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itute of Iberoamerican Studies
[ Article ]
iberoamerica - Vol. 24, No. 1, pp.39-69
ISSN: 1229-9111 (Print)
Print publication date 30 Jun 2022
Received 15 May 2022 Revised 26 Jun 2022 Accepted 26 Jun 2022
DOI: https://doi.org/10.19058/iberoamerica.2022.6.24.1.39

한국-쿠바 국교 정상화: 북방정책과의 연계

정기웅**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연구센터 HK교수. jgw@hufs.ac.kr
Diplomatic Normalization between ROK and CUBA: A Linkage with the Northern Policy of ROK
Jung, Gi-Woong**

초록

본 논문은 한국-쿠바 국교 정상화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두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하나는 ‘한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는 가능한가?’이며, 다른 하나는 ‘한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를 위해서는 어떤 정책적 노력이 필요한가?’이다.

상기한 두 가지 질문에 답하기 위해 본 논문은 먼저 대한민국 외교부의 정책목표로서 제시된 바 있는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를 위해 한국이 기울였던 노력과 양국 관계의 현황을 파악하고, 국교 정상화의 가능성을 예측한다. 이 과정에서 한국과 쿠바 국교 정상화의 가장 큰 간섭변수 혹은 방해요인이라고 할 수 있는 북한 요인에 대해 살펴본다.

북한과 쿠바는 매우 독특한 연대 의식을 구축하고 있으며 이러한 양국의 특수 관계가 한국과의 국교 수립에 방해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평가되는 까닭에 이를 극복하고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를 이룩해 내기 위해서는 어떠한 정책적 노력이 경주되어야 하는지를 합리적 선택이론과 전망이론의 틀을 활용하여 탐구한다.

이러한 이론적 검토를 통해 도출된 결론 위에서 마지막 남은 미수교국인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를 위한 대한민국 외교정책의 방향성을 제시하기 위해 북방정책의 경험과 사례들을 연계시키고 있다.

Abstract

This article raises two questions on ‘diplomatic normalization between ROK and Cuba.’ One is ‘Is it possible to normalize diplomatic relations between ROK and Cuba?’ The other is ‘What policy efforts should we make to realize it?’

Then, this article explores the efforts of the ROK government and the current state of affairs between ROK and Cuba and predicts the possibility of diplomatic normalization. The DPRK factor is carefully examined as it is a crucial variable that hinders the diplomatic normalization process.

Cuba and DPRK have built an extraordinary sense of solidarity, which is estimated to prohibit ROK and Cuba from normalizing diplomatic relations. This article suggests what policy efforts should be made to overcome this and realize the diplomatic normalization based on the theoretical framework of the rational choice theory and prospect theory.

Based on this, the cases of ROK's Northern Policy, which pursued ROK's diplomatic normalization with Communist Countries, are contemplated to draw ROK's foreign policy orientation to realize the diplomatic normalization with Cuba, which is remained the last nation with which no diplomatic relationship has been established yet by ROK.

Keywords:

Republic of Korea(ROK),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DPRK), Cuba, Diplomatic Normalization, Northern Policy

키워드:

한국, 북한, 쿠바, 국교 정상화, 북방정책

Ⅰ. 들어가는 말

2016년 6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대한민국 역대 외교부 장관 중 최초로 쿠바를 방문하고 쿠바의 브루노 로드리게스(Bruno Eduardo Rodríguez Parrilla) 외교부 장관과 회담을 가졌다. 윤 장관의 쿠바 방문은 카리브국가연합(ACS: Association of Caribbean States) 정상회의 참석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지만,1) 주최 측으로부터 초청을 받아 참석했다는 점, 이 시기 한국이 쿠바와의 수교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는 점, 한국과 쿠바 양국 모두에서 서로에 대한 관심과 흥미가 고조되고 있었다는 점 등이 고려되어 한국-쿠바 국교 정상화에 대한 높은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2015년 미국과 쿠바가 국교를 정상화하기 전부터 한국은 쿠바와의 수교에 공을 들이고 있었다. 2005년 KOTRA(Korea Trade-Investment Promotion Agency) 아바나 사무소 개설, 현대중공업의 이동식 발전설비 수출,2) 쿠바 정부의 한국 기업들에 대한 마리엘 항구 현대화 사업 참여 요청(외교부 2015, 132) 등으로 한국-쿠바 관계는 경제협력 강화 및 국교 정상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 가고 있었다. 따라서 미국과 쿠바가 오랜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국교를 정상화한 이상 한국과의 국교 수립 또한 시간문제일 뿐 오래지 않아 반드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팽배했었다.

그러나 윤병세 장관의 쿠바 방문 이후 6년의 세월이 지난 2022년 5월 현재에도 쿠바는 여전히 ‘유엔 회원국 중 한국과 수교하지 않은 2개국 중 하나’로 남아 있으며,3) 한때 우리 사회를 휩쓸었던 쿠바 열풍 또한 그 기세가 한풀 꺾인 듯 느껴진다. 이러한 분위기 변화에는 트럼프 정부 시기 다시 악화된 미국-쿠바 관계, 세계를 강타한 COVID-19 팬데믹으로 인한 해외여행 감소 등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으며, 이와 같은 상황적 한계로 인해 문재인 정부 시기 동안에는 쿠바와의 국교 수립을 위한 노력이 전임 정부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미약했던 것으로 여겨진다.4)

2022년 5월 10일, 윤석열 정부가 새로 출범하였다. 새 정부의 출범은 필연적으로 외교정책의 일정한 변화를 수반할 것으로 예측된다. 윤석열 정부는 한국-쿠바 수교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견지할 것인가? 정체된 듯 보이는 분위기를 일신하고 양국 간 외교적 접촉을 확대하여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를 이룩해 냄으로써 우리 외교사에 하나의 방점을 찍을 것인가, 아니면 현재의 상태를 유지할 것인가? 만약 양국 관계에 전기를 가져올 수 있는 어떤 극적인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한국과 쿠바는 현 상태를 유지한 채로 언젠가 올지도 모를 한국-쿠바 국교 정상화의 날을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하는가?

쿠바와의 국교 수립은 우리 외교의 완결성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했을 때 두 가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첫째는 국교 수립의 완성 혹은 완결을 통한 전 세계적 외교 무대의 확보이다. 상기한 [각주 3)]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현재 우리가 수교하지 못한 유엔 회원국은 쿠바와 시리아 2개국뿐이다. 그러나 내전으로 인해 혼란스러운 시리아의 현 상황을 고려할 때, 쿠바는 정상적인 국가 기능이 작동하고 있는 국가 중 우리와 국교가 수립되지 않은 유일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볼 때, 쿠바와의 수교는 식민과 분단, 냉전과 탈냉전을 거치면서 성장해 온 우리 외교사에 ‘국교 수립의 완성 혹은 완결’이라는 의미 있는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상징적 사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북방정책의 완결이다. 사실 한 세대 전만 하더라도 우리의 외교 무대는 지극히 한정되어 있었다. 서울에서 올림픽이 개최되었던 1988년 대한민국의 수교국은 128개국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과 이로 인한 첫 결실인 1989년 헝가리와의 수교 이후, 대한민국의 외교 무대는 급격히 확장되었다. 1990년의 한·소 수교와 1992년의 한·중 수교로 대표되는 구공산권과의 수교는 우리의 외교 무대 확장에 결정적 공헌을 하였으며, 북방정책이 절정에 달했던 1992년 한 해 동안에만 18개 국가와 국교를 수립함으로써 우리의 수교국은 169개로 늘어났다.5) 쿠바의 지리적 위치는 ‘서반구, 카리브, 중미’에 해당하지만, 정치적 위치는 북방에 속한다.6) 따라서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는 제6공화국의 출범과 함께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던 북방정책이 한 세대가 넘는 시간을 거쳐 마침내 완결을 이루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했을 때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는 반드시 달성되어야만 할 우리의 외교목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본 논문은 이와 같은 문제 인식하에 한국-쿠바 국교 정상화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두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하나는 ‘한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는 가능한가?’이며, 다른 하나는 ‘한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를 위해서는 어떤 정책적 노력이 필요한가?’이다. 이 두 가지 질문에 답하기 위해 본 논문은 먼저 대한민국 외교부의 정책목표로서 제시된 바 있는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를 위해 한국이 기울였던 노력과 양국 관계의 현황을 파악하고, 국교 정상화의 가능성을 예측한다. 이 과정에서 한국과 쿠바 국교 정상화의 가장 큰 간섭변수 혹은 방해요인이라고 할 수 있는 북한 요인에 대해 살펴본다. 북한과 쿠바는 매우 독특한 연대 의식을 구축하고 있으며 이러한 양국의 특수 관계가 한국과의 국교 수립에 방해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평가되는 까닭에 이를 극복하고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를 이룩해 내기 위해서는 어떠한 정책적 노력이 경주되어야 하는지를 합리적 선택 이론과 전망이론의 분석 틀을 활용하여 제시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대공산권 수교라는 명확한 정책적 목표를 갖고 추진된 바 있었던 북방정책의 경험과 사례들을 반추함으로써, 마지막 남은 미수교국인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를 위한 대한민국 외교정책의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Ⅱ. 한반도와 쿠바: 관계의 현황

1. 한국과 쿠바

한국과 쿠바의 관계는 1949년 7월 쿠바가 대한민국 정부를 승인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쿠바는 일찍이 대한민국 정부를 승인하고 6.25 전쟁 동안에는 27만 달러를 지원하기도 하였으나, 1959년 카스트로(Fidel Alejandro Castro Ruz) 정권 수립 후 대한민국 영토 내에서의 미군 주둔을 이유로 대한민국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하였다. 단절된 외교 관계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회복되지 않았으며, 한국은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는 우리 외교부의 정책목표로 제시되어 추진되었다. 2015년 2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답변에서 “쿠바와의 수교에 관심을 갖고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라고 밝힘으로써 쿠바와의 수교 의지를 명확히 표시하였다(강병철 2015.02.10). 2016년 6월의 쿠바 방문도 이러한 목표 달성을 위한 노력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윤 장관의 방문 한 달 전인 2016년 5월 쿠바상공회의소는 대한상공회의소 및 전경련과 협력 MOU를 체결하였으며, 동년 10월에는 기재부가 쿠바무역투자부와 경제발전경험공유사업(KSP: Knowledge Sharing Program) 협력 MOU를, 그리고 동년 11월에는 한국수입자협회와 쿠바상의가 MOU를 체결하였다. 그러나 이를 마지막으로 양국 간에는 더 이상의 협정이 체결되지 않고 있다.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를 목표로 삼았던 까닭에 양측의 인사교류 또한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퇴진 이후 정체 상태를 보이고 있는 양국의 접근 노력 및 트럼프 정부 시기 다시 악화된 미·쿠바 관계 등으로 인하여 양국 간 고위급 인사교류는 몇 년째 멈춰 있다. 쿠바 측 주요 인사의 한국방문은 2017년 8월의 알베르토 블랑코(Alberto Blanco) 외교부 아태국장의 방한이 마지막이고, 우리 측의 경우 2018년 5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제37차 유엔 라틴아메리카 카리브 경제위원회(ECLAC: Economic Commission for Latin America and the Caribbean) 총회 참석차 쿠바를 방문한 것이 마지막이다.7) 강 장관은 쿠바 방문 시 양국 간 연락사무소 개설 등을 타진하였으나(김진명 2018.05.11), 그 결과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한국-쿠바 국교 정상화와 관련한 학계의 연구는 결코 많다고는 하기 힘들다. 양국 국교 정상화의 가능성과 시기에 대한 고찰(정기웅 2015), 양국 관계의 진전을 양면게임을 활용하여 분석한 연구(정기웅 2016), 한국과 쿠바의 관계 증진을 위한 경제, 문화, 환경 등에서의 교류 협력 방안(정경원 외 2015) 등이 제시될 수 있다. 그밖에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를 미·북 관계와 연계한 연구(김유철 2020, 2021; 이기태 외 2019; 박경진·김용호 2018; 박영자 외 2015; 황지환 2015), 미·쿠바 관계 정상화를 중국의 부상에 대한 미국의 대응으로 파악하고 있는 연구(김선재 2018), 쿠바와 북한에 대한 비교연구(김상범 2021; 신범철·이의영 2021; 이정철 2018) 등이 있다.

이들 연구가 한국과 쿠바와의 관계 증진 혹은 국교 정상화를 위해 공통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은 정치·경제·문화·환경 등 다방면에 걸쳐 양국 간 접촉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일면 지극히 기능주의적인 접근을 강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수교로 가기 위한 첫걸음으로서 양국 간 연락사무소(liaison office) 개설이 자주 언급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8) 2018년 강경화 장관이 쿠바를 방문했을 때 양국 간 연락사무소 개설을 타진한 것 또한 이러한 연구 결과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가 쿠바와의 국교 수립에 관심을 기울이고 노력하고 있는 이유로는 크게 세 가지를 제시할 수 있다. 첫째, 서론에서 언급한 바 있는 우리 외교의 완결성 확보를 위함이다. 쿠바와의 수교는 사실상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정상 국가와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까닭에 건국 후 지금까지 확장되어온 우리의 외교 무대가 마침내 하나의 완성형을 이루었다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북한 요인이다. 쿠바는 북한의 오랜 맹방이며, 단독수교국이다. 지금도 양국의 유대관계는 결코 얕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쿠바와 정상적인 외교 관계를 수립한다면, 이는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하나의 카드로서 작동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우리가 쿠바와의 수교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배경에는 이와 같은 북한 요인이 자리하고 있음을 결코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셋째, 쿠바 그 자체가 갖는 매력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새로운 시장으로서의 쿠바, 카리브 지역의 중심 국가로서 우리 기업들의 카리브 및 중남미 진출 시 거점 국가로서의 쿠바, 여행지로서의 쿠바, 문화교류의 대상으로서의 쿠바 등 매우 다양한 측면에서 쿠바는 그 자체로 매력적인 수교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2. 북한과 쿠바

1958년 12월 31일 카스트로가 이끄는 혁명 세력은 정부군을 패배시켰고, 1959년 1월 1일 당시 쿠바의 대통령이었던 바티스타(Fulgencio Batista y Zaldívar)는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도주하였다. 쿠바의 혁명정권 수립 직후인 1960년 8월 29일, 북한은 쿠바와 국교를 수립하였다. 1960년 12월 체 게바라(Ernesto Che Guevara)를 필두로 한 쿠바 대표단이 북한을 방문하여 열렬한 환영을 받았으며, 김일성과 회담을 개최하였다. 북한은 1961년 4월 아바나에 북한 공관을 개설하였고, 동년 10월 평양에 쿠바 공관이 개설되었다. 이후 양국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북한이 쿠바를 어떻게 인식하는가 하는 것은 북한의 대외관계사에 잘 나타나 있는데,9) 대외관계사 전체의 분량을 고려할 때 쿠바에 상대적으로 많은 분량이 할애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10) 대외관계사에 표기된 쿠바는 북한에게 혁명의 동지이자 연대의 대상이다. 북한은 쿠바에서의 혁명 성공을 매우 중요한 역사적 순간으로 간주하였다. 북한은 쿠바 혁명의 성공을 라틴아메리카 혁명 역량의 승리로 평가하였으며, 국제적 사회주의 역량 강화와 대미투쟁이라는 맥락에서 쿠바와 긴밀한 협조 관계를 구축하고자 하였다. 이는 쿠바 혁명과 유사한 혁명을 전 중남미 지역에 퍼뜨림으로써 반미, 반제국주의, 그리고 민족해방운동을 촉진 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기 때문이다. 북한은 중남미 제국의 운명을 한국과 비교하였으며, ‘보수적 군부 세력과 미국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중남미’와 한국의 상황이 비슷하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프레임 속에서 북한은 쿠바를 미국이라는 거대한 악마적 초강대국에 용감하게 대항하는 영웅적 국가로 묘사하였다(정기웅 2022, 70-73).

1962년, 소위 쿠바 미사일 위기가 발생하였다. 이는 강대국에 핍박받는 약소국의 저항이라는 프레임으로 활용되어 북한과 쿠바의 협력을 더욱 긴밀하게 만들어준 계기로 작동하였다.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양국은 자주적 군사력 강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상호 안보협력을 강화하고자 하였다.11) 이후 1960년대 말에 이르기까지의 시기는 북한과 쿠바 양국 간 협력이 가장 왕성했던 시기로 볼 수 있다. 양국은 서로의 관계를 ‘연대’의 맥락에서 규정짓고자 하였다. ‘연대’ 혹은 ‘연대성’은 북한과 쿠바의 외교정책 노선에서 찾을 수 있는 핵심적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데,12) 이러한 연대성은 아직도 양국 관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북한은 이 시기 베트남과 쿠바의 혁명이 아시아와 중남미 혁명의 도화선이 될 것으로 간주하였고, 베트남과 쿠바의 미국에 대한 투쟁을 자국의 혁명노선과 동일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기록에 따르면 1966년에서 1969년까지 북한의 당 및 정부대표단을 비롯하여 17개의 대표단이 쿠바를 방문하였고 같은 기간에 쿠바의 당 및 정부대표단을 비롯하여 50여개의 대표단이 북한을 방문하였다(대외관계사Ⅱ 1987, 35). 1960년대의 통행 수단, 양국 간 거리 등을 고려했을 때 이와 같은 빈번한 교류는 양국 간 협력의 긴밀성의 증거로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이후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을 거치면서 북한-쿠바 관계는 비동맹 회의에서의 갈등 및 주도권 다툼으로 약화 되었으나, 1986년 3월 카스트로의 방북을 계기로 우호적 분위기를 회복하게 된다. 양국은 ‘조선-쿠바 친선 및 협조 조약’을 체결하였으며, 이로써 양국 관계는 사실상의 동맹관계로 격상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때 북한은 쿠바에 AK 소총 10만정과 1,600만 달러 상당의 탄약을 지원하는 동시에 쿠바 내 탄약 공장 건설에 400만 달러를 지원할 것을 결정하였다(외교부 2015, 159). 카스트로는 2013년 발간한 자서전에서 당시를 회고하며 북한에 대한 각별한 고마움을 표명하였다(이동경 2013). 그러나 동시에 카스트로는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생존 인물에 대한 우상화, 즉 김일성과 그 일가에 대한 우상화에 대해서는 강한 거부감을 나타냈다(Economist.com 2013).

1988년 서울올림픽은 양국의 협력이 재강화 되는 계기로 작동한다. 많은 동유럽 국가들이 개혁·개방 노선을 표방하면서 서울올림픽에 참가했던 것과 달리 북한과 쿠바는 폐쇄적 정책 노선을 유지하면서 서울올림픽 불참을 결정하였다. 또한 쿠바는 북한이 주장한 남북한 공동 개최를 지지하면서13) 남북한 공동 개최 무산에 대한 북한의 대남비난에 동조하였다. 1989년, 사회주의 국가들의 개혁 개방 정책과 체제변환 과정에서 북한과 쿠바는 여러 차례 회담을 개최하고 상호 협력을 강화한 것으로 평가된다(Hoare 2012, 138-140).14) 양국은 1989년 한 해 동안에만도 당 및 정부대표단의 회담을 1월, 4월, 6월, 9월, 11월, 12월에 걸쳐 6차례나 개최하였다. 이는 구소련 해체와 국제 정세의 급변 속에서 양국이 받은 적지 않은 충격과 위기감의 반영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 후일 북한은 1997년 7월 아바나에서 개최된 제14회 세계청년학생축전에 5백여 명의 대표단(단장 최룡해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제1비서)을 파견하였는데(문경환 2015.09.12) 이는 1989년 북한의 청년축전에 쿠바가 보내주었던 지지에 대한 보답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이후 양국은 사회주의권의 해체 상황에서도 기존의 체제를 고수하면서 각별한 유대관계를 지속시켜 왔다. 1990년대 쿠바와 북한은 그들이 겪어야만 했던 특별한 경제적 어려움에 대해 정반대의 대처를 하였지만, 양국의 끈끈한 유대관계는 오늘날까지도 지속되고 있다고 평가된다. 특히 양국 모두 ‘두드러진 지도자(predominant leader)’에 의한 통치라는 정치 리더십의 유사성을 공유하는 가운데, 최고지도자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진 상황에서도 양국 간 유대의 공고함을 공공연히 표출하고 있다.

카스트로 형제 이후 쿠바의 최고지도자로 등장한 디아스-카넬(Miguel Mario Díaz-Canel Bermúdez)의 경우15) 국가이사회 제1부위원장 및 내각 제1부수상 자격으로 2015년 9월 북한-쿠바 수교 55주년을 기념하여 북한을 방문하고 북한의 최고지도자인 김정은과 회담을 개최함으로써 양국 우호의 공고함을 과시한 바 있다.16) 디아스-카넬은 쿠바 대통령 취임 이후인 2018년 11월 4일 북한을 다시 방문했고, 그가 평양 순안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부인 리설주가 직접 마중하였다(김난영 2018.11.04) 양자는 11월 5일 회담을 갖고 국제기구 내에서의 상호 협력과 우호 관계 지속을 다짐하였다.

쿠바는 국제사회에서 북한에 대한 제재 철폐를 지지하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이며, 상기한 바와 같은 디아스-카넬의 행보 및 이에 대한 북한의 대응은 양국 간 연대 지속의 증거로 제시되고 있다. 북한과 쿠바가 대외적으로 표출하고 있는 이와 같은 각별한 연대감은 한국이 쿠바와 국교를 정상화하는 데 있어 결정적 방해요인 중의 하나로 작동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Ⅲ. 한국-쿠바 국교 정상화: 두 가지 이론적 시각

1. 합리적 선택 이론

상기한 바와 같이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를 위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여겨진다. 현재 한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를 위한 노력은 어느 단계에 도달해 있는가? 양국의 수교를 협상의 관점에서 하나의 흐름으로 나타내고자 한다면 <그림 1>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현재의 상태는 접촉 후 탐색의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림 1>

한국-쿠바 국교 정상화 단계도출처: 정기웅 (2016), 158의 <그림 1>을 변형

한국-쿠바 국교 정상화에 관한 기존 연구(정기웅 2016)는 게임이론을 활용하여 양국 간 국교 정상화의 노력을 분석하고, 이 사안에 관한 양국의 지배전략은 배신(소극적 제안 혹은 무관심)이라는 결과를 제시하였다(<표 1>, <표 2> 참조). 이와 같은 상황 분석에 따라 양국이 모두 배신이라는 전략적 선택을 했을 때 수교는 불가능해진다. 2016년의 상황 분석이지만, 현재 상황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이후의 관계에서 어떤 결정적 변화도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쿠바 국교 정상화 게임트리 (한국)

한국-쿠바 국교 정상화 게임트리 (쿠바)

기존 연구의 결과를 받아들인다면,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를 위해서는 이익구조(pay-off structure)의 수정을 통해 한국과 쿠바의 선호도를 변경시켜야 한다. 이익구조의 수정은 ‘협력을 통한 이익의 증대, 협력을 통한 손실의 감소, 배신할 때 얻을 수 있는 이익의 축소, 배신할 때 감내해야 할 손실의 증대’를 통해 가능해진다. 이러한 이익구조 수정을 통해 한국과 쿠바의 선호도를 바꾸기 위한 전략으로서 기존 연구는 푸트남(Robert D. Putnam 1988)의 투-레벨 게임의 이론 틀을 적용하여 상승적 연계(synergistic linkage)와 담합(collusion), 그리고 이면 보상(side-payment)의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정기웅 2016, 165-170).

현재의 상황에서 이와 같은 전략은 여전히 유효한가? 두 가지 답변이 가능할 것이다. 첫째, ‘기존의 전략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상승적 연계, 담합, 이면 보상 등을 통해 한국과 쿠바의 선호도를 변경시킴으로써 양국의 수교를 위한 노력을 촉진 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교를 위해 한국이 지불해야 할 몫이 쿠바가 감당해야 할 몫보다 클 경우 ‘한국이 수교를 위해 그러한 지출을 감당하는 것이 적절한가?’라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둘째, ‘이익구조 수정을 통한 선호도 변화만으로 양국의 수교가 가능하지는 않다’라는 입장이다. 국가의 정책 결정은 이익구조로 표현되는 이익 계산만을 따르는 것은 아니며, 보이지 않는 가치와 경로의존성, 명분 등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때도 많기 때문이다. 이를 고려하여 본 논문은 기존 연구의 결과에 전망이론의 함의를 추가하고자 한다.

2. 전망이론

국제정치학의 주류 이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합리적 선택이론에서는 ‘조건이 같다면 결과도 같다’라고 전제한다. 전절에 제시한 게임이론을 활용한 분석이 그러하다. 그러나 전망이론에서는 ‘조건이 같다고 할지라도 행위자의 인식 범위에 따라 다른 결정이 내려진다’라고 주장한다(Kahneman and Tversky 1979, 263-272; Tversky and Kahneman 1981, 453-458). 즉 2016년과 지금의 조건이 같다고 할지라도, 쿠바와 한국의 상황 인식이 다르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선택은 항상 합리적 계산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때론 불합리해 보이는 결정을 내리기도 하는데, 이와 같은 불합리를 전망이론은 ‘영역효과(frame effect)’를 활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전망이론은 행위자가 이익 영역(gain frame 혹은 domain of gain)에 위치 해 있을 때는 위험 회피적 선택을 하고, 손실 영역(loss frame 혹은 domain of loss)에 위치 해 있을 때는 위험 감수적 선택을 선호한다고 주장한다.17)

행위자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즉 행위자 자신이 ‘현재 나는 이익 영역에 속해 있는가 혹은 손실 영역에 속해 있는가’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다른 결정을 내리게 된다는 전망이론의 전제는 ‘인간의 선택은 합리적 선택에 따른 효용 극대화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상황의 변화와 상관없이 선호도는 변하지 않는다’는 합리적 선택이론의 기본가정과 상충 된다.

행위자의 선택이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은 무제한적 합리성에 근거한 설명에 반대하는 상황적 합리성(situational rationality) 혹은 맥락적 합리성(contextual rationality)이 중요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정기웅 2021, 164). 이는 동시에 행위자가 인식하는 상황적 합리성 혹은 맥락적 합리성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같은 조건 아래에서도 다른 선택이 가능하다는 주장으로 연결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전망이론의 함의를 한국-쿠바 국교 정상화와 관련한 양국의 정책 집행 태도에 적용한다면 <그림 2>와 같은 정리가 가능해진다. A 분면의 경우 양국이 모두 이익 영역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상호 협력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반면, D 분면의 경우에는 양국 모두 손실 영역에 자리하고 있는 까닭에 상호 협력의 가능성이 낮아진다. 현재 양국이 자리하고 있는 영역은 B, C, D 중 하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양국의 위치를 A로 옮길 수 있다면 상호 협조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까닭에 국교 정상화의 가능성 또한 높아진다는 주장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A 분면에 위치하게 될 경우 양국의 정책 결정은 위험 회피적인 성향을 띠는 까닭에 양국이 어떤 급진적 결정이나 변화를 꾀함으로써 수교를 위한 드라이브를 걸 가능성은 낮아진다. 오히려 D 분면에 위치 해 있을 때 현상의 타파를 위한 위험 감수적 정책을 실행함으로써 양국 간 관계의 돌파구를 모색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도 있다.

<그림 2>

전망이론과 한국-쿠바 국교 정상화출처: 저자 작성

현재 한국과 쿠바가 B, C, D에 위치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로서 북한 요인을 들 수 있다. 한국의 국교 정상화 목표 중 가장 강력한 하나가 북한에 대한 영향력 행사이며, 쿠바의 경우 북한과의 연대 및 전통적 우호 관계가 한국과의 수교에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북한 요인을 해결할 수 있다면 한국-쿠바 국교 정상화 문제의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다는 주장이 가능해진다.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북한 요인에 변화를 초래할 수 있는 정책 방안의 도출을 위해 북방정책의 경험을 참고하고자 한다.


Ⅳ. 북방정책과 한국-쿠바 국교 정상화

1. 북방정책과 공산권 수교

박정희 대통령은 1973년 6월 23일 ‘평화통일에 대한 외교정책 특별선언’을 발표한다. 이는 이후 ‘6·23 선언’으로 지칭된다. ‘6·23 선언’은 당시까지 우리 외교정책의 근간을 이루고 있던 할슈타인 원칙(Hallstein Doctrine)을 포기하고 사회주의권 국가들에게 문호를 개방하겠다는 선언이었다. 북방정책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18) 이후 5공화국 시절이던 1983년, 이범석 외무장관은 국방대학원 연설을 통해 ‘북방정책’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하였으며,19) 노태우 대통령은 1988년 취임사를 통해 ‘북방외교’를 선언하였다(노태우 1988).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 식민과 해방, 전쟁과 분단이라는 우리의 역사적 경험은 냉전이라는 체계적 상황과 결합하여 오랜 시간 동안 우리 국가의 정책과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쳤다. 특히 이러한 체계적 상황이 우리 외교정책에 끼친 영향은 막대하였으며, 우리 외교는 ‘약소국 외교, 종속적 외교, 냉전 외교’의 프레임에 갇혀 있었다. 북방정책은 이러한 구조적 제약을 극복하고 자주적 외교를 확립하고자 하는 의지의 발로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북방정책의 본격적 출발을 선언했다고 할 수 있는 ‘7·7 선언’의 명칭은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대통령 특별선언’이며, 이는 자주적 외교를 통한 민족공동체의 회복이라는 우리의 염원을 보여준다.20)

초기 북방정책의 목표는 통일과 안보였다. 외무부(1992, 44)는 “국제질서와 한반도 주변 정세의 변화를 능동적으로 활용하며 한반도 안보 환경을 개선 시켜 새로운 남북관계를 설정할 목적하에” 북방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고 밝히고 있다. 공보처(1992a, 97)는 북방외교의 목표를 “중·소를 비롯한 전통적인 친북한 사회주의 국가와의 관계 정상화를 이룩함으로써 북한으로 하여금 한반도의 현실을 받아들이도록 함; 북한이 개혁·개방 정책을 통하여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 되도록 유도함; 북방 사회주의 제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통하여 종래 서방국가만을 대상으로 하였던 한국 외교를 전방위 외교로 광역화시킴; 중·소 등 사회주의 국가와의 통상경제교류 등을 통하여 경제적 실익 추구를 도모함” 등으로 정리하고 있다.

노태우 대통령의 정책 비서관으로서 북방정책을 담당하였던 염돈재는 북방정책의 목표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외교사연구센터 2020, 118). “첫째는 한반도 평화 정착과 통일 여건의 조성, 둘째는 민족자존에 입각한 반쪽 외교 극복, 전방위 외교의 추진, 셋째는 새로운 경제파트너의 확보, 넷째는 냉전 장벽을 허물고 인류 평화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상기한 바와 같은 목표를 갖고 진행되었던 6공화국 시기 북방정책에 대하여 노태우 대통령은 1992년 11월에 개최된 마지막 ‘북방정책 보고회의’에서 북방정책의 성과를 “첫째, 우리는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외교로 전방위 외교 시대를 개화시켰으며, 둘째, 북방대륙의 무한한 시장이 열리게 되었으며, 셋째, 북방정책은 국가안보에 크게 기여 했으며, 넷째, 가장 중요한 성과는 통일의 큰 길이 열린 점”이라고 언급하고 있다(공보처 1992b, 427-429).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 또한 북방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북방정책의 전략적 성격이다. 북방정책은 사회주의권 국가들과의 실질적인 관계 개선을 포함하여 “중·소 등과의 관계 정상화를 통하여 평양의 문을 두드리는 ‘간접·우회적 전략’으로 대북한 전략의 성격을 더욱 강하게 띠고 있는” 것(김태현 1998, 46)이며, 북에 대한 간접적 영향력 행사를 통한 통일의 달성이라는 목표를 갖고 있다(전재성 2003, 23-45). 북방정책을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한다면, 쿠바의 지리적 위치는 서반구이지만, 정치적 위치는 북방에 속한다.21) 본 논문에서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를 북방정책의 완결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북방정책은 ‘북한, 통일, 안보’를 목표로 출범하여 체계적 상황과 정권의 변화를 거치면서 ‘세계, 평화, 번영’으로 그 목표점을 이동 시켜 왔다.22) 박정희 정부에서 씨앗을 준비하고, 노태우 정부가 묘목을 심은 북방정책은 이후 김대중 정부의 ‘철의 실크로드’와 이명박 정부의 ‘3대 신실크로드’, 그리고 박근혜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문재인 정부의 ‘신북방정책’을 거치면서 거대한 나무로 자라나 화려한 꽃을 피우고 있다. 한국-쿠바 국교 정상화는 이러한 긴 여정의 결실로서 북방정책이라는 거대한 나무의 알찬 열매로 수확되어야 한다.

2. 북방정책이 한국-쿠바 국교 정상화에 주는 시사점

북방정책은 1989년 2월 1일 헝가리와의 국교 수립을 시작으로 한·소수교, 한·중수교와 같은 기념할 만한 성과들을 거두었다. 우리 외교의 역사 속에서 가장 많은 국가와 외교관계를 수립한 것은 28개국과 국교를 수립하였던 1962년이고, 그다음이 1992년으로 우리는 이 1년 동안 18개 국가와 국교를 수립하였다. 이들 중 상당수가 과거 공산권에 속해 있던 국가들로서, 이와 같은 결과는 노태우 정부의 적극적 북방정책이 성공적이었음을 말해준다.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 성공의 원인으로 흔히 세 가지 이유가 제시된다.

첫째, 체계적 상황이다. 북방정책의 성공은 외교 무대의 확장을 통한 자주 외교 실현을 위한 우리의 노력뿐만 아니라 냉전의 해체라는 체계적 상황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다. 만약 냉전 구조의 붕괴와 구소련의 해체라는 역사적 사건이 없었더라면, 우리의 북방정책은 성공에 이르기까지 훨씬 많은 어려움을 겪거나 더 오랜 시간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둘째, 비공식적 외교 경로의 성공적 활용이다. 북방정책의 성공에는 공식적 외교 경로를 통한 접촉뿐만이 아니라 비공식적 외교 경로, 특히 학계를 통한 접근이 큰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이다.23) 국교가 수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민감한 외교적 사안을 논하는 데 있어 공식적 채널 만큼이나 비공식적 채널이 큰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적대적 관계 해소를 위한 비공식적 채널의 활용은 역사 속에서 매우 다양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의 수교라는 결과를 가져왔던 핑퐁외교, 이스라엘과 PLO의 상호인준을 성사시켰던 오슬로 협정 등도 그 시작은 비공식적 접촉에서 시작되었다. 우리의 북방정책의 경우에는 학술연구모임인 공산권연구협의회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고, 독일에서의 학술회의 기회를 활용하여 동구권과의 접촉이 이루어진 바 있다.

셋째, 최고지도자의 의지다. 북방정책을 통한 수교 성립에는 많은 경우 수교 상대국 최고지도자의 의지가 크게 작용하였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최고지도자의 의지를 변화시키는 데 있어서는 체계적 상황변화에 따른 인식 변화와 그러한 변화를 이끌어 내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 또한 중요한 요인으로 작동하였다. 공산권과의 첫 수교인 헝가리와의 국교 수립 및 한·소수교, 한·중수교에서 고르바초프와 덩샤오핑이라는 핵심적 행위자들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은 세 가지 이유를 현재 상황에 적용한다면 다음과 같은 주장이 가능해진다.

첫째, 현재 우리는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만큼이나 역동적인 세계질서의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지정학과 강대국 정치의 부상, 힘을 앞세운 강압 외교와 무력 사용의 대두는 세계정치의 무대가 또 다른 변화를 경험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변화의 시기는 위기만큼이나 많은 기회를 제공한다. 이러한 체계적 상황의 변화가 정체되어있는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 과정에 결정적 전환의 계기를 제공할 수 있음을 인지하고, 하시라도 기회를 포착하여 국교 정상화를 실현시킬 수 있는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급작스러운 변화에 대비하는 비상계획(contingency plan)과 장기적 로드맵(roadmap)의 작성은 국교 정상화로의 긴 여정에서 길을 잃지 않고 위기에 빠지지 않게 하는 나침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나침반을 준비하는 모든 작업은 대통령실, 외교부, 통일부, 국정원 등 관련 부처 간 긴밀한 협의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를 위해서는 공식적 외교 경로를 통한 접촉뿐만이 아니라 비공식적 통로를 활용한 꾸준한 관계 증진이 필요하다. 쿠바에서 한류의 높은 인기, 여행객의 증가, 문화적 교류의 증가 등을 활용한다면, 쿠바 사회 전반에 걸쳐 한국과의 수교에 대한 우호적 반응을 증가시키는 데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1.5트랙의 활용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중남미연구소에 쿠바 문화외교의 핵심적 행위 주체인 쿠바 외교부 산하 호세마르띠 문화원(La Sociedad Cultural José Martí: SCJM)의 서울 사무소(Club Martiano en Seul)가 설치되어 있는바, 이와 같은 기관을 활용한 민간 교류를 확대하는 동시에 이에 상당하는 우리 측 행위자라고 볼 수 있는 국제교류재단과 KOICA, KOTRA 등을 통한 접촉의 적극적 확대가 모색되어야 한다.

셋째, 최고지도자의 경우 사실상 우리가 최고지도자의 인식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특히 카스트로 형제의 퇴진 후 지도자로 등장한 디아스-카넬 대통령 체제 하에서도 북한-쿠바 양국이 굳건한 유대를 과시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최고지도자의 의지를 변화 시킨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쿠바와 북한 양국 모두에서 소위 말하는 혁명 세대의 퇴진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쿠바의 시민사회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점, 한국과의 수교가 쿠바에 실질적 도움이 됨으로써 쿠바의 새로운 리더십 안착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쿠바 최고지도자의 의지 또한 상황에 따른 변화 가능성이 상존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변화를 실질적으로 유도해 내는 것은 우리가 어떠한 정책과 전략적 선택을 취하느냐에 달려 있다.


Ⅴ. 결론

본 논문은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 가능성을 탐색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정책적 방안을 모색함에 있어 합리적 선택이론과 전망이론의 분석 틀을 적용하고, 북방정책과의 연계를 시도하였다.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은 대체로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북방정책은 노태우 정부의 퇴진 이후에도 지금에 이르기까지 여러 행정부를 거치면서 사라지지 않고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노태우 정부 시기 북방정책이 본격화되었을 때 “분단의 고착화나 북한의 모험주의적 도발 촉발, 동북아의 강대국 각축장화의 가능성, 동북아의 세력 균형 붕괴” 등과 같은 부작용들이 발생 가능할 것으로 예측되었다(정종욱 1990, 5). 이러한 부정적 효과의 발생·확산을 방지하기 위하여 노태우 정부는 북방정책을 추진하면서 출범 초기부터 다음과 같은 정책 방향을 제시하였다. “첫째, 북한의 고립화를 추구하지 않는다. 둘째, 대북한정책과 통일정책을 연계시킨다. 셋째, 정치적 교류와 비정치적 교류를 과감하게 병행하여 추진한다. 넷째, 국민적 합의의 바탕 위에 추진한다. 다섯째, 미국을 비롯한 기존 우방국들과의 유대관계를 다지는 바탕 위에서 추진해 나간다.” 등이다(박철언 1989, 188-189). 이러한 원칙은 오늘날 우리가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를 추진하는 데 있어서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의 논의를 바탕으로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를 추진하면서 우리가 반드시 고려해야 할 세 가지를 제시함으로써 결론에 대신하고자 한다.

첫째, 왜 쿠바와 국교 정상화를 이룩하고자 하는가의 문제이다. 한국은 왜 쿠바와 국교를 수립하고자 하는가?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명확히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답은 북방정책의 완성일 수도 있고, 우리 외교의 완결성 확보일 수도 있으며, 북한에 대한 간접적 영향력 확보, 통일을 위한 장기적 포석, 혹은 세계평화를 위한 노력일 수도 있다. 어떠한 것이 되었든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에 대한 필요성과 당위성을 국민에게 설득시키지 못한다면 우리의 외교적 노력은 모래 위에 쌓은 성에 다름 아니게 될 것이다.

둘째, 현재 우리는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 과정에서 정체 상태에 머물러 있다. 이와 같은 정체 상태의 원인은 무엇인가? 국교 정상화 노력이 정체되어있는 것은 양국 간 갈등 때문인가, 아니면 수교를 방해하는 체계적 요인이 존재하는가? 그것도 아니면 다른 어떤 제3의 요인이 존재하는가? 현재 양국 간 현안이라고 할 수 있는 특별한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체계적 상황의 경우 다시 악화된 이후 회복될 줄 모르고 있는 미-쿠바 관계, 미·중 전략경쟁, 소련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세계적 불안, COVID-19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 침체 등 많은 것들이 체계적 변수로 제시될 수 있다. 이러한 체계 변수의 경우 우리 스스로의 노력과 정책적 선택만으로 어떤 변화를 이끌어 내기는 쉽지 않지만, 정확한 상황 인식과 대비 태세 확보를 통해 양국 수교를 위한 어려움들을 줄여나갈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를 위해 우리는 어떠한 실질적이고도 구체적인 정책 행위를 구사할 것인가? 합리적 선택이론의 논리를 따르자면 우리가 쿠바에 이익이 되는 제안을 함으로써 쿠바의 선호도를 바꾸거나 상황의 변화에 따라 쿠바의 선호도가 변화된다면 쿠바는 수교라는 정치적 선택을 하게 된다. 그러나 전망이론의 논리가 지적하고 있듯이 합리성이라는 것은 지극히 상황적이며 맥락적이다. 따라서 이러한 맥락적 선택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정책 행위가 필요하며, 이는 단순한 경제적 이익 혹은 절대적 이익 증가의 가능성 제시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할 수 있다. 쿠바가 상대적·절대적 이익 양 측면에서 모두 이익 영역에 속해 있다고 느낄 때, 그리고 이러한 쿠바의 변화된 입장과 한국의 이해관계가 일치할 때, 양국 협력과 국교 정상화 가능성은 극대화될 것이다.

1962년, 대한민국은 28개국과 수교함으로써 그 외교적 영토를 배가시켰다.24) 이러한 외교적 영토의 배가에는 중남미 제국(諸國)과의 수교가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거기에 쿠바는 속해 있지 않았다. 한 세대 후인 1992년, 대한민국은 북방정책을 통해 18개국과 수교함으로써 수교 대상국의 숫자를 169개국으로 늘렸다. 그리고 다시 30년의 세월이 흐른 2022년, 대한민국의 수교국 수는 191개국에 달하지만, 쿠바는 여전히 우리의 마지막 수교 대상국으로 남아 있다.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를 통해 우리 외교의 완결성 확보와 공산권과의 수교라는 초기 북방정책의 목표 달성이 동시에 이루어지길 기원한다. 그리고 이러한 국교 정상화가 남북관계의 진전 및 통일을 향한 우리의 여정에 긍정적으로 작동하길 바라마지 않는다.

Acknowledgments

이 논문은 2020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20S1A6A3A04064633); 이 연구는 2022학년도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원연구지원사업 지원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임.

Notes
1) ACS는 1995년 8월 설립되었으며, 정회원 25개국, 준회원 5개국 및 6개 속령, 옵서버 24개국 및 10개 국제기구로 이루어져 있다. 대한민국은 정회원은 아니며, 1998년 옵서버로 가입하였다. 2016년에는 쿠바가 ACS 정상회의 주최국이었다.
2) 현대중공업은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이동식 발전설비 644기를 쿠바에 수출하였고, 이는 쿠바의 전력난 해소에 절대적인 공헌을 하였다. 이 결과 쿠바 정부는 2007년 발행한 10페소(태환화폐) 뒷면에 현대중공업의 이동식 발전설비 도안을 삽입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김승범(2009.01.13)을 참조할 것.
3) 현재 유엔에는 193개국이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으며, 한국은 이 중 191개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있다. 현재 미수교국은 쿠바와 시리아 2개국이다. 미수교국 중 하나였던 북마케도니아와는 2019년 수교를 체결하였다. 쿠바와 시리아는 북한과 단독으로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있으며, 그밖에 팔레스타인이 북한과 단독으로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유엔 회원국은 아니지만, 유엔 회원국 중 136개국으로부터 승인받았으며, 2012년부터 유엔 총회 옵서버가 되어 국가임을 인정받았다. 외교부, “외교관계수립현황,” https://www.mofa.go.kr/www/wpge/m_4181/contents.do (2022.05.10).
4) 문재인 정부 시기에도 강경화 장관의 쿠바 방문(2018년 5월 9일 ~ 10일) 및 브루노 로드리게스 쿠바 외교부 장관과의 회담(2018년 5월 10일; 2018년 9월 26일) 등 한국-쿠바 국교 정상화를 위한 노력이 지속되었다. 그러나 저자는 문재인 정부 동안 본문에 언급한 바와 같은 여러 가지 상황적 한계로 인해 접촉의 빈도 및 수교를 위한 노력 등이 상대적으로 미약했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평가는 온전히 저자의 주관적 견해임을 밝힌다.
5) 대한민국 외교 역사 속에서 가장 많은 수교가 이루어진 해는 1962년이다. 한 해 동안 28개국과 국교를 수립하였으며, 그 다음이 18개국과 수교한 1992년이다. 외교부, “외교관계수립현황,” https://www.mofa.go.kr/www/wpge/m_4181/contents.do (2022.05.10).
6) 이와 관련한 논의는 본 논문 제4장을 참조할 것.
7) 이외에도 유엔 총회 참석을 계기로 2018년 9월 26일 미국 뉴욕에서 대한민국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쿠바 브루노 로드리게스 외교부 장관과의 양자 회담이 개최된 바 있다.
8) 상기한 연구 결과들 이외에도 외교부가 2016년부터 해마다 개최하고 있는 쿠바 정책 세미나에 초청되어 발표한 여러 해외 학자들 또한 연락사무소 개설을 제언하였다. 저자는 2016년, 2017년, 2018년, 2021년에 발표자로 참여한 바 있으며, 여러 국내외 참석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위와 같은 견해를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2016년 참석자 Fulton Armstrong, Richard Feinberg; 2017년 참석자 Hal Klepak, Jorge Perez-Lopez, Omar Everleny; 2018년 참석자 Ted Piccone, Paul Hare 등과의 인터뷰. 2021년의 경우 COVID-19 팬데믹으로 인하여 해외 참석자(William LeoGrande, Jorge Duany)들이 화상으로만 참여한 까닭에 대면 인터뷰를 갖지 못했음을 밝힌다. 연락사무소 개설 이외에도 양국 간 관계 증진을 위하여 이익대표부, 혹은 무역대표부의 개설이 제안되기도 하였다.
9) 평양의 사회과학출판사는 1985년과 1987년 두 차례에 걸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외관계사』를 출간하였다. 원본은 두 권 모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외관계사』로만 표기되어 있으며 Ⅰ과 Ⅱ의 구분이 없으나 그 내용에 있어서는 순차적으로 연결되어있는 까닭에 본 논문에서는 1985년판을 대외관계사Ⅰ로, 1987년판을 대외관계사Ⅱ로 표기하고 있다.
10) 대외관계사 Ⅰ과 Ⅱ에 서술된 쿠바 관련 분량은 소련 및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11) 몇몇 연구는 쿠바 미사일 위기와 북한의 안보 위기감, 그리고 주체사상의 출범 등을 서로 연관 지어 분석함으로써 주체사상의 탄생에 관한 흥미 있는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Chung(2007); Hudson(2012); Pearson(2012) 등을 참조할 것.
12) 연대성의 개념에 대해서는 송병선(2010); 정기웅(2015a), 302~304; Jung(2017)을 참조할 것.
13) 공산권 국가들 중에서도 쿠바와 알바니아만이 북한의 공동 개최 주장을 지지하였다. 이에 관해서는 Banks and Muller(1998), 511을 참조할 것.
14) 쿠바는 1990년에서 1993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평화로운 기간의 특별한 시기(El período especial en tiempos de paz)’ 라고 부르는 경제적 어려움을 경험하였고, 북한은 1996년에서 2000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겪었던 경제적 어려움을 ‘고난의 행군’이라고 명명하였다. 경제적 위기 상황에 대한 양국의 대처는 완전히 달랐는데, 쿠바는 과감한 경제개혁 정책을 단행하여 경제의 사적 부분을 합법화하였음에 반해 북한은 쿠바와 같은 과감한 정책변화를 추진하지 못한 채 부분적 개혁정책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쿠바와 북한의 시장 시스템 진화과정에 대해서는 박영자 외(2015), 64-80을 참조할 것.
15) 쿠바의 정치적 리더십 변화와 관련해서는 하상섭(2018)을 참조할 것.
16) 디아스-카넬의 방북과 그 의미에 대해서는 정기웅(2015b)을 참조할 것.
17) 위험 감수적 선택과 위험 회피적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요인으로 가치함수와 확률가중함수가 존재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Kahneman and Tversky(1979)Tversky and Kahneman(1992)을 참조할 것.
18) 논자에 따라 북방정책의 시원을 구한말의 ‘인아거일(引俄拒日)’에서 찾거나(장덕준 2021, 45-157), 1960년대 후반의 대공산권 접촉을 그 시발로 보기도 한다(임춘건 2008, 12-15). 본 논문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의 6·23 선언을 북방정책의 시작으로 간주하고 있다.
19) 이범석 장관의 연설 및 북방정책이라는 용어의 탄생과 관련해서는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외교사연구센터(2020), 58-59; 노진환(1993), 64-70을 참조할 것.
20) ‘민족공동체’ 개념 및 ‘민족공동체통일방안’ 등에 관해서는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외교사연구센터(2020)의 내용 중 이홍구의 인터뷰(29-37)를 참조할 것.
21) 북방정책과 북방의 의미에 대해서는 정기웅(2021); 정기웅·윤익중(2021)을 참조할 것.
22) 북방정책 목표의 변화에 관해서는 임춘건(2008); 장덕준(2021); 정기웅·윤익중(2021) 등을 참조할 것.
23) 북방정책의 추진 과정에서 학계의 활용과 관련해서는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외교사연구센터(2020)의 제3장을 참조할 것.
24) 1961년까지 우리의 누적 수교국은 27개국이었다. 1962년 28개국과 새롭게 국교를 정상화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수교국은 55개국으로 늘어났다. 외교부, “외교관계수립현황,” https://www.mofa.go.kr/www/wpge/m_4181/contents.do (2022.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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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그림 1>
한국-쿠바 국교 정상화 단계도출처: 정기웅 (2016), 158의 <그림 1>을 변형

<그림 2>

<그림 2>
전망이론과 한국-쿠바 국교 정상화출처: 저자 작성

<표 1>

한국-쿠바 국교 정상화 게임트리 (한국)

한국의 선택 적극적 제안 C 소극적 제안 혹은 무관심 D
출처: 정기웅 (2016), 162의 <표 1>을 수정
쿠바의 선택 수락 C 거부 D 수락 C 거부 D
결과 CC
국교정상화
CD
실패
DC
국교정상화
DD
실패
선호도 2nd 4th 1st 3rd
DC > CC > DD > CD = 수인의 딜레마의 선호도

<표 2>

한국-쿠바 국교 정상화 게임트리 (쿠바)

쿠바의 선택 적극적 제안 C 소극적 제안 혹은 무관심 D
출처: 정기웅 (2016), 163의 <표 2>를 수정
한국의 선택 수락 C 거부 D 수락 C 거부 D
결과 CC
국교정상화
CD
실패
DC
국교정상화
DD
실패
선호도 3rd 4th 1st 2nd
DC > DD > CC > CD = 교착의 선호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