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칠레의 사회 변혁 요구 시위와 불만의 의미 구성 과정
초록
2019년 10월 칠레에서 발생한 대규모 시위는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다. 특히 OECD 회원국으로 경제와 정치 모든 면에서 안정적인 국가라고 평가받던 칠레에서 일어난 대규모 시위는 그 원인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의 고질적 사회 문제인 불평등을 시위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글들이 발표되었다. 그러나 불평등이라는 구조적 요인이 상수로 작동하는 칠레의 현실에서 불평등만으로 2019년 사회 변혁 요구 시위의 발생과 성장 및 성공을 설명하기에는 아쉬움이 있다. 특히 불평등과 관련한 지표들을 분석한 결과 2019년의 불평등 상황이 다른 해에 비해 심각하지 않았고, 심지어 불평등 상황이 근소하게나마 개선되고 있었다는 점을 주목하게 되었다.
이에 본 논문은 ‘사회 폭발(Estallido Social)’이라고 불릴 정도로 강력했던 칠레의 2019년 사회 변혁 요구 시위의 폭발력의 원인을 구조적 불평등에서 찾기보다는 시위의 동력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하여 시위의 전개 과정, 특히 사회운동론 분석에서 시위의 성패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대표적인 변수로 활용되는 불만(grievance)의 의미 구성 과정을 분석하였다. 이를 통하여 본 연구는 칠레의 사회 변혁 요구 시위에서 표출된 불만(grievance)이 경제적 불만 즉 불평등에 대한 불만으로 시작되었으나, 이후 빠르게 신자유주의적 사회의 극복이라는 사회적 불만을 포괄하는 의미로 확대되었고, 시위 현장에서 나타난 공권력의 폭력을 목격하며 칠레 사회에서 공권력의 폭력을 상징하는 피노체트 군사 정권의 유산에 대한 정치적 불만까지 포괄하는 불만의 의미 구성 과정이 발생하였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즉 2019년 시위 과정에서 시위대의 불만이 경제적 불만에서 사회적 불만으로 그리고 다시 정치적 불만으로 확장되어 포괄적인 의미 구성에 성공하였으며, 이는 불만의 효과적인 의미 구성을 의미한다는 것을 밝혀내었다. 본 논문은 칠레의 사회 변혁 요구 시위에 대한 정교한 이해를 가능케 할 뿐 아니라 중범위 이론틀을 통한 사회운동의 고찰 사례를 제시함으로써 라틴아메리카 다른 국가들에서 발생하는 사회 변혁 요구 시위에 대한 분석에도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Abstract
This paper attempts to find out the explaining variable for Estallido Social of Chile by applying the theory of meaning construction process of grievances. By doing so, this work informs us that, via meaning construction process of grievances, the grievance which triggered Estallido Social quickly evolved from economic one (inequality) to one that also embraces social grievance such as fragmentation of Chilean society and marketization of public sector. Furthermore, police brutality against protesters reminded Chilean people of the violence they experienced under Pinochet regime and it triggered even further meaning construction of the grievance which embraces economic, social and political ones; the grievance about never-accomplished eradication of Pinochet's legacy in Chile. Such powerful grievance played a significant role in expanding consensus as well as in strengthening the protesters' solidarity. As a result, Estallido Social could maintain its mobilizational power over 5 months and finally achieved its goal with the election of the constitutional assembly, which reflects protesters' demands. In sum, this paper sheds lights on the internal dynamic of Estallido Social and allows us to better our understanding of explaining variable of the emergence as well as the success of the protest. Furthermore, it hopes to contribute to the making of a theoretical basis to analyze social protests in other Latin American countries.
Keywords:
Estallido Social, Chile, Grievance, Meaning Construction, Social Movements키워드:
칠레 사회 변혁 요구 시위, 불만, 의미 구성 과정, 칠레, 사회운동Ⅰ. 서론
2022년 3월 11일, 칠레 국립대학 학생회장 출신이자 2019년부터 10월부터 2021년 3월까지 칠레를 뜨겁게 달궜던 사회 변혁 요구 시위(Estallido Social)1)를 주도했던 가브리엘 보리치가 새 대통령으로서 임기를 시작하였다. 취임식에서 그는 페미니스트 대통령으로서 성평등을 달성하겠으며, 아라우카니아 점령부터 계속된 칠레 국가의 마푸체 원주민에 대한 폭력을 중단하고 마푸체 공동체와 칠레 국가 간의 진정한 화합을 이룰 것이라 선언하였다. 또한, 그는 부채로 고통받는 학생들과 불안한 노후를 걱정하는 연금수급자들에게 국가의 지원 확대를 약속하였고, 사회 변혁 요구 시위로 인하여 깊어진 칠레 사회의 균열을 극복하겠노라고 다짐하였다(Prensa Presidencia 2022). 칠레 국립대학교의 학생회장으로서 2011년부터 2012년까지 진행된 교육 개혁 요구 학생 시위의 주도자였던 보리치는 2019년의 사회 변혁 요구 시위를 이끌었으며, 이제 대통령으로서 그동안 그가 요구했던 사회 개혁을 실행해야 하는 정치적 주체가 되었다.
만 36세의 사회운동가 출신 정치가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칠레를 보며 우리는 칠레가 무려 2년에 걸쳐 계속된 대규모 시위를 통하여 폭넓은 개혁을 추진할 동력을 얻었고, 칠레 내에 1980년대 말 군부 독재의 종식 이래로 유예되어온 군부 잔재의 청산을 마침내 이루고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실현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 바로 2019년 시작된 사회 변혁 요구 시위(Estallido Social)였다.
신자유주의의 모범생이자 라틴아메리카 내의 선진국으로 여겨지던 칠레에서 전해져온 대규모 시위의 소식은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특히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하면서 정부가 비상사태를 선언하자 언론은 시위의 원인을 분석한 기사를 싣기에 바빴고, 그동안 축적된 칠레 사회의 불만과 모순을 조명하였다. 특히 칠레가 신자유주의를 도입한 이래 악화한 불평등이 시위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는데, 이는 신자유주의하에서 비슷한 고민에 직면한 한국 사회에서도 적극적으로 소비된 관점이었다(고미혜 2019; 조윤후 2019).
그렇다면 칠레의 대규모 사회 변혁 요구 시위의 원인은 무엇일까? 불평등만으로 2019년 일어난 칠레의 대규모 시위를 설명할 수 있을까? 약 50원의 공공요금 인상에 반대하는 고등학생들의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장기간 지속될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일까? 본 논문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작성되었다. 이를 위하여 제2장에서는 칠레의 사회 변혁 요구 시위의 원인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 다양한 작업을 비판적으로 고찰하였다. 제3장에서는 사회 변혁 요구 시위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토대로서 사회운동론의 불만(grievance) 이론을 검토하고 그 적용 가능성을 확인하였다. 제4장에서는 칠레의 사회 변혁 요구 시위의 전개 과정 특히 불만(grievance)의 등장과 의미 구성(meaning construction) 과정을 분석하여 시위의 동력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결론에서는 이 연구를 통하여 밝혀진 2019년 칠레 사회 변혁 요구 시위의 원인을 확인하고 본 연구가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서 일어나는 사회 변혁 요구 시위의 분석을 위해 활용될 가능성을 점검하였다.
Ⅱ. 선행 연구 분석: 불평등은 칠레 사회 변혁 요구 시위 (Estallido Social)의 원인인가?
2019년 10월 칠레에서 사회 개혁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연일 계속되자 전 세계 언론은 관련 뉴스를 전했다. 비교적 안정적인 경제 성장을 이루던 라틴아메리카의 OECD 국가 칠레에서 몇 달째 시위가 계속되고 시위대와 정부와의 대립이 격화되는 동안, 언론과 학계는 신자유주의의 모범생이라고 불리던 칠레에서 시위가 확대되는 원인에 대한 분석을 쏟아내었다. 그리고 이 대규모 시위의 원인으로 칠레의 불평등을 지목하는 많은 글이 발표되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스페인어권에서 가장 큰 뉴스 통신사이자 세계 4대 통신사의 하나인 EFE 통신의 기사를 들 수 있다. 2019년 11월 5일 송고된 기사에서 EFE 통신은 칠레의 불평등 관련 통계들을 소개하며 칠레의 대규모 사회 변혁 요구 시위는 “칠레 일반 시민들이 칠레의 불평등과 이를 해결할 의지가 없는 정치인들에 대하여 얼마나 큰 불만을 느끼고 있는가”를 전 세계에 보여준 사건이라고 정의하였다(Soler 2019). 칠레 사회의 불평등을 사회 변혁 요구 시위의 원인으로 지목한 글들은 이후 뉴욕타임즈, 워싱턴포스트 등 세계 주요 언론뿐 아니라 한국의 매체들에도 발표되었다(Taub 2019; Armus 2019; 고미혜 2020; 조윤후 2019).
칠레의 불평등을 사회 변혁 시위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불평등의 원인을 다시 신자유주의에서 찾는 것은 일리가 있다. 특히 시위 당시 칠레 사회의 현실을 다양한 통계를 통하여 조망했던 솔레르(Soler)의 기사를 보아도 소득 상위 1%의 인구가 칠레 국부의 26.5%를 소유하고 있으며 소득 하위 50%의 인구가 소유한 자산이 전체 국부의 2.1%밖에 되지 않는 현실은 심각해 보이기 때문이다(Soler 2019). 하지만 칠레에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시행된 기간이 무려 50여 년에 달한다는 점, 칠레의 심각한 불평등의 역사 또한 매우 길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불평등만으로 이번 시위를 설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한 글들은 칠레의 불평등에 더하여 극복되지 못한 피노체트 시대의 유산인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그리고 이런 정책이 야기한 교육과 의료 및 연금 제도에서의 불평등 및 정치권의 사회 요구에 대한 무관심 등을 설명요인으로 추가하며 좀 더 정밀한 분석을 시도하였으나, 여전히 불평등이라는 거대한 변수에 대한 의존은 유지되었다(Frasier 2019; Barbara 2019; 김진오·박미숙 2020; 우석균 2020).
칠레의 불평등과 이에 대한 역사적 원인을 조망하는 글은 칠레의 현실이 생소한 대중들에게 칠레가 처한 사회구조적 모순을 소개하는 시도로서 유의미하다. 그러나 칠레의 사회 변혁 요구 시위의 원인을 경제 불평등과 나아가 신자유주의의 한계라는 구조적인 조건으로 제한하는 것은 몇 가지 논리적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우선, 불평등의 악화가 시위의 원인이었다면 불평등의 해소를 위한 피녜라 정부의 다양한 정책 제안이 시위대에 의해서 거부되었다는 점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2019년 10월 22일 피녜라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통하여 사회 불평등에 대하여 무감했던 정부의 실책에 대해 사과하고 사회 정상화를 위한 새로운 사회 아젠다(Nueva Agenda Social)를 발표하였다. 여기에 연금개혁, 의료보험 개혁, 세제 개혁 등을 포함한 광범위한 사회 개혁안이 포함되어있음은 물론이다(Gobierno de Chile 2019). 하지만 피녜라 대통령의 국민 담화가 있고 불과 3일 후 시위대는 피녜라의 개혁안을 전면 거부하며 헌법의 개정을 요구하였다. 신자유주의로 인하여 악화한 불평등, 그리고 각종 사회보장제도의 붕괴가 시위의 원인이었다면 이를 적극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강도 높은 개혁을 약속한 정부의 제안을 단칼에 거부하는 것은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시위대의 행보이다. 피녜라에 대한 불신이 이러한 행보를 설명할 수 있다면, 이러한 불신을 가져온 원인을 단순히 불평등에서만 찾아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래프1>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칠레의 불평등은 꾸준히 개선되어왔기 때문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칠레의 지니계수는 1990년 57.2로 정점에 도달한 이래 꾸준히 낮아져 2017년 44.4를 기록하며 감소세를 유지하였다(World Bank 2022). 이는 1990년 민주화 이후 집권한 중도 좌파 연합 정부의 꾸준한 사회 정책의 확대 및 신자유주의 정책의 수정과 무관하지 않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칠레의 불평등이 가장 심각하다는 주장도 불평등 지수인 지니계수 상으로는 근거가 희박하다. <표 1>에서 볼 수 있듯이 칠레의 불평등은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들과 비슷하거나 심지어 근소하게나마 양호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OECD 국가 중 가장 심각하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OECD 가입국인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멕시코와 비교해 볼 때 칠레의 불평등 상황이 이들 나라와 비교해 대규모 시위를 촉발할 정도로 심각했다는 점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물론 칠레의 불평등이 선진국과 비교하여 심각한 편이고 이러한 불평등이 극복되지 못하고 지속되어온 현실이 칠레인들의 불만을 누적시킨 구조적 조건이라 볼 수는 있겠으나, 그렇다면 칠레에서 불평등은 변수가 아니라 늘 존재해왔던 상수에 가깝다. 즉, 2006년, 2011년, 2019년 시위를 관통하는 상수이자 거시적 조건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왜 2019년 다른 나라도 아닌 칠레에서 대규모의 시위가 6개월 넘게 계속되며 제헌의회의 구성이라는 강도 높은 개혁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늘 존재해왔던 구조적 조건 속에서 특정 시기에 시위를 촉발시킨 다른 변인들을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임태균의 논문(2020)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그는 『칠레 사회적 폭발의 사회·경제적 원인: 객관적 불평등 vs. 상대적 박탈』이라는 논문에서 칠레의 사회 변혁 요구 시위가 촉발한 원인으로 상대적 박탈감을 지목하였다. 즉 그는 칠레의 객관적 불평등 지수가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개선되거나 혹은 유지되었으나, 칠레 시민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강화되었으며 이러한 상대적 박탈감의 강화가 시위의 촉발 요인이라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기 위하여 임태균은 라틴바로미터의 설문 조사 결과를 공유하였다. 그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라틴아메리카의 주요국 중 칠레 시민들이 베네수엘라에 이어 두 번째로 자국의 소득 분배의 공정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높다. 또한, 칠레 시민들의 자기 자신의 사회적 계층에 대한 평가도 다른 국가들에 비해 낮다. 임태균은 이 두 사실을 들어 칠레의 사회 변혁 요구 시위를 촉발한 원인은 객관적 불평등이 아닌 주관적 불평등, 즉 상대적 박탈감이라고 주장하였다(Ibid., 117-118).
객관적 불평등이라는 지표로는 설명될 수 없는 칠레의 사회 변혁 요구 시위의 배경을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개념을 통하여 설명한 임태균의 논문은 두 가지 측면에서 유의미하다. 우선 객관적 불평등 지수가 현실적으로 개선되거나 혹은 유지된 칠레의 현실을 냉철하게 돌아볼 수 있는 다양한 지표를 제공함으로써 칠레 나아가 라틴아메리카의 사회 변혁 요구 시위의 원인은 ‘언제나’ 불평등이라는 다소 간편한 답변이 갖는 한계를 지적하였다. 또한, 논문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시위의 원인을 구성하는 주관적인 요소들이 시위를 촉발하고 강화하는 데에 끼친 영향을 분석함으로써 사회구성원의 주관적 인식이 사회 변혁 요구 시위의 설명요인으로 갖는 가치를 입증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칠레 사회 변혁 요구 시위의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임태균의 논문이 제시하는 답변 또한 부분적이다. 논문에서 제시된 주관적 불평등 지표들은 모두 2018년 자료들이다. 따라서 주관적 불평등에 대한 칠레 시민들의 평가가 2018년 매우 부정적이었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으나 이러한 평가가 2018년에 그 전보다 많이 악화하여 2019년 시위로 이어졌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객관적 불평등 지수를 통시적으로 검증했던 것처럼 주관적 불평등에 대한 지표들도 다양한 시점의 자료들을 비교했더라면 저자의 주장에 더 힘이 실렸을 듯하다. 아울러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칠레의 사회 변혁 요구 시위대는 피녜라 대통령의 불평등 개선 조치들을 즉각적으로 거부하였다. 주관적이든 객관적이든 불평등이 원인이었다면 그 원인의 해소를 위하여 초유의 정권 차원에서의 사과와 강도 높은 개혁을 약속한 피녜라 정부의 제안이 단호하게 거부당한 현실을 설명하기 어렵다.
결국, 객관적 불평등과 마찬가지로 주관적 불평등 역시 칠레의 사회 변혁 요구 시위를 이끌어 낸 구조적 요인이라는 점에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으나, 대체로 불평등의 문제가 심각한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 다른 곳이 아닌 칠레, 그것도 2019년에 왜 이러한 대규모 시위가 촉발되어 장기간 지속하였는가에 대한 답으로 불평등을 지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이러한 불평등 결정론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본 논문은 2019년 칠레 사회 변혁 요구 시위를 분석하는 틀로써 구조적 조건에 집중하는 거시적 분석 틀보다는 시위 자체의 동력과 전략을 고찰하는 중범위의 틀을 제안한다. 특히 사회운동론의 관점을 통하여 2019년 칠레에서 촉발된 대규모 사회 변혁 요구 시위가 장기간 동력을 잃지 않고 오히려 확장하며 칠레 사회 각계의 요구를 통합하는 과정을 분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회운동론의 관점에서 구조적인 요인이 무시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구조적 요인들은 사회운동의 탄생에 없어서는 안 될 배경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그러한 조건이 상시로 존재하는 중에 특정 시기에 특정 사회운동이 촉발되고 확장하며 나아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원인은 사회운동의 내부에서 찾는 것이 더 적확하다는 것이 사회운동론의 시각이다. 따라서 본 논문은 칠레 사회 변혁 요구 시위의 구조적 조건으로서 칠레 사회가 오랜 세월 경험한 불평등의 중요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구조적 조건 즉 불평등만으로는 칠레 사회 변혁 요구 시위의 발화와 성장 그리고 성공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 또한 강조하고자 한다.
이러한 시각은 앞서 본 논문의 연구주제로 제시된 ‘왜 지금, 다른 곳도 아닌 칠레에서 대규모 사회 변혁 요구 시위가 촉발되고 확장하고 나아가 요구를 관철하였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분석 틀이다. 다음 장에서는 사회운동이론 중 특히 불만(grievance)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이론을 통하여 2019년 사회 변혁 요구 시위의 메시지 속에 녹아있는 다양한 불만들이 작동하는 양상을 분석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하였다.
Ⅲ. 사회운동이론과 불만(grievance)의 동학
사회운동론의 이론가인 데이비드 스노우(David Snow)와 사라 슈어스(Sara Soule)(2010)는 그들의 저서에서 “사회운동의 발현과 작동에 필요한 다양한 조건 중 깊이 공감된 불만(grievance)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라고 주장하였다. 사회운동을 발현시키고 작동시키며 나아가 성공하게 하는 변수로서 불만(grievance)을 지목한 이론가는 스노우와 슈어스만은 아니다. 윅캠 크로울리(Wickham-Crowley)와 엑스타인(Eckstein)(2015)은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운동을 분석한 논문에서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운동을 활성화한 불만(grievance) 구조는 신사회운동이 주장하듯이 정체성에만 근거하지 않으며 계급 구조와 정체성 정치가 공존하는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을 반영한 중층적인 불만 구조라고 주장하였다. 이 논문은 라틴아메리카 시민이 처한 중층적 조건 속에서 불만 또한 복합적으로 형성되며 사회운동이 이러한 복합적인 불만을 아우르는 정도가 높을수록 사회운동의 성공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다양한 라틴아메리카의 사례를 통하여 증명하였다.
전통적인 사회운동론에서 불만은 주로 경제위기나 구조조정 하에서 표출되는 시민들의 즉각적인 감정으로 해석되었다. 따라서 불만은 경제위기나 구조조정 등의 구조적 조건의 부산물로만 여겨졌고, 불만의 서로 다른 성격 혹은 사회운동 과정에서 나타나는 불만의 변화보다는 구조적 조건에 반응하여 나타나는 불만의 강도가 더 깊은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즉 구조적 조건에 반응하여 불만의 강도가 강해질수록 사회운동의 발현과 성공의 가능성은 크고 반면 불만의 강도가 낮을수록 사회운동의 발현 및 성공의 가능성은 적은 것으로 분석되었다(Muliavka 2021, 686).
그러나 최근 사회운동이론에서는 불만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려는 노력들이 눈에 띈다. 밀리아프카(Miliavka)의 경우 주로 경제적인 불만에 집중되어있는 기존 연구들을 비판하며 불만의 다양한 측면들에 관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불만은 구조적 측면에서 나타나는 부당한 조건들과 주관적 측면 즉 사회, 정치, 경제적 이슈에 대한 태도로 발현되는 인지적 지각(cognitive perception)으로 세분화하여 분석되어야 한다고 밝혔다(Ibid., 689).그는 이론적 작업을 통하여 <그림 1>과 같은 불만의 세분화를 이뤄내었는데 불만의 다층구조에 대한 분석은 칠레 사회 변혁 요구 시위에 대한 종합적 이해 또한 가능케 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칠레 사회 변혁 요구 시위는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불만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다양한 층위들을 보여준다. 특히 불평등 해소를 위한 칠레 정부의 정책 제안을 단번에 거절하는 시위대의 태도와 이후 제기된 시위대의 주장 속에서 칠레의 사회 변혁 요구 시위의 시작이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불만이었다 하더라도, 시위 과정에서 정치적 불만(군부 독재 시스템의 유지)과 사회적 불만(원주민, 여성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 및 사회의 분절화 등)이 함께 표출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밀리아프카가 제안한 불만의 다층구조 모델은 본 연구를 위해서도 유의미하다.
밀리아프카가 인지적 자각 영역과 구조적 조건을 구분하고 다시 정치, 경제, 사회의 사안들에 대한 불만들을 배열함으로써 불만의 다양한 측면들을 제시하였다면, 시몬스(Simmons)(2014)는 문화이론의 의미 구성 과정(meaning construction process) 관점을 불만의 분석에 접목하여 불만의 의미가 사회적 행위주체들에 의하여 구성되는 과정에 주목하였다. 그는 사회운동은 본원적으로 문화 현상, 즉 사회적 행위주체들이 불만에 따라 행동하는 과정이 아니라 행위주체들이 불만 자체의 의미를 구성하고 확장하고 조정하는 해석학적 과정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시몬스는 서로 다른 주체들의 서로 다른 불만들이 의미 구성 과정을 거치며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 과정에서 확장된 불만의 의미가 사회운동의 저변을 확대하는 기제로 작동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2000년 볼리비아의 물 전쟁을 분석하여 이러한 주장의 증거를 제시하였다.
2000년 수천 명의 시위대가 수도 민영화에 반대하며 코차밤바의 거리를 가득 메운 사건을 볼리비아 물 전쟁(Water War)이라고 한다. 이미 15여 년 전부터 진행되어왔던 볼리비아의 민영화 과정에서 이 시위는 다소 급작스러운 것이었고 동시에 매우 광범위하게 확산하였다. 모두의 것이자 누구의 것이 되어서도 안 되는 물이라는 대상의 ‘민영화’는 계급과 인종 및 지역을 아우르는 불만의 대상이 되었다. 민영화 초기 서로 다른 행위주체들에게 수도 민영화는 서로 다른 것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민영화 반대 시위를 주도한 <물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위원회(The Coordinator for the Defense of Water and Life)>가 주최한 여러 회의에서 이러한 다양한 불만의 의미는 재구성되었다. 거대한 자본에 대한 불만, 지방 차별에 대한 불만, 신자유주의에 대한 불만 등 다양한 불만이 의미의 구성 과정을 거쳐 물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며 동시에 모두의 것이 되어야 하며, 그러한 대상에 대한 민영화는 ‘우리’에 대한 도전이라는, 수많은 행위주체들이 공유할 수 있는 확장된 불만이 탄생하였다(Simmons 2014, 536-537).
시몬스가 제안한 불만의 의미 구성 과정이라는 관점은 칠레의 사회 변혁 요구 시위를 분석하는 데에도 매우 유용하다. 특히 칠레 시위대의 주장이 시위 과정에서 계속 변화해나갔다는 점, 그러한 변화가 시위를 주도했던 ‘집행부’의 메시지 관리 및 틀 정렬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다양한 집회 참여자들의 SNS 활동, 벽화 활동 등을 통하여 이루어졌다는 점, 그리고 각자의 불만이 의미 구성의 과정을 거쳐 넓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모두의 불만으로 확장되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불만의 의미가 구성되는 과정에 집중한 시몬스의 분석틀은 칠레의 사회 변혁 요구 시위가 촉발되고, 유지되며 나아가 확대된 일련의 과정을 정확히 설명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한다.
다음 장에서는 밀리아프카의 불만의 다층구조 모델과 시몬스의 불만의 의미 구성 과정 관점을 종합하여 칠레의 사회 변혁 요구 시위를 분석하였다. 특히 사회 변혁 요구 시위를 촉발시킨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불만이 빠르게 정치적 그리고 사회적 불만을 포괄할 수 있는 형태로 전환되면서 광범위한 참여를 촉발시키는 새로운 불만으로 재해석되는 불만의 의미 구성 과정을 살펴보았으며 이를 통하여 칠레의 사회 변혁 시위의 촉발 및 확산 요인을 분석하였다.
Ⅳ. 칠레 사회 변혁 요구 시위와 불만의 의미 구성 과정
1. 경제적 불만과 사회적 불만의 통합
칠레의 사회 변혁 요구 시위는 2019년 10월 18일 칠레 중고등학생 연맹(Asamblea Coordiandora de Estudiantes Secundarios: 이하 ACES)의 주도로 진행된 지하철 요금 인상 반대 기습시위로부터 시작하였다. 특히 산티아고 거주 학생들을 중심으로 SNS상에서 대규모 지하철 요금 거부를 의미하는 해시태그인 #EvasionMasiva(대규모 무임승차)가 퍼져나갔고 이에 동조한 학생들이 무려 22개의 지하철역에서 동시다발로 점거를 시도하거나 요금 인상 반대 시위를 벌였다(Johanson 2019). 시위를 분석하고 소개하는 다양한 매체들은 칠레의 경제적 불평등을 시위를 촉발시킨 불만으로 지목하였다. 꾸준히 경제 성장을 이뤄왔던 신자유주의의 모범생 칠레의 놀랄 만한 소득 불평등에 관한 분석기사가 머리기사를 장식하였고, 민주화 이후 30여 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으나 불평등이 해소되기보다는 악화하였다는 주장들이 넘쳐났다. 칠레가 그동안 이룩한 경제적 성장의 성과가 소수에게 집중되는 현상도 집중적으로 보도되었다(Graham and Alonso 2019; Bunyan 2019). 빈촌과 부촌의 분리가 두드러지는 산티아고 도시의 양극을 간신히 연결해주던 지하철이라는 교통수단의 요금 인상이 산티아고 공동체에 갖는 상징성을 고찰하는 글도 발표되었다(Holland 2019).
불과 30페소(2022년 4월 기준 한화 약 45원)에 불과한 인상 폭에 대한 중고등학생들의 분노는 언뜻 과도하다고 해석될 수 있었다. 게다가 이 인상안에 학생 요금의 인상은 포함되어있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학생들의 분노와 기습시위의 원인을 지하철 요금 인상 자체에서 찾기에는 어려움이 있다(El Mostrador 2019). 지하철 점거 시위 초기 학생들의 인터뷰를 살펴보면, 학생들이 표출하는 불만의 대상은 지하철 요금 인상이나 공공요금 인상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신자유주의의 사회적 효과, 특히 빈부의 격차가 가져온 공동체 및 공공성의 붕괴라는 것이 드러난다.
“(우리들의 행동은) 비참한 수준의 임금을 받는 우리들의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이미 남미에서 가장 비싼 지하철 요금이 오르면서 겪게 될 고통에 공감하는 겁니다...(우리는) 우리들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을 옥죄는 불공정한 시스템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죠 (Marco Faure, ACES 대변인과의 인터뷰, La Diaria Chile, 2019)”
“사람들은 학교나 병원, 유치원 같은 공공기관을 공격한 것이 아니라 바로 지하철을 점거했어요. 지하철이 이윤을 창출하는 곳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죠. 사람들은 화가 난 겁니다. 지하철은 공공기관이어야 해요. 하지만 (정부는) 우리에게 돈을 받죠. 그건 부당한 일입니다(Juan Correa와의 인터뷰, Bloomberg 2019)”
신자유주의는 흔히 경제정책의 기조로 이해되곤 한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는 시장주의적 경제 논리가 사회 곳곳으로 확산하여 시장주의의 논리로 사회를 재구성하는 좀 더 광범위한 사회 변화 프로젝트이다. 즉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의 적용은 신자유주의적 세계관의 확산을 의미하며, 이러한 확산을 통하여 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구성을 가져온다(박윤주 2019, 33). 신자유주의의 사회변동은 시장의 논리가 사회 구성의 바탕이 되어 그동안 시장의 논리보다는 공공성의 논리가 작동했던 영역, 특히 복지와 사회 정책 분야들이 시장의 논리로 재구성되는 것을 의미하며, 이러한 변화의 근거로서 공동체의 가치가 아닌 개인주의를 강조함으로써 개인들의 경쟁과 책임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승복이 사회를 설계하고 다스리는 기본 원리로 작동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Ibid., 42-44).
칠레의 사회 변혁 요구 시위를 통하여 분출된 불만들의 목표는 신자유주의였으며, 신자유주의를 단순히 경제정책으로 이해한다면, 수많은 시민이 거리 시위에 들고 나온 반신자유주의적 구호를 경제적 불만의 표출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을 잘 살펴보면, 이들이 표출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불만은 민영화나 자유화 혹은 노동시장 유연화와 같은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넘어 개인주의나 시장 논리의 확산과 같은 신자유주의의 철학적 전제를 대상으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신자유주의하에서 강화된 개인주의와 경쟁, 그리고 그 결과 극도로 불평등한 사회 속에 방치된 고립된 개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공동체를 복원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눈에 띈다.
지하철 기습시위에 이어 연일 계속된 반정부 시위의 주체들이 이후 사회 변혁 요구 시위를 조직하기 위하여 결성한 단체인 <사회적 연대를 위한 연석회의 (la Mesa para Unidad Social: 이하 Unidad Social)>의 구성과 이들의 주장은 이렇듯 사회 변혁 요구 시위의 주장이 경제적 불만에서 사회적 불만을 포괄하는 주장, 즉 신자유주의의 경제정책에 대한 불만에서 신자유주의적 사회 변화 전반에 대한 반대로 확장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2019년 8월 이미 결성된 우니닷 소시알(Unidad Social)은 150개의 노동 단체, 학술 단체, 사회 단체 및 학생 단체들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사회 조직이다. 특히 칠레 노동자 연맹(la Central Unitaria del Trabajadores: CUT), 교원 노조 (el Colegio de Profesores), 민간연금 반대운동(el Movimiento No+AFP), 8M 페미니스트 조정위원회(la Coordinadora Feminista 8M) 등 칠레의 사회운동을 대표하는 조직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니닷 소시알은 이후 시위를 주도함은 물론 정부와의 협상에도 시위대를 대표해서 참여함으로써 칠레의 사회 변혁 요구 시위의 핵심 주체로 떠올랐다(emol. 2019). 이러한 우니닷 소시알의 트윗 계정 대표 해시태그는 #NosCansamosNosUnimos(우리는 지쳤고, 우리는 연대한다)이다. 신자유주의하에서 일어난 개인의 고립과 개인들 간의 경쟁을 통한 사회의 분열을 경험하였던 칠레 시민들의, 이제 새로운 사회의 변동은 연대를 통하여 이루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해시태그이다.
칠레 사회에서 신자유주의의 경제정책에 대한 불만이 신자유주의적 사회 변화 전반에 대한 불만으로 확장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2006년 칠레의 중고등학생들이 주도한 펭귄 혁명은 칠레 시민들이 폭넓게 공감하는 대규모 시위로 확대되었고, 이들 시위는 사회 전반에 팽배했던 민영화된 교육시스템에 대한 불만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이후 2011년에는 전국의 학생들이 연합하여 교육시스템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를 조직하였다. 이 시위의 직접적인 원인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교육 부문에 대한 정부의 예산 지원을 꼽고 있지만(Economist 2011), 시장의 논리가 지배적인 칠레의 교육 분야에 대한 불만은 이후 시장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 전반의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불만으로 확대되었다. 예컨대 파타고니아 지역에 대규모 수력 발전시설을 짓고자 하는 정부의 계획에 반대하는 환경단체와 악화하는 고용 불안을 고발하는 칠레 운수 노조 그리고 성차별을 고발하는 동성애자 단체들이 학생들의 시위에 동조하면서 2011년 교육 개혁 요구 시위는 비싼 등록금과 이로 인한 청년들의 부채를 고발하는 경제적 시위에서 사회적 불만까지 포괄하는 시위로 확대되었다(Long 2011).
이렇듯 칠레 사회는 이미 경제적 불만이 촉발한 시위가 사회적 불만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시위로 확대된 사례들을 경험하였다. 여러 언론에서 주목한 30여 년에 걸친 불평등의 역사에 대하여 칠레 사회는 이미 여러 차례 불만을 표출한 것이다. 하지만 2019년 칠레 변혁 요구 시위는 앞서 언급한 두 시위와는 달리 그 범위와 강도가 더 강력했으며 개헌이라는 초유의 결과물을 도출하였다. 2019년 칠레의 사회 변혁 요구 시위는 앞서 일어난 두 번의 시위와 무엇이 달랐을까?
본 논문은 2019년 칠레의 사회 변혁 요구 시위는 시위를 촉발했던 불만의 의미가 경제적 불만에서 사회적 불만까지 포괄하는 불만으로 확대되었다는 점에서 앞서 언급한 두 교육 개혁 시위와 궤를 같이하지만, 이후 불만의 의미가 강력한 정치적 의미까지 포함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앞서 발생한 두 시위와는 달리 더욱 폭발적인 힘을 갖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즉 정치적 불만까지 불만의 의미 구성 과정에 포함됨으로써 2019년 칠레의 사회 변혁 요구 시위는 칠레 전체 사회로부터 더욱 광범위한 지지를 얻어낼 수 있었고, 불만의 범위와 강도 또한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다음 절에서는 불만의 의미 구성 과정에서 정치적 불만이 포괄되어 경제·사회·정치적 불만을 모두 아우르는 ‘피노체트 체제의 유지’에 대한 불만이 형성되는 과정을 설명하였다.
2. 정치적 불만의 통합과 경제·사회·정치를 아우르는 불만의 탄생
1절에서 분석한 바와 같이 지하철 요금의 인상과 이에 대한 학생과 시민들의 반발이라는 경제적 불만은 빠르게 사회적 의미를 획득하였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요금이 인상되지는 않지만, 요금 인상으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을 사회구성원들과 공감대를 형성하였고, 연대를 통한 공동체의 복원은 개인주의와 시장주의에 지배당하는 신자유주의의 사회상에 대한 저항이었다. 또한, 다양한 사회단체들이 시장의 논리 앞에 공공성을 잃어가는 칠레의 교육, 보건, 통신, 교통 등의 모든 영역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하였다. 2019년 칠레의 사회 변혁 요구 시위를 움직이는 불만의 의미가 경제적 불만에서 사회적 불만까지 포괄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2019년 사회 변혁 요구 시위에서 경제적 의미와 사회적 의미를 모두 포괄하는 방향으로 불만의 의미 구성 과정이 빠르게 진행된 것은 칠레 사회가 이미 2006년과 2011년 두 차례 대규모 학생 시위를 통하여 비슷한 불만의 의미 구성 과정을 경험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2019년 사회 변혁 요구 시위는 앞서 발생한 두 차례의 시위에서 발생한 의미 구성 과정과 달리 추가적인 과정을 밟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불만의 의미가 정치적인 것으로까지 확장되는 것이었다. 이 과정이 추가되면서 2019년의 사회 변혁 요구 시위는 이전의 그것들과 비교하여 더욱 강력하고 광범위하게 전개되었다.
경제적이고 동시에 사회적인 의미가 강했던 시위대의 불만을 정치적 불만까지 포괄하도록 만드는 데에는 피녜라 정부의 시위대에 대한 잘못된 대응이 큰 몫을 하였다. 2019년 10월 14일 기습시위 이후, 학생들은 연일 지하철역을 기습 점거하며 칠레 사회에 만연한 경제적 불평등 및 공공성을 상실한 신자유주의적 사회상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였다. 이에 대하여 피녜라 정부는 10월 18일 산티아고 지역에 대한 비상사태 선포라는 강경한 대응을 내놨고,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하며 7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자 10월 20일 비상사태를 전국적으로 확대하였다. 19일 저녁 TV 연설을 통하여 20일부터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비상사태를 발표하면서 피녜라 대통령은 “우리는 현재 한계를 모르고 폭력을 사용하는 적들과 전쟁 중(Laing and Ramos Miranda 2019)”이라고 선언하며, 경찰력뿐 아니라 군 병력도 동원하겠다고 공언하였다. 시위대를 폭도로 그리고 정부의 이들에 대한 대응을 전쟁으로 규정하는 피녜라 대통령에게 군 병력의 동원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칠레 정부는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권위주의적 태도를 보였다. 시위대의 요구는 소수의 폭력시위 주동자들의 과격한 주장으로 폄훼되었고, 시위대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야당과 언론의 목소리는 무시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시위에 대한 강력한 대응을 약속하며 전의를 불태웠던 피녜라 대통령이 담화 발표 당일 저녁 유명한 이탈리아 식당에서 측근들과 피자를 마시며 미소를 짓는 사진이 SNS상에 공개되자, 칠레 정치 엘리트들의 공감 능력 부재와 부패, 그리고 무능이 한꺼번에 도마 위에 오르게 되었다.
칠레 정치 엘리트들의 시민 사회에 대한 무관심은 시위대와의 인터뷰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주제이다.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은 칠레 정치 엘리트들이 수십 년 동안 권력을 누리면서 시민들이 겪는 고통에 대하여 무감하다고 주장한다. 지하철 요금 인상안에 대한 교통부 장관의 “요금 인상이 불만이면, 조금 일찍 일어나서 할인받는 아침 시간에 지하철을 타라”는 발언이라든지, 시위와 시위대에 대한 폭력이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가운데 열린 피녜라 대통령의 만찬 사진은 칠레 사회가 정치 엘리트들에 대해 갖는 정치적 불만을 증폭시켰다(Johanson 2019).
하지만 2019년 사회 변혁 요구 시위가 폭발력을 갖게 만든 결정적인 요인은 칠레 공권력의 폭력이었다. 전국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사력까지 동원한 무자비한 시위진압 작전 중 수많은 시위 참여 시민들이 강제 연행되거나, 경찰이나 군인에 의해 폭행당했으며 심지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정부의 이러한 강경 대응에 대한 뉴스는 SNS 등을 통하여 빠르게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특히 전투경찰들이 지하철을 점거하던 고등학생들을 폭력적으로 연행하는 장면이나 경찰들이 시위대를 쫓아 고등학교에 난입하여 학교에 숨은 어린 학생들을 연행하고 이를 저지하는 또래들을 폭력적으로 제압하는 장면은 시위대가 찍은 동영상을 통하여 고스란히 칠레인들의 스마트폰으로 전달되었다. 결국, 피녜라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비상사태 선포와 함께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대되었고 그 규모는 더욱 커져만 갔다(Urrejola 2019).
칠레 공권력의 시위대에 대한 폭력적인 대응은 국내외 다양한 세력의 반발을 가져왔다. 시위대는 경찰과 군인들이 시위에 참여한 여성들을 폭행하고 추행하는 장면을 공개하였고(Murillo 2019), 원주민들 역시 그들의 시위를 폭력적으로 해산시키며 연행하는 공권력을 고발하며, 이러한 폭력이 칠레 정부에 의해서 그동안 원주민들에게 꾸준히 자행되어왔던 일이라는 점을 상기시켰다(Caniuqueo Huircapan 2019). 이러한 목소리는 이후 2019년 사회 변혁 요구 시위가 여성, 원주민, 학생, 노동자, 노인 등 다양한 사회적 행위주체들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시위로 확장되는 데에 이바지하게 된다. 즉 피녜라 정부의 공권력 남용은 다양한 행위주체들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불만인 군사독재 하에서 공권력에 의해 자행된 무자비한 폭력에 대한 불만, 그리고 그 역사에 대한 청산의 부재에 대한 불만을 모두 소환한 것이다.
이렇듯 시위에 대한 정부의 즉각적인 비상사태 선포와 강경한 진압,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공권력의 폭력은 칠레 시민들에게 잊고 싶은 기억, 즉 피노체트의 군사독재를 떠올리게 했다. 군부가 독재에 반대하는 칠레 시민에게 가했던 무자비한 폭력과 탄압이 21세기 칠레 도시 곳곳에서 재연되는 듯하였다. 특히 경찰이 시위대를 진압할 목적으로 사용한 고무탄으로 수많은 시위대가 실명하는 일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현실은 불평등의 극복과 공공성의 회복을 요구했던 시위대가 권력 구조 전반의 개혁을 요구하도록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피녜라와 피노체트의 얼굴을 합성한 이미지들이 시위에 사용되었고, 권력의 하수인이 되어 시민을 탄압하는 경찰에 대한 저항을 상징하는 경찰 잡는 검둥개(Negro Matapacos)가 시위에 등장하였다.
경찰 잡는 검둥개(Negro Matapacos)는 2019년 칠레 사회 변혁 요구 시위의 의미 구성 과정을 잘 보여주는 상징이다. 이 개는 2011년 교육 개혁 요구 시위 당시, 한 검은 유기견이 시위대를 공격하는 경찰에게 사납게 짖는 장면이 알려지면서 유명한 인터넷상의 밈(meme)이 되었으나, 2019년 한 네티즌에 의하여 그 이미지와 서사가 다시 소환되면서 공권력의 폭력에 대항하는 상징이 되었다. ‘존중받을 만한 변호사(respectable lawyer)’라는 닉네임을 쓰는 네티즌은 그의 트윗에서 2011년 이 개가 시위에 종종 나타나서 얼마나 열심히 시위대를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했는지를 소개하며, 이미 세상을 떠난 그 검둥개가 2019년의 시위에 참여하기는 어렵겠지만 그의 영혼이 시위대와 함께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Almasi-Szabo 2021, 38-39).
경찰 잡는 검둥개의 시위 참여 장면을 담은 2011년 시위 사진들이 인터넷에 널리 공유되었고, 심지어 거대한 검둥개의 동상을 만들어 시위에 참여시키기도 하였다. 이렇게 경찰 잡는 검둥개는 칠레 공권력의 폭력성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 되었다. 이제 개와 고양이들도 군사독재의 잔재인 공권력의 폭력에 저항한다는 메시지는 2019년 사회 변혁 요구 시위의 저변을 확대하고 불만의 범위를 오늘날 칠레 사회가 직면한 경제·사회·정치적 모순의 근원인 청산되지 않은 군사독재의 잔재로 확대하여 해석하는 계기가 되었다.
불평등이라는 경제적 불만과 공공성의 상실이라는 사회적 불만의 표출 과정에서도 피노체트의 유산은 종종 소환되었다. 시위대는 칠레 사회가 겪는 다양한 모순들의 저변에는 극복하지 못한 피노체트 체제의 잔재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30페소가 아니라 30년이다”라는 시위대의 구호는 민주화가 도래하였지만, 그 후 30여 년간 여전히 피노체트 시기 시행된 신자유주의 정책의 기조가 유지되는 칠레의 현실과 아직도 청산되지 않은 군사독재의 유산에 대한 저항을 의미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저항이 구체적인 힘을 얻어 정치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로 거듭나게 된 요인은 피녜라 정부의 폭력적인 시위진압 작전과 그 작전 속에서 소환된 군부 독재의 기억이었다.
2019년 사회 변혁 요구 시위의 불만이 경제적인 것에서 사회적인 것으로 그리고 다시 정치적인 것으로 그 범위를 넓혀가는 동안 정부는 여전히 시위대의 불만을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것으로 한정해서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였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2019년 11월 22일 피녜라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였다. 이 담화를 통하여 피녜라 대통령은 그동안 사회 문제에 무감했던 정부의 대응을 전격적으로 사과하였고, 함께 발표된 사회 정상화를 위한 “새로운 사회 아젠다”에서 아래 내용을 약속하였다.
- 연금 제도: 연금 20% 인상, 중산층과 여성의 연금 보장을 위한 정부의 재정지원 및 연금 제도에서 소외된 노인들을 위한 정부의 지원 마련, 장애인을 위한 연금 지원을 위한 재정 마련
- 의료: 공공 의료보험 제도 개선 및 의약품 가격 인하
- 노동환경: 최저임금 보장을 위한 정부의 재정지원
- 조세제도: 부자 증세 약속(월 11,000달러 이상의 고소득자에게 약 40%의 소득세 징수)
- 치안: 범죄 예방을 위한 옴부즈만 설치
- 통신: 전기세 인상(9.2%)안 백지화, 안정적인 전기 수급을 위한 정부 재정지원
- 정부 및 국회: 고위 공직자의 상여금 삭감, 국회의원 인원 축소 및 임기 제한(Gobierno de Chile 2019)
피녜라 대통령의 새로운 사회 아젠다 발표는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하며 이들의 주장을 무시하던 종전의 태도와는 상당히 다른 행보였다. 특히 피녜라는 연금, 의료, 노동, 조세제도 등의 개선을 통하여 시위대의 경제적 불만과 사회적 불만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시위대에 의하여 즉각 거부되었다. 22일 발표된 아젠다에 대한 거부의 의미로 시위대는 2019년 11월 25일 칠레 역사상 가장 대규모의 시위를 조직해내었고 전국적으로 1백만 명이 넘는 인원이 시위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이 시위에서 피노체트 헌법이 불만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경제적 불만(불평등)과 사회적 불만(공공성의 상실과 연대의 결여)을 가져온 원인으로 피노체트 군사 정권의 유산이 지목되었고, 이에 대한 정치적 결단과 청산이 요구되었다. 불만의 의미 구성 과정을 통하여 경제적, 사회적, 그리고 정치적 불만을 모두 아우르는 폭발적인 불만의 메시지를 완성한 시위대에 비하여 정부의 해결책은 미봉책이자 진정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피노체트 체제의 종식을 위한 새로운 헌법 제정을 요구한 시위대는 2020년 2월까지 36명이 사망하고 964명이 부상하며 222명이 부분적으로 혹은 완전히 실명하는 희생을 치르면서도 시위를 이어나갔고, 제헌의회의 소집과 총체적 사회 변혁을 담보할 수 있는 헌법의 제정에 대한 요구는 사그라지지 않았다(McSherry 2020). 그 결과, 2020년 10월 26일 열린 제헌에 대한 국민투표에 770만 명의 유권자들이 참여하였고 이 중 78%가 제헌에 찬성표를 던졌다. 게다가 투표자 중 79%가 새로운 제헌의회의 구성을 요구함으로써 제헌의회의 50%를 기존의 국회의원으로 구성하고자 했던 기존 정치권의 노력도 허사가 되었다(Bonnefoy 2020; Stuenkel 2021).
국민투표 결과 압도적인 지지를 확인한 제헌의회는 2021년 5월 15일부터 16일에 걸쳐 치러진 선거를 통하여 155명의 대표를 선출하였다. 총 155석 중 17석이 원주민 대표에게 할당되었으며, 155명 중 77석은 여성의 몫이 되었다. 선거의 결과는 30여 년 동안 피노체트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기존 정당에 대한 심판의 의미를 띠었다. 정부 여당 소속의 의원이 고작 37명 당선되면서 여당은 헌법안에 대한 부결권 확보에 실패하였다. 또한, 독자노선 후보 47명의 당선 그리고 원주민 그룹 후보 10명의 당선으로 제헌의회는 개혁적인 성향을 띠게 되었으며, 칠레 국민은 피노체트 독재 정권의 유산에 대한 완전한 청산을 원한다는 것이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Miller 2021). 경제 불평등이라는 불만에서 촉발된 2019년 칠레의 사회 변혁 요구 시위는 불만의 의미 구성 과정을 거치면서 ‘피노체트 체제의 유지’에 대한 불만이라는 광범위하고 폭발력 있는 불만을 구성하였다. 이는 경제, 사회, 정치적 불만을 아우르는 불만의 의미 구성을 뜻하였으며, 그 결과 ‘피노체트 체제 청산을 위한 새 헌법의 제정’이라는, 범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하는 데에 성공할 수 있었다.
Ⅴ. 결론: 2019년 칠레의 사회 변혁 요구 시위와 불만의 의미 구성 과정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논문은 2019년 10월에 시작된 칠레의 사회 변혁 요구 시위의 원인에 대한 논문이다. 수많은 글이 이 시위의 원인을 경제적 불평등으로 지목하는 가운데 경제적 불평등이 2019년 시위를 촉발했다는 증거가 되는 지표들을 확인하고 불평등과 2019년 사회 변혁 요구 시위를 연결 짓는 작업의 성과와 한계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칠레의 불평등이 2019년 급격히 나빠졌다는 객관적 증거는 존재하지 않으며, 사회 변혁에 대한 요구가 그다지 강력하지 않은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들과 비교해 볼 때 칠레의 불평등이 그들보다 더 악화하였다는 근거 또한 희박하다는 것도 확인하였다. 물론 당시 칠레인들이 주관적으로 체감하는 불평등은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들과 비교하면 악화하였으며 이는 유독 칠레에서 사회 변혁 요구 시위가 촉발된 이유를 설명하는 변수가 될 수는 있다. 하지만 다른 시기에 비하여 2019년에 칠레인들의 불평등에 대한 주관적 인식이 악화되었다는 것을 확인하기 어려우므로 칠레 시민들의 주관적 불평등에 대한 불만으로 2019년 칠레를 달군 사회 변혁 요구 시위의 원인을 온전히 설명하기 어려웠다.
이에 본 연구는 2019년 칠레 사회 변혁 요구 시위의 촉발과 확장 원인을 구조적 조건이 아니라 시위의 동력에서 찾아보고자 하였다. 즉 구조를 중심으로 시위를 살펴보는 거시적 분석보다는 시위 내부의 동력 특히 담론과 메시지 형성 과정을 고찰하는 중범위적 분석이 2019년 시위의 폭발력을 설명하는 데에 더 효과적일 것으로 판단하였으며, 이를 위하여 사회운동이론의 불만(grievance) 의미 구성 과정(meaning construction process) 관점을 활용하였다.
본 연구는 이러한 새로운 시도들을 활용하여 2019년 칠레의 사회 변혁 요구 시위를 분석하였고, 그 결과 <그림 2>와 같은 불만의 의미 구성 과정이 일어났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2019년 칠레의 사회 변혁 요구 시위의 시작은 이미 발표된 많은 글이 지적한 바와 같이 지하철 요금 인상으로 촉발된 경제적 불만의 표출이었다. 칠레 시민들의 대표적 대중교통 수단인 지하철 요금의 전격적인 인상은 그 액수와 무관하게 소득 하위 계층의 시민들에게 치명적인 결정이었으며, 이러한 결정의 결과가 특정 계층에게 더욱 가혹하게 느껴지는 칠레의 불평등한 현실이 수많은 학생이 지하철역을 점거하고 정부를 비판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시위를 촉발시킨 경제적 불만은 빠르게 사회적 불만을 포괄하는 의미의 구성 과정을 경험하였다. 시위대는 시위의 원인이 지하철 요금 30페소의 문제가 아니라 공공의 것을 통하여 이윤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자체라고 주장하였으며, 요금 인상의 영향을 직접 받지 않는 학생들이 나서서 인상안을 거부하면서 신자유주의하에서 파편화된 사회를 극복하고 연대를 회복할 것을 호소하였다. 그 결과, 2019년 칠레의 사회 변혁 요구 시위는 경제적 의미와 함께 사회적 의미를 포괄하는 불만의 의미 구성 과정을 경험하였다.
칠레 사회가 경제적 불만과 사회적 불만이 혼재된 불만의 의미 구성 과정을 시위 중 경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2006년과 2011년 교육 개혁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대규모 시위는 모두 경제적 불평등이 교육 불평등으로 고착화되는 현상에 대한 불만으로 촉발되었으나 종국에는 공공의 것을 민영화하는 신자유주의적 시스템 전반에 대한 불만, 즉 사회적 불만을 표출하는 공간으로 진화하였다. 하지만 이번 시위는 앞의 두 시위와는 달리 더욱 폭발적인 동력을 보이며 칠레 사회의 근본적 변혁을 이끌었는데 이는 경제적 불만과 사회적 불만뿐 아니라 정치적 불만까지 포괄하는 총체적인 불만의 의미 구성 과정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성공적 의미 구성 과정을 가능케 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피노체트 군사독재의 시민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과 폭력을 떠올리게 했던 피녜라 정부의 공권력 남용과 시민들에 대한 폭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21세기 칠레 도심에서 버젓이 벌어지는 공권력의 폭력을 목격하면서 시민들은 아직도 건재한 “피노체트의 유령(우석균 2021)”을 확인할 수 있었고 과거사에 대한 완벽한 청산을 위하여 헌법의 제정을 요구하게 되었다. 즉 2019년 칠레에서 일어난 사회 변혁 요구 시위가 촉발되고 확산하였으며 무엇보다도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수많은 시민을 참여시킬 수 있는 공감대를 만들어 낸 성공적인 불만의 의미 구성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학자가 주장하듯이 2019년 칠레의 사회 변혁 요구 시위는 신자유주의로 인한 다양한 모순을 경험하고 있는 라틴아메리카의 다른 국가들에 상당한 교훈을 준다. 혹자는 칠레의 경험이 칠레와 구조적 조건을 공유하는 다른 라틴아메리카 국가로 퍼지어 “라틴아메리카의 봄”을 가져올 것으로 전망하기도 하였다(Stuenkel 2021). 그러나 본 논문에서 지적했듯이 칠레의 사회 변혁 시위가 보여준 폭발력은 구조적 조건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불만의 의미가 구성되는 과정에서 창출되었다. 따라서 같은 조건을 공유하는 국가들에게 비슷한 결론을 예상하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
본 논문은 우리에게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사례를 연구하는 데 요구되는 중범위적 분석의 중요성을 확인시켜 주었다. 같은 조건에 있지만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내는 행위주체들의 역동성에 대한 분석이야말로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가능케 하는 바탕이라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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