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itute of Iberoamerican Studies
[ Article ]
iberoamerica - Vol. 27, No. 1, pp.105-136
ISSN: 1229-9111 (Print)
Print publication date 30 Jun 2025
Received 15 May 2025 Revised 10 Jun 2025 Accepted 11 Jun 2025
DOI: https://doi.org/10.19058/iberoamerica.2025.6.27.1.105

레온-포르티야의 톨테카요틀에 대한 소고

이종득**
**덕성여자대학교 스페인어전공 교수. leejong@duksung.ac.kr
A Reflection on León-Portilla’s Concept of Toltecáyotl
Lee, Jong-Deuk**

초록

톨테카 문명은 지리·신화·문화적 측면에서, 테오티우아칸은 물론 치치메카와도 유기적인 연속성을 지닌다. 종족·언어적 차원에서 테오티우아칸과 톨테카 간에는 상당 수준의 연계성이 확인되며, 치치메카 시기에는 이 관계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레온-포르티야가 제시한 톨테카요틀 개념에는 나우아틀라카의 역사 인식이 내재해 있고, 톨테카와 메쉬카 간의 신화·종교·문화적 연계성이 중심을 이룬다. 이로 인해 치치메카 시기의 지역적 다양성과 이질성이 상당 부분 배제되어 있다. 톨테카요틀 개념은 특정 문명지의 이상적인 전통이 아니라, 시기와 지역별로 이상화된 문명지들의 전통까지 포괄하는 역사·문화 흐름의 유기체적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Abstract

The Toltec civilization exhibits an organic continuity not only with Teotihuacan but also with the Chichimeca in terms of geography, mythology, and culture. From an ethno-linguistic perspective, a considerable degree of connection can be observed between Teotihuacan and the Toltecs, although this relationship was severely disrupted during the Chichimeca period. The concept of Toltecáyotl as proposed by León-Portilla embeds a Nahuatlaca historical consciousness and centers on the mythological, religious, and cultural continuity between the Toltecs and the Mexica. As a result, the regional diversity and heterogeneity characteristic of the Chichimeca period are largely excluded. Rather than being understood as the idealized tradition of a specific civilization, Toltecáyotl should be interpreted as an organic historical and cultural flow encompassing the traditions of various civilizations idealized across different periods and regions.

Keywords:

León-Portilla, Nahuatlaca, Toltecáyotl, Teotihuacan, Toltec, Chichimeca

키워드:

레온-포르티야, 나우아틀라카, 톨테카요틀, 테오티우아칸, 톨테카, 치치메카

Ⅰ. 들어가는 말

나우아틀 문화권은 7개 나우아(nahua) 종족을 기반으로 지리·언어적 경계가 설정되고, 이 지역의 다양한 신화, 사상, 예술 등의 전통은 톨테카요틀(toltecáyotl)을 중심으로 통합되는 역사·문화 공동체로 이해된다. 이런 개념의 확립에 크게 기여한 초기 연구자는 가리바이(Ángel María Garibay Kintana, 1892~1967)와 레온-포르티야(Miguel León-Portilla, 1926~2019)였다. 특히 톨란 쉬코코티틀란(Tollan Xicocotitlan)을 톨란의 기원지로 규정한 레온-포르티야의 톨테카요틀 개념은, 오늘날까지도 나우아틀 문화권 연구의 기본 전제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1)

톨테카요틀의 기원지가 툴라 그란데로 공식화된 것은, 1941년에 개최된 제1차 멕시코 인류학회 원탁회의(Primera Mesa Redonda de la Sociedad Mexicana de Antropología, 이하 ‘제1차 원탁회의’)에서였다. 그전까지는 테오티우아칸(Teotihuacán)과 툴라 그란데가 혼용되어 기원지로 언급되었다. ‘제1차 원탁회의’ 이후, 이와 관련된 논쟁은 학계에서 장기간 표면화되지 않았다.

1960년대 초부터 소디(Sodi 1962, 62-64)는 툴라 그란데에서 발굴된 유적의 규모와 유물이 다양한 문헌에 묘사된 톨테카요틀의 화려함과 상응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나아가, 톨테카요틀의 기원지가 툴라 그란데가 아니라 테오티우아칸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1980년대 중반부터는 플로레스카노(Florescano 2004, 73)가 톨테카요틀의 기원지를 테오티우아칸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필자는 치치메카와 메쉬카가 예찬한 톨란이 ‘톨란 쉬코코티틀란’이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는, 현재까지 수집된 문헌과 나우아틀 시를 통해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테오티우아칸이 별개의 시기에 존재한 독립된 문명지처럼 간주되어, 나우아틀 문화권에서 배제되었다는 점에 있다. 이를 주도한 대표적인 연구자가 레온-포르티야였다. 이런 경향은 고고학에도 반영되어, 테오티우아칸과 툴라 치코(650~900) 사이에 직접적인 연속성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나타났다(Cobean 1995, 156).

본 연구에서 필자가 제기하는 핵심 쟁점은 레온-포르티야가 충분히 주목하지 않았던, 테오티우아칸과 톨테카 간의 신화·문화적 연속성에 관한 문제이다. 테오티우아칸은 지리적으로 멕시코 분지에 위치하며, 이곳에서 출토된 유적과 유물, 그리고 다채로운 벽화들은 톨테카는 물론 치치메카와 메쉬카에 이르기까지 신화·문화적 층위에서 유기적인 연속성을 보여준다. 두 번째로 제기하는 쟁점은, 레온-포르티야가 제시한 톨테카요틀 개념이 과연 나우아틀 문화권의 심층 구조이자 인식론적 틀로 기능하며, 나아가 지역별로 다양한 신화·종교와 예술 등을 하나의 통합된 전통으로 환원할 수 있는 담론 구조인가 하는 점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본 연구가 기획되었다.

먼저, 나우아틀 문화권의 지리·언어적 경계에 영향을 준 나우아틀라카(nahuatlaca) 개념과 그 문화적 특징을 집약한 톨테카요틀 개념의 형성 과정, 그리고 그 문제점을 검토했다. 이어, 나우아틀어 사용 집단이 처음 등장한 톨테카 시기를 중심으로 테오티우아칸과 치치메카 시기의 종족·언어 관계를 고찰했다. 또한, 나우아틀 문화권의 핵심 사상인 ‘태양 신화’와 케살코아틀을 중심으로 신화·문화적 연속성을 3개 시기로 나누어 비교·분석했다. 태양 신화 구조의 변화는 토착 전통과 이주민 전통 간의 관계에 기초한 ‘심층-표층’ 모델을 통해 해석했고, 이를 바탕으로 톨테카요틀 개념을 새로운 시각에서 재규명하고자 했다.2)

본 연구는 식민 초기 연대기와 나우아틀 시를 주요 사료로 활용했다. 특히 기존 연구에서 오랫동안 외면받아 온 가리바이의 편집본 『메쉬카 신들의 계보와 역사 Teogonía e historia de los mexicanos』의 내용을 시기와 지역별로 분류하고, 다른 연대기들과 비교하며 분석에 활용했다.3) 『멕시코 시가집 Cantares mexicanos』을 비롯한 다양한 출처의 나우아틀 시 역시, 연대기의 내용을 보완하고 검증하는 1차 사료로 활용했다.4)


Ⅱ. 나우아틀라카 전통 개념과 문제점

나우아틀 문화권의 언어·지리적 경계를 설정하고 그 신화·문화적 특성을 연구한 초기 연구자는 가리바이와 레온-포르티야였다. 먼저 가리바이(Garibay 1992, 275-277)는 나우아틀어 사용 지역을 중심으로 나우아틀 문화권을 설정하고 그 기원을 툴라 그란데에 두었다. 이 과정에서 가리바이는 나우아틀라카의 전통 개념을 상당 부분 활용했다. 식민 초기 연대기에서 나우아틀라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문헌은 『라미레스 고문서 Códice Ramírez』이다. 이 문헌에 따르면, 치코모스톡에서 출발해 멕시코 분지 안팎에 도착한 7개 종족(xochimilca, chalca, tepaneca, culhua, tlalhuica, tlaxcalteca, mexica)은 나우아틀라카, 토착 정착민은 치치메카(chichimeca)였다(Orozco(ed.) 1979, 17-24).5) 사아군(Sahagún 1985, 613) 또한 7개 나우아 종족을 하나의 집단으로 분류하여, 나우아틀라카 개념의 형성에 일조했다.6) 그 결과, 멕시코 분지와 틀라스칼라-푸에블라 지역의 다양한 종족들은 ‘야만과 문명’의 이분법적 틀 속에서 단순 분류되었고, 7개 나우아 종족은 동일한 언어·종족 정체성을 공유하며 ‘하나의 문화권’을 형성했다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되었다.

나우아틀라카 개념에서 종족의 기원은 820년으로 설정되었고 테오티우아칸과 톨테카의 역사는 배제되었다(Durán 1995, 61). 치치메카 시기(1150~1431)의 6개 나우아 종족의 초기 역사는 메쉬카 시대를 여는 예비단계로 재구성되었다. 특이한 점은 이런 나우아틀라카 개념이 치치메카 시기는 물론이고, 테노츠티틀란의 삼각동맹국이었던 테스코코(Texcoco)와 틀라코판(Tlacopan)에서도 확인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실 나우아틀라카 개념은, 4대 왕 이스코아틀(Itzcóatl)과 5대 왕 목테수마 일루이카미나(Moctezuma Iluicamina) 시기의 역사·종교 개혁 이후에 형성된 매쉬카 중심의 왜곡된 역사 인식이었다. 7개 종족을 동일 근원의 신화 공동체로 재구성하려는 시도는, 8대 왕 아우이소틀(Ahuitzotl)과 9대 왕 목테수마 쇼코요신(Moctezuma Xocoyotzin) 시기의 군국주의 이념과 맞물리며 절정에 이르렀다.7) 이로 인해 틀라스칼라-푸에블라 지역과 치남파스 지역의 전통 역사는 물론, 아콜우아(acolhua)와 테파네카(tepaneca)의 초기 역사까지 주변화되거나 은폐되는 폐해가 발생했다.8)


Ⅲ. 나우아 종족과 나우아틀라카 문화권의 형성

나우아틀어를 사용했던 톨테카-치치메카(tolteca-chichimeca)가 현재 나우아틀 문화권에 처음 등장한 때는 툴라 치코(Tula Chico, 650~900) 시기였다9): “1-집(1-calli) 해에 톨테카 왕이 사망했다/ 그의 이름은 믹스코아마사신(Mixcoamazatzin)이다/ 최초 도시국가를 세웠다”(Felciano(ed.) 1992a, 7). 톨테카-치치메카는 우아스테카 지역에서 남하한 새로운 이주 집단이었다. 당시는 북부 지역에서 남하한 새로운 이주민과 기존 정착민이 뒤섞이면서, 정치·문화의 중심이 테오티우아칸에서 틀라스칼라-푸에블라 지역으로 이동한 전환기였다.

당시 주요 종족의 구성은 삼각동맹국(Tula, Culhuacán, Otumba)의 구성을 통해 알 수 있다(Chimalpain 1991, 7). 이를 종족별로 분류하면, 톨테카-치치메카(우아스테카)와 올메카-쉬칼란카(노노알카), 그리고 오토미였다. 다시 말해, 오랜 토착 종족인 오토미를 비롯해 테오티우아칸의 전통을 계승한 올메카-쉬칼란카, 그리고 새롭게 남하한 톨테카-치치메카가 주도권을 놓고 각축하던 시기였다.10)

특히 올메카-쉬칼란카는 툴라 치코는 물론 툴라 그란데(900~1150)까지도 톨테카-치치메카와 공존했다. 이는 케살코아틀이 테스카틀리포카와 갈등 끝에 툴라를 떠날 때의 상황을 노래한 시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나는 노노우알코 출신이지/ [...]/ 당신이 갈 곳은 틀라팔라(Tlapala)/ [...]/ 그곳은 당신이 쉴 수 있는 곳/ [...]/ 당신을 쉬칼라카(Xicalaca, 원문 표기)와 사칸코(Zacanco)로 가라 했지”(CMG. 1.1).11) 이처럼 올메카-쉬칼란카(노노알카)는 툴라 그란데 시기까지도 톨테카-치치메카와 공존했다. 이런 사실은 주류 종족이 변화했을 뿐, 테오티우아칸과 툴라 그란데 사이에 종족·문화적 연속성이 단절되지 않았음을 뒷받침한다. 따라서 툴라 그란데 시기를 단순히 톨테카-치치메카 중심으로 축소하고, 테오티우아칸 전통과 단절된 새로운 문화 중심지로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900년경에 툴라 치코에서 급격한 정치 변동이 발생했다. 툴라 치코가 갑작스럽게 버려지고, 1.5km 떨어진 곳에 툴라 그란데가 새롭게 건립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신전의 모습은 툴라의 영광을 회고하는 시에서 엿볼 수 있다: “툴라에는 나무로 된 집 한 채 있다/ 지금은 뱀 모양의 석주만 늘어서 있을 뿐”(CMG. 1.1). 이곳은 툴라 그란데의 ‘사제-왕 케살코아틀’이 거주했던 신전이다. 레온-포르티야는 이 툴라 그란데를 톨테카요틀의 기원지로 규정했다.

이 시기에 이주 집단인 톨테카-치치메카가 새로운 정치 주류로 부상했고 케살코아틀은 툴라 그란데에서 왕위에 올랐다: “케살코아틀이 툴란신코(Tollanzinco)에 도착했다/ [...]/ 쿠에스틀란(Cuextlan)에서 왔다/ [...]/ 톨테카는 케살코아틀을 데려와 툴라의 왕으로 삼았다”(Feliciano(ed.) 1992a, 7). 이 기록은 툴라 치코의 몰락과 툴라 그란데의 등장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이다.

당시 서사시들을 분석해 보면, 케살코아틀과 형제들 간의 불화는 이주민과 토착민 간의 갈등을 반영한다. 케살코아틀의 부모인 믹스코아틀과 치말마는 각각 우아스테카 출신과 지역 토착민 출신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우아스테카 출신(Cuextlan)의 케살코아틀이 토착민들을 제압하고 왕위에 올랐다.12) 다시 말해 톨테카-치치메카가 툴라 그란데의 정치 주류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나우아틀라카 개념의 지리·언어적 경계가 구체화되고 그 실체가 형성된 것은 툴라 그란데 멸망(1150년경) 이후, 북서부 지역에서 다양한 치치메카가 남하하면서부터였다. 먼저, 숄로틀(Xólotl)이 이끈 치치메카가 도착했다(Ixtlilxóchitl 1985b, 14). 이어 1011년에는 미초아칸(Michoacán) 출신의 미초아케(michoaque) 3개 종족(tepaneca, otomí, acolhua)이 멕시코 분지 안팎에 정착했다. 이 3개 종족은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했다(Ixtlilxóchitl 1985b, 17).13) 레온-포르티야(León-Portilla 1967, 60)는 이 시기에 남하한 치치메카들이 파메(pame), 오토미(otomí), 마사우아(mazahua) 등의 언어를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했다.14)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들이 모두 북서부 치치메카 지역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지녔지만, 종족과 언어 면에서는 서로 다른 집단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우아틀라카 개념의 문헌들은 이들 모두를 동일한 나우아 종족으로 분류하고, 나우아틀어를 공통 언어로 사용했던 것처럼 서술했다.

아콜우아가 나우아틀어를 공식 언어로 채택한 것은 테초틀랄라신(Techotlalatzin) 왕 시기였다(Ixtlilxóchitl 1985b, 34).15) 문헌상 확인할 수는 없지만 테파네카 또한, 토착민들이 사용하던 나우아틀어에 동화되었다. 살토칸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멕시코 분지 안팎으로 흩어졌던 오토미는, 스페인 정복 시기까지도 고유 언어를 유지했다. 그 결과, 오토미는 나우아틀 문화권에서 배제되었다.

앞의 사실들은 나우아틀라카 개념이 전통 토착민의 문화 수준을 간과한 이주민 중심의 역사 서술임을 드러낸다.16) 당시 토착 정착민들은 다양한 치치메카들을 자신들의 언어로 흡수할 만큼, 톨테카 전통과 문화적 역량을 지니고 있었다. 이와 관련해 레온-포르티야(León-Portilla 1967, 80)는 치치메카가 나우아틀어뿐만 아니라, 토착민의 다양한 문화를 수용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멕시코 분지로 진입한 아콜우아는 정략결혼을 통해 톨테카 왕족과 혈통적 연계를 구축했다. 먼저 숄로틀 왕의 아들 노팔신(Nopaltzin)은 툴라의 정통 계승자인 포초틀(Póchotl)의 딸과 결혼했다(Ixtlilxóchitl 1985a, 422-423). 이후 숄로틀 왕은 쿨우아칸을 정복하고 툴라 마지막 왕의 손자인 아치토메틀(Achitómetl)을 왕으로 임명했다(Ixtlilxóchitl 1985a, 424). 이로 인해 톨테카 이주민이 많았던 쿨우아칸에서는 자신들이 톨테카의 직계 후손이라는 자긍심이 높았다.

틀라스칼라-푸에블라 지역의 경우, 치치메카의 정착 과정은 멕시코 분지와 달랐지만 결과적으론 유사한 양상을 보였다. 무엇보다 촐룰라에는 툴라 그란데 출신의 톨테카-치치메카 이주민이 많았다: “(Ce-Ácatl은) 떠났다/ 모든 마세우알레스(macehuales)를 데리고 툴라를 떠났다/ 그들 중 일부가 촐룰라에 남았다/ 촐룰라의 주민은 그들의 후손이다”(Garibay(ed.) 1973, 38). 당시 톨테카-치치메카는 촐룰라에 정착해 있던 올메카-쉬칼란카를 몰아내고, 새로운 주류 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북서부 지역에서 남하한 치치메카들이 톨테카-치치메카의 나우아틀어에 동화되고, 새로운 정치 주류로 부상했다.17)

이 시기에, 종족·언어적 측면에서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오랫동안 기존 전통을 유지해 온 올메카-쉬칼란카, 미스테카 등 다양한 종족들이 주변 지역으로 밀려나거나, 영향력이 급격히 약화되었다. 그 대신 새로운 이주민들을 중심으로 나우아틀 문화권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당시 치치메카들은 톨테카 전통을 수용했지만, 테오티우아칸과의 신화·문화적 연속성에 대한 인식은 희박했다. 이는 치치메카 시기의 톨테카요틀이 오직 툴라 그란데만을 지칭했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종족·언어적 분리 현상은 치치메카 시기부터 나타났지만, 신화·문화적인 측면에서 테오티우아칸과 톨테카 간의 실제 단절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Ⅳ. 레온-포르티야의 톨테카요틀

나우아틀라카의 전통 개념은 레온-포르티야가 제시한 톨테카요틀 개념과 결합하면서, 새로운 범주의 의미로 재탄생했다. 먼저, 레온-포르티야(León-Portilla 1991, 28)는 나우아 종족들이 케살코아틀 문화와 톨테카의 유산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이를 톨테카요틀이라 불렀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리고 ‘문명지’를 의미하는 톨란이 툴라 그란데임을 밝혀냈다. 그 결과, 기존 나우아틀라카 개념에서 배제되었던 톨테카가 재조명되었고, 나우아틀 문화권의 기원지로 재탄생했다. 나우아틀라카 개념은 톨테카의 톨테카요틀을 중심축으로, 신화, 우주관, 문화 등을 공유하는 ‘하나의 문화권’을 지칭하는 용어로 변모했다.

레온-포르티야가 사용한 톨테카요틀 용어와 그 의미는, 사아군의 초기본인 『마드리드 사본 Códice Matritense)』에서 차용된 개념이다. 이 문헌에 따르면, 판틀란(Pantlan)에 배를 타고 도착한 무리가 타모안찬에 정착했다. 일정 기간 머문 후, 그들 중 일부는 출발지로 돌아가면서 ‘톨테카요틀’을 가져갔다: “그들이 가져간 것은 ‘검고 붉은색’(필자 주: ‘고문서’, ‘지혜’ 등)/ 고문서와 그림들/ 모든 예술, 톨테카요틀을 가져갔다/ 피리로 부는 노래”(León-Portilla 2005, 32). 이 내용을 사아군의 후기본과 비교해 보면, 톨테카요틀은 타모안찬에 머물렀던 종족들, 즉 누에바 에스파냐 전역으로 퍼진 종족들(tolteca, nahua, olmeca, anahuaca, mixteca, touampohua, otomí)의 전통을 의미했다(Sahagún 1985, 611-614).18) 따라서 멕시코 분지를 중심으로 북부의 치치메카와 우아스테카, 남부의 미스테카, 멕시코 만 지역의 올메카-쉬칼란카가, 레온-포르티야가 제시한 톨테카요틀의 범주에서 배제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레온-포르티야는 사아군의 기록을 근거로, 테오티우아칸을 톨테카와 7개 나우아 종족의 범주에서 제외시켰다. 사아군(Sahagún 1985, 611)에 따르면, 톨테카와 7개 나우아 종족은 하나의 집단이었고, 이들이 잠시 머물렀던 테오티우아칸은 이들보다 앞선 ‘거인 문명’이었다.19) 원주민들의 전통 서술 방식에 따르면, 사아군의 서술 형태는 테오티우아칸과 톨테카 간의 시대 구분과 종족 차이를 드러낸 것이지, 양자 사이의 전통과 문화의 연속성을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온-포르티야는 톨테카요틀의 기원지가 툴라 그란데임을 들어, 테오티우아칸을 나우아틀 문화권에서 배제했다.

이 지점에서, 레온-포르티야가 톨테카요틀 개념을 정립했던 시기의 연구 과정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당시 그가 핵심 사료로 삼았던 것은 다음의 메쉬카 시였다: “사실, 많은 톨테카는/ 화가이자, 고문서를 제작하는 사람, 조각가/ [...]/ 깃털 공예와 도예의 장인이었다/ [...]/ 별들을 관찰해 이해했고/ 그 이름을 붙였다/ [...]/ 하늘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잘 알았다”(León-Portilla 1991, 28-29). 이 시에는 메쉬카가 톨테카의 톨테카요틀을 자신들의 시각에서 재해석하는 과정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레온-포르티야는 이를 근거로 톨테카요틀의 내용을 구체화하고, 시기적으로 앞선 사아군의 톨테카요틀과 이어 붙였다. 그리고 메쉬카가 자신들을 톨테카의 정통 계승자라 자처하며 톨테카요틀을 미화하고 예찬했던 후기 시들을 근거 삼아, 톨테카의 톨테카요틀 개념을 확립했다: “톨테카는 그림을 그렸지/ 그 고문서가 남아 있다/ 당신의 심장이 완전에 이르길/ 톨테카가 남긴 것들과 더불어, 나는 이곳에 살리라”(CML. XLIV); “톨테카요틀이 그려져 남아 있다. 나는 시인/ 나의 노래는 지상세계에 있으리라/ 이 노래로 인해 나는 기억되리라/ 나와 다른 당신들에게”(CML. L).20)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레온-포르티야의 톨테카요틀 개념이 메쉬카 후기에 재해석되고 재구성된 결과에 의존했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게다가 톨테카요틀 개념은 아샤야카틀(Axayácatl) 왕 시기부터 ‘꽃의 전쟁’과 군국주의 이념과 맞물리며 크게 변화했다. 당시 테노츠티틀란은 툴라와 동일시되었고, ‘케살코아틀 신화’에 등장하는 틀라팔란은 메쉬카 왕과 전사들이 사후에 가는 이상향으로 예찬되었다(예: CML. LI). 이런 측면을 고려하면 톨테카요틀 개념이 메쉬카의 국가주의 이념 틀에서 정치적 목적에 의해 재구성되었다는 하요브스키(Hajovsky 2015, 88)의 주장은 타당성이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레온-포르티야가 톨테카요틀 개념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치치메카 시기를 슬그머니 건너뛰었다는 점이다. 톨테카와 메쉬카 사이에는 280여년의 공백이 존재한다. 물론 레온-포르티야는 치치메카의 신화·종교 체계와 쿨우아칸의 톨테카 전통이 이 공백을 메우는 가교 역할을 했었던 것으로 여긴 것 같다. 그러나 그의 연구는 대부분 톨테카와 메쉬카 간의 연속성과 융합 관계에 집중되어 있다.


Ⅴ. 툴라 그란데의 실체: 태양 신화와 케살코아틀

레온-포르티야는 나우아틀라카 개념과 톨테카요틀의 범주에서 테오티우아칸을 배제했다. 그런데 톨테카요틀의 중심에 태양 신화 전통을 내세우는 모순된 태도를 드러냈다. 이는 사실상 1941년 ‘제1차 원탁회의’를 주도했던 히메네스 주장의 연장선에 있다. 당시 히메네스(Jiménez 1983, 130-134)는 테오티우아칸과 톨테카를 각각 고전기와 후고전기에 속하는 독립적인 문명으로 분류했다. 이후 레온-포르티야는 히메네스의 주장을 계승했고, 해당 개념의 정당성을 옹호하고 확산시키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톨테카의 태양 신화는 레온-포르티야가 제시한 톨테카요틀의 핵심 사상이며, 나우아틀 문화권의 우주관과 현세 구조, 그 구성 원리를 대표한다. 그런데 현재까지 수집된 톨테카 태양 신화의 수는 상당하고, 단일한 내용이 아니다. 이를 전통적인 시대 구분과 서술 방식에 따라 분류하면, 크게 두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톨테카 시기의 태양 신화를 제4태양으로 분류했고, 다른 하나는 제5태양으로 분류했다(Moreno 1967, 198). 전자에 속하는 신화는 세부 내용에 차이는 있지만, 전통적인 역사 서술 방식을 따르고 있다.21) 반면 후자에 속하는 신화들은 툴라 치코와 툴라 그란데 시기에 나타난 다양한 ‘변형태’와 ‘분화 형태’를 드러내며 당시 태양 신화의 구조적 특성을 보여준다.

본 연구에서는 후자의 3개 신화에 나타난 다양한 변형태를 시기별로 분류하고 그 특징을 분석했다.22) 먼저 ‘가리바이 편집본’에 실린 태양 신화는 전통 서사 구조에 가깝다. 이 신화에 따르면 홍수로 이전 세계가 붕괴된 후, 테스카틀리포카와 케살코아틀이 하늘을 들어 올려 새로운 세계를 창조했다: “테스카틀리포카와 케살코아틀은 거대한 나무로 변했다/ 테스카틀리포카는 테스카쿠아우이틀(tezcacuahuitl, ‘거울의 나무’)로 변했다/ 케살코아틀은 케살우에쇼틀(quetzalhuexotl)이라는 나무로 변했다”(Garibay(ed.) 1973, 32). 톨테카 이전 전통 신들인 테스카틀리포카와 케살코아틀이 현세 4방위를 창조했다. ‘거대한 나무’의 이미지는 테오티우아칸의 ‘우주나무’와 연결되어 있다.23) 현세를 유지하는 원리도 명확히 제시되어 있다: “(인간이) 전쟁을 해/ 태양에게 심장과 마실 피를 바쳐야 했다”(Garibay(ed.) 1973, 36). 모레노(Moreno 1967, 189)에 따르면 이 신화는 우주의 역동적인 힘을 ‘신들 간의 투쟁’으로 상징화시킨 최초의 신화이다. 이 신화는 톨테카 시기의 군국주의적인 특징을 드러내는 초기 신화이며 ‘꽃의 전쟁’과 ‘인신공양’의 신화적 기원도 포함하고 있다.

“쿠아우티틀란 연대기 Anales de Cuauhtitlan”에 수록된 태양 신화에는 지진과 기근으로 제5태양이 파괴될 것이라는 내용이 추가되어 있다(Feliciano(ed.) 1992a, 5). 현세 4방위 창조는 우아스테카 방식으로 변형되어 있다: “동쪽으로 가 그곳에서 화살을 쏘아라/ 북쪽으로도 화살을 쏘아라/ 남쪽으로도 화살을 쏘아라”(Feliciano(ed.) 1992a, 6). 이 신화에는 신의 ‘분화 형태’인 ‘사제-왕 케살코아틀(Ce Ácatl Topiltzin Quetzalcóatl, 이하 ‘사제-왕’)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사제-왕’은 치치메카와 메쉬카가 예찬한 톨테카요틀을 툴라 그란데에 구현한 ‘문화 영웅’이다. 로페스(López 1989, 133-142)는 이 ‘사제-왕’을 신의 대변자인 ‘인간-신’의 전형으로 해석했다.

마지막으로 “태양들의 전설”은 툴라 그란데 시기에 발생한 태양 신화 구조의 변형과 분화를 온전히 드러낸다. 먼저 정치 주류로 등장한 톨테카-치치메카는 태양 신화의 근원지를 테오티우아칸에서 찾았다: “(이 태양은) 툴라의 ‘케살코아틀-토필신’ 태양이다/ 이전에는 타모안찬의 나나우아틀(Nanáhuatl) 태양이라 불렸다”(Feliciano(ed.) 1992b, 121). 창조주는 톨테카의 토나카테쿠틀리(Tonacatecuhtli)이고, 오메테오틀(Ometeotl)의 전통적인 이원성은 새로운 변형태(Tonacatecuhtli/ Tonacacíhuatl)로 대체되었다. 틀랄록(Tláloc)은 분화 형태인 4명의 틀랄로케(Tlaloque)로 나타났다(Feliciano(ed.) 1992b, 121).24) 이런 분화 현상은 신화와 역사가 혼재된 믹스코아틀(Mixcóatl) 신화에서도 확인된다. 400명의 믹스코우아(Mixcohua, ‘북쪽의 전사’)가 믹스코아틀의 분화 형태로 등장했다(Feliciano(ed.) 1992b, 125),

앞의 분석을 종합해 보면 3개 태양 신화 모두, 툴라 시기에 새롭게 창조된 독립적인 신화가 아니다. 태양 신화 전통의 ‘수용-변형’의 역사·문화적 흐름에서 생성된 ‘하나’의 변형태들이다. 그 변형의 원리를 분석하면 독특한 특징이 나타난다. 토착 전통은 톨테카 신화 체계를 구성하는 심층 구조로 존속하고, 이 구조 안에서 톨테카-치치메카의 신화·종교와 문화 전통이 재구성되었다. 이 과정에서 토착 전통신과 사상은 새롭게 재해석되었고, 일부는 소멸되거나 이주민 전통의 새로운 특징이 덧붙여졌다. 이로 인해 툴라 그란데 시기부터 신화적 유기성을 상실해 기원을 특정하기 어려운 초기 신들이 적지 않게 나타났다.

레온-포르티야는 톨테카의 태양신화를 비교적 단일하고 종합적인 체계로 제시해 왔다. 하지만 그 실상은 단일하지 않고 주요 요소들은, 다양한 변형태와 분화 형태로 재구성되어 있다. 이는 톨테카-치치메카가 이전 태양 신화를 재해석한 흔적이고, 당시 톨테카요틀은 ‘재구성’된 새로운 변형태임을 말해준다. 따라서 레온-포르티야는 톨테카요틀 기원 연구를 톨테카 이전의 테오티우아칸까지도 확대했어야 했다.25)

다음으로 레온-포르티야가 톨테카요틀의 중심 사상으로 앞세운 것은 케살코아틀이다. 사실 케살코아틀은 고전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신이며, 그 기원은 현재 베라크루스 주 남부로 추정된다(Stresser-Péan 2016, 20). 그 전통적인 역할은 세상 창조와 우주 순환 등과 연계되어 있다. 멕시코 중앙고원 지역에서 케살코아틀의 존재가 처음 확인된 곳은 테오티우아칸이다. 이후 전환기(650-900)에 케살코아틀은 틀라스칼라-푸에블라 지역의 도시국가들을 신화·정치·문화적으로 통합하는 구심점 역할을 했다. 특히 케살코아틀 숭배의 중심지였던 촐룰라는 테오티우아칸 전통과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Krickeberg 1995, 297).

톨테카의 케살코아틀 또한 멕시코 중앙고원 지역의 전통 내에 속해 있다. 그러나 그 신화적 역할과 특징에 우아스테카 전통이 덧붙여져 있다. 에스피노사(Espinosa 2008, 119)에 따르면, 그 대표적인 예는 태양과 달을 천체에서 움직이게 하는 ‘바람 신(Ehécatl-Quetzalcóatl)’의 속성과, 금성의 이원성(아침별/ 저녁별, 낮/ 밤, 죽음/ 환생 등)이다. 우아스테카 출신의 ‘사제-왕’이 등장하고 톨테카-치치메카가 정치 주류로 급부상하면서 나타난 변화이다.

이 시기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케살코아틀의 분화 형태인 ‘사제-왕’의 출현이다. 신화·역사적 특성을 지닌 ‘사제-왕’은 케살코아틀의 정신과 가치를 지상세계에 구현한 이상형의 왕이다. 다시 말해, 치치메카와 메쉬카가 예찬한 톨테카요틀의 이상적 가치를 툴라 그란데에 실현한 ‘문화 영웅’이다. 이를 통해 레온-포르티야는 툴라 그란데를 이상화했고, 케살코아틀 중심의 역사로 환치시켰다.

이런 특징 또한 온전히 우아스테카만의 전통은 아니다. ‘사제-왕’ 전통의 근원은 이전 문명에서도 그 흔적을 일부 찾을 수 있다. 플로레스카노(Florescano 2004, 80-81)의 경우 테오티우아칸의 케살코아틀에서 정치권력과 왕위와 관련된 특징을 찾아냈다. 로페스 부자(父子)(López and López 1999, 16-17)는 전환기의 틀라스칼라-푸에블라 지역에서 테오티우아칸의 신권 체제가 군국주의 체제로 변환했다고 주장했다. 이를 고려하면 ‘사제-왕’ 형태의 존재 가능성은 충분해 보이지만, 문헌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다.

‘사제-왕’의 서사는 톨테카 시기를 다룬 모든 연대기에서 중심 주제이다.26) 특히 ‘사제-왕’과 테스카틀리포카 간의 갈등은 전통적인 이원신의 신화적 관계가 역사·정치·사회적으로 구현된 분화 형태이다. 이 구조에는 이원성 간의 대립과 갈등, 파괴와 새로운 창조로 이어지는 순환성이 내재해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케살코아틀 신화’이다. 이 신화에 따르면 ‘사제-왕’은 테스카틀리포카의 계략에 빠져 근친상간을 저질렀고, 죄책감에 툴라를 떠나 틀라팔란(Tlapallan)으로 가서 승천해 금성이 되었다: “여명에 나타나는 별이 되었다/ [...]/ 그래서 ‘여명의 신’이라 불렀다/ [...]/ 죽은 자의 세계(mictlan)에 있다가/ [...]/ 위대한 별(금성)로 나타났다”(Feliciano(ed.) 1992a, 11). ‘사제-왕’은 사후에 584일 주기의 4단계 변화를 통해 죽음과 환생을 반복하는 금성의 이원성을 지니게 되었다.27) 이 신화는 이후 메쉬카 시기에 ‘케살코아틀 귀환 신화’로 재해석되었다.

‘사제-왕’의 특성에는, 신앙심이 깊고 도덕적이며 금욕적인 인간형의 특징이 덧붙여져 있다. 이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해석을 제시한 연구자는 요한슨이다. 그에 따르면 ‘사제-왕’은 인간 존재의 불완전한 이원적인 본성을 지녔지만 이를 극복한 전형적인 인간 모델이다(Johansson 2005, 191). 이 해석은 톨테카요틀의 이상을 구현한 ‘문화 영웅’의 이미지와 상당히 부합된다.

‘사제-왕’과 관련해 다른 견해를 제시한 연구자도 있다. 1960년대 초, 소디(Sodi 1962, 61)는 ‘사제-왕’의 서사가 톨테카요틀의 이상적 가치를 구현한 영웅의 행적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1990년대 초에는 ‘사제-왕’의 이상화된 영웅상이 지역적 다양성을 간과했고, 후대에 재구성된 산물이라고 주장했다(Sodi 1993, 47). 소디의 연속적인 비판은 1990년대 초부터 다시 시작된 톨테카요틀 개념의 재논의에 새로운 문제의식과 방향을 제시했다.


Ⅵ. 나우아 종족과 태양 신화: 수용과 변형

툴라 멸망 이후, 새로 등장한 치치메카들은 톨테카 전통을 예찬하며 본받아야 할 최고 가치의 기준으로 삼았다. 이런 사실은, 틀라스칼라의 시코텐카틀(Xicohténcatl) 왕의 시에서 일부 확인할 수 있다: “방패를 들어라, 꽃 핀 물의 항아리/ [...]/ 너는 (틀라스칼테카의) 사령관, 너는 소중한 창조물/ 금과 은으로 장식된 톨테카 풍의 그림”(León-Portilla 2005, 273). ‘꽃의 전쟁’의 근원을 톨테카 전통에서 찾고 왕족의 품위와 의복 장식의 최고 기준 또한 톨테카 전통에서 찾고 있다. 이런 현상을 두고 레온-포르티야(León-Portilla 1967, 84)는 유럽의 게르만족이 지중해 문화를 흡수한 경우와 흡사하다고 평가했다.

레온-포르티야는 톨테카의 톨테카요틀이 치치메카 문화의 원형이었으며 당시 주류 문화를 형성했다는 주장을 오랫동안 해왔다. 이에 반발한 연구자는, 레온-포르티야의 견해를 오랫동안 지지해 주었던 로페스(Alfredo López Austin, 1936~2021)였다. 로페스(López 1994, 122)에 따르면, 톨테카요틀은 단일한 문화적 실체가 아니라 시대와 지역이 다른 여러 도시국가에서 각기 다르게 수용되고 재해석된 결과였다. 이처럼 로페스는, 톨테카요틀이 톨테카의 유일한 전유물이 아니며 시기와 지역이 다른 다양한 도시국가들에서도 나타나는 사상과 가치로 재규정했다.

사실 레온-포르티야의 연구는 역사·문화의 연속적인 맥락에서 상당히 이탈해 있었다. 연구의 범위 또한 대부분 멕시코 분지와 테노츠티틀란으로 집중되어 있었고, 틀라스칼라-푸에블라 지역의 치치메카에 대한 관심은 항상 뒤로 밀려 있었다. 다시 말해, 평생 그의 관심은 톨테카와 메쉬카 간의 관계에 머물러 있었다.

당시 치치메카 시기의 상황은 ‘가리바이 편집본’에 수록된 태양 신화에서 엿볼 수 있다. 먼저, 치치메카들은 툴라 그란데의 제5태양 신화를 수용해 자신들의 종족 기원과 정체성을 구축했다. 창조주는 톨테카 전통과 동일한 토나카테쿠틀리이다. 그런데 현세 4방위를 창조하는 역할은 기존 전통 신화와는 달리 창조주의 네 아들로 대체되어 있다(Garibay(ed.) 1973, 23-24). 이를 분석해 보면, 둘째와 셋째 아들은 각각 톨테카 전통의 테스카틀리포카와 케살코아틀이다. 반면에, 첫째 아들 ‘붉은 테스카틀리포카(Tlatlauhqui Tezcatlipoca)’는 변형태인 카마스틀레(Camaxtle)로 대체되고 우에호싱코(Huexotzinco)와 틀라스칼라의 종족 신으로 등장한다. 넷째 아들인 오미테쿠틀리(Omitecutli) 또한 2개의 변형태로 대체되어 있고, 그중 하나는 메쉬카의 우이실로포츠틀리이다. 게다가, 현세 창조의 주역이 케살코아틀과 우이실로포츠틀리로 변형되어 있다(Garibay(ed.) 1973, 25). 이 신화에는 치치메카와 메쉬카 시기에 재구성된 다양한 흔적이 남아 있다.

제5태양 신화에 나타나는 변형태는 틀라스칼라 신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태양이 창조되었으나 나흘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태양은 다른 신들에게 배척당한 존재였다/ 그는 문둥병에 걸려 가래톳이 많았기 때문이다”(Camargo 1892, 132). 제5태양 창조신화를 차용했지만, 창조주는 톨테카의 주신이 아니라 그 변형태인 ‘테오틀로케나우아케’(Teotloquenahuaque: ‘모든 것이 존재하는 신’)’이다(Camargo 1892, 129-130). 태양 신화의 심층 구조에는 톨테카 전통이 잔존해 있지만, 창조주는 치치메카 초기 신으로 대체되어 있다. 톨테카의 타모안찬도 두 개의 변형태(Xochitlihcacan, Chitamohuan)로 대체되어 있다(Camargo 1892, 155), 소치틀리카칸(“꽃이 솟아나는 곳”)은 전통적인 ‘꽃의 나무’ 이미지를 연상시키지만, 치타모우안(“토끼를 따르는 자”)은 치치메카 전통과 연관되어 있다. 이는 톨테카 전통과 치치메카 전통이 양립하며 나타난 2개의 변형태이다. 특히 타모안찬이 치치메카의 전통 지역과 연계된 것을 보면, 치치메카의 영향이 상당히 강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특징은 카마스틀레 신화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된다. 카마스틀레는 톨테카 믹스코아틀의 분화 형태로 등장하고, 틀라스칼테카(tlaxcalteca)의 이주를 이끈 초기 신으로 변신했다: “(카마스틀레는) 치치메카와 대화를 했다/ 앞으로 일어날 일과 해야 할 일을 말하거나 계시했다/ 어느 쪽으로 어느 지역에 정착해야 하는지를”(Camargo 1892, 31). 카마스틀레는 멕시코 북서부 치치메카 지역에서 숭배된 신으로, 별자리(‘사냥꾼 자리’)와 ‘활과 화살’의 상징적 표현으로 언급되는 ‘전사의 신’이다. 이 신은 틀라스칼라-푸에블라 지역은 물론이고 멕시코 분지의 치남파스 지역까지도 퍼져 있었다. 메쉬카 후기의 ‘전쟁 시’에서도 언급될 정도로 강한 전사적 특성을 지녔다: “먼지가 솟아 오른다/ 화톳불의 물 안에서/ 카마스틀레 신의 심장이 고통스러워한다”(CMG. 18).

멕시코 분지에서 카마스틀레를 종족 신으로 숭배한 도시국가는 소치밀코였다: “대홍수 이후, 하늘에서 굉음이 들렸다/ 머리가 둘인 사슴 한 마리가 떨어졌다/ 카마스틀레가 이 사슴을 집어들게 하고/ 쿠이틀라우악(Cuitlahuac)에 정착하는 치치메카들에게 말했다/ [...]/ 그 사슴을 신으로 섬기라 말했다”(Garibay(ed.) 1973, 37). 카마스틀레의 탄생과 출현은 보통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 또는 ‘빛’으로 상징된다. 이 시에서 사슴의 출현 방식이 카마스틀레 신화와 유사하고, 그 이미지 또한 사냥꾼의 속성과 결합되어 있다. 치치메카 초기의 신화적 특성이 덧붙여져 있다.

찰코의 경우, 카마스틀레는 톨테카 신화를 바탕으로 우아스테카의 믹스코아틀 신화와 혼합된 변형태로 나타났다: “나의 왕자, 믹스코아틀/ 우리의 어머니, 전쟁의 여신/ [...]/ 쿨우아칸의 사슴/ 깃털 장식을 했구나/ 이제 태양이 전쟁을 계속하길”(Garibay(ed.) 1995, 136). 먼저, 톨테카의 전통 여신 시우아코아틀이 변형태인 ‘킬라스틀리’로 대체되고, 믹스코아틀과 연계되어 ‘전쟁 여신’으로 변신했다. 믹스코아틀은 사슴 이미지를 통해 치치메카 전통과 혼합되며 ‘태양 신화의 전사’로 재구성되었다. 이런 전사를 찰코에서는 ‘인간-사슴(hombre-ciervo)”이라 불렀다(Garibay(ed.) 1993, 38).

멕시코 분지에서 종족의 기원을 제5태양 신화에 연결시킨 도시국가는 쿨우아칸이다. 다른 도시국가들과는 달리 쿨우아는 자신들의 기원신을 최초 인간 부부(Cipactonal, Oxomoco)의 손자 신테우틀(Cinteutl, ‘옥수수 신’)에서 찾았다(Garibay(ed.) 1973, 40). 이는 당시 쿨우아칸이 톨테카 전통을 충실히 계승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를 일부 확인해 주는 시 한 편만 전해질 뿐이다: “저곳에는 경이로운 것이 남아 있지요/ 쿨우아칸에/ 소중한 그림들/ 고문서 보관소에/ 그곳에는 카카오 꽃이/ 심장의 꽃이 있지요”(CML. XXIII).

멕시코 분지에서 툴라 그란데의 케살코아틀을 종족 신으로 숭배하며 정체성을 구축한 종족은 테파네카가 유일하다: “나는 테파네카/ 쿠에쿠에신(Cuecuexin)/ 나는 케살코아틀/ 쿠에쿠에신/ 에에카틀(Ehécatl)일 뿐/ 흑요석을 끌고 가는”(Garibay(ed.) 1995, 118). 테파네카의 쿠에쿠에신은 우아스테카의 ‘바람 신’인 ‘에에카틀-케살코아틀’의 변형태이다.28) 이 신은 테소소목 왕의 치적을 노래한 서사시(CML. XV)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아콜우아의 경우도 테스코코에서 크게 발전한 ‘꽃의 노래’를 고려할 때, 케살코아틀 숭배 사상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를 문헌적으로 확인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숄로틀 왕의 초기 후손들이 숭배한 신은 토틀리(Tohtli)였고, 아콜우아가 숭배한 신은 테스카틀리포카였다(Garibay(ed.) 1973, 92).29) 그런데 정착 이후에 건립된 테스코코 신전에는 토나카테쿠틀리와 틀랄록이 주신으로 등장한다(Ixtlilxóchitl 1985a, 272-273). 치치메카 초기 신들이 모두 톨테카 전통 신들로 대체되어 있다. 이후 1467년에는 메쉬카의 강압에 따라 우이실로포츠틀리가 주신으로 추가되었다(Garibay 1993, 159).

앞서 살펴본 지역별 특징을 종합해 보면 당시 치치메카가 톨테카 전통을 예찬하고 수용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 수용 방식은 전통적인 ‘심층-표층’의 틀 안에서 이루어졌다. 지역 토착 전통에 잔존했던 톨테카-치치메카 전통은 심층 구조를 형성하고, 이 구조를 바탕으로 치치메카의 다양한 신화·종교와 문화가 재구성되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지역마다 다르게 나타났다.

틀라스칼라-푸에블라 지역과, 인접한 치남파스 지역에서는 창조주의 분화 형태인 ‘붉은 테스카틀리포카’의 변형태인 카마스틀레를 중심으로 한 신화 체계가 발전했다. 그리고 이들 지역에서는 전통 신화 체계의 수용 범위가 분화와 변형의 과정을 거치며 현저히 축소되어 있다. 특히 카마스틀레의 역할은 분화 형태인 ‘인간-신’의 활동으로 국한되고, 대부분 ‘건국 영웅’의 서사로 그치고 있다. 그 심층 구조에는 톨테카의 믹스코아틀 신화가 내재해 있고, 그 안에서 초기 치치메카의 전통적 특징들이 덧붙여진 많은 변형태들이 생성되었다. 이 과정에서 톨테카 전통의 상당 부분이 소실되었다.30)

반면 치남파스 지역을 제외한 멕시코 분지의 주요 도시국가들에서는 톨테카 전통이 비교적 큰 변형이나 분화 없이 수용되었다. 그중에서도 쿨우아칸이 가장 톨테카 전통에 가까웠다. 테스코코 또한, 변형태나 분화 형태 없이 톨테카 전통을 수용했다. 쿨우아칸이 비교적 순수 형태의 톨테카 전통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톨테카-치치메카 이주민이 많았고 툴라 왕족 혈통의 인물이 왕위를 이은 것과 관련이 깊다. 테스코코의 경우는 톨테카 왕족과의 정략결혼을 통해 혈통적 연계를 구축한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반면에 테파네카는 일부 오토미 전통과 공존하며 케살코아틀의 변형태를 통해 톨테카 전통을 수용했다.

결론적으로 양 지역의 신화·종교의 심층 구조에는 톨테카의 톨테카요틀이 내재해 있지만, 그 변형 양상은 상이하다. 먼저 치남파스 지역을 제외한 멕시코 분지 주요 도시국가들의 경우, 레온-포르티야가 제시한 톨테카요틀을 중심으로 ‘하나의 통일된 개념’으로 종합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이를 고려하면 레온-포르티야의 톨테카요틀이 멕시코 분지, 특히 테노츠티틀란을 중심으로 재구성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힘들다.

반면 틀라스칼라-푸에블라와 치남파스 지역의 신화·종교의 변형 양상은 멕시코 분지와는 확연히 구별되며 레온-포르티야가 제시한 톨테카요틀 개념에서도 상당히 벗어나 있다. 해당 종족들의 사상과 가치에 맞게 재구성된 다른 차원의 지역적 변형태들이다. 물론 이 변형태들은 단절된 독립체가 아니라, 나우아틀 문화권의 신화·종교·역사 흐름 속에서 상호 연결된 유기체적 특성을 갖는다. 다시 말해, 톨테카요틀은 고정불변의 실체나 개념이 아니라 시대와 지역에 따라 재해석되고 변형된 유동적인 개념이며, 그 구조는 다층적인 ‘변이성’에 있다.

이처럼 치치메카 시기의 지역별 신화·종교적 특성은 레온-포르티야의 주장처럼 균일하지 않았으며, 그 변이 또한 다양했다.31) 물론 레온-포르티야(León-Portilla 2008, 179)도 이런 점을 뒤늦게 인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톨테카 전통이 치치메카 문화의 원형이었으며 당시 주류 문화의 토대였다는 점을 들어, 기존 주장을 조금도 바꾸진 않았다. 그런 그가 서거 2년 전 발표한 마지막 논문에서 처음으로 한 걸음 물러서며 주목할 만한 견해를 남겼다. 고고학자들의 테오티우아칸에 대한 해석이 매우 제한적이며 자신의 견해와 다름을 전제한 뒤, 틀랄로칸 벽화와 입김 형태의 기호, 그리고 다양한 신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하고 심화할 필요는 있다”고 밝혔다(León-Portilla 2017, 10). 다소 ‘억지스럽고 인색한 양보’였지만, 그는 자신이 오랫동안 구축해 온 톨테카요틀 개념에 스스로 미세한 균열을 냈다.


Ⅶ. 맺는말

본 연구는 레온-포르티야가 제시한 톨테카요틀 개념을 신화·문화적 연속성의 관점에서 고찰했다. 이 개념이 나우아틀 문화권의 심층 구조이며 인식론적 틀로 기능하고, 하나의 통합된 신화·문화 전통으로 환원될 수 있는 담론 구조인가도 검토했다. 이를 위해 나우아틀 문화권의 지리·언어적 경계에 영향을 준 나우아틀라카 개념과, 그 문화적 특징을 집약한 레온-포르티야의 톨테카요틀 개념이 형성된 과정과 그 문제점을 분석했다.

먼저 나우아틀어 사용 집단이 처음 등장한 톨테카 시기를 중심으로 테오티우아칸과 치치메카 시기의 종족·언어적 관계를 고찰했다. 3개 시기 사이의 신화·문화적 연속성은 톨테카요틀의 핵심 사상인 ‘태양 신화’와 케살코아틀을 중심으로 비교·분석했다. 특히 태양 신화의 구조 분석에는 토착 전통과 이주민 전통 간의 관계에 내재한 ‘심층-표층’ 모델을 적용했고, 이를 토대로 톨테카요틀 개념을 새로운 시각에서 재규정하고자 했다.

나우아틀라카 개념은 원주민의 역사 서술 방식에 기초해 있다. 그러나 나우아 7개 종족을 문명의 주체로 분류한 이주민 중심의 역사 인식이며 메쉬카의 군국주의 이념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런 특징이 레온-포르티야의 톨테카요틀 개념에 상당 부분 투사되어 있다.

레온-포르티야가 제시한 톨테카요틀 개념에는, 메쉬카가 재구성한 톨테카요틀과 시기적으로 앞선 사아군의 톨테카요틀이 불완전한 형태로 병존해 있다. 이로 인해 톨테카요틀의 본래 범주가 멕시코 분지와 틀라스칼라-푸에블라 지역으로 축소되고, 지역별 다양성도 단순화되어 있다. 톨테카 이전의 다양한 토착 전통이 배제되고, 톨테카 전통만 지나치게 이상화된 특징도 나타난다.

나우아틀 문화권의 시대별 종족 분포 추이와 관련해 테오티우아칸과 톨테카 간에는, 상당한 수준의 종족·언어적 연계성이 존재했다. 레온-포르티야의 톨테카요틀 개념은 툴라 그란데를 기원지 삼아 형성되었다. 치치메카 시기부터는 다양한 이주 집단들이 나우아틀 문화권을 본격적으로 형성하면서, 기존 전통과 연계된 올메카-쉬칼란카, 미스테카 등과의 종족·언어적 연계성이 현저히 약화되었다.

레온-포르티야는 톨테카요틀 개념의 중심에 제5태양 신화를 앞세웠다. 그러나 제5태양 신화는 툴라 그란데에서 새롭게 창조된 신화가 아니라, ‘변형-연속’의 역사·문화적 흐름에서 생성된 ‘하나’의 변형태였다. 그 구조는 정착민과 이주민 전통 간의 ‘심층–표층’ 관계에 기초해 있다. 기존 토착 전통은 신화 체계를 구성하는 심층 구조로 존속하고, 이 구조 내에서 새로 등장한 이주민의 신화·종교와 문화 전통이 재구성되었다. 이 과정에서 토착 전통신과 사상 등은 이주민의 시각에서 재해석되고, 일부는 소멸되거나 새로운 변형태로 대체되었다. 따라서 테오티우아칸, 톨테카, 치치메카 시기는 단절된 독립 시기가 아니라 ‘변형-연속’의 역사·문화적 흐름 내에서 서로 연계되어 있는 유기체적 특성을 갖는다.

‘수용-변형’의 구조 내에서 전통신의 분화 형태인 ‘인간-신’도 등장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툴라 그란데의 ‘사제-왕 케살코아틀’이다. 레온-포르티야는 ‘사제-왕’을, 이상적인 문명 가치를 툴라 그란데에 구현한 ‘문화 영웅’이며, 신정 질서를 재현한 ‘인간-신’으로 예찬했다. 이 과정에서 툴라 그란데의 역사는 ‘사제-왕’ 중심의 서사로 환치되고 이상화되었다. 이 전통은 치치메카 시기에 카마스틀레의 신화·역사적 서사에서 반복되었다.

톨테카요틀 개념은 치치메카 시기의 다양한 신화·종교의 심층 구조에 내재해 있다. 그러나 그 수용 범위가 창조주의 분화 형태인 특정 종족 신으로 제한되어 있고, 그 역할은 신화적 층위에서 벗어나 역사·정치적 분화 형태로 축소되어 있다. 특히 그 구조에는 초기 치치메카 전통이 강하게 내재해 있다. 다른 한편, 톨테카요틀의 이상화된 개념과 이에 따른 신화·문화적 우월성으로 인해 치치메카 시기의 지역적 다양성과 이질성은 상당 부분 은폐되거나 배제되었다.

여러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레온-포르티야가 제시한 톨테카요틀 개념은 나우아틀 문화권의 전통 문화에 접근하는 핵심적인 인식 틀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하지만 톨테카와 치치메카 시기의 복합적이고 이질적인 현상을 포괄할 수 있는 총체적인 담론 구조로 받아들이기엔 한계가 있다. 특히 톨테카요틀 개념은 특정 문명지의 이상화된 신화·문화적 전통이 아니라, 나우아틀 문화권 내에서 시대와 지역별로 이상화된 다양한 문명지들의 전통을 포괄하는 광의의 유기체적 개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Acknowledgments

본 연구는 2024년도 덕성여자대학교 교내연구비 지원에 의해 이루어졌음.

Notes

1) 레온-포르티야의 톨테카요틀 개념은 톨테카(Tolteca)의 신화, 종교, 사상, 예술 등의 이상적인 전통을 가리킨다. ‘문명지’를 의미하는 ‘톨란(Tollan)’은 스페인어로 ‘툴라(Tula)’로 번역되며, ‘톨란 쉬코코티틀란’은 현재의 ‘툴라 그란데(Tula Grande)이다(León-Portilla 2008, 68). 톨테카는 툴라 시기, 즉 ‘툴라 치코(Tula Chico)’와 ‘툴라 그란데’에 거주했던 사람들을 통칭하며, 이 두 지역은 각각 톨테카의 전기와 후기 정착지였다.
2) ‘심층-표층’ 모델은 베이어(Beyer)와 바르하우(Barjau)가 제시한 개념에 착상해 톨테카와 치치메카 시기의 태양 신화 구조를 분석하기 위해 필자가 확립한 이론이다. 그 구조와 내용은 본 연구 과정에서 모두 드러난다. 베이어(Beyer 1983, 546-549)는 나우아틀 문화권의 다층적이고 혼합적인 신의 계보를 ‘다양성’과 ‘일원성’의 개념으로 설명했다. 바르하우 또한 테스카틀리포카의 12가지 변형태를 찾아내고, 이를 일신교적 특징으로 해석했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새로운 신을 창조하기보다는 기존의 일원신을 바탕으로 다양한 변형태를 생성했다(Barjau 1991, 13-17).
3) 본 연대기(이하 ‘가리바이 편집본’)는 올모스(Olmos)를 비롯한 초기 무명 사제들이 남긴 파편적인 내용들을 가리바이가 수집·편찬한 연대기이다. 이 문헌에는 주로 멕시코 분지와 틀라스칼라-푸에블라 지역의 신화, 역사, 사회상이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내용이 단편적이고 파편적인 탓에 학계에서 오랫동안 외면받아 왔다.
4) 나우아틀 시를 메소아메리카 연구에 본격적으로 접목시킨 최초 연구자는 레온-포르티야였다. 현재까지도 많은 연구자가 이를 활용하고 있지만 시기와 지역 구분 없이 사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5) 『라미레스 고문서』는 다른 문헌들과 달리, 오토미를 ‘치치메카’로 분류했다. 반면 가리바이(Garibay 1992, 231-273)는 오토미 시를 나우아틀 문학에 포함하며, 종족·언어적으로 이질적인 오토미를 나우아틀 문화권에 편입시켰다.
6) 『라미레스 고문서』와 두란, 모톨리니아, 사아군 등은 나우아틀 문화권이나 누에바 에스파냐의 다양한 종족들의 기원을 ‘치코모스톡(Chicomoztoc)’, 아스틀란(Aztlán), ‘타모안찬(Tamoanchan)’으로 설정하고 이들이 출발한 시기를 바탕으로 종족을 분류했다. 이런 분류 방식은 프란치스코회 초기 연대기 학자들이 유럽 중심주의적 시각에서 만든 개념이 아니라 당시 원주민들이 종족의 기원을 이해했던 전통적인 방식이다.
7) 메쉬카와 관련된 부분은 필자의 기존 논문(“메쉬카 시의 시기별 특징과 변화”) 참조.
8) 치말파인(Chimalpain 1991, 3)에 따르면, 쿨우아를 비롯한 찰코와 소치밀코는 670년부터 멕시코 분지에 정착한 전통적인 토착 세력이었다.
9) 툴라 치코는 테오티우아칸 멸망 이후 건설된 톨테카의 초기 정착지로, 코요틀라텔코(Coyotlatelco) 문화의 특징이 뚜렷하다. 그 특징은 테오티우아칸에 비해 소규모화된 거주 형태, 지역적 특색, 그리고 새로운 양식의 적갈색 토기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시기에는 촐룰라(Cholula), 카카스틀라(Cacaxtla), 소치칼코(Xochicalco) 등의 주요 도시국가들에서 테오티우아칸 출신의 올메카-쉬칼란카가 오토미와 우아스테카 같은 다양한 종족들과 공존했다.
10) 테오티우아칸 시기에는 미스테카 출신인 포풀로카(populoca)도 주요 거주민 중 하나였다(Garibay(ed.) 1973, 93). 특히 올메카-쉬칼란카와 미스테카의 존재는 테오티우아칸의 테판티틀라(Tepantitla) 벽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벽화에 그려진 ‘틀랄로칸(Tlalocan)’은 3개 종족(olmeca, huixtotin, mixteca)이 거주했던 지역과 동일한 명칭이고, 묘사된 분위기 또한 해당 지역의 자연환경과 매우 유사하다(López 1994, 182). 포풀로카 또한 톨테카 시기에도 계속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올리비에르(Olivier 2019, 143)에 따르면, 포풀로카는 현재 푸에블라 주에 위치한 테카마찰코(Tecamachalco) 또는 테우아칸(Tehuacan) 출신이다. 그들이 숭배한 태양신은 미스테카-푸에블라(Mixteca-Puebla) 지역의 『보르히아 고문서 Códice Borgia』에 등장하는 토나티우(Tonatiuh)와 유사하다. 현재 포풀로카는 오토-망게(oto-mangue)어족으로 분류되고, 메쉬카 시기에는 ‘미개한 종족’을 지칭하는 용어로도 사용되었다.
11) 『멕시코 시가집』의 가리바이 번역본 시는 ‘CMG’, 레온-포르티야 번역본 시는 ‘CML’로 약칭하고 시 번호를 병기한다.
12) 우아스테카는 현재 파누코(Pánuco) 강과 산 루이스 포토시(San Luis Potosí) 주 동부 지역에 기원을 두고 있다. 이들은 원래 멕시코만 남부 해안 지역의 마야 출신이지만 매우 오래전에 분리되어 나왔다(Krickeberg 1995, 37).
13) 당시 치치메카들은 멕시코 분지의 각기 다른 지역에 정착했다. 숄로틀 왕이 이끈 치치메카와 아콜우아는 테스코코 호수의 서부 지역(Acolhuacán)에 정착했고, 테파네카는 동부와 북부 지역에 걸쳐 살았다. 오토미는 북부 지역의 호수와 인접한 솜판고(Zompango)를 중심으로 세력을 키웠다.
14) ‘치치메카’라는 용어는 연대기마다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다. 일반적으로, 멕시코 북서부 지역(치치메카 지역) 출신의 종족들을 가리키지만, 나우아틀라카 개념의 문헌에서는 멕시코 분지 안팎의 미개한 토착 정착민을 지칭한다.
15) 테초틀랄라신 왕의 집권 기간은 문헌에 따라 편차가 크다. 실제로 그는 살토칸(Xaltocan) 전쟁이 발생한 시기(1330년에서 1350년 초 사이로 추정)에 왕으로 있었고, 오토미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아콜우아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레온-포르티야(León-Portilla 1967, 79)는 테초틀랄라신을 “종족, 관습, 신앙, 제도 등 다양한 요소의 융합을 완성한 왕”으로 평가했다.
16) 두란(Durán 1995, 65-66)에 따르면 당시 멕시코 분지 내 토착민은 미개한 종족으로, 종교도 없었고 수가 적어 이주민들에게 저항하지 못하고 흩어졌다.
17) 이 시기의 역사는 문헌이 희소해 연구가 미진하다. 두란(Durán 1995, 65-67)에 따르면, 토착민은 키나메(Quiname)라 불리는 미개한 거인들이었고, 태양을 숭배하며 인신공양을 했다. 이들의 저항이 강해 이주민들의 정착 과정이 험난했다. 이후 키나베는 혼인을 통해 이주민 문화에 동화되었다.
18) ‘타모안찬’이란 용어는 멕시코 중앙고원지역뿐만 아니라 마야 문화권에서도 나타난다. 이를 근거로 크리케베르그는 타바스코(Tabasco)를 비롯해 캄페체(Campeche)와 치아파스(Chiapas) 북부 사람들이 배를 타고 파누코에 도착한 것이 아닌가 추정했다. 피냐 찬(Piña Chan) 역시 이에 동조하며, 당시 올메카의 이동은 테오티우아칸, 촐룰라, 소치칼코를 비롯해 과테말라까지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López 1994, 53-55).
19) 모레노(Moreno 1967, 206)에 따르면 신화에 등장하는 거인은 “완성되지 않은 인간”을 의미한다.
20) 클로르(Klor 1992, 192-194)의 경우 톨테카요틀의 유토피아적인 이상화가 식민 초기의 연대기 학자들에 의해 유럽 중심주의적 시각에서 재구성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메쉬카 후기 시의 특징을 고려하면,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이다.
21) 톨테카 시기를 제4태양시대로 분류한 신화는 다음과 같다: “치치메카 역사 Historia de la nación chichimeca”(Ixtlilxóchitl 1985b, 8-9); “누에바 에스파냐 약사 Sumaria Relación de la historia de esta Nueva España ”(Ixtlilxóchitl 1985a, 530); “누에바 에스파냐 약사 Sumaria Relación de las cosas de la Nueva España”(Ixtlilxóchitl 1985a, 265). 앞의 3개 태양 신화는 톨테카 시기의 역사를 왕 중심으로 기록하는 전통적인 역사 서술 방식을 따르고 있다.
22) 제5태양에 대한 해석은 모레노의 것이 가장 주목을 끈다. 모레노(Moreno 1967, 198; 210)에 따르면 4방위는 4개 원소(흙, 공기, 불, 물)를 의미하고 제5태양은 4개 원소를 통합한 우주의 중심이다.
23) 테오티우아칸에서 현세 4방위 창조와 그 구성 원리는 테판티틀라 벽화에 그려진 ‘우주나무’에서 확인할 수 있다.
24) 틀랄로케들은 우아스테카 출신의 ‘인간-신’으로도 나타났다. 그들은 툴라 그란데의 마지막 왕인 우에막(Huémac)과 구기 경기를 했고 4년간의 기근을 일으켰다(Feliciano (ed.) 1992b, 126).
25) 소디(Sodi 1962, 72)에 따르면 테오티우아칸 전통은 나우아틀 문화의 신화·종교적 심층을 구성한다.
26) ‘사제-왕’의 역사적 실체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많다. 최근의 한 연구에 따르면 그는 툴라에 있었던 10명의 왕 중에 5번째 왕이며, 쿨우아 혈통의 첫 번째 왕이었다(Reyes 2020, 92).
27) 로페스(López 1994, 73-77)의 경우 신이 저지른 죄가 새로운 창조 행위의 동인으로 나타나는 서사의 뿌리를 소치케살(Xichiquétzal)과 이스파팔로틀(Izpapálotl) 신화에서 찾았다. 그리고 그 창조의 공간은 타모안찬으로 파악했다. 이 심층 구조 내에서 우아스테카 출신의 ‘사제-왕’ 서사가 재구성되었을 가능성도 고려할 만하다.
28) ‘쿠에쿠에신’은 테파네카가 숭배한 다른 신 오톤테쿠틀리(Otontecuhtli)의 변형태일 가능성도 있다. 이 신은 테파네카의 패권도시국가였던 아스카포살코(Azcapotzalco)와 오토미가 살았던 지역에서 주로 발견된다.
29) 크리케베르크(Krickeberg 1995, 205)에 따르면 원래 아콜우아가 숭배한 초기 신은 믹스코아틀이었으나 테스카틀리포카로 대체되었다.
30) 역사와 지리적인 측면을 고려하면 틀라스칼라-푸에블라 지역에는 다양한 토착 전통과 변형태들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지역은 북서부로는 치치메카, 북동부로는 우아스테카, 동부로는 올메카-쉬칼란카, 남부로는 미스테카와 접해 있다. 문제는 이 지역과 관련된 식민 초기의 문헌이 희소하다는 데 있다.
31) 치남파스 지역에는 호수를 중심으로 한 토착 신화, 마야와 연계된 올메카-쉬칼란카, 그리고 오토미의 영향도 상당히 남아 있다. 틀라틸코 지역에도 오토미와 미스테카 신화뿐만 아니라 우아스테카의 전통도 적지 않게 잔존해 있다. 치치메카 후기에 이르면, 테스코코와 틀라텔롤코(Tlatelolco)는 치치메카 초기 신들을 복원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재정립하려 시도했다(Feliciano(ed.) 1992a, 54; Torquemada 1975-1979, 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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