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에 형상화된 마약 테러에 대한 기억과 트라우마
초록
콜롬비아에서는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을 ‘테러리즘의 시대’라고 부른다.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은 오늘날까지도 상처가 남아 있는 이 유혈 시대에 발생한 사건들을 탐구하고 재현한 소설이다. 콜롬비아의 역사적 사건들에 기반한 이 소설에서는 마약 거래와 폭력으로 인한 폐해, 인간의 과도한 경제적 욕망으로 인한 부작용, 과거에 대한 망각의 문제와 기억 및 증언의 문제, 사회에 만연된 공포, 살아남은 자들이 겪고 느끼는 고통과 두려움, 트라우마 등이 씨실과 날실을 이루어 다채로운 문학적·미학적 문양을 만들어낸다. 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이 소설의 주요 주제일 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트라우마를 유발한 경험과 관련된 기억의 문제가 이 소설의 서사적 얼개를 이루기 때문에, 본고에서는 마약 테러에 대한 기억과 트라우마의 문제를 천착할 것이다.
Abstract
In Colombia, the late 1980s and early 1990s are referred to as the “era of terrorism.” The Sound of Things Falling is a novel that explores and reproduces the events of this bloody era that still scars to these days. In this novel, based on various historical events in Colombia, the damage caused by the drug trade and violence, the side effects caused by the excessive desire of human beings for material gain, the problem of forgetting the past, matters of memory and testifying issues, the prevalence of fear in throughout society, and the trauma, pain and fear lived by survivors, among other things, form the weft and warp that create colorful literary and aesthetic patterns. The trauma caused by violence is not only a main theme of this novel, but also the cause that addresses the memory issues related to these traumatic experiences of the main character which forms its narrative framework. This article inquires into the memory and trauma of narcoterrorism that the novel embodies.
Keywords:
The Sound of Things Falling, Colombia, Narcoterroism, Memory, Trauma키워드: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 콜롬비아, 마약 테러, 기억, 트라우마Ⅰ. 서론: 폭력과 문학
콜롬비아에서는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을 ‘테러리즘의 시대’라고 부른다. 콜롬비아와 미국 사이의 ‘범죄인 인도 조약’이 발효되자 메데인 카르텔의 수장 빠블로 에스꼬바르(Pablo Escobar, 1949 - 1993)는 정부와 사회에 죽음의 전쟁을 선포했고, 그 결과 폭력이 난무했다. 당시의 혼란한 상황을 반영한 소설이 다수 출간되었는데, 그들 가운데 대부분은 마약으로 인해 발생하는 제반 문제를 다룬 ‘마약 서사(narconarrativa)’ 또는 ‘마약 픽션(narcoficción)’ 장르다.
그동안 다양한 역사적 사실의 문학적 형상화 작업을 통해 세계 비평계의 주목을 받아오던 콜롬비아 출신 작가 후안 가브리엘 바스께스(Juan Gabriel Vásquez, 1973 - )가 2011년에 출간한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1)은 오늘날까지도 상처가 남아 있는 그 유혈 시대에 발생한 사건들을 탐구하고 재현한 소설이다. 소설은 마약 카르텔의 폭력성이나 빠블로 에스꼬바르라는 상징적인 인물 등을 일종의 참조 사항으로 제시하면서 마약 카르텔과 정부의 대립으로 발생한 폭력의 영향을 받은 등장인물들의 관점에서 폭력을 성찰한다.2) 즉, 마약 밀매로 인한 폭력, 이 폭력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다양한 폭력이 일반 소시민(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인 세대)의 삶에 미친 영향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소설의 제목에 등장하는 ‘소음(ruido)’은 미국 평화봉사단(Peace Corp)의 일원으로 콜롬비아에 파견되어 리까르도 라베르데와 결혼한 미국인 일레인 프리츠(콜롬비아 식 이름은 ‘엘레나’)가 콜롬비아에 있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탑승한 비행기가 추락할 때 블랙박스에 녹음된 소음에서 차용한 것이다.3) 소음은 엘레나가 탑승한 비행기, 변호사이자 로사리오 대학교의 법학 교수인 안또니오 얌마라의 결혼 생활, ‘마약왕’ 빠블로 에스꼬바르의 제국4), 심지어 국가 자체까지 모든 것이 추락하는 것을 상징한다(White 2013, 4).
소설에는 등장인물들의 불행한 삶, 그들의 트라우마5)와 관련된 항공기 사고들이 언급된다. 1989년 11월 27일, 빠블로 에스꼬바르가 대통령 후보 세사르 가비리아 뜨루히요(César Gaviria Trujillo)를 죽이려고 아비안까 항공 203편을 폭파했는데, 이 사고는 콜롬비아 사회에 마약 거래로 인한 폭력 및 공포를 배가시키고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의 사회적·심리적 배경이 된다. 1995년 12월 20일, 주로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려고 귀국하는 사람들을 태우고 마이애미 국제공항을 출발해 깔리의 알폰소 보니야 아라곤 국제공항으로 향하던 아메리칸 항공 757편이 착륙 직전에 산악 지대에 추락해 승객 151명과 승무원 8명이 사망한다. 오랜 조사 끝에 항법 시스템의 오류 때문이라는 결론이 도출되었지만 사람들의 심리 기저에는 콜롬비아에 만연한 폭력의 잔영이 드리워졌고, 이 사고는 결국 소설에서 엘레나를 죽음으로 이끌면서 주요 등장인물들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주인공 안또니오는 보고따 시내 당구장에서 우연히 친구가 된, 아버지 나이 또래(50대)의 리까르도와 함께 사고 비행기의 블랙박스에 남아 있던 기장과 부기장의 대화와 소음을 담은 카세트테이프를 들은 뒤에 보고따 시내를 걷다가 오토바이를 탄 두 명의 시까리오(sicario: 청부살인자)로부터 총알 세례를 받는다. 리까르도는 현장에서 즉사하고 안또니오는 심각한 부상을 입는데, 나중에 그는 엘레나의 죽음을 유발한 비행기 사고가 자신의 트라우마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엘레나에 관한 이야기는 리까르도의 삶에 드리운 여러 가지 비극적인 면모를 밝혀주면서 안또니오의 심리적 고통의 원인에 대한 질문들을 제기한다. 안또니오는 자신이 직접 만난 적이 없는 엘레나의 과거사에 대한 새로운 조각들을 발견할 때마다 자신이 트라우마를 겪게 된 사연과 엘레나의 개인사가 점점 친밀하게 합체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따라서 소음은 살아남은 자들이 겪는 트라우마의 이유이자 그들이 감춰진 과거에 대한 기억을 되찾게 하는 동기로 작용하고, 결국에는 복원된 기억을 통해 콜롬비아 사회가 지닌 문제를 진단하면서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한다. 이 소설은 안또니오가 다양한 기억과 증언, 정보를 토대로 과거 사건의 단서들을 조합해 숨겨진 진실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저널리즘적이고 탐정소설적인 특징 또한 갖고 있다.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삼아 치밀하게 구성한 플롯과 복잡한 등장인물들을 통해 콜롬비아 역사에서 아주 성가신 주제라고 할 수 있는 마약 거래와 폭력으로 인한 공포와 그 밖의 제반 문제를 과감하게, 절묘하게 다룸으로써 독자들에게 콜롬비아 암흑기의 잔상을 재현해 보여준다. 폭력의 폐해, 인간의 과도한 경제적 욕망으로 인한 부작용, 과거에 대한 망각과 기억의 문제, 사회에 만연된 공포, 살아남은 자들이 겪고 느끼는 고통과 두려움, 트라우마 등이 씨실과 날실을 이루어 다채로운 문학적·미학적 문양을 만들어낸다. 이들 테마는 각각 또는 다른 테마들과 연계해 연구할 만한 가치가 충분한데, 본고에서는 특히 마약 테러(narcoterrorismo)에 대한 기억과 트라우마의 문제를 천착할 것이다. 보고따를 배경으로 한 서사가 1996년에 입은 총상으로 인해 계속해서 고통을 유발하는 트라우마를 치유하려는 주인공의 시도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이 소설의 주요 주제일 뿐만 아니라 안또니오의 트라우마를 유발한 비극적인 경험과 관련된 기억의 문제가 이 소설의 서사적 얼개를 이루기 때문이다.
Ⅱ. 폭력에 대한 기억과 트라우마
1. 마약 테러의 재현
바스께스는 인터뷰에서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은 자신의 개인적인 기억, 즉 마약 테러로 얼룩진 1980년대와 1990년대 보고따에서 자란 기억에 기반한 것인데, 폭탄과 함께 성장하고, 콜롬비아의 정치인을 비롯해 공적 생활에서 중요한 인물들을 죽이는, 소위 ‘요인 암살’과 함께 성장하고6), 마약 밀매 현상이 자신들에게 가한 그런 오염과 함께 성장하는 것은 콜롬비아에서 그의 삶과 한 세대 전체의 삶에 충격을 주었다고 밝힌다(De Maeseneer and Vervaeke 2013, 211). 당시 콜롬비아에서는 마약 카르텔의 국가와 국민에 대한 폭력, 마약 카르텔과 무장 게릴라 집단에 대한 국가의 ‘합법적인’ 폭력, 마약 카르텔 사이의 폭력, 게릴라 집단과 준군사조직의 국가와 국민에 대한 폭력이 난무했다. 특히 마약 카르텔은 폭탄으로 정부기관, 언론사 같은 공공장소, 차량, 비행기 등을 파괴하고, 자신들의 활동을 억압하거나 비판하는 정부의 요인이나 경쟁자를 살해했다. 마약 테러의 중심에는 거의 빠블로 에스꼬바르가 있었다. 그는 수많은 사람을 죽였는데, 살인의 대상에는 법무부장관, 검찰총장, 판사, 검사, 정치인, 언론인, 경찰, 군인뿐만 아니라 민간인도 포함되었다. 그는 “자신의 가장 저명한 추적자인 법무부 장관 로드리고 라라 보니야(Rodrigo Lara Bonilla)를 죽이거나 죽이도록 사주”했고, 라라 보니야는 1984년에 “까예 127의 커브 길에서 오토바이를 탄 자객 두 명에게 살해당했다”(19). 라라 보니야는 “마약운반업자들에게 공공의 적이자 법조인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사람”(227)이었기 때문에 “그가 누구인지는 모든 사람이 알았는데, 어떻게 해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 아는 사람은 전혀 없었”(228)다. 또한 자신의 카르텔을 소탕하려 했다는 이유로 대통령 후보 3명을 암살했는데, 그중에서 1989년에 발생한 루이스 까를로스 갈란(Luis Carlos Galán)의 암살 사건은 콜롬비아 사회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고 정치를 왜곡시켰다. 갈란의 “암살 사건은 우리의 이미지 군(群)에서 그 전 것들과 달랐는데, 그 이유는 그 사건이 텔레비전으로 방영되었기 때문이다. 갈란을 환호하는 군중의 모습이 보이고 나서 기관총 섬광이 보이고, 나무로 만든 연단 위로 무너져 내리는 그의 몸이 보였는데, 몸은 소리도 없이, 또는 소리가 혼란스러운 군중의 소란과 첫 번째 비명에 묻힌 상태로 쓰러졌다”(19). “텔레비전으로 방영”되는 상황에서 암살을 감행했다는 사실에서 암살자 집단의 대담성, 과시욕, 국민을 위협하는 폭력성을 읽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1986년에는 콜롬비아의 마약 문제와 마약 카르텔의 범행을 강력하게 비판하던 “<엘 에스뻭따도르(El espectador)>의 발행인 기예르모 까노(Guillermo Cano)를 죽이거나 죽이도록 사주”했고, “암살범은 신문사 건물로부터 불과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기예르모 까노의 가슴에 총알 여덟 발을 박았다”(19). 암살 미수 사건도 있었다. 1989년에는 아비안까 항공사의 727-21편이 공중에서 폭파되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에스꼬바르는 가비리아를 제거하려고 보고따-깔리 노선을 운항하게 될 - 운항했을 - 여객기에 폭탄을 설치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가비리아는 그 비행기를 타지 않았다. 폭탄은 비행기가 이륙하고 나서 잠시 후 폭발했고, 부서진 비행기의 잔해가 - 폭탄 때문이 아니라 충격 때문에 죽은 것처럼 보이는 탑승객 세 명을 포함해 - 대통령 후보 갈란이 나무 연단에서 총알을 맞고 쓰러진 바로 그 소아차에 떨어졌다”(229). 가비리아가 비행기에 타지 않아 죽음을 면했지만 탑승객 107명과 추락 현장에 있던 민간인 3명이 사망했다. 같은 해 12월 6일에는 ‘행정보안국(DAS)’ 건물 앞에서 트럭을 폭파시켜 63명이 사망하고 600여 명이 부상당했다. “X 쇼핑센터에서 폭탄이 터져 열다섯 명이 사망”하고, “Z 쇼핑센터에서 폭탄이 터져 수많은 사람이 사망”했다. “폭탄이 누구에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특별한 시대”(230)였다.7)
이같은 폭력은 “싸구려 칼부림과 아무 데나 마구잡이로 쏘아대는 총질로 인한 폭력, 돈 때문에 싸구려 장사치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폭력이 아니라 소시민들의 작은 원한과 작은 복수를 유발하는 폭력, 대문자로 표기되는 정부, 카르텔, 군부, 정당에 속한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저지르는 폭력이다”. 보고따 사람들은 이같은 “폭력에 익숙해져 있었는데, 일부 이유는 각종 뉴스 채널과 신문이 전하는 폭력적인 이미지들이 놀랍게도 규칙적으로 우리에게 전달되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미지들 가운데는 “희생자의 탄생 연월일과 여전히 신선한 사망 연월일 위에 놓인 희생자의 흑백 얼굴”도 있고, 총알 세례를 받아 “깨진 유리조각, 붓으로 칠해 놓은 것 같은 마른 핏자국”(18)이 선명한 메르세데스 벤츠도 있다. 폭탄, 살인 사건, 저명인사들뿐만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화자의 기억은 여전히 공포의 고통으로 인해 과거에 못 박혀 있는 한 세대의 기억을 대변한다. 라라 보니야가 암살당했을 때 안또니오의 “나이는 열네 살”이고, 까노가 암살당했을 때는 “열여섯 살”이었으며, 갈란이 죽었을 때는 “열아홉 살이었고, 아직 투표를 한 적은 없었으나 이미 성인이었”(19)는데, 안또니오가 기억하는 이들 암살 사건은 그를 비롯해 수많은 콜롬비아 인의 트라우마가 오랜 폭력의 역사와 관련되어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폭력으로 인해 죽은 수많은 “소시민(gente pequeña)” 가운데는 리까르도 라베르데가 있다. 소설에서 리까르도가 살해된 원인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으나 맥락상 그가 과거에 마약 운반책으로 활동한 것과 관계가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실제로 콜롬비아에서 이같은 폭력을 행사한 사람은 마약 카르텔의 일원일 수도 있지만, 청부 살인자로 변한 평범한 소시민도 적지 않았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도 죄책감 없이 ‘악’을 실행할 수 있다는 ‘악의 평범성’(아렌트 2006, 349)이 드러난 예라고 할 수 있는데, 특정한 조건이 갖추어진다면, 그리고 윤리적·이성적인 사고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면 폭력은 복종에 의해 혹은 전도된 사명감에 의해 얼마든지 자발적으로 자행될 수 있다. 콜롬비아 인들은 사회를 ‘붉게’ 물들인 마약 테러, 그 테러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발생한 온갖 폭력에 익숙해져 있고, 미국 같은 나라의 도움을 받는 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폭력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도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도 않는 경향이 있는데, 이들 폭력은 등장인물들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침으로써 그들의 기억에 각인되고, 그들이 겪게 되는 트라우마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마약 테러의 기저에는 인간의 황금 욕망이 자리하고 있다.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고 주요 등장인물들에게 심각한 트라우마를 심어준 리까르도 라베르데는 황금 욕망의 대표적인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마약 밀매가 사람들을 유혹하는 이유는 마약의 원산지 가격과 소비자 가격의 차가 지나치게 커서 마약 밀매로 얻는 수익이 대단히 크기 때문이다. 평화봉사단원인 아내 엘레나가 활동하던 라 도라다8)에 정착한 리까르도는 코카인 운반책으로 활동하기 전에 마리화나를 운반해주고 돈을 번다.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콜롬비아 인들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활동하던 평화봉사단의 마이크 바비에리와 다른 자원봉사자들이 농부들에게 불법적인 기술(마리화나 재배 기술)을 가르쳐 준 덕분이다. “마이크는 10 내지 15 헥타르의 땅을 계약해 수확기마다 마리화나 400킬로그램을 생산”할 수 있었고, “마이크가 킬로그램 당 25달러 정도를 경작자들에게 지불”해 총 1만 달러어치를 구입하면, 리까르도는 목적지까지 운반해 보통은 “6만, 7만 달러를 벌어오고, 가끔은 더 많이 벌어”(185) 왔다. 리카르도는 이를 “뜻밖의 행운”이라고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자신이 “반드시 필요한 존재가 되었”(186)다고 생각했다는 데서 비극이 잉태한다. 리까르도는 마리화나를 운반하고 돌아오면서 “가짜로 보일 만큼 깨끗하고 번쩍거리는 달러 다발, 보드게임에서 사용하는 장난감 돈처럼 인쇄된 종이가 가득 찬 테니스 가방을 - 감청색 인조가죽에 퓨마 한 마리가 위로 튀어 오르는 문양이 새겨지고, 황금색 지퍼가 달린 - 들고 돌아왔”는데, “돈이 가방에만 가득 들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라켓 커버에도 가득 들어 있었”다. 그리고 “리까르도는 예전에 손수 짜놓은 장에 돈이 든 가방을 넣고 자물통을 채웠으며, 달러를 뻬소로 바꾸려고 한 달에 두 번씩 보고따로 갔다.” 그는 강과 맞닿아 있는 땅 6헥타르를 사서 수영장이 딸린 집(엘레나 빌라)을 짓고, 집에서 12미터 떨어진 곳에 “시멘트 벽이 집처럼 튼튼”한 헛간을 만들어 “장 세 개를 들여놓고는 고무 밴드로 잘 묶은 50달러와 100달러짜리 지폐 다발이 가득 담긴 밀폐된 봉지들을 보관한 뒤에 자물통을 채워 놓았다”(189).
등장인물들의 황금 욕망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마이크는 마리화나를 운반해 버는 돈이 코카인을 운반해 벌게 되는 “돈에 비하면 쌈짓돈에 불과하다”는 논리로 리까르도를 유혹한다. “세스나 한 대가, 승객들의 좌석을 떼어낸다면 벽돌형 제품9)을 가득 채운 캔버스 배낭 약 열두 개, 총 300킬로그램을 실을 수 있고, 그램 당 100달러라면, 단 한 번의 비행에서 3,000만 달러를 벌게 되고, 조종사는 그 작전에서 엄청난 위험을 겪고 대단히 중요한 결과를 도출하기 때문에 200만 달러를 챙길 수 있게”(208) 된다는 것이었다. 리까르도는 “딱 이번만 비행하고, 손을 떼겠다는 말을, 영원히 손을 떼겠다는 말을, 화물용 비행기 조종이든 승객용 비행기 조종이든, 재미로 하는 것 외의 모든 조종에서 손을 떼겠다는 말을, 자기 가족 이외의 모든 것에서 손을 떼겠다는 말을, 나이 30이 되기 전에 영원한 백만장자가 되겠다는 말을”(209) 한다. 하지만 그는 결국 미국에서 마약 운반 혐의로 체포되어 20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고, 엘레나는 남편이 부재하는 사이에 딸 마야를 남겨둔 채 미국으로 돌아가 버림으로써 마야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형기를 마친 리까르도가 콜롬비아로 돌아오자 엘레나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콜롬비아 행 비행기를 탔다가 죽고, 그 후 리까르도도 총을 맞고 죽는데, 이는 안또니오가 나중에 겪게 되는 트라우마의 원인이 된다.
2. 일상화된 폭력으로 인한 현실 ‘외면’
콜롬비아에서는 폭력적인 갈등에 관한 이야기가 잊히는 경향이 있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그 갈등이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게 된다. 다양한 유형의 ‘전쟁’이 끊임없이 존재하는데, 사면, 그리고 사면을 통한 전쟁의 종식은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상태로 남겨두고 오히려 대립을 재활성화하는 망각의 만성화 또는 일상화를 유발한다. 콜롬비아 정치사를 지배하는 ‘전쟁-사면-망각’의 주기는 ‘진실, 정의, 보상’의 메커니즘을 배제하고, 희생자들의 집단 기억이 그들 자신의 내밀한 공간에서 나올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Suárez Gómez 2011, 280-281). 이와 관련해 벨레스 렌돈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Vélez Rendón 2003, 34-45), 콜롬비아에서는 폭력 경험에 대처하고, 모범이 될 수 있는 사회적 기억을 만들기 위한 공식적이고 제도적인 수단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아마도 폭력의 양상이 너무 복잡하고 그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인데, 그로 인해 폭력의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해서 화해를 달성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고 사회 자체가 이같은 폭력의 일부를 야기했기 때문에 정의를 구현하는 것 또한 대단히 어렵다. 폭력에 대한 데이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폭력의 희생자에 대한 보상도 없고, 폭력을 저지른 무장단체가 자신의 범죄에 대해 자백하지 않으며, 인권을 침해하는 가해자들의 목록도 없기 때문에 ‘집단 기억상실증’이나 ‘망각 정책’에 관해 자주 언급된다. 다시 말해 만연한 ‘전쟁-사면-망각’의 악순환이 마약 밀매로 인한 갈등의 해결을 방해하고, 사람들이 폭력을 제대로 인식하지도 정의를 얻을 수도 없으며, 결과적으로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평화롭게 살기 위한 노력을 할 수도 없게 된다는 것이다.
바스께스는, 콜롬비아에서는 새로운 사회 문제, 새로운 정치적 스캔들, 새로운 위기가 발생함으로써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의 열쇠가 들어있는 과거를 바라보는 데 필요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게 되는데, 소설은 현재의 삶이 시간을 허용해주지 않는 그런 것들에 일정 시간 지속적으로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줄 수 있다고 밝히며, “기억하는 것은 항상 도덕적인 행위”인데, “장르로서의 소설은 망각에 저항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흥미를 끈다”(De Maeseneer and Vervaeke 2013, 210)고 말한다. 그는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을 통해 콜롬비아 인들의 집단 기억상실증, 즉 갈등으로 유발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갈등에 대한 정보를 망각 속에 남겨두는 문제를 문학적으로 지적함으로써 예술가의 “도덕적인 행위”를 창의적으로 수행한다.
망각은 기억의 억압, 선택적 기억, 외면, 침묵, 무관심, 무지(無知), 거짓 진술 등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안또니오와 마야가 나뽈레스 아시엔다에 갔을 때, 어느 경비병에게 뇌물을 주고 간신히 아시엔다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국가가 군인을 배치해 일반인의 아시엔다 출입을 통제하고 사진 촬영을 금지하고, 아시엔다 안에서도 빠블로 에스꼬바르의 옛 집에는 들어갈 수가 없게 조치한 것은 국가가 기억의 일부를 의식적으로 억압한다는 사실을, 즉 선택적 기억을 강요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국가에 의해 설정된 장벽은 안또니오가 트라우마의 퍼즐을 완성할 수 있는 조각들을 모을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처럼 억압되고 선택된 기억, 기억의 불일치 내지는 불연속성 때문에 등장인물들은 과거를 제대로 구성하지도, 논리적으로 표현하지도 못한다. 안또니오와 마야가 나뽈레스 아시엔다에서 보인 반응은 이를 증명한다.
우리는 자주 서로를 쳐다보았으나 감탄사나 군더더기 같은 짧은 말 이외의 말은 전혀 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우리가 보고 있던 모든 것이 각자에게 다른 기억과 다른 두려움을 유발했기 때문이었을 것이고, 다른 사람의 과거에 개입하는 것이 경솔하거나 아마도 분별없는 짓처럼 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236).
타자의 과거에 개입하는 것을 “경솔하거나 분별없는 짓”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타자를 배려하거나 사려가 깊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자발적인 침묵(말하지 않음)이나 비자발적인 침묵(말하지 못함)을 선택하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집단의식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등장인물들의 침묵은 이들이 개인과 집단의 복합적인 트라우마에 대한 불완전한 기억을 복원하고, 심리적 고통, 공포, 가족의 상실에서 오는 강렬한 감정을 완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소설에서는 질문하고 답하는 대화의 불가능성 또한 강조된다. 안또니오는 이 문제에 관해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그 세기에서 사람들의 입에 아주 많이 오르내린 대통령의 아들이었고, 그 자신도 한 번 이상 대통령 후보였”던 보수파 정치인 알바로 고메스(Alvaro Gómez)가 암살당했을 때, “무슨 이유로, 누가 그를 죽였을지는 아무도 묻지 못했는데, 왜냐하면 그런 질문은 내가 살던 도시에서는 더 이상 의미를 갖지 못했거나 갑작스런 충격에 대한 유일한 반응 방식으로, 딱히 대답을 기대하지 않은 수사학적 질문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18). “라베르데에 대한 범죄는 많은 경우 가운데 하나였는데, 그의 죽음에 대한 질문에 우리가 대답할 수 있는 호사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은 오만이거나 허세와 다름없는 것이었다”(54).
“그런데 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죽음을 당했냐니까?” 아버지가 물었다.
“몰라요.” 내가 말했다.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요.”
“뭔가를 했을 거다.” 아버지가 말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게 뭐 그리 중요하겠어요.” 어머니가 말했다.
“하긴 그래.” 아버지가 말했다. “이제 와서 그게 뭐 그리 중요하겠소.” (54)
위의 대화를 토대로 해석하자면, 보고따에서는 폭력이 항상 어디에서나 발생하고, 사람들이 폭력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폭력에 대해 걱정하거나 그 이유를 알아보는 것은 거의 무의미하다는 인식이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한다. 제 아무리 중요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에 관심이 없으면, 그것을 언급하는 것이 두려우면 진부한 것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이는 일상화된 폭력이 사람들의 의식을 마비시키기 때문에 문제 해결을 위한 조치가 적극적으로 취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부 등장인물은 ‘무관심’ 또는 ‘외면’이라는 방식에 의존한다. 안또니오가 자신의 불안감, 두려움, 트라우마의 원인을 찾아 치유하는 방편으로 리까르도의 과거사를 탐색하기 위해 리까르도가 세들어 살던 집을 찾아갔을 때 여주인 꼰수가 보인 반응 같은 것이다. 안또니오가 리까르도의 투옥에 관해 아는 것이 있는지 꼰수에게 묻자 그녀는 “나는 결코 알고 싶지 않았어요. [...] 눈으로 보지 않으면 가슴도 느끼지 않는 법이잖아요”(74)라고 말하며, 임차인의 과거에 대해 알고 싶지 않다고 한다. 여기서 꼰수의 외면은 타자의 삶에 엮이지 않기 위한 의도적인 무관심 또는 냉담과 동의어로 작용한다. 카페 빠사헤의 여직원은 자신이 근무하는 카페 앞 로사리오 광장에서 리까르도가 살해당했는데도 그 사건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진술(증언)한다. “누군가가 아주 최근에 일어난 범죄를 잊어버린다는 것이 가능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안또니오는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70). 여기서 그 여직원이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건망증 때문이라기보다는 중요한 사실을 외면하거나 무시하고 잊으려는 욕구 또는 의지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안또니오의 아내 아우라는 당시 보고따의 상황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확신하고, 안또니오가 두려워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 채 갈등 상황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다. 아우라가 아주 어렸을 때 보고따를 떠난 “아우라의 가족은 1994년 초, 빠블로 에스꼬바르가 살해당하고 몇 주가 지난 뒤에 보고따로 돌아왔다. 고난의 10년은 이미 끝나 있었고, 아우라는 여기서 살던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영원히 모른 채 살게 될 것”(35)라는 안또니오의 판단이 이를 증명한다.
등장인물들의 망각과 침묵은 콜롬비아 사람들이 갈등에서 파생된 죽음, 실종 등 중요한 문제에 대해 말하지 못하게 만들고, 그들이 진부하게 보일 정도로 일상화된 폭력에 익숙해져 있음을 시사한다. 소설은 갈등이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거나 외면하는 것이 문제에 대한 인식 부족을 유발함으로써 진정한 해결과 화해를 가로막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3. 기억과 증언
“삶은 한 사람이 살았던 것 자체가 아니라, 현재 그 사람이 기억하는 것이며, 그 삶을 이야기하기 위해 어떻게 기억하느냐 하는 것이다”(García Márquez 2002, 7).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은 바스께스가 콜롬비아의 복잡한 정치적·사회적·역사적 현실을 탐색하려는 예술가적 호기심과 자신의 기억을 완성해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어떤 것을 증언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충족하려는 노력의 일환인데, 이같은 자전적 기억은 결국 집단 기억을 형성하고, 그 집단 기억은 ‘기억의 정치’를 통해 공적인 공간에서 토론됨으로써 정의를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에서 기억하기의 매커니즘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자잘한 정보 또는 기억의 파편이 기억의 서사를 변경시킨다. 안또니오가 리까르도의 과거를 조사하는 동안 다양한 문서, 이미지, 진술(증언) 등 새로운 기억의 파편들이 발견될 때마다 이들을 이용해 리까르도의 과거를 새롭게 재구성함으로써 리까르도의 과거사와 안또니오 자신의 트라우마에 대한 생각이 변경되거나 확장된다. “우리가 살아온 것을 기억할 때 그 기억이 그동안 살아온 것을 어떤 방식으로 바꿀 수 있는지 모르겠으나, 리까르도 라베르데를 잘 기억하는 것이 내게는 긴급한 사안으로 바뀌어 있었다”(15)는 안또니오의 언술은 이를 암시하는데, 파편화된 기억을 소환해 복원하는 작업은 고통스럽지만 과거와 현재를 제대로 이해하고 안또니오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긴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사안이다.
각기 다른 등장인물과 관련된 여러 가지 서사가 동일한 사건에서 교차함으로써 이야기가 통시적이고 동시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소설의 첫 부분에 등장하는 하마의 총살에 관한 뉴스는 리까르도의 과거사에 통합되면서 여러 서사의 교차점이 된다. 하마의 죽음이 총격으로 인한 리까르도의 죽음과 별개인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그 총격의 공포가 되살아남으로써 안또니오는 자신의 심리적 고통의 원인을 찾고 자신의 고뇌를 종결시키기 위해 리까르도의 삶을 재건하게 된다. 안또니오가 이 기억을 자신이 겪은 고통스러운 경험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 위한 출발점 중 하나로 삼아 자신의 트라우마에 대한 개인적인 이야기에 통합하는 것이다. 하마의 죽음은 안또니오가 결코 온전하게 극복하지 못한 신체적·정신적 상흔을 되살리고, 그로 하여금 억압되거나 잊혀진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조사하게 함으로써 그가 자신의 심리적 고통의 진정한 기원을 이해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트라우마를 유발한 폭력에 대한 기억이 종종 그 폭력을 겪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피해자를 괴롭히거나, 갑작스럽게 일관성 없이 의식에 되살아남으로써 서사 능력과 기억의 균열을 유발한다. 등장인물들이 현재 느끼는 심리적 고통과 그 고통의 원인인 과거사를 연결하기 위해 구축하려고 시도하는 서사가 자주 단절된다. 안또니오가 자신들이 총격을 받게 된 원인, 자신의 신체적·정신적 불편함과 그 원인을 연결시킬 수 있는 지속적인 서사를 구축하기 어렵게 만드는 알 수 없는 정보나 설명할 수 없는 사건들로 인해 서사의 균열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안또니오가 진행하는 조사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완화할 수 있도록 과거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을 채우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다른 사람의 기억은 안또니오의 기억을 복원하는 데 사용되고, 따라서 등장인물들의 기억은 집단 기억을 반영하는 것이 된다(Ramírez 2015, 75).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에서 기억과 더불어 주목할 만한 것은 증언이다.
수아레스 고메스에 따르면(Suárez Gómez 2011, 279), 증언의 주요 목적은 “공식 정보에 가려져 침묵했던 대중의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증언의 정치적인 면모는 특정한 갈등에 개입하고, 갈등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데서 드러난다. 이런 식으로 억압받는 집단은 증인의 이야기(증언)를 통해 정의를 얻을 수 있다. 벨레스 렌돈(Vélez Rendón 2003, 32-33)은 증언이 자전적 기억을 체계화하고, 사회적 기억의 형성에 기여하는 것이고, 증언 문학10)은 과거로부터 배우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정치적 학습’이며, 망각에 대한 해독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마약 밀매에 반대하는 콜롬비아 사회의 개인 및 집단의 문제에 대한 증거로서 증언의 가치를 입증할 필요가 있는데,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은 폭력에 대한 문학적 증언이자 콜롬비아 소시민들이 그 폭력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기를 요청하는 역할을 한다. 바스께스는 콜롬비아에서 발생한 마약 테러의 과정과 결과, 그로 인한 트라우마를 조명하는 데 증언을 활용함으로서 콜롬비아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하고, 등장인물들의 증언은 훼손된 정의를 복구하는 데 기여한다.
이 소설에서 증언은 ‘망각의 정치’에 대항하는 수단으로 기능한다. 증언의 가치를 나타내는 첫 번째 표시는 자신의 기억에 대해 이야기하는 1인칭 화자에서 드러난다. 1인칭 화자의 증언은 주로 안또니오와 마야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그 이유는 두 사람 모두 폭력과 갈등으로 인해 자신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처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진실을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안또니오가 타인들의 무지와 무관심에 맞서 싸우면서 마약 테러의 문제를 더 선명하게 보여주고, 안또니오와 마야가 각자의 기억과 대화를 통해 서로 도우면서 리까르도의 삶에 관한 정보를 조명함으로써 갈등과 폭력이 콜롬비아 소시민에게 어떻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독자로 하여금 발견하게 하는 데서 증언의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화자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대화와 태도, 각종 문서와 이미지 같은 것 역시 증언의 가치를 높인다.
집단과 개인, 그리고 작가의 증언이 담긴 문학은 과거를 재구성하고, 집단 기억을 생성함으로써 폭력적인 과거를 제대로 성찰하고 청산하는 데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은 콜롬비아의 폭력 사태에 대한 역사적 사건을 이야기에 다성적·다층적으로 엮어 넣음으로써 집단 기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이같은 면이 이 소설에 저널리즘적 특성을 부여하면서 진실을 추구하기 때문에 소설 전체가 일종의 증언이라고 볼 수 있다.
4. 트라우마의 극복을 위한 노력
마약 카르텔의 폭력으로 파괴된 것들과 희생된 사람의 숫자뿐만 아니라 통제할 수 없는 온갖 ‘악의 힘’이 지닌 광기와 야만성 때문에 콜롬비아 사회가 공포에 휩싸이고 황폐해졌으며 사람들은 두려움과 트라우마를 경험했다. 폭력적인 과거에 대한 기억은 사람들에게 공포를 심어준다. 소음 하나가 들릴 때, 그림자 하나가 보일 때 느끼게 되는 공포, 미래에 대한 공포다. 공포가 영속적인 메아리처럼 사람들을 지배한다. 나중에, 악몽같은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였을 때조차도 공포와 그 흔적은 지워지지 않고, 결국에는 트라우마가 된다.
발라에브에 따르면(Balaev 2008, 150-159), 문학의 주제로서 트라우마는 특정한 진실을 밝히고,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기억 및 현실과 대면하게 하는 기능을 한다. 트라우마와 기억은 서사를 통해 개인의 경험을 상기하는 데 도움이 되고, 외상적 경험에 대해 쓰고 이야기하는 것은 치유의 길과 동등한 치료적 기능을 가진다. 비록 트라우마를 겪는 인물의 이야기가 단일하고 개인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그 인물은, 많은 경우에, 거대한 트라우마적 사건을 경험한 커다란 공동체를 대표한다. 실제로 소설의 주인공이 지닌 중요한 목적은 종종 특정 인종, 집단, 문화, 젠더가 집단적으로 엄청난 트라우마를 경험한 역사적 시기나 사건을 언급하는 것이다. 주인공은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이같은 방식으로 후손들이 ‘고통과 상실의 시대’에 관해 배우게 된다.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에서 안또니오가 “내 삶 전체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 전 불과 며칠 동안에 일어난 것을 얘기할 것인데, 이 이야기가, 동화들에서처럼, 이미 과거에 일어났지만 미래에도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아주 명징하게 인식하면서 얘기할 것”(15)이라고 말했다시피, 안또니오의 트라우마는 개인적인 것을 집단적인 것, 특정 세대와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증언으로 변환된다.
생전에 자신의 삶에 대해 안또니오에게 얘기한 적이 거의 없는 리까르도가 살해당하자 안또니오는 폭력에 대해 수많은 질문을 갖게 되는데, 그런 폭력적인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트라우마를 겪게 되고, 그의 삶이 왜곡된다. 흔히 트라우마는 종종 지연되고, 반복적이고, 통제할 수 없는 환청과 환각 같은 돌발적인 현상으로 나타나는데, 안또니오도 이같은 트라우마 증세를 겪는다.11)
두려움은 안또니오가 총상을 입은 뒤에 더디고 힘들게 회복하는 과정에서 그를 괴롭히는 주요 요소인데, 비정상적인 신체적·정신적 징후들까지 더해져서 자주 반복된다. 보고따에 밤이 도래하는 시각이면 그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기 시작해 그가 심근경색으로 죽을까 봐 걱정을 해서 의사 여러 명이 다양한 방법을 써서 안심을 시켜야 할 정도가 된다. 두려움이 그를 “산만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정도가 되고, “고글 뒤에 숨겨진 살인범들의 얼굴을 상상하고”, “갑작스럽게 피가 보”이는 환각과 “원한 맺힌 고막에서 엄청난 총성과 휘파람 소리가 들”(58)리는 환청에 시달린다. 뿐만 아니라 안또니오가 “길거리에서는 내가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있다는 명백한 확신이 나를 공격했”(57)다고 했다시피, 보고따의 열린 공간에서도 피해망상증에 이르게 되는 두려움을 느낀다.
나는 까예 14에 다시는 발을 들여놓지 않았는데, 당구장 출입은 말할 나위도 없다. [...] 그래서 나는 그 도시의 한 부분을 잃어버렸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 나는 내 도시의 한 부분을 도난당했다. [...] 나는 그 도시를 싫어하고, 도시에 두려움을 갖고, 도시에 의해 위협을 받는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세상이 닫힌 곳처럼 보이거나 내 삶이 벽으로 둘러싸인 것처럼 보였다.(66)
이렇듯 안또니오에게는 ‘광장공포증’과 더불어 ‘폐쇄공포증’까지 더해졌는데, 도시와 도시의 공간들에 대한 두려움, 피해망상증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상황에서 신체 기능의 이상, 통제되지 않는 반응의 문제를 통해 나타난다. 그는 절뚝거림, 현기증, 위장 장애같은 문제와 불면증, 악몽, 일상사에 대한 무관심, 수치심, 제어할 수 없이 울고 싶은 충동 등을 겪는다. 그는 “아무 때나 명확한 이유도 없이 구슬프게 울기 시작했다. 식탁에서건, 부모 또는 아우라 앞에서건, 친구들과의 모임에서건, 울음이 예고도 없이 터졌고, 병들어 있다는 느낌에 수치심까지 합쳐졌다”(59). 그는 아내가 임신하고 딸이 태어나는 기쁜 일이 생겼음에도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법학 교수로서 법의 기원에 관해 설명하려고 했을 때 명백한 이유도 없이 울어버림으로써 일상적인 업무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 또한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말로 표현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음으로써 무력감과 고립이 더욱 심화되고, 이는 아내와의 관계에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트라우마로 인해 유발된 장기간의 발기부전은 아내 아우라와의 관계에 악영향을 미치는데, 이같은 성기능 장애는 부부 사이의 의사소통 부재에 대한 은유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아우라는 트라우마로 인한 안또니오의 성기능 장애, 짜증, 또는 갑작스런 눈물, 심지어는 사교성 결여 등이 표출되는 일상생활을 몇 개월 동안 지켜본 뒤에 남편의 두려움을 합리화(정당화)할 방법을 찾기 위해 그와 마주한다. 아우라는 안또니오에게 “보고따는 전쟁 상태에 있는 도시가 아니”고, “총알이 떠다니는 곳도 아니고”, “우리 모두에게 똑같은 일이 일어나는 곳이 아니라”(61)고 말한다. 그러자 안또니오는 라우라에게 “당신은 아무 것도 모르고, 당신은 다른 곳에서 자랐”기 때문에 “우리 둘 사이에는 공통의 영역이 없고, 당신이 사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없고, 아무도 당신에게 그런 사실을 설명할 수 없고, 나도 당신에게 그런 사실을 설명할 수 없다”(61)고 생각한다. 아내가 폭력으로 인한 공포를 체험하지 않아서 자신을 그와 동일시하거나 그의 문제를 깊이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타인의 고통과 트라우마를 깊이 공유하는 사람만이 효과적인 공감 능력을 지닌 청취자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데, “공감능력을 지닌 청취자의 부재, 더 과격하게 말해서 사안을 제대로 다룰 줄 아는 타자의 부재, 타자의 기억으로 인한 고통을 들어줌으로써 그 기억의 실재성을 긍정하고 인정하는 타자의 부재는 이야기의 효과를 없애버린다”(Laub 1992, 68). 따라서 적절한 청취자나 공감능력을 지닌 대화자가 없는 상태의 안또니오와 그의 증상에 대한 이야기는 본제에서 벗어나 주변만 맴도는 결과를 초래한다.
1971년에 태어나 ‘대 마약 전쟁’ 시기를 살아간 마야의 기억은 당시 사람들이 폭력으로 인해 느낀 두려움과 공포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보여준다.
“와야 할 사람이 오지 않으면 다들 걱정을 하고. 자신이 잘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가장 가까운 곳 어디에 공중전화가 있는지 알아야 하고. 공중전화가 없으면 어느 집에서 전화를 빌려 쓸 수 있을 것인지 알아서 그 집 문을 두드려야 하고. 우리는, 우리와 가까운 사람들이 죽을 가능성에 매달려 살고, 우리와 가까운 사람들이 우리가 죽은 자들 사이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그들을 안심시키는 데 매달려 살아야 했죠, 우리는 각자의 집 안에서 살았어요.”(230)
마약 테러가 사춘기 시절의 마야에게 유발한 두려움은 “뱃속에서 일어나던 증세, 가끔 일어나는 현기증, 짜증”(230)과 동의어다. 마야에 따르면, “마리화나 봉지가 가득 차 있는 비행기들과 함께 태어난 세대 사람들, 대 마약 전쟁과 함께 태어나 나중에 그 전쟁의 결과를 알았던 세대의 사람들” (216-217)은 그 전쟁 역시 자신들을 상대로 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았거나 “아니면, 적어도 그걸 인정”한다. “의심할 여지가 없”(216)었기 때문이다. 여러 공공장소에서 폭탄이 터지면 사람들은 그것을 “사고”라고 여기면서 “사고라는 게 운 나쁜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229)이라고 치부한다. 온갖 ‘사고’와 폭력이 유발한 두려움과 불확실성은 마야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정립하고, 새로운 자세로 세상과 접해야 한다는 생각을 심어주면서도 동시에 트라우마의 원인 중 하나가 된다. 그녀는 비행기 사고와 총격으로 갑작스럽게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음으로써 정체성에 혼란이 생기고, 트라우마를 겪게 되었기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을 재건하고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과거를 복원할 필요가 있었다.
마야는 “보고따에서는 채 몇 시간도 견딜 수가 없”(102)을 정도로 보고따가 싫었기 때문에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라 도라다의 집으로 돌아가서 10여 년 동안 농장을 돌보며 왜곡된 과거를 바로잡기 위해 가족, 특히 “아버지의 삶을 재구성하고, 아버지가 누구였는지 알아보는”(108) 작업을 시작한다. 그녀는 안또니오가 리까르도와 마지막으로 접촉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안또니오를 자기 집으로 오게 한다. 안또니오는 마야의 고리버들 상자에 담긴 라베르데 가족의 기록(편지, 신문 스크랩, 잡지, 사진, 카세트테이프 등)을 보고, 그녀와 함께 리까르도 뿐만 아니라 과거를 기억하고 정보를 교환하는 데 전념한다. 라베르데 가족의 ‘기록 보관소’라고 할 수 있는 고리버들 상자는 마야에게 부모를 잃은 슬픔과 트라우마를 강화시킬 수 있지만, 이런 심리적 문제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 또 다른 자원의 역할을 한다. 특히 비행기 블랙박스의 소리를 녹음한 카세트테이프의 경우는 마야가 반복해서 들음으로써 트라우마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되지만, 역설적으로 트라우마를 치유하게 되는 계기도 된다. 블랙박스 녹음이 말해질 수 없는 사건들과 알려지지 않은 데이터를 복원하고, 억압된 심리적 고통으로 인한 공백을 채우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고리버들 상자는 마야의 가족사에 대한 증언을 담고 있기 때문에 증언의 가치를 강화하는 보조 수단의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추락하는 비행기처럼 삶이 무너진 마야의 가족사에 대한 다양한 증거를 담고 있기 때문에 사고 비행기의 블랙박스와 유사한 기능을 한다.
마야와 안또니오는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자신들이 보고따에서 경험한 폭력과 공포에 관한 이야기와 자신들의 사춘기에 관한 대화를 함으로써 공유된 과거를 재구성한다.
나는 말을 하기 시작해 리까르도 라베르데에 관해 내가 알고 있던 모든 것과 내가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 내가 기억하고 있던 모든 것과 잊어 버렸다고 두려워하던 것, 라베르데가 내게 얘기해 준 모든 것과 그가 죽은 뒤에 내가 조사한 모든 것 또한 마야에게 얘기했고, 우리는 [...] 후끈한 밤의 적막을 말로 채우면서, 하지만 고백성사를 하는 사제와 죄인처럼 서로를 결코 쳐다보지 않은 채, 그런 식으로 첫새벽이 될 때까지 머물렀다.(125)
여기서 말하는 “종교적 고백(고백성사)의 은유는 희생 제물의 죽음과 부활이 이루어지는 시기가 지닌 상징성과 부합한다. 이 은유는 두 사람의 파편화된 정체성 혹은 리까르도의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것으로, 이런 재구성을 통해 두 사람은 트라우마로부터 회복될 수 있게 된다”(Gardeazábal Bravo 2002, 81).
대화는 안또니오와 마야의 트라우마 회복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두 사람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적합한 대화 상대, 다시 말해 공감능력을 지닌 청취자를 만난 덕분에 두 사람의 이야기가 의미를 지니게 된다. 아우라의 경우는 가장 폭력적인 시기에 보고따에서 성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안또니오의 두려움과 집착을 이해하지 못한 반면에 마야는 폭력적인 세상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것을 잘 이해하고, 따라서 안또니오와 마야의 대화는 그들의 트라우마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 두 사람은 대화를 통해 기억을 공유함으로써 유대감을 느끼는데, 특히 자신들이 유년 시절 같은 시기에 나뽈레스 아시엔다를 방문했던 기억을 공유하면서는 유대감이 한층 강화된다.
아마도 우리를 놀라게 만든 것은 [...] 갑자기 우리를 결합한 유대감, 예상도 할 수 없었고 특히 정당화될 수조차 없었던 유대감이었을 것이다. 우리 두 사람은 동일한 시기에 이곳에 왔었고, 이곳은 두 사람에게 동일한 사안들에 대한 상징이었다.(235)
빠블로 에스꼬바르와 마약 밀매 사이의 연관성이나 부정적인 면모를 모르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에게 나뽈레스 아시엔다가 ‘꿈의 장소’였을 때 어린 안또니오와 마야가 그곳을 방문했던 것이다. 아시엔다는 두 사람에게 일종의 잃어버린 에덴을 의미했는데, 이들이 그곳을 다시 방문한 것은 유년 시절 추억이 깃든 장소로의 복귀이자 재기억의 과정으로써, 이들이 통과할 필요가 있는 트라우마 치유 과정의 한 부분이다. 두 사람은 이전 세대가 경험한 콜롬비아를 새롭게 되짚어 보면서 마약 거래와 그로 인한 폭력이 당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개인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한 사회를 강타한 무자비한 폭력과 집단적 공포가 어느 정도인지 인식(이해)함으로써 자신들 겪고 있던 트라우마를 상당 부분 해소한다.
아시엔다에서 돌아온 안또니오와 마야는 섹스를 통해 치유적 관계를 완성하게 되는데, 이는 이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교환하는 과정에서 각자 상대의 트라우마에 대한 증인,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자신들의 노력에 대한 증인이 되어 이야기를 성찰하고 이야기에 반영된 자신들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방식이다(Gardeazábal Bravo 2002, 81). 특히 안또니오의 발기부전이 마야를 통해 치유되었다는 것은 안또니오가 트라우마를 거의 극복했다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트라우마의 극복 과정에서 마야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안또니오가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마지막 단계는 일상과의 재회다. 하지만 보고따의 집은 텅 비어 있고, 아내도 딸도 그를 기다리지 않는다.
이제 우리가 어디로 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당신과 내가, 그러니까, 당신과 내가 어디로 갈 수 있을지,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뒤로 무엇이 계속될지 모르겠어요. 나는 [...] 완전히 지쳐 버렸어요.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나를 용서해 줘요, 안또니오, 하지만 난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고, 이건 아이한테도 온당하지 않아요. (257)
안또니오의 트라우마는 콜롬비아의 위기에 대한 은유로 볼 수 있는데, 아내와 딸이 그의 곁을 떠남으로써 그가 자신의 트라우마를 온전하게 치유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콜롬비아가 겪은 문제의 원인이 하나가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Rojas 2018, 322).
60여 년 동안 콜롬비아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연속적인 상속과 반복을 통해 이루어진 마약 전쟁의 폭력과 관련된 트라우마의 역사적 면모를 보여주는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은 기억과 트라우마, 그리고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이 상호 간의 공감을 통해 트라우마를 점진적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이 소설은 마약과의 전쟁으로 인한 폭력이나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사람들 사이에, 그리고 더 나아가 등장인물들과 독자들 사이에 ‘공감의 다리’를 구축하는 역할을 한다.
Ⅲ. 결론: ‘추락’ 방지를 위한 문학적 제언
바스께스가 “소설은 역사를 성찰하기 위한 도구”(Vásquez 2016, 145)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시피, 그의 소설들은 역사적·비극적인 폭력, 갈등, 죄책감, 뜻밖의 불운, 공포, 두려움, 음모, 배신, 악 등 사회와 인간의 어두운 측면을 성찰한다.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은, 작가 자신도 밝혔다시피, ‘마약 소설’이 아니다. 마약 거래 자체는 이 소설의 희미한 배경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는 마약 거래의 가장 내밀한 매커니즘을 회고적으로 탐사해 실제 사건과 허구적인 이야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직조함으로써 콜롬비아의 폭력적인 마약 밀매, 폭력이 남긴 상처, 과거에 대한 기억과 두려움이 전체 세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준다. 소설의 중심축은 개인적이고 실존적인 탐구를 통해 주변 환경과 마주하는 일부 등장인물의 경험으로 구성되는데, 이야기가 개인의 차원을 넘어 여전히 공포의 파편에 의해 시달리고 현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회 전체에 투영된다.
노르웨이의 사회학자 요한 갈퉁에 따르면(Galtung 1990, 292), 폭력이란 인간의 욕구와 필요의 충족을 잠재적으로 가능한 수준보다 낮추는 것으로, 인간의 기본적인 필요와 삶에 대한 모욕적인 행위다. 특정 인간에게 폭력이 가해지지 않았더라면 실현이 가능했을 삶보다 질이 낮은 삶을 강제하는 행위가 바로 폭력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삶의 질을 낮추는 폭력을 줄이는 방법은 인간의 욕망과 삶이 어떤 식으로든 폭력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현대의 물질문명과 인간의 경쟁의식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폭력을 거부하고 순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이 필요한데, 문학 예술이 이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은 통제할 수 없거나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폭력 및 폭력적인 사회 환경과 개인들 간의 상호 작용에 관해 바스께스가 어떤 식으로 상상하고 문학화했는지 보여준다. 그는 등장인물들의 운명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사회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인 것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암시함으로써 등장인물들이 겪게 되는 트라우마의 원인 또는 폭력에 대한 일반적인 이론을 문학적으로 적용해 미래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어둡고 부패한 시대를 살아간 인간 군상의 모습을 문학적으로 탐구하고, 궁극적으로 “인간은 결국 주어진 환경과 시대의 ‘노예’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는 것이다.
현재의 상황에서는 이같은 질문에 대한 정답을 도출하는 것도, 콜롬비아 사회가 빠르게, 아주 긍정적으로 변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자신의 현재와 정체성을 만들면서 반복되는 과거에 대해 제대로 알고, 이같은 과거가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는, 더 이상의 ‘추락’은 없어야 한다는 희망을 품고 있는 콜롬비아의 새로운 세대 독자(작가,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세상에 만연한 폭력을 최대한 줄이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본고가 콜롬비아의 마약 폭력에 대한 ‘또 다른 형식의 증언’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Acknowledgments
이 논문은 2022년도 한국외국어대학교 학술연구비를 지원받아 수행된 연구임.또한 이 논문은 2019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19S1A6A3A02058027).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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