(混成), 혼효(混淆), 혼융(混融), 잡종(雜種)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사전(『동아 새국어 사전』 2004 )에서 찾아보면, 이들 단어는 ‘섞다’라는 의미의 혼(混)을 기본글자로 하여 다른 한자를 추가하여 미묘한 의미차이를 나타낸다. 혼성은 섞어서 만든다는 결과를 강조하고, 혼합은 말 그대로 섞어서 합한다는 의미를, 혼효는 섞어서 뒤죽박죽의 질서가 없는 혼잡이나 혼란에 가까운 상태를, 혼융은 섞어서 융합한다는 의미의 화학적 결합을 암시하는 것으로 그 미묘한 의미차이를 가지고 있다. 잡종(雜種)은 잡다한 종류나 순종의 대립개념으로 품종이 다른 생물체들의 교배를 통하여 유전적으로 순수하지 못한 생물체, 사람의 경우는 ‘튀기’라는 의미가 있다는 점에서 경멸적 의미를 내포한다. 이들 단어의 미묘한 의미 차이를 고려하면 프랑스어의 langue mixte를 혼합어나 혼성어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단순히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언어들을 혼합한 결과의 산물로 분류할 때이다. 가령 유럽적 시각에서 혼합어10)로 분류되는 말들은 jargon, baragouin, sabirs, créoles, pidgins 등이 있다. 혼융어로 이해한다면 좀 더 화학적인 융합에 의한 제 3의 언어를 의미할 수 있다. 크레올어가 여기에 해당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혼효어라는 표현이 가능하다면 이 단어는 크레올어의 복잡한 언어생성의 과정을 강조하게 될 것이다. 프랑스어에서 ‘잡종화’로 번역 가능한 hybridation은 언어학에서 지리적, 역사적, 사회적 일부환경으로 인한 사고, 둘 혹은 그 이상의 언어들의 특징이 혼합어로 만들어지는 경우를 의미하는 단어이다(Trésor). 따라서 잡종어로서 크레올어를 이해한다면, 이는 크레올어가 종이 다른 두 언어의 비정상적인 결합이며, 일어날 수 없는 혹은 일어나서는 안되는 사고였다는 것을 함축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크레올어를 잡종어(langue hybride)로 이해하는 시각은 분명 식민지 초기 서구인들의 시각이었다. 이 잡종이라는 표현은 당시 동물의 이종교배에 적용되던 어휘이며, 인종개념이 발달하면서 혼혈인에게 적용하였고, 이때 경멸적 의미를 가졌다. 이와 같은 논리로 당시의 노예들의 언어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동물의 소리라는 경멸적 의미를 내포하였으며, 이러한 논리가 식민지 초기부터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식민담론의 왜곡된 논거로 작용해왔다.11) 식민초기 식민자들이 듣게 되는 낯선 말들에 대한 여러 가지 표현들은 대체로 혼합어 혹은 잡종어라는 번역에 해당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프랑스어 사전12)에서 초기 형태의 크레올어들을 명명하는 jargon, baragouin, charabia, patois 같은 어휘들이 기본적으로 ‘틀린 프랑스어(un mauvais français)’라는 의미로 정의되고 있다. 이는 흑인노예들이 사용하는 말들은 프랑스어를 잘못 이해하고 틀리게 사용하는 말이며 경멸적 의미를 가졌다는 것을 설명해준다.
용어 jargon은 음성적으로는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물이 끓는 소리,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 아기의 종알대는 소리 등 의성어로서 정의된다(Le Robert, GLLF, Littré, ELF). 통사적으로는 언어에 대한 지식이 불완전하여 부정확하게 말해지는 언어(GLLF) 혹은 사비르어처럼 한 언어의 구조의 변질, 변형으로 만들어진 언어로 간섭에 의해 여러 언어들을 조합하여 사용하는 언어(Trésor)이다. 예를 들면 “moi venir ; toi pas savoir”(Trésor)와 같은 형식으로 통사구조를 신경 쓰지 않고 단어를 열거하는 19세기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흑인들이 말하던 엉터리 프랑스어라는 의미의 ‘petit-nègre’ 혹은 ‘petit français’ 와 같은 어법을 일컫는다.
jargon과 유사하게 charabia와 baragouin은 각각 프랑스인들에게 난해한 오베르뉴와 브르타뉴 시골사람들의 말투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단어들은 그 의미가 확장되어 부정확하고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사용된다. 특히 jargon, baragouin, charabia은 낯설어서 이해가 불가능한 사투리나 외국어를 가리킨다. 그런 의미에서 고대 그리스 헬레니즘 시기에 그리스어를 사용하지 않는 외부인, 타자를 ‘미개인(barbare)’이라고 불렀던 맥락과 동일하게 이해할 수 있다.13) ‘우리’와 ‘그들’이라는 구분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쓰는 사람들은 상스럽고 무식하고 무례한 미개인이라는 등식을 성립시킨다.
마찬가지로 patois는 우리말로는 사투리에 가깝다. 그 기원이 새들의 노래, 당나귀의 울음, 아부하는 궁신들을 의미하며, 특히 동물의 발을 의미하는 pattes를 연상시키고 농사꾼이나 하층민들이 쓰는 말,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이 쓰는 말로 경멸적 의미가 강하다(Fourquet 1968, 571 ; Le Robert). 1826년에 patois créole이라는 표현이 처음으로 식민지에서 말해지는 오염된 프랑스어(français corrompu)라는 의미로 사용된 용례가 있다. 19세기 동안 사람들은 프랑스어권 식민지 섬에서 사용되는 말들을 patois créole이라는 표현으로 주로 불렀다(Chaudenson 1979, 16).
이와 같이 이상의 어휘들의 사전적 정의만 보아도 초기 형태의 크레올어는 언어학적으로 음운, 통사, 의미에 있어 부정확하고 알아들을 수 없으며 문명화되지 않은 사람들의 말이라는 경멸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러한 의미는 créole 단어의 의미적 확장과 그 파생어에 그대로 전이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참조한 대부분의 프랑스어 사전에서 créole은 먼저 식민지에서 태어난 유럽인이라는 사람을 지칭하는 의미였으며, 이후 흑인, 혼혈인을 가리키는 포괄적 의미로 확장되었다. 19세기말에 ‘크레올사람들이 말하는 언어’라는 의미가 사전 항목에 추가되었다. 이 시기가 되어 크레올인이라는 정체성을 표시하는 민족적 문화적 특징이 뚜렷해졌으며,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크레올어라는 이름을 부여할 정도로 학술적으로 주목받았음을 의미한다. créole에서 파생된 동사 créoliser는 언어학에서는 “어휘기반이 된 유럽어를 말하면서 크레올어의 특징들을 혼합한다”라는 의미이다. créoliser 의 파생명사인 créolisation14)은 이해할 수 없는 언어적 특징들 때문에 망가진 언어를 만든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프랑스어의 문법에서는 크레올어의 요소와 섞어 사용되는 프랑스어를 français créolisé 라고 부르며, 잡종화된 언어로서 추방되어야 하는 크레올어화법(créolismes)으로 비난한다. 베벨-지슬러 Bebel- Gisler(1981, 108))는 용어 créolisation 이 이데올로기적 의미를 내포한다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créolisation 은 dialectisation(방언화)라는 용어와 마찬가지로 ‘발전에 반대되는 퇴보’를, 따라서 역으로 décréolisation 은 문명화 혹은 프랑스화를 내포한다. 오늘날 문화이론에서 혼종화라는 의미로 자주 사용하는 크레올화(créolisation)와 달리, 언어학에서는 중립적 의미가 없음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사전에서 크레올어가 유럽어와 아프리카어의 혼합어라는 단순한 정의에 그치는 데 비해, 최근에 Trésor 와 Le Peitit Robert사전에서는 크레올어를 “토착어나 외래어와의 혼합에서 기인하는 자율적인 언어체계”로 정의하고 있다는 점에서 크레올어에 대한 언어적 편견과 새로운 시각이 공존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Ⅳ. 크레올어의 학문적 발명과 재생산 : 언어포식의 흔적
앞 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식민정복을 통하여 식민자들이 명명의 권리를 스스로에게 부여하고 타자의 언어를 제멋대로 명명하는 권리를 행사하였다는 의미에서, 식민지에서 말해진 말들과 ‘크레올어’라는 명명은 유럽중심적 사고에서 만들어낸 왜곡된 발명(invention)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칼베가 “명명의 권리는, 자기소유로 만드는 권리의 언어적 측면”(Calvet/김병욱역 2004, 82)이라고 말하듯이, 피식민자가 스스로를 명명하기 전에 식민자가 자의적으로 이름을 붙임으로써 그들 고유의 언어적 권리를 박탈하는 행위로 이해된다. 칼베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언어학이 국가어(langue nationale), 방언, 파투아, 자곤 등 다양한 용어들을 만들어 문명과 야만, 도시와 시골, 귀족과 평민, 식민자와 피식민자라는 이분법의 식민담론을 만드는 데 기여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칼베는 언어포식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설명한다.
앞장에서 보았듯이, 오염된 프랑스어, 바라구앵,15) 자곤, 파투아 등의 표현들에는 ‘틀린 프랑스어’16)라는 기본 생각이 깔려 있다. 이러한 시각은 17세기 보줄라Vaugelas가 말하는 ‘올바른 용법(Bon Usage)’이라는 기준 혹은 규범의 시각에 의한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귀족과 백성을 나누고 파리와 지방을 구분하는 사회적 계층적 기준으로 발전하게 된다. 17세기 당대에는 프랑글레(franglais)와 같이 언어의 혼합을 부정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언어순수주의가 발달하였다(Calvet/김병욱 역, 2004). 따라서 당시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에서 보면, 섬의 언어들은 문명화된 ‘언어(langue)’와 대립하여 미개인의 자곤이었다. 1682년 예수회 신부 몽장Mongin의 편지 내용은 이 점을 잘 예시한다(Rey et al. 2007, 603 재인용).
(...)흑인노예들은, 얼마되지 않은 시간내에, 말하고자 하는 인칭과 시제를 가리키는 몇몇 단어를 추가하여 동사변형 없이 원형동사를 쓰는, 일종의 자곤을 배웠다.(...)17)
몽장 신부의 시각을 통해 보면, 섬의 말들은 통사를 무시하고 단순히 어휘를 열거하는 혼합 방식의 자곤 수준이었다. 17세기 말에 신부들은 자곤의 발달은 프랑스어의 확산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였고, 프랑스어 단어를 섞어 쓰는 알아듣기 힘든 이 새로운 언어에 적대적이었다(Rey et al. 2007, 604). 이러한 생각이 18세기에는 크레올어가 프랑스어를 단순화시킨 형태라는 편견으로 확산된다. 기 아자엘-마슈(Guy Hazael-Massieux)에 따르면, 노예들이 변질시키는 프랑스어는 열등화자들의 타고난 무능력 때문이라는 사회문화적 편견이 있었고 노예들이 주인과 다른 말을 사용하고 또 이들이 새로운 언어를 말한다고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에 크레올어라는 이름을 줄 수 없었다(Véronique 2010, 129 재인용).18)
실제로 19세기 말 이전에 언어학은 주로 문헌학이었고, 인도유럽어에 관심을 두었기에 식민지 섬의 말들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19세기말이 되어서야 역사언어학에 의해 이름 없는 식민지의 말이 ‘크레올어’라는 종명(éthnonyme)‘(Véronique 2010, 129)을 갖게 되었다. 당시 다윈의 진화론의 영향으로 인종주의가 학문적으로 발달하면서, 식민지인들을 인종적으로 열등한 존재로 분류하고, 또 그들이 사용하는 크레올어 또한 열등한 언어이자 잡종어라는 담론이 만들어진다. 초기 크레올어 연구는 크레올어의 친족성을 밝히기 위해 주로 식민자의 언어였던 유럽어와 비교하여 계보를 만드는 데 관심을 두었다(Bebel-Gisler 1981, 109). 이러한 학문적 접근은 크레올어가 유럽어와 아프리카어의 구조적 차용을 통하여 생성된 혼합어라는 관점을 발전시킨다.19) 당시 이론적 견해가 차이가 있긴 하지만, 크레올어의 특징을 단순화(simplification)로 설명하는 것은 대부분 학자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이는 크레올어라는 이름을 갖기 시작하면서 단순한 어휘차용을 넘어서 구조적 차용을 통해 적어도 자곤보다는 더 복잡한 언어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프랑스어나 다른 유럽어들을 단순화한 형태로 보는 편견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17세기와 18세기 동안 식민지 말들에 대한 왜곡된 시각은 19세기 말에 크레올어라는 이름을 얻었음에도 여전히 이전 세기들과 다를 바 없이 재생산된다.
당시의 편견이 노골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노예들이 프랑스어와 같은 복잡한 언어를 말할 수 없으며 그들의 언어적 무능력으로 인해 크레올어가 단순해졌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쇼당송(1995)에 의하면, 크레올어가 주인이 자신의 말을 알아듣기 쉽도록 의도적으로 노예들에게 복잡한 유럽어를 단순화시킨 데서 유래한다고 보는 가설은 인종주의적 이데올로기를 내포하고 있다.20) 마찬가지로 루이-장 칼베는 식민지배를 받는 언어들을 규정하는 단순화가 일반적인 상식이 되어 경멸적인 담론에 이입되었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식민 지배자의 언어적 동화주의는 피지배자들을 문명과 근대의 세계로 이끌어갈 자신들의 언어를 배움으로써 가능하다는 생각에서 기인하며, 더욱이 피지배자의 언어들은 열등언어로서 근대, 과학, 문화의 개념을 전달할 능력이 없고 교육, 문화, 연구의 언어가 될 수 없다고 보는 식민 통치담론이다(Calvet/김병욱 역 2004, 165). 그는 언어학이 명명하고 분류할 수 없었던 식민지의 말들에 대한 야만성과 열등성의 담론을 만드는 데 학문적으로 기여하였다고 지적한다. 당시 언어학은 사회적 필요성과 타협하여 지배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 역할에 기여하였다. 언어적으로는 언어/방언의 대립쌍을 문명인/미개인, 민족(국민)/부족이라는 이분법에 연결하는 논리를 뒷받침한다. 그는 여러 가지 용어, langues, dialectes, parlers, patois 등을 구분하면서 인간관계의 계급적 사고를 반영하고 지배자의 피지배자에 대한 인종차별과 경멸을 정당화하는 데 기여하였다는 점을 논증한다. 특히 19세기 방언학에서 언어학자들이 방언을 한 집단이 사용하는 지역적 형태의 언어라는 의미뿐 아니라 집단 내 이언어병용상황(diglossie)에서 특정계층이 사용하는 언어로 모호하게 정의하면서 이 후자의 의미가 식민지배자에게 알아들을 수 없는 ‘바라구앵’으로 바뀌었다고 강조한다(Calvet/김병욱 역 2004, 65, 69 ; Calvet 2006, 44).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초기 형태의 크레올어에는 브르타뉴어나 바스크어와 같이 dialecte의 지역적 형태의 의미조차 없었다. 실제로 사전에서는 dialecte breton, dialecte basque21)는 있지만 dialecte créole이라는 표현의 용례는 찾아볼 수가 없다. 이는 식민지 섬의 토착어로서 크레올어에 대한 인식조차 없었다는 것이며, 단지 방언의 두 번째 의미인 파투아나 자곤과 같은 나쁜 용법의 경멸적 의미만을 내포하였음을 알 수 있다.
크레올어와 관련한 식민담론은 20세기 중반이후 문법과 언어이론에서도 일부 시각으로 여전히 남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레비스의 문법서 Le bon usage(1986)22)는 크레올어를 단순화된 프랑스어의 지역변이형으로서 이해하는 관점을 잘 보여준다.
“(...) 또 다른 지역(루이지애나, 아이티, 마르티니크, 모리셔스, 레위니옹...)에서 서민층의 말은, 과거 흑인노예들이 음운을 완전히 변조하고 통사를 단순화시킨 프랑스어인, 크레올어이다.”(Grevisse 1986, 17)
위 인용문의 원문에서 크레올어는 un créole이라는 표현된다. 이 표현은 하나의 고유명사로서의 역사적 크레올어를 인정하기 보다는 영어계 크레올어, 스페인계 크레올어로 분류할 수 있는 유럽어들의 변이형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함축한다. 다른 한편 크레올어와 프랑스어의 유전적 관계를 강조한다. 즉 과거 흑인노예들이 음성 및 통사를 왜곡하여 단순화 시킨 프랑스어라는 점에서 서민층의 사투리로 정의하고 있다. 이와 동일한 관점에서 포티에(1973, 227)의 분류는 단순하다. 그는 혼합말(parlers mixtes)이라는 범주 안에 크레올어, 사비르어, 은어를 포함시키면서 인구이동에 따라 사람들이 접촉하여 만들어낸 불안정한 혼합말로 설명한다. 페레고(1968, 598)는 크레올어를 권위있는 상류계층의 언어를 모방하려고 애쓰면서 발생하게 되는 오류라는 의미의 유사-사비르어로 설명한다.23) 그의 유사-사비르어의 정의로 보면, 크레올어는 식민지 상황에서 흑인 노예들이 지배자인 주인의 프랑스어를 단순히 재생산한 결과이며, 그들의 언어요소를 섞어서 만든 단순화된 지역프랑스어인 것이다.
우리는 앞서 베로니크가 말하는 크레올어의 ‘발명’의 측면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자 한다. 정문수(2007, 124)가 말하듯이, 발명을 “어떤 지역이나 그 정체성이 ‘실제와 상상’의 혼합을 통해 전문가의 지적 조작을 통해 자의적으로 만들어진다”고 이해할 때, 크레올어는 피식민자의 언어행위라는 하나의 실제에 인종주의적 상상이 결합되어 ‘열등한 혼합어’로 발명된 것이다. 여기에서 ‘실제’라 함은 크레올어가 식민지 공간에서 유럽어와 아프리카어의 두 언어요소를 차용하여 사용한 데서 만들어진 혼종어라는 사실이다. ‘상상’이란 크레올어를 먼저 프랑스어를 타락시킨 야만인의 언어로 규정하고 이어 그들의 타고난 무능력으로 인해 단순화된 혼합어로 이해하는 이데올로기로 설명할 수 있다.
Ⅴ. 창조적 재구성으로서 크레올어의 또 다른 시각
크레올어의 발명이 19세기 말이었다면 진정한 의미의 온전한 크레올어연구로서의 학문분야인 크레올어학(créolistique)이 등장하게 되는 것은 20세기 중반부터이다. 특히 크레올지역 출신 크레올어학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유럽중심적 관점을 벗어나 학술적 균형을 유지하게 되었다. 크레올 지역 출신 크레올어학자들은 자곤, 바라구앵과 같은 혼합어와 크레올어를 구분한다. 이는 전자가 유럽어를 단순히 모방하여 만든 혼합어라는 관점이라면, 후자는 문법적 오류나 잡종의 산물인 변이형이 아니라 창조적인 재구성(restructuration)에 의한 제3의 언어라는 관점의 차이에 근거한다. 물론 제3의 언어는 무에서 유로 창조된 언어는 아니다. 크레올어가 단순한 언어변화가 아니라 1세대 피진어의 단계에서 2세대로 넘어오면서 재구성된 언어라는 것이다. 새로운 언어로 인정하더라도, 크레올어의 짧은 기간 내의 출현이라는 성격 때문에 크레올어의 생성기원과 유형론에 대한 상반된 견해들이 여전히 존재한다.24) 재구성이라는 관점 안에서도, 크레올화의 과정에서 유럽어와 아프리카어의 기여의 정도와 그 영역과 관련하여 언어학적 시각이 다르다.
이론적 논쟁이 무엇이든 간에, 크레올어 자체를 연구하는 학문으로서 크레올어학25)의 성립은 유럽중심주의적인 시각을 비판하고 새로운 시각을 이끌어가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일이다. 단적인 예로, 크레올 지역 출신의 크레올어학자들은 크레올어를 명명하는 일반적인 관행에 문제를 제기하였다는 점이다. 가령 프뤼당이나 베벨-지슬레는 프랑스어계 크레올어(créoles français), 영어계 크레올어(créoles anglais), 혹은 영어 어휘기반 크레올어(créoles à base lexicale anglaise)라는 식으로 유형화하는 명명방식을 비판한다. ‘프랑스어계’ 혹은 ‘프랑스어 어휘기반’이라는 수식은 크레올어가 프랑스어의 어휘를 차용한 프랑스어의 변이형이라는 편견을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고유한 언어로서 고유 명칭을 표시하지 않는다는 문제점이 있다. 프뤼당이나 베벨-지슬레는 크레올어라는 용어가 서구가 선택한 이름이고, 앞선 명명들이 다양한 유형을 구분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사회의 차별과 편견을 내포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용어가 필요하다고 본다. 프뤼당의 저서명 Des baragouins à la langue antillaise(바라구앵에서 앤틸리스어로)이 명확히 보여주듯이, 이들은 식민지배자와 언어학자들이 정의하는 의미를 극복하기 위해 카리브해의 크레올어를 ‘앤틸리스어(la langue antillaise)’로 명명하는 것을 선호한다. 오늘날 아이티어, 세이셸어라는 명칭은 혼합어의 의미로 크레올어를 보통명사화하는 오류를 수정하는 장점이 있다. 마찬가지로 최근에 모리셔스가 국가 차원에서 le morisien(크레올어로 모리셔스어를 의미)이라는 고유명사를 쓰기 시작했다는 것은 상징적 의미가 있다.
또한 크레올어학자가 지속적으로 역설하는 부분은 크레올어가 안정된 구조를 갖춘 모국어로 전수되며, 사비르어나 피진어가 아닌 ‘진정한 언어’라는 점이다. 명명에 대한 자기 권리를 갖고자 하는 탈식민지적 저항행위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크레올어학의 경향은 크레올어의 언어기술을 발전시킴으로서 프랑스어의 변이형도 아프리카어의 변이형도 아닌 새로운 제3의 언어로서 언어적 위상을 찾고자 한다. 대표적으로 프랑스 엑스-마르세유대학을 중심으로 오랫동안 발간해왔던 학술지 Etudes Créoles은 주로 프랑스어계 크레올어의 언어적 분석과 사회언어학적 접근을 담당하고 있다.
이데올로기를 벗어나서 언어적 특징으로 보자면, 크레올어가 생성된 곳이 프랑스의 식민지이고 크레올어의 생성에서 있어 특히 어휘에서 있어 거의 80-90%를 차용하였다는 사실에서 보듯이, 프랑스어의 영향은 분명하다. 언어적으로 프랑스인이 마르티니크 크레올어나 과들루프 크레올어를 대화에서 이해하지 못하고, “크레올어를 배우지 않은 프랑스인은 크레올어를 이해하지도 말을 할 수도 없다”(Hazael-Massieux, 20087.8. 검색 )는 점은 이를 뒷받침하는 언어학적 증거이다. 카리브해와 인도양의 프랑스어계 크레올어 간의 비교와 프랑스어와 크레올어간의 차이를 쇼당송(1995, 31)의 다음 프랑스어 문장의 예를 통해 간단히 예시하고자 한다. 26)
프랑스어 : Je ne sais pas où il est
아이티어 : m'pa kone (ki) koté li yé
과들루프어 : moin pa sav ola i yé
레위니옹어: mi kon pas ousa i lé
모리셔스어 : mo pa koné kot li été
위 인용된 문장은 한국어로 ‘나는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라는 의미이다. 문법 요소를 간단히 분석해보면 먼저 1인칭과 3인칭 대명사가 사용된다. m', moin, mi, mo는 프랑스어의 주언1인칭대명사 je 에 해당하며, 모두 프랑스어의 강세형 moi 에서 유래한 변이형이다. 마찬가지로 li, i 는 프랑스어의 3인칭 강세형 lui 와 주어형 il 에서 유래한다. 프랑스어의 동사 savoir(‘알다’의 의미)는 과들루프의 경우 sav를 제외하고는 koné (프랑스어의 connaître)를 사용한다. 프랑스어 부정형 ne...pas는 pa, pas 등으로 단일형태로 사용되었다. 프랑스어에서 장소를 나타내는 의문사 où 가 (ki) kote, kot, ola, ousa 등으로 표현된다. 크레올어에서 ki 는 qui 나 que 를 의미하며, koté는 프랑스어의 coté (측면, 쪽)에서 유래한다는 점에서 둘의 조합은 où라는 의미를 갖게 된다. 이는 문법화grammaticalisation 과정을 거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ola 와 ousa 는 프랑스어의 où là, 혹은 où ça에서 유래한 것으로 분석가능하다.27) 이와 같은 분석에서 보면 크레올어가 마치 프랑스어의 변이형으로서 동일한 언어 유형으로 분류되어야 하지 않은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우리가 이 예문을 통해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집을 짓는 재료인 벽돌을 프랑스어에서 상당 부분 차용하였으나, 크레올인들 나름대로의 문법화 과정을 통하여 새롭고 온전한 형태의 집을 지었다는 점이다. 향후 연구에서 다양한 예시를 가지고 언어학적 측면에서 이 부분을 상세히 논증하고자 한다.
Ⅵ. 결 론
우리는 카리브해 식민지에서 탄생한 크레올어가 진정한 의미의 언어로서 인정받기까지 다양한 명명들 속에서 언어학적 접근보다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왜곡되고 평가절하되어 왔음을 살펴보았다. 크레올어는 관용어법이 존재하지 않는 느슨한 언어접촉상황, 식민지 디아스포라의 상황에서 생성되었으며, 미개한 사람들이 변질시킨 프랑스어라는 낙인이 찍히기도 했지만, 세대를 거치면서 자율적 언어체계로 발전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여전히 크레올어를 프랑스어의 잡종형태 혹은 혼합어, 아니면 창조적 언어라는 서로 다른 시각이 공존한다.
크레올어학은 오늘날 사회언어학에서 언어접촉의 주제 안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연구분야이다. 크레올어의 생성기원과 유형론과 관련한 연구는 언어적 이데올로기보다는 언어기술을 통하여 증명하려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반면 언어학의 바깥에서는 정체성의 상징으로서 크레올어를 핵심요소로 삼고자 하지만, 자칫 담론을 위한 담론으로서 왜곡될 여지가 늘 가능해 보인다.
우리는 다음 두 가지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결론을 대신하고자 한다. 한편으로 언어학의 접근에 있어 21세기 현시점에서는 ‘진정한 언어’로서 크레올어를 바라보는 언어관이 필요하다. 소쉬르가 말하는 언어(langue)는 추상적 시스템으로서의 언어나 국가어(la langue nationale)의 개념을 내포하는 언어이다. 이 관점에서 크레올어는 불안정한 언어일 수밖에 없고 , 주변언어이자 방언이고 사투리일 뿐이다. 또한 인간의 수많은 언어들을 지배언어/피지배언어, 주류언어/주변언어 혹은 소수언어, 언어/방언으로 구분하고 경계를 짓는 정의에 머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소쉬르의 개념에서 벗어나 언어를 사회적 사실로 이해하면 탈경계적 정의가 가능하다. 레이보브Labov가 말하는 언어학이 이미 사회를 포함하는 것으로 정의를 하고 마찬가지로 칼베(2006)가 사회를 의미하는 socio를 포함하는 “언어학((socio) linguistique)”을 말하듯이, 변화하고 불안정한 변이형들을 언어가 아닌 하위의 말들로 명명할 이유는 없다. 따라서 언어(langue)는 영어의 language, 프랑스어의 langage를 포함하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크레올어를 langue로 명명되는 언어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종류의 접촉을 통하여 새로운 요소가 차용되어 변화한 또 여전히 변해가고 있는 역동적인 언어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본다.
다른 한편으로 오늘날 크레올어는 크레올 출신 지식인들에게 이데올로기적 관점에서 크레올 정체성의 핵심요소이며 따라서 정치적 사회적 지위를 회복하고자 하는 사회문화 활동의 중심에 있다. 언어학을 넘어 음식, 음악, 수공예, 건축, 문학 분야에서 크레올문화와 정체성에 대한 긍정적인 담론이 확산되고 있다. 프랑스 해외도 주민들은 자신들의 크레올 정체성을 긍정화하고, 지역 정치인들은 이 혼종문화를 찬양한다. 크레올리성(créolité) 담론과 크레올화 운동을 주도하는 작가들, 특히 마르티니크 출신의 콩피앙Confiant, 샤무아조Chamoiseau, 베르나베Bernabé의 문학 및 문화연구와 그들이 결성한 제레크(GEREC)의 언어사전 및 표기법 개발 등의 활동은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들은 세계 크레올 지역, 적어도 프랑스어권 내부에서 ‘범크레올(Pancréole)’이라는 개념을 확산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하나의 크레올성이 가능한가라는 문제 제기로 아직 성공하지는 못 한 것 같다. 크레올 출신 언어학자와 작가들 사이에서 세계의 크레올지역을 아우르는 하나의 단일한 크레올성이 가능한가 라는 문제는 여전히 논쟁거리로 남아 있다.
새롭고 고무적인 담론이 크레올인들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발명’ 혹은 구성주의적 시각‘이라면, 서구인들이 하였듯이 실체가 없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데올로기에 그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여진다. 분명한 것은 크레올어는 역사 속에서 크레올문화를 공유한 사람들의 언어이며, 색깔의 언어도 야만의 언어도 아니라는 것이다.
Acknowledgments
* 이 논문은 2008년 정부(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08-361-B00001)
Notes
Grand Larousse de la langue française (이하 GLLF)
Le Robert Dictionnaire historique de la langue française (이하 Le Robert).
Le Trésor de la Langue française (이하 Le Trésor)
Littré Dictionnaire de la langue française (이하 Littré)
Le Bouquet des expressions imagées (이하 Le Bouquet)
Dictionnaire étymologique de la langue française (이하 ELF)
Le Petit Robert
- 원형동사의 사용 예 : moy prier Dieu, moy aller a l'Eglise, moy point manger
- 시제 표현 단어 추가의 예 : demain moy manger, hier moy prier Di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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