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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rticle ] | |
iberoamerica - Vol. 26, No. 2, pp. 159-186 | |
Abbreviation: iberoamerica | |
ISSN: 1229-9111 (Print) | |
Print publication date 28 Dec 2024 | |
Received 31 Oct 2024 Revised 02 Dec 2024 Accepted 11 Dec 2024 | |
DOI: https://doi.org/10.19058/iberoamerica.2024.12.26.2.159 | |
아이티의 국가 위기와 범죄 거버넌스의 부상 | |
손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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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스페인·라틴아메리카연구소 연구교수. (alexandrason@korea.ac.kr) | |
Haiti’s Crisis of the State and the Emergence of the Criminal Governance | |
Son, Hye-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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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nding Information ▼ |
최근 중남미에서는 범죄조직이 자율성과 독자적 생존 능력을 강화하여 점차 국가권력에 도전하는 정치세력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훼손하고 시민의 정치·사회적 권리를 제한함으로써 중남미의 민주주의 발전에 심각한 방해 요인이 되고 있다. 아이티는 2021년 조브넬 모이즈 대통령이 암살된 이후 권력의 공백상태에서 갱단이 규칙을 정하고 강제하며, 경찰과 사법부의 기능을 무력화하여 비사법적 정의를 적용하고 공공서비스와 생필품을 제공하는 등 사회적 삶을 통제한다. 국가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지 못하면서 아이티는 고전적인 베버적 독점국가에서 범죄조직이 정치, 경제, 사회적 삶을 통제하는 범죄거버넌스로 전환하였다. 이 논문은 아이티의 사례를 통해 범죄조직이 국가권력에 도전하는 새로운 형태의 통치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문헌들을 통찰하고 국가-범죄 관계 및 대안적 질서에 대해서 살펴본다.
In recent years, in Latin America, criminal organizations have been strengthening their autonomy and independent survival capabilities, gradually transforming into political forces that challenge state power. This is a serious obstacle to the development of democracy by undermining democracy and the rule of law and restricting the political and social rights of citizens. In Haiti, after the assassination of president Jovenel Moïse in 2021, gangs have been controlling social life by setting and enforcing rules, replacing the role of the police and the judiciary, applying extrajudicial justice, and providing public services and necessities. As the state failed to protect the safety and lives of its citizens, Haiti has transitioned from a classic Weberian monopoly state to a criminal governance in which criminal organizations control politics, economy, and social life. This paper examines the literature necessary to understand new forms of governance in which criminal organizations challenge state power through the case of Haiti, and examines state-crime relations and alternative orders.
Keywords: Crisis in Haiti, Organized crime, Criminal governance, State vulnerability, Criminal gang-state power sharing 키워드: 아이티 위기, 조직범죄, 범죄 거버넌스, 국가 취약성, 범죄조직-국가권력 공조 |
대다수의 중남미 국가들이 1980년대 초에 민주주의로 전환하고, 1990년대 이후에는 장기 내전을 종식하면서 중남미 지역은 형식적으로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지역이 되었다. 그러나 현재 중남미는 전 세계 살인사건의 1/3이 발생하는 곳으로 인구당 살인 건수가 북미보다 5배 그리고 아시아보다 10배나 더 많다. 2000년 이후 250만 명 이상이 살해됐으며(Igarapé Institute, 2018), 2023년 한 해에만 최소 117,492명이 살해됐을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정확한 숫자 파악이 어려워 실제 사망자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Insight Crime, 2023). 현재 중남미에서는 군사적 전쟁 상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매일 300명 이상이 목숨을 잃고 있다.
과거 이 지역의 폭력이 주로 정치적 폭력과 관련이 있었다면,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범죄조직이 새로운 원인이 되었다. 유엔 마약범죄 사무소(UNDOC)는 최근 보고서에서 이 지역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의 절반 이상이 범죄조직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UNDOC, 2023). 마약과 무기 밀매를 비롯하여 강탈, 인신매매, 납치 등 불법적인 범죄경제의 통제권을 장악하기 위한 범죄 조직들간의 폭력적인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살인이 크게 증가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아이티에서의 범죄조직에 의한 폭력은 범죄경제 통제권을 둘러싼 갱단들간의 경쟁의 차원을 넘어 국가의 통치 권력에 도전함으로써 국가적 위기가 심화하고 있다.
아이티에서는 2021년 7월 조브넬 모이즈(Jovenel Moïse) 대통령이 암살된 이후 제도적 공백 상태에서 무장 갱단들이 영토 통제권을 장악했다. 2024년 3월부터 6월까지 투생 루베르튀르 국제공항과 국립항만청을 비롯한 최소 22개의 공공기관과 16개의 경찰서 및 변전소가 갱단에 의해 공격, 방화, 약탈을 당했다. 특히 3월 초에는 갱단이 수도인 포르토프랭스에 위치한 아이티에서 가장 큰 교도소 두 곳을 습격하여 4 천명 이상의 수감자들이 탈출했다(Jones, 2024). 탈옥자들 다수가 폭력단에 가담하면서 갱단들이 더 많은 불법 수익을 얻기 위해 새로운 지역에 접근함에 따라 폭력 사태가 증가하였다. 급기야 갱단들은 경쟁을 멈추고 힘을 합쳐 수도인 포르토프랭스를 점령하고 대통령 대행인 총리를 사퇴시키고 국가권력 구성에 개입하면서 최고 권력이 되고자 하는 야망을 드러냈다. 현재 아이티에는 선출된 대표자가 한 명도 없고, 정부 권력은 국가 영토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했으며 갱단들이 경찰과 사법부까지 무력화한 후 그들이 정한 규칙과 법을 강요하고 집행하는 상황이다.
아이티에서 갱단의 폭력과 범죄는 지난 수십 년간 국가 질서를 위협해 온 문제이다. 그러나 최근 갱단의 폭력 양상은 전략적 측면에서 이전과 차이가 있다. 우선 갱단의 공격대상이 경쟁 갱단에서 국가권력으로 변하였다. 갱단의 지도자들은 2023년 9월에 포르토프랭스에서 활동하는 아이티의 최대 갱단인 G-9와 G-Pèp을 중심으로 비브 안삼(Viv Ansanm)이라는 갱단 연합을 결성했다. 이들은 스스로를 부패한 정치와 경제 엘리트 그리고 외세의 개입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정의로운 행위자로 표현했다. 많은 사람들은 갱단 연합의 지속 가능성에 회의적이었으나, 이들은 2024년 앙리 아리엘(Hernry Ariel) 총리의 사임을 촉구하며 교도소를 비롯한 공공시설을 공격하는 행위에서 통합된 전선으로서 조직적인 능력을 과시했다. 갱단의 공격은 결국 앙리 총리의 사임을 이끌어 냈다. 비브 안삼 연합의 2월 공격 성공 이후 갱단 간 전투는 감소했고, 수익 창출을 위한 공공시설에 대한 공격과 민간인 대상 범죄가 크게 증가했다(Pellegrini, 2024)1). 현재 갱단들은 라이벌과의 싸움에 자원을 투자하는 대신 권력을 집중하고 영토통제를 확대함으로써 국가권력에 도전하고 있다. 정부의 통제가 부재한 지역에서 갱단이 국가권력의 공백을 메우고 권한을 행사하며 처벌받지 않고 활동하고 있다. 아이티에서 갱단은 점차 국가 관료나 정치인의 권력 야망을 위한 조력자에서 정치 권력에 도전하는 강력한 지배 집단이 되고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최근 아이티에서 범죄조직이 지배하는 새로운 통치 형태인 범죄 거버넌스가 등장하게 된 배경과 발전과정을 탐색해보고 이것이 아이티의 정치사회 불안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아이티의 사례 분석을 통해 국가와 범죄조직이 국가권력을 공유하는 범죄 거버넌스가 중남미 지역에서 새로운 질서를 형성하고 있음을 지적함으로써 중남미 폭력에 대한 연구의 확장에 기여하고자 한다.
국가는 주어진 영토 내에서 합법적인 물리적 힘의 사용에 대한 독점권을 가진 인간 공동체(Weber, 1947: 78)이며, 특정 질서를 수립하고 궁극적으로 주어진 영토에 대한 중앙집권적 강제력을 보장하는 일련의 사회적 관계이다(O'Donnell, 1993: 1355). 즉 국가는 일정한 영토와 영토 내 주민에 대한 법률, 물리적 폭력, 행정을 제공하고 적용할 수 있는 유일한 조직이다. 그러나 현재 중남미의 일부 지역에서는 국가의 영토 통제력이 무장 범죄조직에 의해 강한 도전을 받고 있다. 범죄조직이 영토를 점유하고 경찰이나 군대에 맞서서 지역 질서와 공공재를 제공하기까지 한다. 그 결과 주요도시에 범죄 소굴, 무정부 공간, 출입 금지 구역이 생겨났고(Jan, 2015: 87) 영향력 있고 강력한 범죄조직이 통제하는 영토가 점점 더 늘어나면서 국가의 권력 독점이 약화 됐다(Feldmann&Luna, 2022). 정부의 비효율성 증가로 범죄조직이 영토적 입지를 강화하는데 점점 더 용이해졌다.
정부가 사회통제를 제공하지 못하면 종종 범죄 집단은 국가의 권력 공백을 메운다. 이렇듯 범죄 집단이 도시나 지역에서 규칙을 정하고 부과하며, 치안, 물, 전기, 인터넷 접속과 같은 기본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주민의 정치, 경제, 사회적 삶을 통제하는 현상을 범죄 거버넌스라고 한다(Arias, 2020; Lessing, 2022; Feldmann&Luna, 2022; Corrales&Freeman, 2024). 범죄 거버넌스는 현대 국가의 법적-관료적 민주적 틀 밖에서 불법적인 목적을 위해 통치하거나 국가의 제도적 경계를 부패시키는 권력 행사로 이해된다. 이러한 통치방식은 법적 국가의 독점력을 넘어서는 폭력의 전유와 행사에 근거할 뿐만 아니라 질서의 형성과 합법화 전략으로서 규칙과 법률의 재구성에도 근거한다(Koonings&Kruijt, 2023). 따라서 범죄 거버넌스는 국가가 불평등, 소외, 빈곤 및 폭력 등의 사회적 문제를 통제하지 못할 정도로 제한적이고 법치가 취약한 국가에서 무장한 비국가행위자가 국가 기능의 일부를 차지하게 된다(Mantilla&Feldmann, 2021: 2).
국가가 시민에게 안전을 제공하지 못하거나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으로 인식될 때 지역사회는 무장세력의 폭력과 착취에 취약하게 된다. 이런 경우 무장 범죄 집단의 통치는 국가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기본적인 안전과 사회질서를 제공하며 정통성을 얻게 된다(Jan, 2015). 주민들은 일상의 질서와 재산권 보호를 위해 범죄조직을 두려워하면서도 법의 지배, 이동의 자유 및 기타 권리를 희생하고 범죄 거버넌스를 효과적인 통제 시스템으로 받아들인다. 범죄 거버넌스는 지역사회 규범에서 선거, 경찰 및 공공서비스 접근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통제한다. 범죄조직은 뇌물, 협박, 폭력으로 정부 조직(정부, 경찰, 사법부)에 침투하거나 선거의 투표 중개자로서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며 도시폭력을 급격히 줄이거나 악화시키는 힘도 가진다(Uribe, Lessing, Schouela, Stecher, 2022; Arias 2020: 43).
분열된 주권의 맥락에서 국가는 점점 더 범죄조직과 경쟁하고 있으며 이들과 권력을 공유하고 치안과 공공재를 제공하기 위해 새로운 지역 질서인 범죄 거버넌스를 형성한다. 범죄 거버넌스는 국가의 전복을 목표로 하지 않으며, 국가를 대체하거나 보완한다. 뿐만 아니라 국가와 경쟁하면서 사회 서비스, 법, 안전과 같은 공공재 분배를 통해 합법 또는 불법 경제를 포함한 사회질서를 규제하기 때문에, 제도화 수준이 낮고 경제적으로 취약한 상황에서 단기적인 의제를 추구하는 국가의 정치·경제 엘리트들은 범죄조직에 의존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Mantilla&Feldmann, 2021: 2). 그리고 만연한 부패와 국가의 취약성 속에서 힘을 키운 불법 조직들은 국가와 정치기관에 쉽게 침투한다. 그 결과 범죄조직과 국가가 회색지대2)에서 서로 교차하고, 폭력과 불법행위를 묵인하고, 은밀히 지시하고, 협력하는 새로운 질서가 형성된다(Auyero, 2007; Auyero & Berti, 2013). 이러한 의미에서 국가와 범죄조직은 상호 협력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중남미는 1990년대 민주주의로의 이행과 신자유주의 개혁으로 인해 급속하고 비공식적인 도시화, 행정의 분권화, 마약 밀매의 증가 및 경제적 배제로 국가와 사회와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화했다. 미완의 민주적 이행이 국가가 법의 지배를 강제할 수 없거나 집행할 의사가 없는 갈색 지역3)을 확대했다. 갈색 지역의 엘리트들은 사유화된 지배체제의 유지를 위해 가능한 많은 자원을 확보하는데 관심이 있는 사람들로 기회주의적이고 탈이념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O'Donnell, 1993). 따라서 갈색지대의 확산은 범죄 거버넌스가 성장하는 토대를 제공했다. 1990년대 이후 지방분권화의 확대는 긍정적 효과보다는 거시경제적 불안정, 높은 인플레이션, 재정 불균형 및 불법 경제 심화, 높은 수준의 부패, 강력한 지역 엘리트, 낮은 수준의 국가성(stateness)4)이라는 부정적 효과를 낳았고 범죄조직이 영토 내에서 영향력과 영속성을 강화하는 공간을 제공했다(Duque Daza, 2021).
많은 연구들이 범죄 거버넌스가 정부의 전복이나 국가권력의 획득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Arias, 2020; Lessing, 2022; Feldmann& Luna, 2022; Corrales&Freeman, 2024). 범죄조직들은 이전 게릴라 집단처럼 혁명적인 정치적 변화를 추구하지 않고 경제와 사회에서 명성과 협상력을 가진 세력이 되기를 열망하기 때문에 범죄집단의 영향력은 그들이 활동하는 지역사회에서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그들은 불법적인 경제활동을 위해 영토 또는 상업적 통로를 통제하고 주민들에게 세금을 부과하고 경쟁 세력(합법적 또는 불법적)을 제거하여 더 많은 수익과 법적 면책이 보장되는 사회를 확립하기 위해 법치 기반 질서를 불법적 질서로 대체하려고 한다. 따라서 이 폭력 시스템은 겉보기에는 비정치적으로 보여도 그것은 사회, 정치, 법률, 국가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 성격이 강하다(Koonings&Kruijt, 2023).
정치와 범죄는 종종 얽혀 있으며, 범죄는 정책과 권력구조의 영향을 받는 정치적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중남미의 많은 지역에서는 무력 사용이나 사법 집행과 같이 원칙적으로 국가에 해당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범죄조직이 있다. 또한 주민에게 공공재를 제공하고 지역 경제를 유지하며 농촌지역이나 대도시 인근에 교육 및 휴식공간을 제공하기까지 한다. 이같이 국가권력과 비국가적 권력이 경쟁 또는 공존하는 특수한 통치체제는 중남미의 국가형성 과정에서 비롯된 역사적 유산을 반영한다. 초기의 국가 형성과정에서 국가는 폭력을 독점하지 못했고 합리적인 관료제나 체계적인 법체계를 구축하지도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역의 정치 엘리트들은 사적,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범죄조직과 동맹을 맺기도 했다.
데스몬드 아리아스와 다니엘 골드스테인은 ‘폭력적 다원주의’라는 개념을 통해 역사적 경로의존성이 무장 집단의 범죄 활동을 용인하고 국가권력과 무장 집단 간 공생관계에 기반한 범죄 거버넌스를 낳았다고 주장한다(Desmond Arias와 Daniel Goldstein, 2010) 범죄 거버넌스는 국가 행위자와 범죄 조직간 간 상호 수용과 상호 협력에 기반한다. 즉 중남미의 폭력적 질서를 재생산하는 범죄 거버넌스는 국가 및 범죄조직 간의 끊임없는 상호작용과 협상을 수반한다.
중남미의 국가와 사회에는 공적 자산을 마치 사적 자산으로 인식하고 임의로 처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가부장주의 전통이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많은 공직자들이 공직에 부여된 권한을 사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당연시하며 시민들은 일상적으로 공적 영역과 사적영역을 구분하지 않고 실용성을 규범준수 보다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공유지에 집을 짓고, 비공식 시장에서 거래하고, 거리를 개인공간으로 전용하거나, 불법 채굴이나 벌채를 위해 국유지를 무단으로 점유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범죄조직이 안보, 정의, 사회 서비스를 보장해 준다면 범죄조직의 지배를 쉽게 용인한다(Mejias, 2023: 669).
제3의 민주화 물결과 함께 대부분의 중남미 국가들은 민주주의로 이행했으나 전통적인 권위주의적 관행과 엘리트의 특권문화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남아서 법과 관료적 규범이 공식화된 질서와 공식적 규범이 무시되는 비공식 질서가 공존하는 모순적인 사회질서를 형성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권력 계층은 법률준수에서 면제되고 특권을 갖는다. 공공재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체계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지방정부의 공직자들은 범죄조직과 권한을 공유할 가능성이 있다. 중남미에는 갈색구역(O'Donnell, 2002)이 사유화된 국가권력과 범죄조직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이러한 지역에서는 당국의 묵인하에 범죄조직의 행동 방침과 규율이 국가법률을 대체한다. 공식적인 질서와 법이 작동되지 않고, 범죄조직에 의해 새로운 행동 규범이 확립되며, 비공식적 법이 집행되고, 안전이 보장되고 주민에 대한 공공서비스까지 제공된다. 범죄조직은 영토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고 면책권을 보장받고 그 대가로 불법 경제활동의 수익금 중 일부를 당국과 공유하거나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의 선거운동 자금으로 지원한다(InSight Crime, 2021년 8월 13일). 이러한 방식으로 정치인 및 공직자와 범죄조직 간 공생관계가 형성된다.
예를 들어 멕시코의 경우 시날로아 카르텔은 지난 20년간 시장, 검사, 주지사, 주 경찰, 연방경찰, 육군, 해군 및 국가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었으며, 멕시코 2,457개 지방자치단체 중 195개 단체가 마약 밀매업자의 통제하에 있다(IDEA et al., 2014: 39). 브라질에서는 정치인이 선거에서 표를 동원하고 소외된 지역의 경제와 정치를 통제하기 위해 민병대나 범죄조직과 관계를 맺고 있으며, 경찰이나 교도관도 빈민가 및 교도소 내 질서를 유지하고 보호비를 상납받기 위해 범죄조직의 활동을 일부 용인해 주기도 한다(Arias, 2020: 44).
국가의 취약성은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하고 국가마다 서로 다른 취약성의 원인을 갖고 있기에 정의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취약 국가는 일반적으로 국가가 폭력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할 힘이 없고, 시민에게 기본교육, 에너지 및 인프라, 의료 서비스와 같은 기본적인 공공재를 보장하지 못하고 빈곤을 피할 만큼 충분한 소득을 제공하지 못하며, 시민들로부터 정부의 통치 정통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국가이다5).
2005년부터 미국의 싱크탱크인 평화기금(Fund for Peace)과 미국 외교 전문지인 포린폴리시(Foreign Policy)는 안정적인 국가 유지 능력이 취약한 국가들을 파악하기 위한 목적으로 취약국가지수(fragile state index)를 산정해서 발표하고 있다. 응집력, 경제, 사회, 정치의 4가지 부문에서 총 12개의 지표로 평가한다6). 아이티는 2024년 취약국가 지수에서 103.5를 기록하며 세계에서 9번째로 취약한 국가가 됐다.
순위 | 총점 | 안보 기관 |
엘리트 분열 |
집단 불만 |
경제 쇠퇴 |
경제적 불평등 |
인재 유출 |
국가 정통성 |
공공 서비스 |
인권 | 인구 압박 |
난민 | 외부 개입 |
---|---|---|---|---|---|---|---|---|---|---|---|---|---|
9위/179 | 103.5 | 7.0. | 9.7 | .5.8 | 8.6 | 8.9 | 8.0 | 10.0 | 9.9 | 9.2 | 8.9 | 7.8 | 9.7 |
세계은행에 따르면 아이티인의 80%가 빈곤선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으며, 40%는 극심한 빈곤 속에 살고 있다. 현재 아이티 인구의 42% 이상이 생명과 생계 보호를 위한 인도적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며 최대 40%가 심각한 식량 불안을 겪고 있다. 식수와 기본 위생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은 매우 낮아서 단지 55%의 가구만이 기본적인 식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으며, 61%의 가구는 위생적인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한다(UN Office for the Coordination of Humanitarian Affairs). 인구의 50%만 전기에 접근할 수 있으며, 공급은 불규칙하고 정전이 빈번하다. 아이티의 교육예산은 국내 총생산(GDP)의 1.1%에 불과하다. 교통서비스가 부족하고 국토의 50%가 제대로 연결되지 않았다. 아이티의 학교 교육은 사립에 의존하며 공립은 20%이다. 15세 이상의 아이티인 중 약 절반이 문맹이며 2020년에 초등학교를 졸업한 어린이는 약 50%밖에 되지 않는다(Human Watch).
아이티의 사법제도는 마비된 상태다. 판결에 필요한 판사의 정족수 부족으로 재판은 진행되지 않고 있고 형사사건에 대한 심리도 열리지 않고 있다. 교도소에 구금된 다수가 비인도적인 환경에서 재판을 기다리고 있으나 인력 부족으로 기약이 없다.
아이티의 국가의 무력 사용 독점력은 무장 갱단들에 의해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2017년 유엔 평화유지군이 철수한 후 아이티에서는 경찰이 유일한 보안군이다. 그러나 현재 경찰관의 숫자는 1만 3천 명으로 인구당 1.3명에 불과하다. 이는 국제기준인 1천 명당 2.2명의 절반 수준 정도이다. 아이티 갱단은 무기 밀매를 통해 고화력의 많은 양의 무기를 보유하고 있어 자금과 핵심무기가 부족한 국가 경찰보다 훨씬 더 잘 무장돼 있다7). 최근에는 수백 명의 훈련된 케냐의 경찰관들이 아이티의 갱단 소탕 작전을 위해 아이티에 도착했으나, 국제사회의 저조한 자금 및 장비 지원과 아이티 경찰의 이탈로 효과적인 작전 수행을 하지 못하고 있다.
유엔 아이티 통합사무소(BINUH)에 따르면 2023년 갱단 폭력에 의한 피해자가 8,400명 이상인 것으로 추정했다(UN, 2024). 올해 상반기에만 최소 2,652명이 살해당했고 1,280명이 부상당했으며, 893명이 갱단에 납치되어 몸값을 요구받았다(OHCHR, 2024). 그리고 70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다(IOM, 2024)8) 무장 갱단은 상점, 병원, 약국, 은행, 학교, 일반 가정집을 무작위로 약탈하고 길목 곳곳에 검문소를 설치하여 시민들로부터 통행세를 강탈하고 있다. 시민들은 출근길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길에 또는 집에서 총격을 받거나 약탈당하거나 납치를 당하며, 경찰이나 당국에 협조하거나 갱단의 활동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대낮에 처형되었다. 일부는 신체를 훼손하여 불에 태우기도 했다. 갱단은 공포감을 조장하고 주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이러한 장면을 촬영하여 소셜미디어에 공유했다. 뿐만아니라 무장 갱단이 연료와 필수 생활물자 그리고 인도주의적 지원물자의 이동통로인 항구, 공항, 도로를 장악하고 물품을 약탈하고 구호활동가들을 위협하면서 현재 아이티는 식량, 의약품, 생필품 부족 현상이 심각하며 인도주의적 활동도 중단된 상태이다.
살인, 납치, 성폭력, 방화, 약탈 등 다양한 형태의 폭력은 대중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으나 정부는 범죄 집단의 폭력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 시민들은 당국에 경찰 배치 확대를 요구하고 있지만, 현재 아이티의 경찰력은 인구 1천 명당 1.3명에 불과할 정도로 치안 시스템의 역량과 자원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결국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법 체계와 불처벌, 극심한 폭력 등 정부와 경찰의 무능함에 분노한 주민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고 사적인 정의 실현을 위해 “브와 칼레(Bwa Kale)”라는 자경단 운동을 일으켰다. 그러나 자경단의 폭력적 행태가 살인, 폭력, 통행세 갈취 등 기존 갱단의 방식과 유사하고, 지역을 통제하는 갱단에 대항하기 위해 경쟁 갱단과 제휴하는 전략을 취함으로써 자경단의 활동이 범죄조직으로 결집될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Insight Crime, 2023).
아이티를 혼란에 빠트린 갱단의 원형은 1957년부터 1971년까지 독재자로 군림했던 “파파독(Papa Doc)”으로 알려진 프랑수아 뒤발리에(François Duvalier)가 1959년에 창설한 개인 보안부대인 국가 안보 자원봉사대(Volontaires de la Sécurité Nationale)이다. 아이티인들은 이 조직을 “통통 마쿠트(Tontons Macoutes)”라고 불렀다. 통통 마쿠트는 뒤발리에가 군대를 견제하고 정치적 반체제 인사를 억압하는 장치로 사용했다.
통통 마쿠트는 “삼촌”(통통)이 난폭한 아이들을 납치해 포대(마쿠트)에 넣어서 아침 식사로 먹도록 끌고 가는 원주민의 전설에서 유래했다. 이들은 당국에 협조하지 않거나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야당 의원들과 사업가들을 납치, 고문, 강탈, 살해 함으로써 대중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통통 마쿠트는 밀짚모자, 파란색 데님 셔츠, 선글라스, 마체테(방망이)가 상징이며, 무식하고 잔인한 폭도들로 구성된 서반구에서 가장 잔인한 준군사조직 중 하나였다. 이들은 어떤 국가 기관이나 법원에도 책임을 지지 않으며 오직 그들의 지도자인 “파파 독”에게만 충성했다9). 그 후 1980년대 중반까지 통통 마쿠트는 1만5천 명으로 늘어났고, 뒤발리에의 묵인하에 6만 명 이상을 살해했다.
1986년 2월 뒤발리에의 아들 장 클라우드 뒤발리에(Jean-Claude Duvalier)정부가 전복되면서 통통 마쿠트도 해체되었다(Agenzia Fides, 2024). 그러나 전직 통통 마쿠트 군인들이 정치인과 연합하거나 마약밀매 조직의 수하로 들어가면서 아이티에서는 새로운 폭력의 순환이 시작되었다. 뒤발리에 가문의 독재정권(1957~1986)에 이어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2001~2004) 대통령과 미셸 마르텔리(2011~2016) 대통령 그리고 모이스 조브넬(2017~2021) 대통령도 범죄조직을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했다.
갱단들은 정치적 후원자들의 지원과 보호 속에서 세력을 확장했다. 현재 전국적으로 200개 이상의 갱단이 활동하며 그 가운데 약 23개가 포르토프랭스에서 활동하고 있다(UN News, 2024). 이들은 마약 및 무기 거래, 납치, 강탈, 인신매매, 폭행과 같은 다양한 범죄 활동에 관여한다. 가장 영향력 있는 조직은 “바비큐”로 알려진 전직 경찰 출신의 지미 세르지예가 이끄는 G9과 가브리엘 장 피에르(Gabriel Jean-Pierre)가 이끄는 GPep이다. G9은 모이즈를 지원하기 위해 9개의 갱단으로 구성된 범죄 연맹으로 테트 칼레당(PHTK) 및 모이즈 정부 내 관료 및 경찰관과 연결되어 있다. GPep은 G9에 맞서기 위해 결성된 범죄조직으로 PHTK의 정치적 반대파가 지지하는 조직이다(Insight Crime. 2021).
최근 아이티의 정치적 위기는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 조브넬 모이즈(Joverlein Moïse)10)가 당선되면서부터 시작됐다. 2015년 대통령 선거가 선거사기로 무효화 되고 정치불안 및 헤러케인 매튜의 영향으로 여러 차례 중단된 후 2016년 11월 20일에 대통령선거가 치러졌다. 모이즈는 바나나 사업가 출신의 정치신인으로 집권 여당인 테트 칼레당(PHTK)의 후보로 출마하여 55.67%의 득표율로 1차 투표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주요 후보자들이 부정투표 의혹을 제기하며,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또다시 선거무효를 주장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모이즈는 2017년 2월 7일에 대통령에 취임했다(CELAG, 2016).
그러나 신정부 출범부터 선거 정당성 문제로 순탄하지 않았던 모이즈 대통령은 2018년 연료 가격 인상 조치와 페르로카리베 스캔들 폭로로11) 야당과 사회로부터 강한 저항에 직면했다(John, 2021). 모리스 정부의 대응은 민주주의의 해체로 나타났다. 모리스 대통령은 2019년 의회 선거를 취소했고 2020년 지방선거 실시를 거부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아이티 국가의원의 임기가 2020년 1월에 만료되었다. 모리스 대통령은 의회 의석을 공석으로 두고 이 상황을 이용해 법령으로 통치했다. 야당은 모이스 대통령에 대한 민주주의 훼손, 부정부패, 사회적 위기를 비판하며 사퇴를 촉구했고, 2019년부터 모이즈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폭력적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됐다(BBC, 2021). 모리스 대통령은 비상사태 기간을 연장하고 헌법을 개정하기 위한 국민 투표를 실시하도록 명령하고 대법원 판사들을 해임했다. 그리고 헌법에 따라2021년 2월로 예정된 퇴임을 거부했다. 그리고 아이티 국회의 비준 없이 아리엘 앙리(Ariel Henry) 총리에 대한 임명을 강행했다.
모이즈 대통령의 정치적 위기는 2021년 대통령의 임기 문제를 둘러싼 야당과의 충돌로 고조됐다. 야당은 모이즈 대통령의 전임자인 미셸 마르텔리 대통령이 사임한 2016년에 2월에 모이즈 대통령의 공식적인 임기가 끝났다며 사임을 요구했다. 반면 모이즈 대통령은 헌법에 따라 5년의 임기가 보장되므로, 자신의 임기는 2022년 2월에 종료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정치적 혼란 속에 2021년 7월 7일 모이즈 대통령이 콜롬비아의 용병들에 의해 자택에서 암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아이티는 의회의 기능이 중단된 상황에서 대통령까지 공석인 완전한 권력 공백의 상태에 빠졌다. 모이즈 대통령이 암살되기 직전에 총리로 임명된 앙리 총리가 대통령 권한을 대행했다. 그는 새로운 대선을 약속했으나, 단 한 차례의 선거도 실시하지 않았다. 2016년 이후 아이티는 선거가 중단되어 상원과 하원을 포함하여 국가와 지방 수준의 모든 선출직이 공석이 됐다(Crisis Group, 2022).
2021년 8월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는 임시정부를 구성하고 선거를 실시하기 위해 몬태나 협정(Montana Accord)에 합의했다. 그러나 선거는 이행되지 않았다. 아이티의 정치적 안정을 위해서는 선거를 통해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고 제도를 회복해야 하지만, 정치권이 권력투쟁으로 분열하는 사이에 갱단의 권력은 포르토프랭스의 90%를 장악하고 국가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했다. 아이티에서 가장 큰 무장단체인 G9와 Gpèp은 최근 케냐가 이끄는 다국적 안보군(MSS)의 배치를 막고 앙리 총리를 축출하기 위해 서로를 향한 공격을 멈추고 비브 안삼(Viv Ansanm)이라는 연합전선을 구축하였다.
통합된 갱단이 정부와 민간인을 상대로 무차별적인 공격을 가하고, 이러한 갱단의 폭력에 분개한 주민들이 자경단을 조직하여 대응하면서 아이티는 갱단, 자경단 그리고 보안군 간 폭력이 난무하는 무법상태가 됐다. 그 결과 앙리 총리는 사퇴하고 2026년 2월까지 새로운 선거를 준비하게 될 과도정부가 구성됐다. 그러나 다가올 선거는 새로운 권력 경쟁의 시작을 의미한다. 새로운 국가 시스템을 설계하는 전환의 시기에 정치권의 갈등과 분열은 심화하는 반면 갱단은 우월한 무장 능력과 경제력을 토대로 점점 더 정치적 야망을 지닌 정치적 행위자로 변모하고 있다.
갱단들은 다국적 케냐 안보군이 아이티에 도착한 후 대규모 민간인 학살을 자행하고 과도정부의 가리 코닐(Carry Conille) 총리 및 관료들을 향해 암살 협박을 하고 있다. 경찰이 갱단의 공세에 대응하지 못하고 후퇴하면서 아이티의 국가 위기는 고조되었다(Politico, 2024.10.23.)
아이티의 가장 영향력 있는 범죄조직인 G9의 리더인 지미 셰르지에(Jimmy Cherizier)는 희생자들의 집과 시체를 불태우기 때문에 바비큐(Barbecue)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세르지에는 그의 정치적 후원자였던 모이즈 대통령이 암살된 후 관련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앙리 총리를 축출하고 부패한 정치엘리트에 대한 혁명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Aljazeera, 2024.3.16.). 자신을 취약계층을 위해 싸우는 사회정치적 세력으로 정의하며, 자신의 부하들에게 사면권을 주고 정부 내각에 포함시키는 평화계획을 제안하기도 했다(Vice, 2022.10.17.).
세르지에는 2021년 독립 영웅 추모행사에서 앙리 총리를 밀어내고 자신이 직접 기념식을 진행하였으며, 2021년과 2022년에는 아이티의 최대 연료 터미널(Varreux)을 폐쇄하고 앙리 총리의 사퇴를 압박했다. 그리고 경찰과 군대를 향해서는 앙리를 체포하라고 요구하면서 국민과 무장 집단을 향해서 자신들이 그들의 적이 아니라고 말했다(VOA, 2024.)
앙리 총리의 대통령 권한 대행의 임기는 원래 3개월이었다. 그러나 그는 갱단에 의한 폭력의 증가로 투명하고 공정한 투표가 치러질 수 없다는 이유로 대통령 선거를 지속적으로 연기하면서 3년 가까이 국가를 통치했다. 앙리 총리는 2024년 2월 7일에 사임하기로 약속했지만, 또다시 선거를 미루고 2025년 8월에 선거가 치러질 때까지 사실상 집권할 것이라고 밝히자 갱단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앙리 총리는 돌파구로 유엔 다국적보안군(MSS) 파견을 요청하기 위해 2024년 2월 29일 케냐로 출국했고, 이틈을 이용하여 중무장한 비브 안삼(Viv Ansanm) 갱단 연합은 포르토프랭스 공항을 봉쇄하고 경찰서를 포함한 주요 국가 기관과 전략적인 기반시설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단행했다. 특히 경찰서를 최대한 압박하여 국가의 보안능력을 약화 시켰다.
그동안 갱단의 폭력이 영토확장을 추구하는 갱단 간 격렬한 충돌로 인해 발생한 것이였다면, 2월 29일 발생한 폭력 사태는 이질적인 갱단들이 하나의 깃발 아래 국가에 대항하는 단결전선을 형성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갱단의 공동목표는 헨리를 축출하고, 다국적보안군의 배치를 막고, 모든 범죄에 대한 사면을 확보하는데 있었다.
갱단의 포르토프랭스 공항 봉쇄로 앙리 총리는 아이티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카리브해 지도자들이 아이티의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긴급 개최된 카리콤(CARICOM)회의에서 과도 대통령위원회가 설치되자 결국 앙리 총리는 사퇴했다. 과도 대통령위원회는 2026년 2월에 예정된 선거까지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서 질서 있는 절차를 통해 국가 위기를 안정화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위원회 의장, 새로운 총리 및 내각을 선출하는 초기 과정부터 행정부의 주요 직책을 차지하기 위한 아이티 정치권 내부의 갈등과 분열로 순조롭지 않았다(Douyon, 2024.5.13.)
갱단은 면책과 함께 그들이 합법적이고 강력한 행위자로 대우받길 원한다. 새롭게 설계될 국가 시스템에 참여하길 원한다. 아이티의 정부, 정치적 파벌, 경제 엘리트들은 안전, 대중 통제, 경쟁자 위협을 해결하기 위해 갱단과 협상하고 갱단을 이용하는 오랜 전통이 있다. 그러나 현재의 갱단은 경찰보다 더 잘 무장돼 있고, 정치인이나 사업가들보다 훨씬 더 부유하며, 정치적 야망이 크다. 갱단은 앙리 총리의 사퇴를 압박했고, 카리콤이 중재한 과도 대통령위원회 구성에도 의문을 제기하며 자신들의 참여를 허용하지 않을 시 폭력을 중단하지 않겠다고 위협했다. 뿐만 아니라 아이티에 대한 외국의 모든 개입을 반대한다고 경고하면서 자신들이 아이티가 현재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겠다고 주장했다. 이제 갱단들은 정치적 권력을 관리하는 것이 자신들의 존재를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아이티 갱단의 목표는 지배체제에서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권력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아이티는 2021년 조브넬 모이즈 대통령이 암살된 이후 권력의 공백 상태에서 무장한 갱단들이 국가와 권력을 공유하고 있다. 현재 수도인 포르토프랭스는 영토의 90%를 갱단이 통제하고 있으며, 주요 도로, 공공서비스, 인도적 원조에 대한 통제권을 장악하고 있다. 국가는 영토와 국민에 대한 사법적 정의, 폭력, 행정을 독점적으로 제공하고 적용할 수 있는 조직이지만 아이티에서는 갱단이 국가를 능가하는 권력을 행사한다.
갱단이 규칙을 정하고 강제하며, 비사법적 정의를 적용하고 공공서비스와 생필품에 대한 접근성 등 사회적 삶을 통제한다. 흔히 아이티를 실패한 국가 또는 취약한 국가로 분류한다. 국가가 국민에게 교육, 의료, 안전, 식량과 같은 기본적인 권리를 제공하지 못하면서 국가에 대한 통치 정통성을 확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재 아이티는 인구의 80%가 빈곤층이며 40%가 심각한 식량부족을 겪고 있을 정도로 인도적 위기에 처해 있으며, 사법제도가 작동하지 않아 법보다 폭력이 앞서는 상황이다. 국가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지 못할 때 무장 범죄조직의 폭력적인 질서는 정통성을 얻게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아이티는 범죄 거버넌스가 지배하는 나라이다.
아이티의 범죄 거버넌스는 정부 관료와 정치인이 범죄조직을 정치권력을 유지하고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하면서 확대됐다. 갱단들은 처음에는 정치적 후원자의 지원과 자원에 의존하는 구조화되지 않은 행위자였으나, 정치적 위기 상황에서 자율성과 독자적 생존능력을 강화하여 점차 정치적 목적을 가진 정치세력으로 변모했다. 기존의 범죄 거버넌스 이론은 범죄조직을 국가권력에 도전하는 정치세력으로 인식하지 않으나, 아이티의 범죄조직은 정치조력자를 벗어나 국가 시스템을 주도적으로 설계하는 지배 세력에 도전하고 있다.
아이티의 범죄 거버넌스는 국가의 공백을 점유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영토를 지배하고 국가에 압력을 가하면서 국가를 대체하고 있다. 과도정부가 수립되어 2026년 선거를 위한 기반은 마련됐으나, 정치권의 분열과 갱단의 통합 그리고 폭력에 지렛대로 한 갱단의 협상력이 아이티의 질서 있는 전환을 위협하고 있다.
이 논문은 2023년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23S1A5C2A02095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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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 UN Office for the Coordination of Humanitarian Affairs(2023년 4월), Humanitarian Response Plan at a Glance Haiti, https://www.unocha.org/publications/report/haiti/haiti-humanitarian-response-plan-2023-glance-april-2023-enht (2024년 10월 10일 검색) |
45. | UN(2024년 4월 4일). Haiti: Gangs have ‘more firepower than the police, UN news, https://news.un.org/en/story/2024/04/1148231 (2024년 10월 5일 검색) |
46. | UNDP(1997) Governance for Sustainable Human Development, Nueva York, UNDP. https://digitallibrary.un.org/record/492551?v=pdf (2024년 10월 10일 검색) |
47. | VOA(2024년 3월 7일), Lo que sabemos de ‘Barbacoa’, el poderoso líder pandillero que tiene en vilo a Haití, https://www.vozdeamerica.com/a/lo-que-sabemos-de-barbecue-el-poderoso-lider-pandillero-que-tiene-en-vilo-a-haiti/7517718.html, (2024년 10월 15일 검색) |
48. | Wikipedia, Governance, https://en.wikipedia.org/wiki/Governance (2024년 9월 10일 검색) |